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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지적장애인거주시설 애광원 식구들과 송광사와 순천만 국가정원으로 봄나들이를 다녀왔습니다.
2003년부터 시작된 애광원 김임순 원장님과 법륜 스님의 인연은 매년 봄과 가을 두 차례씩 거동이 불편한 거주인들의 바깥나들이를 지원해주는 모습으로 꾸준히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행사가 10여 년 이어지다 보니 이제 경남 지방의 웬만한 장소는 한번쯤 다녀온 터라 매번 나들이 계획을 세우기가 만만치 않습니다. 그래서 올해는 경상도 땅을 벗어나 전라남도 순천에 있는 송광사와 순천만 국가정원을 나들이 장소로 정했습니다.
오전 10시 30분, 송광사 주차장에 도착하니 날씨가 잔뜩 흐리고 간간이 가랑비까지 흩뿌려서 걱정부터 앞섰습니다. 하지만, 먼저 도착해 있던 정토회 경남지부와 마산정토법당에서 온 40명 가량의 봉사자들이 반갑게 스님을 맞이해 주었습니다.
같이 사진촬영을 하고 인사를 나누는데 봄에 입학한 정토불교대학 학생들이 제법 많았습니다. 스님이 웃으면서 “이제 정토회 온 지 두 달 밖에 안 된 사람들이 봉사는 할 줄 아나?” 하고 핀잔을 주니 봉사자들은 “초발심으로 더 잘 할 수 있습니다!”라고 씩씩하게 대답하며 자신감을 내비쳤습니다. 그러면서 스님은 “오늘은 원생들 중에서 중증 장애인들과 나들이를 하는 날이라 더욱 정신을 바짝 차리고 집중해야 한다”며 휠체어를 다룰 때 각별한 주의를 당부했습니다.
곧바로 애광원 식구들을 태운 버스가 도착하여 25명의 원생들과 김임순 원장님, 송우진 이사님, 그리고 9명의 선생님들이 버스에서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원생 한 명마다 봉사자 1~2명이 하루를 책임지는 친구로 배정되어 반갑게 손을 잡고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10여 년 간 매년 스님을 만나와서 그런지 이제는 스님을 보자마자 소리를 지르며 반가워 하는 장애인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몇몇 장애인들은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땅바닥에 드러누워서 봉사자들을 힘들게 하기도 했습니다. 사정을 알아보니 중증 장애인들은 거의 바깥나들이를 못하다보니 야외로 나가는 것 자체에 너무 들떠서 버스에서 내리기 싫어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라 합니다. 한참을 달랜 후 몇몇 원생들은 휠체어에 태운 후에야 겨우 송광사로 올라갈 수 있었습니다.
궂은 날씨에 버스를 타고 송광사까지 올라갈까 하다가 스님은 “그래도 절은 걸어 올라갈 때 제대로 느낄 수 있다”며 내려올 때 버스를 타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마음먹고 걷기 시작하니 마침 빗줄기도 점점 가늘어졌고 어느덧 우산을 접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송광사에 이르는 아름다운 계곡길과 상쾌한 편백나무 숲길을 제대로 느끼며 나들이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먼저 스님이 송광사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 주었습니다.
“이곳은 송광사입니다. 우리나라 사찰 중에서 중요 문화재가 가장 많이 있는 곳이에요. 국보가 4개, 보물이 21개나 있어요. 법정 스님이 머무셨던 불일암이 이 산 내에 있어요. 자, 그럼 한 바퀴 돌아보겠습니다.”
숲길을 한참 걷고 나니 일주문이 나타났습니다.
“지금 우리가 지나가는 곳이 일주문이예요. 세속 세계와 부처의 세계가 둘이 아니고 하나라는 뜻으로 일주문이라고 부릅니다.”
일주문을 지나자 척추당과 세월각이 나타났습니다. 이름만 들어도 생소한 이름인데, 스님은 이곳은 불교에서 천도재를 지낼 때 영가를 목욕시키는 곳이라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죽은 영가도 남녀 구분이 있나봐요. 척추당은 남자 영가의 관욕처이고, 세월각은 여자 영가의 관욕처입니다. 관욕이라는 것은 영혼을 목욕시켜서 깨끗하게 모신다는 뜻이예요.”
세월각을 지나자 애광원 식구들을 환영하기 위해 올해 새로 송광사 주지에 임명된 진화 스님과 교무국장 소임을 맡고 있는 정응 스님이 마중을 나와 주었습니다.
스님은 두 스님과 반갑게 인사를 나눈 후 애광원 식구들과 함께 단체사진을 찍었습니다.
“자, 여기서 사진 찍겠습니다. 카메라를 보세요. 빠이 빠이.”
원생들은 모두 각기 다른 곳을 보고 있었지만 모두들 오랜만의 나들이에 즐거워하는 모습이 역력했습니다. 원생들을 매일 돌보는 일을 하고 있는 한 선생님은 “오늘처럼 날씨가 궂으면 원생들이 정말 다운되거든요. 그런데 봉사해주시는 분들이 너무 잘해주시니까 이런 날씨에도 지금 굉장히 표정이 밝아요.”라고 놀라워하기도 했습니다.
사천왕문에 이르니 양 옆으로 무시무시한 표정을 한 네 명의 조각상이 원생들을 무섭게 했습니다. 스님은 웃으면서 가볍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저희는 지금 사천왕문을 지나고 있습니다. 하늘 나라 중에 첫 번째 하늘이 사왕천인데, 거기에서 동서남북을 각각 담당하는 네 분의 신이에요. 인도의 전설에 의하면 이 분들이 늘 인간 세상을 돌아보면서 나쁜 일을 한 사람은 벌을 주고, 좋은 일을 한 사람은 칭찬한다고 해요. 인도의 신들입니다.”
사천왕문을 지나니 계단이 나타났습니다. 원생들이 계단을 오르기가 쉽지 않아 보였습니다. 스님도 팔을 걷고 원생들의 손을 잡아주며 으라찻 힘을 주며 거들었습니다.
“자, 계단을 올라가겠습니다. 으라찻. 아이고, 잘 한다.”
스님의 따뜻한 목소리에 원생들은 기분이 좋아졌는지 소리를 “끼약” 하고 지르기도 했습니다.
이어서 교무 스님인 정응 스님이 대웅전까지 직접 안내도 해주었습니다. 한국 불교에는 삼보사찰이 있는데,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져있는 통도사가 불보사찰(佛寶寺刹)이고, 부처님의 가르침인 팔만대장경의 경판이 모셔져있는 해인사가 법보사찰(法寶寺刹), 그리고 한국불교의 승맥(僧脈)을 잇고 있다고 해서 송광사가 승보사찰(僧寶寺刹)이라고 합니다. 송광사가 승보사찰인 이유는 고려 때 보조 국사가 정혜결사를 통해 한국 불교의 전통을 확립했고, 그 이후에도 열다섯 명의 국사가 더 나와 그 전통을 면면히 이어왔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스님은 휠체어를 탄 김임순 원장님 곁에서 같이 걸으면서 송광사 경내의 문화재와 약사전, 지장전 등을 하나하나 설명해 주었습니다. 특히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있어서 지장보살이 무엇인지 처음 들어보는 원장님에게 재미있는 설명을 해주기도 했습니다.
“지장전은 지장보살을 모신 곳이에요. 지장보살이라는 분은 전설에 따르면 부처님이 돌아가실 때 ‘내가 없는 세상에 다음 부처님이 오실 때까지 지옥에 있는 중생들을 다 구제하라’는 명을 받고 지금도 지옥 중생을 구제하고 있는 보살이예요. 많은 사람들이 죽으면 지옥갈까봐 겁을 내잖아요. 그러나 지장보살이 다 구제를 해준다고 하니까 주로 영가를 천도하거나 죽은 사람을 위해 기도할 때 이 지장보살을 부릅니다.
그리고 지장보살은 ‘지옥 중생이 한 사람이라도 남아 있는 한 나는 부처가 되지 않겠다’라고 큰 원을 세운 분이예요. 그래서 우리는 죽어서 지옥갈까 걱정을 안 해도 되는 이유는, 나를 구제해줘야 저 분이 부처가 되기 때문입니다. 내가 지옥에 있는 한 저 분도 부처가 못 되니까 우리는 마음 놓고 살아도 돼요. 하하하.”(모두 웃음)
김 원장님도 스님의 설명을 듣고 크게 웃었습니다. 두 분은 종교를 뛰어넘어 어떤 이야기도 거리낌이 없이 나누었습니다.
다음은 약사전에 도착했습니다. 약사전에 대해서도 원장님이 생소해하자 스님의 설명이 이어졌습니다.
“저 분은 ‘약사여래불’이라고 해서 손에 약그릇을 쥐고 있어요. 저 그릇에 담긴 것이 약탕입니다. 그래서 이곳은 아픈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는 곳이에요. 애광원에는 아픈 사람들이 많으니까 ‘아픈 상태에서도 행복하게 살겠습니다’ 하고 다함께 기도를 하고 가겠습니다.”(다함께 합장)
스님의 제안에 다함께 합장하고 정성껏 기도를 한 후 송광사 경내를 나왔습니다.
법당을 나오자 마자 짙은 밤색 차림의 법복을 입은 베트남 스님들을 만났습니다. 베트남 스님들과 함께 인천에서 왔다는 한국 스님이 법륜 스님을 알아 보고는 반갑게 인사를 하며 이분들을 소개해 주었습니다. 한국에서 일하고 있는 베트남 노동자들 중 불자들을 모아서 법회를 해주기 위해 한국에 머물고 있는 스님들이라고 합니다.
스님도 반가워 하면서 “정토회에서도 외국인노동자들을 위해 안산에 다문화센터를 열고 있다”며 “꼭 필요한 일을 잘 하고 계시네요” 라고 격려와 공감을 표해주었습니다.
이렇게 송광사 순례를 마치고 이어서 순천만 국가정원으로 향했습니다. 버스 타고 30분 가량을 이동하자 순천만 국가정원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정원 안에 있는 식당으로 향했습니다.
오늘은 모두 중증 장애인들이라 간단한 비빔밥으로 식사를 준비했는데도 식사를 원할히 하기가 생각처럼 만만치 않았습니다. 많은 원생들이 휠체어에 탄 채로 식사를 해야 하고, 몇몇 원생들은 일반 식사가 불가능해 따로 죽을 먹어야 했습니다.
거동이 불편한 원생들은 대부분 스스로 식사를 할 수가 없어 대부분의 봉사자들이 본인의 식사는 건너뛰어야 했습니다. 그래도 원생들이 맛있게 먹어주니 봉사자들 모두가 자기 배고픈 줄은 하나도 모르겠다는 듯 밝게 웃기만 했습니다.
봉사자들이 휠체어를 밀며 꽃이 만발한 정원을 걸어가는 모습은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웠습니다. 스님도 걸을 수 있는 원생 한 명과 손을 잡고 정원을 걸었습니다.
날씨가 흐리고 비가 오락가락 하니 좋은 점도 있었습니다. 순천만 국가정원의 경우 맑은 날씨에는 햇빛을 피하기가 어렵습니다. 더운 날씨에 휠체어를 밀어가면서 넓은 정원을 느긋하게 관람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휠체어를 타지 않은 원생들도 모두 중증의 상태여서 봉사자들이 늘 곁에 바짝 붙어서 손을 잡거나 팔짱을 낀 채 안다시피 걸어야 했기 때문에 모두들 흐린 날씨를 고마워했습니다. 스님이 법문 때 늘 하시는 말씀처럼 날씨가 흐리면 흐린 대로 이 상황에 맞게 즐길 뿐입니다.
모두가 홍학이 무리지어 모여 있는 연못에서 한참 쉬었습니다. 홍학들이 있는 연못 옆 호수에는 고니 무리가 멀찌 감치 있었는데 해설사가 “곤~” 하고 부르면 온다고 해서 모두 소리모아 “고오온~!” 하고 부르니 정말로 두 마리의 고니가 앞으로 다가와서 꽥꽥 거리며 반겨주었습니다.
순천만 국가정원을 만들게 된 취지를 설명하는 해설사의 이야기가 정말 멋있었습니다. “순천만 글자의 받침을 보시면 ‘ㄴ’이 세 개입니다. 이것은 자연, 인간, 공존의 3받침을 뜻합니다. 세계 5대 연안 습지인 순천만으로 도심이 점점 침입해 오고 있는데, 이것을 막기 위해 그 중간 지대에 국가정원을 만들었습니다. 이런 환경적 의미에 공감한 세계적인 정원 설계자 찰스젱스가 자원봉사로 이 정원을 설계해 주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자원봉사와 자원 재활용으로 이루어진 정원이라는 해설을 들으니 정토회에서 하고 있는 쓰레기제로운동의 의미가 더욱더 뜻깊게 다가오기도 했습니다.
순천만 국가정원은 넓고도 길었습니다. 길마다 각 국가가 조성해놓은 색다른 정원들이 줄지어 있었고, 온갖 색깔과 모양의 꽃, 이름 모를 나무들이 빈틈없이 드넓은 대지를 메우고 있었습니다. 그 속에서 휠체어를 앞세우고 JTS의 파란조끼와 애광원의 빨깐조끼를 입고 걸어가는 사람들의 무리가 묘하게 조화를 이루며 오후의 정원을 수놓고 있었습니다.
원생들과 오소리, 거북이, 미어캣, 왈라비 등이 있는 작은 동물원도 관람하고, 뒤이어 15분짜리 3D 입체영화 ‘달의 정원’도 보았습니다. 입체 영화를 잘 접하지 못한 원생들에게는 아마도 오래도록 남을 좋은 추억이 되었을 것입니다.
동문 근처 잔디밭에 이르러서는 간식을 먹으며 레크리에이션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어서 연잎으로 ‘컵등’을 만들어 보기도 했습니다. 비록 대부분의 작업은 봉사자들의 손으로 이루어졌지만 함께 무릎을 맞대며 눈을 맞추어 본 것만으로도 교감할 수 있는 게 많았습니다.
이렇게 순천만 국가정원을 한바퀴 돌고나니 벌써 오후가 저물었습니다. 아쉽지만 더 지치기 전에 마무리를 하고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식당에서는 오늘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간을 함께 가졌습니다. 신이 난 원생들이 앞에 나와 노래를 한 곡씩 부르자 식당 안은 웃음이 넘쳐 흘렀습니다.
먼저 김임순 원장님이 정토회의 매년 계속되어 온 지원활동에 감사를 표했습니다. 오늘 하루의 추억이 원생들에게는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그리고 정토회와의 나들이를 원생들이 얼마나 기다리는지에 대해서 가감없이 소개하며 고마워 했습니다.
“지적장애인들을 사랑하시는 하느님이 오늘 여러분들을 보내주신 것 같습니다. 오늘 좋은 구경 많이 하고, 좋은 사람들 많이 만나고 돌아갑니다. 우리 애광원 직원들은 여러분들이 전해준 이 사랑 잊지 않고 우리 식구들을 더욱더 열심히 돌보겠습니다. 가정에 늘 하느님의 축복이 같이 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느님의 축복을 내려주심에 정토회 봉사자들은 환호를 하며 감사의 마음을 표했습니다. 이어서 법륜 스님이 앞으로 나와 마무리 인사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스님의 환한 웃음에 순식간에 분위기가 한층 밝아졌습니다.
“애광원 식구 여러분, 재미있게 놀았어요?”
“예.”
“또 봉사자들은 봉사하는 것이 보람 있었어요?”
“예.”
“솔직하게 말해서 애광원 식구들 덕택에 구경 잘 했지요?(모두 웃음) 저도 덕택에 순천만 국가정원은 처음 구경했습니다. 이런 기회가 아니면 저도 사실 이런 곳에 올 시간이 없어요. ‘올 봄에는 애광원 식구들과 순천만 국가정원에 가기로 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제가 와보지도 않았으니 안내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미리 둘러볼 시간도 없었거든요. 그런데 지난번에 여수에 강의하러 온 김에 이곳을 들렀습니다. 그런데 안까지 들어오지는 못 했고 바깥에서 이 안쪽만 쳐다보다 갔어요. 그 때 안이 잘 안 보여서 서운했는데, 오늘 이렇게 안쪽까지 들어와서 저도 구경을 잘 했습니다.
송광사도 지난번에 시골 어르신들 모시고 가긴 했는데, 차타고 올라갔기 때문에 계곡 길은 걸어보지 못 했어요. 그런데 오늘 여러분과 같이 계곡 길을 걸을 수 있어서 참 좋았습니다. 다 여러분들 덕택입니다.”(모두 웃음)
“저희도 좋았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오늘 하루만 이렇게 따라다녔는데도 힘들잖아요. 그렇죠?”
“예.”
“그런데 애광원 선생님들은 이런 일을 365일 하시니 얼마나 힘드시겠습니까? 월급이 문제가 아니에요. 그러니 우리가 시간을 좀 내어서 오늘처럼 이렇게 함께 하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구나 싶습니다. 이런 기회를 빌어서 애광원 원장님 이하 직원 여러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말씀 드립니다.
원장님, 정말 참 애쓰셨습니다. 스물 몇 살 때 학생 몸으로 전쟁 고아들을 돌보기 시작하셨고, 그 일이 다 끝났으면 쉬셔야 되는데 또 이렇게 지적장애인들을 돌보느라 평생을 보내시고 계시네요. 그래도 만약 원장님이 결혼하셔서 가정을 꾸렸으면 자녀를 많이 낳아봐야 대여섯 명이었을 건데, 지금 원장님이 돌본 자녀가 천 명도 넘잖아요.”
“예.”
“오늘 원장님과 함께 하면서 한 사람의 원이 얼마나 큰 일을 해내는지도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작지만 원을 세워서 오늘처럼 이분들을 돕는 일이라도 계속 해나가면 좋겠습니다. 오늘 다들 수고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모두 박수)
애광원 선생님들도 박수를 치며 감사의 마음을 표했고, 원생들도 끼약 하고 소리를 지르며 기쁜 마음을 표했습니다.
그리고 다함께 원장님과 스님에게 드리는 “스승의 은혜” 노래를 함께 불렀습니다. 두 분의 스승님이 있었기에 오늘 봉사자들과 원생들의 만남이 가능했던 것이지요. 눈시울이 붉어지고 가슴이 뭉클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애광원과 정토회가 서로 감사의 마음을 담은 선물을 증정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특히 스님이 새책 ‘행복’을 직접 사인해서 건네자 애광원 선생님은 무척 기뻐했습니다.
공식적인 행사를 마무리하고 저녁을 함께 먹었습니다. 저녁을 다 먹고나면 헤어진다고 생각하니 한 숟가락 챙겨먹이는 봉사자들의 손길도 간절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울컥하는 봉사자도 보였습니다. 애틋한 마음에 “내년에도 꼭 봉사올테니 그때 봐요” 하는 얘기들을 서로 주고 받았습니다. 말 못하는 원생들의 눈빛만 메아리처럼 돌아왔습니다.
멀리 산그림자가 길어질 무렵 원생들 모두가 버스에 올라탔습니다. 스님과 봉사자들도 모두 배웅을 나와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습니다. 원생들은 차창 밖을 하염없이 바라보았습니다. 애광원 봄, 가을 나들이는 앞으로 계속될 것이지만 늘 헤어지는 순간은 이렇게 짠합니다.
스님은 남은 봉사자들에게 “준비부터 마무리까지 수고가 많았다”고 하면서 격려를 듬뿍 해준 후 오늘 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
내일은 오전 10시 30분에 진주 경남과학기술대학교에서 즉문즉설 강연을 한 후 저녁 7시 30분에는 울산 KBS홀에서 즉문즉설 강연이 있을 예정입니다.
* 애광원 봄나들이 풍경을 영상으로 담아 보았습니다. 스님의 하루를 영상으로 더욱 생생하게 만나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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