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6.6.4 청년학교 졸업식 및 INEB 동남아 스님들 첫만남
"어떻게 하면 함께 행복한 사회를 만들 수 있을까요?"


 

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평화재단 청년학교 졸업생들을 위해 졸업 특강을 한 후 저녁에는 INEB(국제참여불교네트워크) 정토회 방문단으로 온 동남아 스님들과 함께 간담회 시간을 가졌습니다. 

 

청년학교 졸업식은 12시 30분에 대전에서 열릴 예정이었지만, 스님은 평소보다 이른 시간인 아침 8시 20분에 서울을 출발했습니다. 왜냐하면 오늘부터 3일 연휴가 시작되니까 길이 막힐 것이 예상되었기 때문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고속도로 전체가 가다서다를 반복하며 정체가 계속됐습니다. 지도를 펼쳐 막히지 않는 길을 찾아가며 겨우 시간에 맞춰 대전 동구청에 도착했습니다. 

 


 

평화재단 청년포럼 주최로 열린 제7기 청년학교는 3월 18일부터 6월31일까지 10주간 ‘법륜스님에게 배우는 삶, 사랑, 시대’를 주제로 20대 30대 청년들이 모여 공부를 했습니다. 스님의 저서 ‘방황해도 괜찮아’와 ‘새로운 100년’을 읽고 나누고, 사회와 환경 관련 다큐멘터리 영상을 보며 세미나를 진행하기도 했고, 법륜 스님과 함께 경주역사기행을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오늘 졸업식은 지난 10주 동안의 커리큘럼을 모두 수료한 250여 명이 모인 가운데 대전 동구청 대강당에서 열렸습니다. 여는 공연, 수료소감 발표, 법륜스님의 졸업특강, 수료증 수여 순으로 진행됐습니다. 

 


 

청년학교 7기를 돌아보는 사진 슬라이드 영상을 본 후 수료자 2명이 대표로 나와 소감문을 발표했습니다. 울산중구 청년학교 수료자인 윤혜진님은 “마음공부가 무엇인지 이제 조금 알겠다. 청년학교를 다니며 느낀 대로 한 발짝 떨어져서 내 마음을 살펴보고, 누가 시키기 전에 먼저 마음을 내어보고, 잘하려고 하는 마음을 내려 놓고. 누구보다도 나를 사랑해 해보기로 한다. 지금도 좋고 너도 좋고 지금도 좋고 나중에도 좋은 것을 위해, 내 마음을 살피는 것에 익숙해진 나를 발견했다”라고 마음공부를 시작하게 된 소감을 말하면서 같이 지냈던 울산 중구 청년학교 참가자들에게 고마움을 표했습니다.

 


 

이어 서초 청년학교 수료자인 정희주님이 두 번째로 수료 소감문을 발표했습니다. “나에게 청년학교란 스무 살의 열정을 되살려준 시간이었다”라며 청년학교를 시작한 게 된 계기와 매력에 대해 발표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100년 책을 읽으며 통일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어 통일의병이 되기로 했다”는 다짐을 밝혀 큰 박수를 받았습니다.  

 

이어서 스님의 졸업 특강이 시작됐습니다. 스님이 무대에 오르자 청년들은 환호와 박수로 스님을 반겼습니다. 스님은 청년학교에서 개인의 행복과 사회의 변화에 대해 공부했을 것이라며 왜 청년학교를 개설했는지 그 취지를 설명한 후 끝까지 과정을 잘 마친 청년들을 격려했습니다. 

 


 

“여러분들이 청년학교에서 배우는 건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내가 어떻게 인생을 살아야 하느냐?’ 하는 개인 인생에 대한 것입니다. 개인 인생의 목표가 뭐겠어요? 자유와 행복일 겁니다. 여러분들은 좀 더 자유롭고, 행복하고 싶지요? 그래서 돈을 좀 더 벌면, 지위가 좀 높아지면, 인기가 높아지면 좀 더 자유롭고 행복할 거라고 생각하지요? 인생을 짧게 보면 그게 맞을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길게 보면 반드시 그렇다고 할 수가 없어요. 

 

예를 들어 술을 마시거나 하면 짧은 시간에는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지만 길게 보면 해가 되잖아요. 그런 것처럼 돈이 많아지고, 지위가 높아지고, 인기가 좋아지는 것이 짧게 봤을 때는 행복의 요인이 되는 게 맞습니다. 그러나 길게 봤을 때는 꼭 그렇지가 않고, 오히려 불행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 진정한 행복으로 가는 길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을 해 봐야 합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행복의 원인이 되었던 게 나중에 괴로움의 원인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러분들은 20대, 30대이다 보니까 아직 인생을 많이 못 살아봐서 제 얘기에 동의가 안 될 수도 있을 거예요. 대부분이 ‘괴로움은 없고, 즐거움만 있었으면 좋겠다’, ‘괴로움과 즐거움 중에 괴로움은 잘라서 갖다버리고, 즐거움만 갖고 싶다’라고 생각하는데, 길게 살아보면 괴로움과 즐거움은 분리될 수 없고 하나의 짝으로 있다는 걸 알게 될 겁니다. 마치 N극과 S극처럼 말이에요. N극과 S극을 분리시키려고 가운데를 탁 잘라서 S극을 버리면 N극만 남나요? 거기에 또 S극이 있어요. 그럼 다시 잘라서 또 떼버리면요? 그래도 또 S극이 붙어있어요. 또 잘라서 또 떼버려도 마찬가지예요. 그런 것처럼 인생도 행복에 불행이 붙어있는 거예요. 불행만 잘라서 버려도 또 불행이 붙습니다. 반대로 괴로움이 괴로움으로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거기에 또 즐거움이 따라붙어요. 이게 인생이라는 거예요. 

 

그런데 행복과 불행이 분리될 수 없이 한 짝으로 있다는 걸 죽을 때까지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입니다. 소수는 나이가 들어 죽을 때가 다 되어서야 ‘아, 인생이라는 건 고와 락이 윤회하는 것이구나’라고 깨닫기도 하지만, 이것을 젊어서 깨닫기는 정말 어려워요. 그러나 젊어서 이것을 깨달으면 인생을 훨씬 더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 즐거움 속에 들어있는 괴로움의 본질을 볼 수 있으면 즐거움에 대한 집착도 끊어질 수 있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즐거움 속에 내재된 괴로움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즐거움에 대한 집착을 못 끊는 겁니다. 예를 들어 결혼이라는 즐거움 속에는 갈등이라는 괴로움이 들어있어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결혼할 때는 갈등을 필연적으로 각오해야 돼요. 이렇게 여러분들이 결혼의 본질을 꿰뚫어보고 결혼을 하면 결혼생활도 괜찮아요. 그런데 즐거움만 보고 결혼을 하기 때문에 괴로움이 일어날 때 못 견뎌하다가 이혼을 하게 되는 거예요. 이혼을 하면 괴로움이 없어지니까 속은 시원한데 외로움이라는 괴로움이 또 일어납니다. 그 괴로움을 없애려고 또 결혼을 하면 조금 후에 다시 귀찮음이라는 괴로움이 따라붙어요. 이걸 꿰뚫어 알아야 돼요.(모두 웃음)

 


 

쥐약이 든 음식이라면 아주 맛있는 음식이라도 첫째, 안 먹어야 해요. 쥐약이 들었다는데 왜 먹어요? 우리가 뭔가를 먹을 때는 살려고 먹는 것이지 죽으려고 먹는 게 아니니까, 아무리 빛깔도 좋고 냄새가 좋아도 ‘거기 쥐약 들었다’ 라고 하면 안 먹어야 해요. 그런데 어떤 사람은 그 음식이 너무 빛깔도 좋고, 냄새도 좋으니까, 많이 먹으면 죽는다고 하는데도 ‘조금만 먹어보면 안 될까요?’라고 묻습니다. 부처님은 열 번을 물어도 ‘거기 쥐약 들었다’라고 얘기하실 분이지만, 스님은 인내심이 없어서 두 번, 세 번 연달아서 물으면 ‘그래. 죽고 싶으면 먹어봐’라고 할 거예요.(모두 웃음) 

 

그걸 먹을 때는 죽거나 아플 것을 각오하고 먹어야 합니다. 과보를 받아들일 각오를 하고 먹으면 괜찮아요. 그런데 우리는 자꾸 안 아플 걸 생각하고 먹으니까 문제가 되는 거예요. 돈을 빌리면 쓸 때는 좋지요. 그런데 갚아야 되는 과보는 생각을 안 하는 거예요. 그래서 인생이 피곤한 거예요. 이게 ‘고(苦)’입니다. ‘인생은 고다’ 하는 것을 ‘인생은 괴롭다’ 이렇게 받아들이면 안 돼요. ‘인생은 고(苦)와 락(樂)이 윤회하므로 즐거움 속에 괴로움이 내재해 있기 때문에 즐거움마저도 괴로움이다’ 이렇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럼 고(苦)의 원인이 뭘까요? 우리의 욕구예요. 우리에게는 뭐든지 하고 싶은 욕구가 있잖아요. 욕구대로 되면 기분이 좋아지지요? 그걸 즐거움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욕구대로 안 되면 기분이 안 좋지요? 그걸 괴로움이라고 부릅니다. 즐거움과 괴로움이라는 것은 욕구가 충족이 되거나 안 되거나 했을 때 일어나는 우리들의 정신현상에 불과한 거예요. 그러니 욕구에 대한 집착 때문에 즐거움과 괴로움은 필연적으로 일어납니다. 물론 욕구 자체를 없애는 건 좀 어렵죠. 우리는 욕계중생(欲界衆生)이니까요. 그러나 욕구에 끌려가지 않을 수는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욕구로부터 자유로워질 수는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제가 얘기하는 게 아무리 이치로는 좋다는 걸 알아도 감정적으로는 잘 안 받아들여지지요? 그런데도 제가 ‘고와 락, 행복과 불행이 붙어 있다’, ‘즐거움 속에 괴로움이 있다’ 하는 걸 미리 말씀드리는 이유는 여러분들이 살아가면서 괴로울 때 그것을 너무 억울해 하거나 그 괴로움에 너무 깊이 빠지지는 말라는 뜻입니다. 괴로워지면 ‘아, 그때 스님께서는 내가 이 음식을 먹으면 죽을 거라고 말씀해 주셨는데, 나는 그냥 스님 혼자 먹으려고 그런 말씀하시는 거라고 오해했구나. 역시 먹어보니까 배가 아프고 이렇게 힘들구나’ 이렇게 자각하라는 거예요. 그래도 먹어보고 죽는 거니까 죽을 때도 웃으면서 죽고요. 알았지요? (모두 웃음) 혹시 살아나면 다음부터는 안 먹어야 된다는 걸 저절로 알게 되겠죠. 이렇게 스님은 여러분께 미리 알려줌으로 해서 여러분들이 시행착오를 좀 덜 하도록 하려는 거예요. 

 


 

50대, 60대는 이미 자기가 경험한 것에 대해 스님이 말하니까 ‘아, 내가 그래서 괴로웠던 거구나’ 하고 스님의 말을 금방 알아듣습니다. 그런데 그분들이 늘 하는 소리가 ‘아이고, 내가 좀 더 젊을 때 스님을 만났더라면’, ‘결혼하기 전에 만났더라면’, ‘우리 애가 어렸을 때 만났더라면’ 이거든요. 그렇게 후회하면서도 ‘그래도 지금이라도 만나서 다행이다’라고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젊어서 스님을 만났는데도 아직 잘 모르겠지요? 이게 문제인데, 그래서 인생이 공평하다고 하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러나 제가 말하고 싶은 건 이런 이치를 알고 살라는 겁니다. 

 

두 번째, 우리 존재는 나 혼자서만 사는 게 아니에요. 나 혼자만 살면 내가 내 마음을 어떻게 다스리느냐에만 신경쓰면 됩니다. 그런데 우리의 존재 자체가 같이 살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인간을 ‘사회적, 역사적 존재’라고 합니다. 사회적 존재라는 것은 공간상으로 서로 연결이 되어서 살고 있음을 가리키고, 역사적 존재라는 것은 시간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가리킵니다. 부모와 여러분과 여러분의 자녀로 연결될 수도 있고, 조상들과 우리와 후손들로 연결될 수도 있고, 이렇게 시공간적으로 연결이 돼 있어요. 이걸 사회적 용어로 표현해서 ‘인간은 사회적, 역사적 존재다’라고 합니다. 

 

그러니 지금 여러분 개인들의 심리상태가 어떤지는 여러분 혼자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여러분의 부모님이 어떤 심리상태였는지가 여러분들의 심리상태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한 축이에요. 다음으로는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중학교, 대학교를 다니면서 여러분 주위에 관계 맺고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어떠냐가 중요합니다. 다시 말해 어떤 환경에서 자랐느냐가 여러분들의 현재의 심리상태에 큰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사는 사회가 내 삶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우리는 개인의 문제를 이해하듯 사회 문제 또한 깊이 이해하고, 우리 마음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이해하듯이 이 사회가 나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이해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사회가 나를 좀 더 자유롭고 행복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우리가 사회의 변화를 도모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며칠 전 지하철에서 젊은 청년이 수리를 하다가 사고로 목숨을 잃었어요. ‘19살 먹은 젊은 청년이 왜 그런 위험한 일을 할 수밖에 없었느냐? 또 왜 그런 위험한 일을 안전장치나 짝도 없이 혼자 하도록 방치됐느냐? 왜 이런 일이 한 번도 아니고 벌써 몇 번째 반복되느냐? 서울시장이 사회문제에 굉장히 관심이 깊은 사람인데도 왜 이게 개선이 안 되느냐?’ 하는 의문이 들었을 겁니다. 

 

이것은 우리 사회 전체가 안고 있는 ‘분포’, 다시 말해 사회가 움직여지는 계층 분포를 보면 이런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 화장실에 간 여성이 모르는 사람에게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살해당한 사건이 발생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주머니 한 분이 등산 갔다가 살해당하는 등 옛날 같으면 1년에 몇 건, 한 달에 한 건 정도 생길 일이 지금은 거의 매일 일어나다시피 하고 있어요. 이건 개인의 문제도 있지만 사회적인 현상입니다. ‘이런 사회적 현상이 왜 일어날까?’ 여기에 대해서 이해가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빈부 격차가 급격히 벌어지니까 여러분들이 요즘 이야기하는 흙수저, 금수저가 나오게 돼요. 상위 0.1퍼센트는 다이아몬드 수저, 1퍼센트는 금수저, 10퍼센트는 은수저, 그 다음 중간층은 동수저라면 나머지 하층은 흙수저라고 하죠. 누가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수저론’은 사회의 계층분화를 의미합니다. 제가 어릴 때만 해도 계층 상승이라는 게 가능했어요. 시골에서 자라도 공부 잘 해서 올라가면 상위 1퍼센트 안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계층 상승이라는 게 실제로 어렵습니다. 그래서 ‘사다리가 끊겼다’ 이런 말을 쓰잖아요.

 

그럼 우리는 어떡할 거냐는 거예요. 지금 우리가 놓여 있는, 즉 젊은이들이 겪는 이 막막함을 전부 개인이 ‘스펙’ 쌓고 노력해서 풀어야 할까요? 사회적으로 한번 생각해봐요. 지금은 조금 바뀌었지만, 옛날 같으면 졸업자 기준으로 볼 때 대학 정원이 30만 명이라면 고등학교 정원은 70만 명이에요. 그러면 누가 떨어져도 떨어져야 하잖아요. 그래서 입시에 대한 경쟁이 치열하니까 예비고사를 마련했어요. 예비고사를 마련해도 30만 명만 합격하고 40만 명은 떨어져야 하잖아요. 본고사를 마련해도 마찬가지로 30만 명만 합격하고 40만 명은 떨어져야 해요. 전 과목을 시험 보던 것을 일부 과목, 즉 국영수만 보는 걸로 과목 수를 바꿔도 결과는 똑같아요. 그러니 입시 제도를 3년마다 바꿔도 달라지는 게 없습니다. 근본 모순은 놔둔 채 과외를 허용했다가 안 했다가 과목 수를 줄였다가 늘였다가 본고사를 시행했다가 안 했다가 하며 아무리 바꿔봐야 이 근본 모순은 해결이 안 돼요.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대학을 졸업하고 일하는 것과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일하는 것 사이에 임금 격차를 줄여주어서 정말 학문을 깊이 연구할 사람이 아니면 굳이 대학을 갈 필요가 없도록 하는 거예요. 기술 같은 건 다 현장에서 배워도 되잖아요. 이렇게 어떤 근본적인 조치를 취해야 이 문제가 해결이 되지, 근본적인 모순은 놔두고 껍데기만 바꾸려 들면 해결이 안 돼요.

 


 

그러면 이런 문제들을 변화된 사회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해결해서 같이 행복해질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나갈 수 있을까요? 결국 이걸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정치 문제니까 국민이 이 부분에 대한 각성이 있어서 정치에 참여해야 합니다. 그런 제도적 개선을 가져올 수 있도록 투표를 해야 하고, 그렇게 뽑힌 사람이 이런 문제를 개선해야 해요. 그런데 젊은이들은 다 정치에 무관심해서 선거 때도 투표하러 가질 않죠. 그러니까 이런 문제가 잘 개선되지 않고 정치인들도 항상 기득권을 대표하는 입장에 서는 거예요. 우리 사회에서 가장 진보적이라고 하는 진보당을 포함해서 민주당, 새누리당 모두 전체 국민의 10퍼센트 밖에 대변해주지 못하고 있어요. 나머지 90퍼센트를 대변하는 정치세력이 우리 사회에는 없는 거예요. 이런 문제들이 정치적으로 개선이 안 되고 있어요. 구호만 있지 실질적으로는 개선이 안 됩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청년학교를 졸업하는 여러분들이 사회에 대한 관심을 가져주길 부탁드립니다. 불만만 갖는 게 아니라 이걸 어떻게 개선할지 고민해야 합니다. 이런 관심이 빠르게 조직화된 게 미국의 샌더스 지지 계층이에요. 이번에 샌더스가 민주당 측 대선 후보로까지 올라갈 수 있었던 이유는 작은 개인들이 모여 이런 사회적인 불만을 큰 힘으로 결집시켰기 때문입니다. 젊은이들이며 지식인들이 SNS를 통해서 힘을 모으고 작은 헌금을 모아 정치자금을 마련했습니다. 미국은 정치라는 게 순전히 정치자금 갖고 결정되거든요. 돈을 들여 TV에 선전을 얼마나 하느냐에 따라서 표가 움직이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전 대통령 부인이자 상원의원이고 민주당에서 대통령 후보로 따놓은 당상이라고 하는 힐러리 클린턴을 위협하는 큰 힘을 발휘했습니다. 이것도 풀뿌리의 각성이라고 볼 수 있어요. 이번에 성공 못 했다 해도 다음에는 아마 반드시 성공할 거예요. 지난번에 흑인이고 새로운 신인이라는 이유로 기대를 갖고 오바마를 당선시켰는데 결국 기득권을 대변하는 것을 보고 실망했어요. 그래서 이번에는 클린턴 쪽을 지지하지 않고 오히려 변방에서 사회주의자라고 자처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아, 이게 합리적이다’라고 판단해서 힘을 모은 결과 돌풍이 일어난 겁니다.

 

여러분들은 개인 간에 가족 간에 갈등하는 문제로 힘들어 하는데, 우리가 싸워야 할 대상이 내 부모는 아니잖아요. 물론 부모 중에도 자식을 성추행하고 학대하는 극소수가 있긴 하지만, 왜 우리가 싸워야 할 사람이 부모입니까? 왜 내가 괴로워하고 미워해야 할 사람이 남도 아니고 내 눈에 제일 좋아보여서 사귄 애인입니까? 왜 내가 미워하고 원망해야 할 사람이 나하고 한 이불 아래서 산 남편 혹은 아내예요?(모두 웃음)

 


 

에너지를 이렇게 쓰는 게 과연 올바르냐는 문제예요. 그런데 우리는 지금 여기에 에너지를 다 씁니다. 첫째, 자기가 자기를 괴롭히는 데 에너지를 다 쓰고 있어요. 둘째, 미워하면 내가 괴로워요. 그런데 우리는 부모, 자식, 형제, 직장 동료와 갈등을 일으키는 데 에너지를 다 쓰고 있어요. 그래서 우리의 괴로움의 진짜 바탕인 사회적 모순에 대해서는 에너지를 쓸 여유가 없고 관심을 가질 수도 없습니다. 우리가 이런 문제들을 풀어낸다면, 그래서 이런 문제로부터 내가 좀 자유로워서 행복하다면 우리가 힘을 모아서 우리 공동체의 발전을 저해하는 사회에 긍정적인 변화를 추동해갈 수 있을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 개인은 수행을 통해서 행복해지고, 여러분들이 가진 이런 에너지를 우리 사회의 발전을 위해 써야 합니다. 사회의 발전을 위해 우리가 같이 손잡고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가야 해요. 건강하고 공정한 경쟁, 취약계층에 대한 사회보장제도, 즉 사회안전망의 구축, 우리의 비전을 마련하는 통일, 우리의 안전을 담보하는 평화 등이 여기에 들어가겠죠. 

 

그래서 여러분들이 스스로 자기의 희망을, 다시 말해 개인의 희망과 우리 사회 공동체의 희망을 만들어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청년학교가 앞으로 우리 사회의 새로운 비전을 만드는 기초가 되길 바랍니다. 지금은 청년학교를 1년에 수백 명 졸업하는 정도지만 시간이 좀 흐른 뒤에 보면 청년학교가 기반이 되어서 평화든 통일이든 한국 사회의 새롭고 큰 변화를 가져오는 기초를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으면 좋겠습니다. 여기서 훌륭한 정치지도자, 훌륭한 사회 지도자, 훌륭한 공무원과 훌륭한 선생님들이 많이 나와서 자기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 발버둥치는 그런 이익집단의 운동이 아니라 정말 사회 정의를 위한 운동을 하길 바래요. 

 


 

옛날의 학생운동처럼 피해의식을 갖는 게 아니라 늘 수행을 해서 ‘이게 희생이 아니라 나를 더 행복하게 만드는 길이다’라고 웃으면서 할 수 있어야 해요. 그런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야 해요. 새로운 혁명 혹은 새로운 운동이라고 할 수도 있겠죠. 우리가 그런 새로운 문화를 창조해야 해요. 왜 우리는 늘 미국 가서 배우고 유럽 가서 배워야 해요? 이렇게 수행과 사회운동을 동시에 하는 것은 미국 사람이 우리한테 와서 배워야 해요. 유럽 사람도 우리한테 와서 ‘한국은 어떻게 해서 젊은이들이 저런 변화를 가져왔느냐? 어떻게 정말 합리적이고 평화적이면서도 아주 투철한 방식으로 저런 변화를 가져올 수 있었느냐?’ 이런 주제로 많은 사회학자나 서양 사람들이 와서 우리에게 물어보고, 이 모델을 가져가서 박사학위 논문을 쓰고 사회현상으로 연구하도록 만들어야 해요. K-Pop이나 영화 같은 건 이제 그런 수준이 되어가잖아요. 그런 걸 만드는 게 창조예요. 청년학교 출신들이 그런 새로운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해요.”

 

2시간 30분 동안 열정적으로 강연을 해준 스님에게 청년들은 뜨거운 박수갈채를 보내며 감사한 마음을 표했습니다. 

 


 

졸업 특강이 끝나고 곧이어 청중석에서 질문을 받았습니다. 두 명이 스님에게 질문할 기회를 얻었는데, 한 남학생은 최근 중공업이 어려워지는 과정을 보며 경남지역의 경기가 어떻게 될지 스님의 전망을 물었고, 한 여학생은 카드회사에서 전화상담 업무를 맡고 있는데 성희롱을 하는 고객들 때문에 괴롭다며 스님의 조언을 구했습니다. 스님의 명쾌한 답변에 청년들은 배꼽을 잡고 웃기도 하고, 박수를 치며 가슴 시원해 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졸업특강이 끝나고 청년학교 수료증 수여식이 열렸습니다. 수료증과 개근상을 각각 대표로 수여한 후 올해 청년학교를 빛낸 ‘청학인의 상’도 발표되었습니다. 수상자들이 큰 박수를 받으며 무대에 올라오자 스님이 직접 상을 수여했습니다. 

 


 


 

이어서 수료생 250여 명 모두에게도 수료증을 나눠주었습니다. 스님은 무대로 올라온 한 명 한 명 모두와 직접 눈을 맞추고 악수를 건넨 후 수료증을 수여했습니다. 모두들 스님의 따뜻한 눈빛과 보드라운 손을 잡고선 기쁜 마음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이제 마칠 시간이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사회자가 “오늘 이렇게 많은 청년들이 청년학교를 수료하게 되었는데 격려 말씀을 해달라”고 요청하자 스님은 청년들에게 다시 한번 용기를 북돋워 주었습니다. 

 

“첫째, 우선 졸업을 축하드리고요. 둘째, 지난번 청춘콘서트 준비하느라 수고들 많이 하셨어요. 해보니까 재미있었어요?”

 

“네!”

 


 

“자신감도 좀 생겼어요?”

 

“네!”

 

“네. 우리도 이런 일을 할 수 있다는 걸 알았을 거예요. 좀 고생은 됐지만 하고 나니 좀 뿌듯하잖아요. 잘 하셨습니다. 그런데 서울만 해서 되겠어요? 광주도 하고, 대전도 하고, 부산도 하고, 대구도 하고, 이렇게 지방에도 할 수 있게 힘을 모아서 지방에 있는 청년들도 그런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해봅시다.

 

세 번째, 변화는 연속성이 있어야 일어납니다. 부모가 자식을 낳아야 대가 이어지고 종이 이 세상에 유지되듯이 이 청년학교가 연속성이 있고 여러분들이 꾸는 꿈이 세상에 실현되려면 다음 기수인 8기 청년학교 후배들을 많이 모아서 가을에도 계속 이어지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번에 오백 명이 모였다면 다음엔 천 명이 모이도록 해서 확대될 수 있도록 해나간다면 지금 우리들의 작은 꿈이 세월이 좀 흐른 뒤에는 큰 꿈으로 실현될 거예요. 이탈리아가 완전히 분열되어 있을 때 마치니가 청년이탈리아당을 만들어서 그것이 이탈리아 통일의 중심이 됐어요. 그런 것처럼 여러분들이 대한민국 사회의 화합과 정의, 평화와 통일의 중심이 될 수 있는 역할들을 앞으로 해나가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모두 박수)

 


 

스님의 청년들에 대한 따뜻한 애정을 듬뿍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졸업식을 모두 마친 후 각 지역별로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전체가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밝고 늠름한 표정의 청년들은 “화이팅!” 우렁차게 외쳤습니다. 새로운 백년을 열어가는 청년 통일의병 250여 명이 새롭게 탄생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강연장을 빠져나온 스님은 지난 상반기 동안 수고한 청년학교 스텝들을 격려하며 악수를 건넨 후 곧바로 문경 정토수련원으로 향했습니다. 

 

문경 정토수련원에서는 저녁 7시 30분부터 INEB(국제참여불교네트워크)에서 온 동남아 스님들과 함께 대화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매년 6월 경 INEB(국제참여불교네트워크)에서는 정토회 방문단을 구성해 한국으로 보내는데, 스님은 해마다 이 분들을 정성껏 맞이하고 있습니다. 올해도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 미얀마, 스리랑카 등 동남아 불교국가에서 18명의 스님들이 정토회를 방문했습니다. 

 


 

어제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해 곧바로 문경 정토수련원으로 이동한 INEB 방문단은 오늘 오전에 유수스님의 안내로 정토수련원을 둘러본 후 오후에는 봉암사를 견학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스님은 봉암사에 다녀온 소감을 물어본 후 환한 웃음과 함께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첫만남이기 때문에 먼저 각자 자신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병원에서 평화로운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을 하시는 분, 감옥에 있는 여성들을 상담해주는 일을 하시는 분, TV 프로그램을 만들고 신문을 만드는 일을 하시는 분, 시골 지역에 있는 여자 아동에게 장학금을 지급하는 일을 하시는 분, 낙후된 지역에서 자전거, 흙집, 태양열을 보급하는 일을 하는 분, 명상을 지도하시는 분, 비구니를 교육시키는 일을 하시는 분 등 모두들 각기 자신의 지역에서 다양한 사회 실천을 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동남아에서는 아직 비구니 제도가 인정되고 있지 않습니다. INEB 방문단에도 여성 출가수행자분들이 많이 참가했는데, 자기 소개를 하는 도중 여성으로서 차별받는 것에 대해 많은 이야기가 오가기도 했습니다. 

 


 

수행자가 되었지만 아직 정식 계를 받지 못한 여성 출가수행자를 남방 불교에서는 ‘넌(Nun)’이라고 부릅니다. 미얀마에서 온 한 비구니 스님은 “넌의 지위가 향상되어야 한다”며 “여성이 계를 받았다고 해서 감옥에 넣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스님은 이런 현황을 듣고 나서 여기에 대한 생각을 말하기도 했습니다. 

 


 

“비구니 제도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있을 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사회마다 자신들의 전통이 있으니까요. 그런데 감옥에 넣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국가가 개인의 신앙에 대해서 간섭할 수 있느냐는 것이지요. 이 문제는 앞으로 더 대화를 해보면 좋겠어요.” 

 

이 외에도 많은 대화가 오갔습니다. 동남아 스님들은 오늘 하루를 지내면서 궁금했던 점들을 스님에게 질문했습니다. 스님은 친절하게 대답을 해주었습니다. 

 

그 중에 한 분은 테라바다(소승불교)와 마하야나(대승불교)를 비교하는 이야기가 많이 나왔는데 어떤 관점을 가져야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는 것인지 질문했습니다. 스님은 이에 대해 답하면서 INEB 정토회 방문단이 일주일 동안 다같이 고민해보면 좋겠다고 하면서 두 가지 과제를 제안했습니다. 

 


 

“한국 불교의 전통에 대해 오늘 하루 종일 굉장히 많은 설명을 들었습니다. 저녁에도 테라바타와 마하야나를 비교하는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종교와 실천 사이에는 큰 간격이 있는데 이렇게 각기 다른 전통에 대해 비교하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에 비추어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붓다의 가르침은 종교로 시작한 것이 아니에요. 부처님 당시에는 혈통적으로 브라만이어야만 종교지도자가 될 수 있었어요. 부처님은 종교 지도자가 아니었고, 진리가 무엇인지 탐구한 수행자였어요. 그래서 진리를 발견하시고 우리에게 그 길을 알려주신 분입니다. 붓다는 신이 아니라 스승입니다. 

 


 

대부분 종교의 목적은 이생에서 돈을 많이 벌거나 지위가 높아지거나 인기가 있거나 하는 복을 구하는 것이고, 죽어서 천상에 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붓다의 가르침의 목표는 해탈과 열반을 증득하는 것입니다. 다른 종교와는 목표가 전혀 달라요. 

 

그런데 시간이 흘러가면서 출가 수행자들은 다시 브라만을 닮아가면서 사제가 되었습니다. 사제가 되었기 때문에 오늘날 대부분의 스님들이 죽은 사람을 위해 제사 지내주고, 복을 빌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겁니다. 즉 출가해서 수행하는 사람이 있었고, 재가에서 수행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출가수행자는 브라만처럼 사제가 되고, 재가수행자는 복을 비는 신자가 되어서 불교도 세계 여러 종교 가운데 하나의 종교가 되어버린 겁니다. 

 

승려들이 입고 있는 이 가사의 첫 출발이 무엇입니까. 원래 수행자는 숲속이나 나무 밑에서 아무 것도 갖지 않고 생활했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몸을 가려야 하잖아요. 우리가 헌 옷을 구해 입더라도 다른 사람이 입을 옷을 내가 갖게 되는 것이잖아요. 그러니 아무리 가난해도 그 누구도 사용하지 않는 천이 있다면 그게 무엇입니까. 

 

바로 시체를 덮는 천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가난해도 그 천은 사용하지 않습니다. 시체를 덮었기 때문에 부정탄다고 해서 아무도 손을 대지 않아요. 그것을 주워서 몸을 가렸습니다. 그 옷 색깔이 주황색이예요. 바로 이 가사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오랫동안 입다보니까 유니폼이 된 겁니다. 이렇게 옷을 입는 것은 하나의 문화입니다. 그러나 부처님이 이 옷을 입었던 그 정신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버려진 옷을 입어야 합니다. 

 

그런데 불교가 중국으로 들어왔어요. 중국에서는 이 가사를 입었다고 해서 그가 수행자인지 아무도 알 수가 없었어요. 중국에서는 종교 지도자들이 입던 옷이 도포였습니다. 그게 바로 제가 입고 있는 장삼입니다. 이 옷을 입고 있으면 종교 지도자라고 알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누구인지 몰랐어요. 그래서 중국 불교에서는 이 옷을 입은 겁니다. 

 


 

그런데 이 옷만 입고 있으면 도교와 똑같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 옷 위에 가사를 입은 겁니다. 즉 도사는 도사인데 불교 도사라고 표시한 겁니다. 그래서 저는 이 두 가지 옷을 지금 같이 입고 있는 겁니다.(모두 웃음)

 

이제 불교가 한국으로 들어왔어요. 이렇게 입고서는 일상 생활을 하기가 힘들잖아요. 그래서 한국 스님들은 승복을 입었습니다. 이것은 한국 사람들의 전통 옷인 한복에서 온 겁니다. 불교가 인도에서 중국을 거쳐서 한국으로 오다보니까 저는 지금 인도 옷, 중국 옷, 한국 옷, 세 가지를 입게 된 겁니다. 그런데 제가 승복 안에 입고 있는 셔츠는 서양 옷입니다.(모두 웃음)

 


 

이렇게 종교는 문화의 일부입니다. 중국 불교와 한국 불교가 다르다면 그것은 문화가 다른 것입니다. 문화가 다른 것이지 불교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과 저의 차이는 문화가 다르다는 것뿐입니다. 테라바다와 마하야나의 차이도 문화의 차이입니다. 한국 불교와 일본 불교의 차이도 문화의 차이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바로 붓다의 가르침인 ‘붓다 담마’입니다. 그런데 문화가 더 중심이 되고, 붓다 담마는 비중이 작아졌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붓다 담마가 중심이 되어야 하는데 말이죠. 즉 붓다 담마의 비중이 훨씬 크다면 우리가 갖고 있는 문화적 차이는 사실 별 게 아닌데, 문화가 중심을 이루고 붓다 담마는 조금 밖에 안 되니까 마치 서로 다른 종교인양 그 차이가 크게 느껴지는 겁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는 문화가 다른 것은 서로 인정하고 존중하자는 겁니다. 대신 우리의 공통점인 붓다 담마를 더욱 확대해 나가자는 겁니다. 담마에는 테라바다 담마와 마하야나 담마가 따로 있을 수가 없습니다. 담마는 그것이 해탈과 열반으로 인도할 때만이 담마이지 그렇지 않은 것은 담마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정토회에서는 테라바다를 가장 먼저 가르칩니다. 그 다음에 마하야나를 가르칩니다. 그 다음에 선불교를 가르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 세 가지를 서로 다르게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토회에서는 이 세 가지가 하나가 되도록 가르치고 있습니다. 표현방식이 다르고 그 문화는 다르지만 그 담마는 같다는 관점에서 가르칩니다. 

 


 

앞으로도 문화는 자꾸 바뀔 수 있습니다. 불교가 서양으로 전해지면 문화는 또 바뀔 거예요. 불상 모양, 옷 모양, 절 모양 등 여러가지가 바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담마는 일치하게 전해져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들도 앞으로 일주일 동안은 붓다가 가르친 담마가 무엇인지를 같이 맞춰 나가야 합니다. 그러나 문화가 서로 다른 것은 이해하고 존중해야 합니다. 그런데 가끔 보면 문화를 갖고 서로 갈등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문화는 서로 교류하고, 서로 이해하고, 서로 존중해야 합니다. 그러나 공통점이 되는 ‘담마가 무엇이냐’ 하는 것은 계속해서 함께 찾아가야 합니다.   

 

특히 앞으로 변화된 사회 속에서, 특히 젊은 사람들에게, 또 문화가 다른 서양 사람들에게 불교 문화를 가르칠 것이냐, 붓다 담마를 가르칠 것이냐 하는 문제입니다. 담마는 고뇌를 해결하는 것이잖아요. 그들이 가진 고뇌를 이 담마가 해결할 수 있다면, 이 담마는 그들 속으로 전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불교가 나이 든 사람들에게는 먹혀 들고, 젊은 사람들에게는 안 먹혀 든다면, 그 문화가 젊은 사람들에게 안 맞다는 겁니다. 젊은이들도 다 고뇌하고 있잖아요. 그렇다면 그들에게도 담마가 필요한 거예요. 정말로 그들이 고뇌하고 있는 것을 이 담마로서 어떻게 도울 것이냐 연구해야 합니다. 이런 면에서 우리가 새롭게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저도 지금 실험을 해보고 있는 중입니다. 여러분들도 각자 자신이 살고 있는 곳에서 실험을 해보고 있잖아요. 그런 경험들을 서로 나누어서 시행착오를 덜 거듭하고, 좋은 방법을 찾아가는 것이 필요하다 싶습니다. 

 

전통은 잘 보존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전통만 고수하게 되면 젊은이들에게 아무런 영향을 줄 수가 없습니다. 전통은 지킬 수 있지만 고립될 수가 있습니다. 또 한국에서는 새로운 불교를 한다고 세속적인 것을 다 받아들이는 곳도 있습니다. 현대 사회에 무조건 따라가기만 한다면 우리가 굳이 담마를 공부할 필요가 없겠지요. 우리가 현대 사회를 따라갈 것이 아니라 현대 사회가 갖고 있는 병을 어떻게 치유할 것인가 하는 관점에 서 있어야 합니다. 그 병을 치유하는데 도움이 된다면 문화적인 것은 좀 바꿔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에게는 두 가지 과제가 주어졌습니다. 첫째, 전통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입니다. 그러나 전통만 지키게 되면 사회로부터 고립되어서 담마를 전파하는데 한계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대중과 함께 한다는 이유로 세상의 욕망을 따라가 버린다면 담마가 없어져 버립니다. 불교가 아무리 확대된다 해도 그 속에 담마가 없다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겁니다. 그래서 둘째, 담마를 지키면서도 대중과 함께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내야 합니다.”

 

스님이 입고 있는 가사와 승복을 예로 든 것에 동남아 스님들도 무척 재미있어 했습니다. 그리고 스님이 제안한 과제에 대해서도 흔쾌히 공감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은 일주일 동안의 한국 방문 일정에 대해서 개괄적으로 소개했습니다. 그리고 동남아 스님들이 한국 방문 기간 동안 필요한 물건을 구입할 때 사용할 수 있도록 거마비를 나눠주면서 모두 유익하고 좋은 시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전한 후 오늘 첫만남을 마쳤습니다. 

 


 

내일 INEB 방문단은 대웅전에서 새벽 예불을 정토회 식으로 함께 하는 것을 시작으로 오전에는 청년정토회 팀장급 활동가 120여 명과 만남의 시간을, 오후에는 속리산 법주사를 다녀온 후, 다시 저녁에는 스님과 대화의 시간을 가집니다. 스님도 INEB 방문단과 함께 하면서 오전과 오후에는 주로 청년들에게 법문을 해줄 예정입니다. 


---------
※ 카카오톡으로 '법륜 스님의 하루'를 매일 받아보세요. 아래 배너를 누르고 친구 추가!



전체댓글 20

0/200

박승철

버린 아내와 회복하는 방법은 무얼까요?
유발상자하다 물에빠진 여인을 만나 아들이 생기고..
결국 파탄으로 다시 물에빠진 아내

2016-06-16 11:52:33

이기사

고맙습니다_()_

2016-06-07 20:01:44

법정선

스님, 항상 좋은말씀 고맙습니다~~~^^*
이 좋은 법이 청년들에게 더욱 널리 알려지면 좋겠습니다.
청년들, 힘내세요~^^

2016-06-07 13:39:58

전체 댓글 보기

스님의하루 최신글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