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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스님은 새벽 6시에 있었던 청년·대학생 정토불교대학 특강수련을 마친 후 아침 9시 30분부터는 정토회 저녁부 정토불교대학과 경전반에서 교실 운영을 맡고 있는 담당자 및 모둠장들과 문경 용추계곡으로 봄나들이를 다녀왔습니다.
오늘 봄나들이 행사는 그동안 저녁부에서 봄학기 불교대학과 경전반을 준비하고 운영하느라 수고한 봉사자들을 격려하기 위해 마련된 행사입니다. 9시가 되자 입재식이 열리는 용추계곡 주차장에는 전국에서 260여 명의 봉사자들이 모두 모였습니다. 삼귀의 반야심경 봉독과 함께 봄나들이가 시작되었습니다.
지난 주에 봄비가 흠뻑 대지를 적신 뒤라 하늘은 높고 바람은 시원하며 풀과 나무는 싱그러웠습니다. 스님은 그 어느 때보다도 밝은 표정으로 대중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걸어왔습니다.
“그늘진 곳으로 몇 걸음 물러나 깔판을 깔고 앉으세요.”
스님의 배려에 시작부터 마음이 훈훈해졌습니다. 스님은 지부별로, 정토회별로 손을 들어보라고 한 뒤 멀리 제주도와 강릉에서도 참가한 것을 확인하고선 “아이구, 제주에서도 오셨네요. 감사합니다.” 라며 더욱더 반겨 주었습니다.
스님은 용추계곡의 지리적 환경을 설명하면서, 과거 용추계곡 밑에 있는 유원지가 경치가 좋아서 정토수련원 자리로 검토했었던 적이 있었다는 얘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결국 지금의 정토수련원 자리를 선택했는데, 이유인 즉, 그곳은 500년이 지나도 관광지가 될 가능성이 없는 곳이어서 누가 팔아먹을 일이 없기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먼 훗날까지도 내다보고 수행도량을 지으려고 했던 스님의 의지와 혜안에 절로 머리가 숙여졌습니다.
10시부터 용추계곡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지나가는 분들에게 불편을 끼칠세라 한 줄로 서서 길을 올랐습니다. 스님은 “오늘 나들이의 목적은 친목과 산책, 그리고 소풍이니 천천히 오세요”라고 당부에 당부를 했습니다. 푸르른 나무 사이로 긴 행렬을 이루는 모습은 한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웠습니다.
계곡을 따라 둘레길처럼 편안하고 사람이 거의 없는 호젓한 산길을 오르니 넓고 큰 바위를 타고 맑은 물이 힘찬 소리를 내며 흐릅니다. 물이 엄청 깊어 보이는 폭포를 만나자 저절로 탄성이 나옵니다.
대중들이 걸음걸이를 늦추며 사진을 찍고 자연과 어우러지는 분위기가 되자, 스님은 “용추계곡은 지나가는 사람이 없어 좋다”며 올해 봄나들이의 주제곡이 되다시피한 “산위에서 부는 바람 시원한 바람~♪”을 대중들이 다같이 따라 부르게 했습니다. 순간 동심으로 돌아가 어린 아이처럼 자연과 하나가 됩니다.
계곡을 따라 월령대까지 오르다가 계곡 반대편 길을 따라 선유동 계곡으로 내려가니 넓은 바윗돌이 있고 그 위로 맑은 물이 흐르고 모였다가 다시 흐릅니다. 대중은 가장자리의 바윗돌에 정토회별로, 법당별로 둘러앉아 맛있게 점심식사를 했습니다. 2시간 가까이 산행을 한 뒤라 밥맛이 꿀맛 같았습니다.
즉문즉설 시간이 되자 모두 스님을 향해 앉았습니다. 먼저 스님이 “저녁부 부장님이 여러분이 그동안 불교대학과 경전반을 운영하느라 수고가 많았으니 격려를 좀 해달라고 부탁했다.”고 하면서 “격려합니다.”라고 힘주어 말하자 대중들도 크게 웃었습니다.
이어서 “누가 나와서 노래 좀 불러보세요”라고 하자, 보살님 한 분과 거사님 한 분이 나와 각각 노래를 불렀습니다. 거사님은 장기자랑을 위해 작은 앰프까지 준비해 왔습니다.
장기자랑이 끝나자 계곡물 소리를 배경음으로 명상을 했습니다. 계곡물, 시원한 바람과 하나가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즉문즉설을 시작하기에 앞서 청년정토회 경전반 담당자 한 분이 “오늘이 어버이날이고 다음 주가 스승의 날이니 노래 한 곡 불러드리겠다”고 하면서 “스승의 은혜”를 불렀습니다. 대중들 모두 함께 노래를 따라 부르자, 겉옷 속에 살포시 감추고 있었던 카네이션을 떼어 스님의 가슴에 달아드렸습니다. 모두가 ‘아, 우리 모두가 놓친 걸 챙겨주셨네...’ 하는 마음으로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
즉문즉설 시간에는 모두 9명이 질문을 했습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 처남과 동종 업계에서 사업을 하게 되면서 사이가 계속 안 좋아지고 있는데 어떻게 관계를 풀면 좋을지 물었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질문한 분은 ‘소양강 처녀’ 노래를 멋드러지게 부르며 여흥을 돋운 후 질문을 시작했습니다.
“저는 15년 동안 처남 밑에서 직장생활을 했습니다. 이제는 처남이 자기 아들한테 업을 물려주겠다고 하고 있고, 제 아내도 거기에 지분이 좀 있었습니다. 저도 회사가 어느 정도 성장하는데 기여를 했는데, 처남이 회사를 자기 아들한테 물려준다고 하면서 저와 사이가 나빠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저도 바로 근처에 있는 동종 업체를 인수해서 운영해 보겠다고 나섰는데, 처남은 제가 자기를 배신했다면서 ‘그동안 내가 돌봐줬는데, 너가 나가서 얼마나 잘 되나 보자’는 식으로 경쟁심을 보이더라고요. 그래도 처음에는 저를 좀 도와줄 것처럼 하더니 결국 안 도와줘서 제가 2년간 엄청 고생했어요. 그렇게 고생하는 동안 저는 정토회를 알게 되어서 스님의 즉문즉설도 많이 들었습니다.
지금도 처남은 거래처가 넘쳐나도 다른 사람한테는 줄지언정 저한테는 주지 못하겠다고 하고 있고, 제 아내가 갖고 있던 지분도 나눠주지 못하겠다고 합니다. 형님이 처남한테 얘기도 해 봤지만 처남은 ‘내 밑에 있어야 될 사람이 왜 배신하고 나가서 나를 힘들게 만드느냐? 앞으로 안 보고 살아도 좋다’는 식으로 얘기를 했답니다. 저도 제 사업을 하면서 금전적으로 많이 어려웠는데, 이제야 조금 손익분기점을 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저는 15년간 처남 밑에서 일할 때 알았던 거래처들을 상대로 영업하는 수밖에 없거든요. 그래서 이런 문제로 마찰이 심해지니까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경쟁하세요. 질문자가 도둑질을 하는 것도 아니고, 빼앗아오는 것도 아닌데, 경쟁하면 되지 고민할 게 뭐가 있어요? 우리나라의 어떤 대기업 회장도 자기 형님과 싸우면서 ‘한 푼도 못 준다’고 하는 거 못 봤어요? 그런 경우도 있는데, 처남이 자기 거래처를 안 나눠주겠다고 한다고 뭘 그렇게 신경을 써요? 질문자는 벌써 동종의 사업장을 인수했다면서요? 그것은 처남과 경쟁관계에 놓였다는 거잖아요. 질문자가 일을 저질러놓고 뭘 그래요? 경쟁을 시작했으면 정당하게, 합법적인 범위 내에서 마음껏 경쟁하면 되지요.
어쨌든 질문자는 처남 회사에 있다가 동종 업체를 차린 거니까 처남으로서는 질문자가 배신했다고 여길만하잖아요. 그러니 처남이 욕을 하면 ‘그래, 네 입장에서는 배신이라고 여길만하다. 그러나 나도 먹고 살아야 되는데, 내가 배운 게 이 일밖에 없지 않느냐? 어쩔 수 없다’라고 하면 됩니다.
만약 제가 미국에서 어렵게 어렵게 절을 하나 냈다고 칩시다. 한 10년 운영하니까 절이 조금 커졌는데, 더 이상은 혼자 못 하겠는 거예요. 형편이 어려울 때는 저 혼자 죽기 살기로 해 보겠지만 절이 좀 커지고 수입이 되면, 저 혼자 그렇게까지 힘들게 할 필요가 없잖아요. 그러면 한국에 있는 젊은 스님 한 명을 구해 와서 비자를 내주고 미국에 있는 절에 데려다 놓으면, 저는 그 스님한테 절을 좀 맡겨놓고 돌아다닐 수도 있잖아요. 그렇게 한 1년 지났더니 젊은 스님을 따라서 신도도 많이 늘고 했는데, 모든 권한은 여전히 주지인 제가 갖고 있다면 자연히 젊은 스님도 불만이 생길 거 아니겠어요? 게다가 신도들도 그 옆에서 ‘스님, 뭣 때문에 그 절에 붙어서 그렇게 삽니까? 나와서 따로 하시면 되지요’라고 부추기면 갈등이 생겨서 결국 그 스님이 나가서 절을 세울 거 아니겠어요? 그럼 그 스님이 LA에 있다가 뉴욕까지 가서 절을 세우겠어요? LA에다 절을 세우겠어요?”(모두 웃음)
“LA에 세우겠죠.”
“또 그 스님이 이 절에서 알던 신도들 중 일부를 데리고 갈 수밖에 없잖아요. 그 스님 처지로 보면 그렇다는 거예요. 그러면 제 절 신도 중에 3분의 1이 됐든 절반이 됐든 그 절로 갔다고 해서 제가 그 스님한테 ‘네가 나를 배신했다. 나는 처음에 혼자 LA에 와서 10년을 고생한 끝에 절을 이만큼 만들어놨는데, 네 놈은 내가 내준 비자로 LA에 와놓고, 1년 만에 우리 절 신도까지 데리고 나가서 바로 옆에 절을 새로 차리다니...’라고 하면 서로 원수가 되어 왕래를 안 하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LA에 한국 절이 처음에는 하나로 시작해서 또 나눠지고, 또 나눠지고 하면, 결과적으로 LA에 절이 10개나 생기게 되는 거잖아요.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예.”
“처음에는 신도 100명이 있었지만 제가 혼자 관리를 못해서 스님을 1명 더 데리고 와서 관리를 하다가 50명이 떨어져 나가서 50명씩 2개의 절이 되었는데, 각각 또 잘 운영하면 신도가 100명으로 늘게 될 거잖아요. 그러면 또 스님을 각각 1명씩 더 데리고 와서 관리를 시키게 되겠죠. 그러면 벌써 신도 50명 규모의 절이 4개나 됐잖아요. 그러니 결국 이런 ‘분열’이 바로 절이 더 커지는 길 아니에요?
절이 꼭 하나만 있어야 될 이유는 없잖아요. 힘을 합해서 신도 400명 규모의 절 하나만 운영해도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게 되지 않잖습니까? 그런데 ‘내가 어떻게 고생했는데...’ 하면서 항상 자기 생각만 하니까 원수가 되는 거예요. 현실적으로는 교회도 그렇고, 절도 그렇고, 세탁소도 그렇고, 다 마찬가지입니다.
미국의 세탁소는 대부분 한국사람이 잡고 있는 거 아세요? 왜 그렇게 됐을까요? 전부 질문자와 같은 이유로 그렇게 된 거예요. 미국으로 이민 가서 세탁소 하나 내서 운영하다가 보니까 세탁소가 잘되자 한국에 사는 동생 부부를 미국으로 데려와서 세탁소 하나를 맡기고 자기는 또 세탁소 하나 더 내서 운영하는 겁니다. 그렇게 3, 4년 하다 보면 동생이 아니라 누구라도 오빠 밑에서 말뚝 박고 계속 월급쟁이만 하겠어요? 안 하지요. 그럼 싸우고 나간단 말이에요. 그럼 나갈 때는 자기가 맡아서 운영하던 세탁소를 가지고 나가든지, 아니면 어떻게 하겠어요? 미국에 와서 4년 동안 배운 건 세탁소 일이고, 아는 고객이라고는 그 동네 사는 고객밖에 없는데, 다른 동네로 가서 업종을 바꿔 일을 시작하겠어요? 그렇게 안 하겠죠? 그런데 거기다 대고 ‘세탁소를 차리려면 다른 데 가서 차리든지 하지 어떻게 옆에 차리느냐?’면서 난리를 치는 거예요.
그런 게 세상사입니다. 선임자 입장에서는 질문자를 배신자라고 볼 수 있는 것이고, 그러나 또 질문자 입장에서는 ‘배신을 하려는 게 아니라 나도 먹고 살아야 되지 않느냐’ 할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러니 질문자는 ‘아, 처남 입장에서는 그렇게 볼 수도 있겠다’라고 이해를 하세요.
또 질문자는 ‘처남 회사에서 15년간 일을 해줬다’고 했는데, 그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질문자 입장에서는 ‘내가 15년 간 너를 도와줬다’라고 생각하겠지만, 처남 입장에서는 ‘내가 15년 간 너 밥 먹여줬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서로 관점이 다른 겁니다. 그러니 그런 것을 자꾸 생각해 봐야 소용없어요. 이왕 벌인 일이니까 그냥 경쟁을 하세요.
그런데 처남은 질문자를 배신자로 생각하니까 혼내주려고 하겠지만, 질문자는 처남을 굳이 혼낼 이유도 없잖아요. 또 덕 보려는 생각도 하지 마세요. 질문자 입장에서는 ‘그래도 너는 내 처남이고, 내가 네 회사에서 15년간 너를 도와줬는데, 거래처 남는 거 있으면 나한테 좀 넘겨주면 안 되나?’ 하는 생각이 들겠지만, 처남은 갖다버릴지언정 절대로 질문자한테는 안 줄 거예요. 그러니 그냥 열심히 일이나 하세요. 사업이 안 되면 접으면 되지 처남을 욕할 필요는 없어요. 그리고 질문자는 ‘아내의 지분’에 대해서는 얘기하면 안 됩니다. 그건 자기 형제들끼리의 문제이니까요.
질문자는 처남에게 ‘15년간 네 회사에서 잘 지냈다. 덕분에 기술도 배웠고, 고객도 확보할 수 있었으니 고맙다’라고 하면 됩니다. 그리고 적극적으로 마케팅을 해서 고객을 유치하세요. 그런데도 처남이 계속 욕을 하면 ‘그래도 내가 아는 게 이 일밖에 없는데 어떻게 하나? 미안하다’ 하면서 자신의 길을 가면 됩니다."
“제가 처남한테 ‘서로 좋은 방향으로 가자’며 6개월을 쫓아다녔습니다. 그런데 이제 처남은 저를 아예 안 보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계속 마음이 상합니다.”
“질문자가 어리석은 거지요. 자기 밑에 있다가 나가서 딴 살림 차린 사람이 ‘같이 하자’라고 하면 누가 같이 하겠습니까? ‘지사를 하나 내달라’ 그래도 줄까 말까 한데요. 그러니까 욕을 하면 실컷 얻어 드세요. ‘그래, 네 집에 있다가 딴 살림을 차리니까 네가 그럴 만하다’라고 마음을 먹어요. 상대가 아무리 나를 욕하고 비난해도 질문자는 아무 상관하지 말고 인사도 하면서 인간적으로 지내세요. 그런데 ‘같이 하자’라고는 하지 마세요. 아직은 질문자가 부족한 입장이니까 도울 일도 없겠지만 앞으로 혹시 도울 일 있으면 돕고 그러세요. 그렇게 세월이 흐르다 보면 풀리게 돼있습니다.”
“처남은 아예 제 인사를 안 받습니다. 저를 쳐다보지도 않아요.”
“그래도 질문자가 ‘잘 있었나?’ 하면서 인사하면 되지요. 우리가 여기 계곡에 와서 ‘계곡이 좋다’라고 아무리 인사해도 계곡이 ‘고맙다’고 인사하던가요? 안 하잖아요. 상대가 인사 안 한다고 질문자도 인사를 안 하면 질문자가 감옥살이를 하게 됩니다. 상대야 인사하든지 말든지, 불편해 하든지 말든지, 질문자는 자기 볼일 보면서 ‘잘 있었나?’ 하고 다니면 질문자는 자유롭고, 처남은 불편한 겁니다. 처남은 질문자 안 보려고 도망가야 되고, 피해야 되고, 악 써야 되고 하니까, 상대가 과보를 받게 되는 겁니다. 그러니 질문자는 과보 받을 일을 하지 마세요.”(모두 박수)
걱정스런 눈빛이 역력했던 질문자는 그제서야 편안하게 미소를 지었습니다. 대중들도 큰 박수로 함께 격려를 해주었습니다. 나 중심으로 좁게만 보던 시야를 더 크게 넓히게 되니 ‘별일 아니네’ 할 수 있었던 명쾌한 답변이었습니다.
이 외에도 많은 질문들이 있었습니다. 가을 불교대학, 봄 불교대학 담당이면서 불교대학 팀장까지 맡았는데 일은 힘들지 않지만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게 흔쾌하지 않다는 분, 불교대학을 담당하는 분과 관계가 불편하다는 법당 부총무님, ‘도솔이 무슨 뜻이냐?’는 학생의 질문에 제대로 답을 못했다며 그 의미를 묻는 분, 불교대학 모둠장을 처음 하는데 사람의 마음을 잘 읽지 못해 상대하기가 어렵다는 분, 불교대학 담당을 맡기 전에는 수행을 열심히 했는데 담당을 맡고부터는 수행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분, 수행정진을 강조하니까 학생 2명이 카톡방을 나갔다며 수행정진을 강조하지 말아야 하는지 묻는 분, 탐진치 삼독심 중 치심의 개념에 대해 묻는 분, 경전반 담당인데 스님은 스승님에 대해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 지 묻는 청년, 불교대학 수업에 들어갈 때 항상 쫓기는 마음이 들어 불편하다는 분 등 질문자도 많았고 그 내용도 다양했습니다.
대중들이 계곡의 나무그늘 아래 옹기종기 모여서 법문을 듣는 모습을 둘러 보니, 부처님 당시에도 많은 제자들이 이렇게 숲속에서 설법을 들었겠구나 싶었습니다. 그야말로 ‘야단법석’이 펼쳐진 셈입니다.
스님은 이렇게 2시간 넘게 즉문즉설을 한 후 마무리 말씀을 했습니다. 앞에서 질문자에게 답변한 내용을 다시 상기시켜 주면서 인생을 조금 더 크게 보고, 가볍게 살면 좋겠다고 당부하면서 강연을 마쳤습니다.
“재밌었어요?”
“예.”
“사는 걸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산에 사는 한 마리 토끼처럼 그냥 가볍게 사세요. 여러분들이 굉장한 거 같지만 지구 전체로 보면 별거 아니에요. 네팔에도 어느 동네에 가면 부자라고 굉장히 잘난 척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없을까요?”
“있어요.”
“방글라데시에도 동네마다 계급이 높다며 잘난 척하는 사람들이 한둘은 꼭 있을 겁니다. 그러니까 지구적인 차원에서 보면 사람이란 그냥 지구에 붙어사는 개미처럼 바글바글한 것에 불과하지 아무 것도 아닙니다. 이렇게 우리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돼요. 아무 것도 아니니까 다 죽어야 된다는 게 아니라 그냥 살면 된다는 겁니다.
어떻게 사는 게 그냥 사는 걸까요? 놀면서 살아도 돼요. 괜찮아요. 그런데 놀기만 하면 지루하잖아요. 예를 들어 70년 가까이 우리는 통일을 못 해 봤잖아요. 그런데 통일하면 좋을 것 같으니까 그거나 한번 해본다든지, 또 이 부처님 법이 참 좋은데 사람들에게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으니까 이걸 한번 알려본다든지, 이런 소일거리를 하나 마련해서 노는 게 좋지 않아요?(모두 박수)
정토불교대학 안 나왔으면 언제 모둠장 해보고, 앞으로 어디 가서 총무도 해보고 그러겠어요? 학교 다닐 때 반장도 한번 못 해봤는데, 언제, 어디 가서 그런 걸 해보겠어요? 그리고 대구정토회나 동래정토회 같이 큰 법당에는 가봤자 내 차례 돌아오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신생 법당이니까 수준도 안 되는데도 중책을 맡겨주고 그러는 거예요.(모두 웃음)
제가 시골에 있는 학교를 다녔고, 학교에 선생님이 부족했으니까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아이들을 가르치는 경험도 해 볼 수 있었지, 도시에 있는 학교를 다녔으면 어떻게 그런 경험을 할 수 있었겠어요. 그리고 제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으니까 아르바이트 한다고 아이들을 가르쳐보려고 했지, 부자 집에서 태어났으면 어떻게 그런 경험을 할 수 있었겠어요? 그때는 힘든 일이었지만 지나고 보면 다 도움이 되는 일이었어요.
예를 들어 아버님이 일찍 돌아가시고, 어머님이 혼자서 일하게 되면, 자식은 엄마를 도와서 식당 일을 하느라 다른 집 애는 공부할 시간에 나는 식당 일을 해야 했다고 하소연 할 수도 있겠지만, 그로 인해서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사는 데 겁이 없을 수 있잖아요. 여차 하면 식당 하나 내면 되니까요. 안 해본 사람은 식당 내는 게 쉽지는 않잖아요. 대학 나온 건 써먹을 데가 그리 많지 않지만, 어릴 때 농사일을 해보거나 식당 일을 해본 경험은 언제든지 여차하면 써먹을 수가 있는 거예요. 그게 진짜 공부예요. 스님이 다른 사람보다 생존력이 더 있다면, 그건 수행했기 때문도 아니고, 학교를 더 다녀서도 아니고, 어릴 때 촌에서 밥 한 숟가락 얻어먹으려고 죽기 살기로 일한 덕분이에요.
그러니 인생이라는 게 별 게 아닙니다. 제가 꿈꾸던 물리학자가 돼서 미국으로 가서 유명해져봤자 무기 공장에 가서 미사일 만드는데 재능을 팔든지 했겠지요. 안 그럴 수도 있지만 그럴 확률이 더 높다는 겁니다. 그 길로 갔으면 그렇게 됐을 거고, 이 길로 왔으니까 이렇게 된 거예요. 인생이라는 게 이렇게 따져보고 저렇게 따져봐야 별 거 아니에요. 그래서 인생이 별 거 아닌 줄 알면 그렇게 목에 힘줄 것도 없어요.
여러분들도 가정생활을 좀 가볍게 하세요. 남편이 성질을 내면 ‘좀 성질 날 일이 있으시구나’ 하면서 ‘죄송합니다. 맛있는 밥 지어 줄게요’ 하고 슬쩍 넘어가세요. ‘내가 놀다 왔나? 내가 정토회 다니면서 얼마나 좋아졌는지 모르나?’ 하면서 따지지 말고요.(모두 웃음)
또 정토회에 와서도 가볍게 생활하세요. 농땡이 치라는 게 아니라 너무 부담 갖지 말고 하라는 거예요. 신생법당 하나 내면 혼자 부총무에다가 팀장에다가 담당에다가 청소까지 자기가 혼자 다 할 수 있잖아요. 좋잖아요. 그런데 그게 뭐가 힘들다는 거예요? 청소가 좀 힘들면 다른 사람이 왔을 때 ‘청소 좀 해 주세요’ 하고 적당하게 나눠서 하면 되지요. 혼자 청소 다 해 놓고, 준비 다 해 놓으려면 너무 힘이 드니까 하는 만큼만 하고, 못 하는 일은 다른 사람과 나누세요.
또 실수하는 일에 대해서 다른 사람들이 비판하면 솔직하게 ‘죄송합니다. 제가 부족해서 그렇습니다’ 하고 인정하고요. 이렇게 좀 모자라는 척하고 살면 사는 게 편안합니다. 모자라는 게 안 모자라는 척 하려니까 힘든 거예요. 완벽하지만 모자라는 척 하라는 게 아니라 원래 모자라잖아요.(모두 웃음)
우리가 이렇게 모자라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활동을 해도 사회에 변화를 조금씩 가져오고 있잖아요. 그렇지요?”
“예.”
“우리가 조금만 노력하면 정토회만 좋게 하는 게 아니라 대한민국도 바꿀 수가 있습니다. 굳이 총 들고 안 싸워도, 두 손만 가지고도 변화를 가져올 수가 있는 거예요. 다만 여러분이 지금 별 거 아닌 인생에 너무 투자를 많이 해서 지금 지쳐있는 겁니다.
아까 질문하신 분도, 남 밑에서 일하다가 새로 살림을 낼 때는 원래 동종업을 하면 안 됩니다. 그것도 형제간에 그러는 게 말이 돼요?(모두 박장대소) 그러니까 처남 아들이 회사를 인수하면 한 발 물러나서 무슨 허드렛일이나 하다가 아내가 주식이 있다니까 배당이나 좀 받아서 살고 그러면 되는데, 질문자도 배운 게 있으니까 ‘한번 해 보겠다’ 했던 것 아니에요? 그렇다면 욕 얻어먹을 각오를 해야 되는데, 욕은 안 얻어먹으려니까 골치가 아픈 겁니다. ‘당연히 욕하겠지. 원수 되겠지. 그래! 원수 좀 되지, 뭐. 나도 살아야 되니까 어떡해. 너만 사장하라는 법 있냐? 나도 사장 한번 해 보자’ 하는 배짱이라도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경제적으로도 좋아지고, 지위도 높아지고, 인기도 좋아지고, 욕도 안 먹는 길은 없어요. 그러니 인생을 조금 더 가볍게 생각하고 삽시다.”
“예.”
“그리고 정토회 운영도 잘 해야겠지만, 올해와 내년에는 나라가 잘 되는데 좀 더 힘을 씁시다.”
“예.”
“나라가 잘 되도록 하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에요. 얼마나 답답하면 제가 이러겠어요? 내버려둬도 잘 되면 저도 편하고 좋지요. 그런데 중은 원래 옛날부터 좀 먼 데를 보잖아요. 지금 우리나라의 기운이 좀 안 좋아요. 100년 전에 겪었던 불행을 안 겪게 하려고 저도 이렇게 노력을 하는 겁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개인사는 좀 접어두고, 필요할 때는 나라를 위한 일도 해야 합니다. 알았지요?”
“예.” (모두 박수)
스님의 격려말씀 중간중간에 ‘하하하’ 하는 웃음소리가 쉼없이 계곡에 울려 퍼졌습니다. 웃음소리 만큼이나 유익하고 즐거웠던 시간이었습니다.
사홍서원으로 행사를 마치고 다함께 단체사진을 찍었습니다. 맑고 깨끗한 자연 속에서 몸을 힐링하고, 스님의 감로 법문을 들으며 마음을 힐링한 시간이었습니다. 모두들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어 있었습니다.
산에서 주차장으로 내려오는 길에 몇몇 참가자들에게 소감을 물어보았습니다. “오늘 하루 너무 행복했다”라고 하면서 “앞으로는 가볍고 즐거운 마음으로 불교대학과 경전반을 운영할 수 있을 것 같다”며 기쁜 표정을 지었습니다.
대중이 탑승한 차량이 모두 출발하자 스님도 울산 두북으로 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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