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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분당 정토법당에서 강원경기동부지부 정회원들과 대화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오후 2시에는 주간반 정회원들과 함께, 저녁 7시 30분에는 저녁반 정회원들과 함께 했습니다.
스님은 아침 7시부터 오후 1시까지 연이어 회의와 미팅을 가졌습니다. 오후 1시에 평화재단에서 분당으로 출발했는데, 스님은 “아침부터 지금까지 조금도 쉴 틈이 없었다” 며 피곤한 기색이었습니다. 하지만 원고 교정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차 안 밖에 없어서 차에서도 휴식을 취하지 못하고 원고를 보았습니다.
분당정토법당에 들어서자 곧바로 책 사인회가 열렸습니다. 멀리서 온 춘천, 강릉 법당 정회원들에게 먼저 사인을 해주었습니다. ‘행복’ 책을 가슴에 꼬옥 안고 줄을 서서 기다리는 정회원들의 얼굴은 책 제목처럼 모두 행복한 표정이었습니다.
▲ 책 사인회
오후 2시가 되자 삼귀의 반야심경 봉독을 시작으로 강원경기동부지부 주간반 정회원 법회가 시작되었습니다. 법회가 시작되자 함박눈이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큰일 치를 때 눈이 내리면 부자 된다는 어른들 말씀이 떠오르며, 모두 마음의 부자가 되었으면 기원하니 소담스럽게 날리는 함박눈이 더 반갑습니다. 소임을 맡은 정회원들은 오전부터 모여 밖에 눈이 오는 것도 공양도 잊고 몇 번이고 연습하고 수정하며 진행 식순과 퍼포먼스를 맞춰 보았다고 합니다.
현재 강원경기동부지부는 총 7개 정토회와 23개 법당이 있습니다. 2015년에 영통법당을 필두로 권선, 수정, 처인, 동해, 포천 6개의 법당이 개원했고, 원주, 의정부를 비롯한 6개의 법당이 확장불사를 했거나 진행 중입니다. 총 530여 명의 정회원들이 각 법당에서 소임을 맡아 활동을 해나가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 중 주간반 정회원 170여 명이 함께 모여 스님과 대화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먼저 강원경기동부 지부 사무국장 소임을 맡고 있는 이연옥님이 정회원들을 환영하는 인사말을 해주었습니다.
▲ 이연옥 강원경기동 지부 사무국장
“오늘은 정회원이 된 특혜로 스님을 가까이서 뵐 수 있는 날입니다. 작년 이맘때 스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나는 바깥에 있는 스님보다 여러분을 더 스님이라고 생각한다.’ 저는 스님의 이 말씀이 일년 내내 오래도록 남았습니다. 오늘은 우리가 수행자임을 자각하는 날입니다. 여기 모인 170여 명의 정회원 여러분, 행복한 수행자로 거듭나시기 바랍니다.”
사무국장님의 인사말에 모두 공감의 박수를 보냈고, 이어서 법당별로 나와서 소임과 이름을 말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자기 차례가 되기까지 속으로 몇 번씩 되뇌이는 상기된 표정의 정회원들의 모습이 미소를 짓게 했습니다. 스님도 한 명 한 명의 얼굴을 유심히 보면서 박수로 감사의 마음을 표했습니다.
▲ 참가자 소개 시간
특히 소임을 ‘노보살’이라고 한 보살님의 소개에 청중은 크게 빵 터졌습니다. 목요일에 개원하는 태백법당 김희경 부총무와 토요일에 개원법회를 하는 홍천법당 도반들에게는 격려의 박수가 쏟아졌습니다.
이어서 축하 무대가 펼쳐졌습니다. 수원정토회 3개 법당의 신규 정회원들은 '동반자' 노래를 개사해 율동을 보여주었니다.
용인법당은 파란 JTS 조끼를 입고 나와 얼씨구 절씨구 노래를 개사해 불러 호응이 좋았습니다. 특히 ‘평양 법당, 개성 법당 불사를 위하여’ 라는 가사가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분당법당은 머리에 색색의 가발과 반짝이 의상을 입고 나와 재미있는 몸짓과 함께 “우리가 한다고요~ 한다고요~ 한다고요~ 수행~ 보시~ 봉사~” 라는 짧고 재미있는 구호를 외쳐 모두가 박장대소를 했습니다.
정회원 활동 영상이 이어지자 재미난 영화라도 보듯이 뒷자리에 앉은 대중들까지 고개를 쏙 빼고 끝까지 집중해서 영상을 감상했습니다. 메르스에도 굴하지 않은 마스크 쓰고 모인 모듬법회 사진에서 또한번 큰 웃음이 쏟아졌습니다.
신나게 웃고 즐거운 시간을 보낸 뒤 오늘의 하이라이트 스님의 법문과 즉문즉설 시간이 이어졌습니다.
먼저 스님은 정토회는 수행자들의 모임이라고 강조하면서 재가수행자가 출가수행자보다 더 도력이 높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출가한 스님들보다 세속에 사는 정토행자들이야말로 더욱더 수행해야 한다는 말씀에 모두 공감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이어서 수행하면서 또는 활동하면서 생긴 의문과 갈등을 질문해보라는 말씀에 총 6명이 손을 들었습니다.
첫 번째 질문자는 큰 딸을 보면서 올라오는 불편한 마음을 어쩌면 좋을지 물었고, 두 번째 질문자는 6개월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친정 엄마가 자식들이 갈등하는 것을 보고 찾아오지 말라고 하는 데 어찌할지 물었고, 세 번째 질문자는 최근에 금강승 수행에 관심이 생겼다며 금강승 수행에 관해 물었고, 네 번째 질문자는 남편이 도박으로 빚을 떠안게 되어 집안에 생활비를 가져 오지 않아 이혼해야 할 지 고민이 된다고 했고, 다섯 번째 질문자는 8대 행사 집전을 맡고 있는데 스님도 아닌데 집전하는 것이 부담스러울 때가 있다며 어떻게 마음을 가져야 할지 물었고, 마지막 여섯 번째 질문자는 큰아이를 키울 때 많이 때렸는데 스님 법문을 들으면서 아이를 때린 것이 참회가 되어 가슴이 아픈데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야 하는지 물었습니다.
그 중에서 네 번째 질문자가 물었던 도박하는 남편에 대한 고민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결혼한 지 18년 됐는데, 처음부터 남편은 생활비를 저한테 맡기지 않고 자기가 알아서 관리하겠다고 해서 저는 여태껏 남편한테 생활비를 받아서 썼습니다. 그런데 작년 4, 5월경부터는 생활비를 잘 안 주는 겁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니까 제가 너무 힘들어서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어봤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결혼하기 전부터 도박을 무척 좋아했습니다. 아이들 어릴 때는 유모차를 끌고 경륜장에 가서 경륜도 하고, 정선의 카지노도 많이 다녔습니다. 몇 년 전에는 정선에 가서 도박으로 생활비를 모두 잃고 대출을 받아서 생활비를 썼는데, 그걸 아직도 못 갚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제가 자꾸 물어보니까 ‘얼마 전에 지인이 사업한다는데 내 명의를 빌려주었다. 그런데 사업은 망했고, 그 사람은 도망 가버렸다. 빚이 몇 억이 되는데, 내가 다 갚아야 할 상황이다’라고 하더라고요. 집도 이미 차압된 상태이고요. 지금 중학교 다니는 아이가 둘인데, 아이들이 한참 먹을 나이이기도 하고, 학교도 보내려면 돈이 필요한데... 다른 건 고사하고 집에 쌀이 떨어져서 먹을 게 없을 지경입니다.
남편이 너무 미우니까 남편을 이해하려고 ‘남편이 부처님입니다’ 하며 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기도를 하면 할수록 남편에게 더 화가 나고, 남편이 밉습니다. ‘내가 왜 이런 사람을 위해서 기도를 해야 되나’ 싶고, ‘저 사람이 잘못했어. 내가 옳아’라는 생각이 더 강해집니다. 제가 어떻게 해야 될까요?”
“부처님이 노름했다는 소리 들었어요?”(모두 웃음)
“아니오.”
“노름하는 남편을 자꾸 부처라고 하니까 잘 안 되지요. 누가 그렇게 기도하라고 하던가요?”
“누굴 원망하는 질문자한테 스님께서 그렇게 법문해 주시는 걸 들었던 것 같아서요.”
“저래서 돌팔이가 생기는 거예요.”(모두 웃음)
“아이가 몇이에요?”
“둘이에요. 고1, 중2 올라갑니다.”
“그럼 막내가 고등학교 졸업하려면 앞으로 5년은 더 있어야 되네요. 그러면 이제 질문자는 인생설계를 해야 됩니다. 남편과 평생 살면 좋지만, 최소한 막내가 성인이 될 때까지 5년은 더 살아야 되잖아요. 그러니 아이들하고 의논해 보세요. ‘나는 더이상 못살겠어. 이혼하려고 하는데 너희는 동의하니? 너희가 동의하면 나는 이혼하겠다. 동의를 안 하면 그냥 살겠다’ 하고요."
“그것과 관련해서 제가 남편한테 먼저 얘기를 했습니다. ‘아이들한테 돈도 잘 못 주고 하니까 아이들한테 힘든 사정을 얘기해야 되겠다’고 했더니 남편이 막 화를 내면서 ‘이게 뭐 좋은 얘기라고 하느냐’는 겁니다. 그래서 아이들한테 얘기도 못하고 있어요. 혹시라도 추운 겨울에 길바닥으로 나앉을 상황이 될 수도 있으니까 친정집에 얘기를 했더니, 남편은 ‘보태주는 것도 하나 없는데 뭐 하러 얘기를 했느냐’는 거예요.”
“그러게 친정집에는 왜 얘기를 했어요? 얘기할 필요 없잖아요. 그렇게 하면 친정어머니 걱정만 하나 더 늘리는 것인데, 그런 얘기를 꼭 해야하는 건 아니잖아요. 결혼한 지 10년이 넘었다면서, 질문자도 좀 문제예요. 질문자가 남편한테 뭘 물었을 때 남편이 솔직하게 얘기하지 않는 이유가 뭐겠어요? 남편이 얘기해 봐야 질문자가 불같이 화를 내고 설칠 것 같으니까 말을 안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남편한테는 다 이유가 있는 거예요. 질문자는 평소 남편이 어떤 얘기를 하더라도 ‘여보, 그랬어요? 참 힘들겠네요’ 했어야 돼요. 질문자가 화낸다고 벌어진 일이 안 벌어진 일이 되는 게 아니잖아요.
남편 입장에서는 ‘아내한테 얘기해 봐야, 아내가 돈을 벌어서 갚을 것도 아니고, 괜히 부부싸움만 할 것이다’ 싶어서 질문자한테 말을 안 한 것이지요. 남편이 노름하는 걸 이해하라는 게 아니라 ‘아, 나한테 말해 봐야 내가 성질만 내니까 남편 혼자 끙끙대면서 마음 고생 했겠구나’ 하는 걸 이해하라는 겁니다. 그걸 이해하면 남편이 질문자한테 말 안 하는 것 때문에 남편을 미워할 필요는 없지요. 그건 질문자의 성질 때문에 생긴 문제이고, 남편이 도박을 한 것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예요. 질문자는 직장 나가요? 안 나가요?”
“안 나갑니다.”
“그럼 남편한테 ‘여보, 애는 둘이고 생활비도 드는데 나는 직장이 없으니까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하고 자분자분 의논을 해 봐요. ‘당신이 주는 30만원만 받아서 먹고살다가 길거리에 나앉는 게 낫겠어요? 아니면 내가 파출부나 청소부를 해서 다만 50만 원이라도 버는 게 낫겠어요?’ 이렇게 상의를 했을 때 남편이 ‘나가서 버는 게 낫겠다’고 하면 그렇게 하면 되지요. 집안에 재앙이 생겼으니까 질문자가 벌어야지 어떻게 하겠어요.”
“저도 처음에는 그런 생각을 했는데, 남편이 하는 걸 보면 생각이 달라져요. 남편은 지금도 쌀이 떨어져야 돈을 좀 주는데, 그마저도 며칠 후에 다시 빼앗아갑니다. 그래서 제가 돈을 벌면 그것마저도 남편이 빼앗아갈까 봐 걱정돼요.”
“그러니 질문자가 결정을 해야지요. 지금 대한민국에 자기가 벌어서 먹고 사는 여자가 한둘이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궁하면 질문자가 벌어야지요. 그런데 여자가 한번 벌기 시작하면 남편이 더는 책임 안 진다는 건 각오해야 됩니다.”
“그래서 걱정입니다.”
“남편이 ‘너도 일 좀 해라’고 하면 질문자는 ‘라면을 끊여먹다가 길거리에 나앉더라도 나는 당신밖에 없어. 나는 당신 하나 믿고 시집와서 사는 거지, 나는 아무 것도 할 줄 몰라. 많이 달라고 안 할 테니까 굶기지만 말아줘’ 라고 말하고 쌀이 떨어지더라도 집에 가만히 있어보세요. 그러면 남자라는 건 또 묘해서 도둑질을 해서라도 먹여 살립니다.
그리고 남편이 돈을 줬다가 다시 가져가더라도 자기가 번 돈 자기가 다시 가져가는 거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집을 잡혀도 남편이 번 돈으로 산 집이니까 질문자가 같이 벌어서 얻은 게 아니면 걱정할 건 아니지요. 질문자도 배짱이 있어야 됩니다. 배짱이라는 것은 평정심을 뜻합니다. 딱 사태를 파악해서 남편하고 의논해 보고, 남편이 어떻게 하겠다고 하면 그냥 믿고 가보는 거예요. 그동안 같이 살았으니까요.”
“그런데 그런 걸 남편이 저한테 솔직하게 얘기하지 못한 이유에 대해서는 아까 스님께서 말씀해 주셨잖아요. 제가 남편한테 딱딱거렸기 때문이라고요. 저도 오늘 그건 제대로 알게 됐어요.”
“그러면 남편한테 이렇게 말해 보세요. ‘여보, 내가 막 내 성질대로 하니까 당신이 나한테 말을 제대로 못 했다는 건 내가 반성해요. 그런데 상황이 이렇게 됐고, 그걸 숨긴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고, 나한테 말한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지만 그래도 내가 알아야 무슨 대책을 세울 거 아니에요? 내가 벌겠다는 게 아니라 집에서 쫓겨나게 되면 천막이라도 하나 구해야 되고, 아이들이 학교를 그만두든지 해야 되니까 당신이 어렵겠지만 기본계획이 어떻게 되는지 말을 좀 해 주세요. 당신이 방침을 좀 정해 주면 내가 거기에 맞춰서 어떻게 해 볼게요’.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그렇게 물어봤더니 자기가 다 알아서 한다는 했어요.”
“그러면 걱정하지 말고 집에 앉아 있어요.”
“그런데 그 사람이 알아서 하는 게 하나도 없어요. 회사에서 진급하면 월급이 좀 오르니까 어쩌고 했지만 잘 안 됐어요.”
“그런 말은 때로는 안 맞을 수도 있어요. 나도 여러분들에게 ‘북한동포 돕자’고 했고, 그래서 여러분이 작년에 JTS 거리모금도 하는 등 많은 일을 했잖아요. 그런데 남북관계가 경직돼서 정작 북한엔 지원을 못 했어요. 그러면 여러분들이 기분 나빠서 ‘아니, 돈을 쓰라고 보내줬더니 왜 하나도 안 쓰고 그러느냐’고 항의할 수도 있겠지요. 그러니까 ‘남편이 승진을 해서 어떻게 하겠다’는 건 남편의 바람인 거예요. 질문자는 감언이설에 속은 거예요. 그런 걸 믿을 게 아니고, 남편의 의사를 확인하라는 겁니다. ‘내가 책임 못 지겠다. 그러니까 너 나가서 살아라’고 이혼하자는 건지, 아니면 ‘라면을 끓여먹든 내가 책임질 테니까 그냥 여기 있어라’는 건지를 확인하라는 겁니다. 그래야 질문자가 대책을 세울 거 아니에요. 남편이 말한 대로 잘 되면 다행이고, 안 되면 남편한테 ‘일단 쌀과 김치는 대줘라’ 이렇게 원칙을 정하고, 질문자도 여기저기 가서 일해서 좀 얻어먹고, 그렇게 사는 거예요. 잘 살려고 하지 말고요. 그리고 아이들한테도 ‘아빠가 보증 서서 좀 어려움이 있다. 그러니까 우리가 조금 어렵게 살 각오를 하자’고 말해서 나쁜 일이 오히려 가족 융합의 계기가 될 수 있게 살아보는 겁니다.
그런데 집에서도 쫓겨나 천막 치고 살면서 밥도 못 먹을 정도가 되면 남편한테 한 번 더 얘기해 보세요. 18년을 함께 산 사람이잖아요. ‘여보, 당신 말대로 했으나 더 어려운 상황이 됐다. 지금 이래서는 안 된다’고 얘기를 해 보면 되지요. 그렇게 호소하려면 질문자의 체중이 10㎏은 빠져야 돼요. 그래야 ‘나도 이렇게 체중이 많이 빠졌다. 기본적인 영양공급이 안 되니까. 오히려 이혼을 해서 당신은 빚을 책임 지고, 나는 아이 둘 데리고 기초수급자가 되어서 정부로부터 도움을 좀 받든지, 무슨 대책을 좀 세우자’ 이렇게 하소연이라도 해 보면 되지요. 질문자가 벌어봐야 남편하고 같이 살면 남편 월급도 차압되는 마당에 질문자 월급도 차압될 수 있으니까요. 그렇게 하나하나 해결책을 찾아봐요. 성질만 내지 말고요. 헤어져도 어떻게 헤어져라고요?”
“쿨하게.”(질문자 웃음)
“예, 쿨하게 헤어져야 돼요. 그래야 또 나중에 결합할 수도 있잖아요. 남편과 의논을 해서 쿨하게 헤어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에요. 나중에 문제가 해결되면 다시 결합해서 살면 되잖아요. ‘너 결혼할 때 나를 책임진다고 하지 않았냐? 지난달에 뭐라고 했어?’ 라며 지나간 얘기를 해봐야 소용이 없습니다.”
“저도 정말 이혼하고 싶은 마음이에요. 계속 새로운 빚만 나오고, 남편은 월급도 안 갖다 주고 하니까요.”
“그래도 자기는 걱정할 필요가 없어요. 어차피 질문자 돈이 아니니까요.”
“그래서 이혼을 하는 게 낫겠다 싶어요. 그런데 제가 5남매 중에 막내라서 결혼하기 전에는 엄마나 언니, 오빠가 시키는 대로만 했거든요. 그리고 결혼해서는 남편이 의처증도 있고 가부장적이기도 해서 남편이 하라는 대로만 했습니다. 그렇게 40년을 살다보니까 제가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었어요. 제 의견은 다 무시되는 것 같으니까 자꾸 무기력해집니다.”
“절에 와도 질문자의 의견은 다 무시됩니다.(모두 웃음) 법사들 의견도 다 무시돼요. ‘자기’라는 걸 내세우면 절에서 못 삽니다.”
“이혼을 하고 아이들과 살려면 방이라도 한 칸 얻어야 되는데, 형편이 안 되니까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어요.”
“그렇게 이리 따지고 저리 따지고 잔머리를 굴려서 이혼하면 안 됩니다. 결혼해 보니까 상대가 경제력이 좀 딸린다고 이혼하고 그러면 어떻게 합니까? 사람이 서로 신뢰가 있어야지요. 제가 말하는 건 경제가 어려우니까 이혼하라는 게 아니에요. 이 문제를 극복하는데 이혼이 도움이 되는지를 의논하란 말입니다. 아이 둘을 키우면서 이 위기를 극복해야 되는데 이혼이라는 수단이 도움이 되겠느냐고 남편과 의논을 해서 남편이 ‘그게 낫겠다. 내가 빚을 책임지고 있을 동안 당신은 아이들과 어떻게 좀 해 봐라’고 하면 합의를 해서 살 길을 찾으라는 거예요.
그러면 질문자는 은행에 가서 융자를 내야 되잖아요. 담보가 없어 그게 안 된다면 신용대출을 받아야 되는데, 그걸 도와줄 수 있는 곳이 친정집 밖에 없잖아요. 친정 식구들한테 남편이 지금 빚져서 어렵다는 얘기는 하지 말고, ‘남편이 사업에 실패해서 애 둘 데리고 이혼을 했으니까, 방 한 칸 얻을 정도만 신용대출을 해 주든지, 월세는 내가 낼 테니까 오빠나 아버지 명의로 임대차 계약을 하고, 보증금만 내주세요’ 라고 하세요. 그런 건 간단하잖아요.
외국인노동자들은 말도 안 통하는데도 여기 와서 살잖아요. 그런 사람들 생각하면 질문자가 못 살 이유가 뭐가 있어요? 질문자의 상황이 나빠졌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들보다는 훨씬 좋잖아요. 외국인노동자들은 왜 여기 와서 살까요? 말이 안 통해도 자기네 나라에 비하면 여기서 사는 게 더 낫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우리는 여태 살던 습관이 있으니까 상황이 변하면 못살겠다고 하는 거예요. 그러니 공항에서 자는 걸 저는 하는데, 여러분들은 못 하는 겁니다. 왜 그럴까요? 여러분은 자기 집에 비해서 공항에서 자는 게 불편하니까 그런 거고, 저는 온 세계를 다니니까 공항이 호텔 같거든요. 공항은 비도 안 새고, 덥지도 않고, 춥지도 않고, 화장실도 있고, 물도 나오니까요. 그러니까 비교하기 나름입니다. 옛날에 여러분 부모님들은 어떻게 단칸방으로 시집 와서 아이들을 몇이나 키우면서 살 수 있었을까요? 부모님이 어렸을 때는 방 하나에 형제 일곱이 이불 하나놓고 발만 넣고 살았잖아요. 거기에 비하면 단칸방이라도 부부만 사는 게 더 낫잖아요. 그러니 비교 기준이 달라져야 해요. 질문자도 현재 사는 걸 기준으로 이혼 후를 생각하면 어렵지요.
남편이 질문자를 의심한다는 것은 의심병이 있다는 거잖아요. 그러니 이 문제를 ‘남편이 돈 못 버니까 이혼한다’고 접근하지 말고, ‘둘이 의논해서 어떻게 해결할까’ 로 접근해야 수행이 됩니다. 질문자가 짜증이나 화를 안 내고 남편과 의논하다 보면, 오히려 그걸 통해서 남편이 아내의 진실성을 믿게 될 수도 있지요. 그러니까 이왕 살았던 남자이니까 남자의 동의를 얻어서 문제를 해결해 보세요.”
“그런데 제가 이혼하겠다고 결심한 이유는, 단지 남편이 돈을 못 벌어서가 아니라 아까 말씀드렸듯이 도박을 너무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이번에도 생활비를 못 주기에 ‘그럼 어떻게 생활비를 주겠냐’고 했더니...”
“도박장에 가서 한판 더해서 가져다 주겠다고 하지요?”
“예.”
“그런 걸 뭐 하러 물어요? 아이고, 참. 그 사람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도록 할 필요가 뭐가 있어요? 질문자가 냉방에 담요 뒤집어쓰고 좀 굶어보세요. 그렇게 정진을 하면 길이 열립니다. 그게 기도입니다.
길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헤어지더라도 남편의 마음을 얻어서 헤어지려면 질문자가 6년 고행하듯이 굶어보세요. 그렇지 않으면 질문자의 권리로써 재판이라도 해서 헤어져야 한다 싶으면 변호사 선임해서 이혼하면 됩니다.
애가 없으면 내일이라도 ‘안녕히 계십시오’하면 되는데, 아직 5년은 아이 엄마로서 책임을 다해야 되니까 고민을 좀 해 봐야 됩니다. 질문자가 성질을 낸다는 건 남편을 나쁘게 보고 있다는 얘기잖아요? 남편이 나쁘다는 건 ‘애 아빠’가 나쁘다는 뜻이 되잖아요. 나쁜 아빠의 자식이 잘 될 이유가 없잖아요. 그러니 질문자가 화를 내지는 말라는 거예요. 질문자가 애 엄마로서 짐을 덜게 되는 5년 후까지는 남편을 나쁘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동안 그렇게 하지 못했던 것은 질문자가 반성을 해야 됩니다. 그렇다고 남편을 부처님이라고 생각할 것까진 없어요. 이것만 딱 중심을 잡으면 됩니다. 돈 벌어서 아이들한테 밥 좀 더 주는 게 중요한 게 아니고, 아이들의 아빠를 나쁘다고 생각 안 하는 게 엄마가 아이들한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입니다.”
“그러면 아침에 기도할 때 어떻게 기도를 해야 될까요?”
“하루 500배씩 절을 하면서 이렇게 참회를 해 보세요. ‘내가 당신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당신의 초조하고 불안하고 답답한 마음을 제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래야 이치를 깨칠 수 있습니다. 이치는 내가 힘이 들어야 깨쳐지는 거예요.”
“예, 감사합니다.”
질문자는 해결의 실마리를 발견한 듯 환한 웃음을 보이며 자리에 앉았습니다. 여러 가지 상황을 모두 고려해서 최선의 길을 알려주려고 하는 스님의 자상함에 모두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
이 외에도 스님은 여러 가지 질문들에 대해 2시간 30분에 걸쳐 많은 지혜를 들려주었습니다. 어떤 질문이건 스님의 답변에는 그 속에 사람이 있고 마음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구를 위하는 것인지 왜 하는 것인지 마음을 살펴라, 잘못한 것은 없다, 다만 내 마음을 보고 거기에 따른 대가를 기꺼이 지불하라는 메시지가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많은 봉사활동을 해나가고 있는 정회원들을 다시 한 번 격려해 주었습니다.
“정토회의 정회원은 뭐라고요?”
“수행자.”
“수행자이니까 수행해야 되겠지요? 그런데 수행만 하면 안 되고, 보시도 하고, 봉사도 해야 됩니다. 그런데 ‘봉사가 힘들다’고 불평하면 안 됩니다. 봉사라는 건 자발적이어야 하거든요. 봉사는 기쁜 마음으로 해야 됩니다. 그런데 아무리 하기 싫어도 주 2시간은 해야 됩니다. 이게 미니멈이에요. 그러니까 ‘형편이 어려워서 봉사하기가 어렵다’ 하면 꾀를 내세요. 먼저 마음을 내서 조금 쉬워 보이고 작아 보이는 봉사를 빨리 잡으세요.(모두 웃음)
‘더 하라’ 그러면 웃으면서 ‘저는 아직 이것밖에 안 돼요’라고 해야지 ‘정토회는 매일 일만 시킨다’면서 볼멘 소리를 하면 안 돼요. 봉사를 해도 재미있게 해야지, 짜증내고 성질내면서 하면 안 됩니다.
그래서 이런 걸 이해하려면 교회를 다녀야 됩니다.(모두 웃음) ‘억지로 하지 말고 자발적으로 하라’는 말씀이 성경에는 이렇게 표현되어 있어요. ‘5리를 가자면 10리를 가주라. 겉옷을 달라면 속옷까지 벗어주라. 왼뺨을 때리면 오른뺨을 내주라.’. 억지로 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하면 기쁨이 생깁니다. 여러분은 제가 법문을 억지로 하면 좋겠어요? 재미있는 마음으로 하면 좋겠어요?”
“재미있게요.”
“이왕 하는 거 재미있게 하면 좋지요. 그러니까 아까 질문자도 평생 살면 더 좋겠지만 최소한 5년은 더 살아야 되는데, 이왕 사는 거 미워하고 원망하고 살면 질문자만 괴로워요. 어차피 5년을 더 살아야 된다면 재미있게 사세요. 그동안 남편한테 10년 넘게 얻어먹었잖아요. 얻어먹은 김에 계속 얻어먹든지, 안 그러면 질문자가 벌어서 먹여 살리든지, 의논을 해서 상대가 좋다는 대로 하면 좋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돈 못 번다고 ‘에잇, 내가 벌고 말지’ 이러면 남편은 그 다음부터 ‘보니까 알아서 사네? 내가 번 돈은 내가 써도 되겠다’ 하면서 돈을 벌어도 질문자에게 안 줄 겁니다.
그리고 주부가 좋아요. 여러분들은 여기 와서 복 많이 짓잖아요. 요즘 다 맞벌이 하는데, 여기 있는 사람들은 직장 안 가도 살 수 있도록 남편들이 벌어주니까 얼마나 감사합니까? 그러니까 남편을 항상 든든한 후원자라고 생각하세요. 그러니까 법당 나올 때도 ‘내가 놀러가나?’ 이러지 말고 ‘다녀오겠습니다’ 하고, ‘법당 갔다가 오지 마라!’고 해도 웃으면서 ‘예, 잘 다녀오겠습니다’라고 해야 됩니다. 직장 한번 다녀보세요. 이렇게 봉사하면서 재미있게 일 배울 수 있는 줄 알아요?
나 봉사하라고 남편이 나하고 결혼한 건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자기 밥해 달라고 결혼한 건데, 내가 봉사하러 다니니까 남편이 성질내는 건 당연하다’ 이렇게 생각하세요. 그렇다고 내가 남편의 노예도 아닌데, 꼭 시키는 대로만 하면서 매어 살 필요도 없잖아요. 그렇다고 후원자를 그렇게 함부로 대해도 안 됩니다. 후원자한테는 고마워하면서 살아야 돼요, 알았지요?”
“예. 감사합니다.”(모두 박수)
스님의 기운을 듬뿍 받고 나니 정회원들 모두 한껏 기쁜 마음이 되었습니다. 스님의 말씀을 가슴에 새기며 다함께 큰 박수를 치면서 법회를 모두 마쳤습니다.
법회가 끝나자 깜짝 이벤트가 펼쳐졌습니다. 원래는 스님께 새해 인사를 드리는 시간인데, 정회원들 전체가 재미있는 퍼포먼스를 준비한 것입니다.
먼저 스님께 감사의 꽃다발을 드린 후 각 정토회별로 스님을 응원하는 구호를 외쳤습니다. 먼저 수원법당에서 “우리는 스님의 비타500” 이라고 외치며 푯말을 들고 일어섰고, 뒤이어 용인법당은 “힘 내세요”, 분당법당은 “정토 붙박이 우리가 있잖아요”, 남양주법당은 “무조건 달려가는”, 원주법당은 “우리는 정회원”, 춘천과 강릉에서는 “통일은 우리가 하겠습니다.”를 만세 삼창과 함께 외쳤습니다.
▲ 강원경기동부지부의 새해 인사 퍼포먼스
부끄러워 하지 않고 귀여운 율동과 구호를 열심히 외치는 활기찬 강원경기동부지부 정회원들을 보니 함께 하는 것 만으로도 힘이 났습니다. 스님은 응원의 메시지를 재미있게 보여준 정회원들에게 합장을 하며 고마운 마음을 표한 후 환하게 웃었습니다.
이어서 각 법당 별로 다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모두들 처음 법당에 들어올 때 보다 법문을 듣고 나니 더 화사한 얼굴이 되어 있었습니다.
행사를 마무리하고 책 사인회가 진행되는 동안 오늘 들었던 법문 중 마음에 남는 법문이 무었이었는지 몇몇 분들에게 소감을 물어보았습니다. “수행은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이라는 말씀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잘못한 일은 없으니 다만 그 행동에 대한 과보는 기꺼이 받아라고 하신 말씀이 오히려 희망적으로 다가왔다” 라고 소감을 말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오늘도 많은 대중들이 스님의 감로 법문을 들으며 한 해를 살아갈 소중한 수행의 씨앗을 마음에 품을 수 있었습니다.
스님은 법회를 마치고 곧바로 원고 교정 업무를 보았습니다. 원고 교정을 끝내자 곧이어 저녁반 정초 법회를 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저녁 7시 30분부터는 강원경기동부지부 저녁반 정회원들을 위해 정초 법회가 열렸습니다. 다음 이야기에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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