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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전북 익산시에서 ‘즉문즉설과 통일이야기’를 주제로 강연을 했습니다.
아침 7시부터 오전 내내 평화재단에서 회의와 미팅을 가진 스님은 오후에 치과 진료를 받은 후 3시 30분에 강연이 열리는 전북 익산으로 향했습니다. 강연은 익산시 솜리문화예술회관 중공연장에서 열렸습니다. 스님이 도착하자 입구에서부터 많은 봉사자들이 표지판을 들고 길안내를 하고 있었습니다.
▲ 익산시 솜리문화예술회관
저녁 7시가 되자 통일의병 소개 영상이 상영된 후 스님이 무대 위로 걸어나왔습니다. 행사장을 가득 메운 600여 명의 익산 시민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를 보내며 환영을 해주었습니다.
스님은 간단히 오늘 강연의 취지를 이야기하며 환한 웃음과 함께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오늘 이 강연은 ‘새로운 백년을 여는 통일의병’에서 주최한 강연입니다. 왜 이런 강연을 열었을까요? 통일의병 운동에 많이 참여하라는 뜻이겠죠. 그래서 오늘 강의 주제도 원래는 통일인데, ‘통일 얘기만 하면 사람들이 많이 안 온다. 스님의 장기인 인생사도 같이 얘기해 주면 좋겠다’ 하는 요청이 있어서 통일 얘기뿐 아니라 인생 얘기도 해 보려고 합니다. 그러니 오늘 인생사에 대해 질문하는 사람은 원래 취지에 안 맞지만 해 주는 거니까 반드시 통일의병에 가입을 해야 합니다.(모두 웃음)
그래서 오늘은 통일 얘기 들으러 온 사람도 인생 얘기를 좀 들어야 하고, 인생 얘기 들으러 온 사람도 우리 모두의 문제인 통일 얘기를 들으면서 함께 공부를 하면 좋겠습니다.”
스님 말씀처럼 개인 고민, 통일에 대한 관심 등 다양한 요구를 갖고 강연장을 찾았지만, 모두들 강연의 취지에 공감하며 끝날 때까지 어떤 주제의 이야기가 전개되든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강연장 입구에는 질문을 신청하는 코너가 마련되어 있었는데, 많은 분들이 질문지함에 질문을 넣어주었습니다. 분홍색 질문지에는 통일 문제에 대한 질문이, 노란색 질문지에는 개인 고민에 대한 질문을 적게 했습니다. 스님은 두 가지 색깔을 번갈아가며 뽑으며 통일 이야기와 개인 고민을 적절히 석어가며 흥미있게 강연을 이끌어 갔습니다.
▲ 질문지함
총 6명이 스님에게 질문을 했는데 마지막에 질문자로 뽑힌 분의 질문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본인은 통일이 정말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하면 통일에 무관심한 국민들로 하여금 통일의 필요성을 가슴으로 느끼게 할 수 있는지 그 방법을 알고 싶다며 간곡한 어투로 질문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통일인데 대부분의 국민들이 머리로만 생각할 뿐인 것 같아요. 통일이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사실을 가슴으로 느낄 수 있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잠자는 국민들의 의식을 어떻게 하면 깨울 수 있을까요?
평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스님의 모습이 항상 존경스러운데, 스님께서는 생활 속에서 평화를 실천하기 위해 어떤 행보를 걷고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 듣고 싶습니다.”
“통일과 평화의 필요성을 의식이 아니라 마음으로 느낄 수 있게 해달라고 하셨는데, 그것은 여러분들의 세대에서는 불가능합니다. 마음으로 느낄 수 있으려면 전쟁을 경험해야 합니다. 전쟁이 일어나서 가족들이 죽고, 자식을 등에 업고 배를 타고 일본으로 도망을 가든지, 국경을 넘어 중국으로 가든지 해서 그 나라에서 온갖 차별을 받으면서 자신이 직접 전쟁의 고통을 겪어보면 평화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생각이 아니라 가슴으로 느낄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세대는 태어나서 지금에 이르도록 통일과 전쟁을 겪은 적이 없잖아요. 피난을 가본 적도 없잖아요. 그러니 통일과 평화의 필요성을 느낄 수가 없어요. 그것을 느끼게 해달라는 것은 불가능한 요구예요.”
“전쟁의 고통을 직접 겪어보지는 못했지만, 요즘 다들 가정마다 위기이기 때문에 가정 속에서는 끊임없이 전쟁을 경험하고 있기 때문에... 가정 안에서는 평화의 필요성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그렇다면 이런 건 느낄 수 있겠죠. 수많은 사람들 중에 나는 네가 좋고 너는 내가 좋다 해서 만났고, 그렇게 만나서 한 이불 밑에 잠까지 같이 자고, 아이까지 낳아서 키우면서도 서로 싸우잖아요. 그러니 ‘아, 부부간에도 사람이 서로 싸우니까 이웃집 간에 싸우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이렇게 될 수 있죠. 정치인들이 싸우는 것이 이해가 안 되다가도 우리집 싸우는 거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가 된다, 스님들끼리 싸우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된다, 남북 간에 싸우는 것도 이해가 된다, 이렇게 이해를 할 수 있죠. 이해가 되면 번뇌가 안 생깁니다.
그런데 저 같은 스님 입장에서는 부부가 한 이불 밑에서 같이 자기도 하면서 서로 싸운다는 것은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일입니다. 여러분들은 스님들이 서로 싸우는 것이 이해가 안 된다고 하는데, 저는 스님들이 싸우는 것은 너무 너무 이해가 됩니다. 오히려 부부가 싸우는 것을 보면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 싶거든요. 그러니 평화를 위해서는 ‘우선 나부터 나와 다른 이 남자를 이해해야 되겠다’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평화를 외치기 전에 내가 먼저 빛이 되라는 말씀이시죠?”
“빛까지 되려고 할 필요는 없어요. 욕심도 많네요. 그게 문제에요. 이해만 하면 됩니다. ‘저 남자는 나와 다른 집에서 자랐으니 사고 방식이 다르구나, 취미가 저렇구나, 생각이 저렇구나, 관점이 저렇구나’ 이렇게 이해하면 싸울 일이 없어져요. 내가 낳아서 키운 자식도 이해가 안 될 때가 있잖아요. 내 마음대로 키웠는데도 이해가 안 되잖아요. 하물며 남편을 어떻게 내 마음대로 하겠어요? 이렇게 이해의 폭을 넓혀가야 합니다. 나와 다른 것을 인정하고 이해하면 상대를 안 고쳐도 갈등이 점점 줄어들어요. 그런 것을 경험하면서 평화를 만들어가는 겁니다.
평화를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첫째, 취미가 다르든 생각이 다르든 그 다름을 인정해야 합니다. 틀렸다고 규정하면 안 돼요. 둘째, ‘그 사람 입장에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구나’ 하고 이해해야 합니다. 기독교인들이 막무가내로 말하는 것을 보면 불교 신앙의 입장에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됩니다. 그러나 유일신을 믿는 그들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저렇게 말할 수가 있겠구나’ 하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남북 간에 교류를 하기 위해서도 ‘내가 북한에 두 번 갔으면 너도 한 번 남한에 와라’ 이런 식으로 접근하면 교류가 안 됩니다. 왜냐하면 북한은 우리와 시스템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내가 북한에 열 번쯤 가줘야 그들은 한 번 와 줍니다. 저도 교회 목사님들과 교류할 때 그랬습니다. 목사님이 저희 절에 오기 전까지 제가 교회에 열 번도 더 찾아갔습니다. 그 정도 되어야 교류가 시작됩니다. 왜냐하면 신앙의 형태가 다르기 때문에 하나 주고 하나 받는 일대일 방식으로는 교류를 못 합니다. 기독교가 나빠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신앙의 형태가 그렇거든요. 그런 관점에서 인정하고 이해하면 교류가 가능해집니다. 상대의 성질을 이해하고 거기에 맞춰서 문제를 풀어나가는 겁니다.
교류를 할 필요가 없다면 안 하면 되겠죠. 그러나 제가 우리 나라의 보수 세력이나 기독교인들과도 교류를 하는 이유는 뭘까요? 저는 통일을 위해서 북한과도 교류를 해야 한다고 얘기하는 사람인데 하물며 어떤 보수세력과도 대화를 못하겠으며 어떤 기독교인들과도 대화를 못하겠습니까? 우리는 지금 미래를 위해서 우리를 36년간 식민지배했던 일본과도 교류 협력을 하고 있고, 6.25전쟁 때 100만 대군을 보내 우리와 싸웠던 중국과도 교류 협력을 하고 있잖아요. 그런데 왜 일본과 중국하고는 교류 협력을 하면서 제 동족인 북한과는 교류 협력을 안 하려고 하고, 같은 나라 안에서 살고 있는 진보, 보수와는 대화를 안 하려고 하고, 같은 종교 안에서 기독교, 불교가 왜 대화를 안 하려고 해요?
그러면서 또 통일은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럼 이 때의 통일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네 것은 없애고 내 식으로 하자는 겁니다. 소위 적화통일, 승공통일 하자는 것이니 적절치 않습니다. 그냥 각자 자기 좋은대로 하고, 갈등하는 것보다는 협력하는 것이 나으니 연대를 하자, 이렇게 다가가야 합니다. 그런데 대부분 ‘네가 먼저 그랬지 않느냐’ 이렇게 나옵니다. 부부싸움 할 때도 늘 하는 얘기가 ‘당신 결혼 할 때 나한테 뭐라고 그랬어?’ 이겁니다. 이런 태도 때문에 대화가 안 되고 문제가 안 풀립니다.
전쟁을 체험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쥐약을 꼭 직접 먹어서 죽었다가 깨어나 봐야 쥐약은 먹으면 안 된다 하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안 먹어보고도 다른 사람이 죽는 것을 보면 알 수가 있잖아요. 이것이 사람과 짐승이 다른 점이란 말이에요. 남의 경험을 보고 유추해서 ‘저건 먹으면 안 되겠구나’ 하고 알기 때문에 인간은 지혜롭다고 말하는 겁니다.
그러니 지금 중동에서 일어나고 있는 시리아 사태를 한번 보세요. 같은 회교도 안에 시아파와 수니파라고 해서 서로 종교가 다르죠. 쿠르드족과는 서로 종족도 다르죠. 그러니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어요. 우리는 같은 민족인데도 서로 갈등이 생기는데, 시리아는 서로 종족도 다르고 종교도 다르기 때문에 갈등이 생기는 것이 너무 당연한 겁니다. 그런데 서로 자기 주장대로 하려고 하다 보니 전쟁까지 하게 되고 결국은 외세가 개입하게 됩니다. 전쟁이 나서 국민들은 국경을 탈출해서 난민이 되고, 또 유럽으로 간 난민들은 얼마나 천대를 받았습니까. 어린 아이들이 배 타고 가다가 죽는 모습 보셨죠? 우리도 전쟁이 나면 그런 꼴을 당하게 됩니다.
안에서는 싸울 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밖에서 보면 바보 같은 짓이에요. 시리아 사람들도 자기들 안에서는 다 싸울 만한 이유가 있어요. 그래서 한 쪽은 러시아 쪽에 서고, 한 쪽은 미국 쪽에서 서서 서로 싸우다가 1차 휴전 협정을 맺었는데, 그래도 또 싸우면 다음 단계는 뭘까요? 지역을 분할 점령하는 겁니다. 우리도 북한 문제가 안 풀리니까 이제 북한을 미국, 중국, 러시아, 남한 4개국이 분할 점령하자는 제안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제안이 담긴 보고서가 얼마 전 해킹이 되어 언론에도 보도되었습니다. 이해관계가 서로 상충되는 속에서 전쟁을 하면 다 피해를 보니까 강대국들 입장에서는 분할을 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겁니다.
우리가 전쟁을 경험하지 않아도 조금만 눈을 돌려 다른 나라를 보면서 우리에게 적용해 보면 ‘문제가 안 풀리니까 강대국들은 결국 분할해서 해결하려고 하는구나’ 하고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일본이 패망하고 전후 처리를 어떻게 했습니까. 일본은 미국이 관할하고, 만주는 소련이 관할하기로 했는데, 한반도는 미국과 소련의 이해가 상충되니까 38도선을 잘라서 북쪽은 소련이, 남쪽은 미국이 관할하기로 한 겁니다. 그렇게 관할하다가 물러나기 전에 자신들이 지지하는 정권을 각각 세웠고, 그것이 지금까지 흘러온 겁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통일이 정말 필요한 것인데, 일반 국민들에게는 통일이 나와 상관 없는 일처럼 느껴진다는 거죠. 나와 상관이 있다는 것을 좀 일깨워주시면 좋겠어요.”
“나와 상관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게 너무 당연해요. 그 이유는 첫째, 만약 여러분들이 통일된 사회에서 태어나 자라다가 스무살이 되어 분단이 되었다면 분단된 것이 불편하기 때문에 경험적으로 통일의 필요성을 느낄 수 있겠죠. 그런데 여러분 모두가 분단된 후에 태어났잖아요. 둘째, 분단된 상태로도 우리가 발전을 했잖아요. 경제적으로도 성장했고, 정치적으로도 민주화가 진전이 되었어요. 여러분들은 분단된 상태에서 태어났고, 분단된 상태에서도 대한민국은 발전했기 때문에 아무리 통일을 얘기해도 무의식 세계에서는 의미있게 다가오질 않는 거예요.”
“그렇다고 해도 통일의 필요성을 피부에 와닿게 얘기할 수 있잖아요. 통일이 이뤄지면 자녀들이 대학을 무료로 다닐 수 있다든지요.”
“그건 거짓말이에요. 피부에 안 와닿는 얘기예요. 통일이 된다고 대학을 무료로 다닐 수 있지는 않아요. 통일이 안 되어도 지금이라도 대학은 무료로 다닐 수 있게 할 수 있어요. 제 얘기는 우리 국민들에게 통일이 염원으로 다가오지 않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겁니다. ‘왜 너희는 통일을 염원하지 않느냐?’ 이렇게 말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분단된 속에서 자랐기 때문에, 그리고 분단된 상태에서 발전해 왔기 때문에, 의식은 통일해야 된다고 알지 몰라도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만 잠시 공감이 되고, 나머지 일상에서는 잊어버릴 수 밖에 없는 것이 우리들의 처지입니다. 그러니 사람들이 통일을 염원하지 않는다고 나무라면 안 된다는 겁니다. 오늘날 대한민국 사람들의 의식 구조가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친구들한테 통일 이야기를 하면 ‘쓸 데 없는 소리 한다’ 하고 나오는 걸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현실을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즉 지난 50년 동안은 분단된 상태로도 발전해 온 것이 사실이에요. 그런데 앞으로도 분단된 상태에서 계속 발전할 수 있겠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태어나서 20년 동안 살면서 한 해 마다 계속 키가 컸잖아요. 그렇다고 해서 서른 살 마흔 살까지 계속 키가 크지는 않잖아요. 스무 살까지 키가 큰 건 맞지만 그 이후에는 키가 안 크고 더 줄어들 수도 있는 겁니다. 그것처럼 지금까지 성장해 온 것은 맞아요. 민주주의도 발전해 온 것이 맞아요. 그런데 최근 몇 년 동안은 민주주의가 더 이상 발전되지 않고 있잖아요. 대통령이 나빠서가 아니라 발전이 안 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고, 경제가 성장 안 되는 것이 현실이에요. 앞으로도 경제가 성장이 안 될 수 있고, 민주주의도 더 이상 발전을 안 할 수 있고, 어쩌면 경제는 더 쪼그라 들 수 있고, 민주주의도 약간 후퇴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성장동력이 소진되었다고 표현합니다. 인구 구성에서도 노인이 많아지고, 사회복지에 대한 요구도 커지고, 국제적인 경제 환경도 나빠지고, 국방비도 늘어나고, 이런 것들이 성장 동력이 소진되었다는 증거입니다. 대통령이 바뀐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에요.
그런데 좀 더 성장하고 싶은 게 우리의 염원이잖아요. 그럼 해결책을 찾아야겠지요. 옛날처럼 될 수는 없지만 3% 내지 5% 성장은 아직 가능성이 있어요. 가장 쉬운 방법은 양을 좀 늘리는 것, 즉 경제의 규모를 조금 키우는 거예요. 서부개척이 미국에 활력을 불어넣었듯이, 북한개발이 우리에게 활력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럼 ‘북한을 먹여 살리려면 돈이 들 거 아니냐?’ 하고 문제제기를 하는 사람도 있을 거예요. 그런데 ‘북한을 우리가 먹여 살린다’ 하는 관점에서 보면 양식 값이 많이 들겠지만 북한사람들이 그거 먹고 월급 30만 원만 받고 노동을 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러면 지금 우리 중소기업이 인건비 때문에 여기서 운영을 못하고 외국으로 나가거나 외국인노동자를 데려다 쓰는데, 차라리 북한으로 가서 사업을 하면 우리의 자본 및 기술과 북한의 자원 및 노동력이 결합을 하면 북한은 우리가 30년 전에 그랬던 것처럼, 또는 오늘날 중국과도 같은 생산기지가 될 수 있어요. 또 북한에 공장을 설립하려 해도 돈이 들겠지요? 그런 돈은 빌려도 되잖아요. 생산해서 나중에 갚으면 되니까요. ‘통일비용이 든다’는 말은 맞는데, 그건 대부분 생산에 드는 돈입니다.
이렇게 되면 경제규모는 전체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거예요. 북한개발이라는 건 꼭 통일이 되어야지만 가능한 것이 아니고, 통일에 준하게 남북의 협력관계만 이루어져도 일단 뚫리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경제문제도 풀리고, 평화문제도 풀리고, 국방예산도 줄일 수 있을 거예요. 줄인 국방예산은 복지기금으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남북을 잘라서 경제가 더 안 되도록 하고, 국방비는 더 늘리고, 그럼 복지비는 더 없고, 성장은 더 안 되니까 세금은 안 걷히고, 이러면 우리는 더욱 정체가 되지요. 이걸 조금만 생각해 보면 통일은 우리에게 새로운 기회예요.
같은 민족이니까 통일하자는 것도 아니고, 북한을 위해서 통일하자는 것도 아니에요. 우리가 지금 이 난관을 극복하려면 통일밖에는 길이 없다는 거예요. 그런데 왜 그걸 안 하려는 거예요?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요. 제가 생각할 때 그 이유는 두 가지예요. 하나는 바보라서 그런 것이고, 하나는 워낙 보살심이 많다 보니 북한을 중국에 주려고 그런 거예요. 지금 중국한테 ‘너희가 북한을 컨트롤하라’ 하고 있잖아요. 북한정권이 지금 이대로 버티면 갈등이 계속될 겁니다. 이런 갈등 속에서 북한에서 레짐 체인지가 이루어지면 친중정권이 들어서게 됩니다. 친중정권이 들어서면 중국 입맛에 맞으니까 남북 간에 평화는 오겠지만 통일은 물건너가요. 그리고 북한은 중국의 자원공급국, 소비시장, 값싼 노동력 제공국이 되겠죠. 그게 좋다면 그렇게 하세요. 그런데 그러면 우리는 출구가 없어요. 그냥 섬이 되는 거예요. 미중 사이에 계속 갈등이 생기면 우리는 미일동맹체제에 의해서 미국의 대중방어전선의 일선에 서게 되고, 북한은 중국의 대미방어전선의 일선에 서게 될 테니까 남북은 계속 갈등할 수밖에 없고, 우리와 중국의 관계는 더 나빠지겠지요.
그러면 어떻게 될까요? 경제는 더 안 좋아지고, 안보는 더 위협받을 겁니다. 우리가 사드를 배치해서 날아오는 미사일을 막는다고 하는데, 중국 사람들이 ‘사드는 북한 때문이 아니라 우리 때문에 하는 거다’라고 생각하면 중국을 막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만 중국은 공격을 할 때 우리한테 초점을 맞출 테니까 우리의 안보는 더 위험해지지요. 돈은 돈대로 들고, 안보는 안보대로 위험해지는 거예요. 그러니 이렇게 가는 건 어리석은 거예요.
그런데 이걸 바로 잡을 사람은 이제 국민밖에 없어요. 기득권 세력은 남북관계에 긴장이 조성되어야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할 수가 있어요. 그래야 군인들은 예산을 많이 확보할 수 있고, 그래야 미국은 한국에 무기도 많이 팔면서 영향력도 가질 수가 있어요. 그러면 결국 손해는 우리 대한민국이 보고, 그 안에 사는 국민들이 보는 거예요. 남북 간에 갈등이 심해지면 김정은 정권도 체제 유지하기가 쉬워져요. 이런 걸 정말 우리 국민이 원하는 걸까요?
우리가 대한제국 말기에도 봤듯이 이렇게 하는 게 해결책이 아니라 나라를 망치는 길이고, 국제정세 하에서 우리의 주도권을 빼앗기는 일임을 이미 경험했잖아요. 동학혁명이 일어나서 새로운 세상을 꿈꾸니까 우리나라 권력층은 청나라를 끌어들여서 막았고, 그러니까 일본이 자동으로 개입했지요. 지금 우리가 미국을 끌어들이니까 중국이 개입을 하듯이 말이에요. 그래서 지금 우리와 관계없이 미중 저희끼리 협의해서 사드배치를 논하잖아요. 결국 대한제국 말기에 어떻게 되었습니까. 청나라와 전쟁을 해서 일본이 이기니까 일본이 우리 나라를 합방시켰잖아요. 그런데 미국이 간섭하니까 필리핀은 미국이 갖는 걸 인정해 주고, 우리 나라는 일본이 갖겠다고 일본과 미국이 협상한 게 바로 카쓰라-테프트 조약입니다.
그러니까 미국은 한 번은 일본과 협상해서 한국을 일본 식민지로 인정해 줬고, 한 번은 소련과 협상해서 남북을 분단시켰고, 이번엔 중국과 협상해서 북한 핵무기만 제거하면 중국이 관할해도 좋다고 타협할 가능성이 높아졌어요. 그래서 미국은 마치 부모가 나를 보호해 주기도 하지만 내 인생의 간섭자인 것처럼 우리의 은인이기도 하지만 장애이기도 합니다.
이런 현실을 알고 우리가 새로운 세상을 꿈꾸자는 겁니다. 사실 이건 새로운 건 아니에요. 조금만 상식이 있으면 우리가 앞으로는 통일의 길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문제를 풀 사람은 국민 외에 누구도 없어요. 그러니까 국민이 자발적으로 일어나서 이런 쪽으로 가자는 게 통일의병운동입니다. 오늘 강의 듣고 다 통일의병에 가입하시겠어요?”
“예.”(모두 박수)
“이렇게 남북이 협력을 하면 남북이 다 살 수 있습니다. 통일 한국은 통일 한국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일본과 중국, 미국과의 주변정세를 잘 활용하면 동아시아가 평화와 협력의 공동체로도 발전해 갈 수 있어요. 그렇게 협력공동체가 되면 동아시아 시대가 도래합니다. 다시 말하면 문명의 중심이 유럽에서 미국으로 갔다가 동아시아로 온다는 겁니다. 1세기 안에 동아시아 시대가 도래할 수 있도록 하고, 그 동아시아의 중심국가가 한국이라면, 한국은 세계문명의 중심이 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통일이 되면 그런 가능성이 열리는데, 통일이 안 되면 미중의 세력균형을 위한 힘겨루기에서 우리는 충돌지점이 되어 분단, 분열, 분쟁이 계속되는 1세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우리는 지금 이런 선택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나라를, 어떤 가능성을 후손들에게 물려주느냐 하는 것은 전적으로 우리의 선택이에요. 피부로는 못 느끼더라도 조금만 생각하면, 즉 내가 쥐약을 먹어보진 못 했지만 먹고 죽는 걸 보면서 ‘먹으면 안 되겠구나’ 하는 걸 알 수 있듯이, 감정보다는 이성적인 판단이 중요하고, 그에 따른 우리의 실천적 행동이 필요함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그런 희망을 함께 만들어 봅시다.”
스님의 명쾌한 답변에 질문자도 청중들도 뜨거운 박수갈채를 보냈습니다. 무엇보다 국민들이 통일에 무관심한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는 현실 인식 위에서 해법을 찾아가는 모습이 감명 깊었습니다.
스님이 열정적으로 강조한 통일의 희망을 듣고 나니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습니다. 2시간 40분 동안 오롯이 스님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던 청중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그 감동을 그대로 이어서 ‘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를 함께 불렀습니다. 사이 사이에 중고등학생들과 대학생들도 많이 자리해 더욱더 의미있는 순간이 되었습니다.
▲ '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 다함께 합창
강연을 모두 마치고 로비에서는 책 사인회가 열렸습니다. 청중들은 사인을 받으면서 열정적으로 강연을 해 준 스님에게 감사 인사를 많이 했습니다.
▲ 책 사인회
그리고 스님은 오늘 강연을 준비한 광주전라본부 통일의병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아직은 수가 적지만 이분들이 씨앗이 되어 광주전라지역 전역에 통일의 기운이 퍼져나가길 기원해 봅니다.
▲ 광주전라지역 통일의병 모임
집으로 돌아가는 익산시민들을 향해 통일의병들은 ‘익산 통일시민학교’가 개최된다는 사실을 열심히 알리며 참가신청자 접수를 받았습니다. 많은 분들이 참가신청서를 내고 돌아갔습니다.
▲ 익산 통일시민학교 신청을 받고 있는 통일의병들
강연장을 나온 스님은 곧바로 울산 두북으로 향했습니다. 내일은 JTS 안산 다문화센터 주관으로 동남아에서 온 외국인노동자들과 함께 속리산 법주사로 봄나들이를 함께 다녀올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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