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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문경 정토수련원에서 정토회 서원행자 임원단 1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사회실천 활동의 중요성에 대해 법문한 후 2016년 하반기 사업 방향에 대해 토론하고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어제부터 스님의 입재법문을 시작으로 해외지부 총무단 수련을 진행 중인 대중들은 아침 7시부터 유수 스님을 모시고 정일사 수련을 시작했습니다. 정일사 수련은 그동안 활동하면서 힘들었던 마음을 드러내고 수행적 관점을 잡아나가는 활동가 수련프로그램입니다.
해외지부 총무단이 정일사 수련을 하는 동안 스님은 전국에서 모인 서원행자 임원단과 함께 정토회의 하반기 사업 방향에 대해 토론하고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대중들이 청법가와 삼배로 법을 청하자 스님의 법문과 함께 모임이 시작됐습니다.
문경 정토수련원 명상원에는 정정당과 정념당 두 개의 건물이 있습니다. 오늘은 공교롭게도 한쪽 건물에서는 해외 각국에서 총무님들이 모여 ‘2차 만일결사를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를 주제로 모임을 하게 되었고, 한쪽 건물에서는 국내에서 전국의 총무님들이 모여 ‘1차 만일결사를 어떻게 마무리할 것인가’를 주제로 모임을 갖게 되었습니다. 참 묘한 느낌이 들면서 역사적인 날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왼쪽 건물에서는 1차 만일결사에 대해, 오른쪽 건물에서는 2차 만일결사에 대한 회의가 진행 중
먼저 스님은 부처님의 탄생설화를 통해 알 수 있는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부처님이 삶 속에서 보여준 다양한 사회실천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의 요지를 가장 상징적으로 잘 표현한 게 태어나실 때의 일성(一聲)입니다. 부처님이 탄생하실 때 실제로 그런 말씀을 하셨다는 게 아니라, 부처님의 가르침을 사람들이 요약해서 ‘부처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이렇게 살아가실 분이다’라고 표현한 거예요. ‘이렇게 살아가신 분이었다’ 이것을 탄생 설화에서 ‘이렇게 살아가실 분이다’라고 표현한 것인데 이것이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바로 나의 삶이고 나의 행복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어떤 물질, 어떤 신적인 것보다 더 우리들 자신 한 사람 한 사람이 소중하다는 선언이에요. 그런데 이것만 있었다면 자칫 이기주의로 흐를 소지가 있는데 그 다음 문장이 ‘삼계개고 아당안지(三界皆苦 我當安之)’ 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다 괴로워하고 있구나. 내 이를 마땅히 편안하게 하리라’, 즉 나만 소중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 또한 소중하다는 것을 말씀하셔서 이렇게 균형을 딱 잡아놓으신 겁니다.
이것이 대승불교에 오면 표현은 다르지만 똑같은 의미로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堤 下化衆生)’이라 했습니다. 이걸 또 다른 말로 표현하면 하나는 성불(成佛)이고 하나는 정토(淨土)입니다. 그래서 우리 불교에서 제일 많이 쓰는 용어가 성불과 정토예요. 단체명도 성불회니 정토회니 하는 이름이 많잖아요.
그런데 부처님이 이렇게 균형을 딱 잡아놨지만 소승불교는 성불에, 즉 개인수행에 치우쳤습니다. 그래서 대승불교가 흥기하면서 성불과 정토의 균형을 다시 잡아놓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또 개인적으로 치우쳤어요. 이게 아마 인간의 이기심 때문에 그런 거 아닌가 싶어요. 이기심은 버리라고 했으니까 세속에서 말하는 욕망의 이기심이 아니라 해탈이라고 하는 이기심을 강조한 거 아닌가 합니다. 그런데 대승 보살은 ‘내가 지옥 중생을 구제하지 못한다면 나는 성불하지 않겠다’라고 하죠. 성불이 필요 없다는 게 아니라, 모든 수행의 근본 목표는 성불인데 중생을 구제하는 것을 성불과 동격으로 두거나 오히려 비중을 더 많이 뒀던 셈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 불교는 다시 개인으로 치우쳤어요. 복을 비는 기복적 이익으로만 치우친 게 아니라, 소위 선사라고 하면서 정법을 이야기하는 사람마저도 개인의 해탈에만 지나치게 치우친 결과 사회적인 변화를 외면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많은 사람과 문답을 하면서 그 고뇌하는 개인들을 편안한 길로 인도하기만 하신 게 아닙니다. 계급이라고 하는 사회적인 틀에 의해서 고통 받는 로어 카스트(lower caste), 즉 천민들에게 계급 평등을 이야기하심으로써 사회적으로 큰 혁명적 변화를 일으키셨어요. 특히 부처님의 법 안에서는 절대로 계급적 차별을 용납하지 않으셨고, 여자는 사람으로 대우를 못 받던 시대에 여성도 한 사람의 인격자로 존중해서 여성 출가자를 허용하셨습니다. 그것이 이미 이루어진 시대에 사는 우리가 보면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 같지만 그 시대에서는 정말 상상도 못할 큰 혁명적인 변화였어요.
예를 들면 오늘날에도 범죄자나 매춘하는 여성은 아직도 좀 거부하는 사람이 많잖아요. 부처님이 유녀들 500명을 출가시켰을 때 부처님의 제자인 비구들마저도 강력하게 반대할 정도의 거센 저항이 있었고, 앙굴리말라 같은 범죄자를 교화했을 때도 엄청난 사회적인 저항과 그에 따르는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오늘날 인권이라고 하는 측면에서 보면 성소수자의 인권이나 장애인에 대한 인권처럼 범죄자도 그 인권을 존중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아직도 우리는 범죄자를 보면 ‘저런 놈은 죽여버려야 하는데’라고 해요. 그들도 법에 보장된 권리가 있는데 그걸 무시하기 쉽습니다. 또 죄를 지은 것에 대해 지금도 ‘처벌’이라는 용어를 쓰잖아요. 잘못한 것에 대한 과보로 처벌을 하는데, 교화의 핵심은 잘못했기 때문에 처벌하는 게 아니라 다시 잘못을 저지르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교화하는 거예요. 또 아직 치료약을 발견하지 못해서 치료를 할 수 없으면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격리하는 게 원래 교화의 목표거든요. 부처님께서는 그 당시에 이걸 이미 실현하셨다고 볼 수 있어요.
이런 것들은 오늘의 시대에서도 아직도 받아들이기 어렵고 실현하기 어려운데 2600년 전인 그 당시에 이미 그렇게 하셨다는 것은 요즘 말하는 ‘죄를 미워할지언정 사람을 미워해서는 안 된다’라는 것을 몸소 실천해보이신 거예요.
그리고 또 부처님의 가르침의 요지가 연기법이잖아요. 연기법의 가장 핵심은 인연과보입니다. 기독교인은 하느님을 믿느냐 안 믿느냐를 기준으로 논한다면 불교인은 인연과보(因緣果報)를 믿느냐 안 믿느냐, 이해하느냐 안 하느냐를 기준으로 논할 정도입니다. 그 인연과보의 뜻은, 인연에서 ‘인’이 직접적 원인이라면 ‘연’은 그 직접적 원인이 작용하는 주위의 환경 또는 조건을 의미합니다. 인이 씨앗이라면 연은 밭입니다. 곡식은 그 씨앗, 즉 종자가 어떠냐와 그 밭이 얼마나 잘 가꿔졌느냐에 따라서 소출이 많을 수도 있고 적을 수도 있어요.
이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 사회의 문제입니다. 아무리 밭이 기름져도 씨앗을 잘못 심으면 우리가 원하는 소득을 얻을 수 없는 것처럼, 아무리 사회가 좋다 하더라도 개개인들의 마음자리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으면 결국은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요즘 한국 같은 사회는 동남아 나라들에 비하면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많이 좋은 편이잖아요. 그러나 우리 국민들 개개인의 마음자리가 제대로 안 잡혀 있으니까 자살률이 그런 나라들보다 훨씬 높습니다. 20~30년 전에는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 다시 말해 자연환경도 잘 갖춰져 있고 민주주의도 잘 실현돼 있고 경제적으로도 안정된 나라로 주로 북유럽 쪽 국가들을 꼽았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국가로 스웨덴을 들었는데 그 당시 세계에서 자살률이 제일 높은 나라가 스웨덴이었어요.
이런 걸 보면 환경이 좋다고 인간이 반드시 행복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 이것은 씨앗, 즉 개인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이야기죠. 그러나 아무리 개인이 수도를 한다 하더라도 전쟁이 나서 폭탄이 떨어지면 죽어야 하고, 식량이 없으면 죽어야 하고, 전염병이 들면 죽어야 합니다. 개인이 수행만 한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니에요. 오늘날 인도 같은 곳을 보면 소수의 성자가 있을지 몰라도 전체 사회적 환경이 나쁘니까 얼마나 많은 사람이 고통을 겪고 있습니까? 그래서 사회를 변화시키는 작업, 즉 밭을 잘 가꾸는 작업이 함께 이루어져야 합니다.
불교를 조금만 신중하게 공부하면, 다시 말해 부처님 법에 정말 진지하게 접근한다면 굳이 제가 이렇게 강조하지 않아도 누구나 다 알 수 있는 거예요. 저도 누가 가르쳐줘서 아는 게 아닙니다. 저는 정말 불교를 좋아했는데 20대 때 독재정권을 비롯해 많은 사회적인 어려움과 민중의 고통에 직면하면서 고민이 깊어졌어요. 제가 보기에 기독교나 다른 종교들은 교리나 이런 것은 불교보다 훨씬 부족하지만 그들은 나름대로 성경을 해석하면서 민주화 운동도 하고, 어려운 사람을 돕고, 사회복지사업도 하는 겁니다. 나환자촌을 돕는 것도 기독교인이고, 장애인을 돕는 것도 기독교인이고, 고아들을 돕는 시설도 거의 대부분 기독교 소속이고, 학교를 세워서 아이들 가르치는 것도 기독교인이고, 가톨릭 농민회니 기독교 농민회니 하는 농민회를 조직해서 농민들의 어려움을 해결하고 그들의 권리찾기를 도와주는 것도 기독교고,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조건을 개선하고자 단체를 만들어 활동하는 것도 기독교인이에요. 그런데 불교는 인권에 대한 의식도 없고, 민주주의에 대한 의식도 없고, 여성에 대한 평등의식도 없어 보였어요. 제가 어릴 때부터 좋아했던 불교가 당면한 현실에서는 아무런 활동을 못하는 거예요.
이것이 제가 20대 때 겪었던 가장 큰 어려움이었고 한계였고 막막함이었습니다. 특히 소위 광주 항쟁이 일어나도 아무런 대처를 하지 못하는 무기력한 모습을 보고, 또 승려들이 신군부에 체포되고 구금되고 두들겨 맞는 등 엄청난 탄압을 받고도 거기에 대한 저항이나 반대의식은커녕 오히려 빈 자리 차지하기에 급급한 모습을 보면서 도대체 내가 좋아하고 믿고 있는 불교가 무엇인지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저도 가족이 감옥에 갔을 때 절에 가서 도움을 청하지 못하고 추기경님을 찾아가 호소해서 도움을 얻고, 제가 자라난 곳이 농촌이니까 농민들의 권익을 옹호하기 위한 교육을 받으려고 해도 크리스천아카데미와 YMCA를 가야 했어요. 이런 상황에서 제 개인 신앙이 아무리 진실하다 하더라도 불교가 갖는 사회적 역할이 전무한 상태에서 불교에 대한 실망이 컸습니다. 게다가 아예 사회에 대해 무관심했다면 차라리 괜찮을 텐데 불교 지도자들이 독재자를 옹호하고 사회적 변화를 거부하고 오히려 그 반대편에 서는 일들이 비일비재한 현상을 보면서 불교를 그만두든지 불교를 다시 공부하든지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불교를 그만두기에는 불교에 대한 애착이 너무나 크고 제가 처음에 배운 불교의 진리가 제 안에 너무 강하게 박혀 있었어요. 그래서 결국은 선택한 것이 불교의 재발견이었습니다. 이 현실의 모순 속에서 어떻게 불교를 재발견해야 할 것인가? 그게 결국은 부처님이라는 인격이었어요.
‘도대체 붓다라는 분이 어떤 분인가? 우리가 복이나 비는 신적인 것과 같은 존재인가? 아니면 정말 이런 구체적인 사회와 역사 현실 속에서 활동하셨던 분이었던가?’
제가 처음에 공부한 건 대부분 다 대승 경전이었어요. 그런데 이런 의문을 갖고 소승 경전을 다시 찾아보고, 부처님 일생에 대한 외국인들이 쓴 책을 다시 읽고, 아함경 같은 경전을 다시 보면서 붓다라고 하는 인격을 연구해나갔습니다.
‘당시 인도의 사회는 어떤 사회였느냐? 역사는 어떤 역사였고, 자연환경은 어땠고, 당시의 사회적 조건은 어땠느냐? 그 속에서 이 분은 자랄 때 어떤 고민을 하고, 어떤 문제의식을 가졌고, 어떤 사람의 영향을 받았느냐? 그리고 붓다가 얻은 깨달음의 내용은 무엇이며, 깨닫고 난 뒤 그 분의 45년간 평생의 삶의 모습은 어떠했는가?’
그렇게 발견한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이 황금빛 나는 부처님과는 전혀 다른 삶이었어요. 그래서 우리는 부처님이라는 인격을 그냥 하나의 신앙의 대상으로 존재하는 신적인 붓다로 받아들이면 안 됩니다. 내가 존경하고 내가 본받아야 할 인격체로서의 붓다를 발견하고 그래서 붓다의 설법을 다시 그 인격이 설할 만한 설법으로 이해해야 해요. 붓다라는 이런 위대한 인격이 그런 복이나 비는 이야기를 했을 리는 만무하잖아요.
그래서 저는 붓다의 가르침에 대한 이해를 새롭게 다시 살펴보게 됐어요. 제가 어릴 때 배운 책만이 아니라 외국에서는 붓다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찾아보고, 그걸 기초로 해서 대승경전을 다시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붓다의 가르침이 정말 이런 이현령비현령,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고 이것도 그것도 아니라는 말장난에 불과한 건가? 왜 이런 언어표현이 나왔고 왜 이런 대승 경전이 출현하게 됐는가?’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공부해보니 대승경전 또한 그 당시 기존의 불교가 사회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을 때 사람들이 겪었던 고뇌를 해결하기 위해 붓다의 본래 가르침으로 돌아가자는 운동을 반영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대승 경전을 그것의 표현으로 다시 받아들였을 때 금강경 같은 대승경전이 아함경 같은 소승경전에 수록된 붓다의 육성에 가까운 표현 방법과 많이 다르다 하더라도 거기에도 또한 붓다의 진실이 들어 있다는 사실을 다시 발견해내게 됐어요.
그래서 이제 저는 숫제 남방불교 스님들과 훨씬 대화가 쉬워요. 제가 예를 드는 경전을 그 사람들이 알고 있거든요. 그런데 그 사람들은 그 해석을 달리 하고 있죠.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그냥 공부하고 있으니까요. 그러다가 대화를 해보면 자기들이 공부하던 경전을 다시 보게 되는 겁니다. 마치 어떤 기독교인들이 ‘교회 다녀도 성경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 못하다가 스님 법문 듣고 성경을 다시 보게 됐습니다. 신앙을 다시 찾았어요’라고 얘기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불교 바깥의 어떤 일을 하는 게 아니라 가장 불교인다운 길을 가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잃어버린 역사를 되찾듯이 불교 신앙에서 잃어버린 한 바퀴를 다시 끼워넣고 있는 거예요. ‘천상천하 유아독존’, ‘상구보리’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은 인연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또는 ‘삼계개고 아당안지’ 또는 ‘하화중생’이라고 하는 바퀴가 함께 있어야 수레가 굴러가는데 지금 후자의 바퀴가 빠져서 비틀거리는 수레에 우리가 다시 그 한쪽 바퀴를 보충함으로 해서 정상적인 불교, 다시 말하면 붓다의 가르침으로 나아가는 거예요. 그래서 이렇게 바른 불교를 하자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런데 그 바른 불교는 가장 쉬운 불교여야 하고, 또한 그것이 가장 우리의 삶 속에, 생활 속에 작용하는 불교여야 합니다. 붓다의 가르침은 그것이 곧 바른 불교이고 쉬운 불교였어요. 부처님은 당시의 종교적 언어인 산스크리트어로 말씀하시거나 기록을 남기지 않으시고 일반 언어, 다시 말해 구어체인 빨리어로 말씀하시고 기록도 빨리어로 남기셨습니다. 그러다가 대승불교가 인도 사회에서 권위를 획득하기 위해서 다시 종교적인 언어인 범어, 즉 산스크리트어로 사용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일반인들의 삶과는 더 동떨어진 쪽으로 나아가게 됐습니다.
현재의 잘못된 불교에서 보면 정토회는 ‘새로운 불교’라고 이름 붙여지거나 ‘불교에서 벗어났다’라고 평가될지 모릅니다. 그러나 정토회는 사실 새로운 불교도 아니고 불교에서 벗어난 것도 아니고 원래 불교의 가르침으로, 붓다의 가르침으로 돌아가자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하는 행이 바깥으로 드러난 모습만 볼 때에는 ‘정토회가 좀 이상하다’ 할지 몰라도 법의 대화를 나눠보면 어떤 불교나 남방불교보다 더 붓다의 근본 가르침에 기초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붓다의 근본 가르침은 어떤 배타적인 특정 종교의 울타리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진리는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어요. 그 가르침이 합리적이였고, 붓다가 항상 하신 말씀도 ‘눈 있는 자 와서 보라’였습니다.”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에 입각한다면 개인의 완성을 위한 수행과 사회변화를 위한 노력이 항상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고 강조한 대목에서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을 표했습니다. 특히 이 문제로 고뇌하던 스님의 젊은 시절 경험과 부처님을 재발견하게 된 이야기는 깊은 울림으로 가슴에 남았습니다.
이어서 스님은 역사 속에서 왜 나머지 한 쪽인 사회실천 부분이 사라지게 되었는지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불교에서의 믿음이라는 것은 그냥 ‘나는 불교신자다’ 이런 믿음을 말하는 게 아니라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한 믿음을 말합니다. 붓다의 가르침은 우리를 자유와 행복으로 이끄는 가르침이고, 모든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가르침이고, 해탈과 열반을 지향하는 가르침입니다. 그 가르침의 요지가 그 분의 탄생게에서 보여지고, 대승의 기본사상에서 보여지고, 붓다의 가장 기본 가르침이자 불교신자가 따라야 할 인연과보의 원리에도 그대로 적용되어 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어리석음과 이기심이 작동하거나 현실의 장벽에 부딪혀서 극복하기 어려우니까 나머지 한쪽을 버렸어요. 이해는 됩니다. 왕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왕조시대, 다시 말해 백성이 주인이 아니라 왕이 주인인 사회에서 어떻게 ‘인간 고뇌의 일부는 환경에서부터 빚어졌다. 왕정이 잘못했기 때문이다. 양반과 상놈의 차별 때문에 혹은 여성 차별 때문에 생긴 문제다’ 이런 말을 쉽게 하겠어요? 그러니 이걸 포기해야 했던 거예요. ‘인연과보’를 ‘인과’라고 바꿔야 했고, 탄생게 중에서 나머지 하나는 못 본 척 해야 했고, 오직 성불만 주장해야 했던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모순에 빠지잖아요. 이해는 돼요. 그러나 그건 붓다만한 인격이 안 됐다는 이야기죠. 그만한 내적인 자신감이 없었다는 뜻입니다. 주어진 조건에서 한쪽을 포기하고 안주한 거예요. 잘못됐다기보다 시대적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거예요.
그런 시대에 태어났으면 우리 또한 이런 고뇌에 휩싸여서 왜곡된 불교로 살아갔을 텐데 다행히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바로 우리가 주인인 시대입니다. 붓다가 말한 대로 여러분들 한 명 한 명이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입니다.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천부적 인권이 아니라 신보다도 더 소중한 천상천하 유아독존적 인권이죠. 이것이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인정되고 법제화돼 있는 시대에 우리가 태어났다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정법이 다시 한 번 꽃필 수 있는 기회가 왔다는 겁니다. 이런 시대 인연을 못 만나면 정법이 꽃피기가 어려워요.
그런 면에서 우리가 선배들에 대해서는 왜곡된 불교를 전했다는 데 초점을 맞추지 말고 그래도 불교라고 하는 명맥이라도 이어서 오늘까지 우리에게 전해줬다는 것을 감사히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이제 겨울을 지나고 봄과 같은 새로운 시대가 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내적으로 정법이 제대로 준비가 안 돼 있기 때문에 고뇌하는 중생을 우리가 제대로 구제하지 못하고 있어요. 이 좋은 약재를 사람들이 제대로 먹고 치료할 수 있도록 제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원재료는 좋은데 제품이 지금 제대로 안 만들어져 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이제 정토회는 1차 만일결사의 하반기, 결실기에 들어섰습니다. 올 하반기는 8차 천일결사의 마무리 단계이고 9차, 10차는 만일결사의 마무리 단계입니다. 만일결사의 마무리 단계의 큰 축이 두 가지예요. 하나가 불교중흥이고 또 하나가 민족중흥입니다. 불교중흥의 구체적 내용으로는 읍, 면, 동 단위에까지 수행도량을 하나씩 만들자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사는 가까이에 수행 정진하는 모임을 하나씩 만들어서 누구나 다 행복과 자유로 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자는 거예요. 민족중흥의 구체적 내용은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입니다. 통일국가를 우리가 만들자는 거예요. 우리가 비자주적이고 또 분단되고 식민지배 받던 과거 100년의 청산이자 미래 100년의 새로운 희망의 출발점으로서 우리는 통일한국을 이룩해야 합니다. 또 그 통일이란 과정 속에 빈부격차나 지역차별 같이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많은 문제를 극복해야 하겠죠.”
마지막으로 스님은 정토회 회원들이 믿음이 약해 흔들리는 경우가 있다고 하면서 믿음을 갖고 마음껏 의견을 내어보면서 토론하고 대화하는 시간을 갖자고 하면서 법문을 마쳤습니다.
“정토행자들이 타 종교인들이나 다른 불교인들에 비해서는 그래도 신심이 있긴 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아직도 경계에 부딪히면 뿌리가 흔들려요. 붓다의 가르침에 대한 믿음, 그것을 통한 자기 경험, 그리고 미래에 대한 희망, 이런 것들을 딱 안 갖고 있기 때문에 이게 자꾸 흔들리는 거예요.
그러니 여러분들이 문제제기를 할 때 믿음이 흔들려서 문제제기하는 것인지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 하는 것인지 구분해야 합니다. ‘이걸 어떻게 효과적으로 대응할까’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방편을 쓸 수가 있기 때문에 우리가 얼마든지 이런저런 의견을 내서 토론할 수 있어요. 그건 스님보다 현장에 있는 여러분들이 더 잘 알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100여 명이 모여서 의논하는 것도 이 현장의 미세하고 디테일한 감각을 여러분들이 알고 있으니까 그런 거예요. 여러분들은 손발과 같은 존재니까 그 감각을 잘 살려서 현실의 저항을 최소화하는 방법을 함께 찾아봅시다.”
대중들은 큰 박수로 스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했습니다.
이어서 점심식사를 한 후 오후부터는 본격적인 토론에 들어갔습니다. 2016년 하반기에는 어떤 사업들을 전개할 것인지 다양한 의견들이 쏟아졌고, 스님의 각각의 의견들을 경청하면서 스님의 생각을 들려주기도 했습니다.
오늘 토론한 내용들은 행정처와 대의원회, 천일준비위원회 등에서 더욱더 심도있게 검토한 후 8월말에 있을 전국대의원대회에 제출되어 최종 승인이 나게 될 예정입니다.
회의를 모두 마치니 오후 4시 30분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6시에 끝마칠 예정이었는데 생각보다 일찍 끝나서 대중들도 무척 기뻐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문경 정토수련원 곳곳에는 벌써 코스모스가 활짝 피었습니다. 대중들은 코스모스를 보면서 어린 아이 마냥 기뻐하면서 사진도 찍고 담소를 나누다가 가벼운 발걸음으로 수련원을 내려갔습니다.
내일은 새벽 6시부터 9시까지 정토불교대학 학생들을 위해 특강수련 법문을 한 후 10시부터는 하루 종일 전국에서 모인 청년정토회와 청년포럼 활동가들과 함께 하반기 사업 계획에 대해 토론하고 대화하는 시간을 가질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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