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6.5.14 (오전) 부처님오신날 1,2,3부 법회 (정토회 회원)


 

안녕하세요. 오늘은 불기 2560년 부처님오신날입니다. 스님은 아침 7시부터 밤 10시까지 하루 종일 5부에 걸쳐 봉축법요식에 참석해 기념법문을 했습니다. 

 

매년 부처님오신날이 되면 서울 정토회관에서는 5부에 걸쳐 봉축법요식이 진행됩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오전 7시에는 활동가들을 위한 1부 법회가, 오전 10시에는 주간반에 나오는 정토회 회원들을 위한 2부 법회가, 오후 1시에는 저녁반에 나오는 정토회 회원들을 위한 3부 법회가, 오후 4시에는 이웃종교인들과 사회 인사들을 위한 4부 법회가, 저녁 7시 30분에는 청년들을 위한 5부 법회가 진행됐습니다. 

 


▲ 서울 정토회관

 

새벽부터 서울 정토회관은 부처님오신날 손님 맞이 준비 때문에 많은 사람들로 붐볐습니다. 아침 7시가 되자 정토회 활동가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봉축법요식 및 1부 법회가 시작되었습니다. 1부 법회는 대부분 2,3,4,5부 법회에서 스텝 역할을 맡은 활동가들입니다. 하루 종일 행사 준비하고 뒷정리 하느라 법문을 듣지 못할 수가 있는데, 이런 분들을 위해 아침 일찍 1부 법회가 열렸습니다.

 


▲ 부처님오신날 1부 법회

 

먼저 타종이 있은 후 만중생의 해탈을 염원하며 법륜 스님이 불단 앞으로 나와 헌향을 했습니다. 이어서 봉축법요식 순서에 따라 헌등, 헌화, 거불, 정근, 헌공예불이 차례대로 진행됐습니다. 

 


▲ 헌공예불

 

대중이 청법가와 삼배로 부처님오신날 기념법문을 청하자 스님이 법상에 올랐습니다. 스님은 부처님이 탄생하실 때의 묘사가 무엇을 의미하는 아주 쉽게 설명하면서 부처님오신날의 의미 또한 함께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부분을 의아해 하는 경우가 많은데, 스님의 해설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했습니다. 

 

“부처님은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어도 스스로 행복하셨고, 나아가 괴로운 이에게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길을 열어주셨고, 행복을 전해 주셨습니다. 그런 부처님의 삶을 상징화 한 것이 부처님의 탄생 당시에 대한 묘사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지금의 인도대륙 북쪽에 있는 히말라야 산 기슭, 카필라바스투 성의 룸비니에서 태어나셨어요. 아버지는 정반왕이고, 어머니는 마야왕비입니다. 어머니가 애를 낳으려고 친정으로 가던 길에서 부처님을 낳으셨어요. 길거리에서 낳았다는 건 뭘 상징할까요? 그분은 진리의 길을 탐구할 분임을 상징합니다. 부처님께서는 평생 길을 걸으셨잖아요? 길에서 나시고, 길에서 도를 이루시고, 길을 따라 전법하시고, 길을 가다가 열반에 드셨으니까요. 여기서 길은 ‘도(道)’, ‘진리’를 의미합니다. 부처님은 전 생애를 통해서 온전하게 진리의 세계에 계셨습니다. 

 

경전에는 마야왕비께서 친정으로 가는 길에 룸비니라는 지역을 지나게 되었는데, 숲에 꽃이 너무 예뻐서 가마에서 내려서 오른손을 들어 꽃가지를 잡다가 산기를 느끼고 아기를 낳았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 때 아기가 오른쪽 옆구리로 나왔다고 묘사되어 있습니다. 제왕절개를 한 게 아니고요. (모두 웃음) 

 


 

옆구리로 나왔다는 것은 당시 인도 설화에 비추어 볼 때 아기가 왕족으로 태어났다는 뜻입니다. 인도에는 4개의 계급이 있는데, 브라만은 신의 입에서, 크샤트리아는 신의 옆구리에서, 바이샤는 신의 배에서, 수드라는 신의 발바닥에서 나온다고 믿었기 때문에 부처님께서 옆구리로 나왔다는 것은 왕족으로 태어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게 부처님께서 태어나시니까 대범천, 즉 마하 브라만들이 황금 그물을 쳐서 부처님을 받았습니다. 브라만은 창조의 신으로써 인도에서 최고의 신이에요. 그러니 이런 묘사는 부처님은 신까지도 공경하는 분, 신보다도 더 높은 분임을 상징하는 겁니다. 그래서 부처님을 ‘신과 인간의 스승’, 즉 ‘천인사(天人師)’라고 하잖아요. 

 

이어서 용왕이 더운 물과 찬물로 아기의 몸을 씻기자 아기의 몸이 황금빛으로 빛났다고 해요.  ‘황금빛’은 ‘깨달음의 광명’을 상징하기 때문에 이것은 ‘이분이 깨달을 분이다’, ‘부처가 되실 분이다’ 하는 걸 상징합니다. 

 

또 우리는 태어나자마자 팔과 다리를 하늘로 뻗어서 ‘앵앵’ 거리고 우는데, 이분은 태어나자마자 동서남북으로 일곱 발자국을 걸었고, 그러자 발을 디딘 곳마다 연꽃이 피어났다고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건 뭘 상징할까요? 여섯 발자국은 육도윤회(六道輪廻), 즉 윤회의 세계를 의미합니다. 윤회의 세계에서는 우리들의 행복이 지속가능하지 않습니다. 괴로웠다 즐거웠다 괴로웠다 즐거웠다 하는 것을 반복할 뿐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갔다는 건 그분이 해탈과 열반을 증득하실 분임을 의미하는 겁니다. 열반이라는 것은 ‘지속가능한 행복’, ‘다시는 괴로움으로 바뀌지 않는 행복’을 말합니다. 

 


 

그리고 동서남북으로 일곱 발자국씩 걸은 뒤에 오른손을 들어 하늘을 가리키고, 왼손은 땅을 가르키며 ‘천상천하 유아독존 삼계개고 아당안지’라고 사자처럼 외치셨다고 합니다. 이때 ‘천상’은 신들의 세계, 정신 세계, 형이상학을 의미하고, ‘천하’는 인간 세계, 욕망의 세계, 물질 세계, 형이하학을 의미합니다. 그러니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란 신들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를 통틀어서 깨달은 자가 가장 존귀한 자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부처님을 사람과 신들의 스승, 즉 ‘천인사’라고도 하고, ‘세존’이라고도 하는 겁니다. 그런데 이 말을 아상과 교만이 가득한 사람들을 표현하는 말로 사용하기도 하는데, 여기서는 그런 뜻이 아니에요. 그리고 이어서 외친 말씀이 ‘삼계개고 아당안지’입니다. ‘삼계’란 욕계, 색계, 무색계, 즉 이 세계 전체를 의미해요. 그래서 이것은 ‘이 세계에 살고 있는 모든 중생이 다 괴로움에 빠져있구나. 내 이를 마땅히 편안케 하리라’ 하는 뜻입니다. 

 

이것은 모두 부처님의 삶의 방향을 부처님께서 태어났을 당시에 하셨던 일성(一聲)으로 묘사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은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되리라는 뜻이고, ‘삼계개고 아당안지’는 일체중생을 구제하는 스승이 되리라, 즉 스스로 행복하고 남도 행복하게 해 주는 존재가 되리라는 뜻입니다. 이런 내용은 대승불교에서만 전해 내려오는 게 아니라 소승불교에서도 전해 내려오고 있어요. 

 

이런 부처님의 삶의 방향을 닮아가는 존재가 바로 보디사트바, 즉 보살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살은 부처님과 그 원(願)이 똑같습니다. 보살의 원(願)은 ‘상구보리(上求菩提) 하화중생(下化衆生)’, ‘자리이타(自利利他)’라고 표현을 하죠. 자리이타는 ‘나를 이롭게 하고, 남도 이롭게 한다’는 뜻입니다. 쉽게 말해서 ‘나도 좋고 너도 좋고’ 이런 뜻인데, 우리 세상의 길은 그렇지가 않지요. 나는 좋은데 저 사람은 안 좋다는 게 있고, 저 사람은 좋다는데 나는 안 좋은 게 늘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들은 아기 부처님을 목욕을 시키는 ‘욕불의식’을 하게 되는데, 이것은 ‘나도 부처님처럼 무명의 때를 씻겠다’는 의미입니다. 즉 나도 무명업식을 녹여서 성불하겠다는 의미에요. 그리고 그런 원을 세운 사람들한테 ‘그래, 너도 미래세에 성불할 거야’라고 말해주는 의식이 ‘마정수기’입니다. 제가 붓으로 여러분들의 이마에 찍어주는데, 이것은 ‘당신은 깨달음을 얻어 부처를 이루리라, 즉 해탈과 열반을 증득하리라, 자유와 행복을 얻으리라’ 하고 예언하는 의식입니다.” 

 

스님의 기념 법문이 끝나고 이어서 ‘욕불의식’과 ‘마정수기’가 진행됐습니다. 인도 전통의상 사리를 곱게 차려 입고 4명의 마야 부인이 어간 문을 열고 등장하자 큰 박수갈채가 쏟아졌습니다. 

 

대중들은 앞줄부터 차례대로 일어나서 아기 부처님에게 청수를 붓고, 합장한 채 스님 앞에 다가가 마정수기를 받았습니다. 어린 아이들부터 연세 지긋한 어르신들까지 남녀노소 다양한 분들이 긴 줄을 이르며 욕불의식과 마중수기를 원할히 마쳤습니다. 

 


▲ 법륜 스님에게 마정수기를 받고 있는 대중들

 

욕불의식을 마치고 나서는 탄생 선언을 스님과 대중이 함께 읽어내려 갔습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삼계개고 아당안지(天上天下 唯我獨尊 三界皆苦 我當安之), 하늘 위 하늘 아래 나 홀로 존귀하네. 온 세상이 모두 고통 속에 빠져 있구나. 내 마땅히 이를 편안케 하리라.”

 


▲ 탄생 선언을 다함께 낭독하는 대중들

 

앞서 스님의 법문에서 탄생 선언이 무엇을 뜻하는지 쉽고 명쾌한 설명을 들었기에 경전 내용을 함께 읽기가 수월했습니다. 덕분에 한 구절 한 구절 그 의미도 가슴에 새겨볼 수 있었습니다. 

 

다함께 발원문을 낭독한 후 마지막으로 오늘 법회에 참석한 인연공덕을 돌아가신 조상 영가들께 회향하는 천도재를 약식으로 지내면서 1부 법회를 모두 마쳤습니다. 

 


 

스님은 2부 법회가 시작하기 전까지 휴식 시간을 이용해 원고 교정 업무를 본 후 오전 10시가 되어 다시 2부 법회를 하기 위해 법당에 들어섰습니다. 2부 법회는 주간반에 나오는 정토회 회원들을 대상으로 열렸습니다. 주간반은 회원들이 많아 1부 법회 때보다 훨씬 많은 500여 명이 법당을 찾았습니다. 법회는 1부와 똑같은 방식으로 진행됐습니다. 

 

2부 법회에서도 스님의 봉축 기념 법문이 이어졌습니다. 대부분 1부 법회와 내용이 비슷했지만, 특히 부처님오신날이 문화 행사로서 갖는 의미와 부처님의 본래 가르침을 되새기기 위한 날로서의 의미에 대해 각각 설법해 준 부분이 인상적이였습니다. 

 


▲ 부처님오신날 2부 법회

 

그리고 스님은 즉문즉설 강연 또한 이런 부처님의 본래 가르침으로 돌아가기 위한 방편임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부처님만 깨달을 수 있고 우리는 다 부처님을 추종만 해야 된다고 안 하셨어요. 우리는 다 눈 감고 살고 있었는데, 부처님은 그 눈을 떠서 살펴보니 괴로워할 일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거예요.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이리저리 헤매는 사람들에게 ‘눈 떠라’ 라고 하신 겁니다. 지금은 비록 눈을 감고 있더라도 눈만 뜨면 부처가 될 수 있으니까 우리는 모두 부처가 될 소질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로 ‘일체 중생에게 다 불성이 있다’라고 한 겁니다. 요즘 말로 옮기면 ‘누구나 다 행복할 수가 있다.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이지요. 피부 빛깔이 검든 희든, 남자든 여자든, 장애가 있든 건강하든, 한국 사람이든 일본 사람이든, 키가 크든 작든, 부자든 가난하든, 어릴 때 고생을 했든 안 했든, 동성애자든 이성애자든 관계없이 행복할 수가 있습니다. 태어날 때 이미 결정된 것들이 우리가 자유와 행복의 길로 가는 것을 방해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누구나 다 자유로울 수가 있고, 행복할 수가 있는 거예요. 

 


 

그런데 지금 여러분들은 어떤가요? 불행해야 할 온갖 핑계를 대지요. ‘아니야. 나는 괴로워. 행복할 수가 없어’ 하면서 ‘키가 작으니까’, ‘얼굴이 검으니까’, ‘결혼을 못했으니까’, ‘돈이 없으니까’, ‘학벌이 나쁘니까’, ‘건강이 안 좋으니까’, ‘자식 때문에’, ‘부모 때문에’ 라고 그 이유를 5개씩, 10개씩 붙여서 자기는 괴로울 수밖에 없다고 아우성을 칩니다. 제가 ‘그런 건 아무 문제가 안 된다. 그런 너도 행복할 수 있다’ 라고 아무리 얘기해도 여러분들은 ‘아니에요, 저는 안돼요. 저는 불행할 수밖에 없어요’ 라고 합니다. 그러면 저는 ‘그래? 그러면 계속 불행해라’ 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자기가 좋아서 불행하겠다는데 어떡하겠어요?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10번을 ‘저는 불행합니다’ 라고 해도 ‘아니야. 넌 행복할 수 있어’ 라고 하시겠지만, 저는 한 3번밖에 안 들어줘요. (모두 웃음) 

 

우리가 부처님 오신 날을 기리는 이유는 첫째, 종교로서의 불교 문화 행사를 하는 것이고, 둘째, 이 날을 기해서 우리가 그분의 가르침을 되새기기 위함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우리가 행복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고, 우리는 누구나 다 그 길을 갈 수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즉문즉설에서 여러분들이 저에게 질문을 할 때 수많은 이유를 대며 괴롭다고 아우성을 쳐도, 심지어 많은 사람들이 듣고 ‘저건 진짜 괴로울 일이겠다’ 해도 사실은 괴로울 일이 아닙니다. ‘저 정도라면 정말 괴롭다는 생각이 굳어질 만하다’, 즉 ‘사로잡힘이 심하다’ 라고 할 순 있겠지만요. 예를 들어, 꿈에 뱀을 보고 놀란 사람한테는 ‘에이, 그 정도가 뭐’ 이러지만, 강도한테 쫓기는 꿈을 꾼 사람한테는 ‘아, 그건 좀 겁났겠다’ 이러는 수준인 겁니다. 그러나 눈을 뜨면 큰 꿈을 꿨든 작은 꿈을 꿨든, 악몽을 꿨든 길몽을 꿨든, 그 눈 감은 상태는 아무 의미가 없는 겁니다. 꿈의 종류만 다를 뿐 다 같은 꿈일 뿐이에요. 

 

그래서 여러분들은 스님을 보고 ‘스님은 사람들의 온갖 얘기를 듣고 어떻게 저렇게 다 답을 할 수가 있을까?’ 할지 몰라도, 저는 답을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면 즉문즉설을 못 해요. 제가 무슨 재주로 정답을 다 말할 수 있겠어요? 저는 계속 ‘눈 떠라’ 하는 얘기만 하는 겁니다. ‘강도 만났다’ 해도 ‘눈 떠라’, ‘마누라하고 헤어졌다’ 해도 ‘눈 떠라’, ‘애가 죽었다’ 해도 ‘눈 떠라’, 계속 ‘눈 떠라’ 하는 소리밖에 안 하는 겁니다. 그래서 눈을 뜨면 마치 스님이 해결해 준 것처럼 말하고, 눈이 안 떠지면 ‘너하고 얘기해 봐야 소용도 없네’ 하는 겁니다. (모두 웃음) 

 


 

그러니까 그 사람이 눈을 뜨는 것하고 저하고는 아무 관계가 없어요. 사실은 자기 복이에요. 눈을 뜨면 그 공덕이 자기한테 있는 것이고, 못 뜨면 공덕이 없는 것이고요. 이 ‘기막힌 소식’을 우리에게 전해 주신 분이 부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그분이 태어나신 오늘을 기리는 것입니다. 과학적으로 역사적으로 연구해서 진짜 부처님이 태어나신 날이 오늘인지 내일인지 따지는 게 중요한 게 아니고, 오늘 우리가 이 날을 기념하면서 그 가르침으로 돌아가는 게 중요합니다.”

 

부처님오신날을 기념하는 진정한 의미는 바로 그분의 가르침을 올바르게 되새기기 위함이라는 말씀이 오래도록 가슴에 남았습니다. 

 

2부 법회에서도 강생찬탄, 욕불의식, 마정수기, 탄생선언, 발원문 낭독, 천도재 순서로 행사가 이어졌습니다. 

 

특히 2부 법회에서는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온 부모들이 많았습니다. 아이를 끌어 안은 채 아이가 스님으로부터 마정수기를 받게 했는데, 스님을 바라보는 아이들의 표정이 무척 재미있었습니다. 좋아서 활짝 웃는 아이, 인상을 찌푸리는 아이, 혓바닥을 내미는 아이 등등 표정도 각양각색이였습니다. 

 


▲ 욕불의식

 

2부 법회가 끝나자 점심 식사 시간을 가졌습니다. 초파일날 절에 오면 꼭 먹고 가야 하는 음식이 있죠. 바로 비빔밥입니다. 

 


▲ 점심시간에 제공된 비빔밥

 

공양간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많은 분들의 정성과 노고 덕분에 비빔밥은 수백개가 미리 셋팅이 되었고, 법회가 끝나자마자 앞마당으로 나온 대중들은 한 그릇씩 들고 삼삼오오 모여서 마당에 펼쳐진 돗자리에 앉아 맛있게 식사를 했습니다. 

 


 

봄햇살이 따뜻하게 비치는 가운데 오랜만에 만난 도반들과 정겨운 이야기꽃이 곳곳에서 피었습니다. 

 


▲ 1000개가 넘는 그릇을 설거지 하고 있는 봉사자들 

 

한편 점심 식사가 제공되고 있는 앞마당 한편에서는 정토회 산하 단체들에서 마련한 다양한 이벤트 부스가 펼쳐졌습니다. JTS는 기아질병문맹퇴치 모금활동을, 좋은벗들은 신한촌역사회복재건 기금마련 홍보를, 에코붓다에서는 환경 상품 판매를, 정토출판에서는 스님의 책 판매를, 대학생정토회에서는 인도전통차 짜이 판매와 선재수련 홍보를 하며 대중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 안간힘을 쏟았습니다. 

 


▲ 대학생정토회 작은짜이집 부스

 


▲ JTS의 기아질병문맹 퇴치 모금활동 부스

 

더욱이 3부 법회 참석자들이 법회를 듣기 위해 몰려들기 시작하면서 정토회관 앞마당은 한 때 시장통을 방불케 하기도 했습니다. 

 

12시가 넘어서 2부 법회가 끝났는데, 스님은 휴식 시간을 이용해 점심 식사를 한 후 곧바로 오후 1시부터 3부 법회에 참석했습니다. 3부 법회는 저녁반에 나오는 정토회 회원들을 대상으로 열렸습니다.  

 

3부 법회에서도 스님의 봉축 기념법문이 이어졌습니다. 법문 내용은 1부, 2부와 대부분 비슷했지만 3부에서는 문제해결능력을 갖추는 것이 바로 부처님의 가르침이라는 말씀이 무척 인상적으로 다가왔습니다. 

 

“부처님께서는 6년의 용맹정진 끝에 길을 찾으셨습니다. 그 길은 욕망을 따르는 쾌락도 아니요, 그 욕망을 무조건 억제하는 고행도 아니요, 다만 그것을 알아차리고 지켜보는, 따라가지도 않고 거부하지도 않는 적정의 길, ‘중도’였습니다. ‘중도’란 중간이라는 개념이 아니에요. 그 길을 통해서 일체 번뇌로부터 벗어나 자유와 행복으로 들어서는 수행법이 중도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깨달음을 얻고 나서 ‘이것이 고뇌의 최후라 선언하노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 깨닫고 나서 세상을 보니까, 즉 눈을 뜨고 나서 보니까 사람들이 죄다 눈을 감고 헤매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눈 떠라’는 말씀을 하셨던 것이고, 그 말씀을 듣고 부처님을 따라서 눈을 뜬 사람들이 생겨 나면서 출가한 수행자가 있게 됐고, 재가한 수행자가 있게 됐습니다. 

 


▲ 부처님오신날 3부 법회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출가한 수행자는 다시 사제나 종교 지도자가 되고, 재가한 수행자는 다시 복을 비는 신자로 전락해서 불교가 다시 종교화 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의 본래 가르침으로 돌아가보자’ 라고 하면서 설립한 단체가 정토회입니다. 설립할 때 세 가지를 주창했어요. 바른 법을 구현해 보자는 취지로 ‘바른 불교’를 주창했고, 그것이 누구에게나 적용이 되어야 한다는 취지로 ‘쉬운 불교’를 주창했고, 그것이 우리의 일상 속에서 체험이 되어야 한다는 취지로 ‘생활 불교’를 주창했습니다.  

 

오늘 처음 오신 분, 손 한번 들어보세요. 이분들은 다들 종교 문화를 체험하러 오셨지요? (모두 웃음) 

 


 

이제 정토불교대학에 입학한 지 두 달 되신 분도 있을 거고, 1년 다닌 분도 있을 거고, 온갖 사람들이 여기 모였는데, 정토회에 다닌 만큼 또 배운 만큼 조금이라도 행복해지셨어요?”

 

“예.”

 

“대답 소리를 들어보니 신통치 않네요. (모두 웃음) 그런데 ‘스님, 제가 공부가 좀 됐습니까? 수행이 좀 됐습니까?’ 라고 묻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것은 남한테 물어볼 게 아니에요. 자기가 자기를 보고 ‘옛날보다 번뇌가 좀 적어졌다’, ‘화가 좀 줄었다’, ‘고민이 줄었다’, ‘사고가 나도 옛날처럼 그렇게 크게 방황하지 않는다’ 이렇게 여겨질 정도로 마음의 파도타기가 조금씩 잔잔해져 가면 공부가 되어가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 ‘수행 좀 된 것 같아요?’라고 물으면 당연히 답은 ‘안 됐다’가 되는 겁니다. 자기 점검도 자기가 못 하는데 수행이 됐을 리가 있겠어요? (모두 웃음) 

 


 

불교니 기독교니, 종교니 과학이니, 승이니 속이니, 어느 종파니 하는 건 구시대의 얘기로서 더 이상 유효하지가 않아요. 부처님 당시에 브라만이니 크샤트리아니 바이샤니 수드라니, 남자니 여자니 하는 것들이 있었지만, 부처님 법 안으로 들어오면 아무 의미가 없어졌듯이, 새로운 시대에는 서로 다르다고 칸막이 치고 논쟁해 봐야 별로 평가해 주지 않을 겁니다. 실제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야 평가해 줄 거예요. 여러분들이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다녀봐야, 박사학위를 따봐야, 암기 능력만 길렀지 문제해결능력은 길러지지 않았잖아요. 단적인 예를 들어 볼까요? 결혼해서 한 이불 밑에 20년을 산 사람들끼리 문제해결을 못 해서 저한테 묻거든요. 창피한 일 아니에요? (모두 웃음) 자기가 낳아서 키운 애하고 대화가 안 돼서 괴롭다고 저한테 물어요. 저는 그 남편 얼굴도 못 봤고, 그 애 얼굴도 못 봤는데요. (모두 웃음) 

 


 

그러니까 지금까지 배운 것은 지식을 쌓는 데만 그친 거예요. 불교마저도 지식으로 삼으니까요. 그런데 지식은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그 어떤 사람이 알고 있는 답보다도 더 유용한 답을 얻을 수 있잖아요. 중요한 것은 그 지식을 이용해서 문제를 해결해야 되는 거예요. 우리 사회가 시끄러운 것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기 때문이에요. 사람이 만나면 갈등이 생기고, 어떤 일에든 이해관계가 상충되는 법이지요. 남북 간에도 그렇고, 한일관계도 그렇고, 국내문제도 그렇고, 가정문제도 그렇고, 세대차이가 생기는 이유도 다 견해가 상충되기 때문인데, 그걸 해결할 능력이 없으니까 사회가 시끄러운 겁니다. 어릴 때부터 그런 문제해결능력을 길러줘야 되는데, 그게 전혀 안 되고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부처님은 지식을 말씀하신 적이 없어요. 팔만대장경의 내용도 수많은 지식을 가르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고뇌의 본질을 꿰뚫어보고, 그 원인을 파악해서 해결법을 찾고, 그 해결법을 실천할 때 바로 해탈과 열반으로 나아갈 수가 있다는 내용이거든요. 그 원리가 사성제라고 하는 고집멸도(苦集滅道)입니다. 문제가 있을 때 관점을 어떻게 가져야 되느냐, 치우치지 않는 균형 감각을 유지해야 된다는 것이 ‘중도’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하신 최초 설법의 핵심은 첫째, 중도예요. 수행자는 치우치면 안 된다. 편견을 가지면 안 된다. 중도를 견지해라는 것입니다. 둘째, 사성제예요. 셋째, 사성제의 마지막인 도성제에 해당하는 ‘팔정도’입니다. 실천 방법에는 8가지 바른 길이 있으니 그 길을 가라는 것입니다. 부처님 첫 설법의 순서가 그랬습니다. 

 


 

그런데 현대사회는 이 법이 정말 유용한 시대입니다. 시절인연이 도래한 겁니다. 서구 유럽에서는 불법이 새로운 희망으로 부상하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아직 아시아에서는 종교로서의 불교, 문화로서의 불교의 잔재가 많이 남아있습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문제해결능력으로서의 불교를 체험한다면, 여러분들은 한국 안에서 뿐만 아니라, 또 자신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세계를 위해서 큰 역할을 할 수가 있을 겁니다. 그러니 수행을 열심히 하셔야 합니다. 아시겠죠?”

 

“예.”

 

“여러분들이 오늘처럼 이렇게 문화행사를 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갔으면 해요. 본질을 딱 꿰뚫어서 ‘내가 약간 들떠서 우왕좌왕하고 다녔구나. 그러니 오늘을 기해서 부처님 오신 뜻을 다시 한 번 되새기자’ 이런 자세를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부처님 오신 날은 부처님의 생일 아닙니까? 그지요? 그런데 여러분들도 이 법의 이치를 알고 행하게 되면 다 부처가 될 수 있어요. 여러분들이 부처가 되면 오늘은 여러분들의 생일도 되는 거예요. 그래서 오늘 제가 여러분의 생일을 미리 축하드립니다.” (모두 웃음과 박수)

 


 

스님의 갑작스런 생일 축하 인사에 대중들은 유쾌한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오늘은 부처님의 생일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수행 정진을 해서 해탈하면 우리의 생일이기도 하다는 말씀 속에서 결국 중요한 것은 나의 수행이라는 가르침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이어진 욕불의식과 마정수기에서도 많은 대중들이 아기 부처님을 목욕시키고 스님으로부터 마정수기를 받고 난 후 기쁜 마음이 되어 돌아갔습니다. 

 


 

오후 4시부터는 목사님, 신부님, 수녀님, 천도교 교령님 등 이웃종교인들과 국회의원, 시장, 시민단체 관계자, 언론인, 드라마작가, 연예인 등 사회 인사들이 대거 참여한 가운데 4부 법회가 열렸습니다. 그리고 저녁 7시부터는 청년들이 청년들에 맞는 방식으로 특별히 준비한 5부 법회가 열렸고요. 4부 법회와 5부 법회 소식은 다음 이야기에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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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토회에서는 불기 2560년 부처님오신날을 맞이하여 전국 각 법당에서 연등 접수를 받습니다.  이 세상 모든 이들이 평화롭고 행복하기를 발원하며 연등을 밝혀 보세요. 

[전국 각 법당 연등 접수 안내] http://goo.gl/E8tZsC




전체댓글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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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사

고맙습니다_()_

2016-05-17 20:41:03

오유진

감사합니다~~♡♡

2016-05-17 01:32:10

깨달음

고뇌의 본질을 꿰뚫고 그 원인을 파악하여 해결법을 찾고 해결법을 실천해 나감으로서 해탈과 열반으로 나아갈수 있다. 되새기게 됩니다. 부처님오신날. 우리들의 미래생일을 축하합니다^^

2016-05-17 01:2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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