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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낮에 있었던 정토회 전국 모둠장 봄나들이 행사에 이어서 저녁 7시부터는 대구 수성대학교 대강당에서 ‘통일이야기’를 주제로 즉문즉설 강연이 열렸습니다.
오늘 강연을 주관한 단체인 ‘새로운 100년을 여는 통일의병’은 화해와 상생의 평화통일을 염원하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모여서 만든 비영리 민간단체로 올해 6월 17일이면 설립 3주기가 되며 법륜 스님은 이곳에서 고문 역할을 해주고 있습니다.
같은 장소에서 지난 3월말에 강연을 했을 때는 벚꽃이 막 피기 시작했는데 오늘은 여름이 온 듯 땀이 날 정도였습니다. 오후 5시, 강연 2시간 전부터 대중들을 맞이할 준비를 끝낸 봉사자들은 꼭지별로 모여 손을 모아 큰 소리로 파이팅을 외치며 서로 기를 북돋웁니다. 얼굴엔 약간의 긴장감이 감돌았지만 기합소리 만큼은 활기차 보입니다.
강연을 한 번 치르려면 50명에서 60명의 봉사자가 필요합니다. 무대, 내부안내, 접수, 지원, 책 판매 등 꼭지별로 봉사자가 배치됩니다. 대부분 통일시민학교에서 교육을 받아 의병번호를 부여받은 통일의병들입니다. 통일의병이라고 특별한 어떤 사람들이 아니라, 의병이니 이름을 드날릴 마음은 없고, 그저 우리나라의 통일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작은 일이라도 온 힘을 다해 한다는 열정으로 모인 평범한 대구시민들입니다.
오늘 강연에는 300여 명의 시민들이 참석했습니다. 스님이 무대에 등장하자 대구시민들은 “와”하는 함성과 함께 우레와 같은 박수를 치며 스님을 맞이했습니다.
스님은 먼저 왜 젊은 사람들이 통일에 무관심하게 되었는지 그 이유에 대해 설명하면서, 만약 통일이 된다면 우리에게 어떤 희망이 생기는지에 대해 일목요연하게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통일을 하면 오히려 돈이 많이 드는 것 아니냐고 많이들 얘기합니다. 젊은이들이 특히 통일에 반대하거나 무관심한 이유는 ‘돈이 든다’, ‘우리 세대에 부담이 클 거다’ 하는 게 제일 큰 이유입니다. 어른들은 반대를 하더라도, 또 경제적으로는 조금 부담이 되더라도, 그래도 고향엔 가야 되고 통일도 해야 된다는 게 정서적인 공감대입니다. 그런데 젊은이들은 이런 정서적인 공감대가 없어요. 왜냐하면 태어날 때부터 분단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통일에 대한 생각만 있을 뿐이지 정서적으로는 북한과 같이 살아야 한다는 것이 오히려 불편해요. 오히려 거부반응이 일어나요. 거기다가 이해관계에 있어서도 손해라는 생각도 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북한과 남한이 서로 협력을 하게 되면 경쟁관계에 놓이지 않고 서로 상생 효과가 발생합니다. 북한은 노동력이 아주 값싸단 얘기 들었지요? 우리나라에서는 지금 생활용품이든, 일반상품을 만들어서 이윤을 남기기가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인건비가 비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업들이 전부 다 중국으로 나갔는데, 이제는 중국도 인건비가 비싸져서 중국도 버리고 다시 방글라데시나 인도로 나가고 있습니다. 그나마 한국에 있는 공장들도 한국 노동자의 인건비가 비싸니까 공장만 한국에 있지 노동자는 다 동남아시아에서 데리고 와요. 한국 사람들은 적어도 100만 원 이상 임금을 줘야 하는데, 동남아 사람들은 50만 원에서 70만 원만 주고 일을 시킬 수가 있거든요. 이렇게 기업들이 다 외국으로 나가니까 일자리가 점점 없어지는 것이고, 또 기업들이 한국에 있다 하더라도 여러분들의 일자리 하고는 관계가 없는 겁니다. 그러니까 기업주는 노동력이 싼 곳으로 공장을 옮기든지, 값싼 노동자를 한국에 데려오든지, 이렇게 두 길로 지금 버티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한국의 젊은이들은 일자리가 점점 없어지는 거예요. 이렇게 지금 우리 경제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그동안 중국으로 진출해서 유지했는데, 지금은 중국에서 다시 다른 곳으로 옮겨가고 있어요. 그렇게 하지 못하면 포기하거나요.
그런데 중국보다도 더 값싼 노동력이 있습니다. 요즘 중국에서도 자국민들 노동력이 너무 비싸지니까 북한에서 노동력을 데려다 쓰고, 중국에서 북한으로 옮겨가서 가공무역을 합니다. 북한의 노동력은 우수할 뿐만 아니라 값이 싸거든요. 개성공단에서 일하는 북한 노동자의 임금이 70불 정도 됩니다. 수당하고, 뭐하고, 밥 먹는 것까지 전부 합하면 한 150불 되거든요. 150불이면 우리 돈으로 17만원 정도 밖에 안 돼요. 지금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해도 그렇게 값싸게는 임금을 지불할 수가 없어요. 세계 어디를 가도 그런 노동력은 없어요. 그러니까 북한은 이렇게 값싸고 양질의 노동력을 갖고 있고, 남한은 자본과 기술을 갖고 습니다. 이 둘이 잘 결합하면 150불이 아니라 300불을 줘도 그런 노동력은 전 세계에 없어요. 우리 한민족은 일을 잘 하잖아요. 그동안 한국이 생산기지 역할을 해오다가 다시 중국이 세계의 생산기지 역할을 해왔는데, 중국도 노동력이 비싸지니까 지금은 인도가 생산기지가 되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보다 월등하게 뛰어난 기술과 자질을 갖고 있으면서 우리나라 바로 옆에 있고, 임금은 더 싼 것이 바로 북한의 노동력입니다. 거기다가 북한이 갖고 있는 지하자원은 그 양이 한국의 수십 배에 달합니다. 이렇게 남한의 자본과 기술, 북한의 자원과 노동력이 결합을 하면 인도나 중국만큼 그렇게 큰 규모는 아니지만 북한이 세계 생산기지의 일부가 될 수 있습니다. 북한도 급격하게 발전하지만 그것은 곧 한국경제의 출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북한에 사회 인프라를 구축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지금 우리는 북한 때문에 섬이 되어 있어서 유럽에 가려면 비행기밖에 못 타고 가잖아요. 그런데 만약 북한을 통과하는 시베리아 횡단철도가 연결된다면 물류 비용이 대폭 떨어집니다. 여러분들이 중국으로 가는 여행 경비도 대폭 싸지고요. 그러면 북한의 철도를 개선해서 연결할 때 돈이 수십조 원이 들 수 있겠지요. 그런데 그것은 10년, 20년 지나면 본전을 다 뽑을 수 있는 돈이에요. 즉 광산을 개발하든, 도로를 닦든, 철도를 놓든, 이런 일들은 전부 소비가 아니고 시간이 흐르면 다 본전을 뽑을 수 있는 투자란 말입니다. 그러니 북한에 철도를 놓는 일은 우리한테 엄청난 이익이에요. 물류혁명이 가져오는 효과의 크기는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투자는 우리 돈이 있으면 우리 돈 들여서 건설하고, 우리 돈이 없으면 외자를 유치하면 됩니다. 그러면 우리에게도 출구가 열리는 겁니다. 여러분들 개개인이 운영하는 상점도 다 좋아집니다. 예를 들어 제주 감귤 장사를 한다고 합시다. 남한의 5,000만 명만 놓고 생각하면 판매량이 제한되어 있잖아요. 그러니까 과잉생산이 되어서 밭을 팔거나 농장문을 닫아야 하는 지경인데, 북한에는 감귤 농사가 안 되니까 2,000만 명의 수요가 생기게 되니 수익이 올라가지 않겠어요?
또 건축업을 한다면 북한을 개발하기 위해서 건물을 많이 지어야 하잖아요. 그러면 철근이 들어가고 시멘트가 들어가고 무엇이든 많이 들어가야 할 것 아니에요? 그렇게 되면 일단 우리 가게의 물건이든 우리 기업의 생산품이든 많이 팔릴 수밖에 없게 되지요. 외형적으로만 계산해서 돈이 얼마든다고 말하면 ‘헉!’ 이렇게 되지만, 그것은 실제로는 전부 다 생산유발 효과를 내는 투자인 것입니다.
우리가 올림픽을 하나 개최할 때도 돈이 엄청나게 들어 가잖아요. 그러나 그것을 비용이라고 보지 않고 생산유발 효과가 얼마라는 식으로 투자로 계산하잖아요. 그것처럼 통일 경제는 우리에게 출구가 될 수 있는 거에요. 그러나 통일 경제는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에요. 만약 남북이 서로 상생경제를 하게 되면, 서로 죽기살기로 싸우는 안보문제도 어느 정도 진정이 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남북이 각각 국방비에 투자할 돈을 엄청나게 줄일 수 있겠지요. 지금 이걸 못하는 이유는 불신 때문입니다. 첫째, 서로 못 믿기 때문입니다. 둘째, 미국과 중국이라는 강대국 간의 경쟁 사이에 우리가 끼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두 가지 요인 때문에 이 좋은 길을 가지 못하고, 더 나쁜 길로 가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 앞으로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이 ‘제가 경제를 성장시키겠습니다’라고 공약을 펼 때 만약 그 논거로 ‘남북문제를 풀어서 통일경제로 이 답을 풀겠습니다’라고 주장한다면 그건 가능성이 있는 얘기예요. 그러지 않고 그냥 ‘제가 경제를 성장시키겠습니다’라고 주장하는 건 전혀 가능성이 없는 얘기인 겁니다. 아시겠어요?”
“네.”
“만약 누군가가 대통령이 되어서 남북문제를 잘 풀면, 이것은 동아시아에도 희망을 주는 일이 됩니다. 제가 말하는 통일은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처럼 정치 군사적으로 남북이 완전히 하나가 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통일의 핵심은 ‘통일 경제’입니다. 하나의 통합 경제를 운영하는 것을 말합니다. 자본과 노동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으면 그것이 바로 사실상의 통일인 겁니다. 정치적으로 통합하는 것은 당장은 쉽지가 않고 시간이 좀 걸립니다.
그것처럼 얼마 전 총선 때 대구에서 야당이 절반 이상 당선되지는 않았지만 이번에 일어난 변화만 보더라도 이것은 사실상 정치혁명이 일어난 것과 같은 거에요. 나머지는 시간이 흘러가면서 점점 발전해 나갈 테니까요. 이런 것을 보면 새로운 시대는 바로 국민들의 힘으로 만들어 나갈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 젊은이들도 너무 좌절하지 마세요.
만약에 통합경제가 되면 경제성장만 되는 게 아니라 복지의 증진도 도모할 수 있습니다. 자꾸 가진 사람 것만 빼앗아서 복지하겠다고 하면, 가진 사람이 안 내놓습니다. 물론 성장이 없을 때는 복지가 더 필요합니다. 그러나 성장 없는 복지는 사회적 저항이 엄청납니다. 사회적 갈등이 어마어마하게 생기게 됩니다. 현재의 경제 구조를 바꾸려면 구조조정을 엄청나게 해야 되는데, 만약 현대중공업에서 3,000명의 직원을 내보낸다면 시끄럽겠지요. 노동자도 어려워지고, 자본가도 그렇게 하기 어렵고, 모든 상황이 어렵습니다. 내가 부당하게 가졌든 어떻게 가졌든 가진 걸 내놓으라고 하면 사람의 심리가 안 내놓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이 남북 문제를 풀어서 성장의 길을 새로 열면서 있는 건 그대로 두고, 앞으로 만약 70이 더 성장했다면 50만 가져가고 20은 내어놓으라고 하면 그건 비교적 쉬운 일이 됩니다. 내 손에 아직 안 들어온 걸 적게 가져가라고 하면 저항이 작아진다는 겁니다.
이렇게 통일 경제를 통해 한 쪽으로는 성장을 풀면서 다른 쪽으로는 분배문제를 개선해야지, 그냥 분배문제만 풀겠다고 하면 사회가 너무 시끄러워져서 배가 산으로 가는 문제가 생깁니다. 그러니 통일이야말로 안보문제도 해결하고, 평화문제도 해결하고, 성장문제도 해결하고, 분배문제도 해결하는 길이 되는 겁니다.
또 통일은 민주주의도 발전시켜 줍니다. 우리가 민주주의를 충분히 자유롭게 구현하지 못하는 이유는 뭡니까? 남북이 대치하고 있기 때문에 자꾸만 ‘네가 그런 생각을 하면 북한한테 이롭다’ 하는 식의 우려를 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그런데 서독은 통일하기 전에 이미 서독 안에서 자유롭게 공산주의 활동을 허용했거든요. 그것처럼 우리도 남한 안에서 공산주의 활동을 허용한다면, 북한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요? ‘통일된 뒤에도 자기들의 정치활동이 자유롭겠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니까 지금처럼 막 죽기살기로 반대를 안 할 것 아니에요. 지금은 ‘건드리기만 해봐라’ 이렇게 나오는데 이것은 자기들이 붕괴될지도 모른다는 극도의 두려움 때문에 그런 겁니다.
이렇게 어떤 변화를 우리가 만들어내야 우리의 안전도 담보하고, 미래의 비전도 만들 수 있습니다. 이렇게 통일로 나아가면 젊은이들의 직장도 많이 생기겠죠? 괜찮은 직장들이 급속도로 생겨 납니다. 북한에 철도 놓고, 뭐 놓고 하면, 밑에 막노동은 북한 노동자가 하겠지만 측량도 하고, 기술 지도도 하는 건 다 남한에서 해야 될 것 아니에요? 남한이 선진 기술을 갖고 있으니까요.
그러니 젊은 사람들은 ‘통일이 되어도 우리와는 관계없다’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투표는 우리와 관계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젊은이들이 투표하러 많이 가니까 변화가 일어났잖아요. 투표가 우리의 주권을 행사하는 정당한 권리이듯이 수행 차원에서는 여러분들도 행복할 권리가 있어요. 그러듯이 통일에 있어서도 여러분에게 권리가 있는 겁니다. 그 권리를 행사해서 우리가 통일 대한민국을 만들어낸다면 외국의 어떤 보고서에 따르면 2050년에 세계 제2의 경제대국이 된다는 발표도 나왔습니다. 그렇게까지 되지는 않더라도 우리가 북한을 생산기지화 할 수만 있게 되어도 일본을 능가하는 것이 가능할지 모릅니다. 일본은 지금 우리처럼 통일이라는 그런 출구가 없거든요.
지금까지는 분단이 우리에게 큰 장애였는데, 만약 통일 경제를 이룩해 낸다면 분단은 우리의 성장 한계를 극복하고 한 단계 도약하게 해주는 큰 혜택이 될 수 있습니다.”
통일에 대해 이렇게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시민들은 모두들 감탄을 하며 귀를 쫑긋 세웠습니다.
서론이 길었습니다. 강연 주제가 ‘통일이야기’이니까 여기까지가 본론인 것이지요. 여기까지 설명을 마치고 스님은 질문지 함에 수북이 쌓인 질문지들을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질문이 많아 다 답해주지 못할 것 같아서 저 혼자 길게 이야기했어요. 그래도 질문을 더 받아볼까요?”
청중들이 “네” 하고 간청을 하자, 스님은 질문지를 뽑았습니다. 첫 번째 질문자는 다른 사람에게 질문할 기회를 양보하였습니다. 두 번째로 뽑힌 질문자는, 대구의 선거 결과가 전과 다르게 나와서 희망적으로 보고 있는데 정부 여당은 자신의 잘못을 아직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며 총선 이후 전망을 물었습니다. 세 번째 질문자는 두 돌 된 아기를 키우려 휴직 중인데, 신랑이 본인보다 심성이 더 나은 것 같아 남은 1년을 신랑이 키우게 하는 게 맞는지 질문했습니다.
그 중에서 오늘은 총선 이후 전망에 대해 질문한 내용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질문자는 이번 선거를 보며 무척 희망적이라는 낙관론을 제기했는데, 스님은 꼭 단정할 수는 없다며 장단점을 두루 설명해 주었습니다.
“이번 여소야대 정국이 저에게는 매우 희망적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뉴스를 보면 정부 여당은 자신의 잘못을 인식하지 않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현재 상황에서 희망적이다가도 ‘아직 정신을 못 차렸나,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희망을 가져도 될까’ 싶어서 걱정스러운 마음이 있습니다.
남북관계에서도 개성공단이 재개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갖게 되고, 이번 정권 3년 동안 일어났던 문제들이 남은 2년 동안 좀 바뀌어지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갖게 되는데, 그런 희망을 갖는 제가 좀 순진한가 싶기도 합니다. 통일문제도 그렇고요. 스님께서는 희망적이신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좀 순진하네요.(모두 웃음) 저는 즉설을 하는 사람이니까 솔직히 말씀드리는 겁니다. 이번 총선에서 일어난 변화의 원동력은 국민이 각성을 했거나, 야당이 잘 했거나, 신당이 나와서 비전을 제시했거나 해서 일어난 일이 아닙니다. 법륜 스님이 강연을 많이 다녀서 이렇게 된 것도 아니에요. 저는 오히려 친박들의 횡포가 이런 변화의 시초가 됐다고 진단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 여당이 이번 결과를 두고 ‘어, 우리가 좀 교만했다’고 주춤할 정도까지는 되더라도 여론을 받아들여서 확 바뀔 가능성은 좀 낮다고 봅니다. 제가 보기에 대통령이나 일부 정치인들은 이번 결과를 두고 자신들이 잘못했다고 느끼기보다는 ‘진의를 국민이 못 알아주고 오해했다’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다고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이 투표한 결과를 가지고 ‘국민이 어리석다’라고 말할 수는 없잖아요. 반면에 ‘아, 내가 잘못 생각했다. 국민의 뜻을 몰랐다. 앞으로는 국민의 뜻을 반영해서 의회와 의논을 해서 진행하겠다’ 이런 표현도 일절 없고요.
그렇기 때문에 첫째, 이것 하나는 확실합니다. 지금 잘못된 것을 시정할 가능성은 없지만 계속 잘못된 것을 밀어붙이는 힘은 좀 약해졌다는 사실입니다. 그것만 해도 피해가 많이 줄어들 거예요. 100원 손해날 걸 80원 손해보도록 만든 것만 해도 저는 위대한 승리라고 봅니다. 이익 보도록까지는 못 만들어도 이것만 해도 잘 된 거에요. 둘째, 여당 안에 친박 세력이 많아졌어요. 여당의원의 절대적인 숫자는 적어졌지만 그 안에서의 비율을 따져보자면 친박 세력이 굉장히 많아진 셈이에요. 전에는 전체의 3분의1 정도였지만 지금은 60% 이상 됩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여당 안에서도 합리적인 사람들의 발언권이 좀 커질 거예요. 그러면 여당이 대권 후보를 정할 때 ‘네가 해라’ 하고 줄 세워서 지명하는 사람보다는 그 안에서 경쟁을 해서 정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졌어요.
설령 여당이 또 정권을 잡는다고 해도 여당이 이렇게 좀 좋게 변하면 상황이 지금보다는 더 나아질 겁니다. 저는 여당이 정권을 잡으면 절대로 안 된다는 생각은 안 해요.
야당이든 여당이든 국가의 미래를 위해서는 국민의 뜻을 받아들이고, 민주주의를 심화시키고, 남북관계를 어느 정도 풀어나가고, 미국과도 싸우지 않고 잘 협력하되 미국의 하수인은 되지 않아야 해요. 다시 말해 미국과 협력은 잘 하되 자주적인 한미동맹을 해야지 종속적 한미동맹을 하면 안 됩니다. 일본과도 무조건 싸우는 건 안 되지만 자존심은 지켜가면서 관계를 풀어야 해요.
예를 들어 위안부문제는 함께 협력해서 풀어나가되, 안 풀리면 이것 때문에 한일관계를 끊기보다 이 문제는 잠시 덮어두고 한일관계를 풀어가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 같은 식으로 자존심을 구겨서 돈 몇 푼 받고 푸는 건 안 돼요. 피해 할머니들의 한을 생각하면 그렇게 해서는 안 되지요. 이런 건 무효화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한일관계를 전부 백지로 돌리자는 건 아니에요. 이건 일단 덮어두고 풀고, 이 문제는 다음 정권이나 후손들에게 넘겨야 해요. 그래야 후손들이 이 문제를 계속 풀 수가 있잖아요. ‘이걸로 끝이다!’ 누구도 그렇게 할 수는 없어요. 이 문제가 안 풀린다고 한일 관계를 다 단절하는 것도 안 돼요. 그건 우리에게도 손해예요. 독도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문제가 있지만 한일관계를 풀어야 해요. 그러나 그 문제를 제대로 못 풀면 유보시켜야지, 이렇게 적당하게 푸는 것은 도움이 안 됩니다.
마찬가지로,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밝히는 문제나 국정교과서 문제도 합리적으로 풀어가야 합니다. 국정교과서는 무조건 반대한다거나 다 폐지하라는 게 아니에요. 합리적이라는 건 이런 뜻입니다. 국정교과서가 필요하다는 사람이 우리 사회에 다수는 아니더라도 일부 있긴 했잖아요. 다수가 반대하면 이걸 강행하면 안 돼요. 그러나 이것의 필요성이 있다고 보는 사람도 있기 때문에 타협을 해야 합니다. 물론 다수의 의견을 받아들여서 국정교과서를 백지화하면 제일 좋겠지요. 그러나 국정교과서를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검인정교과서가 7개라고 할 때 국정교과서를 하나 더 만들어서 8개를 자유경쟁에 부쳐보는 거에요. 국정교과서가 좋다면 갈수록 채택률이 높아지겠죠. 국민이 선택해서 채택률이 점점 높아지면 그때 가서 이걸 하나로 만들자고 하면 사람들이 동의할 수 있습니다.
4대강 개발도 무조건 안 하는 게 좋다는 건 아니고, 좋다는 사람도 있었어요. 반대하는 사람이 더 많으면 무조건 자기 임기 안에 밀어붙여서 강행할 게 아니라 네 개 중 한 개만 먼저 해보는 거예요. 이게 타협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아예 하나도 하지 말자고 하거나 한꺼번에 다 하자고만 합니다. 국민이 다 내 마음 같으면 어느 한쪽으로 결정하기 좋겠지만 서로 의견이 다른 국민이 있잖아요. 그러면 ‘어느 한 개를 먼저 해보자. 괜찮으면 다음을 이어서 하고, 안 괜찮으면 그만두자.’라고 해야죠. ‘네 개 강을 다 하되 각각 일부 구간에서만 해보자’ 라고 할 수도 있을 겁니다. 이게 타협이라는 거예요.
질문자는 지금 ‘이제는 전부 개선이 될 것이고, 잘 되지 않겠냐’라고 낙관하지만 그리 될 수가 없어요. 개인도 자기의 천성을 못 고치는데 질문자는 어떻게 여러 개의 집단을 금방 고치려 들어요?(모두 웃음) 그렇게는 안 돼요. 다만 이번에 여당이 이겼으면 지금까지 문제가 많거나 잘못된 것들을 계속 강행했을 텐데 그건 어느 정도 멈췄으니까 그것만 해도 큰 성과예요.
그러면 야당을 한번 생각해 봅시다. 이번에 두 번째 당이 1등을 했다는데, 그게 자기 힘으로 이긴 거예요? 아니에요. 사람들이 좋아해주고 지지해줘서 이긴 게 아니라 수도권 사람들의 경우에는 최악을 견제하려다보니 2번을 찍을 수밖에 없었던 거에요. 그래서 전국 정당 지지로는 3위인데 의석수로는 1당이 된 겁니다. 그것만 봐도 최악을 견제하려다 보니 차악이 선택된 것이지 그게 좋다고 선택한 것은 아닌 줄 알 수가 있죠.
신당은 참신한 것을 내서 희망을 줬기에 표를 얻었을까요? 아니에요. 여당이 마음에 안 든다고 해서 곧바로 야당을 찍기는 좀 그래서 제3당을 찍었고, 전라도 사람들은 기존의 야당을 좀 혼내주려고 제3당을 찍은 거예요. 그래서 자기들이 생각한 것보다 표가 더 나온 거예요. 지금 이걸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몰라 하는 것 같아요.(모두 웃음)
그러니 ‘아, 정치에 희망이 있다’ 이런 생각을 하면 곧 실망합니다. 그러나 적어도 나쁜 정책을 펼치는 1당 독주는 견제가 됐어요. 무조건 밀고 나가거나 무조건 발목 잡는 건 이제 없어졌어요. 그 동안은 그렇게밖에 할 줄 몰랐는데 이제 새로운 판이 됐으니까 처음에는 좀 혼란스럽겠죠. 그런데 혼란이 꼭 나쁜 건 아니에요. 혼란을 겪으면서 이제 새로운 걸 또 만들어나갈 거예요.
국민들이 좋아서 찍은 게 아니라 어느 쪽이 더 싫은가, 그나마 덜 싫은가를 따져서 나온 게 지금의 결과이기 때문에 앞으로 1년쯤 지켜보면 아예 쫄딱 망하는 곳도 생기고 세를 확 불리는 곳도 생길 거예요. 이번 같은 경우에 이것도 저것도 싫어서 제3당을 찍은 건 제3당의 입장에서는 어부지리거든요. 아무리 하라 그래도 용기가 없어서 못 했는데 나서서 어부지리를 얻는 것도 자기 실력이에요. 어부가 바닷가에 가서 조개와 새가 싸우는 걸 구경하고 있다가 잡는 것도 어부의 재주예요. 다른 사람은 아예 바닷가에 안 갔는데 그 사람은 갔으니까 그런 걸 잡을 수 있었잖아요.(모두 웃음)
그런 면에서 너무 큰 기대는 걸지 마세요. 그러나 희망의 길은 열렸습니다. 다시 말해 절망은 막았다는 말이에요. 저는 그렇다고 아직 ‘야, 희망이다!’ 이렇게 볼 건 아무것도 없다고 봅니다. 그러니 조금 진정하세요. 그러나 절망은 막았다, 새로운 길의 출발에 섰다, 이제 약간은 가능성이 열렸다고는 말할 수 있습니다.
더 가능성을 열기 위해서는 다음 대선에 또 예의주시해서 더 잘하는 쪽을 선택하면 되겠죠. 예컨대 통일문제는 국가권력의 문제잖아요. 외교, 국방, 경제, 안보의 문제니까 국회의원 선거 정도 갖고는 안 돼요. 아무리 진보적인 사람들이 다수당이 된다 해도 통일은 국가과제이기 때문에 해결이 안 돼요. 이제는 ‘대통령과 정권을 어떻게 선택하느냐’라는 진짜 중요한 과제를 우리가 안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걸 두고 미리 ‘무조건 야당이면 된다’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좀 더 나은 사람, 희망을 걸 만한 사람이 없으면 현실에서는 최소한 더 나쁘게는 안 만드는 쪽을 찍을 수밖에 없어요. 그러나 우리가 조금 희망을 가질 수 있다고 한다면, 이번 총선을 통해 국민들이 보여준 변화된 모습이 여당 안에서도 야당 안에서도 ‘아, 정말 세상이 바뀌었구나’라고 느끼고 좀 더 공심이 있고 합리적인 사람이 정치의 전면에 나올 수 있는 기회를 줬다는 점입니다. 전에는 줄 서서 정치해야 하고, 앞에 나가면 얻어맞으니까 말도 못하고 뒤에 숨어 있었는데, 이제는 새로운 기회가 열렸다 싶어서 너도 나도 백가쟁명식으로 나설 거예요. 어떻게 보면 혼란스럽지만, 저는 그걸 혼란스럽다고 보지 않고 가능성이라고 봅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크게는 긍정적으로 봅니다. 그러나 질문자처럼 낙관적으로까지는 안 봐요.”
“예, 스님. 개인적으로 8년여 만에 처음으로 희망을 봐서 약간 흥분한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진정하겠습니다.” (모두 박수)
“이 자리를 빌려서 말씀드립니다. 여러분들이 누구를 찍었든 그건 개인의 자유예요. 특정 정당을 찍었다고 해서 잘못 됐고, 다른 당을 찍었다고 해서 잘 됐다는 식으로 평가하면 안 돼요. 그러나 대구 시민 전체의 입장에서는 우리 정치의 골수 병폐인 지역주의를 어쨌든 이번에 조금이라도 극복했잖아요. 이건 정말 칭찬해주고 싶은 일이에요. 잘했습니다!”(모두 큰 박수)
스님의 칭찬에 대구 시민들도 박수갈채로 화답했습니다. 스님의 답변을 듣고 다시 진정을 되찾겠다고 말하는 질문자를 보며 모두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통일이야기라 진지하고 다소 엄숙한 분위기에서 강연이 진행되었습니다. 자신의 문제를 상담하던 즉문즉설 때와는 분위기가 달랐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간이 스님의 유머에 웃음이 터졌습니다. 그 중 경허 스님이 역행보살행을 한 일화가 기억에 남습니다. 나쁜 일을 하여 다른 사람에게 본을 보여주는 것이 더 어렵다는 얘기였습니다. 이번 선거에 그와 같은 역행보살행을 한 사람이 있다는 말씀에 모두 한껏 웃기도 했습니다. 누구일지는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강연을 마치면서 스님은 다시 한 번 통일이 우리의 희망이 될 수 있음을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통일의 유일한 대상이면서 현실적 위협이기도 한 이 모순을 극복하는 것이 우리에게 남은 과제라고 덧붙였습니다.
“통일 문제를 푼다면 한일관계도 풀기가 쉬워지고, 창조성의 문제도 풀기가 쉬워집니다. 통일이 된다고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통일이 되면 그렇게 되기가 쉽다는 겁니다. 그렇다고 당장 정치적으로 통합하자는 얘기도 아닙니다. 남북이 통일 지향적인 관점을 분명히 가지면 그것이 곧 통일이라는 겁니다. 이렇게 목표를 같이 인식하고 있으면 둘 사이에 갈등이 생겨도 조율을 할 수가 있습니다. 두 남녀 사이에서도 결혼이라는 목표만 분명히 갖고 있으면 갈등을 조율할 수가 있는데, 지금은 서로 결혼을 할지 말지 결론조차 안 내고 있는 상황이라는 겁니다. 제가 얘기하는 통일은 “서로 결혼하자”라고 결론을 먼저 내놓고 조율할 것은 또 싸우면서 조율해 나가자는 것을 말합니다.
통일하자고 해서 무조건 북한이 하자고 하는대로 끌려가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하자는 대로 북한이 절대 안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미국과 친하다고 미국과 통일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요. 북한은 원수이긴 하지만 우리가 통일을 할 수 있는 유일한 대상은 북한밖에 없어요. 그러니 목표는 통일로 하되 현실에서는 우리의 최대 위협 세력이 북한이라는 점을 또한 인정해야 합니다. 현실에서는 미국이나 일본보다 북한이 더 큰 위협 세력이 맞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래에는 북한과 함께 가야 합니다. 이 모순을 극복해가는 것이 우리가 해결해야 할 과제입니다. 이런 것을 염두에 두고 우리가 희망을 한번 가져보면 좋겠습니다.”
대구가 바뀌면 대한민국이 바뀐다고들 하지요. 마지막으로 스님은 대구가 통일운동의 중심이 되어보면 어떻겠느냐고 당부했습니다. 모두들 스님의 당부에 뜨거운 박수갈채를 보냈습니다.
강연을 마친 후 다함께 ‘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를 함께 불렀습니다. 강연의 열기가 아직 생생하게 남아서 그런지 노래 가사가 오롯이 가슴에 새겨지는 것 같았습니다.
로비에서는 책 사인회가 열렸습니다. 스님은 환한 웃음으로 모든 분들을 반갑게 응대해 주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강연을 준비한 대구경북 지역 통일의병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통일의병들이 “의병이 통일해 버리자!”라고 힘차게 구호를 외치자 스님도 활짝 웃음을 띠었습니다.
강연장을 나온 스님은 곧바로 울산 두북으로 이동해 오늘 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 내일은 평화리더십아카데미 수강생들을 위해 경주역사기행 안내를 해준 후 저녁에는 통일코리아의 비전에 대해 특강을 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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