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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후에 서원행자대회를 모두 마친 후 저녁 6시부터는 문경 정토수련원 대웅전에서 행자대학원 8기 졸업식이 열렸습니다. 스님은 3년 동안의 수련 과정을 마치고 오늘 졸업하게 된 행자님 한 분을 위해 졸업 기념법문을 해주었습니다.
졸업식이 열리기 전 한바탕 흰 눈이 펑펑 내려 문경 정토수련원 곳곳이 하얗게 변해 절경을 보여주었습니다. 눈이 그치니 건너편에 보이는 희양산도 하얀 옷으로 갈아입고 운치를 더했습니다.
▲ 문경 정토수련원 대웅전
저녁 6시가 되자 대웅전은 졸업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행자님들과 법사님들로 자리가 가득 찼습니다. 특히 일주일 전에 입재한 백일출가 27기 행자님들도 함께 참석해 풍성함을 더했습니다. 삼귀의 반야심경 봉독으로 여법하게 졸업식을 시작한 후 사회자가 행자대학원 8기 경과 보고를 해주었습니다.
행자대학원 8기는 2013년 3월에 7명이 입재하였고, 그 중 한 명이 3년 과정을 마치고 오늘 졸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주인공은 신예슬님입니다.
▲ 오늘 졸업을 하게 된 행자대학원 8기 신예슬님
1학년 1학기는 ‘생태적인 삶과 공동체 운영’을 목표로 봉화에서 생태 주택을 지으며 봉화수련원 불사를 하였고, 2학기는 문경에서 농사, 퇴비화 관련 일수행을 하며 순환적인 삶에 대해 공부하며 공동체를 체화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2학년 1학기는 NGO 활동을 통한 사회 실천가로서의 지도력 함양을 목표로 서울에서 평화재단과 JTS에서 근무하며 통일, 환경, 복지 등 여러 분야의 사회활동을 경험했습니다. 2학년 2학기와 3학년 1학기는 질병, 문맹 퇴치 활동을 통한 국제 구호 활동을 목표로 인도JTS에 파견되어 마을개발, 회계, 총무 역할을 맡으며 JTS의 이념과 사상을 이해하는 실습을 하였습니다. 3학년 2학기는 문경에서 원력 보살의 삶과 경영 학습을 통한 미래 문명을 이끌 지도자 교양을 목표로 행자원 신입기수 간사 소임을 맡아 배우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경과 보고를 들으니 의젓한 수행자 한 명이 탄생하기까지 참으로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대중들은 모든 과정을 무사히 마친 신예슬 행자님에게 뜨거운 박수갈채를 보내주었습니다.
이어서 현재 행자대학원 상임법사를 맡고 있는 묘수 법사님의 인사 말씀이 있었습니다.
▲ 인사말을 하고 있는 묘수 법사님
“여러 대중들 덕분에 무사히 졸업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여러 법사님들의 지도가 있었고, 서울과 인도에서도 각 부서 팀장님들도 지도를 잘 해주셨고, 중간에 그만두게 된 도반들까지도 ‘우리 몫까지 잘 해달라’는 응원을 해주는 등 많은 도움을 받아서 8기 대표로 졸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행자대학원의 목표인 미래 문명을 이끌어갈 보살이 되어 홀로 설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3년 동안 갈고 닦은 것이 바탕이 되어 새로운 길을 여는 데에 한 역할을 해주시길 바랍니다. 이 자리에 함께해서 기쁩니다.”
이어서 정토수련원 원장인 유수 스님이 축하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 정토수련원 원장 유수 스님
“지난 3년은 연습이었고 오늘 졸업을 하게 되면 이제 중원의 세계로 나아가게 됩니다. 눈 밝은 수행자가 되셔서 정토회의 새 지평을 열어서 오래된 저희 선배들이 오히려 후배님을 보고 배우는, 행자님으로 인해서 정토회가 더 발전할 수 있게 되는, 그런 수행자로 거듭나시길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지도법사님께서 정말 바쁘신데 오늘 참석하셔서 한 명이 소중하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신 것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선배 법사님들의 따뜻한 축하와 격려 말씀에 신예슬 행자님은 합장을 하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다음은 신예슬 행자님의 후배 기수가 되는 9기, 12기 행자님들의 축하 공연이 있었습니다. 스크린에는 신예슬 행자님의 지난 3년 동안의 활동 모습이 담긴 사진 슬라이드가 흘러가는 가운데, 축하의 마음을 담아 신나는 노래와 율동을 보여주었습니다. 마지막에 “선배님 졸업을 축합니다”는 문구를 펼쳐들자 큰 박수가 쏟아졌습니다. 선배와 후배의 돈독한 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 9기, 12기 행자대학원생들의 축하 공연
이어서 행자님들은 청법가를 부르며 법륜 스님에게 졸업기념법문을 청했습니다. 법상에 오른 스님은 졸업을 진심으로 축하하면서 졸업 후에도 진정한 수행자로 거듭나려면 어떤 관점을 갖고 수행을 해나가야 하는지 얘기해 주었습니다.
졸업하는 사람은 한 명이지만 스님은 2시간에 걸쳐 정성을 기울여 법문을 해주었습니다.
“오늘 행자대학원 제8기 무애승 신예슬 법우님의 졸업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애초에 7명이 입학했는데 그 중 1명이 오늘 졸업하게 되었다는 경과보고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졸업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귀하고 소중하게 느껴집니다.(웃음)
‘행자대학원’이라고 할 때 ‘행자’는 수행자의 줄임말입니다. 그럼 어떤 사람을 수행자라고 할까요? 해탈과 열반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이 수행자입니다. 붓다는 우리의 소원을 들어주는 신이 아니며, 출가수행자인 스님은 제사장이 아니고, 재가수행자는 복을 비는 신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해탈과 열반으로 함께 나아가는 수행자들로서 도반의 관계입니다.
정토회는 수행자들의 모임입니다. 그런데 수행공동체와 신앙공동체를 세상 사람들은 헷갈려하는 것 같아요. 세상 사람들이 그런 건 당연하다고 이해할 수 있는데, 정토회 안에서도 늘 헷갈려 하는 것 같습니다. 지금 여기 모인 분들은 모두 수행자입니다. 수행자는 힘든 사람들, 즉 배고픈 사람을 돕거나 병든 사람을 치료해 주거나 아이들을 보살피는 구호활동을 하는 입장에 서 있지 구호를 받는 대상이 아닙니다.
물론 정토회로 힘든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긴 합니다. 그런데 그 힘듦을 극복하는 방식이 누군가의 보살핌이나 도움을 받는 방식이라면 그건 구호소 수준이 되는 겁니다. 그냥 다른 종교와 별 차이가 없다는 거예요. 그러나 그것을 극복하는 방식이 수행을 통해서 무지를 깨치고, 의지심이나 욕구와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라면, 그것은 수행자라 할 만합니다. 수행자가 남을 돕고 복을 지어서 열반에 이른다고 할 순 있어도 남으로부터 도움을 받아서 열반에 이른다는 건 어불성설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여러분들이 관점을 그렇게 바로 잡지 않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가 나에게 잘 해 주면 좋아서 붙어있고, 잘 안 해 주면 싫어서 떨어지고, 좋은 일이 있으면 붙어있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떨어집니다. 바깥 세상에서 살면서 그렇게 하는 건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수행자가 ‘왜 나를 안 도와주나? 왜 나를 안 사랑해 주나? 왜 나한테 이런 일을 시키나?’ 라고 번뇌를 일으킨다면 그건 수행자가 아닙니다. 수행의 관점을 놓쳤기 때문입니다. 채울 수 없는 욕망을 좇는 것으로 행복을 삼는 것은 윤회의 씨앗을 심는 일인데, 그걸 행복이라고 착각한다면 그게 바로 어리석음인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들은 거기에 편향되어 있습니다.
수행자적 관점을 잡기가 어렵긴 합니다. 하지만, 그 관점을 딱 잡고, 넘어지면 일어나고, 넘어지면 또 일어나면서 수행자에 조금씩 근접해 가는 게 중요합니다. 지금은 안 되더라도 수행 관점을 똑바로 세워서 방향을 잘 잡고 가야 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관점을 놓쳐버리면 세월과는 아무 상관이 없어져 버립니다. 시간이 흐른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참선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염불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불교 교리를 많이 배운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절을 많이 한다고 되는 것도 아닙니다. 일단 관점을 먼저 잡고 절을 하든 참선을 하든 염불을 하든 노동을 하든 봉사를 해야 합니다.
이 자리에 백일출가생들도 함께 있는데, 백일출가생들도 세상 사는 게 너무 힘드니까 새로운 길을 한번 찾아보려고 여기 들어왔지 수행의 관점을 탁 잡아서 살아보겠다고 여기 들어온 건 아닐 거예요. 본인은 발심을 했다고 생각하겠지만 그건 착각이에요.(모두 웃음)
그래서 지금 막 헤매고 있는 것이 용인됩니다. 사실 헤맬 수밖에 없고요. 밖에서 살기가 힘들었으니까 여기 들어와서 도움도 좀 얻고 위안도 얻어서 편안해 지려고 했는데, 막상 와보니 그렇지가 않으니까 번뇌가 생기고 더 힘들지요. 그러니 여기 수행공동체에 들어올 때는 먼저 관점을 딱 잡아야 합니다. 되고 안 되고는 부차적입니다.
그런데 관점이 안 잡혀 있기 때문에 우선 동의조차 안 한 사람이 많을 거예요. ‘애초에 이런 방식을 선택하지 말 걸’ 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들이 여기 들어와서 살아보니 집에서 살았던 것보다 생활하기가 더 불편하지요? 먹고 자는 것도 불편하고, 일하는 시간도 더 길고, 일찍 일어나야 하니까요. 그런데 그 좋은 집에서 왜 힘들었을까요? 지내기는 편했어도 각자의 문제가 해결이 안 되었다는 거잖아요.
고타마 싣다르타의 위대함도 여기에 있습니다. 오늘날 그 어떤 사람이 누리는 삶의 조건보다 고타마 싣다르타는 더 훌륭한 조건에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런 조건을 못 누려봤기 때문에 ‘환경이 좀 좋아지면, 돈이 많이 생기면, 지위가 높아지면, 건강해지면, 인기가 있으면, 좋은 사람을 만나면 행복하리라’ 하는 환상을 갖는 겁니다. 그러나 세상이 물질적으로 많이 좋아졌는데도 인간의 고뇌는 하나도 해결된 게 없기 때문에 지금이야말로 수행이 다시 꽃피울 가능성이 높은 거예요. 실제로 여러분들이 바라는 그곳에 도달해 봐도 인생 문제가 해결이 안 됩니다. 이런 얘기를 들으면 머리로는 이해해도 속으로는 ‘그래도 나는 한번 그렇게 살아봤으면’ 하지요?(모두 웃음)
스님은 안 해 보고도 어떻게 알까요? 저는 거기에 도달해 본 사람들, 즉 재벌, 정치지도자, 인기 연예인, 인기 스포츠선수 등을 만나서 상담을 하잖아요. 여러분들이 볼 때는 그들이 굉장하지요? 그러나 실제로는 안 그렇습니다. 경전에 보면 부처님께서 이것에 대해 참 묘사를 잘해 놓으셨어요. 세 여인이 부처님을 유혹할 때 부처님께서는 ‘잘 채색된 항아리에 똥만 가득한 것들아!’ 라고 하셨잖아요. 그 말씀이 진정 맞습니다. 재벌, 정치지도자, 인기 연예인, 인기 스포츠선수야말로 잘 채색된 항아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얼마나 잘 채색되었으면 천하가 다 부러워하겠어요? 그런데 실제 그들의 마음에는 정말 똥만 가득 들었다고 표현하는 게 딱 좋을 만큼 그들 마음 속에는 질투, 시기, 미움, 불안, 초조, 욕망 등이 여러분의 10배쯤 더 들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최고 부자인 모기업 회장이 자기 형님한테 ‘한 푼도 못 준다’고 재판까지 했잖아요? 여러분은 아무리 화가 나도 형님한테 ‘너한테 한 푼도 못 준다’라고는 안 할 겁니다.(모두 웃음)
지금은 일반인들도 옛날로 치면 왕궁 수준으로 먹고 살잖아요. 여러분들이 입는 옷, 사는 집, 먹는 음식은 거의 옛날 왕궁 수준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이미 2,600년 전에 그 수준에 도달했는데도 고뇌가 해결 안 되는 걸 아시고 ‘이게 아니구나’ 하고 왕궁을 나오신 겁니다. 그래서 세속에 미련이 없었던 것입니다.
관점을 딱 잡으란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7명이 입학했는데 고작 1명만 남았다고 평가해서는 안 됩니다. 1천 명이 입학해서 1명이 남든, 1천 명이 입학해서 1천 명이 다 남든,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여기는 수행자의 길을 갈 사람을 모으는 곳이니까 1만 명이 오더라도 수행자가 아니면 다 나가야 하고, 3명만 오더라도 그들이 수행자라면 다 남을 것입니다. 그리고 꼭 정토회에 남아야 되는 것도 아닙니다. 수행의 관점을 딱 잡았으면 졸업하고 나서 사회로 나가서 살아도 되고, 결혼해도 되고, 뭘 해도 상관없습니다. 그게 좋다면 그렇게 살아도 됩니다. 왜냐하면 부처님께서는 출가수행뿐 아니라 재가수행의 길도 열어주셨기 때문입니다.
누구든 힘들면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힘들 때 누가 좀 안아주고 쓰다듬어주면 좋지요. 중생이니까요. 그러나 그렇게 의지해서 행복을 찾으면 영원히 고뇌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도반이 같이 수행하다가 속퇴하더니 결혼해서 잘 살더라 하는 게 나한테 영향을 준다면 그건 수행이 아닙니다. 문경에 있을 때는 수행적 원칙이 잘 지켜지는데 집에 가니까 잘 안 지켜지더라 하는 얘기가 이해는 됩니다. 그러나 그게 수행자의 길은 아닙니다. 수행자라면 명상 시간엔 명상을 해서 그 원칙을 지켜나가고, 일과 시간엔 일을 하면서 지켜나가고, 농사를 지으라고 하면 농사 지으면서 지켜나가고, 혼자 있으면 혼자 지켜나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늙어서 어렵고, 아파서 힘들고, 혼자 있어서 외롭고, 둘이 있으니 귀찮다고 하는 건 관점을 놓친 채 중생놀음을 하고 있는 겁니다. 또 여러분은 ‘돈만 있으면, 사람만 더 있으면, 내가 대통령이면 더 잘 할 수 있을 텐데’ 라고 하지만, 돈이 없고, 사람이 없고, 내가 대통령이 아닌 게 현실이잖아요. 그런 마음이 드는 것이 이해는 되지만 그런 얘기를 하는 게 수행은 아니라는 겁니다.”
스님은 함께 참석한 백일출가생들을 헤아리며 수행의 관점을 잡아주기 위해 더욱 열정적으로 법문을 해주었습니다. 특히 1만 명이 들어오더라도 수행자가 아니면 다 나가야 한다는 말씀에는 정신이 번쩍 차려졌습니다. 확고부동한 수행의 원칙을 가슴에 새길 수 있었습니다.
이어서 스님은 졸업하는 행자님 한 명을 축하하기 위해 정토회 법사단이 대거 참석한 모습을 보며 농담을 던졌습니다.
“그동안 법사 수계자도 5명 내지 10명이 안 되면 수계를 안 했거든요. 그런데 행자대학원이 얼마나 소중하기에 졸업자가 1명 밖에 안 남았는데도 이렇게 법사란 법사는 다 와서 축하하는 걸까요?(모두 박장대소)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 한 명이 바로 수행자가 되기 위한 길을 지금 걸으려고 하잖아요. 그러니까 오늘 졸업하는 행자님은 부디 이 수행의 관점을 놓치지 마세요. 수행자의 길은 꾸준히 가야 하는 길입니다.”
한바탕 크게 웃었지만, 정토회와 스님이 얼마나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는지 그 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은 졸업하는 행자님이 앞으로 어떤 자세로 살아가면 좋을지 격려 말씀을 주었습니다.
“운전에 비유하자면 행자대학원 과정은 운전교습소 안에서 운전 연습하는 것과 같아요. 그러니 졸업은 본격적으로 도로 주행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 안에서 흔들릴 때는 그래도 담당 법사님이나 도반과 같은 울타리가 있어 지켜 주지만, 졸업을 해서 현장에 배치가 되면 도로 주행하는 것과 같아서 본인만 잘 한다고 일이 되지 않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끼어드는 차도 있고, 앞에 가던 차가 급정거도 하고, 돌이 날아오는 등 온갖 일이 벌어지는데, 그걸 다 ‘나는 잘 했는데 저 사람 때문이다’라고 하면 그게 핑계는 되겠지만 본인이 사고 당하는 걸 면하게 해 줄 비법은 아니에요.
그러니 주행할 때는 선행 차량이 급정거 할 것을 대비해서 일정한 거리를 두고 가야 하고, 끼어드는 차가 있으면 약간 양보도 해 주면서 운전을 해야 되는 것처럼, 울타리가 없어졌으니 이제는 수행자로서 자립을 해야 합니다. 자기 인생에 대해서 수행자로서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겁니다. 일종의 만행(萬行)이지요. ‘이거 하고 싶고 저거 하고 싶다’가 아니라 이것 하라면 이것 하고, 저것 하라면 저것 하고, 이것도 해 보고, 저것도 해 보고, 해 보고 싶은 것도 해 보고, 하기 싫은 것도 해 보고, 그러면서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사람, 무엇이든지 될 수 있는 사람, 경계에 따라 흔들리긴 하지만 중심을 놓치지 않는 사람이 되어가야 합니다. 만약 정토회에 큰 사고가 나서 다 죽어버리고 나 혼자 남았다고 해도 DNA 복원하듯이 정토회를 그대로 복원해 낼 수 있는 정도가 되어야 합니다.
미국에 혼자 파견되었다고 해도 ‘미국에 나 혼자 있으니 외로워서 안 되겠다’ 라고 하면 안 됩니다. 이 세상을 사는 사람은 아무리 인기 연예인이나 고관대작이라 하더라도 다 고뇌 속에서 삽니다. 그러니 1년이든 2년이든 파출부를 하든지, 비서나 하인이 되든지 해서, 그가 힘들 때 위로도 해 주고 도와주면서 교화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위에서부터 교화를 해서 내려오는 게 아니라 아래에서부터 위로 교화를 해나가는 겁니다. 그렇게 씨앗을 심고 일궈나갈 수 있어야 합니다. 영어를 몰라도 되고, 돈이 없어도 됩니다. 아프리카에 떨어지면 아프리카에서 하고, 미국에 떨어지면 미국에서 하고, 동남아에 떨어지면 동남아에서 하고, 만약 안산다문화센터에 떨어지면 거기에서 노동자들을 살살 돕다가 그들에게 전법을 하면, 그들이 본국인 스리랑카로 돌아가거나 태국으로 돌아갔을 때 그곳에도 불법의 씨가 뿌려지게 되는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건 그 씨앗을 간직하는 것입니다. 세력을 얼마나 만드느냐 하는 건 부차적인 것입니다.
그런 관점을 딱 갖고 입지(立志)를 세우면 뭘 하느냐가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농사를 지으라면 농사를 살살 지으면서 이런 저런 실험해 보고, 동네 노인들이 농사짓는 것도 도와주면서 ‘미래에는 인류의 먹거리가 중요한 문제가 되니까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 어떻게 하면 안전한 먹거리를 보급할 수 있을까?’ 를 연구해야지요. 그런데 욕심은 내면 안 됩니다. 욕심을 내면 판로를 빨리 모색해 주지 않는다는 등 불만을 갖게 되니까 욕심을 내지 않으면서 해 나가야 합니다.
수행의 씨앗을 뿌리는 게 진정한 전법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이렇게 씨앗을 하나 심게 되었으니까 어디를 가든지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모두 웃음)
선불교에서는 달마 대사가 중국 땅에 와서 뿌린 씨앗이 몇 대를 내려가도록 확산이 되지 않다가 5대를 내려간 뒤 6조에 와서야 확산되었다고 하잖습니까. 그러니 우리가 씨앗을 뿌린다 해서 금방 어떻게 되는 건 아니고 다 시절인연이 맞아야 되는 것입니다. 행자님은 아직 젊으니까 마음이 남자한테도 갔다가 돈한테도 갔다가 왔다갔다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더라도 오뚝이처럼 엉덩이는 딱 붙여놓고 왔다갔다 해야지 뿌리가 뽑히면 안 됩니다. 그렇게 정진해 나가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 번 졸업을 축하드립니다. 그러면 행자님이 이제 졸업 못한 나머지 7명 역할을 다 하면 되겠네요. 7명치 짐을 다 짊어지고 가려면 앞으로 수고가 많으시겠습니다.(모두 웃음)
스님도 같이 하겠다고 해 놓고 안 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지금 이렇게 일을 많이 하게 된 겁니다. 먼저 죽은 사람들 일도 해야 되고, 중간에 그만 둔 사람들 일도 해야 되고, 아픈 사람들 일도 해야 되니까요. 같이 하겠다고 했다가 먼저 죽거나 떠났다고 해서 나도 따라서 죽고 떠나면 안 되잖아요. 죽고 떠나는 건 그들의 일이니까요.
수행자는 원을 한번 세웠으면 꾸준히 해 나가야 합니다. 꾸준히 해 나가려면 재미가 있어야 합니다. 재미가 없는데 어떻게 꾸준히 하겠어요? 재미가 있으려면 항상 연구를 해야 합니다. ‘이러면 되나? 이러니까 안 되네? 그럼 이렇게 할까?’ 이렇게 탐구하는 자세를 가져야 재미가 생기고, 그래야 집중력이 생기고, 그래야 꾸준히 할 수 있습니다. 되고 안 되는 것에 너무 흔들리지 마세요. 그렇게 해 나가시기 바랍니다.”
스님의 따뜻한 격려에 참석한 대중들도 박수갈채로 격려의 마음을 보태었습니다. 신예슬 행자님이 앞으로 어느 부서에서 근무하게 될지 아직 발표가 되지는 않았지만 어디를 가든 수행자의 모습으로 거듭나길 기원해 봅니다.
법문을 마친 후 스님이 직접 신예슬 행자님에게 졸업장을 수여했습니다. 환하게 웃으며 졸업장을 받는 행자님에게 다시 한 번 큰 박수가 쏟아졌습니다.
▲ 졸업장 수여
이어서 신예슬 행자님은 그동안 많은 대중들의 배려와 보살핌으로 무사히 졸업하게 된 것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담아 삼배로 인사를 했습니다.
▲ 대중들에게 삼배하고 있는 신예슬 행자님
사홍서원을 끝으로 졸업식을 모두 마치고 다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먼저 지난 3년 동안 가르침을 잘 설해준 법륜 스님과 함께, 다음은 유수 스님과 묘수 법사님과 함께, 다음은 법사단 전체와 함께, 다음은 행자대학원 후배들과 함께, 마지막으로는 졸업식에 참석한 모든 대중들과 함께 사진을 찍었습니다.
한 명의 졸업을 축하하기 위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애정을 보여주는 모습이 참 감동이었습니다. 사람만이 희망이라는 문구가 떠올랐습니다.
대웅전을 나와 스님은 곧바로 서울로 향했습니다. 고속도로가 일부 막히기는 했지만 밤 12시를 넘기지 않고 무사히 서울에 도착했습니다.
내일은 오전 10시 30분부터 프레스센터 19층에서 3.1운동의 정신을 이어 민족의 화해와 평화, 신뢰 회복을 위한 종교인 기자회견이 있을 예정입니다. 스님도 5개 종단의 지도자들과 함께 기자회견장에 참석해 남북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정부와 정치권의 각성을 호소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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