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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후 2시에 안양 정토법당에서 있었던 인천경기서부지부 주간반 정회원 법회에 이어 저녁 7시 30분부터는 일산 정토법당에서 저녁반 정회원들을 대상으로 정회원 법회가 열렸습니다.
안양에서 일산으로 이동하는 길에는 붉은 태양이 서서히 저물어 가고 있어 장관을 보여주었습니다. 쉼없이 이어지는 바쁜 일정 속에서 스님이 유일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시공간은 바로 차 안 입니다. 스님은 일산에 도착할 때까지 차 안에서 도시락으로 저녁 식사를 한 후 단잠을 주무셨습니다.
일산 정토법당에 도착하자 많은 봉사자들이 분주하게 법회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 일산 정토법당
접수대와 법륜스님의 신간 ‘행복’ 도서 판매대에서는 갑자기 추워진 날씨와 대비되게 봉사자들이 화사한 얼굴로 대중들을 반갑게 맞이해 주었습니다.
▲ 새 책 ‘행복’ 사인회
법회가 시작되기 전 스님은 법당 한쪽 편에서 책 사인회를 먼저 해주었습니다. 책을 안고 줄을 서서 기다리던 대중들의 표정에서는 스님을 가까이서 뵙는다는 셀렘이 가득 묻어났습니다.
더욱이 인천경기서부 지부의 상임법사님인 묘수법사님과 선광법사님, 월광법사님도 오랜만에 함께 자리해 정회원들은 더욱 반가운 표정들이었습니다.
▲ 인천경기서부지부 상임법사님들
인천경기서부지부 국장 소임을 맡고 있는 송순애님의 인사말을 시작으로 일산정토회 소속의 일산법당 주간반, 저녁반, 파주법당, 김포법당, 덕양법당에서 차례대로 앞으로 나와 자기 소개 시간을 가졌습니다. 소개를 마치고 다함께 ‘수행 보시 봉사, 우리는 정회원이다’ 라는 구호를 외쳐 큰 박수를 받았습니다.
이어서 인천정토회 소속의 인천법당, 강화법당, 부평법당에서 나와 각자 소개를 마친 후 불사, 통일, 수행 카드를 들고 푸근한 미소를 보여주었습니다.
▲ 참가자 소개 시간
또 부천정토회 소속의 부천법당, 광명법당에서는 ‘부천, 광명, 통일로 빛나리’ 라는 구호를 재치있게 해주어서 모두를 웃게 했습니다.
다음은 올해 인천경기서부지부의 신규 정회원이 된 분들을 축하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먼저 일산법당 윤난영님이 부처님 법 만난 기쁨과 이 땅에 정토세상을 이루기를 소원하는 발원문을 낭독했습니다.
▲ 발원문을 낭독하는 윤난영님
“오늘 저희 신규 정회원 일동은 부처님 앞에서 스승님을 모시고 두 손 모아 간절히 발원하옵니다. 부처님 법 만나기 전까지는 삶이 힘들고 괴로웠습니다. 나는 이렇게 열심히 노력하는데 왜 결과는 내가 원하는 만큼 이루어지지 않는지 원망도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부처님 법 만나 스스로 돌이키니 괴로움은 모두 나의 어리석음이 만들어낸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내 자신이 정말 소중한 존재이고 내가 가진 것 어느 하나 남에게 도움이 되지 않은 것이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이제 더 이상 구걸하지 않겠습니다. 이 땅에 정토가 이루어질 때까지, 평화와 통일이 이루어질 때까지, 정토행자로서 통일일꾼으로서 부지런히 정진해나가겠습니다.˝
▲ 선배활동가들에게 인사하는 58명의 신규 정회원들
선배 활동가들이 큰 박수로 환영해 주자 신규 정회원 58명은 한 명씩 앞으로 나와 부처님 전에 헌화를 했습니다. 수행자의 길을 함께 가게 된 신규 정회원들의 모습이 참으로 늠름해 보였습니다.
▲ 헌화
이어서 스님은 먼저 수행자와 신자의 차이점에 대해 말씀해 주었습니다. 법문 중간중간에 대중들의 웃음 소리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 인천경기서부 저녁반 정초법회
특히 정토회의 초창기에 어려운 여건 속에서 수련원과 법당을 하나씩 마련해 갔을 때의 에피소드는 모두의 웃음을 자아내었습니다. 그러면서 스님은 우리들의 인생도 비록 시련이 찾아올지라도 재미있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정토회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재미있게 개척을 해온 것처럼 여러분들도 인생을 재미있게 살아야 돼요. 남편이 바람을 피우면 ‘왜 피우지?’ 연구하는 거예요. 얼마나 재밌어요? 남편을 상대로 인터뷰 조사를 해보고 연구가 부족하면 상대 여자를 만나서 인터뷰도 해 보는 거예요. 그래서 ‘아, 인간의 심리는 이렇구나. 중년 남자의 심리는 이렇구나’ 하고 알면 좋잖아요. 아이들을 키울 때도 아이들이 어떻게 변해 가는지 지켜보고, 왜 야단을 치거나 매를 때리면 갈수록 교육 효과가 떨어지는지도 연구하고요. 자꾸 내 남자 내 자식이라고 집착하니까 괴로운 거예요. 수행의 핵심은 연구예요. 부처님은 6년 고행을 할 때 굶어도 보시고, 이렇게도 해 보고, 저렇게도 해 보시면서 당신의 심리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늘 연구하셨습니다.”
정회원들은 스님이 강조한 연구하는 자세에 대해 모두 공감을 하며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이어서 즉문즉설 시간을 가졌습니다. 두 명이 스님께 질문을 했습니다. 첫 번째는 출가한 어머니, 돌아가신 아버지, 노동 운동을 하다가 귀농하려는 남편 사이에서 갈등하는 여성 분의 질문이었고, 두 번째는 최근에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남북관계에 대한 질문이었습니다.
그 중에서 첫 번째 질문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질문자와 아버지와의 관계, 어머니와의 관계, 남편과의 관계를 모두 짚어주면서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수행자가 될 수 있는 길을 찾아가는 모습은 마치 복잡한 방정식의 해법을 풀어가는 모습 같아서 감탄을 자아내었습니다.
“법당에서 새벽 기도 집전을 맡고 있습니다. 제가 기도를 하면서 많이 좋아지긴 했는데,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게 있어서 질문을 드립니다. 친정아버지는 바람을 많이 피우셨습니다. 그래서 엄마는 ‘막내가 대학만 진학하면 절로 들어가겠다’는 얘기를 입버릇처럼 하셨습니다. 결국 엄마는 절로 가셨고, 아버지는 홀로 15년을 사시다가 폐암으로 돌아가셨습니다. 그때는 아버지가 너무 미웠기 때문에 저는 아버지가 벌을 받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기도를 하면서 ‘아버지도 무척 힘드셨겠다’ 싶었고, 지금은 아버지에 대한 미움이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그 미움이 엄마한테 갔습니다. 제가 이렇게 살 수 있는 것도 다 엄마의 기도 공덕인 것 같은데, 한편으로는 ‘엄마는 왜 그렇게 사셨을까?’ 싶습니다. 저는 버림받았다는 느낌이 있거든요.
남편은 노조활동을 하다가 어느날 말도 없이 지리산으로 떠났고, 그렇게 1년을 떨어져 지내다가 최근에는 ‘너무 힘들다. 귀농을 해야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남편의 뜻을 받아들이는데 3년이 걸렸습니다. 지금 남편은 지리산 쪽으로 가고 싶다고 하는데 저는 너무 싫습니다. 저도 괴롭고, 남편도 괴로운 상황입니다. 제가 왜 그런지 잘 살펴보니까 ‘버림받았다’는 느낌 때문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이걸 어떻게 풀어야 할까 싶습니다.”
“상황은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질문자는 뭘 해결하고자 한다는 거예요?”
“제 안에 미움과 원망이 너무 많은 거예요. 심지어 모르는 사람도 그냥 딱 보면 미울 때가 있습니다. 제 문제인 건 알겠는데, 그게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어요. ‘인연과보’라고 이야기하시면 제가 그냥 엎드리는 수밖에 없겠지만 뭔가 해결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질문자가 조금 더 잘 살펴보세요. 그게 어디서 왔는지가 뭐가 그리 중요해요? 지금 질문자가 그것을 움켜쥐고 있으면 괴롭잖아요. 뱀을 보면 저절로 싫지 ‘싫어해야 되겠다’ 해서 싫어지는 건 아닌 것과 같지요. 그러면 뱀 없이 살면 되는데 어쩔 수 없이 땅꾼이 되었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러면 어떻게 할래요? 계속 뱀을 싫어하면서 살면 질문자만 괴롭잖아요. 싫은 건 이해가 되지만 계속 움켜쥐고 살면 질문자만 손해라는 거예요. ‘언제부터 내가 뱀을 싫어했지?’ 그걸 따져서 뭐해요? 내가 뱀을 싫어하게 된 게 뱀으로부터 온 건 아니잖아요. 뱀은 그냥 그렇게 생긴 것이고, 내가 그걸 싫어하는 거니까, 싫어하는 건 내 까르마이지요. 그 까르마를 없앨 순 없다고 하더라도 거기에 사로잡히지는 말아야 된다는 겁니다. ‘뱀이 문제다’ 이렇게 뱀 탓 하지는 말아야지요.
싫은 마음이 일어나더라도 ‘내가 또 내 생각에 사로잡혔구나’ 이렇게 금방 돌이키면 됩니다. 열 번 일어나면 열 번 돌이키고, 백 번 일어나면 백 번 돌이키세요. 싫어도 만져야 되니까 자꾸 만지다 보면 어떻게 되겠어요? 땅꾼이라고 처음부터 뱀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우리는 안 하니까 싫어하지만 땅꾼은 계속 하니까 괜찮아지지요. 뭐든지 계속하면 괜찮아져요.
업식이 형성된 건 아버지로부터 왔거나 어머니로부터 왔겠지요. 그런데 그게 아버지로부터 왔으면 어쩔 거예요? 우리가 뱀을 싫어하게 된 건 파충류의 위협으로부터 왔다고 역사적으로 규명이 됐다 한들 어떻게 할 건데요? 몇 백만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뭐 어떻게 할 건데요? 아버지, 어머니한테 가서 얘기해서 뭐 어떡할 건데요? 어머니가 뭐라고 한다고 자기 문제가 해결될 것 같아요? 어머니가 ‘미안하다. 나 때문에 네가 고생한다’고 말한다고 질문자의 까르마가 없어지나요? 안 없어져요. 이미 습이 됐으니까요. 그러니까 ‘아, 이건 내 습이구나. 내 까르마구나. 내 업식이구나’ 이렇게 일어날 때마다 알아차리면 됩니다. 거기에 사로잡히면 안 된단 말이에요. ‘당신이!’ 이러면 벌써 사로잡힌 거예요.”
“순간 그렇게 되더라고요. 그 순간에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어요.”
“그 순간 미치니까요. 화가 무척 나서 미치면 무슨 짓을 못 하겠어요? 상대가 칼 들고 오면 도망을 가야되는데, 오히려 옷을 걷어 올리고 배를 내밀면서 ‘찔러라, 찔러’ 이러잖아요. 미쳐서 날뛰면 재앙만 받게 되지요. 그런데 질문자는 이제 불법을 알았으니까 ‘아, 어릴 때 형성된 업식이 이렇게 작동을 하는구나. 이래 봐야 나만 고생이지. 엇! 또 내 업식이 작동하는구나. 남편 문제가 아니라. 내 업식이다’ 이렇게 돌이키는 수밖에 없지요. 절을 하다 보면 돌이켜질 수가 있으니까 자꾸 절을 하세요. 지금 질문자는 ‘남편이 귀농 안 하게 해 주세요’라며 절하고 있지요?”(모두 웃음)
“예, 제가 기도를 그렇게 했더라고요.”
“그게 제일 좋은 해결책 같지요? 그래서 ‘신자’라고 하는 거예요. 팔이 하나 없으면 없는 대로 불편을 감수하며 살 듯이 그렇게 살아가는 거예요. 그리고 업식은 꼭 다 소멸해야 되는 건 아니에요. 남편이 귀농하고 싶다면 귀농하시라고 허용해 주세요. 다만 나는 가기 싫으면 안 가면 되지요. 그건 아무 문제가 없어요. 어머니가 집을 떠날 때 자기는 몇 살이었어요?”
“31살이요.”(모두 웃음)
“제가 늘 얘기하잖아요. 스무 살이 넘으면 부모로부터 독립해야 한다고요. 그때는 몰라서 상처가 됐더라도 이제는 ‘아, 어머니는 그때 자기 인생을 살려고 갔던 거구나’ 하는 걸 알잖아요. 아이가 스무 살 넘었으면, 부부가 같이 살든 헤어지든 그것은 둘이 합의해서 결론 내면 돼요. 사실 합의할 것도 없어요. 재산을 분할할 일 없으면 이혼을 할 필요도 없는 거예요. 어머니가 다른 남자랑 살려고 이혼하는 것도 아니고, 산에 가서 스님 되려고 하는 건데, 이혼이 꼭 필요해요? 그냥 가버리면 되는 거예요. 어머니는 아무 죄가 없어요. 부처님은 갓난 아이를 놔두고 출가했으니까 죄가 있다면 부처님이 죄가 있지요. 갓난 아이를 놔두고 가도 죄가 안 되는데, 스무 살이 넘어서 시집까지 보낸 딸을 두고 간 게 무슨 죄가 되겠어요?”
“엄마가 자꾸 저한테 ‘나는 절로 갈 것이다’라고 하셔서 제가 불안심리가 생긴 것 같아요. 또 저는 남편이 지리산에 갔을 때도 정말 버림받았다고 생각했거든요.”
“지리산에 간 사람이 버림을 받았지, 집에 있는 사람이 무슨 버림을 받아요? 지리산에 간 사람이 집을 나간 거지요. 질문자는 아직도 모르고 있네요. 이미 지나간 일을 재론할 필요가 없잖아요. 그러니까 질문자에게도 권리가 있다고 제가 말했잖아요. 질문자도 가고 싶으면 가면 돼요. 그런데 도시에 살다가 가는 것이니까 까르마를 움켜쥐고 있으면 거기 가서 당연히 불만이 생기지요. 그러니 일단 가면 고생할 거예요. 그 때마다 늘 ‘이건 내 업식 때문에 그렇다’ 이렇게 돌이키면서 수행하고 살면 됩니다.
그런데 또 질문자에게는 안 내려갈 권리도 있어요. 그러니 ‘나는 도저히 안 되겠으니 당신 혼자 지리산으로 가세요. 나는 여기 살게요. 먼저 내려가서 터를 좀 잡아보세요’ 라고 말하면 되지요. 일단 질문자가 그렇게 하면 남편이 다른 여자와 살아도 할 말은 없는 거예요. 사람이 자기 요구가 있으면 상대의 요구도 들어줘야 되니까요. 이렇게 하면 되지 그게 뭐 어려운 일이에요? 그런데 질문자는 넙죽 내려가겠다고 약속까지 해 놓았으니까 성격이 경솔한 거지요. 뭐 때문에 덥석 따라간다고 약속을 했어요? 가기 싫으면 ‘당신 혼자 가라’고 하면 되지요.”
“남편은 벌써 3년 전부터 가고 싶어 했는데, 그때 제가 너무 힘들어하니까 남편이 3년을 기다려 준 거거든요. 그래서 약속은 한 겁니다.”
“그럼 일단 가세요. 갔다가 못 살겠으면 다시 오면 되지 뭘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해요. 머리 깎고 스님이 되고 싶으면 한번 들어가 보고, 못 살겠으면 다시 나오면 되잖아요. 그것처럼 일단 가보세요. 여기 앉아서 목탁 치면서 ‘갈까? 말까? 갈까? 말까?’ 하고만 있지 말고요.”(모두 박장대소)
“정말 제가 그러고 있더라고요.”
“아침에 일어나서 눈뜨자마자 그러고 있으니... 새벽기도 집전을 다른 사람으로 바꿔요.”(모두 박장대소)
“서울에도 집은 있어요. 아들이 서울에서 대학교를 다녀요.”
“지리산 갔다가 마음에 안 들면, 서울에 집 있겠다, 왔다 갔다 하면 되겠네요. 뭐 그게 어려운 문제라고 그래요. 안 가든지, 갔다가 올라오든지 하면 되지요. ‘여래(如來)’가 무슨 뜻이에요? ‘갈까? 말까?’ 하는 것이 여래가 아닙니다. 가도 좋고, 안 가도 좋고. 여여히 가고, 여여히 오고. 간 바도 없고 온 바도 없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을 타타가타(tathāgata), 즉 여래라고 하는 겁니다.”
“감사합니다.”(모두 박수)
“내일부터는 새벽기도에 와서 ‘가도 좋고, 안 가도 좋다’ 하면서 목탁을 치세요.”(모두 웃음)
스님은 ‘가도 좋고, 안 가도 좋다’는 기도문을 목탁 리듬에 맞춰 흉내를 내어 보여주었습니다. 대중들은 박장대소를 하며 배꼽을 잡고 웃었습니다.
법회 후 몇몇 분들에게 소감을 물어보았습니다. 지난 일요일 정토불교대학을 졸업한 박종순님은 ˝정토회는 수행자의 모임이라는 것과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보며 지금 행복함을 늘 알아차리라는 말씀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며 기뻐했고, 특히 스님께 직접 질문을 했던 첫 번째 분은 “스님과의 대화를 통해 결국에는 모든 것이 나의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되어 홀가분하다” 며 “끊임없이 알아차리는 수행정진을 해야겠다” 고 웃으며 말했습니다.
뵙기 힘든 스님과의 만남은 어느덧 3시간이 훌쩍 지나 밤 11시가 넘어서 끝났습니다. 아쉬움이 컸지만 귀가 시간이 너무 늦어지는 것을 우려해 스님은 마치는 의식을 간소하게 하고 빨리 법회를 마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먼 지역에서 온 인천정토회, 부천정토회 활동가들부터 기념사진을 먼저 신속하게 찍었습니다. 이어서 일산정토회 활동가들이 함께 사진을 찍었습니다.
▲ 기념사진 촬영
일산법당에서는 떡을 정성껏 준비해 먼 길을 가는 도반들에게 나누어 주며 작별의 아쉬움을 달래주었습니다. 법당을 나서니 어느새 함박눈이 쌓여 있었습니다.
2월 중순의 날씨는 변덕스러운 남북관계처럼 비와 눈이 함께 만나며 급격한 온도 변화를 보였습니다. 앞날을 예상치 못하는 가운데에도 땅 속의 씨앗과 딱딱한 나무등걸 속에는 새순이 자라고 있듯이 각자 자신이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며 조용히 봄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는 정토회 정회원들의 모습이 감동스러운 하루였습니다.
스님은 밤 12시가 넘어서 서울 정토회관에 도착했습니다. 내일은 아침 7시부터 조찬 모임을 시작으로 오후 2시에는 강원경기동부지부 주간반 정회원들을 위해, 저녁 7시 30분에는 저녁반 정회원들을 위해 정초 법회가 열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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