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6.5.24 (오후) 부산 중구 즉문즉설 강연


 

안녕하세요? 오늘은 부산 중구와 포항에서 하루에 두 번 즉문즉설 강의가 있는 날입니다. 먼저 오후 1시 30분에는 부산 중구 롯데백화점 문화홀에서 부산시민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이 열렸습니다. 

 

아침 일찍부터 하늘에는 먹구름이 드리우더니 빗방울이 간간히 날렸습니다. 스님은 어제에 이어서 오전 내내 농사일을 했습니다. 특히 장미꽃 가지가 뭉쳐져 있는 것을 사방으로 흩어지게 하는 작업을 계속 했는데, 한참 동안 스님의 손길이 닿자 장미꽃 가지들은 마침내 제법 풍성해 보일 정도로 예쁜 모양새가 되었습니다. 

  


 

 

어제 스님이 경주 통일암에서 캐어 온 죽순은 밤중에 삶겨서 아침 식사 반찬으로 나왔습니다. 순하고 부드러운 죽순에 초고추장에 버무리니 아주 맛깔스런 밑반찬이 되었습니다. 여기에 스님이 방금 밭에서 따온 상추, 고소와 함께 쌈을 싸서 먹으니 맛이 아주 일품이었습니다. 

 


 

원고 교정을 본 후 10시 30분이 되어 강연이 열리는 부산으로 출발했습니다. 강연은 부산 중구 남포동에 위치한 롯데백화점 문화홀에서 오후 1시 30분에 시작되었습니다. 

 

부산 중구는 부산항여객터미널, 용두산공원, 번화가인 남포동, 자갈치시장 등이 있어 부산의 경제, 교통, 관광의 중심지입니다. 롯데백화점 13층 전망대에 오르니 저 멀리 부산항 여객터미널과 한진중공업, 각종 화물선들이 움직이는 모습이 훤히 펼쳐졌습니다. 

 


 

강연 시작 10분 전이 되자 문화홀에 마련된 500석은 모두 만석이 되었고, 자리가 부족해 입장하지 못한 150여 명의 시민들이 길게 줄을 서서 애타게 입장을 원하고 있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스님은 입장하지 못하고 되돌아가야 하는 많은 분들에게 직접 사과를 하러 강연장 밖으로 잠시 나왔습니다. 

 

“세월호 사고가 생기고 나서 공연장에는 정원 외에 추가 인원을 일절 받지 못하도록 바뀌었어요. 양해를 좀 해주세요. 다음에 6월 8일 저녁 7시 30분에 KBS홀에서 또 강연이 있으니까 그 때 오세요.” 

 


 

스님이 직접 양해를 구하자 시민들은 그제서야 웃음을 보이며 스님의 손이라도 한번 잡아보고 가려고 다들 손을 내밀었습니다. 스님은 악수라도 한 번씩 건네준 후 다시 한번 인사를 하고 강연장으로 들어왔습니다. 

 

소개 영상에 이어서 스님이 무대 위로 오르자 우레와 같은 박수와 함성이 쏟아졌습니다. 스님은 거두절미 하고 곧바로 질문에 대한 답변을 시작했습니다. 총 10명이 스님에게 질문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 암진단을 받고 항암 치료를 받고 있는데 가족들이 이 모습을 보고 마음 아파할 것을 걱정하는 여성분의 고민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저는 20년 전에 육종암 진단을 받았어요. 방사선치료를 비롯한 항암치료며 개복수술 후유증 때문에 몇 차례 유착 제거 수술을 해서 몸속에 남들에 비해 없는 게 좀 많은 편입니다. 신장이나 비장도 없지만 잘 살아왔어요. 그런데 작년에 또 장유착이 와서 수술을 하러 들어갔더니 이제는 그게 온몸에 전이가 됐다는 말을 들었습니다.(울먹이며 말을 잇지 못함)

 

어쨌든 20년을 아이들과 잘 살 수 있었던 것은 굉장히 감사하고, 아이들한테도 ‘같이 받아들이고 감사한 것만 생각하면서 살자’고 이야기했어요. 병원에서는 나이가 52살로 젊은 편이니까 아무것도 안 하고 포기하기보다 항암치료를 하자고 해요. 그런데 이전에 방사선치료를 받아본 경험도 있고, 제게 생긴 암에는 항암이나 방사선 치료가 큰 도움이 안 된다는 것도 이미 들어서 알고 있기 때문에 거절했어요. 장유착 수술 후에 지금은 잘 먹어서 몸무게도 조금 늘고 컨디션도 좋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지금은 통증이 없으니까 이전처럼 생활을 잘 하고 있지만, 앞으로 통증이 심해질까 걱정입니다. 누구나 다 가는 길이기 때문에 죽음 자체는 받아들이겠는데 가족들 앞에서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은 사실 보이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통증이 심해졌을 때 제가 어떻게 생각을 하면 좀 더 지혜롭게 지낼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이 올 때까지 제가 어떤 노력이나 기도를 하면 조금 더 편안해질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네. 병을 20년 앓고도 이렇게 밝게 살아오신 걸 우선 축하드립니다. 격려박수 부탁드립니다.(모두 큰 박수) 

 


 

우리가 작은 눈으로 보면 먼저 죽는 건 큰 재앙이고, 늦게 죽는 건 큰 복 같이 보이지만, 좀 큰 눈으로 보면 상황이 전혀 달라요. 하루살이 알죠? 하루밖에 못 산다고 해서 ‘하루살이’예요. 하루살이들은 해가 떴을 즈음에 깨어나 날아다니다가 해가 지는 저녁 6시나 7시쯤에 대부분 죽습니다. 그런데 하루살이를 1,000마리든 10,000마리든 많은 수를 관찰해보면 다 똑같이 저녁 6시나 7시에 죽진 않을 거예요. 관찰해서 분포도를 그려보면 다수가 저녁 6시나 7시에 죽을 확률이 제일 높은 것일 뿐이지, 오후 2시나 3시에 죽는 것도 있고, 밤 11시나 12시까지 살다 죽는 것도 있겠죠. 사람에 비유하면 오후 2시에 죽는 것은 20살에 죽는 것, 오후 4시에 죽는 것은 40살에 죽는 것, 오후 7시에 죽는 것은 70살에 죽는 것, 오후 9시에 죽는 것은 90살에 죽는 것, 저녁 10시에 죽는 것은 100살에 죽는 것이라고 생각해봅시다. 하루살이에게는 ‘3시에 죽느냐, 4시에 죽느냐, 5시에 죽느냐, 6시에 죽느냐’가 엄청나게 중요할 것 같지만, 사람이 볼 때는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어차피 하루밖에 못 사니까 사고를 당해서 오후 2시에 죽든 요행히 밤 10시까지 살든 그게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하느님이 계시든 옥황상제가 계시든 또 다른 존재가 있든지 해서 저 하늘 위나 지구 밖에서 우리를 내려다보면 인간의 수명 100년이라는 게 아주 잠깐이에요. 찰나에 불과한 시간입니다. 그런 큰 눈으로 보면 그 100년 중에 ‘100살까지 살았다, 90살까지 살았다, 80살 살았다, 60살 살았다’ 이게 하등 중요한 게 아니에요. 사람의 경우에도 많은 수를 조사해보면 20살에 사고가 나서 죽는 사람도 있고, 30살에 죽는 사람도 있고, 40살에 죽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다수는 한 70이나 80살에 죽어서 그래프를 그려보면 거기가 꼭지점이 되고, 또 개중에는 90살이나 100살까지 사는 사람도 간혹 있을 뿐입니다. 그러니 큰 눈으로 보면 이건 하등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아주 좁게 보면 하루 더 살고 못 살고가 아주 중요하지만, 큰 눈으로 보면 10년 더 살고 못 살고가 중요한 게 아니에요. 

 

예수님은 33세까지밖에 안 살았잖아요. 게다가 그냥 죽은 게 아니라 십자가에 못박히는 사형을 당했습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나이 서른세 살에 뭘 알면 얼마나 알겠어요? 그러나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추구해서 보통 사람이 흉내 낼 수 없는 일을 했기 때문에 그 분이 곧 하느님의 아들이자 하느님으로 추앙받게 된 거예요. 80살, 90살까지 살아도 이름 없이 죽어간 사람이 얼마나 많아요? 

 


 

전 세계를 통틀어 인류 역사상 지금까지 왕이 되었다가 죽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요? 수십만, 수백만 명이 될지도 몰라요. 부처님도 왕이 되었다면 그 수백만 명 중의 한 명이었을 겁니다. 그러나 그 왕위를 버리고 평생을 맨발로 다니고 나무 아래서 잠자면서 사람들에게 어떤  것이 참행복인지를 설파했기에 2,6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존경을 받습니다. 그런데 이 ‘존경받는다’라는 것도 더 큰 눈으로 보면 그리 중요한 게 아니에요. 5천년 인류 역사라는 것도 지구 전체의 역사에서 보면 눈 깜짝할 사이에 불과합니다.

 

그럼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삶의 중요한 가치기준으로 삼아야 할까요? 그건 시간도 아니고, 재물도 아니고, 지위도 아닙니다. 내가 하루를 살더라도 행복하게 사느냐, 이게 중요한 거예요. 재물이 많아도 괴롭게 사는 사람이 있고, 지위가 높아도 괴롭게 사는 사람이 있고, 오래 살아도 괴롭게 사는 사람이 있어요. 하루를 살고 죽어도 행복하게 사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러니 이 기준을 자꾸 다른 데다 두면 안 돼요. 기준을 확 바꿔버리면 아무 문제도 없어요. 예컨대 암에 걸려 1년밖에 못 산다고 진단을 받았다고 합시다. 그러면 이 사람은 반드시 불행해야 할까요? 이 사람이 불행한 이유는 ‘나는 1년밖에 못 산다’라는 생각으로 그 1년을 괴롭게 살다 죽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 중에 이 질문자보다 먼저 죽을 사람이 있을까요? 없을까요?”

 

“있어요.”

 

“질문자보다 젊고 질문자보다 건강한데도 질문자보다 먼저 죽을 사람들이 여기에 많아요. 누구인지를 몰라서 그렇죠.(모두 웃음) 

 


 

그런데 그 먼저 죽을 사람들은 웃으면서 사는데, 늦게 죽을 자기는 ‘얼마 못 산다’ 이 생각에 사로잡혀서 괴롭게 살다 죽는다면 이게 불행입니다. 병이 불행이 아니라, 신체장애가 불행이 아니라, 가난이 불행이 아니라, 그걸 핑계로 괴롭게 살다가 죽는 게 불행이라는 거예요. 

 

제가 고등학교 다닐 때 학교 옆에 절이 있었는데 그 절의 스님이 저더러 스님이 되라는 거예요. 저는 절대로 안 한다고 버텼어요. 저는 종교인이 싫었거든요. 허황한 소리, 웃기는 이야기만 하고 돌아다니잖아요. ‘처녀가 애를 낳았다’, ‘애가 태어나자마자 서서 걸었다’ 이런 턱도 없는 소리만 하는데 그걸 제가 왜 믿겠어요. 그냥 종교를 믿으라고 해도 믿기 싫은데 심지어 종교 지도자를 하라니까 하고 싶겠어요? 당연히 거부를 했지요. 어쨌든 1년간 협박, 꼬임을 거듭한 끝에 결국 제가 마음을 바꿔서 절에 들어왔어요.(모두 웃음) 

 


 

그랬더니 저희 어머니가 찾아와서 난리가 났어요. 고등학교라도 졸업하면 데려갈 것이지, 고등학교 다니는 애를 데려가면 어떡하느냐는 거예요. 그랬더니 우리 스님이 어머니더러 ‘보살님은 이 아이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압니까?’라고 했어요. 어머니가 ‘모릅니다’라고 했더니 스님이 이래요. ‘나는 알아요. 그러면 아는 사람이 지도해야 되겠어요? 모르는 사람이 지도해야 되겠어요?’ 그러니까 어머니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아는 사람이 해야죠’라고 했어요. 그래서 어머니는 궁금하니까 ‘애가 어떻게 되는데요?’ 하고 물었더니 스님이 ‘얘는 밖에 있으면 단명해요!’ 그랬어요. 절에 안 들어오고 밖에 있으면 일찍 죽는다는 말이에요. 그러자 저희 어머니가 너무너무 놀라서 ‘아이고, 그러면 스님 아들 하세요’ 하고 가버렸어요.(모두 웃음) 

 


 

대학 나온 요즘 엄마들은 그렇게 하기는커녕 멱살 잡고 끌고 가겠죠. 그래서 제가 저희 어머니한테 너무너무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제가 어릴 때는 부모님이 무학(無學)이라고 해서 부모님에 대한 자긍심이 별로 없었는데, 그때 저를 포기하신 어머니의 결정이 자식에 대한 사랑인 걸 알게 됐습니다. 자식이 살 길이라면 내가 아무리 가슴이 아파도 과감하게 포기하는 것이 엄마의 사랑입니다. 여러분들은 사랑이라고 말하지만 그건 자기 욕심이에요. 어쨌든 그렇게 제가 절에 들어와 살게 됐습니다. 

 

그런데 ‘단명한다’고 하면 어느 정도 살다 죽어야 ‘단명’일까요? 이게 참 애매모호해요. 90살을 기준으로 삼으면 80살도 단명이고, 80살을 기준 삼으면 70살도 단명이고, 70살을 기준삼으면 60살도 단명이에요. 그러나 보통은 40살 고비를 못 넘길 때 ‘단명한다’는 말을 씁니다. 질문자처럼 52살에 죽으면 명대로 살고 죽는 사람이에요. 그런 건 단명 축에도 안 들어가요.(모두 웃음) 아이가 열여덟 살 되기 전에 부모님이 돌아가셔야 ‘고아’라고 하지, 아이가 20살이 넘었는데 부모님이 돌아가셨다고 해서 ‘고아’라고 하지는 않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길어야 40살까지다’ 이렇게 생각하고 살았어요. 그 동안 병치레도 많이 했지만 열심히 살았습니다. 다른 사람은 80살까지 사는데 저는 40살까지밖에 못 산다 생각하니 놀 여유가 없었어요. 부지런히 살았어요. 그런데 40살을 넘어도 안 죽었어요. 1년 지나도 안 죽고, 2년 지나도 안 죽고, 3년 지나도 안 죽었습니다.(모두 웃음)

 


 

그러니까 사는 게 굉장히 즐거운 거예요. 여러분들은 스님이 너무 열심히 일한다고 걱정하지만 정작 저는 내일 죽어도 아무 문제가 없어요. 덤으로 사는 거니까요. 덤으로 사는 거야 뭐, 이래 죽으면 어떻고, 저래 죽으면 어떻겠어요? 질문자도 현대 의학이 없었으면 벌써 죽었을 거예요. 안 그래요?”

 

“그렇죠.”

 

“그래요. 질문자도 지금 덤으로 사는 거예요. 병을 20년 앓았다면 아이도 지금은 스무 살 넘었겠네요.”

 

“네. 25세, 27세입니다.”

 

“25세, 27세면 다 키웠잖아요. 그런데 죽는 게 뭐 겁나겠어요?”

 

“죽는 건 두렵지 않는데, 남은 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하루 살든, 이틀 살든, 사흘 살든 즐겁게 살면 됩니다. 아침에 일어나 눈떠보고 ‘아이고, 아직도 안 죽고 살았네!’ 하고 기뻐하세요.(모두 웃음) 

 


 

산 기념으로 오늘 좋은 일도 좀 하고요. 이렇게 살면 아무 문제가 없어요. 자꾸 항암이 어떻고 뭐가 어떻고 걱정할 필요 없어요. 의사 소견이 치료받는 게 좋겠다면 받고, 그래도 본인이 안 받겠다 하면 안 받으면 돼요. 받아야 하는지 안 받아야 하는지는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치료 받는 게 낫겠다’ 하면 받으면 되고, ‘그거 받아서 괴롭게 오래 살면 뭐 하겠냐? 나는 살 만큼 살았고 애들도 다 키웠으니 됐다’ 이러면 안 받고 살면 돼요. 어느 쪽이든 행복하게 살면 됩니다. 

 

그러다가 통증이 오면 주사를 맞아서 통증을 줄이면 되고요. 주사를 맞아도 못 참도록 아프면 ‘아야야야야야’ 하면 되죠. ‘아야야야 하면 자식이 힘들지 않을까?’ 이 걱정도 할 필요가 없어요. 자식이 부모한테 젖 얻어먹고 밥 얻어먹었으면 엄마가 ‘아야야야’ 하는 것도 좀 들어야죠. 어쩌겠어요? 그런데 질문자는 왜 남 걱정을 하고 있어요? 나는 죽고 자식들은 살 텐데, 내가 걱정이지 자식이 무슨 걱정이에요? 그런 걸 자꾸 따지면 질문자는 말로는 행복하게 산다 하면서도 자꾸 얼굴에 그림자가 끼게 됩니다. 사람들이 ‘아이고, 어떡하냐’ 하고 걱정을 해도 ‘뭐가 걱정이냐? 살 만큼 살았고 애도 다 컸는데’라고 해야 해요. 

 

그러니까 맛있는 거 먹고 즐겁게 사세요. 그렇다고 몸에 안 좋은 걸 굳이 억지로 먹을 필요는 없겠죠. 안 좋다는 음식은 안 먹는 가운데서도 그냥 일상적으로 먹고 사는 만큼 사는 거예요. 그러나 과로하면 안 돼요. 그렇다고 아프다고 맨날 누워서 청소도 안 하면 곤란해요. 청소도 하고 밥도 하고 놀러도 가세요. 그러나 몸이 약하면 과로하면 안 됩니다. 과로하면 병을 악화시키니까요. 그래도 적당한 운동은 해주는 게 좋아요. 헬스클럽 가서 운동하는 것만 좋은 게 아니에요. 설거지하고 방 닦는 것도 다 몸을 움직이는 거니까 운동이에요. 그렇게 즐겁게 살면 됩니다. 

 


 

‘나 죽은 뒤 어쩌냐?’라며 배우자 걱정할 필요도 없어요. 내가 죽고 나면 남은 사람이야 재혼을 하든지 말든지 알아서 하겠죠. 그걸 왜 ‘재혼을 해라, 하지 마라’, ‘너희는 어떻게 해라’ 하고 골치 아프게 내가 정해요? 많은 사람들이 저더러 ‘스님 돌아가시면 정토회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하고 물으면서 걱정하는데, 그걸 왜 제가 걱정해요? 그건 살아 있는 사람들이 걱정할 일이지요. 지금 저는 살아서 할 일도 바쁜데 뭘 죽은 뒤까지 걱정을 하겠어요?(모두 웃음) 

 

공부가 덜 돼서 그런 소리를 자꾸 하는 거예요. 저는 이미 20년 전에 죽었다고 생각하고 살기 때문에 이미 정리를 다 해놨어요. 내일 죽는다 해도 아무 문제가 없어요. 아프면 진통제 맞으면 돼요. 저도 아까 들어올 때 몸에 열이 나고 덜덜 떨려서 약을 먹고 들어왔어요. 많이 아프면 병원에 가면 되는 거고요. 

 

그러니 이것저것 신경 쓰지 말고 그냥 하루를 살더라도 재미나게 사세요. ‘재미나게 살고 싶다!’ 한다고 재미나지는 게 아니라 이런저런 생각을 놓아버려야 재미나게 살아집니다. 기도문이 꼭 필요하다면 아침에 눈뜰 때마다 이렇게 세 번씩 외치세요. ’오늘도 살았습니다. 부처님, 감사합니다. 행복하게 살겠습니다.’ 한번 해보시겠어요?”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어요.”

 

“예, 그럼 됐어요.”

 

“예, 감사합니다.”(모두 큰 박수)

 


 

질문자는 처음에는 울먹이는 모습이었는데, 스님의 답변을 듣고 나선 환하게 웃었습니다. 흐린 하늘이 맑게 개이는 듯한 분위기에 청중들도 뜨거운 격려 박수를 보냈습니다. 

 

이 외에도 8명의 질문이 더 있었습니다. 첫 번째 질문자는 친정부모님 제사를 오랫동안 모시고 있었는데 이제는 제사를 그만 모시고 싶어서 어떻게 하면 좋은지 물었고, 두 번째 질문자는 가족처럼 일하던 사람이 배신을 하고 떠났는데 자꾸만 화가 나서 어떻게 마음을 다스리면 좋을지 물었습니다. 그런데 이 분은 스님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배신을 했는지 물었으나 밝힐 수가 없다고 해서 아쉽게도 스님으로부터 구체적인 답변을 듣지 못했습니다. 스님은 이후에도 “얘기해 볼래요?”라고 기회를 주었지만 해결이 되었다며 그냥 넘어갔습니다. 

 

세 번째 질문자는 자존감과 자존심의 차이가 무엇인지 물었는데, 스님이 “그런 건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더 잘 나와요”라고 대답해 큰 웃음을 주었습니다. 이 분은 결국 다시 질문을 했는데 민주화 과정에서 인권이 유린된 것이나 친일파 청산이 안 된 것이 과연 제대로 회복이 될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네 번째 질문자는 올해 나이가 29세인데 아직도 무엇을 하고 살아야할지 모르겠다며 진로 상담을 요청했고, 다섯 번째 질문자는 약사였는데 똑같은 생약 재료로 약을 지어도 한의사들은 의료보험 지원을 받아서 저렴하게 약을 공급하고, 약사들은 비싸게 공급해야 하는 불평등을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지 질문했도, 여섯 번째 질문자는 기도할 때 집중이 안 되고 자꾸 다른 생각이 나서 어떡하면 좋을지 물었고, 여덟 번째 질문자는 나이 어린 친구들이 인사를 안 하거나 대답을 제대로 안 하면 참지 못하는 성격을 갖고 있는데 계속 참아야 할지, 양해를 구해야 할지 물었고, 아홉 번째 질문자는 가습기로 인해 사람들이 사망한 사건으로 세상이 시끄러운데 이것에 대한 스님의 생각을 물었습니다. 

 

스님은 각각에 대해 쉽고 재미있는 다양한 비유를 들어가며 명쾌한 답변을 들려주었습니다. 질문에 대한 답변을 모두 마치니 어느덧 2시간 30분이 훌쩍 지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강연을 마무리하며 정리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오늘도 주로 개인의 인생고민을 상담했는데, 스님은 수행과 사회변화를 함께 도모해가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여러분들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자각을 하셔야 합니다. 북한 같은 곳은 나라가 잘못되면 그것은 김정은 위원장의 책임이에요. 그런데 우리는 앞으로 만약 나라가 잘못되면 대통령 책임이 아니라 우리 책임이에요. 그러니 자꾸 욕만 하지 마세요. 책임이 우리 책임이니까요. 우리가 주인입니다. 그리고 이걸 바꾸기 꺼려하면 안 돼요. 우리가 주인이니까 선택권이 우리에게 있다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개인의 마음을 다스려서 행복해지는 ‘수행’과 우리 사회에 좀 더 좋은 제도를 마련해서 모든 사람이 다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하는 ‘사회 변화’를 함께 도모해 가야 합니다.

 

스님의 역할은 이 두 가지 중 지금은 개인의 행복에 대한 것을 주로 하고 있습니다. 어느 한 가지가 필요 없다는 게 아니라 이 부분에서 주로 제가 역할을 하는 거예요. 어떤 사람은 그래서 불만이에요. ‘스님은 맨날 개인 문제만 다루어서 사람들이 세상 문제를 외면하도록 만든다’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제가 그걸 외면하는 게 아니라 제 신분과 역할이 이 역할이라서 그런 거예요. 그러나 사회적인 변화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러니 수행뿐 아니라 사회 변화도 꼭 함께 해나가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모두 큰 박수)

 

열정적으로 강연을 해 준 스님에게 다시 한 번 뜨거운 박수갈채가 쏟아졌습니다. 

 


 

강연장이 아주 아담하고 좋았고, 스님의 말씀도 너무 재미있어서 모두가 끝까지 집중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강연을 마치고 무대 위에서 스님의 새책 ‘행복’ 사인회가 열렸습니다. 얼마 전 노인분들을 위해 ‘행복’ 책의 큰 활자본이 출간되었는데, 오늘 사인회에서는 큰 활자본 책이 아주 인기가 좋았습니다. 스님은 사인을 해주는 가운데 시민들과 일일이 눈을 맞추며 환한 웃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사인회를 마치고 나서는 강연을 준비한 서면정토회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서면! 파이팅!”을 외치는 얼굴에는 강연을 무사히 마친 것에 대한 보람과 기쁨이 가득해 보였습니다. 

 


 

이어서 깜짝 이벤트로 케이크와 촛불을 들고 나와 다함께 ‘스승의 은혜’ 노래를 함께 불렀습니다. 지난주가 스승의날이었는데 스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자 하는 봉사자들의 애틋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촛불이 그냥 촛불이 아니라 불꽃이 확 일어나고, 회전판에서 여러개의 촛불이 돌아가기도 해서 모두들 환호를 했습니다. 

 

봉사자들 대부분이 정토불교대학 입학생이거나 경전반 재학생들이어서 스님은 “공부 열심히 하세요” 라고 특별히 격려를 더 해주기도 했습니다. 감사 인사를 한 후 부산을 출발했습니다. 

 


 

잠시 후 저녁 7시부터는 포항 문화예술회관에서 즉문즉설 강연이 열렸습니다. 부산을 출발한 시간이 5시 무렵, 부지런히 달려도 겨우 강연 시작 시간에 맞춰서 강연에 도착할 것 같았습니다. 포항 즉문즉설 강연 소식은 다음 이야기에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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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봄,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 강연이 전국 방방곡곡을 찾아갑니다. 강연일정 확인하시고 가족, 이웃, 친구와 함께 오세요. 강연은 선착순 무료입장입니다. 질문자 접수는 강연장에서 받습니다.


전체댓글 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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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사

감사합니다_()_

2016-05-30 19:45:21

금강지

안녕하세요^^
아무리 덤으로 사는세상이라 즐겁게 열심히생활
하시지만 스님!
그래도 열심도 삼분의일 정도는 내려 놓으셔야
되지않을까요?

2016-05-28 11:43:09

클래식

언제나 수행하겠습니다~~^^

2016-05-27 06:5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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