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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스님은 오후 2시에 BTN(불교TV)에서 대담 프로그램 녹화 촬영을 한 후 저녁 7시 30분에는 의정부 예술의전당에서 2016년 첫번째 희망세상만들기 즉문즉설 강연을 했습니다.
어제 농사일을 마치고 새벽 2시에 울산 두북을 출발한 스님은 6시에 서울 정토회관에 도착했습니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치과에 들러 치료를 받은 후 곧바로 대담 프로그램 녹화가 예정된 BTN으로 향했습니다.
BTN(불교TV)에서는 작년 11월 1일부터 매주 방송된 ‘법륜 스님이 안내하는 붓다의 길 깨달음의 길’ 20부 작, 마지막 녹화 촬영이 오후 2시부터 있었습니다. 인도성지순례를 통해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내용이 매주 방송되었는데 오늘은 그 뒷이야기와 방송을 보며 궁금했던 내용들을 묻고 답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 BTN '법륜스님이 안내하는 붓다의 길 깨달음의 길' 녹화 현장
오후 2시부터 시작된 대담의 사회는 지난 2009년에 스님이 안내하는 인도성지순례를 다녀온 적이 있는 배우 김여진씨가 해주었습니다. 김여진씨는 그동안 방송 출연을 쉬면서 스님의 가르침에 따라 출산 이후 3년 동안 아기를 키우는데 전념했는데, 오랜만에 스님을 만나 뵙고 너무나 반가워 했습니다.
▲ 대담 사회를 맡은 배우 김여진씨
스님은 방송을 어떻게 보셨는지, 순례지에서 하는 법문의 포인트나 특별히 강조하고 싶은 점은 무엇인지, 순례지에서 경전독송을 하는 이유, 사르나트에서 오계를 받고 가사를 수하도록 하는 이유, 밥통을 들고 다니는 까닭, 왜 그렇게 고생을 사서 하는지, 빡빡한 일정인데 개인적으로 힘들지 않은지, 성지마다 갖고 계신 원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스님이 가장 사랑하는 부처님의 성지는 어디인지, 전정각산 아래 수자타아카데미를 세웠고 22년이 지났지만 아직 불교를 가르치지 않았데 그 이유는 무엇인지 등 많은 질문에 대해 스님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대담을 마치면서 김여진씨가 “지난 5개월 간 인도성지순례를 함께했던 시청자들에게 순례를 마무리하는 한 말씀을 부탁한다”고 하자 스님이 마무리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부처님을 ‘구체적인 사회와 역사 속에서 한 사람으로 살아가셨고 깨달으신 분’이라고 보지 않고 ‘하늘에 계신 무한한 능력을 가지신 분’이라고 추상적인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부처님은 그런 분이 아니고 우리와 똑같이 이 세상을 사신 분이에요. 부처님께서는 먹는 건 매일 얻어 드셨어요. 또 인도에서는 죽은 시신을 화장할 때 덮는 천을 분소의라고 하는데, 부처님께서는 그걸 주워서 입으셨어요. 자는 건 나무 밑이나 동굴에서 주무셨고요. 우리가 아는 ‘절’이라는 건물은 모두 후대에 지어진 것으로 부처님 당시에는 없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그렇게 청빈한 생활을 하셨는데도 늘 행복하셨고, 마음이 편안하셨고, 자유로우셨고, 어떤 두려움도 없으셨습니다. 또 가진 게 아무 것도 없었는데도 많은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푸셨습니다.
그 당시 인도에는 300여개의 나라가 있었는데, 그 중에 제일 큰 나라가 마가다국이었습니다. 그 마가다국의 빔비사라왕은 당시 제일 크고 좋은 집과 제일 좋은 마차를 가졌고, 제일 좋은 옷을 입었고, 제일 좋은 음식을 먹었고, 제일 아름다운 여인들을, 그것도 여러 명을 부인으로 두었고, 제일 값나가는 보석으로 치장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온갖 걸 다 가진 빔비사라왕은 늘 번뇌와 두려움과 괴로움으로 삶이 힘들었어요. 그런데 아무 것도 갖지 않았던 부처님은 늘 행복하셨습니다.
그래서 빔비사라왕이 부처님을 찾아와 ‘인생이 괴롭다’며 하소연을 하니 부처님께서는 좋은 법문을 해 주셨고, 그 법문을 들은 왕은 기뻐하면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빔비사라왕을 찾아가서 절 하나 지어달라든지 좋은 옷이나 마차를 달라는 요청을 한 적이 한 번도 없으셨습니다. 부처님은 가장 낮은 자의 모습으로 청빈하게 사셨으면서도 가장 당당하고 풍요롭게 세상의 주인으로서 사셨습니다.
여러분들도 그런 부처님의 삶을 생각하면서 여러분들도 행복하셨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우리가 행복하지 못할 아무런 이유가 없습니다. 그리고 베풀고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베풀지 못할 아무런 이유 또한 없습니다. 무엇으로든 베풀 수가 있습니다. 말 한 마디로도 베풀 수 있고, 넘어진 아이를 일으켜 세워주는 것으로도 베풀 수 있고, 작은 돈으로도 가난한 아이들에게 음식을 베풀 수가 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행복하게 살고, 자유롭게 살고, 베풀며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만약 여러분들께서도 성지순례를 시청하는 동안 그런 삶을 살아야겠다고 느끼셨다면, 그것은 성지순례의 공덕이자 성지순례를 5개월간 시청하신 공덕일 것입니다.”
이렇게 약 1시간 30분 동안의 녹화 촬영을 마치고 스님은 그동안 촬영하고 편집하고 방송하느라 고생이 많았던 BTN 관계자들에게 일일이 악수를 건네며 격려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다함께 기념사진을 찍은 후 방송국을 나왔습니다. 오늘 녹화한 내용은 3월 28일(월) 오전 11시 20분에 BTN에서 방영됩니다.
저녁 7시 30분부터는 의정부 예술의전당 대극장에서 800여 명이 가득 자리를 메운 가운데 2016년 첫 번째 즉문즉설 강연이 열렸습니다.
▲ 의정부 예술의전당 대극장
아직 꽃샘추위가 가시지 않은 평일 저녁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강연장을 찾아준 분들에게 스님은 환한 웃음으로 인사말을 건네며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오늘이 2016년도 희망세상만들기 즉문즉설 강연의 첫날입니다. 그 첫 강연을 의정부에서 하게 되어서 기쁘게 생각합니다.(모두 박수)
2016년이 시작되자마자 북한에서 핵실험을 하니까 남한에서는 강경대응을 표명하고, 다시 북한에서 로켓을 발사하니까 남한에서는 개성공단을 폐쇄했습니다. 이렇게 소란스러운데 도망도 안 가고, 라면 사재기도 안 하고 이렇게 사는 걸 보면 대한민국 국민들은 참 대단한 사람들이에요.(모두 웃음) 우리가 6.25전쟁을 치르는 등 지난 70년을 갈등과 분쟁 속에 살다 보니까 좋게 말하면 면역력이 생긴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좀 무뎌진 것이겠지요.
이렇게 갈수록 통일의 희망은 멀어지고, 평화는 위태로워지고, 경제는 어려워지고, 빈부격차도 심해지니까 ‘살기가 너무 어렵다. 미래의 희망이 없다’는 얘기들을 많이 합니다. 그런 말들을 하는 게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연세 드신 분들은 과거를 한번 돌이켜 보세요. 우리가 지금 살기가 어렵다고 하지만 30년 전이나 50년 전에 비하면 그래도 더 낫지요? 의식주 모든 면에서 더 낫습니다. 또 요즘 민주주의가 후퇴한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그때 독재시대 보다는 지금이 낫습니다.
이런 제 말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도 있겠지만, 우리가 어디를 기준으로 볼 것이냐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우리가 좋을 때를 기준으로 하면 지금이 굉장히 어려운 시기이고, 나쁠 때를 기준으로 하면 지금이 훨씬 좋은 시기입니다. 저도 지금 이 시대가 좋다는 건 아니에요. 그런데 시기가 좋거나 안 좋거나, 경제사정이 좋거나 어렵거나, 날씨가 따뜻하거나 춥거나 하는 차이는 있을지라도 ‘시기가 안 좋다고 괴로워 할 일인가?’ 하는 건 좀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물론 겨울보다는 봄이 좋지요. 그렇다고 겨울에는 우울하게 지내고, 봄에만 즐겁게 지내야 될까요? 그건 아니에요. 겨울은 날씨가 좀 안 좋은 건 맞지만 우리는 겨울에도 웃으며 살 수 있다는 겁니다. 지금 경제사정이 좀 안 좋은 건 맞지만, 그렇다고 우울하고 괴롭게 살아야 할까요? 그건 아니지요. 왜냐하면 옛날에 비하면 훨씬 낫거든요. 옛날에도 즐겁게 살았는데, 지금 즐겁게 살지 못할 이유가 뭐가 있겠어요.
제 얘기를 듣고 ‘스님은 세상이 어떻게 되든 그저 나 하나 마음만 잘 먹으면 된다고 얘기하는데, 그런 태도는 세상의 정의를 외면하는 것 아닙니까?’라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제 말의 요지는 이겁니다. 세상은 내 뜻대로 다 안 된다는 겁니다. 여러분들도 어릴 때 각자 꿈이 있었을 텐데, 지금 다 그때 원하던 대로 됐어요?”
“아니오.”
“그때 꿈꾸었던 결혼생활을 지금 누리고 있어요?”
“아니오.”
“애를 키워보니까 애가 내 뜻대로 크던가요?”
“아니오.”
“그렇게 뜻대로 안 되는 게 이 세상살이입니다. 그러면 내 뜻대로 안 된다고 인생을 괴롭게 살아야 할까요? 그래야 된다면 이 세상 모든 사람은 괴롭게 살다가 죽어야 합니다. 그러니 세상이 내 뜻대로 안 된다고 반드시 괴로워할 일은 아니라는 겁니다. 우리가 지금 힘들다고 난리를 피우면 인도나 베트남 사람들은 ‘한국 사람들은 왜 저렇게 힘들다고 난리일까? 한국 가보니까 먹고 살만 하던데’ 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이 세상이 내 뜻대로 안 된다고 반드시 괴로워 할 일은 아니라는 겁니다.
어차피 세상은 내 뜻대로 다 안 됩니다. 내 뜻대로 되면 즐겁고 내 뜻대로 안 되면 괴롭다면, 우리는 늘 즐거웠다가 괴로웠다, 즐거웠다가 괴로웠다, 이렇게 널뛰기 하듯이 살다가 죽을 수 밖에 없습니다. 내 뜻대로 다 되면 좋겠지만 내 뜻대로 안 되어도 괜찮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걸 깨닫기가 힘든 거지요.
옛말에 ‘인생지사 새옹지마’라고 했잖아요. 내 뜻대로 됐다고 좋아하고, 내 뜻대로 안 됐다고 울고불고 할 일이 아니라 ‘좀 더 지켜봐야 된다. 안 되는 게 더 좋을 수도 있고, 되는 게 더 나쁠 수도 있으니 내 뜻대로 되고, 안 되는 것에 너무 집착하지마라’ 하는 뜻입니다. 우리가 이걸 깨달으면 살기가 훨씬 좋아집니다.
또 실제로 세상이 좀 더 좋게 되면 더 좋겠지요. 겨울보다는 봄이, 독재보다는 민주주의가, 빈부격차가 심한 것보다는 빈부격차가 작은 게, 긴장이 고조되는 것보다는 평화로운 게 살기가 낫다는 건 맞는 얘기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안 된다고 꼭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는 겁니다. 그러니 우리는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는 게 인생이라는 것을 알고, 늘 행복하게 살아야 합니다. 제 말은 그렇게 행복하게 살면서 좋은 세상을 만들어가자는 것이지, 세상이 어떻게 되든 상관하지 말자는 게 아닙니다. 그러니 괴로워하면서 좋은 세상을 만들려고 하지 말고 웃으면서 즐겁게 이 세상을 좋게 만들자는 것입니다. 먼 길도 웃으면서 갑시다.”
스님은 시작부터 즉문즉설 강연의 핵심이 되는 내용을 명쾌하게 일러주었습니다. 이미 청중들의 마음은 많이 가벼워져 보였습니다.
이어서 약 2시간 30분 동안 5명이 손을 들고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스님의 명쾌하고 속 시원한 답변에 강연장은 웃음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 동생들이 너무 미워서 괴롭다고 하소연한 할머니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할머니는 며칠에 걸쳐 질문 내용을 종이에 적었다며 꼬깃꼬깃해진 종이를 펼치며 질문을 시작했습니다.
“저는 형제가 많았지만 아무리 힘들고 배고파도 10원 한 장 빌리거나 달라고 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동생들이 말하기를 빚을 얻어 장사를 해 보았더니 잘 되어서 조금만 돈이 있으면 다시 해 보겠다고 해서 제가 ‘한 번에는 못 주고 나누어서 주겠다. 너희들도 내 사정을 잘 알지 않느냐. 이자는 안 주어도 좋으니 본전은 꼭 갚아라. 잘 살아봐라’ 하고 약속한 지가 벌써 오래 됐습니다. 강산이 몇 번 변했어요. 그런데 그런 저에게 동생들은 본전도 갚지 않으면서 오히려 ‘욕심 많다. 지독하다. 죽으면 갖고 가느냐’ 하면서 여기저기 입질을 하고 다니니... 저는 다투기도 싫고 해서 왕래를 끊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안 보고, 안 들으면 편할 줄 알았는데, 분노가 치밀고 한이 쌓입니다. 남편은 악하거나 나쁜 사람은 아닌데, 속을 뒤집는 말만 던지며 책임을 질 줄 모릅니다. 저는 여태 참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살아왔는데 왜 이렇게 억울하고, 분하고, 서럽기만 한지 모르겠습니다. 인덕이 없으면 좋은 일을 해도 지탄만 받는다던데 제가 팔자를 그렇게 타고 났을까요? 제가 속이 좁고, 이해만 바라기 때문일까요? 스님, 저 좀 깨우쳐주세요.”
“올해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73세입니다.”
“제가 하나씩 물어볼 테니까 대답을 해 보세요. ‘돈을 빌려줬다, 그런데 못 받았다’ 이게 요점이지요? 어쨌든 동생들한테 돈을 빌려주고 이자는 그만두고 본전만 갚으라고 했는데, 동생들이 안 갚았다는 게 요점이잖아요 그런데 빌려간 돈을 안 갚았으면 미안하다는 말이라도 해야 되는데, 동생들이 ‘돈 좀 준 걸 갖고 뭘 그러느냐? 동생한테 줬으면 그만이지!’ 그런다는 거예요?”
“그런 것도 아니고요. 아주 정말 화나는 얘기를 하는 거예요. ‘욕심이 많다. 지독하다. 죽을 때 돈 가지고 가느냐, 그것 없어도 사는데’라고 한대요. 또 중간에서 이리저리 말을 전하며 입질하는 동생이 형제간에 이간질을 하고 다니니까 제가 미쳐서 죽을 지경입니다.”(모두 웃음)
“그러니까 질문자가 동생한테 돈을 주면서 이자는 됐고, 본전만 달라고 했는데, 본전을 안 주는 것까지도 괜찮지만 동생들이 질문자더러 욕심이 많다며 도리어 욕을 한다는 거네요. 안 갚는 것까지는 좋은데 거기다가 욕심이 많으니 어쩌니 하면서 내 욕까지 해서 분하다는 것이지요?”
“예. 분하다기보다도 화가 나요.”
“그런데 그 얘기를 듣고 남편이 뭐라고 그럽니까?
“남편은 뭐 그냥... 앞에서 말했잖아요. 대화도 안 된다고요. 남편은 그냥 놀기만 좋아하시고, 양반이라 편하게 사시거든요.”
“질문자가 벌어서 남편도 먹여 살렸어요?”
“예, 그랬으니까 남편이 이런 문제에 관여를 못 하지요. 얼마가 있는지도 잘 몰라요.”
“남편 모르게 동생들한테 빌려줬어요?”
“몰래 빌려주지는 않았어요. 줬다고는 했어요. 액수만 말 안 했지요.”(모두 웃음)
“남편은 얼마 줬는지를 모르니까 ‘그걸 갖고 뭘 그러냐?’고 하는 거지요. 자기하고 상의하고 준 것도 아니고, 질문자 마음대로 줬으니까요. 그냥 잊어버리는 게 낫겠네요.”(모두 박장대소)
“그런데요, 이게 벌써 강산이 몇 번 변했다고 했잖아요. 그때는 서운한 걸 몰랐는데요, 이제는 제가 이렇게 주저앉아서 일을 못 하고 있으니까요, 코드를 안 꽂아도 앉아있으면 머리속에서 영화 필름이 저절로 돌아갑니다.”
“늙으면 자꾸 옛날 생각을 하게 되는 거예요. 예를 들어서 외국인이랑 결혼해서 외국 가서 사는 사람들을 보면, 젊을 때는 외국 남자랑 살아도 되고, 외국에서 살아도 괜찮다가, 나이가 들어 60이 넘고, 70이 넘으면 음식도 옛날보다 밥이나 김치나 된장찌개를 더 먹게 된다고 합니다. 그럼 외국인인 남편도 나이가 들수록 치즈나 고기를 더 먹겠지요? 그러다 대부분 먹는 것 때문에 싸우고 이혼을 합니다. 그걸 ‘회귀 본능’ 이라고 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사람들은 어릴 때로 돌아가려는 경향이 있는 거예요. 그리고 부모님 모셔봐서 아시겠지만 늙으면 늘 옛날 얘기만 하잖아요. 한 얘기 또 하고, 또 하고, 또 한단 말이에요. 질문자는 73세라고 했는데 만약 83세가 되거나 93세가 되면 계속 이 얘기만 할 거예요.(모두 웃음)
그래서 아들도 ‘듣기 싫다’, 손자도 ‘듣기 싫다’고 하게 될 거예요. 왜 그러냐 하면 내가 한 맺힌 일이 있으면, 그걸 심리학에서는 무의식이라고 하고, 불교에서는 업식이라고 하는데, 그 상처는 계속 덧납니다. 육체도 다치고 난 뒤 날이 흐리면 쑤시고 저리듯이 늙으면 늙을수록, 가만히 앉아서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그 생각이 떠오르고, 갈수록 화는 더 납니다. 그래서 건강만 나빠집니다. 그런데 질문자는 그 돈 안 받고도 지금까지 살았잖아요.”
“잘 살았지요. 그런데 괘씸해서 그렇죠..”
“왜 괘씸해요?”
“하는 짓이 너무 미워요. 내 것 주고도 뺨맞는 격이니까요. 그래서만 미운 것도 아니고, 남편과 대화도 안 되는데, 어쩌다가 남편이 막 내 속을 뒤집는 엉뚱한 소리를 하면 제가 화가 치밀어서 제 머릿속이 또 돌아가기 시작한다는 말씀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질문자가 동생한테 돈을 줄 때 자기가 번 돈이라고 영감하고 의논도 안 하고 턱 줘놓고 얼마 줬다고 말도 안 하니까 영감님은 그게 섭섭해서 질문자가 동생들한테 돈을 돌려받지 못하는 것이 오히려 고소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아이고, 스님. 제가 돈 액수를 안 밝혔으니까 다행이지, 밝혔다면 남편이 저한테 돈을 더 뜯어내려고 했을 겁니다. 그랬으면 저는 벌써 죽었을 거예요. 그래서 제가 남편한테는 ‘조금만 줬다’ 라고만 얘기했던 거예요.”
“질문자가 그 돈을 돌려받지 못했다고 자꾸 화를 내면, 남편은 돈을 조금 주었다고 들었기 때문에 벌써 잊어버렸는데, 늙어서 자꾸 그 얘기를 꺼내니 남편도 점점 듣기가 싫어지는 겁니다.”
“아니오, 남편이 듣는 데서는 얘기를 안 합니다. 저 혼자 문 닫고 지랄을 하지요.”(모두 웃음)
“그럼 솔직히 생각해 보세요. 첫째, 내 돈을 줬지요? 둘째, 그 돈 생각하느라고 계속 괴롭지요? 그럼 누구 손해예요?”
“그래서 스님한테 찾아 왔지요.”
“질문자가 바보예요. 형제간에는 원래 돈을 빌려주는 게 아니에요. ”
“제가 원체 바닥부터 기면서 살아왔기 때문에 동생들의 힘든 사정이 너무 잘 이해가 됐거든요.”
“그럼 질문자는 동생들이 지금까지 계속 힘들어서 밥도 못 먹고 사는 게 좋아요? 그래도 좀 먹고 사는 게 좋아요?”
“먹고 사는 게 좋죠.”
“그럼 동생들이 전부 밥도 못 먹고 구걸하면서 살면, 질문자는 동생들한테 ‘왜 너희들, 그 돈 안 돌려주느냐?’ 라고 할까요? 안 할까요? 만약에 동생들이 지금도 갚을 형편이 못 된다면, 질문자가 동생들한테 섭섭할까요? 안 섭섭할까요? 동생이 돈 줄 형편이 못 될 정도로 가난하다면 질문자가 동생한테 이렇게 화가 날까요? 안 날까요?”
“그런데 제 형편이 지금 형편만 같으면 안 줘도 상관없는데, 그때는 제가 정말 살기가 힘들었는데도 돈을 줬거든요. 그게 너무 답답해요.”
“질문자는 형편이 어려운 동생한테 돈을 빌려줬는데, 그 동생이 지금은 잘 살면서도 질문자의 돈을 안 갚고, 고맙다는 소리도 안 하니까 화가 난다는 건데, 질문자 생각대로라면 동생이 쫄딱 망해서 거지가 돼버려야 속이 시원하겠네요. ‘거봐라! 내 돈 안 갚으니까 네가 그렇게 됐지!' 하면서 속이 시원할 거 아닙니까?”
“그건 아닙니다.”(모두 웃음)
“뭘요, 지금 보니까 심보가 그런데요.(모두 웃음) 질문자는 동생이 싹 망해 버리면 좋겠어요? 아니면 내 돈을 안 갚더라도 동생이 밥 먹고 사는 게 좋아요? 동생이 내 돈을 안 갚을 바에야 싹 망해 버리는 게 속이 시원하겠어요? 내 돈을 못 갚더라도 내 동생이니까 잘 사는 게 좋겠어요?”
“제 욕만 안 하면 제가 뭐라고 하겠습니까.”
“그러니까 동생이 자꾸 질문자를 욕하니까 동생이 싹 망해 버리면 좋겠어요?”
“그건 아니지요.”
“그래도 밥 먹고 사는 게 좋겠죠?”
“그러니까 저도 그걸 잊어버리려고 하는데 잘 안 돼요.”
“그러니까 그냥 내 돈 안 갚는 동생이 벼락 맞아서 팍 죽어버리면 좋겠어요?”
“아닙니다.”
“그래도 재산 좀 가지고 사는 게 좋겠어요?”
“그래도 사는 게 좋지요.”
“그러면 됐어요. 그러니까 이렇게 생각하세요. ‘동생이 내 돈 안 갚는 거는 괘씸하지만 벼락 맞아서 팍 망해 버리는 거보다는 그래도 내 돈 가져가서 저렇게 먹고 사는 게 좋은 일이다’ 하면서 ‘부처님, 감사합니다’ 이렇게 기도하세요. 질문자의 공덕으로 동생들이 그렇게 잘 살면 좋잖아요. 그걸 질문자가 자꾸 괘씸하게 생각하면 동생들이 망해요.”(모두 박수)
“그래서 제가 어떻게 기도하면 좋겠어요?”
“‘내 덕에 동생들이 잘 사는 건 참 보기 좋다’ 하는 마음으로 ‘부처님, 감사합니다’ 이렇게 기도하세요. ‘내 덕에 동생들이 잘 사는 게 보기 좋구나. 우리 어머니가 보시면 나를 얼마나 예뻐하시겠느냐?’ 하고 기도를 하면 돌아가신 어머니도 질문자를 보면서 ‘네가 동생들을 잘 거둬서 동생들이 잘 사니 고맙다. 나는 너한테 잘 못해 줬는데 너는 동생들한테 잘해 줘서 고맙다’라고 하실 거예요.”
“어머니가 다 보시고 돌아가셨는데요.”(모두 웃음)
“돌아가신 어머니가 귀신이 되어서 질문자를 보고 좋아할 거라고요.”(모두 웃음)
“아버님도 ‘그만 좀 줘라. 너도 망한다’고 말씀하시고 돌아가셨어요. 제가 너무 주니까요.”
“어쨌든 그렇게 줬는데도 못 사는 게 나아요? 준 거 받아서 잘 사는 게 나아요?”
“제가 그렇게 기도하면 화나는 마음이 없어지겠습니까?”(모두 웃음)
“내가 도와줬는데도 못 사는 게 좋아요? 내가 도와준 걸 근거로 해서 잘 사는 게 좋아요?”
“아, 무슨 말씀인지 알아요. 잘 사는 게 좋지요.”
“그렇게 알면 기도할 게 뭐 있어요? ‘아이고, 좋다’ 그러면 되지요.(모두 박수) 아직도 분이 안 풀려요?”
“아니에요. 분이 안 풀린다기보다도 진짜 너무 화가 나요.”(모두 웃음)
“이 세상은 내 뜻대로, 내가 원하는 대로 잘 안 된다고 했지요. 내 자식도 내가 원하는 대로 안 되는데, 동생들이 어떻게 내가 원하는 대로 되겠어요? 내가 원하는 대로 다 들어주는 게 부처님, 하나님이 아니에요. 지금 전쟁이 날지도 모르는 위기인데도 내 뜻대로 바로 잡지 못 하고 살고 있는데, 질문자한테 돈 좀 빌려서 안 갚는 동생들 고치는 게 뭐가 그렇게 중요한 일이겠어요? 별로 중요한 일 아니에요.(모두 웃음) 그러니 그걸 고치려고 하지 말고, ‘내가 조금 도와줬는데 너희가 그렇게 잘 사니 참 고맙다. 내가 도와준 보람이 있다’ 이렇게 생각하세요. 한번 따라해 보세요.
나는 너희를 생각해서 조금 도와줬는데, 너희가 그것을 잘 활용해서 잘 사니 너무 너무 고맙다.”
“나는 너희를 생각해서 조금 도와줬는데, 너희가 그것을 잘 활용해서 잘 사니 너무 너무 고맙다.” (모두 웃음과 박수)
“용서를 하라는 얘기가 아니예요. 용서를 할 게 없다는 걸 깨우쳐야 됩니다. 제가 ‘동생들을 용서하시라’ 하는 얘기를 한 게 아니에요. ‘동생들이 망해 버린 것보다는 그래도 내가 준 돈 받아서 잘 사니까 좋구나’라고 생각을 바꿔버리면 용서해 줄 게 없다는 얘기를 하는 거예요. 진실을 딱 깨우치면 그냥 한 여름밤 꿈에 불과합니다. 그걸 깨우쳐야 합니다. 그러니 ‘네가 잘못했지만 내가 용서해 준다’는 말은 영원히 용서가 안 된다는 말이나 똑같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을 때 ‘주여, 저들을 용서하소서’라고 했던 건 ‘저들은 못된 놈들이지만 용서해 주시라’ 하는 뜻이 아닙니다. ‘그들은 아무 것도 모른다’는 뜻이에요. 질문자도 그런 경지에 이르러야 되는데, 그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우리 머리에는 ‘옳다, 그르다’는 관념이 꽉 박혀있으니까요.”
스님의 답변을 이해하지 못하고 계속 답답함을 하소연하던 할머니는 마침내 활짝 웃었습니다. 하소연이 계속 되자 청중석에서 눈살을 찌푸리는 분도 있었지만 마지막에 할머니가 활짝 웃자 강연장은 순식간에 웃음 바다가 되었습니다.
답변을 마친 후 스님은 “공개된 강연 자리가 아니라면 사실 할머니의 답답함을 더 들어드려야 하는데...” 하며 미안한 마음을 나누어 주기도 했습니다.
5명의 질문에 대해 모두 답변을 하니 이제 마칠 시간이 되었습니다. 아직 질문을 신청한 3명이 더 남아 있었지만 스님은 양해를 구하고 다음 강연장에 다시 찾아오라고 당부한 후 강연을 모두 마쳤습니다. 열정적인 강연을 해준 스님에게 다시 한번 박수갈채가 쏟아졌습니다.
강연이 끝나자 곧바로 책 사인회가 로비에서 열렸습니다. 작년 이후 오랜 만에 열린 강연인데다가 얼마전 새책 ‘행복’이 새로 나오면서 사인회를 기다리는 줄이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많았습니다. 30분이 넘도록 많은 사람들에게 사인을 해주면서도 스님은 웃음을 잃지 않았습니다.
▲ 책 사인회
마지막으로 오늘 강연을 준비한 봉사자들과 다함께 기념사진을 찍은 후 강연장을 나왔습니다.
▲ 봉사자들과 함께 기념 촬영
내일은 부처님이 출가하신 날입니다. 아침 10시부터 12시까지 서울 정토회관에서는 출가재일 기념 법문이 있을 예정입니다. 그리고 내일부터 부처님의 열반기념일인 다음주까지 일주일 동안 정토회의 전국 법당에서는 ‘8일 출가열반 용맹정진’ 기간을 갖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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