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6.5.13 부처님오신날 전야제 및 점등식


 

안녕하세요? 오늘은 부처님오신날 전날입니다. 스님은 서울정토회 부처님오신날 전야제 및 점등식에 참여해 기념 법문을 한 후 대중들과 함께 부처님이 이 땅에 오심을 함께 기뻐했습니다. 

 

서울 정토회관은 아침 일찍부터 많은 봉사자들이 모인 가운데 내일 있을 부처님오신날 행사 준비를 위해 바쁜 하루를 보냈습니다. 부처님오신날은 연중 가장 많은 대중들이 법당을 찾는 날이기 때문에 구석구석 청소도 하고, 비빔밥에 쓰일 음식 재료들도 미리 썰어 놓고, 큐시트에 따라 봉축법요식 리허설도 해보는 등 아주 분주한 모습이었습니다. 

 

저녁 7시부터는 다함께 예불을 올린 후 부처님오신날 전야제 프로그램이 시작되었습니다. 먼저 전야제의 시작을 알리는 여는 공연이 있었습니다. 괴로운 중생이 법을 만나 참자유를 얻게 되는 과정을 ‘승무’로 아름답게 보여주었습니다. 고깔을 쓰고 흰 장삼에 붉은 띠를 어깨에 매고 두 팔을 펄럭이자 대중들은 감탄사와 함께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 

 


▲ 승무를 보여주고 있는 성균관대 김원지님

 

이어서 봄 불교대학 토요반, 가을 불교대학 금요일 2반, 경전반 저녁반, 공동체 상주대중, 저녁반 사회활동팀 등을 비롯해 다양한 팀들이 차례로 나와 자신들의 장기를 보여주었습니다. 

 

경전반 저녁반은 금강경의 사구게를 노래 속에 넣어서 불러서 큰 웃음을 자아내었고, 공동체 상주대중은 ‘터’ 노래를 합창으로 불렀고, 가을 불교대학 금요일 2반은 ‘사랑의 트위스트’ 노래를 정토회를 만나 변화된 자신들의 삶을 개사해서 불러서 큰 박수를 받았습니다. 

 


 


 


▲ ‘사랑의 트위스트’를 개사해서 부른 가을 불교대학 금요 2반

 

“도반과 함께 불법을 배웠던 ♬ 잊지 못할 사랑의 정토불대

 불법 사랑에 정토를 누비던 ♬ 추억 속의 사랑의 정토불대 

 정토회~ 정토회~ 정토회~ 108배 하면서~ 난생 처음 불교를 알았고 

 정토회~ 정토회~ 정토회~ 108배 하면서~ 수행 속에 빠져들었던

 사랑했던 모든 도반들 ♬ 잊지 못할 추억의 정토도반”

 

다소 어눌하고 우스꽝스러운 춤동작이 나오거나 음정과 박자가 전혀 맞지 않는 상황이 간간히 연출되자 대중들은 박장대소를 했습니다. 스님도 공연을 지켜보며 연신 웃음을 띠었습니다. 

 


 

팀별 장기자랑 시간이 모두 끝나자, 스님에게 평가 소감을 들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사회자가 스님에게 소감을 묻자 스님은 웃으면서 짧게 얘기했습니다. 

 

“수준이 너무 높아서 평가를 못하겠어요. 정토회 회원들이 이렇게 수준 이하인 줄은 처음 알았어요.(모두 웃음) 

 


▲ 장기자랑을 지켜본 소감을 말하고 있는 스님

 

오늘 전야제를 마련한 취지는 이렇습니다. 서울정토회의 경우 초파일에는 아침 7시부터 밤 10시까지 5회의 법요식이 진행되기 때문에 정토행자들끼리 친목을 도모할 시간이 없잖아요. 왜냐하면 찾아온 손님들 접대하느라 하루종일 바쁘니까요. 그래서 초파일 당일에는 손님들을 위해서 서비스를 하지만, 그 전날에는 우리들끼리 친목을 도모하자고 이 시간이 마련된 겁니다. 

 

그런데 지금 보니까 첫째, 대중들의 참여가 너무 적네요. 이런 날은 대중들이 많이 모여서 법당이 발 디딜 틈이 없고, 앞마당까지 사람들이 미어터져야 하는데 말이에요. 둘째, 장기자랑을 할 때도 한두명이 나와서 노래를 부르는 팀이 많던데, 불교대학 한 반이 50명이라면 적어도 20명은 같이 나와서 뭔가를 보여줘야죠.(웃음) 

 


 

올해 처음 시도한 것이니까 충분히 시행착오를 할 수 있겠다 싶긴 해요. 그런데 여러분들도 정토회에 나오고 계시니까 잘 알겠지만, 프로그램이 요일별로 다르고, 시간대별로 다르다보니 정토회에 누가 나오는지 서로 얼굴도 잘 모르잖아요. 그래서 내년에는 주간반, 저녁반, 불교대학, 경전반, 청년국, 대학생회, 공동체, 대중부, 이렇게 다양한 부서에서 각기 나와서 서로 소개도 하면서 정토회에 대해 좀 더 충분히 알 수 있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다 싶습니다.”

 

장기자랑을 보면서 그냥 웃기만 했는데, 스님 말씀을 듣고 나니 이렇게 즐기는 것 뿐만 아니라 내년에는 다양한 부서에 소속된 사람들을 조금 더 알아가는 시간을 가져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토회가 점점 커지다 보니 이런 날이 아니면 서로 소개를 할 수가 없으니까요. 

 

드디어 시상식이 열렸습니다. 상품은 코골이 방지 베개가 각각 주어졌습니다. 상품이 너무 소박해서 아쉬움이 남긴 했습니다. 우수상은 봄경전반 토요반이 받았고, 최우수상은 공동체 상주대중이 받았고, 대상은 양희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멋지게 부른 봄불교대학 화요반이 받았습니다. 스님은 각 수장자들과 기념사진도 흔쾌히 찍어 주었습니다. 

 


▲ 대상을 수상한 봄불교대학 화요반

 

이어서 8시부터는 잠시 후 마당에서 있을 점등식을 앞두고 스님에게 기념 법문을 청해 들었습니다. 청법가와 입정이 끝나자 스님이 법상에 올라와 점등식을 하는 의미에 대해 설법을 해주었습니다. 

 

“내일이면 불기 2560년 부처님오신날이 됩니다. 그러니 오늘은 불기 2559년의 마지막 날이 되는 셈입니다. 

 


 

원래 점등식은 부처님오신날에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농촌문화가 도시문화로 바뀌기도 했고, 특히 서울정토회는 마당이 넓지 못한데다 내일 법회가 한 번만 있는 게 아니라 오후까지 다섯 번이나 있다 보니까 저녁에 따로 점등식을 하기가 어렵게 됐습니다. 아침에 법회를 들으러 오신 분들이 법당에서 저녁까지 머물 장소도 따로 없고요. 그래서 원래는 내일 저녁에 해야 될 점등식을 오늘 저녁으로 당겨서 하게 됐습니다. 

 

‘점등’이라는 것은 ‘불을 밝힌다’는 뜻인데, 부처님오신날을 기념해서 왜 불을 밝힐까요? 불은 지혜를 상징합니다. 우리들의 모든 고뇌는 무지(無知), 다시 말해 어리석음, 알지 못함으로부터 비롯됩니다. 그래서 모든 고뇌의 근본적인 원인을 ‘무명(無明)’이라고 해요. ‘무명’이란 밝음이 없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의 고뇌, 즉 번뇌를 어둠에다가 비유하고, 깨달음, 즉 지혜를 빛에다가 비유하게 됐습니다. 아무리 어둡더라도 불을 켜면 환해지고, 천 년 동안 어두웠던 동굴도 불을 켜면 일순간에 밝아지듯이 세세생생 어리석은 중생으로 육도를 윤회하다가도 깨달으면 즉시 부처가 되어 모든 고뇌가 사라진다는 뜻이에요. 그래서 우리가 촛불을 켜고 불을 밝히는 것입니다. 불을 밝힐 때 그냥 밝히는 것이 아니라, ‘이 불을 밝히는 것은 내가 어리석음을 깨우쳐서 지혜를 증득하고자 함입니다’ 이런 원을 세우면서 불을 밝힙니다. 

 

불을 켤 때는 사각등도 있고 팔각등도 있고 온갖 등이 있는데, 특별히 왜 연꽃 모양의 등을 더 선호할까요? ‘연등행렬’이라고들 말하잖아요. 그것은 연꽃이 대승불교의 보디사트바(Bodhisattva), 보살(菩薩)을 상징하는 꽃이기 때문이에요. 범부중생은 더러움에 물드는 사람이고, 성문(聲聞), 연각(緣覺)은 더러움에 물들지 않으려고 더러움으로부터 멀리 떠나 있는 사람들, 다시 말해 세속으로부터 멀리 떠나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보살은 이 세속에 와서 범부중생들 속에 함께 있지만 더러움에 물들지 않아요. 그것은 마치 연꽃이 진흙 속에 뿌리를 박고 흙탕물 속에서 피어나지만 그 진흙에 물들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연꽃은 보살과 같다’ 해서 연꽃을 대승불교의 상징으로 기리게 됐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수행은 세속을 떠나 더러움이 없는 곳에 가서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더러움 속에서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 것입니다. 욕설하는 사람과 같이 어울려 살지만 욕설하지 않고, 화내는 사람하고 어울려 살지만 화내지 않고, 욕심내는 사람하고 같이 어울려 살지만 욕심내지 않고, 어리석은 사람들과 같이 어울려 살지만 어리석지 않고, 게으른 사람과 같이 어울려 살지만 게으르지 않고 정진하는 것이에요. 오히려 게으른 사람과 같이 살면서 게으른 사람을 부지런하게 만들고, 욕심내는 사람과 같이 살면서 그 욕심을 버리도록 만들고, 성내는 사람과 같이 살면서 성내지 않게 만드는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보디사트바입니다. 

 

그래서 보디사트바의 길을 가고자 한다는 뜻에서 연꽃 모양의 등을 다는 것이고,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된다는 뜻에서 불을 밝히는 것입니다. 성문, 연각의 길을 통해서 부처가 되고자 하는 게 아니라 보살의 길을 통해서 부처의 길을 가고자 하기 때문에 연등을 밝히는 거예요. 연등을 밝히면서 ‘세세생생 보살도를 행하겠다, 이 어리석음을 깨우쳐서 부처를 이루겠다’ 이렇게 원을 세우는 것입니다. 

 

연등 불을 켜는 것에 관해서는 부처님 당시의 이야기라고 하면서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가난한 여인의 등불’ 이야기가 있어요. 부처님이 쉬라바스티(사위성)에 왔을 때 그 나라의 왕인 프라세나짓 왕은 기원정사에다가 많은 불을 켜서 밝혔습니다. 부처님은 건물에 계시는 게 아니라 숲에서 머무르고 거기서 주무셨기 때문에, 밤이 되면 숲이 어두우니까 그 어둠을 밝히기 위해서 숲의 나뭇가지에 많은 불을 켰어요. 스님들이 1,250명이나 그 숲에서 거주하니까 한 사람당 등 하나씩만 켜도 1,250개를 켜야 하잖아요. 많은 등을 켜고 또 그 스님들에게 공양을 올렸습니다. 그러니 세상에서 칭찬이 자자했죠. 프라세나짓 왕이 과거 생에도 이렇게 큰 공덕을 지었기 때문에 지금 이 생에서 왕이 됐고, 지금도 저렇게 큰 공덕을 지으니까 다음 생에도 또 큰 과보를 받겠다는 소문이 났어요. 

 


 

그런 소식을 듣고 품을 팔아 먹고 사는 한 가난한 여인이 자기를 돌아보았어요. 자기는 과거 생에 베푼 게 없기에 이생에 공덕을 받지 못해서 가난하게 살고 있고, 또 이생에 가난하다 보니까 나 먹고 살기도 바쁜 나머지 작은 공덕도 하나 짓지 못하니 다음 생에 또 가난하게 살 수밖에 없는 게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하니까 너무 자신이 한심했어요. 그래서 ‘나도 먹고 살기 힘들긴 하지만, 미래세에 내가 복된 사람으로 살려면 이생에 내가 어렵더라도 공덕을 쌓아야겠다’ 이렇게 큰마음을 먹고 오늘 하루 종일 일해서 얻은 동전 두 닢을 가지고 기름집에 가서 기름을 달라고 했어요. 평소라면 그 돈으로 한 끼 식사를 구할 텐데 오늘은 굶기로 한 겁니다. 거지가 기름을 달라니까 기름집 주인이 ‘너는 밥이 필요할 텐데 기름이 왜 필요하냐?’라고 물었겠죠. 그랬더니 여인이 ‘내가 이 기름을 사서 부처님 처소에 불을 밝히고 싶다. 등을 공양으로 올리고 싶다’라고 대답했어요. 기름집 주인이 이 말을 듣고 감동해서 기름을 값어치보다 배로 줬어요. 그래서 작은 그릇에 기름을 담고 심지를 심어서 불을 밝히러 가보니까 왕이 이미 좋은 등불을 많이 켜놨기 때문에 자기 등불은 거기다 덧붙일 것도 없었어요. 그래서 숲의 맨 가장자리, 끝부분에 불을 밝히지 않은 곳이 있어서 거기다가 작은 등불을 하나 밝혀놓고는 두 손을 모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이 등불을 부처님께 올린 공덕으로 나도 다음 생에 성불하게 하여지이다.’

 

이렇게 발원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나도 다음 생에는 부자가 되게 해주십시오’, ‘나도 다음 생에는 왕이 되게 해주십시오’, ‘나도 다음 생에는 예쁘게 태어나게 해주십시오’ 이렇게 복을 비는 기도를 하는데, 이 가난한 여인은 그런 복을 비는 기도를 한 게 아니라 ‘깨달음을 얻게 하여지이다’ 이렇게 발원을 했어요. 그리고 돌아갔습니다.

 

이윽고 밤이 깊었어요. 부처님과 많은 수행자들이 잠을 자야 하기 때문에 켜놓았던 등불을 전부 껐습니다. 수많은 등불이 켜져 있을 때는 이 작은 등불이 보이지 않았는데, 모든 등불을 다 끄고 보니까 저 숲 변두리에 작은 등불이 하나 켜진 게 보여요. 불이 켜져 있으면 부처님이 주무시지 않으니까 저 등불도 꺼야 되겠다 싶어서 아난다가 가서 그 등불을 끄려고 했는데, 입으로 불어도 안 꺼지고 부채로 부쳐도 안 꺼지는 거예요. ‘이게 왠 일인가’ 해서 불을 끄려고 애쓰고 있는데 부처님이 오셔서 말씀하셨습니다.

 

‘아난다야, 부질없는 짓을 하지 마라. 그 등불은 비록 작지만 큰 공덕이 깃들었기에 너의 힘으로는 끌 수가 없단다. 그 등불을 켠 여인은 그 등불을 켠 공덕으로 다음 생에 부처를 이루리라.’

 

이렇게 부처님이 수기(授記)를 주셨습니다. 여러분들도 이제 내일 욕불의식한 공덕으로 ‘다음 생에 부처를 이루리라’는 수기를 받게 될 거예요. 

 


 

가난한 여인이 등불을 켠 공덕으로 수기를 받았다는 소문이 금방 퍼져서 프라세나짓 왕의 귀에도 들어갔어요. 그래서 프라세나짓 왕은 ‘그 여인은 작은 등불을 하나 켜고 다음 생에 부처를 이루리라는 수기를 받았다니 수천 개의 등불을 하루도 아니고 몇날 며칠을 켰고, 거기다가 공양까지 올린 나의 공덕은 수학적으로 계산하면 그 여인이 등불을 켠 공덕의 수천, 수만, 수십만, 수백만 배가 될 게 아닌가? 그러면 나는 내일 성불할까? 모레 성불할까?’ 이런 생각이 든 거예요.(모두 웃음) 그래서 급히 마차를 타고 달려서 부처님 처소로 왔어요. 부처님께 인사드리고 부처님께 여쭸어요. 요즘 말로 하면 ‘나는요?’ 이랬단 말이에요. ‘나는 언제 성불합니까?’ 이렇게 묻자 부처님께서 이렇게 답하셨습니다.

 

‘대왕이시여, 이 도는 하나를 주고도 백천을 얻을 수도 있고, 백천을 주고도 하나를 얻지 못하기도 합니다.’

 

이 말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하나의 인연을 심고 백천의 과보를 받을 수도 있고, 백천의 인연을 심고도 하나의 과보를 얻기 어렵다는 것인데, 도(道)라는 게 이렇다는 거예요. 등불 개수로 따지면 왕은 가난한 여인보다 백천 배 많은 공덕을 쌓았다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자기가 가진 재산의 몇 퍼센트를 등불 공양하는데 썼느냐를 따지면, 왕은 1%도 안 썼을 겁니다. 그런데 이 여인은 전 재산을 썼어요. 이렇게 계산해보면 이 여인이 베푼 공덕은 왕이 베푼 것에 비교가 될 수 없는, 백천 배의 공덕을 쌓았다고도 볼 수가 있겠죠. 수치로 계산하더라도 뭘 기준으로 계산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진다는 거예요. 

 

가난할 때는 베풀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가운데 베푸는 것이야말로 많이 있어서 남는 걸 베푸는 것과는 수행 차원에서 비교할 바 없는 큰 공덕이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양으로만 계산할 게 아니라 우리가 어떤 상태에서도 베풀 수 있어야 합니다. 자기가 어려운 상태에서도 남을 위해서 베푸는 것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에요. 한갓 짐승도 자기가 배부르면 남은 음식을 다른 짐승이 먹어도 상관하지 않습니다. 남는 걸 베푸는 것은 짐승도 하는 일이라는 거예요. 그러나 짐승은 자기가 배고픈데도 자기 음식을 다른 이에게 주는 법은 절대 없습니다. 끝까지 싸우다가 죽을 것 같으면 도망갔으면 갔지 그냥 주는 법은 없어요. 사람만이 자기가 배고픈데도 배고픈 이를 돕고, 자기가 힘든데도 더 힘든 사람을 도와요. 이것이 인간이 짐승과 다른 점이고 소위 말해서 선을 닦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이 가난한 여인의 등불을 생각해봐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등불을 밝히는 것도 바로 이런 마음으로 밝혀야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도 꼭 있어서 베푸는 것이 아니라 형편이 어려운 가운데서도 베푸는 마음을 내길 바랍니다. 

 


 

부처님오신날을 맞아서 우리는 이렇게 행복하게 보내지만, 지구상에는 아직도 고통받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먹을 것이 없어서 굶어죽는 사람들이 북한 동포들을 비롯해 많이 있고, 치료받지 못해서 병들어죽는 사람이 있고, 제때 학교도 다니지 못하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고뇌 속에 사는 사람들이 있고, 고통 속에 사는 사람들도 있어요. 우리는 이런 사람들에게도 작은 행복을 나눠가질 수 있어야 해요. 

 

그래서 첫째, 배고픈 사람이 배불러지고, 병든 이가 쾌차하고, 배우지 못한 아이들이 배움을 성취하고, 고뇌 속에 잠 못드는 사람들이 그 무거운 짐을 내려놓을 수 있도록 생존을 보장하는 재물 보시를 행해야 합니다. 둘째, 정신적인 고뇌를 덜어주는 전법의 법보시를 행해야 합니다. 이렇게 행하는 것이 부처님오신날의 진정한 의미이고, 오늘 등불 공양을 하는 본래 의미입니다. 이런 뜻을 새기면서 오늘 점등식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점등식의 의미를 자상하게 알려준 스님에게 대중들은 큰 박수로 감사의 마음을 보냈습니다. 

 


 

특히 하나를 주고도 백천을 얻을 수 있고, 백천을 주고도 하나를 얻지 못하기도 하다는 부처님의 말씀이 오랫동안 가슴에 남았습니다. 작은 일을 행하더라도 어떤 마음으로 하느냐가 얼마나 중요한지 실감나게 다가왔습니다. 

 

이렇게 법문을 모두 마친 후 대중들은 ‘석가모니불’을 염하며 앞마당으로 나가 탑돌이를 하였습니다. 탑 앞의 큰 연등 주위에 원을 그리며 대중이 모두 자리하자 다함께 ‘보살의 서원’을 낭독했습니다. 

 


▲ 점등을 하기 전, ‘보살의 서원’을 낭독하고 있는 대중들

 

이어서 장엄한 북소리에 맞춰 가난한 여인의 등불을 상징하는 작은 등불을 들고, 인도옷 사리를 입은 한 여성이 천천히 걸어나와 가운데의 큰 연등에 불을 밝혔습니다. 

 


▲ 연등에 불을 밝히는 여성

 

그러자 앞마당에 줄지어 설치된 수백 개의 오색연등과 탑에도 일제히 불이 들어와 주변을 휘황찬란하게 밝혀 장관을 이루었습니다. 대중들은 크게 환호하며 박수를 쳤습니다. 

 


▲ 점등이 되는 순간 환호하는 대중들

 

이어서 스님과 대중들은 환하게 밝혀진 연등을 바라보며 두 손 모아 합장한 채 ‘발원문’을 다함께 낭독했습니다. 

 

“부처님오신날을 맞이하여 이곳에 모인 저희들은 부처님께서 이 땅에 나투신 큰 뜻 다시 새겨 이 시대 이 땅에 부처님의 뜻 꽃피우길 다짐하면서 청정한 마음으로 정성 기울여 참회 발원하오니 대자대비로 저희를 보살펴 주시옵소서. 

 


▲ 발원문을 함께 낭독하고 있는 스님

 

오늘 부처님오신날 헌공 예불한 인연공덕으로 배고픈 자는 배불러지고, 병든 이는 속히 나아지며, 어린 아이들은 배움을 성취하고, 가난한 자는 부유하여지고, 외로운 자는 평안하여지며, 방황하는 이는 바른 길로 나아가고, 어둠 속을 헤매는 자는 빛을 찾게 하고, 단명한 이는 장수하여 시방삼세의 유정 무정 모두가 복덕이 구족하고 지혜가 원만하게 성취토록 하여 주시길 간절히 발원하옵니다...” 

 

정성을 기울여 발원을 하고 나니 아직도 이 세상 곳곳에서 고통받고 있을 많은 이들이 떠올랐습니다. 우리들의 이 간절한 마음이 굶주리는 북한 동포들, 질병과 문맹의 고통 속에 살고있는 제3세계의 아이들, 정신적으로 방황하는 많은 이들에게 작은 희망이라도 될 수 있기를 기원해 봅니다. 

 


▲ 점등식이 열리고 있는 서울 정토회관

 

사홍서원으로 점등식 행사를 모두 마쳤습니다. 끝으로 ‘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를 함께 불렀습니다. 남북관계가 악화 일로를 걷고 있는 상황이어서 그런지 어느 때보다 평화적인 통일을 바라는 마음이 간절해졌습니다. 

 


▲ 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 합창

 

행사가 모두 끝나자 떡과 방울토마토가 간식으로 나왔습니다. 대중들은 간식을 먹으며 오랜만에 만난 도반들과 정겹게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고, 또 오색빛깔로 법당 앞마당을 수놓고 있는 연등 아래에서 삼삼오오 모여서 기념사진을 찍기도 했습니다. 모두들 밝게 웃는 모습이 어린 아이처럼 해맑아 보였습니다. 

 


▲ 기념사진을 찍고 있는 대중들

 

내일은 불기 2560년 부처님오신날입니다. 스님은 아침 7시 활동가들과 함께하는 1부 법회를 시작으로, 아침 10시 주간반을 대상으로 한 2부 법회, 오후 1시 저녁반을 대상으로 한 3부 법회, 오후 4시 이웃 종교인. 사회인사들과 함께하는 4부 법회, 저녁7시 청년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5부 법회까지 하루 종일 법당을 찾아오는 대중들을 위해 기념법문을 할 예정입니다.

 

부처님오신날 전야제 및 점등식 풍경을 영상에 담아 보았습니다. 감동적이었던 순간을 영상으로 생생하게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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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토회에서는 불기 2560년 부처님오신날을 맞이하여 전국 각 법당에서 연등 접수를 받습니다.  이 세상 모든 이들이 평화롭고 행복하기를 발원하며 연등을 밝혀 보세요. 

[전국 각 법당 연등 접수 안내] http://goo.gl/E8tZsC




전체댓글 30

0/200

스탈

감동적이에요.. 감사합니다 스님. 가난한 여인의 등불처럼 불 밝히는 사람 되겠습니다~

2016-05-17 09:09:35

한지은

스님 항상 감사합니다. 오늘도 평안하고 따스한 날 되시길 바랍니다..^^

2016-05-16 16:07:11

김희선

현장소식을 전해주셔서 덕분에 귀한 법문들을수 있어 너무 감사합니다^^가난한 여인이 공양올리는 마음으로 어려운 가운데서도 베푸는 사람이 되기를, 미래세에 부처를 이루기를 서원합니다

2016-05-16 08:3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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