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6.3.24 (오전) 경기여고 동문회 카톨릭 모임 초청 강연


 

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70대 어르신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을 했습니다. 

 

아침 10시에 경기여고동문회 카톨릭 모임에서 초청한 강연에서 ‘행복’을 주제로 즉문즉설 강연을 한 후 오후 4시에는 전주 우석고등학교 초청으로 교사들을 대상으로 즉문즉설 강연을 했는데요. 먼저 70대 어르신들과 함께한 카톨릭 모임 초청 강연 소식부터 전해 드립니다.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 서울공동체 대중들과 함께 법당에서 예불을 함께 올린 후 아침 9시 30분에 초청 강연이 열리는 경기여고 100주년 기념관으로 향했습니다. 

 


 

스님이 기념관 앞에 도착하자 경기여고 카톨릭 모임의 우선희 회장님이 반갑게 스님을 마중해 주었습니다. 우선희 회장님의 남편 되시는 분이 윤여준 전 장관님인데 스님과 윤 전 장관님은 한반도의 평화와 사회적인 진보를 위해 십 수 년째 활동을 함께해 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난해 봄에 사모님의 간곡한 부탁으로 오늘 초청 강연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강당을 가득 메운 100여 명의 동문회 참석자들은 스님이 들어서자 열렬한 박수로 환영을 해주었습니다. 참석자들은 대부분 머리가 희끗한 어르신들이었습니다. 

 


 

스님은 어르신들에게 옛날 기억을 한번 떠올려 보라고 하면서 옛날보다 지금이 경제적으로 더 나아졌음에도 불구하고 과연 행복한지 질문을 던지며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저는 어떤 지식적인 것을 갖고 여러분들과 얘기할 만큼 수준이 깊지 않습니다. 저는 산골에서 태어나서 고등학교 다니다가 절에 들어왔기 때문에 세상의 교육을 많이 받지 않았습니다. 소위 신부님들은 유학도 다녀오고 하잖아요. 다만 인생을 살아가면서 우리가 어떻게 하면 조금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느냐 하는 것에 대해 대화를 해보고자 합니다. 

 


 

돈이 많으면 행복하다는 말이 일리는 있습니다. 그러나 정말로 돈이 많은 사람들이 행복하던가요? 저도 돈 많은 사람들을 상담해 보지만 그렇게 행복하지는 않은 것 같아요. 짧게만 보면 지위가 높으면 행복할 것 같은데, 지위가 높은 사람들을 만나보면 행복하다고 도저히 말할 수 없는 많은 괴로움을 갖고 있습니다. 

 

다들 연세가 있으시니까 50년 전을 기억하시죠? 1960년대에 우리나라 국민소득이 1인당 100불 정도 되었습니다. 지금은 2만 8천불까지 되었지 않습니까. 약 300배 가까이 늘었잖아요. 그런데 우리 삶이 300배 행복해졌습니까? 여러분들 할머니보다 여러분들이 300배 행복해졌습니까. 300배는 고사하고 30배 행복해졌습니까? 30배는 고사하고 3배는 행복해졌습니까? 

 


 

여러분들도 오래 사셨으니까 과연 어떻게 해야 행복해질까, 어떻게 해야 자유로워질까, 죽음 앞에서도 두렵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 주제로 대화를 나눠보았으면 합니다.”

 

이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대화를 연 후 곧바로 질문을 받았습니다. 총 3명이 질문을 했습니다. 참석자들이 모두 천주교 신자들이어서 그런지 모두 윤리 도덕에 대한 질문이었습니다. 선의의 거짓말을 해도 되는지, 거짓말로 인해 가족이 고통을 당하게 되는 일은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사람을 위해 안식일이 있는 것인지 안식일을 위해 사람이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는 문제 제기 등 각각에 대해 스님은 윤리 도덕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에 대한 다양한 비유를 들어가며 답변을 해주었습니다. 그 중 첫 번째 질문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저는 보기에는 솔직 담백한 것 같아도 지난 77년 동안 거짓말을 참 많이 하고 자라왔어요. 거짓말이라고 하면 빨간 거짓말, 하얀 거짓말이 있다고 하잖아요. 이 거짓말을 해서 상대방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으면 하얀 거짓말이라고 하고요. 저희 옆집에 여호와의 증인 신도가 사는데 어제가 자기네들 예수 신앙 기념일이라고 해요. 그래서 저보고 같이 가자고 하기에 저는 천주교인이니까 가기가 싫었어요. 그 때 제가 솔직하게 말하지 않고 성당에서 특강이 있어서 못간다고 거짓말을 했어요. 사실은 가기가 싫었는데 말이죠. 이럴 때 제가 아무런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것이 괜찮은지요?” (질문자 웃음)

 

“괜찮아요. 왜 괜찮냐 하면 베드로님께서도 하루 저녁에 세 번이나 자신이 예수님의 제자임을  부인했는데 그래도 성인이 되셨잖아요. 그 때 ‘나는 예수님의 제자이다’ 하고 말하고 죽는 것이 나았을까요? ‘아니다’ 라고 부정하고 살아서 이 진리를 조금 더 널리 전하는 게 나았을까요? 어느 것이 더 낫다고 반드시 말할 수는 없어요.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첫째, 상대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말이든지 할 수 있는 자유가 있습니다. 그런데 상대에게 괴로움이나 손해를 끼칠 자유는 없어요. 만약 산 속에서 혼자 산다면 욕을 하든지 무슨 말을 해도 괜찮습니다. 욕이라는 것 자체가 성립이 안 되니까요. 만약 외국 사람이 운전하는 자동차와 충돌해서 기분이 나쁠 때 생글생글 웃으면서 ‘이 새끼, 저 새끼’ 그러면 어떨까요? 그 외국 사람한테는 욕이 안 됩니다. ‘이 새끼’ 라는 것이 욕이 아니라 내가 욕이라고 느껴야 욕이 되는 겁니다. ‘이 새끼’라는 말은 하나의 언어일 뿐입니다. 욕이라고 정해진 것이 없어요. 말일 뿐이에요. 말인데 그것을 내가 욕이라고 생각하면 욕이 되는 거예요. 

 

남이 나를 욕해도 내가 욕이라고 생각을 하지 않으면 욕이 안 되고, 남이 나한테 욕을 안 해도 내가 욕이라고 생각해버리면 욕이 되는 겁니다. 그러니 이 세상에는 내가 욕을 안 했는데도 욕을 했다고 시비가 일어날 때도 있고, 내가 욕을 했는데도 상대가 웃으면서 그냥 농담으로 받아들이면 아무런 문제도 안 생길 때가 있습니다. 욕이라는 것은 절대적인 것이 아닙니다. 어떻게 상대에게 들리느냐의 문제입니다. 

 

외국에 가보면 외국의 중요한 언어가 우리말 발음으로 하면 욕이 되는 언어가 있잖아요. 반대로 우리말로는 좋은 말인데 그 나라 발음으로는 욕이 되는 말도 있습니다. 그래서 가끔 오해가 생길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욕이라는 것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는 관점에서 먼저 접근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내가 욕을 안 했는데도 상대가 나보고 욕을 했다고 하면 이럴 땐 어떻게 해야 될까요? ‘나는 욕을 안 했다’ 라고 말해야 됩니까? 아닙니다. ‘그렇게 받아들였다면 내가 미안하오’ 이렇게 얘기해야 합니다. 상대가 그렇게 들었다고 하니까 그것은 인정을 해야 합니다. ‘욕으로 들리셨다면 죄송합니다.’ 라고 말한 후에 ‘그러나 저 입장에서는 그런 뜻으로 한 얘기는 아닙니다’ 라고 말해야 합니다. 앞에서 ‘죄송하다’라고 말해야 하는 이유는 내가 욕을 했기 때문에 죄송하다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욕이라고 받아들이니까 일단 내가 사과부터 먼저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에게도 해명할 기회가 있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먼저 말을 하고 그 다음에 ‘그러나 저의 입장에서는 그런 뜻으로 한 얘기는 아닙니다’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질문에 대답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내일 교회에 갑시다’ 라고 얘기하면 ‘저는 천주교 신자이니까 가고 싶지가 않습니다’ 라고 내 마음을 솔직하게 얘기하는 것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나는 가기 싫어!’ 라고 화를 낼 필요는 없습니다. ‘저는 가고 싶지가 않습니다’ 이렇게 내 마음을 표현하는 겁니다. 상대를 시비하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이 그렇다고 표현하는 겁니다. 

 

거짓말이라고 정해진 것은 본래 없습니다.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서 일어나는 문제입니다. 말이라는 것은 상대에게 의사를 전달하고, 남을 위로하고, 남에게 이익이 되도록 하는 것이 원래의 성격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말을 통해 남에게 해를 끼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 가장 근본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질문자가 ‘다른 강의가 있어서 참가를 못하겠습니다’ 라고 말한 것은 거짓말이 절대적으로 있다고 생각하면 거짓말이 되는 것이지만, 그 말이 상대에게 피해를 주었나요? 아무런 피해를 안 주었잖아요. 그래서 괜찮다고 말한 겁니다. 

 


 

이 말은 거짓말을 해도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 케이스는 첫째, 상대에게 아무런 피해를 주지 않았습니다. 둘째, 본인한테도 아무런 피해를 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이 문제를 갖고 너무 고민할 필요는 없겠다 싶습니다. 즉 언어의 절대성은 없다는 것이고요. 그 다음에 상대에게 피해를 준 것 같지도 않고, 본인한테도 특별히 피해를 주지는 않았으니까 제가 느끼기에는 그 정도 말에는 너무 신경쓰지 않으셔도 되겠다 싶습니다. 

 

그러나 이건 조심해야 합니다. 나는 그때 그때 별것 아닌 듯이 거짓말을 했는데 상대가 볼 때는 피해를 받았다고 생각이 든다면 그것은 안 된다는 겁니다. 자기 합리화를 위해서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예를 들어 남녀가 결혼을 했는데 상대가 묻지도 않는데 당신하고 만나기 전에 어떤 여자, 어떤 남자와 연애를 했었다고 하는 얘기는 굳이 할 필요가 없어요. 그 얘기를 안 했다고 거짓말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진실한 부부 사이에서 상대가 ‘결혼하기 전에 연애해 본 적 있어요?’라고 묻는데, ‘없다’ 라고 대답하면 그것은 거짓말이 됩니다. 이 때는 ‘있다’ 라고 얘기해야 합니다. ‘어느 정도로 연애했냐?’ 라고 물으면 ‘나는 이렇게 연애를 했었다’라고 솔직하게 얘기해도 괜찮아요. 그것 때문에 상대가 ‘나는 너하고 못 살겠다’라고 한다면 그런 사람하고는 같이 살 필요가 없어요.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모두 웃음) 

 


 

이렇게 사실대로 얘기하는 게 좋기는 좋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그런 건 아닙니다. 앞의 경우에 이렇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 옛날 얘기는 서로 묻지 맙시다. 우리의 만남은 지금 우리가 얼마나 사랑하고 있고 좋으냐의 문제이지 옛날에 너가 무엇을 했느냐 하는 것을 가지고 우리의 사랑을 확인하는 것은 옳지 않지 않느냐?’ 

 

그런 사실이 실제로 있었고 없었고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런 사실이 있었다고 해서 지금을 부정하거나, 그런 사실이 없는 것이 좋다고 한다면, 이 사랑 자체가 불안전한 사랑이라는 것을 뜻합니다. 정말로 사랑한다면 사실은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당신이 과거에 어떤 경험이 있었다고 해도 그것은 이미 지나간 일이고, 그 모든 것을 포함한 당신을 지금 나는 사랑한다.’

 

그래서 이런 과거는 얘기를 해도 되지만, 상대의 성숙도를 봤을 때 조금 힘들어하겠다 싶으면 ‘연애 안 했다’ 이렇게 얘기하는 것보다는 ‘그런 얘기는 안 하는 것이 좋겠다’ 이렇게 얘기하는 것이 좋습니다. 설령 실제로 연애를 안 했다 하더라도, 자신있게 ‘나는 안 해 봤습니다’ 이렇게 대답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해요. 자꾸 정답 맞추기를 하는 것은 좋은 대화의 방식이 아닙니다. 

 


 

그런데서 거짓말의 성격을 너무 절대화시키지 마세요. 그렇다고 해서 빨간 거짓말이 있고, 하얀 거짓말이 있다고 하면서 거짓말을 해도 된다고 하는 것도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여기면 너무 주관주의에 빠지게 돼요. 술 먹고 취한 사람들 중에 자신이 취했다고 얘기하는 사람 못 봤잖아요. 그런 것처럼 주관주의가 되어 버립니다. 결론적으로 이 케이스에 대해서는 그렇게 너무 죄의식을 안 가져도 될 것 같습니다.” 

 

스님의 답변에 질문한 할머니는 환한 웃음을 보였습니다. 어제 거짓말을 한 것이 마음에 많이 걸려 있었는데 이제 말끔히 해소된 것 같았습니다. 

 

질문은 3명 밖에 안 했지만 스님은 각각의 답변 속에서 성소수자 문제, 인도에서의 계급 차별 문제, 예수님의 가르침과 당시 유대교의 신앙, 착한 사마리아인 이야기, 불교에서는 계율을 어떻게 보는지 등 많은 이야기들을 함께 들려주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은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는 행복할 권리가 있음을 강조하면서 강연을 마쳤습니다.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남자든, 여자든, 젊었든, 늙었든, 결혼했든, 안 했든, 혼자이든, 둘이든, 아기가 있든, 없든, 신체 장애가 있든, 건강하든, 어릴 때 가난한 집에 태어났든, 성추행을 당했든, 어떤 경험을 했든, 성적 취향이 어떻게 태어났든, 피부 빛깔이 어떻든, 어느 나라에 태어났든, 지금 살아 있다면 살아 있는 모든 사람은 행복할 권리가 있습니다. 이런 것들로 문제를 삼지 말아야 합니다. 

 


 

행복할 권리가 있으니까 우리는 그 권리를 행사해야 될 것 아니에요? 그래서 행복하셔야 해요. 윤리 도덕을 무시했던 게 아니라 그 윤리 도덕으로부터도 자유로운 정신의 소유자였던 예수님, 그 분께서 우리에게 이런 자유를 주셨잖아요. 그러니 여러분들도 자유로운 삶을 사시길 진정으로 바랍니다. 

 

‘나이가 조금만 젊었으면’ 이런 얘기는 지금 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어요. 지금 연세가 80이라면 ‘내 나이가 70만 되었어도’ 이런 얘기는 하지 말고, ‘옛날에는 80까지 못 살았는데, 지금 80까지 살고 있다는 것만 해도 큰 복이다’ 이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몸이 좀 아프면 ‘옛날 같으면 아프면 죽었는데, 아프긴 하지만 그래도 어쨌든 살았다’ 이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몸이 좀 아프고 여러 가지 부족하지만 그럼에도 지금 살아 있다는 것은 복입니다. 이렇게 살아있는 것 자체가 복인 줄 알면 여러분들이 지금보다는 좀 더 행복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항상 불행하고 싶어하는 것 같아요. 항상 ‘남편이 없어서 불행하다’, ‘돈이 없어서 불행하다’, ‘애가 말을 안 들어서 불행하다’ 이렇게 말하는 걸 보면 여러분들은 ‘나는 불행해야 한다’ 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불행해야 한다고 미리 정해놓고 거기에 이유를 자꾸 가져다 붙여요. 그런데 남편이 없는 것은 행복할 수 있는 조건이지 불행해야 할 조건이 아니에요. 이 나이가 되어서 또 남편 시중들 이유가 뭐가 있어요?(모두 웃음)

 


 

‘있으면 있어서 행복하다’, ‘없으면 없어서 행복하다’ 이렇게 생각하셔야 합니다. 그렇게 행복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총이예요.”

 

긍정적인 생각으로 행복하게 사셨으면 좋겠다는 스님의 열정적인 말씀에 모두들 환한 웃음으로 뜨거운 박수갈채를 보냈습니다. 

 


 

강연을 마친 후 잠깐 기념사진을 찍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장소가 비좁아 전체가 같이 사진을 찍지는 못하고, 삼삼오오 앞으로 나와 원하는 사람들만 같이 사진을 찍었습니다. 

 


 

경기여고 100주년 기념관을 나온 스님은 곧바로 전주로 향했습니다. 오후 4시부터는 원불교 김대선 교무님의 요청으로 전주 우석고등학교에서 교사들을 대상으로 즉문즉설 강연이 열렸습니다. 다음 이야기에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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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댓글 36

0/200

오유진

감사합니다~~♡♡

2016-03-26 11:48:34

정영숙(공덕경)

스님 덕분으로 행복합니다._()_

2016-03-25 22:51:04

규원

감사합니다.스님

2016-03-25 16: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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