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6.6.15 수원 청년 즉문즉설 강연
“성욕이 너무 강해서 고민입니다.”


 

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나라살림연구소 정창수 소장과 ‘국가 재정 운영’에 대해 대화를 나눈 후 저녁에는 용인에 있는 경희대 국제캠퍼스 르네상스홀에서 청년 400여 명에게 즉문즉설 강연을 했습니다. 

 

아침 7시부터 평화재단 기획위원회 회의를 가진 스님은 오후 1시부터는 나라살림연구소 정창수 소장님을 모시고 ‘국가 재정 운영’에 대해 주제 발표를 듣고 함께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평화재단에서는 비정기적으로 우리 사회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모시고 통일 대한민국 건설을 위한 국가 발전 비전에 대한 연구를 해오고 있습니다. 오늘은 국가 재정 운영에 대해 심도 깊은 토론이 있었습니다. 

 


 

정창수 소장님은 “우리나라 국민들은 법에만 관심이 많지 예산에는 관심이 없어요. 그 이유는 관료들이 은폐한 측면이 큽니다.”라며 “대한민국의 국가 재정 운영 체계에 대해 잘 알 필요가 있다”고 하면서 설명을 시작했습니다. 특히 “예산이 낭비된 곳을 찾아서 고발하는 활동으로 16개의 사업을 중단시킨 적이 있다”고 하면서 다양한 사례들을 보여주었습니다. 

 

통일에 관련해서는 “통일 비용과 예산에 대해서는 법륜 스님이 더 잘 아실 것 같다”며 쑥쓰러워 하면서도 이런 의견을 말해주었습니다.  

 

“독일은 통일된 후에 경제 규모가 커져버려서 세금은 많이 썼지만 조세 부담은 늘지 않았다고 해요. 독일 대사 중 한 분은 통일 비용이 전혀 들지 않았다고 주장을 하기도 해요. 그 이유가 역교부금 제도 때문입니다. 재정이 넘치는 지역이 재정이 어려운 지역의 부족분을 채워주는 것이 교부금 제도인데요. 우리나라는 이 교부금을 중앙정부가 모아서 지역에 나눠주는데, 독일은 지자체끼리 협의해서 수평적으로 나눠줍니다. 부족한 곳은 대체적으로 80%까지 채워주고, 잘 사는 곳은 120%까지는 봐주는 정도입니다. 그래서 통일할 때도 그렇게 수평적으로 배분했던 것이지 서독이 동독에게 특별히 준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통일 비용에 대해서도 경제가 활성화되는 데까지만 얘기하는데, 수출할 때 물류 비용 감소로 인해 생기는 이익, 독일처럼 조세가 증가해서 생기는 이익까지 모두 고려하면 제가 보기엔 5년 정도면 북한에 투입한 돈이 모두 이익으로 전환된다고 봅니다.”

 

재정 전문가도 통일의 이익에 대해 크게 낙관하는 모습이 무척 의미있게 다가왔습니다. 

 

또 정 소장님은 재정 예산을 바라보는 양극단을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진보 쪽은 공공성이 있으면 모두 용서해 버리고, 보수 쪽은 효율성이 있으면 공공성은 무시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 양 극단을 넘어서는 것이 중요하다는 지적이었습니다. 공공성이 있어도 그 안에서 최대한 효율성을 추구해야 하고, 효율성이 있더라도 공공성이 없다면 해악이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예산 낭비가 많다는 것을 지적했습니다. 가령 인구가 늘어날 것이라는 것을 과장해서 시설을 계속 늘려나가면서 예산을 쓴다는 겁니다. 시설은 그대로 두고 비용을 절감하는 쪽으로 가야 한다고 하면서 이렇게 된 원인을 설명했습니다.   

 


 

“저는 지출구조조정이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조건적인 증세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현재의 상태에서 증세를 하게 되면 복지가 조금 늘겠지만 현재의 예산 문제가 그대로 확대되기 때문입니다. 복지 지출은 OECD 국가들 평균이 30% 정도 되는데, 한국은 12.4%입니다. 보건 분야를 제외하고 있고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경제 분야에 대한 지출이 다른 나라에 비해 2배 내지 4배 정도 높습니다. 우리나라 예산 구조의 문제는 복지가 작은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경제 부분에 대한 투자가 지나치게 많다는 겁니다. 이 안에는 SOC부터 산업, 농림 등이 다 포함되어 있고. 대부분 대기업과 좀비기업, 산하기관에 가는 돈들입니다. 이 부분을 개혁하지 않고는 증세를 해도 그 효과는 적을 것입니다. 경제 활성화를 위해 대기업에 재정 지출을 할 것이 아니라 그들은 시장경제에 맡기고 정부는 오히려 사회 안전망 구축에 더욱더 재정 지출을 해야 한다는 겁니다. 

 

둘째는 부처별 칸막이가 쳐져 있는 것이 큰 문제예요. 어디에 얼마를 쓰라는 것이 딱 정해져서 내려옵니다. 도로에 대한 시민들의 수요가 있어서 예산을 배정하는 것이 아니라 도로에 써야 할 예산이 배정되어 내려오니까 예산에 맞춰서 도로를 놓는 겁니다. 도로가 필요 없는데도 예산이 내려오니까 계속 도로를 놓아야 하는 겁니다. 

 

전체 예산 380조 중에 신규로 제출되는 예산이 1% 밖에 안 됩니다. 즉 새로운 사업이 거의 없다는 겁니다. 대통령이나 관료들은 마치 자신이 엄청난 변화를 주겠다고 주장하지만 사실은 그럴 수가 없는 것이죠. 국회의 예결 심사 기능이 거의 없다고 봐야 해요. 국회의 예결특위는 국회의원들이 자신의 지역 예산을 배정받기 위한 도구로서의 기능 밖에 안 하고 있는 겁니다. 

 

강원도 인제에 가면 40가구가 사는 마을이 있는데 새로 다리 놓은 비용이 300억 가량 들었습니다. 속초에는 도로 없는 다리가 있는데, 도로 예산과 다리 예산이 따로 나오는데 도로 예산이 나오기 전에 다리 예산이 먼저 나온 겁니다. 그래서 도로는 없는데 다리만 놓은 겁니다.” 

 

이 외에도 예산이 낭비된 나쁜 예와 재정을 잘 운영한 좋은 예를 여러개 소개했습니다. 이를 듣고 스님은 지난 2012년에 300회 강연을 다니면서 어떤 군에 방문했던 이야기를 들려 주었습니다. 거리가 10km 밖에 안 되고 인구도 5만 이하인 두 개의 군청 소재지에 각각 종합운동장과 체육관이 지어졌다는 얘기였습니다. 

 


 

“거리가 10km 정도 밖에 안 되는데 이쪽에도 종합운동장과 실내체육관이 있고, 저쪽에도 종합운동장과 실내체육관이 있더라고요. 바로 옆에 붙어 있으면 한쪽에 운동장을 짓고, 한쪽에 실내체육관을 지어서 같이 사용하면 유지관리비도 적게 들고 예산도 절감 되잖아요. 그런데 군수님 하는 말이 ‘예산이 우리 것이면 당연히 그렇게 생각해볼 텐데, 운동장을 짓는다고 해야 중앙정부에서 돈이 나오니까 따로 지을 수 밖에 없다’라고 하더라고요. 국가에 감사 기능이 있어서 전국적으로 다니면서 비효율적인 것을 줄이는 장치가 있어야 하는데 전부 다 새로 짓는 것들이 많거든요.”

 

정 소장님은 그런 사례가 전국에 비일비재하다며 같이 웃었습니다. 그러면서 스님은 보육정책에도 불합리한 부분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아기가 태어나면 자기 엄마로부터 사랑받을 권리가 있잖아요. 엄마가 아기를 직접 키우면 정부에서 지원금을 많이 주고, 보육원이나 남의 손에 맡기면 지원금을 적게 줘야 엄마가 아기를 키우도록 도울 수가 있잖아요. 그런데 엄마가 아기를 직접 키우면 지원해주지 않고, 남한테 맡기면 보육 예산을 지원해 주니까 이것은 아기와 엄마를 떨어뜨리는 결과를 낫는다는 겁니다. 보육 정책의 목표는 아이의 행복에 있어야지 엄마에게 초점을 맞추면 안 되거든요. 이런 문제들을 어떻게 시정할 수 있을까요?”

 

정 소장님은 스님의 이야기에 공감하면서도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려다보니 그런 정책들이 나온 것 같다고 대답했습니다. 이 부분은 전문가들이 더욱더 심혈을 기울여 대안을 내놓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정 소장님은 “공무원의 급여가 평균 연봉 7천만원 정도 되고, 공무원의 월급을 낮추는 대신에 그 숫자를 더 늘리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래서 특권층화 되어 있는 공무원의 틀을 깨는 것이 필요합니다.”라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이에 대해 스님은 “공무원이 대부분 소득 상위 10% 정도라고 하셨는데, 10%를 개혁하기 전에 먼저 1%의 최상위 기득권을 과감하게 개혁해야 설득력이 있지 않을까요?”라고 반문하기도 했습니다. 

 

토론은 무려 4시간 동안 계속 됐습니다. 토론을 끝마칠 시간이 되자 스님은 마지막 질문을 던졌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빈부격차를 어떻게 줄일거냐의 핵심은 결국 세금을 어떻게 거두어 재정 지출을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 아니겠어요? 우리 경제가 지금 정체 국면에 이르렀기 때문에 이런 조세와 재정 정책은 빈부격차를 해소하는 국가 개혁의 수단으로 기능하면 새로운 돌파구가 될 수  있는데, 문제는 국민들에게는 이것이 잘 안 다가온다는 것이죠. 자신의 부를 뺏기는 사람들의 저항감만 불러오지 혜택받는 사람들의 지지를 불러오지 못하잖아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정 소장님은 간단하게만 답했습니다. 

 


 

“정책이 바뀌었을 때 어떤 혜택이 주어지는지 직접 보여주는 노력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정치인들의 의지 부족이 원인이라고만 봤습니다. 그런데 정치인들의 의지 부족도 있지만, 국가 예산 구조와 시스템에 대해 잘 몰라서 빚어지는 손실이 더 많은 것 같더라고요.”

 

더 심도있는 토론이 이어질려는 찰나에 모임을 마쳤습니다. 아쉬움이 좀 남는 모습이였습니다. 그래서 원래는 오늘 한 번만 토론이 계획되어 있었는데, 다음주에 한번더 만나서 더욱더 깊은 토론을 이어가기로 하고 모임을 마쳤습니다.  

 

이어서 스님은 청년포럼, 대중부와 함께 연이어 회의를 했습니다. 18일(토)에 경주에서 있을 통일의병대회 프로그램 관련해 점검하고 의논한 후 회의실을 나왔습니다. 

 

곧바로 저녁 강연을 하기 위해 수원으로 출발했습니다. 오늘부터 5일 동안 행자대학원 9기 과정 졸업을 앞두고 있는 10명의 행자님들이 스님과 동행을 하게 됩니다. 강연장으로 출발하기에 앞서 9기 행자님들이 정토회관 앞마당에서 인사를 했습니다. 행자님들이 “열심히 따라다니며 배우겠다”고 하자 스님은 웃음과 함께 격려를 해주었습니다. 

 


 

저녁 강연이 열리는 곳은 용인에 있는 경희대학교 국제캠퍼스 르네상스홀입니다. 학교에 도착하기 전 잠시 중국집에 들러 짜장면으로 저녁 식사를 한 후 강연장에 들어섰습니다. 

 

건물이 아주 웅장했는데, 수원 청년정토회 봉사자들은 큰 기둥마다 한 명씩 포스터를 들고 서서 찾아오는 청중들을 반갑게 맞이해 주었습니다. 

 


 

저녁 7시가 되자 400여 명의 청년들이 자리를 가득 메운 가운데 소개 영상과 함께 즉문즉설 강연이 시작됐습니다. 영상이 끝나고 스님이 무대로 걸어나오자 청년들은 큰 함성과 박수갈채로 환영했습니다. 

 


 

스님은 거두 절미하고 곧바로 질문을 받았습니다. 총 7명이 스님에게 질문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 성욕이 너무 강해서 고민이라고 질문한 20대 남성 분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욕망을 어떻게 다스릴 것인가에 대해 솔직한 질문과 스님의 명쾌한 답변이 어우러지면서 아주 재미있고 유익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저는 성적인 욕망이 너무 강해서 고민입니다. 저도 남자라 성적인 욕망이 있고, 그래서 사실 군대 제대 후에는 많은 여성들과 만나서 놀아도 봤습니다. 가슴이 깊게 파인 옷이라든가 핫팬츠를 입고 다니는 여성들을 보면, 특히 몸매가 예쁘거나 얼굴이 예쁘면 제 눈이 자연스럽게 그 여성들을 향해 돌아갑니다. 

 

그런데 계속 이렇게 살고 싶진 않습니다. 저는 여태껏 그런 여성들에게 적극적으로 대쉬도 해 보고 그랬지만 결과적으로 그냥 참기만 했는데, 이제는 욕망을 단순히 참기보단 아예 다스리고 싶습니다. 예를 들어 나체의 여성이 저를 유혹하려고 다가오면 지금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을 것 같은데, 그걸 참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질문자는 올해 몇 살이에요?”

 

“29살입니다.” 

 


 

“29살이나 되는 젊은 사람이라면 여성을 봤을 때 욕망이 일어나는 건 신체구조상 정상적인 것입니다. 그런데 질문자의 얘기를 들어보니, 질문자는 보통 사람보다는 성적 욕망이 약간 더 강한 사람이에요. 그런데 어떤 시대에는 성적 욕망이 강한 걸 ‘남성적’이라며 좋게 보는 경우도 있었어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기가 원하는 게 있기 마련이예요. 예를 들어 ‘공부하기 싫다’, ‘뭐가 먹고 싶다’, ‘누가 좋다’ 이렇게 누구나 뭐든지 하고 싶은 게 있는데, 이 세상에서는 하고 싶다고 다 할 수가 없어요.”  

 

“저는 하고 싶다는 마음조차도 안 일어나게 할 수 있는지가 궁금합니다.” 

 

“그럼 화학적 거세를 해야지요.”(모두 웃음)  

 


 

“제가 사랑하는 한 여자를 위해서는 하는데, 다른 여자에 대해서는 안 일어나도록 하는 것이요.”

 

“윤리와 수행 두 가지 측면에서 얘기할 수 있는데, 이 윤리와 수행은 좀 다릅니다. 첫째, 윤리적 측면에서 볼 때, 질문자가 어떤 여성에 대한 성적이 욕망이 있다는 것 자체는 나쁘다 좋다고 말할 수가 없어요. 현실이니까요. 마찬가지로, 좋은 자전거를 보고 ‘저거 갖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건 나쁘다 좋다고 말할 수가 없지요. 그 자체는 욕심이 일어나는 현실이니까요. 

 

그런데 우리가 남의 물건을 갖고 싶다고 다 갖게 되면, 그건 내 입장에서는 괜찮지만 상대 입장에서는 괜찮지가 않잖아요. 또 내가 상대가 좋다고 껴안는 건 내 입장에서는 좋은 일이지만 상대 입장에서는 고통스런 일이잖아요. 그래서 나에게 이롭다고 상대에게 손해를 끼치거나 내가 즐겁자고 상대에게 고통을 준다면, 공동체 안에서는 반드시 그에 대한 과보가 따릅니다. 예를 들어 상대도 내 물건을 훔쳐갈 수도 있고, 나는 싫은데 상대가 자기 멋대로 나를 괴롭힐 수도 있는 거예요. 이런 문제 때문에 내가 이익을 추구할 권리는 있지만 상대에게 손해를 끼칠 권리는 없으므로 욕망이 있지만 멈춰야 된다는 겁니다. 내가 즐거울 권리는 있지만 또한 상대를 괴롭힐 권리는 없기 때문에 그 전에 멈춰야 됩니다. 거기까지가 한계라는 겁니다. 

 

이걸 윤리라고 해요. ‘인간의 욕망은 나쁘다’ 라고 가르치는 게 윤리가 아니고, 인간은 욕망을 가진 존재인데 그 욕망이 타인에게 해를 끼치기 전 단계에서 멈춰야 한다는 게 윤리입니다. 멈추지 않으면 반복적으로 서로에게 보복을 하게 되니까요. 그런데 멈추지 않으면, 즉 윤리적으로 행동하지 않으면 어떤 문제가 발생합니까? 윤리적인 비난과 법률적인 처벌을 받게 됩니다. 예를 들어 질문자가 ‘저 여학생의 종아리를 만지고 싶다’고 해서 종아리를 만졌다면 상대에게 고통을 준 거잖아요? 그래서 상대가 질문자로부터 성추행 당했다고 고소하면 질문자는 처벌을 받게 돼있단 말이에요. 질문자가 그 종아리를 만지고 싶은 걸 못 참아서 한 번 만지고 6개월 감옥에 간다고 가정했을 때 질문자가 ‘6개월, 뭐... 한 번 만져봤으니까 됐다’라고 생각한다면 괜찮아요.(모두 웃음) 

 


 

그런데 질문자가 순간적으로 욕망을 못 참아서 6개월간 감옥살이를 하는 것이 ‘짧은 쾌락에 비해서 불이익이 너무 크다’ 싶으면 다음에는 만지고 싶더라도 자제를 해야 된다는 거예요. 상대를 위해서가 아니라 질문자 자신을 위해서요. 하고 싶지만 실제로 하면 질문자에게 손해이니까 자제를 해야 되고, 반대로 하기 싫다고 실제로 안 하면 질문자에게 손해가 나는 일이 있다면 그 일은 또 해야 되는 거예요. 

 

그런데 여러분들 대부분은 자꾸 ‘하고 싶은 걸 왜 못 하게 하느냐?’, ‘하기 싫은 걸 왜 하라고 그러느냐? 라고 합니다. 여러분들이 하기 싫은 걸 어르신들이 하라고 하는 이유는 하는 게 여러분에게 이로우니까 그러는 것이고, 하고 싶은 걸 못하게 하는 이유는 그걸 하게 되면 여러분들한테 손해이니까 하지 말라는 것이란 말이에요. 그런데 몰래 하고서 손해가 금방 드러나지 않으면 여러분들은 ‘해도 괜찮네, 뭐’ 하면서 두 세번 더 하다가 발각되면 그 때 후회를 하지요. 그래서 첫째, 하지 마라고 하는 거예요. 그게 윤리입니다. 그리고 그 윤리를 넘어서면 법률에 의거해서 처벌을 받게 되는 겁니다.

 

둘째, 수행의 측면에서 보면 이렇습니다. 수행은 그런 불이익이 돌아오고, 안 돌아오는 것과 관련된 윤리를 훨씬 넘어서는 문제입니다. ‘잠시의 쾌락이 결국 나에게 고통을 가져온다’, ‘쾌락의 과보가 고통이다’ 하는 관점입니다. 그러니 고통을 받지 않으려면 쾌락을 내려놓아야 되는 거예요. 보복의 개념이 아니라 원인 제거의 개념이에요. 욕망 자체를 부정하면서 ‘욕망을 갖는 건 다 죄다’는 개념은 종교적 관점이고, 그 욕망에 휘둘리지 말라는 게 수행적 관점이에요. 질문자가 욕망을 너무 참으면 나중에 터진단 말이에요. 그래서 성폭행이 일어날 수도 있어요.” 

 

“상대가 원하지 않으면 저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만약 상대가 질문자에게 같이 놀자고 한다면 질문자가 같이 놀아도 돼요.” 

 

“그런데 저는 그러기 싫어요. 왜냐하면, 저에게 나중에 여자 친구나 아내가 생길 수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저에게 아내가 있는데도 나중에 다른 여자가 저랑 놀자고 하면 어떻게 해요?”

 

“상대가 원하지 않는데도 질문자가 상대와 관계를 맺으면 그건 범죄가 되겠지만 질문자에게 부인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어떤 여자가 같이 놀자고 해서 놀면 그건 범죄에 속하는 게 아니고 질문자의 선택에 속합니다. 그런데 질문자가 그 여자와 연애를 한다면 질문자는 부인으로부터 이혼을 당하는 과보를 받게 되겠지요.”(모두 웃음) 

 

“과보가 두렵긴 한데요.”  

 

“질문자는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지요. 여자 종아리를 만지고 감옥에 갈 거냐, 안 만지고 감옥에 안 갈 거냐 하는 문제와 마찬가지로, 그 여자와 하루 놀고 자녀가 있는 부인과 이혼을 할 건지 여부는 질문자가 선택해야지요. ‘작은 즐거움이 큰 손실을 가져오는구나’ 싶으면 자제를 해야 되고요.”

 

“그런데 예를 들어 정말 예쁘고 섹시한 여자가 제 옆을 지나가고 있을 때 어떻게 하면 제가 눈길을 안 줄 수가 있을까요?”(모두 웃음)

 

“그냥 쳐다보면 되지요, 뭐.”(모두 웃음)

 


 

“부처님께서는 안 쳐다보셨을 거잖아요.”

 

“자기는 부처님이 아니잖아요.” 

 

“저는 참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는데, 수행 방법을 좀 알려주세요.”

 

“좋아요. 그런데 질문자는 욕심이 너무 많아요. 기대가 너무 높으면 현실에서 오히려 실현이 잘 안 됩니다. 질문자는 바로 부처님 흉내를 내려고 하면 안 돼요.(모두 웃음) 질문자가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 일은 첫 번째로, ‘내 이익을 위해서 상대에게 손해를 끼쳐서는 안 된다. 내 즐거움을 위해서 상대에게 고통을 줘서는 안 된다’ 하는 겁니다. 질문자는 이 계율을 지켜야 해요. 이걸 어기는 건 범죄에 속하는 거예요. 두 번째는 ‘작은 이익을 위해서 큰 손실을 봐서는 안 된다’ 하는 겁니다. 이것은 지혜에 속합니다. 이것을 지킬 줄 모르는 건 어리석음에 속해요. 

 

그러니 첫 번째 것을 어기는 건 범죄에 속하기 때문에 처벌을 받아야 되고, 두 번째 것을 어기는 건 범죄는 아니지만 어리석은 행위입니다. 10원 벌려고 100원 손해 보는 것과 같습니다. 여자 종아리 한 번 만지고 6개월 감옥살이 하는 건 바보 같은 짓에 속하잖아요? 그런 것처럼 여자가 아무리 아름답더라도 그 여자와 데이트하고 나서 자녀까지 낳고 살아온 부인과 헤어진다면 그것은 질문자에게 큰 손실입니다. 그러니 질문자가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욕망이 일어난다고 하더라도 ‘어, 이건 나한테 손실이야’ 하고 알아차려서 그런 손실 볼 일을 안 해야겠지요. 예를 들어 여기 엄청나게 색깔도 좋고, 냄새도 좋고, 맛있는 음식이 있어서 질문자가 먹으려는데 누가 ‘거기 쥐약 들었다’라고 하면 그것을 먹어야 되나요? 안 먹어야 되나요?”   

 

“참아야 돼요.” 

 

“참기는... 쥐약 들었다는 음식을 안 먹으려고 계속 참는 사람이 어딨어요? 질문자라면 그 음식 옆에서 그 음식을 보면서 계속 참겠어요?(모두 웃음) ‘거기 쥐약 들었다’고 하면 거기서 딱 그만이지요. 그런데 그때 자꾸 ‘조금만 먹어보면 안 될까요?’ 하는 사람이 있다면 부처님은 그래도 ‘거기 쥐약 들었다’고 하실 텐데, 법륜 스님은 인내심이 부족해서 그렇게 세 번만 물으면 ‘그래, 먹고 죽어라!’라고 합니다.(모두 웃음) 

 


 

그러니 하고 싶은 게 있으면 하고 싶은 대로 하고 그 과보를 받으면 돼요. 즉 결혼을 했어도 다른 여자를 만나고 싶으면 만나다가 이혼을 하면 되는 거예요. 인연과보이니까요. 질문자의 행위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 져야 된다는 거예요. 질문자는 그 여성과 데이트할 자유가 있어요. 그건 강제가 아니니까 범죄도 아니기 때문에요. 그러나 질문자의 부인에게도 질문자와 이혼할 권리가 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질문자는 그걸 받아들여야지 ‘내가 잠깐 실수했다고 너무 과하지 않느냐?’라고 말할 수가 없다는 겁니다. 

 

과보를 안 받으려면, 즉 돈을 안 갚으려면 돈을 안 빌려야 된다는 거예요. 빌렸으면 갚아야 되고, 갚기 싫으면 안 빌리는 길 외에 다른 길은 없어요. 윤리는 질문자의 행위에 대해 나쁘다 좋다고 평가하지만, 불교는 그렇게 평가하지 않는 대신 ‘질문자가 지혜롭다면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고, 질문자가 어리석다면 그렇게 해서 스스로 손실을 본다’라고 말하는 겁니다.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서 질문자가 부처님을 닮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요? 질문자는 나체 사진을 앞에 두고 따악 앉아서 자기에게 일어나는 성적인 욕망을 지켜봐야 합니다. 외면하지 말고, 응시하면서 성적인 욕망을 지켜보라는 거예요. 어떤 여성과 관계를 갖거나 자위 행위로 해결하지 말고, 그냥 계속 지켜보세요. 담배를 피우고 싶은 욕망이나 성적인 욕망이나 욕망은 다 같습니다. 그런데 그 욕망이 계속 지속될까요? 아니면 가만 놔두어도 어느 정도 가다가 가라앉을까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가라앉아요.” 

 

“예. 담배가 피우고 싶을 때 담배를 피우면 욕망이 내려가듯이 성적 욕망이 있을 때 관계를 맺으면 일단 해소가 되겠지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또 욕망이 일어나잖아요. 그런데 그걸 해소를 안 하고 그냥 놔두면 견디지 못할 만큼 올라갑니다. 그래도 내버려두면 어떻게 될까요? 다시 내려갑니다. 영원히 지속되는 욕망이란 없습니다. 그걸 질문자가 경험을 해 봐야 합니다. 질문자가 계속 지켜보면, 일정한 시간이 되면 욕망이 가라앉습니다. 그렇게 저절로 가라앉는 경험을 질문자가 한 번 하고, 두 번 하고, 세 번 하는 식으로 자꾸 경험해 보세요. 그 첫 번째가 어려운 거예요. 그런데 자꾸 해 보면, 욕망이 첫 번째로 일어났을 때 100까지 치솟았다가 내려갔다면, 두 번째는 98에 내려가고, 세 번째는 97에 내려가고, 네 번째는 95에 내려갈 것입니다. 올라가긴 올라가지만 내려가는 꼭지점이 갈수록 낮아집니다. 욕망은 지속적으로 생겨나지만 욕망을 견뎌내는 힘은 자꾸 커집니다. 

 

참으려고 하면 이를 악다물고 견뎌야 하고, 그냥 가만히 지켜보면 어느 시점에서 내려가고, 또 내려갑니다. 처음에는 1시간 있다가 내려갔다면 다음에는 55분, 다음에는 50분, 다음에는 30분, 이런 식으로 내려갈 겁니다. 그렇게 되면 만약 질문자가 어떤 여자와 호텔에 가서 발가벗고 침대에까지 들어갔을 때 여자가 ‘난 싫어’라고 하면 ‘알았다’하고 나올 수 있을 겁니다. 그 때 ‘아니, 누가 오자고 했는데?’라고 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어떤 경우에도 상대의 의사에 반하면 성추행이 됩니다. 

 


 

엄격하게는 부부지간에도 상대가 원하지 않으면 성추행이에요. 옛날엔 부부지간이라면 상대가 원할 때 응하는 게 의무처럼 되어있었기 때문에 신고가 들어와서 경찰이 현장에 출동해서 부부가 싸우는 걸 확인했어도 ‘우리는 부부입니다’ 하면 아무런 조치없이 돌아갔지만, 지금은 부부라고 해도 상대를 때리면 폭행죄에 들어가고, 상대가 원하지 않는 관계를 맺으면 성추행죄에 들어갑니다. 

 

욕망은 다 채워야만 해결되는 게 아닙니다. 채워도 다시 일어나고, 그냥 놔둬도 가라앉고 그러는 게 욕망이에요. 그러니 질문자는 제가 말씀드린 대로 알아차리기 연습을 한번 보세요.” 

 

“연습하겠습니다.”(모두 박수) 

 

“욕망을 해소해서 문제를 풀면 욕망은 점점 강화됩니다. 그러니 욕망을 그냥 놔두고 가라앉게 하는 연습을 자꾸 해야 돼요. 여성들이 사고 싶은 물건을 사서 해소하는 것도 흡연과 똑같습니다. 백화점에 가서 물건을 사고 싶을 때 백화점에 안 가는 방법도 있지만 그건 수행은 아닙니다. 수행을 제대로 하려면 백화점에 가서 물건들을 보면서도 안 사야 됩니다. 쭉 보면서도 억지로 참고 안 사면 다음에도 똑같은 일이 일어나는데, 그것을 가만히 보고 있어보세요. 계산하려고 손이 주머니로 갈 때도 계속 보고 있어보세요. 그 욕망이 가라앉을 때까지요. 이것이 수행입니다.(모두 웃음) 

 


 

수행은 참는 게 아니에요. 욕구의 원리를 알아서 거기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 수행입니다. 바깥 사물로부터, 즉 내 차 앞에서 중앙선을 침범하며 운전하는 사람으로부터도 내가 자유로워지고, 상사가 잔소리 하는 것으로부터도 자유로워져야 되지만, 자기 욕망으로부터도 자유로워져야 합니다. 그런데 제일 어려운 것이 자기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겁니다. 그래서 백만 대군을 이기는 것보다 스스로를 이기는 사람이 진짜 영웅이라는 말도 있잖아요. 자기 욕망으로부터 자기가 자유로워지는 게 해탈이에요. 욕망이라는 것은 까르마로부터 일어나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자기 까르마로부터 해방되면 그게 바로 해탈입니다.” 

 

질문자는 스님이 이야기한 대로 연습해보겠다며 우렁차게 대답했습니다. 큰 박수가 쏟아지면서 강연장의 분위기가 한층 더 밝아졌습니다.  

 

이 외에도 6명이 더 스님에게 질문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첫 번째 질문자는 자신이 생각하는 성공한 삶이 무엇인지 그 기준을 소개하면서 이런 꿈이 소박한 것인지 스님의 조언을 구했고, 두 번째 질문자는 점점 늘어나는 여성 대상 성범죄와 여성 혐오 발언들에 대해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물었고, 세 번째 질문자는 대학교 3학년인데 전공이 자신과 맞지 않는 것 같아서 새로운 길을 준비하고 싶은데 걱정이 앞선다며 고민을 말했고, 네 번재 질문자는 불교에서는 분노하지 말 것을 가르치는데 프랑스혁명도 분노가 없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것 아니냐며 분노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물었고, 다섯 번째 질문자는 스님의 ‘인생수업’ 책을 읽고 가볍게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순간순간 힘들어질 때가 많다며 스님은 어떻게 힘듦을 극복하는지 물었고, 여섯 번째 질문자는 우울증 약을 복용하다가 시험공부 때문에 약을 끊고 있는데 앞으로 어떻게 살아나가야 할지 스님의 조언을 구했습니다. 각각의 질문에 대해 스님은 지혜로운 답변을 들려주어 청년들의 마음을 가볍게 해주었습니다. 

 

답변을 모두 마치니 어느덧 강연을 시작한지 2시간 30분이 지났습니다. 질문을 더 하고 싶어하는 청년들이 많았지만 여기까지만 하고 마지막으로 스님이 정리 말씀을 했습니다. 

 


 

“우리에게 욕망이 있다는 건 현실입니다. 이걸 부도덕하게 생각하면 안 돼요. 종교의 문제점은 욕망을 자꾸 부도덕한 것으로 생각한다는 거예요. 그렇다고 욕망을 따라가는 건 우리에게 손실입니다. 그러니 욕망이라는 현실은 인정하되, 욕망을 따라가면 본인에게 손실이고, 그걸 참기만 하면 스트레스가 되고, 그게 폭발하면 더 큰 화를 자초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어떻게 하는 것이 본인에게 이익인지를 따져보라는 겁니다. 

 

제일 좋은 건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거예요. 욕망이라고 다 나쁜 게 아니거든요. 예를 들어, 결혼한 부부가 성적 욕망을 자제한다며 한 사람은 침대에 누워있는데, 한 사람은 앉아서 명상이나 한다면 안 되겠지요?

 

네 가지 경우가 있습니다. 욕망대로 해도 되는 경우가 있고, 안 해야 되는 경우가 있고, 하기 싫은데 안 해도 되는 경우가 있고, 하기 싫어도 해야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객관적인 조건은 ‘할 수 있고, 할 수 없고’이고, 주관적인 욕망은 ‘하고 싶고, 하기 싫고’ 입니다. 이 네 가지 경우 중에 두 가지는 문제 자체가 안 됩니다. 즉 ‘하고 싶은데 해도 될 조건’, ‘하기 싫은데 안 해도 될 조건’은 문제가 안 돼요. 그런데 그 욕구를 따르면 손해가 나는 경우가 있고, 하기 싫다고 안 하면 손해가 나는 경우가 있을 때에는 어떻게 해야 될까요? 스스로 자기 욕구로부터 자유로워져야 됩니다. 욕구의 노예가 되면 자기한테 손해가 생기니까요. 어리석은 자는 손실을 따라갈 것이고, 지혜로운 자는 손실을 미연에 방지하겠지요. 

 

사회적으로는 윤리와 도덕의 잣대를 들이대서 나쁘다 좋다로 구분하겠지만 수행에서는 그런 게 중요하지 않고 지혜로우냐 어리석으냐로 구분할 뿐이에요. 즉 ‘손실을 가져올 어리석음을 범할 것이냐? 이익이 될 지혜로운 길을 선택할 것이냐?’ 하는 문제입니다. 

 


 

그러니 지금 여러분들에게 고통이 따르는 건 여러분들이 어리석어서 그런 거예요. 여러분들은 자기 성질대로 안 된다고 화를 내면서 자꾸 불행을 자초하잖아요. 어리석음으로부터 벗어나 얼마나 자기를 행복하게 만들 것인가가 중요합니다. 행복하고 싶다고 행복해지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러나 행복은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질 때 가능한 거예요. 제 말 이해하셨어요?”

 

“예.”

 

“마찬가지로 자유롭고 싶다는 것도 욕망이에요. ‘행복하고 싶다’, ‘자유롭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잡혀 있는 한 여러분들은 절대 행복해지거나 자유로울 수가 없는 거예요. 이런 원리를 아셔서 여러분들의 인생이 좀 더 행복해지고, 자유로워지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모두 박수)

 


 

행복하고 싶다고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행복은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질 때 가능한 것이라는 말씀이 오래도록 가슴에 남았습니다. 열정적으로 강연을 해준 스님에게 청년들은 뜨거운 박수갈채로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무대 아래로 내려 온 스님은 질문한 청년들에게 다가가 악수를 건네며 격려를 해주었습니다. 청년들은 스님의 따뜻한 눈빛에 함박 웃음을 보였습니다. 

 


 

청중들이 강연장 밖으로 퇴장하는 사이 로비에서는 책 사인회가 열렸습니다. 좁은 복도에 길에 줄을 서서 스님의 사인을 기다렸습니다. 스님은 눈을 마주치며 사인을 해주자 어떤 분들은 합장을 하면서, 어떤 분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어떤 분은 꿀차를 자판기에서 뽑아와서 건네면서 감사 인사를 했습니다. 

 


 

사인회가 끝나고 다시 무대 위에서는 오늘 강연을 준비한 강원경기동부 청년정토회 봉사자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대부분 수원에서 활동하고 있지만, 어떤 청년들은 춘천에서도 지원을 왔다고 해서 큰 박수를 받았습니다. 스님은 불교대학을 다니는지, 정회원인지 확인을 하며 봉사자들 모두에게 감사 인사를 한 후 강연장을 나왔습니다. 

 


 

밤 10시에 서울 정토회관에 도착한 스님은 8월에 있을 동북아 역사기행 일정과 프로그램에 대해 담당 실무자와 회의를 한 후 오늘 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  

  

내일도 아침 7시부터 평화재단에서 찾아온 손님들과 미팅을 연이어 가진 후 저녁 7시에는 ‘새로운 100년을 여는 통일의병’의 3주년 기념식에 참석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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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 인도 성지순례' 참가자 접수가 시작됐습니다.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서 인도의 10대 성지를 내 발로 직접 밟아보고 그 감흥을 느껴보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아래 배너를 누르면 온라인으로 신청하실 수 있습니다.

 

 

전체댓글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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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태미나 식품

성욕이 강한 이유는 간단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건 군 시절 경험인데요.

군대에서 주는 건강한 밥을 먹고
매일 우유 한 팩을 마시면서
달리기를 많이 하면

중심부에 기운이 모이게 됩니다.


우리 주변에 있는 식품들은
대부분 스태미나를 증진해주는 음식들입니다.

2024-02-23 23:12:31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자그마한 울림이 오네요

2023-10-14 01:05:34

저도 같은 문제를 고민하고 있었는데 용기있는 청년과 스님 덕에 좋은 내용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2019-03-03 12:4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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