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6.4.23 평화리더십아카데미 경주 워크숍


 

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제14기 평화리더십아카데미 수강생들을 위해 “신라의 삼국통일로 본 통일코리아의 전망”을 주제로 경주역사기행을 안내한 후 즉문즉설 시간을 가졌습니다. 

 

새벽 6시에 서울에서 출발한 평화리더십아카데미 수강생들은 11시가 다 되어 경주 법흥왕릉에 도착했습니다. 스님은 법흥왕릉에 도착한 수강생들을 환한 웃음으로 반겨 주었습니다. 

 

이번 경주역사기행은 참가자가 총 26명이어서 단촐하게 진행됐습니다. 그러나 스님은 마치 260명에게 설명을 할 때와 같이 아주 열정적으로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 법흥왕릉

 

우선 법흥왕릉 앞에서는 반도의 동남쪽에 치우친 작은 부족국가에 불과했던 신라가 어떻게 삼국통일의 주역으로 성장할 수 있었는지, 그 비결은 신라와 가야의 합의통일에 있었음을 강조하면서 그 일이 일어난 때가 법흥왕 때였음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수강생들은 문명이 월등히 발달한 오늘날 남한도 북한을 포용해내기가 쉽지 않은데 당시 신라와 가야는 어떻게 평화적인 통합을 이뤄낼 수 있었는지 모두들 감탄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더욱이 어떤 역사학자들에게서도 들어보지 못한 스님의 예리한 통찰력에 모두들 큰 박수를 보내며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스님은 법흥왕릉에 온 김에 다함께 기념사진을 찍자고 했습니다. 영상으로만 뵙던 스님을 하루 종일 가까이 할 수 있게 된 수강생들은 “개인 과외를 받는 기분”이라며 아주 들뜬 모습이었습니다.  

 


 

다음은 태종무열왕릉으로 향했습니다. 태종무열왕릉 앞에는 거북이 문양을 한 큰 비석이 참가자들을 가장 먼저 맞이해 주었습니다. 스님은 이 비석에 대해 간단히 설명했습니다. 

 


▲ 태종무열왕릉비

 

“이것은 이 무덤이 태종무열왕릉임을 알려주는 비석입니다. 다른 무덤은 전해내려오는 전설인 경우가 많은데, 이 비석을 보면 이 앞에 무덤은 태종무열왕릉이 확실한 겁니다. 

 

비석의 받침을 한번 보세요. 거북이 모양으로 만들었어요. 거북이 등 위에 비신을 높이 세우고, 비신 위에 용 문양을 올려놓은 겁니다. 그런데 지금 보면 비신이 없습니다. 보통 비석의 머리 부분과 받침 부분은 많이 남아있는데 비신은 별로 남은 게 없습니다. 그 이유는 비신은 돌을 깎아서 판판하고 네모지게 되어 있어서 빨래할 때 빨랫돌로 쓸 수 있었기 때문이에요. 사천왕사지에도 가면 비석에 비신이 없는데 동네 수돗가에서 빨랫돌로 쓰고 있던 것을 한조각 다시 찾았습니다.(모두 웃음)

 

거북이 문양을 한 번 보시면, 1300년이 되었는데도 마치 방금 조각을 한 것처럼 깔끔합니다. 비석의 머리 부분에는 여섯 마리의 용이 그려져 있습니다. 옆에서 보시면 이쪽에 세 마리, 저쪽에 세 마리가 그려져 있죠. 여의주를 가운데 두고 서로 다투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국보입니다.” 

 

동네 사람들이 비신을 주로 빨랫돌로 사용했다는 얘기에 모두들 크게 웃었습니다. 지금도 살아있는 것 같은 거북이 받침대를 스마트폰으로 한 장씩 사진을 찍은 후 태종무열왕릉 앞에 모두 자리했습니다. 

 


▲ 태종무열왕릉

 

신라의 발전은 국가 형성기, 국가 발전기, 통일시기 이렇게 크게 셋으로 나눌 수 있는데, 앞서 법흥왕릉에서 국가 형성기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면 이곳 태종무열왕릉에서는 국가 발전기에 대해 자세한 얘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신라의 국가 발전기는 총 150년 정도 되는데, 이것을 다시 셋으로 나누면 법흥왕-진흥왕 때의 비약적 발전 시기, 진지왕-진평왕 때의 안정적 시기, 선덕여왕-진덕여왕-태종무열왕 때의 통일 준비기로 나눌 수 있습니다. 우리 남한도 지난 50년은 비약적 발전기를 겪었으니까 이제는 남은 50년은 통일 준비기가 되어야하지 않겠어요? 그래서 21세기 말에는 통일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의 중심으로 발돋움해서 세계 문명의 중심으로까지 나아가야겠죠. 

 


 

태종무열왕이 된 사람이 김춘추인데, 통일 준비기 때 대당 외교를 담당한 사람이 김춘추였습니다. 그래서 신라의 삼국통일에 있어서 첫 번째 공로자가 바로 태종무열왕이라고 할 수 있어요. 두 번째 공로자가 김유신이고, 세 번째 공로자가 문무대왕입니다. 

 

결국 신라는 가야와 합병을 함으로 해서 국가규모가 커진 반면에 주위로부터 원한을 사게 되면서 다시 위기를 맞이합니다. 그 국난을 어떻게 극복할 것이냐 하는 문제에 있어서 첫째, 정치군사적인 역할을 해낸 사람이 김춘추와 김유신이었고, 둘째 정신적인 역할로 선덕여왕이 황룡사에 9층탑을 쌓고 기도를 했던 것이죠. 이렇게 정신적인 역할과 정치군사적인 역할이 서로 시너지 효과를 내게 되면서 삼국통일의 주역이 된 것입니다. 그 중 가장 큰 힘이 되었던 것이 김춘추가 담당했던 외교였습니다. 자체적인 힘보다는 외교적인 성과가 더 컸다는 겁니다. 

 

그러다보니 일부에서는 ‘외세와 손잡고 동족의 나라를 없앤 것 아니냐’고 비판을 하기도 합니다. 이런 비판은 일리가 있다고도 볼 수 있는데 그것은 지금의 우리가 봤을 때의 아쉬움이지 그 당시의 신라, 고구려, 백제가 과연 동족 의식이 있었느냐 하는 것은 새로 검토해야 할 사안이라고 볼 수 있어요. 

 


 

신라는 꼭 이웃나라를 멸망시키고자 하는 목표가 있었던 것이 아니었어요. 영토를 넓힘으로 해서 이웃 나라와 원수가 되었고, 이웃 나라가 쳐들어오니까 그것을 막는데 급급했고, 이웃 나라와 화친이 안 되니까 결국 당나라에 협조를 요청해서 동맹을 맺게 되었고, 그런 와중에 결과적으로 삼국통일이 이뤄진 겁니다.” 

 

뚜렷한 국가 목표 없이 국난 극복의 과정에서 결과적으로 삼국통일을 하게 되었다는 얘기에 아쉬움이 많이 남았습니다. 아마도 지금 남한도 통일이라는 뚜렷한 국가 목표 없이 그저 좁은 안목에서 우리만의 살 길을 찾고 있는 것은 아닌가 되돌아봐지면서 많은 것을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태종무열왕릉 뒤로는 4개의 큰 무덤이 있는데 아직 무덤의 주인이 누구인지 밝혀져 있지 않습니다. 큰 무덤들을 한 바퀴 돌아 선도산 남쪽 아래에 자리잡은 진흥왕, 진지왕의 무덤을 둘러본 후 김유신장군묘로 향했습니다. 

 


 

김유신장군묘에 도착해서는 양지 바른 곳에 앉아서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특히 김유신장군의 성품을 알 수 있는 재미있는 일화들을 얘기해주어서 어느 때보다 많이 웃을 수 있었습니다. 

 


▲ 김유신장군묘

 

“김유신은 훌륭한 장군이었던 것과 동시에 자신이 어떻게 해야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지 정무적인 감각도 뛰어났던 것 같아요. 김춘추는 황태자였는데, 황태자와 친한 친구 사이였거든요. 그런데 친구 사이만으로는 한계가 있잖아요. 그래서 자기의 여동생을 김춘추와 결혼시킵니다. 김춘추가 왕 위에 오르자 왕의 처남이 되었고, 김춘추의 아들인 문무왕이 왕위에 오르자 왕의 외삼촌이 되었죠. 그렇게 되니까 신라가 삼국통일을 하는데에 김유신의 영향력 또한 막강해졌던 겁니다. 김유신은 원래 가야 사람이었는데, 신라 안에서 이민자로서 가질 수밖에 없었던 자신의 한계를 이렇게 극복함으로해서 삼국통일에도 기여를 하게 된 겁니다.”

 


 

이 외에도 김유신장군이 가졌던 굳은 심지와 자주적인 민족 의식에 대해서도 많은 얘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백제와 고구려가 멸망하고도 당나라가 이 땅을 떠나지 않고 도독부를 설치하자, 신라는 이에 반발하고 나당 전쟁을 8년 동안 하게 되는데, 그 중심에 김유신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를 두고 스님은 “만약 한미연합군이 한반도를 통일했을 때 미군이 북한을 통치한다면 과연 남한이 미국과 다시 전쟁을 해서라도 통일할 수 있겠는가?”라고 질문을 던지기도 했습니다. 신라의 삼국통일을 두고 외세와 결탁했다고 비판하는 경우가 많은데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역사기행 일정이 빠듯하다 보니 별도로 점심 식사 시간을 가지지 않고, 이동하는 중에 차 안에서 다과로 점심을 해결했습니다. 

 

이어서 도착한 곳은 황룡사지입니다. 아주 너른 들판에 기초석만 부분 부분 남아 있었는데, 스님의 자세한 설명을 들으면서 이곳에 얼마나 어마어마한 규모의 절과 탑이 세워져 있었을지 상상해 볼 수 있었습니다. 황룡사지 발굴 조감도에는 건물이 세워졌던 대략적인 위치가 잘 표시되어 있었습니다.  

 


 

“황룡사의 건축은 이미 진흥왕 때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한참 후대에 100년 가까이 지난 후인 선덕여왕 때에 삼국통일을 발원하면서 이곳에 9층 목탑을 세웠습니다. 첫째는 외부로부터 침입이 잦으니까 국난극복을 발원하면서 세웠고, 둘째는 이런 국가 위기를 극복하는 최고의 방법은 바로 통일이었기 때문에 삼국통일을 발원하고 탑을 세웠습니다. 이 탑을 세운 후 30년이 지나서 통일이 되었기 때문에 선덕여왕은 바로 통일의 기초를 닦은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다. 

 

이 탑은 그 높이가 227척, 67m 였습니다. 제가 지난주에 중국에 가서 42m 높이의 요나라 시대 탑을 직접 봤는데, 밑에서 쳐다보니까 고개가 아플 정도였어요. 그런데 67m 높이라고 하니까 얼마나 높았겠습니까. 몽고가 아홉 번에 걸쳐 침입을 했는데, 9차 친입 때 이곳을 다 불질러 버렸습니다.” 

 

어마어마한 규모의 절과 탑이 불에 타버리고 말았다고 하니 너무나 안타깝기만 했습니다. 이어서 금당 자리에 도착했습니다. 

 


▲ 황룡사지

 

“여기가 금당 자리입니다. 380평 정도 되는데 그 당시에 이렇게 큰 규모의 건물을 지었다고 하니까 굉장하죠. 여기에 장육존불을 모셨는데, 불상이 워낙 크고 무거우니까 기초를 돌로 만들었던 거에요. 

 

여기가 옛날에는 다 동네였는데. 제가 어렸을 때도 이 자리는 그대로 남아 있었어요. 그런데 이 자리를 그 때 무엇으로 사용했느냐면 소를 여기다가 둘러메어 놓았어요. 그래서 이 주위가 다 소똥밭이었습니다.(모두 웃음) 

 

제가 황룡사지 앞에 있는 분황사에서 출가를 했는데, 어린 시절에 이곳에 살면서 황룡사 대종과 이 9층 목탑을 복원하겠다고 원을 세웠었습니다. 그런데 아직 손도 못 대고 있어요. 고등학교 다닐 때는 주말마다 리어커를 끌고 다니면서 고철을 주우러 다녔어요. 고철 주워서 복원 하겠다고 말이죠. 실현되고 안 되고에 관계없이 그럴 정도의 간절한 원을 세웠다는 겁니다.”

 

역사 의식이 투철했던 스님의 학창 시절 이야기에 모두들 크게 웃었습니다. 이곳 경주에서 나고 자란 스님이 아니면 이런 설명은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을 것입니다. 

 


▲ 황룡사 9층 목탑 복원 모형도가 그려진 비석

 

이제 참가자들은 능지탑과 선덕여왕릉, 사천왕사지가 있는 낭산 자락으로 향했습니다. 능지탑에서는 문무대왕의 호국정신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고, 선덕여왕릉에서는 여왕이 가졌던 선견지명과 지혜로움, 다양한 인재를 발굴해낸 리더십을 엿볼 수 있는 다양한 일화들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 선덕여왕릉

 

드디어 역사기행의 마지막 코스인 사천왕사지에 도착했습니다. 사천왕사지에서는 삼국 통일의 과정에서 외세의 개입에 어떻게 대응할 것이냐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신라는 당나라 20만 대군의 침입을 앞두고 이곳 사천왕사지에서 나라의 명운을 비는 기도를 올렸는데, 만약 우리도 남북통일의 과정에서 강대국의 영향력을 통일에 유리하도록 활용하려면 바로 이곳 사천왕사지를 잘 복원하고 이곳에서 기도를 올리면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는 스님의 말씀에 참가자들도 모두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 사천왕사지

 

스님의 열정적인 설명 덕분에 1500년의 세월을 넘나드는 아주 유익한 시간 여행을 한 기분입니다. 이렇게 역사기행을 모두 마치고, 다시 숙소로 돌아온 참가자들은 저녁 식사 후 다시 강당에 모였습니다. 

 


 

저녁 7시부터는 “신라의 삼국통일로 본 통일코리아의 전망”을 주제로 특강이 열렸습니다. 스님은 먼저 여는 이야기로 신라의 삼국통일이 오늘날 남북통일에 주는 교훈에 대해 설명을 한 후 곧바로 궁금한 점에 대해 질문을 받았습니다. 

 

총 4명이 손을 들고 오늘 역사기행을 하면서 들었던 의문에 대해 질문을  했습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 북핵 문제 해법에 대해 질문한 내용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항상 통일을 이야기할 때마다 북한의 핵문제를 빼놓고서는 어떤 얘기도 진전이 될 수가 없는데, 스님은 어떻게 해야 북핵 문제가 해결되어질 수 있는지 명쾌한 답변을 들려주었습니다. 

 


 

“북한에서 핵실험을 했을 때 고등학교 2학년에 다니는 딸이 ‘북한이 핵을 가지면 안 되느냐’라고 물었습니다. 저도 가끔 그런 생각을 해요. 우리가 강대국에 둘러싸여 있는데 북한이 핵을 가진 상태에서 남북통일이 되면 아무도 우리를 건드리지 못할 테고, 그것은 우리가 스스로 생존할 수 있는 힘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북한이 핵을 가질 수도 있겠지요. 남한에서도 일부가 ‘우리도 핵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잖아요. 그럴 수도 있고요. 핵을 꼭 강대국만 가져야 한다고 정해진 법은 없으니까요. 그러나 그 전에 ‘우리의 국가발전 전략을 어떻게 세울 거냐' 하는 것을 먼저 생각해 봐야 합니다. 제가 볼 때는 우리가 중국, 일본, 미국 같은 다른 국가들과 적대해서 이겨야 한다는 국가발전 전략을 세운다면 오히려 국가 발전에 장애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작지만 강한 나라’ 같은 국가 전략을 세워야지 ‘강대국’이 되겠다는 국가발전 전략을 세우면 조금 어렵지 않을까 해요. 

 


 

그런 면에서 생각해보면 핵을 굳이 가져서 우리에게 이익 될 게 뭐가 있을까요? 오히려 국제사회에 갈등만 유발시키기 쉽습니다. 특히 우리는 그동안 국제협력 속에서 국가가 발전했는데, 핵을 소지하겠다고 하면 지금의 국제사회와 엄청난 갈등을 겪어야 해요. 그러면 경제를 비롯해 많은 분야에서 오히려 추락하는 결과가 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핵보유국들은 중국은 물론이고 이란만 하더라도 영토나 인구의 규모가 크니까 외부에서 좀 차단을 해도 자급자족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전체 사회구조가 그렇게 안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핵을 가져야겠다 할 때는 통일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야 해요. 통일 이후에는 모르겠어요. 그건 또 그때 가 봐야겠지요. 그러나 일단 통일할 때까지는 주변국들로부터 양해와 도움이 필요합니다. 주변국의 눈치를 보는 것과는 달라요. 그런 중요한 상황에서 핵을 갖겠다고 하면 오히려 주변 국가들로부터 굉장히 경계를 받아서 통일에도 큰 장애가 된다고 저는 판단합니다.

 

다음으로, 저는 우리가 ‘우리 민족만 잘 되면 된다’ 이런 국가발전 전략을 세우면 오히려 발전이 더뎌진다고 봅니다. 인류의 평화나 인류 전체의 공영을 추구하는 입장에 서 있을 때 오히려 국가의 발전에 더 큰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지구 환경을 함께 보존해내자’, ‘인권을 더 신장하자’, ‘평화 공존을 하자’ 이런 주장을 해서 작지만 어려운 약소국가들의 이익도 대변해준다면, 그들의 지지를 받아서 국제사회에서 강대국 못지않은 지위를 가질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우리의 이익만 추구하는 입장이 되면 국제사회에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이 매우 작아집니다. 일본이 가장 대표적인 예입니다. 일본은 그동안 세계에서 2위의 경제력을 지녀왔고, 지금 중국한테 밀려도 아직 3위인데다가 인구는 우리의 2.5배나 되는 큰 나라입니다. 그런데도 일본이 국제사회에 영향력이 크지 않은 것은 너무 자국 중심의 사고방식을 고수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국력에 걸맞는 국가위상을 못 가지고 있는 거예요.

 


 

그런 면에서, 우리가 핵을 가질 수는 있지만 굳이 가질 필요가 없고, 가진다 해도 그게 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미 간의 원자력 협약 같은 걸 좀 개선할 필요는 있습니다. 현재의 협약 내용에 따르면 완전히 에너지 주권이 없고, 전부 미국에 하청을 받는 식으로 되어 있어요. 재처리 시설 같은 걸 우리가 운영할 수 있도록 해서 비록 핵은 만들지 않지만 만의 하나 최종적으로 국가위기가 왔을 때는 단시간에 방어를 위한 조치를 취할 수도 있는 가능성만 열어놓으면 되지, 핵을 굳이 가질 필요는 없지 않느냐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제가 질문하고 싶은 것은 우리나라가 핵을 갖는 문제가 아닙니다. 북한이 갖는 것에 대해서 우리가 꼭 결사적으로 반대해야 하는지가 궁금합니다.”

 

“북한이 핵을 갖는 것을 우리가 결사적으로 반대한다고 북한이 핵을 안 가지는 건 아닙니다. 북한의 입장과 처지에서 생각해보면 북한은 핵을 가질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경제 규모나 수준이 한국의 50분의 1밖에 안 되고, 인구도 절반이 안 되고, 우리는 한미군사동맹 같은 군사동맹을 갖고 있지만 북한은 외부와 일절 군사동맹이 없는 상태잖아요. 자력으로 방어를 해야 하는데 재래식 무기만으로는 도저히 방어할 수가 없겠다고 생각하니까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해서 ‘우릴 건드리지 마라. 건드리면 너 죽고 나 죽는다’라는 벼랑끝 전술을 쓸 수밖에 없는 겁니다. 그런 면에서 이해를 한다면 적어도 이해는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전략은 굳이 안보 하나만 떼놓고 보면 이해가 되지만, 요즘 국력이라는 것은 안보만 가지고 이야기하지 않아요. 경제, 인권, 민주주의 등 여러 가지를 종합해서 주민들 스스로가 ‘내 나라를 지켜야겠다’ 하는 조국 사랑을 가져야 해요. 북한은 옛날에는 그런 게 비교적 강한 편이었지만 지금 주민들이 저렇게 일부 이탈하는 걸 보면 국가를 위한 개인의 희생이 너무 커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점점 개인들이 못 견뎌서 마음이 자꾸 이반되고 있는 상태거든요. 제가 보기에 이런 상태는 고구려가 천리장성을 쌓은 것과 좀 비슷하지 않을까 해요. 거대한 당나라를 막기 위해서 군사적으로 천리장성을 쌓는 것은 맞지만, 그 성을 쌓는다고 백성들을 너무 힘들게 만들어서 민심 이반이 일어났어요. 민심 이반이 일어나니까 결국 백성들 입장에서는 내 나라를 지켜야 할 필요성이 없어진 거예요. 그래서 천리장성 축조는 고구려 국방의 필요성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고구려 패망의 원인이기도 했습니다. 

 

북한이 핵을 갖는 것은 그런 양날의 칼이지 않을까 합니다. 한쪽으로 보면 필요하지만 다른 한쪽으로 보면 그게 북한을 안보 면에서 더욱 어렵게 만든다는 두 가지 문제가 있어요. 그런데, 북한은 안보 문제에만 너무 집착되어 있으니까요. 이번에 새누리당이 국민 누가 봐도 ‘저러면 안 될 것 같은데’ 싶은 일들을 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이 한쪽으로 인식이 쏠리면 그게 안 보여요. 북한도 지금 너무 한쪽으로 치우쳐 있어서 종합적으로 보는 눈이 약합니다. 자기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절박한 심정이 이해는 돼요. 그러나 그렇게 너무 한쪽으로만 사물을 보기 때문에 오히려 국가를 존립시키는 데 커다란 걸림돌을 또 하나 만드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현재 북한 스스로 이 문제를 풀기는 좀 어렵다고 봅니다. 한국이 한국의 발전은 물론 민족 전체의 이익을 위해서도 이 문제를 풀어야 할 텐데, 그렇다고 당장 북한더러 ‘핵을 완전히 없애라’ 이렇게 을러대는 것은 북한의 경직성을 푸는 좋은 방법이 아니에요. 진짜 만들었는지, 어느 정도 만들었는지를 북한 말만 듣고 어떻게 믿겠어요? 다른 건 북한 말을 잘 안 믿으면서 그건 또 굉장히 믿더라고요.(모두 웃음) 

 


 

일단 자기들이 만들었다고 하니까 그렇다고 치고, ‘여기서 일단 멈추자’라는 주장이 중요해요. 실제로 만들었는지 안 만들었는지는 따지지 말고, 일단 여기서 세 가지를 멈추자고 해야 합니다. 첫째, 핵물질을 더 이상 생산하지 말 것. 둘째, 기술개발을 더 이상 하지 말 것. 즉 핵실험을 더 이상 하지 말라는 것이죠. 셋째, 운반수단인 장거리미사일 실험을 더 이상 하지 말 것. 없애라는 것보다는 이 상태에서 멈추자는 겁니다. 

 

그렇게 입구 전략으로 ‘개발중지’를 하고, 출구 전략으로 시간을 좀 두고 폐기하는 걸 목표로 하는 겁니다. 그러면서 ‘대신에 너희가 우려하는 게 뭐냐?’라고 이야기를 들어주면 좋겠습니다. 이번에 북한 쪽에서 제기한 게 한미군사훈련을 중지하라는 요구였어요. 저는 중지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미군사훈련을 중지하지 못한다면 적어도 공격형 훈련은 안 했으면 좋겠다 싶습니다. ‘참수 작전’은 공격형 훈련이잖아요. 이런 거는 좀 안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데, ‘우리가 훈련하는데 너희가 무슨 상관이냐’ 이렇게 나온다면, 이것은 북한이 ‘우리가 핵무기 만드는데 너희가 무슨 상관이냐’라고 나오는 것과 똑같은 거잖아요. 그러니까 북한이 위협으로 느끼는 것은 어느 정도 조정을 해주면서 대량살상무기를 만드는 것 같은 부분만 일부 제재를 가하고, 나머지 부분은 열어주는 식으로 해서 공동발전을 추구할 수 있는 출발점을 만드는 것이 필요합니다. ‘핵을 완전히 없애야만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식의 태도는 현재의 상황을 풀 수 없는 길이라고 생각해요. 

 

우리는 북한이 핵무기를 갖는 걸 인정하는 쪽으로 나아갈 수는 없어요. 첫째, 우리 국민 여론이 받아내기 어렵습니다. 설령 일리가 있다 하더라도 정치라는 것은 옳고 그른 것만 가지고는 안 되잖아요. 부부관계도 꼭 옳고 그른 것만 갖고는 안 되는 것과 같아요. 정서적인 부분도 굉장히 큰 영향을 미치거든요. 너무 기분에 치우쳐서는 안 되겠지만 국민 정서를 봐서도 받아들이기 어렵고, 북한의 진지한 노력도 같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미국은 무조건 ‘핵은 절대 안 된다’고만 하고, 북한은 미국에게 ‘적대적 정책을 폐기하라’고만 하니 이 두 가지가 부딪히면 해결책이 없어요.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미국이나 중국보다 더 나서서 북한과 싸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국제사회의 요구인 핵 폐기는 동일한 정책노선으로 나가되 절차에 있어서는 약간의 여유를 주는 식으로 우리가 중재를 해야 해요. 핵개발 중지를 우선 입구 전략으로 삼고, 폐기를 출구 전략으로 삼아서 그 과정에서 협상해 나가야 합니다. 

 

예컨대 북한에서 ‘적대 정책을 폐기해라’라고 요구하면, 우리는 ‘그럼 적대 정책이 뭐냐?’라고 물어보고, 구체적으로 공격형 군사훈련을 중지하라고 요구한다면 우리는 사드(THAAD) 배치를 중지시켜 준다든지 할 수 있을 겁니다. 

 


 

평화협정 문제도 있어요. 과거 노태우 정부때 맺었던 남북 간의 불가침 협정 같은 걸 다시 확인하고 미국과 중국이 보증을 서줘야 합니다. 전에는 미국과 중국이 보증을 안 서고 국회비준도 안 되었거든요. 남북관계를 가장 전향적으로 진척시킨 것은 김대중 대통령 때나 노무현 대통령 때가 아니라 노태우 대통령 때입니다. 

 

또 북한은 한국이 아닌 미국과 평화협정을 맺자고 말하지만, 저는 남북이 당사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북한의 주장은 첫째, 전쟁 당사자가 미국과 북한이지 남한이 아니라는 거예요. 휴전협정 당사자가 미국하고 북한이지, 남한은 당사자가 아니라는 옛날 주장을 계속하고 있거든요. 옛날에 그랬다 하더라도 지금은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가 북한하고 미국은 아니잖아요. 물론 북한은 ‘너희는 전시작전권도 없지 않느냐’ 이런 주장도 하지요. 그래서 저는 한미동맹을 유지하더라도 전시작전권 같은 것은 우리가 가져와야 한다고 생각해요. 주권 국가가 군사 주권을 안 갖고 있다는 건 말이 안 되잖아요. 

 

이렇게 해서 우리가 주도권을 가지고 남북 간에 불가침 협정을 맺거나 더 나아가 전쟁 종식 선언을 해야 합니다. 한국전쟁은 아직 공식적으로는 끝이 안 났거든요. 그렇게 전쟁을 종식시키고 평화협정을 맺되 남북이 당사자가 되고 미국과 중국이 보증을 서줘야 해요. 북한 입장에서는 남한과 북한만 협정을 맺어서는 신뢰가 안 간다는 것이지요. 미국이 공격해버리면 끝나잖아요. 그렇다고 남, 북, 미 3자만 참여하면 중국이 ‘미국이 참여하는데 왜 우리는 빼놓느냐’라고 시비를 걸 겁니다. 옛날에는 남, 북, 미 3자만 가지고도 됐지만 지금은 중국을 빼기에는 이미 너무 커졌어요. 그렇다고 중국이 너무 개입하는 것 또한 맞지 않습니다. 그러니 남북이 중심이 되고 미국과 중국이 보증을 서는 식으로 점진적으로 조금씩 풀어나가야 해요. 

 

가장 우선적인 것은 경제협력입니다. 정치군사적인 것은 시간이 걸려요. 전쟁까지 하고 오랫동안 서로를 적대하며 으르렁대던 걸 당장 내일 아침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통일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경제적인 통합은 가능해요. 지금 한국경제가 굉장히 어렵잖아요. 그 출구는 통일경제, 북한개발입니다. 북한도 지금 굉장히 어려운데 그 출구가 남북협력입니다. 통일경제로 가기 위해서 우선 남한은 투자에 대한 안전보장이 우려되고, 북한은 개방에 대한 우려가 있겠죠. 주민들을 통제하기가 쉽지 않을 테니까요. 이런 서로의 우려를 고려해서 협상을 통해 점진적으로 풀어나가는 한편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북한에 대한 불신을 우리가 중재해서 조금 완화시켜 나간다면 저는 충분히 진척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초안이 잡힌 게 2005년에 한국, 북한,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등 6자 간에 이루어진 9·19 합의입니다. 에너지 지원을 해주는 대신 북한의 단계적 비핵화와 북미간 신뢰구축 등을 끌어낸 그 합의가 지금까지 있었던 합의 중 가장 현실적인 합의예요. 그건 미국의 조야 인사들 사이에서도 동조세력이 많고 중국에서도 동의하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미국의 일부 강경세력과 북한의 일부 강경세력이 그 문제를 놓고 서로 힘겨루기를 계속하고 있고, 일본이 중간에 자기 책임을 다 하지 않고 뒤틀어 버렸죠. 다른 나라들은 다 에너지를 얼마씩 지원하기로 했는데 일본은 납치 문제를 들고 나와서 책임을 회피했거든요. 납치 문제는 당연히 풀어야 하지만 이 합의에서 다루는 동아시아 평화 문제와 직결된 것은 아닌데 이걸 끝까지 걸고넘어져 자기 임무를 다하지 않았기 때문에 6자 회담이 파탄 나는데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런 문제들을 풀어나가면서 한국이 중심 역할을 해야 해요. 한미 간의 동맹은 굳건히 하되 종속적인 입장에서는 벗어나야 합니다. 지금의 한미동맹은 미국의 이익을 위한 대(對) 아시아 전략에 한국이 바둑돌이 되어 있는 종속적 한미동맹이에요. 한국은 장기적으로 중국에 대한 견제 문제가 남아 있기 때문에 한미동맹을 그만둬서는 안 됩니다. 한미동맹은 더욱 견고히 다져야 하되, 한국의 자주적인 입장은 분명히 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우리 마음대로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에요. 즉, 전 세계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미국의 이익에 우리가 동조를 하지만, 한반도 문제에 있어서는 즉, 평화와 통일이라고 하는 우리의 이익만큼은 우리가 이니셔티브를 쥐고 적극적으로 풀어나가야 한다는 겁니다. 저는 이것을 ‘자주적 한미동맹’이라고 합니다. 

 


 

지금처럼 미국한테 가서 부탁하고, 중국한테 가서 부탁하는 방식으로는 풀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미국과 중국은 자국의 이익이 중심이지 우리의 이익이 중심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의 얘기를 들어준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자국의 이익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할 뿐인 겁니다. 그런데 지금의 정부는 지난 몇 년 동안 중국에 너무 지나친 기대를 했어요. 그러다 이번에는 중국에 대한 실망을 또 너무 빨리 드러내버렸습니다. 사드배치 카드를 이용해서 미국과 중국을 다 견인해야 하는데 카드를 너무 빨리 꺼내버렸기 때문에 중국은 결국 이 문제를 한국하고 안 풀고 미국하고 직접 풀기로 해버린 거예요. 중국이 지금까지는 한국을 어떻게든 구슬리고 달래서 사드 배치가 진행되지 못하도록 막아왔는데, 한국이 카드를 너무 일찍 꺼내버리니까 ‘아, 이 문제는 한국하고 풀 게 아니라 미국하고 풀 문제다’ 라고 해서 시진핑 주석이 직접 나서서 오바마 대통령과 푼단 말이에요. 이제 우리는 아무런 영향력도 발휘하지 못하고 주도권을 빼앗겨 버린 셈입니다. 중국이 한반도 문제를 미국과 풀려다가 잘 안 되니까 우리하고 의논하도록 만들었어야 하는데, 오히려 카드를 잘못 빼들어서 우리와 의논하던 것을 미국과 의논하도록 만들어버렸다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이것이 외교 문제에 있어서 큰 실책이었다고 봅니다.”

 

핵을 가진 북한과 통일하면 좋은 점도 있지 않느냐는 가벼운 질문이었는데, 우리의 국가 발전 전략을 어떻게 세울 것인지부터 시작해서 북한 핵문제 해법까지 명쾌한 답변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인생 문제에 있어서도 그렇지만 통일에 대해서도 스님은 그 어떤 질문에도 막힘없이 해법을 들려주는 것 같습니다. 이어진 세 명의 질문에 대해서도 스님은 속시원한 답변을 들려주었습니다. 

 

마지막 질문자는 통일을 위해서 평화리더십아카데미 수강생들이나 우리 국민들이 해야 할 역할이 무엇인지 질문했습니다. 이 질문에 대해 스님은 이렇게 답변하면서 강연을 마쳤습니다. 

 


 

“통일 문제의 해결은 안보를 튼튼히 하면서 주변국을 설득하는 외교를 해야하고, 통일비용을 감당하는 경제정책을 운용해야 하고, 국민의견을 수렴하는 정치적 결단을 해야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개인이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고 국가가 나서야 하는 문제입니다. 그래서 선거가 중요하고 투표가 중요한 겁니다. 이 선거야말로 국가의 운명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에 아주 중요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옛날처럼 왕조국가라면 왕이 잘못해서 그렇다고 왕에게 책임을 전가할 수 있는데, 지금 우리는 주권 재민의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에 나라가 잘못되는 것은 결국 국민의 책임입니다. 우리가 주권자이기 때문에 그 책임이 우리에게 있지 정치인들에게 있지 않습니다. 왜 우리가 그들을 선택했느냐는 것이죠. ‘나는 저 사람을 선택하지 않았다’라고 말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란 말이에요. 그런데서 여러분들이 소극적으로 투표만 할 것이 아니라 헌법에 보장된 주권자로서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살려내는 역할을 좀 해주셨으면 합니다.”

 

통일 강연을 할 때마다 늘 강조되었긴 했지만, 다시 한 번 투표와 선거의 중요성을 되새길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처럼 하루 종일 신라의 삼국통일과 역사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다시 이 얘기를 들으니 그 깊이가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왕조국가였던 삼국시대, 임진왜란 때도 나라를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섰던 선조들이 있었는데, 또 나라를 빼앗긴 일제강점기에도 자기를 희생한 의병들이 있었는데, 주권이 국민에게 있는 오늘날 우리가 통일을 이룩해내지 못할 이유가 없는 것이겠죠. 스님의 말씀을 곱씹으며 통일코리아의 희망을 가슴에 품고 오늘 하루를 마무리해 봅니다. 

 

강연장을 나온 스님은 곧바로 문경 정토수련원으로 향했습니다. 내일은 새벽 6시부터 9시까지 정토회 경전반 수강생들을 위해 즉문즉설을 해준 후 오후에는 경주 불교학생회 동문회 초청으로 통일암에서 즉문즉설 시간을 가질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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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족의 역사를 올바르게 정립하고, 러시아 연해주 독립운동의 성지인 '신한촌'의 역사 회복과 재건을 위해 대중 여러분들의 후원금을 받습니다. 소정의 기금 출연으로 역사 회복에 동행하는 마음과 정성을 함께 담아 주시기 바랍니다. 

 

- 계좌번호 : 국민은행 578601-01-272869

- 예금주 : (사)좋은벗들 

전체댓글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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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현정

법륜스님 덕분에 삶에 질이 달라졌습니다. 항상 건강하세요^^ 오래도록 법문 듣고싶어요~~♡♡♡

2016-05-01 22:23:17

김수연

지나가다 님 감사합니다
정말 많은 위로가 되었습니다

2016-04-27 10:13:31

오유진

감사합니다~~♡♡

2016-04-26 23:3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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