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6.3.27 다문화센터 외국인 노동자들과 봄나들이


 

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JTS 안산 다문화센터와 인연이 된 외국인 노동자들과 함께 속리산 법주사로 봄나들이를 다녀왔습니다. 

 

아침 7시에 서울을 출발한 스님은 9시 30분에 법주사에 도착했습니다. 봄나들이라고 했지만 가만히 서 있으면 한기가 느껴질 정도로 날씨가 쌀쌀했습니다. 안산 JTS 다문화센터에서 출발한 외국인 노동자들이 곧이어 도착하자 스님은 “추운데 가만히 서 있으면 더 춥다” 라며 예정보다 10분 일찍 행사를 시작하게 했습니다. 

 

스리랑카에서 오신 분들, 태국에서 오신 분들, 중국 연변에서 오신 한 분 포함해서 외국인 노동자들이 80여 명, 안산 JTS 다문화센터에서 한국인 봉사자들이 60여 명, 총 140여 명이 함께 했습니다. 

 

솔숲에서 시작한 입재식은 스리랑카 스님의 선창으로 테라밧다 방식으로 함께 예불을 하며 시작했습니다. 참석한 외국인 노동자들 모두가 불교를 신앙으로 하는 나라에서 오신 분들이라 모두가 불자인 셈입니다. 

 


▲ 입재식

 

이어서 스님이 봄나들이를 시작하며 입재 법문을 해주었습니다. 날씨가 쌀쌀한 관계로 짧게 속리산에 대한 소개만 해주었습니다. 통역은 스리랑카에서 오신 담마끼띠 스님과 태국에서 온 지라펀 선생님에 의해서 각각 나라별로 송수신기를 통해 이뤄졌습니다. 

 


 

“좀 춥죠? 스리랑카나 태국보다 한국이 훨씬 추워요.(웃음) 여기는 대한민국 충청북도 보은군 속리면 법주사예요. 여기 산 이름이 속리산인데요. ‘속’은 세상이라는 의미이고, ‘리’는 떠난다는 의미여서, ‘속리’는 세상으로부터 멀리 떠난다는 뜻이에요. 그 말은 ‘더러운 세상으로부터 멀리 떠난 깨끗한 부처의 세상’을 의미해요. 지금은 우리가 차를 타고 여기까지 왔는데, 옛날에는 사람이 사는 곳에서 40km 정도를 걸어와야 여기에 도착할 수 있었어요. 그 정도로 사람이 살지 않는 깊은 산속이에요.”

 

이어서 스님이 참가자들을 일일이 소개해 주었습니다. 외국인 노동자들은 “우리보다 봉사자들이 더 많은 것 같다”며 모두 웃었습니다.  

 


 

10분 남짓 서 있었는데 한기가 느껴지자 스님은 “지금 추우니까 좀 걸어야 돼요. 한 시간 정도 먼저 걸읍시다.”라며 발걸음을 재촉했습니다. 법주사 입구 주차장에서 세심정까지 약 2.4km의 거리(왕복 4.8km)를 빠른 걸음으로 걸었습니다. 10분 정도 열심히 팔을 휘저으며 걸으니 금새 땀이 송글송글 맺히기 시작했습니다. 

 


▲ 법주사 입구에서 세심정까지 산책

 

평지에는 이미 봄꽃이 많이 피었는데, 이곳은 산속이어서 그런지 아직도 메마른 나무가지만 앙상하게 남아 있었습니다. 봄나들이 일정을 2주만 뒤로 미뤘으면 참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습니다. 

 


 

오순도순 정겹게 이야기를 나누며 걷다보니 어느새 세심정 휴게소 인근까지 도착했습니다. 앞으로 더 가면 경치가 더 좋지만 함께 온 남방 스님들은 12시 이전에 식사를 해야 해서 발길을 돌려 식당으로 향했습니다. 외국인 노동자들은 “공기도 맑고 자연 풍광도 너무 좋다”며 곳곳에서 삼삼오오 모여 사진을 찍었습니다. 

 


 

점심식사 후에는 약 1시간 동안 스님이 법주사 경내에 대해 자세히 안내해 주었습니다. 자유시간을 잠시 가진 후 금강문 앞에 모두 모이자 스님의 설명이 시작되었습니다. 먼저 법주사에 대해 설명해 주었습니다. 

 


▲ 금강문 앞에서 시작한 법주사 사찰 순례

 

“저희가 도착한 이 절은 ‘법주사’입니다. 기록에 보면 이 절은 A.D 553년에 지어졌다고 하니까 지금으로부터 한 1500년 전에 지어진 것입니다. 인도로부터 경전을 말에 싣고 이곳까지 가져와서 이 절에 보관했다고 해요. 즉 ‘법이 이곳에 머무르고 있다’고 해서 절의 이름이 법주사입니다. 

 


 

8세기와 9세기 사이에 신라에는 유명한 진표율사라는 스님이 계셨는데, 그분이 여기에 미래의 부처님이 오실 것이라며 미륵부처님을 모셨습니다. 그리고 지금으로부터 1000년 전 고려의 왕자 출신으로 스님이 되신 대각국사 의천이 여기에 계셨기 때문에 이 자리에 아주 큰 절이 들어서게 된 것입니다. 또 1300년대 말,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700년 전쯤 고려의 공민왕이 직접 이곳을 방문해서 당시 부처님 사리를 모셨던 통도사로부터 사리 일과를 가져와 이곳에 모시게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으로부터 400년 전쯤 일본이 침략해서 이 절을 모두 불태웠습니다. 사실 이 절뿐 아니라 그 당시 산에 있던 큰 절들은 그때 대부분 불탔습니다. 그래서 지금 보이는 주춧돌 같은 건 다 신라시대의 것으로서 천년이 넘는 것이지만 나무로 지은 건 그때 다 불타버렸기 때문에 가장 오래 되었다 해도 400년 정도입니다. 그리고 이 절은 많은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국보가 3점, 보물이 12점, 유형문화재가 21점이나 있습니다.” 

 

법주사에 대한 개략적인 설명을 마치고 금강문을 지나 천왕문을 통과하여 차례대로 경내를 둘러보았습니다. 국내 유일의 목탑인 팔상전을 비롯 쌍사자석등, 석련지, 사천왕석등, 대웅보전 등 국보급 문화재들에 대해 스님의 자세한 설명이 이어졌습니다. 

 


▲ 당간지주. 조선 고종 때 국가재정 마련을 위해 당백전을 만들려고 대원군의 명에 의해 파괴되었다가 복원되었다고 합니다. 

 


▲ 마애여래의좌상. 불상으로는 보기 드물게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을 하고 있어 무척 특이했습니다. 

 


▲ 팔상전. 한국 목조탑의 유일한 실례가 되고 있는 중요 건축물이며 내부에는 석가여래의 일생을 여덟 장면의 그림으로 나타낸 팔상도가 모셔져 있습니다.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후 다시 지어졌다고 합니다. 

 


▲ 쌍사자 석등. 8각의 바닥돌 위에 사자 조각이 올려져 있고, 사자 두 마리가 서로 가슴을 맞대고 윗돌을 받치는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 대웅보전. 우리나라 3대 불전의 하나로 꼽히는 곳으로 역시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후 다시 지어진 것이라고 합니다. 

 

특히 대웅보전 옆 쪽에 세워진 삼성각에 이르러서는 현지 전통사상을 파괴하지 않고 포용하는 불교의 특징에 대해 스님은 자세히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 삼성각

 

“여기에 ‘삼성각’이라고 쓰여있는데, ‘세 분의 성인을 모셨다’는 뜻입니다. 건물 명칭 중에는 ‘대웅전’이라고 해서 ‘전’으로 끝나는 게 있고, ‘삼성각’처럼 ‘각’으로 끝나는 게 있는데, 부처님이나 보살을 모신 데는 ‘전’이라고 하고, 신을 모신 데는 ‘각’이라고 합니다. 불교가 들어오기 전에 한국에는 전통신앙이 있었는데, 그것은 하늘과 산의 신을 섬기는 신앙이었습니다. 하늘의 북두칠성을 섬기는 의미에서 칠성신을 섬겼고, 또 한국에는 산이 많으니까 산신을 섬겼습니다. 

 

불교가 한국에 들어왔지만 한국의 전통신앙을 없애버리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한국에 있는 절에 가면 반드시 가운데에는 부처님을 모시는 대웅전이 있고, 그 뒤에는 조그맣게 산신각과 칠성각을 지어서 전통신앙을 포용했습니다. 그런데 산신각과 칠성각을 모두 짓기 어려울 때는 산신, 칠성신에다가 독성, 즉 혼자서 깨달았다는 독성까지 한 곳에 모시게 되는데, 그 건물 명칭이 ‘삼성각’입니다.”

  

모두들 현지 문화를 포용하는 불교의 태도에 대해 인상 깊게 경청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금동미륵대불 앞에 모두 섰습니다. 금동미륵대불 역시 조선 고종 때 대원군이 경복궁 축조 자금 마련을 구실로 당백전 화폐를 주조하기 위해 불상이 몰수되는 일이 겪었다고 합니다. 시멘트로 다시 복원을 했다가 붕괴 조짐이 있어 청동으로 다시 조성했는데, 2012년에 이르러 다시 금을 입혔다고 합니다. 

 

이렇게 사찰 안내를 모두 마치고 다함께 거대한 금동미륵대불 앞에서 기념 사진을 찍었습니다. 고된 노동에서 벗어나 오랜만에 자연을 만끽한 외국인 노동자들의 얼굴에는 웃음과 편안함이 가득했습니다. 

 


▲ 금동미륵대불

 

이어서 오후 2시부터는 금동미륵대불이 있는 지하 법당 ‘미륵전’에서 즉문즉설 시간을 가졌습니다. 스님은 환한 웃음을 머금으며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여러분들, 한국에 와서 매일 일한다고 어디 가보지도 못 했지요? 한국에 좋은 절들이 많으니까 매주는 못 가더라도 봄, 여름, 가을, 겨울, 이렇게 1년에 4번 정도는 친구들과 모여서 한 번씩 구경가는 것도 좋아요. 한국에 5년 정도 살다가 고국으로 돌아갔을 때 ‘공장에만 있어서 아무 것도 본 게 없다’라고 하면 안 되잖아요. 또 도시에서 살다 보면 십자가만 보이잖아요. 그래서 한국에서 몇 년 살다가 간 사람들 중에는 한국에 불교가 있는 줄도 모르고, 심지어 한국이 기독교 나라인 줄 잘못 아는 사람도 있더라고요. 한국에 불교가 들어온 건 2000여 년 전이라서 오랜 불교역사를 갖고 있는데도 말이에요. 

 

자, 이제부터는 여러분들이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궁금했던 것, 어려웠던 일에 대해서 스님과 대화하는 즉문즉설 시간을 갖겠습니다. 아무 것이나 물어도 좋습니다. 스리랑카나 태국에서는 스님들한테 부부싸움 한 얘기나 노동했는데도 월급을 못 받은 얘기 같은 일상생활에 대해 질문해본 적이 없지요? 그래서 저한테도 질문하기 어려워 할 것 같은데, 오늘은 마음껏 아무거나 물어볼 수 있는 시간을 드리겠습니다. 자, 질문하세요.”

 


▲ 법주사 미륵전

 

스님의 밝은 미소에 분위기도 한층 밝아지고, 몇몇 사람들이 가볍게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한국에서는 왜 불교가 사라지고 기독교가 번창하게 되었는지, 남방 스님들은 오후 불식을 하는데 한국 스님들은 왜 하루 세끼 식사를 하는지, 비록 한국에 일하러 왔지만 유학 공부도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등 대부분 지식적이거나 문화적인 것에 대한 질문이었는데, 마지막으로 질문한 분은 자신이 처한 괴로움에 대해 질문을 했습니다. 

 

한국에서 온갖 어려움을 겪었는데 특히 술을 강제로 권하는 괴롭힘을 많이 받았다며 어떻게 하면 자유롭고 행복해질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스님은 오늘 처음으로 법에 대한 질문이 나왔다며 반가운 마음을 표현한 후 답변을 들려주었습니다.  

 


 

“저는 금생에 스리랑카에서 태어나 스리랑카의 사고방식을 갖고 한국에 왔고, 좋은 차, 좋은 집을 갖기 위해서 한국에서 돈을 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한국에서 생각하지 못했던 어려운 일들을 많이 겪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내 마음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전통적인 스리랑카 불교에서나 다른 나라의 불교에서나 본인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생각을 멈출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어려웠습니다. 다음 생에서 제가 인간이나 다른 중생으로 태어날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고 있습니다. 스님께서는 제가 금생에서 열반을 할 수 있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길을 알려주실 수 있나요?” 

 

“많은 얘기를 나누었는데 처음으로 법에 대한 질문을 하셨네요.(웃음) 우리는 살면서 여러 가지 일을 겪게 되는데, 그 여러 가지 일을 겪는 걸 전생에 지은 죄 때문이라든지 본인의 잘못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건 인도의 전통신앙인 힌두교적인 생각이지 부처님의 가르침은 아닙니다. 우리가 불교신자라면 부처님 법을 이해하고 실천해야 되는데, 힌두교적인 믿음을 부처님 법이라고 오해하니까 헷갈리는 겁니다. 

 


 

제가 즉문즉설을 마친 후 저기 계단을 내려가다가 넘어져서 다리가 부러졌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건 제가 전생에 죄를 지었기 때문일까요? 무슨 잘못을 했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그냥 부주의했기 때문에 넘어진 것이고, 다리가 부러진 건 그냥 사고일 뿐입니다. 그러니 병원에 가서 치료하면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다리가 부러지면 ‘내가 법주사 안 갈 걸 그랬다’, ‘내 뒤에 오던 사람들이 빨리 가라며 재촉해서 내가 넘어진 것이다’, ‘어젯밤에 꿈이 이상하더니 이런 일이 있을 줄 알았다’ 라고 하면서 괴로워하니까 문제입니다. 넘어진 게 문제가 아니라 괴로워하는 게 문제입니다. 

 

넘어져서 다리가 부러졌다고 괴로워 할 일은 아니라는 거예요. 괴로워한다고 다리가 낫는 것도 아니고, 넘어지기 전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다만 치료받는 일입니다. 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든 괴로워하지 않는 게 부처님의 가르침, 즉 열반입니다. ‘죽고 난 뒤에 다시 인간으로 태어나고, 안 태어나고’ 하는 개념이 아니에요. 그러니 질문자는 금생에서 열반을 증득할 수가 있어요. 그런 이치를 정확하게 가르친 것이 부처님 법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늘 ‘뭘 하고 싶다’ 하는 욕구를 따릅니다. 그리고 그 욕구가 이루어져서 기분이 좋아지는 걸 즐거움으로 삼고, 그 욕구가 이루어지지 않아서 기분이 나빠지는 걸 괴로움으로 삼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즐거웠다가 괴로웠다가, 즐거웠다가 괴로웠다가를 반복합니다. 이걸 ‘윤회’라고 합니다. 죽었다가 다시 태어나는 게 윤회가 아니고, 즐거움과 괴로움을 반복하는 게 윤회입니다. 만약 우리가 이 욕구로부터 자유롭다면 괴로울 일도 없고, 즐거울 일도 없습니다. 그것을 해탈과 열반이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질문자는 사장이 월급을 안 준다면 화가 나겠지요? 그게 괴로움이에요. 그런데 사장이 월급을 주면 기분이 좋아지겠지요? 그게 즐거움이에요. 이게 윤회입니다. 괴로워한다고 사장이 월급을 주는 건 아니지요. 그렇다고 ‘월급을 안 줘도 그만이다’라고 생각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괴로워하지 말라는 겁니다. 괴로워하지 말고, 실제 월급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찾으라는 겁니다. 

 

그런데 정말 사장이 돈이 없다면 질문자가 아무리 노력해도 받을 수가 없겠지요. 그럼 포기해야 되겠지요. 그런데 사장이 돈이 있으면서도 안 준다면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든지 해서 받을 방법을 찾아야지요. 안 주면 포기하라는 게 부처님의 가르침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악착같이 받으라는 것도 아닙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내게 주어진 권리는 찾되 괴로워하지는 말라는 겁니다.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하면 질문자가 좋아지겠지요? 또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괴롭지 않는 삶을 살면 질문자의 인생에도 좋겠지요? 그래서 부처님 법이 위대하다는 겁니다. 월급 안 준다고 가만히 있는 게 불자의 태도가 아니고, 그렇다고 막 때려 부수는 것도 불자의 태도가 아닙니다. 계단에서 넘어져서 다리가 부러질 수 있는 것처럼 월급을 못 받는 일이 인생에 있을 수도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 포기하라는 게 아니라 그런 일이 생겨도 마음에는 괴로움이 없어야 한다는 겁니다. 괴로움이 없는 상태에서 월급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노력해서 받으라는 겁니다. ‘모든 것이 다 내가 지은 것’이라는 말은 ‘괴로움은 내가 만든 것’이라는 뜻입니다.”  

 


 

“괴로운 일이 똑같이 반복되면 두드려 부수고 나가야 될까요? 아니면 포기하고 있어야 될까요? 예를 들어 한국 사람들은 술을 마시고 저는 술을 안 마시는데, 한국 사람들이 제가 술을 안 마신다고 뭐라고 합니다. 특히 같은 공장에 한국 직원들이나 사장님은 ‘네가 술을 안 마신다고?’ 하면서 괴롭힙니다. 한국의 어디를 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괴롭힘이 힘들어서 이 회사에서 다른 회사로 가면 거기에도 또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제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건 아무 문제도 아닙니다. 제 얘기를 잘 들어 보세요. 그들은 질문자를 괴롭히려고 그러는 게 아닙니다. 그들은 그들이 하고 싶은 대로 말하고 행동할 뿐입니다. 그러니 그냥 술자리에 참석해서 그들이 술을 주면 같이 ‘건배’하고 받아 마시는 척하면서 그냥 흘려버리세요.(모두 웃음) 

 


 

그렇게 한 번, 두 번, 세 번 반복하면 그들은 질문자를 막 욕하다가 어느 날부터 ‘쟤는 술 주지마. 쟤한테 술 주면 또 옷에 흘려버린다’ 라고 할 겁니다.” 

 

“그런데 친구들이 회사의 반장님한테 얘기해서 자기들은 놀면서 모든 일을 제가 하게 만들었어요. 그래서 저는 지금 심장과 무릎에 문제가 생겨서 병원에 가야하는 괴로운 상태인데, 그들을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니까 질문자는 그들이 나를 괴롭히기 위해서 그런다는 생각을 우선 버려야 합니다. 그들이 그런다고 질문자가 거기에 대응을 하면 질문자는 그들한테 끌려가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들이 어떻게 하든 질문자는 질문자 식으로만 하면 됩니다. 그들이 아무리 마시라 그래도 아까처럼 안 먹는 방법이 있고, 한 잔 먹고 취한 척하고 깽판을 치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럼 그들은 ‘저 친구한테 술 주면 주정한다. 술 주지마라’ 라고 할 겁니다. 아니면 친구들 술 마실 때 질문자는 명상하는 방법도 있지요. 그렇게 질문자가 상황의 주도권을 쥐어야 합니다. 

 

그래서 질문자가 그들 때문에 괴로워할 게 아니라 그들이 질문자 때문에 ‘저 자식은 미쳤다’ 하며 화를 내고 난리를 피우게 됩니다. 그러다보면 그들이 괴로우니까 그만두게 될 거예요. 지금은 질문자가 더 괴로워 하니까 그들은 재미가 나서 자꾸 더 질문자를 괴롭히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그렇게 괴롭게 살아가는데, 지금 이 순간부터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지금 얘기했잖아요. 문제라고 생각했던 일을 ‘별일 아니다’ 이렇게 보면 됩니다. 질문자는 그들의 행동이 나쁘다고 생각하니까 괴로운 거예요. ‘저 사람들의 문화가 저렇구나. 저 사람들은 저렇게 행동하는구나’ 하세요. 그들이 빨간 옷을 입든, 노란 옷을 입든, 술을 먹든 말든, 별 일 아닌 것으로 바라보면 질문자의 마음이 괴롭지 않을 거예요. 

 


 

그리고 그들은 일을 안 하면서 질문자한테만 일을 많이 시킨다고 했지요? 그럼 질문자는 좀 더 일을 하세요. 그게 무슨 문제입니까? 예를 들어 스리랑카에서 1시간 일하면 5불 주는데, 한국에서는 1시간 일하면 10불 주잖아요. 그러니까 일을 조금 더 하게 될 때는 ‘그래도 스리랑카보다는 낫다’ 라고 생각해 버리면 되잖아요. 또 너무 부당하다고 생각되면 ‘이거 잘못됐다’ 하고 시정을 요구하세요. 화가 난다고 해서 회사에 사표 던지고 뛰쳐나오지 말고, 정당한 조건만 계속 요구하세요. 그러면 그들이 못 견뎌서 ‘너 나가라’ 할 겁니다. 그때 나오면 됩니다. 질문자 스스로 나가면 계약위반이지만 자기네가 질문자를 내보내면 자기네가 계약위반을 하는 것이니까 질문자는 다른 데 가서 일해도 되잖아요. 

 

죽은 뒤에 열반을 증득하려고 하지 말고,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는 지금 여기에서 열반을 증득해야 합니다. ‘죽어서 이런 어려운 조건이 없는 세상으로 가겠다’라고 하는 건 부처님의 가르침이 아닙니다. 질문자의 얼굴이 검든 희든, 한국 사람이든 스리랑카 사람이든, 남자든 여자든, 스리랑카에서 살든 한국에 와서 살든, 일이 좀 많든 적든, 돈을 많이 받든 적게 받든, 질문자는 항상 행복할 수가 있습니다. 여기 살아도 행복하고, 스리랑카에 돌아가도 행복하고, 돈을 벌어도 행복하고, 돈을 원하는 만큼 못 벌어도 행복하고, 그렇게 될 수 있어요. 이게 바로 열반입니다. 그게 질문자가 자기 삶의 주인이 되는 길이에요. 조금 나쁜 사장을 만나도 행복하고, 좋은 사장을 만나도 행복해야지 나쁜 사장 만났다고 괴롭고, 좋은 사장 만났다고 즐겁다면 질문자는 죽을 때까지 계속 좋았다 나빴다를 반복하면서 끌려다니는 윤회의 괴로움을 겪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부당한 일을 당했더라도 질문자의 마음이 일단 괴롭지 않은 상태에서 자꾸 개선을 해나가야 돼요. 예를 들어 그들이 노동법을 어기면 개선을 요구해야 돼요. 그러나 그것으로 힘들어 하지는 마세요. 우리 인생이라는 게 죽을 때까지 늘 그렇게 부당한 것을 개선해 가면서 사는 겁니다. 아무 일도 안 생기고 편안한 건 진짜로 잘 사는 게 아니에요. 그것은 죽은 시체와 다를 바 없어요. 해탈과 열반은 내 삶 속에서 지금 실현할 수가 있는 겁니다.”(모두 박수)  

 

질문한 분은 활짝 웃으며 스님에게 감사 인사를 했습니다. 모두들 스님의 답변이 너무 좋았다며 큰 박수갈채를 보냈습니다. 

 

답변을 모두 마치니 어느덧 약속한 2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은 어떤 상황에 처하든 행복은 내 마음에 달려있다며 다시 한 번 용기와 희망을 불어넣어 주었습니다. 

 

“여러분들의 생활이 많이 어렵다는 것을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스스로 선택해서 한국에 오셨잖아요. 누가 여러분들을 강제로 한국으로 추방했거나 누가 강제로 데려온 게 아니라 여러분들이 자발적으로 온 거잖아요. 막상 한국에 와 보니까 생각했던 것과 다르지요? 그런데 한국은 원래 이랬어요.(모두 웃음) 

 


 

여러분은 스리랑카에서 한국을 너무 좋게만 생각했던 거예요. 한국 사람들도 지금 한국에서 사는 게 힘들어서 죽겠다고 난리예요. 그런데 여러분 같은 외국인들이 와서 어떻게 행복하기만 할 수 있겠어요? 여러분이 외국인이기 때문에 괴로운 게 아니에요. 여러분한테 한국시민권만 준다면, 한국사람 만큼만 월급을 준다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 같지요? 그런데 지금 한국 젊은이들은 여러분들보다 더 괴로워하면서 살아요. 한국 젊은이들은 시민권도 있고, 월급도 더 많이 받는데 왜 그럴까요? 여러분은 직장이라도 있지만 한국 젊은이들은 지금 절반이 직장도 없어요. 그러니 괴롭게 살 거냐, 행복하게 살 거냐 하는 건 다 우리 마음에 달린 문제입니다. 

 


 

여러분이 친구도 없고 말도 안 통하는 한국에 와서 사는 게 힘든 건 너무 당연한 거예요. 그래서 여기 올 때는 이미 힘들 것을 각오하고 왔어야 하는 겁니다. 제가 볼 땐 여러분이 한국을 지나치게 좋게 생각하고 왔기 때문에 지금 힘든 것 같아요. 어떤 나라에 가더라도 돈 빌려주고 안 갚는 사람이 있고, 일 시키고 돈 안 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한국만 그런 게 아니에요. 스리랑카에도 그런 사람이 있어요. 그런데 또 스리랑카에만 좋은 사람이 있는 게 아니라 한국에도 좋은 사람이 많습니다. 이 세상이라는 게 그렇게 생겼어요. 우리는 그 속에서 살아가는 겁니다. 이런 속에서도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바랍니다.”(모두 박수)

 

박수와 함께 강연을 모두 마쳤습니다. 어디를 가든 행복은 내 마음에 달려있다는 말씀이 오래도록 가슴에 남았습니다. 

 


 

강연이 끝나자마자 질문을 했던 분에게 다가가 스님의 답변을 들은 소감을 물어보았습니다. 밝게 웃으며 편안해진 얼굴로 대답해 주었습니다. 

 


 

“그동안 힘들었던 저를 편안하게 해준 선물과도 같은 하루였습니다. 불교에 대해 전통적으로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닌 새로운 사고를 처음으로 하게 된 것 같아요. 스님이 얘기해 준 관점으로 다시 바라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오늘을 준비해 준 스님과 봉사자들 모두 너무 고맙고, 오래오래 좋은 가르침 많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함께한 80여 명의 외국인 노동자 분들도 모두 같은 마음이었을 겁니다. 스님은 버스를 타기 위해 미륵전을 나오는 외국인 노동자 분들의 손을 꼭 잡아주었습니다. 스님과 봉사자들이 준비한 오늘 하루가 이국 땅에서 받았던 서러움을 조금이라도 덜어내는 작은 계기가 되었길 기원해 봅니다. 

 

법주사를 나온 스님은 법주사를 드나드는 옛길인 고불고불한 말티재를 지나 대전으로 향했습니다. 180도로 꺽어지기를 수차례 반복하는 고개길을 다 내려오고나니 그제서야 ‘아, 그래서 속세를 떠난, 속리산이구나’ 하고 느낄 수 있었습니다. 

 


▲ 속리산 말티재

 

대전에서 한 차례 미팅을 가진 후 연수원으로 사용할 건물을 몇 개 둘러보고 밤 10시에 울산 두북에 도착했습니다. 내일은 두북에서 하루 종일 농사일을 하다가 서울로 올라갈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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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댓글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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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잔

몇일째 뭐가 맘에 안들어서 무기력하고 처저 있습니다. 이 글이 완전하게 치유는 안되었지만, 기방싸들고 도서관에 갑니다. 감사합니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좋은차 좋은집을 가지고 싶어서 한국에 왔다는 말이...... 지금 저한테 도움이 되었네요. 어떤 사람에게는 한국이 좋은차 좋은집을 가지기 위해서 올 정도로 기회의 땅이였지...

2016-04-01 22:59:50

최경희

오늘은 제가 자원봉사자로 동행하고싶은 욕심이 납니다.가까이서 스님을 뵙고자 하는...수행의 기준은 자신에게로 향해야 하는데 나도 모르게 직장동료들에게로 향해할 때가 있습니다. 그들이 불쌍하고 답답하다는 생각이 순간순간일어나는 하루였습니다. 스님의 법문으로 일용할 양식을 얻는 중생이 감사인사를 드립니다^o^

2016-03-29 22:46:59

묘음성

스님 따뜻한 말씀 감사하게 읽었습니다. 스님 말씀이 필요한 분들께 좋은 말씀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2016-03-29 17: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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