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6.3.16 부처님 출가일 기념법회


 

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서울 정토회관에서 부처님이 출가하신 날을 맞이해 기념법문을 했습니다. 

 

불교에서는 4대 명절이 있는데, 첫째가 부처님이 탄생하신 날인 음력 4월 8일이고, 둘째가 출가하신 날인 음력 2월 8일, 셋째가 성도하신 날인 음력 12월 8일, 넷째가 열반하신 날인 음력 2월 15일입니다. 오늘은 그 중 출가하신 음력 2월 8일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새벽 기도 후 아침 7시부터 스님은 평화재단에서 조찬 모임을 하느라 바쁜 아침을 보냈습니다. 조찬 모임을 마치고 아침 10시가 되어 출가일 기념법회를 하기 위해 정토회관에 도착했습니다. 

 

스님이 법상에 오르고 10시 정각에 출가일 기념 법회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아침부터 지하철 3호선이 갑자기 멈추는 사고가 생겨서 유난히 늦게 도착하는 분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스님은 “전쟁이 난 것도 아닌데 왜 그래요?” 하며 환한 웃음과 함께 법문을 시작했습니다. 특히 출가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다양한 비유를 들어가며 재미있게 법문을 해주었습니다. 

 

“오늘은 불기 2559년 부처님 출가 기념일입니다. 제가 ‘불기 2559년이다’ 그러니까 여러분들 눈치가 ‘2560년인데요’ 하는 것 같네요. 제가 왜 2559년이라고 했을까요? 아직 4월 초파일이 지나지 않았거든요. 4월 초파일이 지나야 2560년이 되는 거예요. 몰랐지요?” 

 

“예.”(모두 웃음)

 


 

“2600여 년 전에 부처님께서는 인도 북쪽 히말라야 산 기슭 카필라바스투라는 작은 나라의 왕자로 태어나셔서 태자로 명명이 되고, 29년간 왕궁에서 살다가 오늘, 음력으로 2월 8일 밤에 아무도 몰래 동쪽 성문을 나와서 출가의 길을 가셨습니다. 그래서 오늘을 ‘출가일’, 또는 ‘출가절’이라고 합니다. 

 

출가란 뭘까요? 글자 그대로만 따지면 집을 나간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래서 가출과 비슷해 보이지만 그 숨은 뜻은 다릅니다. 여기 사는 게 힘들어서 못 살겠다고 집을 뛰쳐나가는 건 가출이에요. 그래서 가출은 더 좋은 집으로 가고 싶은 게 전제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 남자하고 못 살겠다고 나가서 저 남자하고 살겠다는 격이지요. 그런데 출가는 집이 굴레임을 깨닫고 집을 불살라버리는 거예요. 가출과는 차이가 큽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들이 결혼생활해 보니까 ‘아, 결혼생활이 모든 고통의 원인이구나’, 직장에 다녀보니까 ‘아, 직장이 모든 고뇌의 원인이구나’, 돈 벌어보니까 ‘돈이 모든 번뇌의 원인구나’ 해서 그만둬버리는 게 출가입니다. 이 직장 나와서 며칠 있다가 또 저 직장 구해서 들어가고, 이혼했다가 또 다른 사람 만나서 결혼하고, 부모 속박이 싫어서 집 나왔다가 외로우니까 도로 집에 기어들어가고 이렇게 윤회하는 건 가출이에요.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는 건 가출이고, 출가는 오고감이 없어지는 겁니다. 

 

그럼 왜 이렇게 집을 나가거나 들어오는 일을 반복하게 되는 걸까요? 집은 2가지 모순된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 집은 우리를 보호해 주는 보금자리입니다. 지붕이 있어서 비와 햇빛을 막아주고, 벽이 있어서 바람과 추위와 더위를 막아주고, 도둑도 막아줍니다. 그리고 집이라는 말 속에는 부모, 아내, 남편, 자식이 다 들어있습니다. 그래서 나를 보호해 주는 보금자리가 집입니다. 그런데 둘째로, 집은 나를 가두기도 합니다. 천장도 막혀있고 벽도 막혀있으니까 못 나가잖아요. 또 부모는 나를 보호해 주기도 하지만 나를 속박하는 굴레이기도 합니다. 남편이나 아내도 마찬가지로 나를 보호해 주기도 하지만 나를 속박하기도 하잖아요. 그래서 집은 감옥, 굴레예요. 

 

고향도 집과 그 뜻이 비슷합니다. 그래서 고향을 떠나 떠도는 사람을 ‘나그네’라고 하지요. 나그네는 보호받을 데가 없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나그네는 다 고향에 있는 집으로 돌아가기를 원하잖아요. 그런데 막상 고향으로 돌아가면 그곳에서의 삶은 또 감옥살이에요. 고향에 가면 양반, 상놈 따지고, 형님, 동생 따지고, 부모 자식 따지고, 예의 따지고, 윤리 따지고, 이렇게 구속받는 게 많잖아요. 이렇게 우리는 집이 감옥이나 굴레 같기 때문에 뛰쳐나가고 싶은 거예요. 그런데 막상 뛰쳐나가면 보금자리가 없어지니까 외로워서 또 고향을 찾고, 집을 찾게 됩니다. 그래서 다시 들어가면 얼마나 편안합니까? 대신에 또 조금 있으면 다시 감옥이나 굴레처럼 느껴져서 스트레스를 받으니까 또 뛰쳐나가는 겁니다. 

 

이렇게 계속 들어갔다가 나왔다가를 반복하는데 집은 어디를 가나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들은 뭐가 잘 안 되면 이사를 하잖아요. 한국에서 뭐가 잘 안 되면 외국으로 가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서울에서 안 되면 지방으로 가고, 지방에 있던 사람은 또 서울에서 한번 살아보기를 원하지요. 또 요즘은 도시 사는 사람들이 귀농한다고 난리고, 결혼한 사람들은 ‘못 살겠다. 이혼하겠다’ 하는데, 또 결혼 못한 사람은 결혼한 게 부러워서 ‘어떻게 나도 결혼 한번 해 볼까’ 그러고, 자식 없는 사람은 자식 있는 사람을 부러워하고, 자식 있는 사람은 ‘무자식이 상팔자’라고 합니다. 이렇게 오고가는 게 윤회입니다. 그것처럼 집도 굴레로만 생각하고 집을 나가면 보금자리도 없어지니까 외로워져서 다시 찾아들어옵니다. 그런데 그 속에는 또 굴레의 성격이 들어있는 거예요. 이렇게 집은 두 가지 모순된 성격을 같이 품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관념에는 ‘집은 보금자리다’ 하는 생각이 더 강하게 박혀 있잖아요. 그래서 보금자리는 원하지만 굴레는 싫은 거예요. 같이는 살되 간섭은 안 했으면 좋겠고, 지원은 해 주되 간섭은 안 하기를 바라는 거예요. 그런데 그런 건 없습니다. 누군가가 나와 같이 살면서 나를 지원한다면 그 사람은 반드시 나를 간섭하게 돼있어요. 그래서 스님은 누가 날 좋아한다고 하면 겁이 납니다. 뭘 또 간섭하겠다고 덤빌지 모르거든요. 그런데 사람들은 달콤함 때문에 독도 같이 받아 마시려고 하지요.(모두 웃음) 

 


 

경전에 보면, 부처님께서 출가하려고 뜻을 밝히면 부모가 말리고, 또 밝히면 부모가 말리기를 한 열 번쯤 하느라고 한 10년의 세월을 보낸 것 같아요. 그런데 부처님께서 그 10년을 단순히 방황만 하면서 보냈겠어요? 아닙니다. 그래도 이 세상에서 답을 찾아보려고 수행을 하신 거예요. 진짜 자발적으로 하신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출가하셔서 스승을 만난 뒤 3개월 만에 스승의 경지까지 오르셨던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능력이 뛰어나서 그런 게 아니라 스스로 많은 문제의식을 가지고 이미 정진하신지가 오래 됐기 때문에 금방 그런 경지에 이를 수 있었던 겁니다.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왕궁이 안온한 보금자리가 아니라 모든 고통의 핵심임을 꿰뚫어보신 거예요. 그래서 새로운 길이 뭔지는 미처 몰랐지만 적어도 ‘이건 아니다’ 하는 건 확실히 알았기 때문에 미련 없이 떠났던 것입니다. 

 

부처님은 부모님 허락을 받고 출가해 보려는 시도를 여러 번 해 보셨어요. 그러나 이 길은 허락받고 갈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아셨습니다. 왜냐하면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부처님께서는 어렵사리 출가를 하셨는데, 동문을 나가면서 ‘내가 깨닫기 전에는 차라리 죽을지언정 돌아오지 않겠다. 천 길 낭떠러지에 떨어져 죽을지언정, 극약을 먹고 죽을지언정, 깨닫기 전에는 돌아오지 않겠다’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은 고뇌에서 벗어날 수 있는 답을 찾으면 다시 돌아와서 당신의 가족들에게도 그 좋은 법을 알리겠다는 뜻이지요.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시종을 집으로 돌려보내면서 시종에게 ‘왕궁으로 돌아가서 아버님께 전해라. 내가 불만이 있어서 왕궁을 나간 것도 아니고, 나 혼자만의 이익을 위해서 나간 것도 아니며 나 혼자 천상에 태어나려고 궁을 나온 것도 아니라고 전해라. 일체 중생이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길을 찾아서 나는 궁을 나왔다. 내가 만약 이 답을 찾는다면 반드시 궁으로 돌아가서 부왕을 뵙고 좋은 법을 나눠가지겠다’ 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들도 만약 집에 아들이나 딸이 갑자기 없어지거든 ‘이게 누구 꼬임에 빠졌나? 이게 불만이 있어서 그러나?’ 하고 생각할 거 아니겠어요? 우리 문경에도 가끔 그런 부모님들이 찾아오십니다. 부처님의 부모님도 당연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으니까 부처님께서 그렇게 해명을 하고자 하신 겁니다. 그렇게 해서 부처님께서는 새로운 길을 찾아 떠났습니다. 

 

부처님께서 6년 고행을 통해서 성도한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부처님께서 성도할 수 있었던 건 출가라는 시작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출가가 가장 중요합니다. 새로운 길을 아직 못 찾았다고 하더라도 기존의 길은 아니라는 확실한 답을 얻고 나갔던 것이니까요. 그런데 오늘 우리는 아직도 ‘이게 아니다’는 결론을 못 내렸어요. 그래서 늘 미련을 못 버리는 거예요. 

 

그런데 부처님은 깨닫고 나서 ‘꼭 집을 떠나야 되거나 결혼을 안 해야 되는 건 아니다’ 라고 하셨습니다. 그런 형식이 중요한 게 아니라 마음의 자세가 중요하다는 거지요. 즉 마음에서 집착이 끊어져야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부처님 당신은 그 당시 풍속대로 출가수행자의 길을 걸으셨지만, 또한 새롭게 재가수행자의 길도 열어 주셨습니다. 

 

재가수행자가 된다는 것은 몸은 세속에 있더라도 마음은 욕망의 가치관으로부터 떠나야 된다는 걸 의미합니다. 재가수행자는 그냥 욕망대로 살아도 되는 게 아닙니다. 출가수행자는 돈을 자꾸 만지면 돈에 욕심을 내고 돈에 대한 집착을 못 버리니까 못 만지게 하는 것이고, 여러분들은 만져도 집착을 안 하니까 재가수행자로 살도록 놔둔 거예요. 그러니 자기가 수준이 안 된다 싶으면 다들 출가를 하세요.(모두 웃음) 

 


 

스스로 점검했을 때 여자를 만나거나 돈을 만지거나 하면 거기에 집착한다든지, 높은 지위에 올랐을 때 그 지위를 자기 것이라고 착각한다든지, 자식이 다 컸는데도 집착을 한다면 ‘아, 나는 재가수행자 수준은 안 되는구나’하고 출가수행자의 길을 가세요. 그걸 제가 ‘안녕히 계십시오’ 하라고 표현한 겁니다. 가끔 오해하는 사람이 있는 것 같던데, ‘안녕히 계십시오’라는 건 ‘이혼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너는 자꾸 때가 묻어서 이 진흙탕 속에 살 수준이 안 된다’, 즉 ‘출가수행자가 되라’ 하는 뜻입니다. 웃는 걸 보니 여러분들도 재가수행자의 길을 엄청 좋아하네요.(모두 웃음) 

 

그래요. 저는 도저히 수준이 안 되어서 지금 이렇게 출가수행자의 길을 가는데, 여러분은 얼마나 복을 많이 지었으면 이렇게 재가수행자의 길을 가십니까? 다들 훌륭하십니다.(모두 웃음) 

 


 

만약에 수행자가 정치를 하면 권력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단지 권력이나 지위가 세상과 중생을 이롭게 하기 때문에 그 권력이나 지위를 마땅히 쓰는 겁니다. 또 돈을 가졌다면 그 돈을 사유화하는 게 아니라 그 돈을 세상에 필요한 곳에 마땅히 쓰는 겁니다. 그렇게 할 수 있을 때 그 사람을 우리가 재가수행자라고 말합니다. 뭘 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것을 하는 나의 마음의 자세가 어떠냐가 중요합니다. 

 

항상 우리는 부처님의 삶을 본받아야 합니다. 부처님은 다 떨어진 옷을 입고, 나무 밑에서 잠자고, 길거리에서 얻어먹고도 당당하셨고, 행복하셨고, 심지어 늘 남을 위해서 베풀고 사셨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의 겉모습만 보면 거지라고 오해할 수도 있겠지만 부처님께서는 어디 가서 ‘달라’는 소리를 안 하셨기 때문에 거지가 아닌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다 먹고 살만하면서도 늘 의식주를 걱정하잖습니까? 얼마나 많이 먹어야, 얼마나 잘 입어야, 얼마나 큰 집에 살아야 이 걱정이 끝이 날까요? 그건 끝이 안 나는 걱정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늘 이 정도 먹는 것, 이 정도 입는 것, 이 정도 자는 것만 해도 고맙게 여기면서 생활하면 우리가 부처님보다 행복하지 못할 이유가 없어요. 

 

그러니 수행자는 첫 번째, 당당해야 됩니다. 비굴해서는 안 됩니다. 두 번째 겸손해야 됩니다. 교만해서는 안 됩니다. 자기 아닌 것으로 자기를 삼는 게 교만입니다. 돈으로 자기를 삼고, 인물로 자기를 삼고, 지위로 자기를 삼는 게 교만입니다. 그리고 항상 자유롭고 행복해야 합니다. 부처님만큼 그렇게 원만한 성격으로 완전히 자기의 업식을 고치지는 못 하더라도, 자기도 모르게 성질을 내더라도 제자리로 얼른 돌아와야 합니다. 

 

그것을 계속 붙들고 합리화하면 안돼요. ‘내가 또 업식에 끌렸구나’ 하고 돌아와야 합니다. 입이 한번 쑥 나왔다가도 금방 들어가야 되는데, 3일이고 4일이고 꽁 해서 있으면 곤란합니다. 그런 걸 두고 ‘사로잡혀서 수행자임을 망각했다’ 라고 합니다. 그렇게 빨리 돌아오다 보면 사로잡히는 횟수가 줄어들고, 업식이 일어나더라도 그 유지기간이 짧아집니다. 그래서 늘 행복하게 편안하게 지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남한테 의지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내가 오히려 남의 보금자리가 되어주고, 의지처가 되어주려는 주인의 자세로 나아가게 됩니다. 그것의 출발이 출가입니다. 

 


 

오늘 출가절을 맞아서 앞으로 기도할 때는 ‘복 주세요’ 하지 말고, 주인의 자세로 돌아가셔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나 아닌 것에 의지하고 살았던 것으로부터 벗어나서 마치 나비가 고치를 뚫고 나오듯이 집에서 나오세요. 그게 출가입니다. 이런 출가의 의미를 오늘 다시 한번 새겼으면 좋겠습니다.” 

 

재가수행자의 길을 갈 수준이 안 되면 빨리 출가를 하라는 말씀에 모두들 웃음을 빵 터뜨렸습니다. 스님이 이야기해 준 출가의 의미를 가슴에 새기고 나니 마음이 참 가벼워졌습니다. 

 

대중들은 출가의 의미를 다시 한번 곱씹으며 300배 정진을 함께 했습니다. 정토회는 오늘 출가일을 시작으로 다음주 수요일인 열반일까지 전국 법당에서 8일 동안 용맹정진 기간을 갖습니다. 매일 300배 정진을 하고 영상으로 스님의 법문을 듣습니다. 스님은 다음 열반일에 다시 서울 정토회관에서 기념법문을 직접 해줄 예정입니다. 

 

출가일 기념법회를 마친 후 스님은 찾아온 손님과 몇 차례 미팅을 가진 후 오후 4시가 되어 울산 두북으로 출발했습니다. 오늘 밤에는 두북에서 하룻밤을 묵은 후 내일은 선거로 인해 희망강연이 취소되어 하루종일 농사일을 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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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댓글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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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유진

감사합니다~~♡♡

2016-04-07 00:24:54

천명옥

부처님이 주신 선물 잘 받아 지니겠습니다 _()_

2016-03-25 19:29:19

박봉미

고맙습니다._((()))_

2016-03-20 07:4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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