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6.2.10 (저녁) 정초순회법회 1일째 대구경북 지부


 

오후 2시에 열렸던 주간반 정초법회에 이어서 저녁 7시부터는 대구경북지부의 저녁반 정회원들을 대상으로 정초법회가 열렸습니다. 

 


▲ 대구정토회

 

저녁 7시가 되자 곧 시작될 법회 참석을 위해 자리가 채워지는 한편으로 ‘오분향 예불문’을 시작으로 저녁예불이 진행되었습니다. 5일 간의 설연휴 동안 조금은 들떠있던 마음이 나지막히 들리는 예불문으로 인해 차분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대구정토회 대표를 맡고 있는 전병찬님의 활기찬 인사와 함께 곧이어 포항정토회를 시작으로 경주정토회, 구미정토회, 안동정토회, 달서정토회, 마지막으로 대구정토회를 끝으로 80여명의 저녁반 정회원들이 차례로 인사를 나눴습니다. 저녁반 참석자 수가 적은 것은 휴일이라서 저녁반 회원들이 오후 2시 주간반 법회에 많이 참석했기 때문입니다. 

 


▲ 참가자 소개

 

그리고 올 1월에 새로이 정회원으로 선임된 대구정토회의 신입 정회원들이 가야금과 장구를 들고 나와 태평가와 아리랑을 기쁜 마음으로 공연했습니다. 마치 봄날 벚꽃잎이 흐드러지게 피듯 부드러운 손사위까지 함께하여 큰 웃음과 박수가 쏟아졌습니다.   

 


▲ 저녁반 신입 정회원들의 축하 공연

 

오늘부터 3일 간 정초기도를 시작하기 때문에 스님은 정초기도를 하는 마음자세와 목적에 대해 먼저 법문을 해주었습니다. 

 

“우리 속담 중에 ‘시작이 반이다’ 이런 말이 있잖습니까. 왜 시작이 반일까요? 시작을 하려면 굉장히 준비를 많이 해서 시작을 하기 때문입니다. 준비 기간까지 다 고려하면 실제로 시작이 반이에요. 이미 준비를 많이 해서 시작으로 드러난 모습이 벌써 일의 절반이 경과한 것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새해를 맞을 때도 시작을 잘 해야 되니까 ‘올 한 해도 무사히 잘 보내겠습니다’ 하고 마음을 좀 경건하게 먹어야 됩니다. 그래서 고래로부터 열두 달 중에 1월 한 달은 정진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삶이 바빠지니까 보름 동안 정진을 하다가, 또 1주일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최근에는 더 짧아져서 정초기도를 5일간 했습니다, 초삼일에 시작해서 초이레까지. 그러다 더 짧아져서 지금은 3일 합니다. 정토회도 정초기도는 3일 합니다. 그런데 더 짧아져서 이제 정초기도를 하루만 하는 곳도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볼 때는 그래도 1년을 준비하는 기도이니까 3일은 해야 되지 않겠나 싶습니다. 

 

그리고 정초기도는 원래 초하루부터 해야 돼요. 제 어릴 때 보면 어머니께서 오전에는 차례를 지내고, 차례가 다 끝나고 점심 먹을 때 쯤이면 옷을 갈아입으시고, 나무 쟁반에 쌀 한 되나 두 되를 담아 머리에 이고, 초 한 갑 넣고, 향 한통 얹어서 절로 가십니다. 그래서 주로 오후에 기도를 시작합니다. 불공 드린다 그러죠. 그런데 정토회는 연휴가 끝나는 초삼일부터 초닷새까지 3일간 정진을 합니다. 오전에는 기도 정진을 하고, 오후 시간을 빌어서 지부별로 정회원들과의 정초 인사 겸 ‘한 해를 우리가 어떻게 시작할 거냐’ 하는 얘기를 나누는 겁니다. 또 각 지부 상임법사님께서 각 법당을 다니시면서 법당의 회원들과 인사도 나누고 함께 기도를 하는 게 정토회의 정초기도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도 오늘 정초기도 입재를 다 하셔야 합니다. 시작을 좀 경건하게 준비된 사람으로서 시작을 하자는 겁니다. 그런데 준비를 해도 하다 보면 여러 가지 착오가 생깁니다. 생각지도 못한 이런 저런 일이 발생하게 됩니다. 대부분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하는데, 세상 일이란 게 우리가 일어나지 말라고 한다고 안 일어나고, 일어나라고 한다고 일어나는 게 아니에요. 세상이 다 우리 뜻대로 되면 왜 우리가 인생을 힘들게 살겠어요? 통일도 벌써 되었겠지요. 세상 일이라는 건 우리가 원하는 대로 다 될 수가 없습니다. 될 때도 있겠지만 ‘전부 다 됐으면 좋겠다’ 하는 건 세상의 이치를 모르는 거예요. 세상에 어떤 일이 일어나든 내가 그걸 능히 이겨내는 것, 그게 자유와 행복입니다. 아무 일도 안 일어나서 아무 일도 없는 게 자유와 행복이 아니고,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거기에 내가 구애받지 않는 것, 그걸 능히 이겨낼 수 있는 것, 이게 자유와 행복입니다. 

 

그러려면 내가 준비가 되어있어야 합니다. 아무 준비 없이 산에 갔다가 산이 너무 높거나 날이 너무 춥거나 길이 너무 멀면 낭패잖아요. 고통을 겪게 되죠. 그러나 준비를 잘해서 출발하면 산이 조금 높아서 힘들더라도 능히 오를 수가 있고, 길이 멀어서 힘들더라도 능히 목표지점까지 갈 수가 있고, 날이 춥더라도 능히 감당해 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준비를 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이겨낼 수 있게 하는 것, 이게 기도입니다. 그러니까 ‘올 1년 동안에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내가 잘 감내를 하겠다’ 이게 정초기도를 하는 마음의 자세이자 목적입니다. 

 


 

그런 것처럼 우리가 인생을 살 때도 이렇게 정초기도처럼 어떤 일을 시작할 때 준비를 해야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무슨 일 하더라도 다 입재식을 하잖습니까. 첫째, 준비를 잘 하는 게 중요합니다. ‘정초기도를 한다, 입재기도를 한다’는 건 준비를 한다는 겁니다. 둘째, 일에 임할 때는 집중해서 정성을 기울여야 됩니다. 셋째, 어떤 사건이 생기면 예측한 대로 일이 안 돼요. 이런 일이 생기면 이렇게 할 것이라고 준비해 놓아도 실제로 일이 닥치면 예측한대로 잘 안 됩니다. 엉뚱한 일, 예외가 자꾸 생깁니다. 그러나 준비된 상태로 어떤 특별한 일이 벌어지는 것과 준비 없이 벌어지는 것은 다릅니다. 준비 없이 벌어지면 경황이 없어서 화가 화를 부르게 됩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제1의 화살은 맞을지언정 제2의 화살은 맞지 말라’고 하셨잖아요. 사건이 벌어지는 건 어쩔 수가 없으니까 우리가 제1의 화살은 맞을지언정 준비된 사람이라면 그것을 원인으로 또 다른 일이 벌어지는 일은 막을 수가 있다는 겁니다. 

 

교통사고도 그런 경우가 많잖아요. 교통사고가 나는 건 어쩔 수가 없어요. 그런데 만약 교통사고가 났다고 경황이 없어서 고속도로에 차를 세워놓고 ‘니가 잘했니? 내가 잘했니?’ 하면서 싸우다가 뒤에 오는 차에 받혀서 더 큰 사고가 나기도 하지요. 첫 번째 사고는 그저 차만 부서졌는데, 두 번째 사고는 인명피해가 생기잖아요. 그러니 예의주시해서 사고가 안 나도록 해야 되지만, 사고가 났을 때는 어떻게 대응을 한다는 게 준비가 돼있어야 된다는 겁니다. 

 

그리고 넷째, 일이 끝난 뒤에 우리는 교훈을 얻어야 됩니다. ‘이렇게 준비를 했지만 이런 예외가 생기는구나’, ‘이런 준비를 했지만 이런 일도 생기는구나.’ 그래서 이걸 참고로 해서 다음에는 더 준비를 잘 할 수 있게 해야 됩니다. 그래서 다시 현실에 임하고, 또 예상 못한 일이 벌어지고, 그래서 또 거기에서 교훈을 얻으면 그 다음에 더 준비를 잘하게 되지요. 이렇게 점점 경험이 쌓이게 됩니다. 그래서 나중엔 어지간한 일이 생겨도 보통 사람은 막 당황할지라도 이미 많은 경험을 쌓은 사람은 예측 못한 일이 벌어져도 금방 대응을 할 수가 있게 됩니다. 이렇게 늘 준비하고, 현실에 임하고, 거기에 수정 보완을 하고, 다시 준비를 하고, 또 현실에 임하고, 또 예외가 발생하면 그걸 또 수정 보완해서 준비를 하는, 이런 과정이 거듭되면 될수록 그 사람의 역량은 점점 커져서 어지간한 예외는 다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첫째 준비를 잘 해야 됩니다. ‘준비를 해가도 일이 딱 벌어지니까 당황해서 아무 것도 못 하겠습니다’하는 사람이 있는데, 처음에는 그럴 수도 있어요. 그래도 준비를 해야 생각 못했던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를 교훈으로 삼을 수가 있는 겁니다. 준비를 안 한 사람은 어떤 사건이 생겨도 반복할 뿐이지 거기서 교훈을 얻어서 새로운 준비를 하는, 즉 역량이 점점 더 축적되어서 능력이 커지는, 그런 과정을 쌓아가지 못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매년 정초에는 아무리 바쁘더라도 정성을 기울여서 기도를 하고 1년을 꾸준히 성실히 살아가고, 그래도 예측 못한 일이 발생한다면 다음에 또 반영을 하면서 준비해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이게 정초기도의 이유입니다. 

 


 

복을 비는 기도는 ‘부인이 남편 대신 가서 복을 빌어주고 남편이 복락을 받으면 된다’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 정토회에서는 복을 비는 기도를 안 하기 때문에 누가 대신해 줄 수가 없습니다. 자기 기도는 자기가 해야 됩니다. 주간반은 해야 되고, 저녁반은 안 해도 되고, 이런 게 아닙니다. 여러분들 모두 기도에 입재해서 절에 못 나오면 집에서 하든지 해서라도 정초기도를 꼭 하시기 바랍니다.” 

 

스님의 법문을 듣고 나니 오늘부터 3일 동안은 평소보다 더욱더 기도에 집중해봐야겠다는 다짐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활동과 관련한 또는 개인적인 어려움을 스님께 묻고 답하는 즉문즉설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총 6명의 정회원이 스님께 질문을 했습니다. 그 중에서 매일 술을 먹고 늦게 들어오는 남편 때문에 힘겹다는 분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저희 신랑이 술을 너무 좋아해서 거의 매일 술을 마시는데, 저는 퇴근시간쯤 되면 남편에게 전화해서 바로 집으로 오는지, 아니면 술 마시고 오는지 물어봅니다. 남편이 술 마시고 온다고 하면 그때부터 저는 마음이 불안해집니다. 제가 집에 있으면 남편이 술을 마시더라도 데리러 갈 수도 있는데, 법당에 봉사하러 나왔을 때는 더 불안해집니다. 어떻게 기도하면 마음이 편할 수 있을까 여쭤봅니다.”

 

“기도할 거 없어요. 먹고 싶어서 먹는 걸 왜 질문자가 간섭해요? 놔둬요. 그냥.”

 


 

“예전에 남편이 술 먹고 대리운전을 안 부르고, 조금 마셨다고 그냥 차를 가지고 오다가 사고도 났거든요.”

 

“그러다가 사고가 나서 죽으면 본인 탓이지요, 뭐. 그럼 질문자는 시집 한 번 더 가고 좋지요.(박장대소) 

 


 

그렇게 죽으면 질문자 탓도 아니에요. 옛날 같으면 따라죽어야 되니까 조심하도록 해야겠지만 지금은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놔두세요.” 

 

“자기가 사고를 내서 자기가 죽는 것도 그렇지만 다른 사람한테도 피해를 입히니까요.” 

 

“피해 입히면 자기가 물어주겠지요, 뭐. 질문자가 지금 술 마시지 말라고 하면 남편이 들을 사람이에요? 안 들을 사람이에요?”

 

“안 듣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얘기하는 겁니다. 저는 ‘남편이 술을 마셔도 좋다’, ‘남편이 죽어도 좋다’ 이런 얘기를 하는 게 아니라 질문자가 고칠 수 없는 일이라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질문자가 갑자기 날씨를 따뜻하게 할 수도 없고, 해 뜨는 걸 뜨지 말라고 할 수도 없듯이 말이죠. 그걸 질문자가 질문자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면 스님한테 묻지도 않았겠지요 스님은 어떻게 그렇게 쉽게 얘기하느냐고요? 저한테 물었다는 건 이미 질문자가 남편한테 아무리 얘기해도 해결될 수가 없는 일이었다는 것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질문자가 저한테 기대하는 건 ‘스님이 뭔가 나한테 기적이 될 수 있는, 내가 딱 말하면 남편이 그 말을 듣는, 그런 기도문을 하나 주세요’ 하는 것이지요? 저는 그런 능력이 없다고 이미 여러 차례 선포를 했습니다. 그런 능력이 있으면 저는 여기 안 있어요. 제가 그런 능력이 있다면 제일 먼저 고쳐줄 사람은 누구겠어요? 첫 번째가 일본의 아베 수상, 두 번째가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 세 번째가 박근혜 대통령입니다.(웃음) 저한테 그런 능력이 있었다면 이 사람들을 속시원하게 고쳐주고 말지 뭣 때문에 놔두고 있겠어요. 지금 개성공단 문 닫으면 곧장 몇 백개의 중소기업이 망하게 되잖아요. 그런 것도 보고 사는데 남편 술 먹는 거 그걸 못 보고 살아요? 개성공단 문 닫는 일은 남 일처럼 보면서 남편 술 먹는 건 내 문제라고 그렇게 난리를 피우면 안 됩니다. 그러니까 술 먹고 남편이 죽든지 사고를 내든지 그건 큰 틀에서 보면 별일 아닙니다.”

  


 

“그럼 남편이 술 마셔도 그냥 둘까요?”

 

“남편이 술을 먹든지 말든지 일찍 들어오든지 늦게 들어오든지 내버려두세요. 늦게 들어오면 질문자는 자기 공부하면 되잖아요. 질문자는 명상도 하고, 천일기도도 하고, 절에 봉사도 하고, 할 일이 많잖아요. 아이가 몇 살입니까?”

 

“고등학교 2학년, 중학교 3학년입니다.”

 

“그런 정도면 혼자 충분히 공부할 수 있는 얘들이잖아요. 그러면 질문자는 퇴근 후에 절에 와 있으세요. 남편이 보통 몇 시에 귀가하나요?”

 

“일찍 들어오면 7시, 늦게 들어오면 12시 정도입니다.” 

 

“그럼 질문자는 항상 1시에 집에 들어가세요. 그리고 절에서 봉사를 실컷 하세요. 그래서 남편이 질문자한테 사니, 못 사니, 난리를 피우도록 해야 됩니다. 그렇게 해서 남편이 지금 질문자처럼 아내 때문에 못 살겠다고 저한테 물으러 오도록 해야 돼요.(모두 웃음)

 


 

질문자가 남편 때문에 난리를 피우지 말고요. 그러면 질문자만 손해예요. 게임에서 공을 상대에게 넘기지 왜 바보처럼 내가 안고 그렇게 난리를 피우나요? 그건 남편에 대한 사랑도 아니고 아무 것도 아니에요. 질문자는 남편에게 ‘너 알아서 술 먹어라’ 그러고, 절에 와서 봉사를 실컷 하세요. 그래서 나중에 남편이 사니, 못 사니 난리를 피우면서 ‘절에 갔다가 일찍 들어오너라’ 그러면 질문자는 12시에 들어가는 것까지만 양보해야 돼요. 절대로 한꺼번에 7시까지 양보하면 안돼요.(모두 웃음)

 

 

12시에 들어가도 남편이 죽네사네 하면 11시까지만 양보하는 식으로 하세요. ‘1시 들어가던 걸 12시에 들어가는 대신에 너는 술 먹고 운전 안 한다고 약속해라’ 하고, 12시에 들어가는데도 남편이 난리를 피우면 ‘그럼 너는 술을 먹지 말라’는 식으로 하면 질문자가 10시에 집에 들어가면서도 남편 술도 못 먹게 할 수 있는 거잖아요. 

 

왜 바보같이 그렇게 끌려다니면서 살아요. 질문자가 절에 와서 수행하고 봉사하고 좋은 일을 하잖아요. 그건 아이들이 보기에도 나쁜 게 아니잖아요. ‘엄마, 왜 늦게 들어와?’ 그러면 ‘엄마는 이런 일을 하고 있다’고 말해 주면 되잖아요.

 

그렇게 얘들한테도 엄마가 모범이 되어야지요. 질문자가 꼭 퇴근 후에 집에 가야 될 이유가 없잖아요. 물론 집에 가서 아이들하고 있으면 좋지만, 질문자가 남편을 조금이라도 고치려면 그런 방법도 있다는 겁니다. 싸워서 고칠 필요가 없다는 거예요. 내내 을이 되어서 인생을 끌려 다니지 말란 말이에요. 부처님께서 언제 왕한테 가서 싹싹 빈 적이 있었어요? 오히려 왕이 부처님한테 와가지고 ‘왕궁에 좀 와주십시오’ 해도 안 가셨잖아요. 그러니 왕이 부처님을 찾아오고 그랬지요. 아무 것도 없는 거지인 부처님께서 온갖 걸 다 가진 왕한테도 그렇게 소위 ‘갑’의 위치를 지켰는데, 자기가 뭐가 못나서 남편한테 갑질은 못할망정 을로 잡혀서 사나요. 그러니까 그거 신경 쓰지 마세요. ‘남편이 술 먹어도 좋다’가 아니라 남편이 좋아서 먹는 걸 질문자가 어떻게 할 수가 없으니까 그냥 두라는 것입니다. 

 


 

질문자가 고칠 수 있으면 고치세요. 때리든지 묶어놓든지 차를 없애버리든지 할 수 있는 것이 있으면 하라는 겁니다. 그런데 질문자가 더 이상 할 수 없으면 그 다음에는 포기하라는 거예요. 그것을 가지고 자꾸 애쓰지 말아요. 그러면 질문자만 힘들어요. 그러면서 어떻게 얼굴이 환하게 밝아지고 행복해질 수 있겠어요? 남편이 술 먹고 늦게 들어와도 호호 웃고, ‘남편이 늦게 들어오니 내 시간 많아져서 좋다’ 이렇게 생각하고 지내면 다른 사람들이 ‘당신은 남편이 그런 데도 어떻게 그렇게 마음이 편안하게 살 수 있소?’ 물을 겁니다. 그러면 ‘저는 불교를 공부해요’ 이렇게 대답할 수 있어야지요. 

 

이렇게 질문자가 중심을 잡으세요. 왜 남자 하나한테 전전긍긍하고, 애한테 전전긍긍하고, 이렇게 살아요? 그럴 이유가 뭐가 있어요? 질문자가 조금만 풀어주면 되는데요. 뭐 그것 때문에 기도문이 필요하다고요? 머리가 나쁘면 다리가 고생한다니까요.(웃음) 

 


 

제가 꼭 300배, 500배를 시켜야 되겠어요? 머리만 탁 깨우치면 기본 108배만 하면 됩니다. 108배를 하면 건강에도 좋고, 또 우리가 자꾸 잊어버려서 마음이 홱 돌아가니까 108배를 하면 더 낫다는 겁니다. 그리고 기도를 하더라도 통일을 위해서 기도하든지 해야죠. 뭘 바꾸려고 해도 큰 걸 바꾸려고 해야지 그 술 먹는 거 바꿔서 뭐 하게요. 그런 것은 놔둬요. 별로 중요하지 않으니까요. 좀 대범하게 사세요. 어떻게 생각해요?”

 

“예, 대범하게 생각하겠습니다.”

 

“하루에 500배 하라는 기도문을 줄까요?”(웃음) 

 

“아니요. 감사합니다.”

 

밝아진 질문자의 얼굴을 보고 대중들도 모두 큰 박수를 쳐주었습니다. 

 


 

법회가 끝나고 질문자는 “모르는 사람들에겐 ‘갑질’을 하면서도, 정작 남편 앞에서는 당당하게 말하지 못하는 나를 보게 되었어요. 수행자로써 당당하게 주인된 삶을 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오늘 참 질문을 잘한 것 같아요”라고 하면서 기뻐했습니다. 

 

이렇게 즉문즉설을 마친 후 작은 퍼포먼스가 펼쳐졌습니다. 촛불로 통일 지도를 밝히고 연꽃등 띄우기를 하면서 ‘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를 함께 불렀습니다. 불이 꺼진 법당 안에서 한반도를 밝히는 촛불을 켜는 모습은 짠한 감동을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최근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그에 따른 한미 간의 사드 배치 논의까지 그 어느 때보다 국제정세가 칠흙같은 터널로 빨려들어가는 지금 이시에 수행자로써 변화를 기다리기보다 변화를 준비하는 정토행자가 되어보자는 발원을 해봅니다.   

 


▲ 평화의 염원을 담은 퍼포먼스

 

환하게 밝혀진 통일 지도와 연꽃등을 앞에 두고 다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어두울수록 촛불이 더 밝듯 간절히 통일을 염원하는 정토행자의 삶은 지금 같은 시기에 더욱 빛이 날 것입니다. 

 


 

법회가 늦게 끝나서 밤 11시가 넘어서 대구정토회를 나왔습니다. 내일은 부산울산지부 정회원들을 대상으로 해운대정토회에서 정초법회가 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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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댓글 48

0/200

정근환

잘 읽었읍니다.

2016-02-18 16:25:36

보현심

스님보고 출가자니 저리 쉽게 대답하시지 스님도 결혼하신 분이었음 모든 고민을 저리 쉽게 말씀 않는단 말들을 주위에서 가끔 듣습니다.스님!실제로 재가자이어서도 질운자들의 고민 답변을 그리 하셨을까요?

2016-02-13 23:22:01

허수정

조급함 때문인지 평소에도 긴장을 잘 하는편이라 준비된 상태에서도 실수 할때가 있는데, 자책하기보단 준비를 해도 예외가 생길수 있다는걸 항상 염두해두고 일을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2016-02-13 11:2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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