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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수자타아카데미 초등학생들과 중등학생들을 위해 법회를 했습니다.
어제 오전 11시 30분에 이따와역을 출발해 기차로 16시간을 달려 오늘 새벽 3시 30분에 가야역에 도착했습니다. 스님이 가야역에 내리자 수자타아카데미에서 두 명의 스탭이 오토릭샤를 몰고 와서 마중을 해주었습니다.
▲ 오토릭샤를 타고 가야역에서 수자타아카데미로 향하는 스님
덜컹 거리는 오토릭샤에 몸을 싣고 캄캄한 어둠과 새벽 안개를 가르며 4시 30분에 수자타아카데미에 도착했습니다. 새벽 예불을 하러 가는 길이던 행자님들이 반갑게 스님 일행을 맞이해 주었습니다.
▲ 새벽 4시 30분, 수자타아카데미 도착
새벽 예불 후 6시 30분부터는 행자님들과 함께 발우공양을 함께 했습니다. 행자님들은 매일 아침 이렇게 발우공양으로 여법하게 하루를 시작한다고 합니다.
▲ 발우공양
발우공양 후 스님은 몇 가지 당부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우선 오늘 오전에 학교와 병원 전체를 둘러볼 예정인데 스님이 방문한다고 해서 특별한 준비를 하지 말고 평소대로 그냥 업무를 할 것과 점심 식사도 특별히 준비하지 말고 그냥 학생들과 같이 먹을 수 있게 해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학교 정문을 지키는 수위와 운전수, 급식 노동자들은 정복을 갖추고 업무를 할 수 있게 해서 자기 직업에 자부심을 느끼고, 학생들에게 무시를 받지 않도록 해주면 좋겠다는 제안을 했습니다. 그리고 얼마전 정부 전기가 들어왔는데, 전기 사용에 낭비가 없도록 각별히 주의를 기울여 줄 것을 당부했습니다.
“정부 전기가 들어왔다고 하니 다행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전기를 낭비하지 않도록 해주세요. 새벽에 예불하러 갈 때도 불을 켜놓고 가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다니는 통로는 불을 켜놓되 나머지는 모두 불을 끄도록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일할 때 사용하는 등과 평소에 켜놓는 등을 구분해서 배치해 놓은 것이 필요해요. 평소에 너무 밝게 켜놓아도 안 되고, 그렇다고 일할 때 너무 어둡게 해놓아도 안 되니까요.”
발우공양이 끝나자 행자님들은 곧바로 각자 맡은 일을 하러 흩어졌고, 스님은 원고 교정 업무를 보다가 10시 30분이 되어 학교와 병원 전체를 한 바퀴 둘러보기 위해 숙소를 나왔습니다.
▲ 지이바카병원
먼저 지이바카병원을 둘러보았습니다. 병원 앞에는 아침 일찍부터 많은 환자들이 진료를 받기 위해 접수 창구 앞에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환자 한 명 한 명에게 어디서 왔는지 어디가 아픈지를 물어보았습니다.
▲ 병원 진료를 받기 위해 먼 길을 걸어온 주민들
무려 1시간 동안 걸어서 찾아온 사람, 손바닥이 갈라져서 아프다고 하는 사람, 귀와 허리가 아프다고 하는 사람 등 다양한 환자들이 병원을 찾았습니다.
호모페틱(한방)과 알로페틱(양방) 두 가지 방식으로 진료를 하고 있었는데, 각각 의사 선생님이 어떻게 진료를 하고 있는지 살펴보고 스님은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 호모페틱 진료를 담당하는 의사선생님
그런데 진료 도구나 침대 등이 낡은 것들이 많이 보여서 우선 도구들부터 새 것으로 교체하면 좋겠다, 환자들이 접수대에서 아우성을 치더라도 절대 화내지 말고 친절하게 대하면 좋겠다 등 여러 의견을 준 후 다음 장소로 이동했습니다.
이동 중 학교 곳곳에 나무들을 보면서는 가지치기가 제대로 되지 않아 모양이 깔끔하지 못한 나무들이 많아서 베어야 할 나무와 다듬어야 할 나무를 전체적으로 구분해서 정리해야 한다고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짜르카(물레) 교실에서는 부녀자들이 와서 열심히 짜르카를 돌리며 실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또 바로 옆 공간에서는 재봉틀을 배우고 있는 여성들도 있어서 스님은 특별히 여성들에게 부탁을 하기도 했습니다. “제 가사가 오래되고 낡아서 찢어진 곳이 있는데 수선을 좀 해주실 수 있어요?” 그러자 모두들 웃으며 흔쾌히 해줄 수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 짜르카(물레) 교실
▲ 재봉틀 교실
한쪽에서는 목수들이 나와서 열심히 문짝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또 공양간에서는 점심식사 준비를 위해 뜨거운 열기 속에서 밥을 하느라 비지땀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특히 공양간에서는 설거지를 할 수 있게 물을 담아두는 통이 지저분한 것과 식당 테이블 위에 먼지가 많은 것을 보고 “아무리 인도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까지 인도식으로 살면 안 되지 않느냐?”며 조금 더 깔끔하고 청결하게 생활할 것을 당부했습니다.
▲ 목공소
▲ 공양간
이렇게 학교 전체를 한 바퀴 다 돌고 나자 3교시 수업이 시작되었습니다. 스님은 수업 중인 교실 모두를 한 번씩 들어가 보고 아이들의 학습 모습을 둘러보았습니다.
수학 수업을 하고 있는 교실에서는 직접 스님이 문제를 내어 아이들의 실력이 어느 정도 되는지를 테스트해 보았습니다.
▲ 1학년 교실
그런데 대부분의 학생들이 작은 수에서 큰 수를 뺄 때 일일이 작대기를 그어보면서 하느라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스님은 작은 수에서 큰 수를 뺄 때는 앞자리 수에서 10을 빌려와야 한다고 개념을 설명해 주자 아이들은 그제서야 조금 이해가 갔는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특히 반마다 몇몇 아이들이 교과서를 잊어버리고 가져오지 않았거나 아예 분실을 한 경우가 있었습니다. 또 교과서를 함부로 다루어서 표지가 찢어지거나 지저분해진 경우도 많이 보였습니다. 한 두명이 아니라 반마다 이런 경우가 있어서 스님은 특별히 주의를 당부했습니다.
▲ 교과서를 분실한 아이
또 화장실에 들어가보니 지린내가 진동했는데 아이들이 화장실 청소는 많이 꺼려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 학교 화장실
그리고 학교 건물이 지은지 벌써 20년이 다 되어서 낡은 곳이 많았는데 스님은 리모델링 공사도 필요한지 검토해 보자고 했습니다.
4교시부터는 병원 2층 컬쳐홀에서 전교생이 모여 스님과 함께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초등학교 전교생 350여 명이 자리에 앉은 가운데 학생들이 ‘나마스떼’ 하고 인사를 하자 스님이 말문을 열었습니다.
▲ 초등학생들과의 대화 시간
스님은 각 학년별 인원 수를 확인한 후 올해로 수자타아카데미가 개교한지 몇 주년이 되는지 물어보며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어떻게 수자타아카데미가 생기게 되었는지 그 역사도 자세히 설명해 주었습니다.
“수자타 아카데미가 생긴 지 올해로 몇 년 됐는지 아는 사람 있어요? 내일 모레 기념식 할 텐데 몇 주년 기념식인지 몰라요?”
“몰라요.”
“개교 기념식이 몇 주년인지도 몰라요? 그냥 밥 먹는 날인 줄만 알아요?”
“22주년입니다.” (학생들 웃음)
“맞아요. 1994년 1월에 개원해서 올해 22주년이 되었어요. 제가 1993년도 12월에 이곳 둥게스와리를 방문했는데 아이들이 다 구걸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일요일이냐고 물어봤더니 아니래요. 그런데 왜 학교 안 가고 여기서 구걸을 하느냐고 했더니 학교가 없대요. 아이들이 이렇게 많은데 학교가 없다니 말이 되냐고 하니 정말 없대요. 그래서 이곳 유영굴을 참배하고 내려오면서 두르가푸르에서 마을 사람들과 만났습니다. 여기 근방에 몇 개의 마을이 있냐고 물어봤더니 자그디스푸르, 두르가푸르, 방갈비가 이렇게 3개가 있대요. 몇 명이 사느냐고 물으니 두르가푸르에 400명, 자그디스푸르에 600명, 방갈비가에 300명이 산대요. 모두 해서 1,300명이나 사는데 어떻게 학교가 없을 수 있냐고 했더니 그래도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물었어요.
‘무엇이 필요합니까?’
‘학교가 필요합니다.’
‘그러면 당신들이 학교를 지으면 되잖습니까.’
‘우리는 가난해서 지을 수가 없습니다. 스님이 지어줬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인도 사람도 아니고 결혼도 안 했기 때문에 아이도 없는데 왜 내가 짓습니까? 이 아이들은 당신들의 아이들이니 당신들이 지어야지, 왜 나더러 지어달라고 합니까?’
‘우리는 가난해서 그렇습니다.’
‘그러면 학교 지을 재료를 주면 당신들이 짓겠습니까?’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좋습니다. 마을에 땅이 있으면 내어주십시오.’
그러자 10명이 땅을 1가타씩 내줬어요. 그게 초등학교를 처음 지은 자리예요. 그렇게 학교를 짓기 시작하면서 1994년 1월에 일단 개교를 먼저 했어요. 동네 아이들을 다 모아 보니 100명이 되었어요. 동네에 학교 졸업한 아이가 있는지 확인해봤더니 두르가푸르에서 한 명이 초등학교를 나왔대요. 또 고개 너머 까나홀에 사는 청년이 한 명 초등학교를 나왔어요. 그래서 이 두 명더러 선생을 하라고 해서 나무 밑에서 수업을 시작했어요. 그렇게 1월달에 나무 밑에서 학교를 개원하고 수업을 하면서 학교 건물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학교를 짓는데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어요. 그래서 상카시아에 있는 청년들이 와서 공부를 가르치고 학교를 짓는 것을 감독하는 총책임을 맡았어요. 이렇게 해서 시작이 된 거예요.
1995년도에는 강도가 들어와서 학교가 문을 닫았어요. 그래서 제가 와서 다시 열었어요. 그리고 아침 조례를 하면 아이들이 여기저기서 쓰러졌어요. 의사선생님을 데려와서 건강상태를 확인해보니 영양실조가 심하대요. 의사선생님이 약보다 음식을 주는 게 더 중요하다고 해서 점심 급식을 하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학생이 150명 정도 되리라 생각하고 교실을 만들었는데 급식을 하게 되니까 학생 수가 갑자기 300명이 됐어요. 그래서 또 건물을 2층으로 짓게 된 거예요.
그래서 개교하고 3년 만인 1997년 1월에 초등학교 준공식을 했어요. 그때 또 강도가 들었어요. 2002년도에는 세번째 강도가 또 들어서 한국 사람 한 명이 죽기까지 했습니다. 설성봉 거사님 아시죠?”
“예.”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희생을 통해 이 학교가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여러분처럼 여기 학교를 다닌 선배들은 이제 다 선생님이 됐어요.
왜 이렇게 사람이 죽어가면서까지 학교를 만들었을까요? 여러분들 공부하라고 그런 거예요. 그런데 아까 제가 교실에 가보니까 책도 집에서 안 가져오고 받은 책도 잃어버리는데 어떻게 공부해요? 여러분들에게 책도 주고, 공책도 주고, 옷도 주고, 신발도 주고, 다 무료로 지원해 주잖아요. 여러분들 부모님도 안 해주는 걸 왜 이렇게 해줍니까? 모두 여러분들 공부하라고 그런 거예요. 그러니 공부 열심히 해야 해요.”
“예.”
“많은 사람들이 여러분을 도와주고 있기 때문에 항상 고마운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비록 어리지만 교실 청소도 해야 하고 학교를 깨끗이 해야 해요. 아까 화장실에 가봤는데 냄새가 심했어요. (모두 웃음)
청소를 깨끗이 하고, 볼일을 본 뒤에는 물을 부어서 내려 보내야 해요. 책상 같은 것도 부러뜨리지 않도록 조심해서 써야 해요. 책도 그래요. 보면 깔끔하게 쓰는 사람도 있고, 벌써 다 찢어지도록 지저분하게 쓰는 사람도 있어요. 책을 깨끗하게 써야 해요. 이 하나 하나가 다 누군가의 도움에 의해서 만들어진 거니까요. 여러분들은 어리니까 남의 도움을 받지만,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가면 여러분도 이제 남을 도와야 해요. 집에서 동생들 돌볼 수 있죠?”
“예!”
“그러니 앞으로 여러분들도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마을에 가서 동생 또래인 유치원 아이들을 돌봐야 해요. 그렇게 할 수 있어요?”
“예!”
“초등학교 때는 그냥 도움만 받았지만 중학생이 되면 오전에는 어린 아이들을 돌보고 오후에는 공부해야 합니다. 할 수 있어요?”
“예!”
“제가 아까 수업 시간에 들어가서 공부하는 걸 봤는데 공부를 잘 하는지 못 하는지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몇 가지 물어보니까 잘 몰라요. (모두 웃음)
공부 잘 하는 방법을 지금부터 설명해줄 테니까 잘 들으세요. 우선은 아침 일찍 학교에 와야 해요. 수업 시작하기 1시간 전에 와서 오늘 배울 공부를 조금씩 다 확인해봐야 해요. 오늘 수학은 뭘 배우고, 힌디어는 뭘 배우고, 영어는 뭘 배우고, 사회는 뭘 배우는지, 오늘 배우는 부분에 대해서 예습을 해야 해요. 그래서 수업시간에 들어가면 선생님이 말씀을 하실 때 바로 알아들어야 해요. 뭘 배우는지 내가 미리 알고 준비를 해서 수업에 들어가야 선생님 설명이 머리에 딱 들어와요. 정신없이 놀다가 급하게 들어가면 선생님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못 알아들어서 멍해요. 그러면 집중도 안 되고 재미도 없어요. 그러니 미리 뭘 배울 건지 사전에 조금이라도 예습을 해서 들어가야 해요. 그래야 선생님이 수업할 때 집중이 됩니다. 첫째, 예습을 해야 한다는 말이에요.
둘째, 수업을 들을 때는 선생님 얼굴을 쳐다보면서 들어야 해요. 고개는 책상에 숙이고 귀로만 듣는 사람이 있는데 그러면 설명하는 내용이 귀에 덜 들어와요. 선생님 말씀하시는 얼굴을 보면서 귀로 들어야 잘 들어와요.
셋째, 잘 모르는 게 있으면 손을 들고 질문을 해야 해요. 질문을 너무 많이 한다고 선생님한테 야단을 맞을 정도로 많이 해야 해요. 모르면서 그냥 넘어가면 안 돼요.
넷째, 수업이 끝나면 바로 책을 덮어놓고 나가 놀지 말고 오늘 배운 걸 간단하게 복습해야 해요. 사무지가 헤?”
“예.”
“네 가지를 설명했어요. 첫째, 예습을 할 것, 둘째, 수업시간에 선생님 얼굴을 보고 집중해서 들을 것, 셋째, 모르는 것은 반드시 질문할 것, 넷째, 수업이 끝나면 바로 복습을 할 것. 하루 수업이 다 끝나면 학교에 잠시 남아서 오늘 배운 것을 복습하거나 내일 배울 것을 예습해야 해요. 아니면 집에 돌아가서 오늘 배운 걸 복습하거나 내일 배울 것을 예습해야 해요. 집에서 바쁜 일이 있어 못 했으면 아침에 일찍 학교에 와서 어제 배운 걸 복습하고 오늘 배울 것을 예습해야 합니다. 그냥 수업만 한 번 들은 것에 비해 한 번 복습을 해서 배운 내용을 확인하면 기억력이 5배로 높아져요. 알았어요?”
“예!”
아이들은 우렁찬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몇몇 아이들은 대답을 하지 않고 입을 다물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대답을 안 하는 아이들만 골라 일으켜 세우고 다시 공부 잘하는 방법 네가지를 물어보았습니다. 아이가 대답을 못하자 스님은 반복해서 다시 네가지를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또 다시 질문을 하자 대답을 못하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스님은 다시 반복해서 자세히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이렇게 하기를 다섯 번을 반복하자 대부분의 아이들이 큰 목소리로 대답을 할 수 있었습니다.
40분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스님의 애정이 깃든 반복된 설명으로 아이들은 이 네가지 만큼은 꼭 명심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이어서 스님은 공부, 학교, 불교 등에 대해 궁금한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 물어보라고 말했습니다. 아무도 손을 드는 친구가 없었는데, 스님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한 명이 뒤늦게 건의사항을 말했습니다. “컴퓨터를 배울 수 있게 주세요.”
스님은 알았다고 하면서 선생님들과 논의해보고 결정하겠다고 대답해 주었습니다. 지금은 태권도부, 댄스부가 특별반으로 운영되고 있는데, 컴퓨터를 배우고 싶어하는 요구도 많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점심식사는 스님도 아이들과 똑같이 인도 쌀에 사부지와 달을 버무려서 식사를 했습니다.
▲ 점심식사
식사를 하면서는 쁘리앙카 교장선생님이 “학년마다 지능이 떨어지는 아이들이 있는데 어떻게 지도해야 할까요?” 질문을 했습니다. 그러자 스님이 대답했습니다.
“아무리 지능이 떨어진다 하더라도 초등학교는 졸업시켜 주어야 해요. 초등학교는 의무교육이기 때문에 무조건 해주어야 합니다. 자기 이름 쓸 수 있고, 글을 읽을 수 있고, 더하기 빼기 같은 셈본은 할 수 있게 가르쳐주어야 해요. 아무리 저능아라고 하더라도 인간으로 태어났으면 기본적은 교육은 받을 수 있게 해줘야 합니다.
공부를 잘 할 수 있는 아이인데 공부를 안 해서 점수가 낮은 아이들은 낙제를 시켜서 다시 공부를 시켜야 하지만, 지능이 떨어지는 아이들은 자꾸 낙제를 시키면 나이는 많은데 학년은 낮기 때문에 친구들과 못 어울려서 학교를 그만두게 돼요. 그래서 이런 아이들은 가능하면 학년을 정상적으로 올려주고, 가르쳐 주기는 하되 너무 공부에 압력을 주면 안 됩니다. 공부 말고 춤이나 노래나 다른 것을 자꾸 시켜보는 등 가능한 기술을 익히도록 하는 것이 좋아요.”
이렇게 문맹 퇴치를 위한 기본 교육을 강조하면서도 스님은 중학교부터는 조금 더 고급반을 편성해서 전문화된 교육을 해야 함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오후 2시부터는 중등학생들과 대화 시간을 가졌습니다. 중등학생들은 오전에는 봉사활동을 하고, 오후에 수업을 합니다. 중학생 대부분이 9개 마을 유치원으로 가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봉사활동을 하고 있고, 산너머에 있는 마을 유치원 5개는 그 동네에서 교육 받은 부녀자들이 유치원 선생님을 합니다. 이 외에도 병원 파트, 급식 파트, 정원 파트, 목욕 봉사 파트에서 각각 한가지 소임씩은 맡아서 하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각 파트에서 누가 무슨 역할을 하고 있는지 하나 하나 다 확인을 했으며, 자신이 맡은 일에 대해 어느정도 책임감이 있는지 몇 가지 질문을 던지기도 했습니다.
▲ 중등학생들과의 대화 시간
중등학생들은 모두가 이렇게 봉사활동과 학교 수업을 병행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부족하다며 하소연을 자주 하곤 했습니다. 그래서 스님은 먼저 학생들의 이런 불평에 대해 확인을 하며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유치원 선생 역할도 해야 하고, 아이들 목욕도 시키줘야 하고, 정원도 가꾸어야 하고, 병원에 가서 일도 해야 한다고 공부할 시간이 없죠. 그래서 다들 불만이 조금씩 있죠?” (웃음)
“예.”
“왜 불만인데요?”
“시간이 더 필요합니다. 공부할 시간이 너무 부족해요.”
“수자타아카데미가 생기고 나서 처음에는 남학생 3명, 여학생 4명이 초등학교를 졸업했어요. 1학년부터 시작한 게 아니라 다른 학교를 다니다가 중간에 왔으니까 3년 만에 졸업을 하게 된 거예요. 남학생 3명은 정부 중학교로 갔어요. 여학생 4명은 중학교에 못 갔어요. 그래서 저한테 중학교를 만들어달라고 했는데 제가 못 만든다고 했어요.
‘초등학교까지는 우리가 뭐든지 무상으로 지원하지만 그 이상은 할 수 없어요. 저도 초등학교까지만 무상으로 다녔어요. 중학교부터는 아침에 우유를 배달하거나 신문을 배달하는 아르바이트를 해서 그 수입으로 학교를 다녔어요. 그렇기 때문에 중학교는 그냥 무상으로 해줄 수 없습니다.’
그렇게 1년이 지나고 다음에 와보니 초등학교를 졸업했지만 중학교에 못 간 여학생이 3명 더 생겼어요. 그래서 7명이 와서 저한테 울면서 중학교를 만들어 달라고 했어요. 그때 마침 학교에 어린 동생들을 안고 오는 학생들이 많아서 문제가 생겼을 때예요. 그래서 제가 ‘초등학생들이 방해받지 않고 수업을 받을 수 있도록 너희가 오전에 유치원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겠느냐? 그러면 중학교를 만들어 주겠다’라고 했어요. 그렇게 해서 유치원과 중학교가 같이 생긴 거예요.
그러니 수자타아카데미 중학교를 다니려면 반드시 그만큼 일을 해야 합니다. 아이들을 볼 수 있도록 여기 건물 1층에다가 유치원을 만들었어요. 그러자 여기가 멀어서 어린애들이 올 수 없는 다른 마을에서도 유치원을 지어달라고 했어요. 초등학교 졸업하고 중학교 가는 학생들이 점점 늘어나니까, 그 중학교에 입학해 공부하는 대신 유치원 선생을 하기로 한 겁니다. 그래서 유치원이 지금처럼 많이 생긴 거예요. 초등학교에서는 여러분들에게 옷도 주고, 신발도 주고, 책도 주고, 공책도 주고, 식사도 주고, 모든 게 다 무상이잖아요. 대신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가려면 여러분들도 어린 아이들을 돌봐야 해요. 유치원 다니는 조그마한 애들은 여러분들이 가르칠 수 있잖아요.”
“예!”
“또 병원에도 돕는 이가 필요하니까 일부는 병원에 가서 돕게 된 거예요. 또 옛날에는 음식만 전문으로 만들어주는 요리사가 없었어요. 전부 중학생들이 음식을 만들어서 초등학생들에게 줬어요. 그러다 학생이 많아져서 이제 전문 요리사들이 오게 된 거예요.
그리고 중학교 졸업하고 고등학교나 대학교 가고 싶은 학생이 있으면 학비를 대주는 대신 여기서 초등학생을 가르치도록 해서 지금 학교가 운영이 되고 있는 거예요. 초등학생은 무상으로 다니고, 중학생은 유치원 아이들을 가르치고, 고등학생과 대학생은 초등학생을 가르치고,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은 중학생을 가르칩니다. 이렇게 우리가 서로 도우면서 학교가 운영되고 있는 거예요. 우리는 남을 돕기 위해 이 학교를 운영하고 있는 것이지, 어떤 이익을 추구하는 게 없습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정부 학교가 조금씩 운영되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우리는 다 정부 학교에 가라고 학생들을 보냈습니다. 학교는 원래 정부가 운영해야 하는 거니까요. 사립학교는 개인이 돈 벌려고 운영하는 학교여서 학비가 비싼데, 우리는 학비가 없잖아요. 그래서 이제는 정부 학교가 운영이 되니까 전부 정부 학교에 가라고 보낸 거예요. 그래서 수자타아카데미가 학생이 제일 많을 때는 1,000명까지도 되었는데 정부 학교에 다 보낸 지금은 300명 정도 된 거예요. 여러분들이 이런 학교의 설립 취지를 알아야 해요.
그러니까 수자타아카데미에 다닌다는 것은 공부만 하는 것이 아니라, 공부를 하면서도 남을 돕고 나도 또 배우는 거예요. ‘나는 이렇게 봉사하기 싫다’ 그러면 정부 학교로 가면 돼요. 이 주위에 정부 중학교도 있고 정부 고등학교도 생겼잖아요. 인터칼리지도 이제 생기고요. 매일 반나절 봉사하지 않으려면 그냥 거기 정부 학교에 다니면 돼요. 그러나 수자타아카데미에 다니려면 반드시 봉사하고 공부를 해야 해요.”
수자카아카데미 중학교에서는 왜 봉사활동이 의무 사항인지 자세히 설명을 해주자 학생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습니다. 불평하는 것을 문제 삼지 않고 그 취지를 자상하게 설명해주는 스님의 모습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이어서 스님은 두 가지 사항에 대해 질문을 받았습니다. 중학생들은 공부를 해야 하는 학생인 동시에 유치원 아이들을 가르치거나 병원에서 사람들을 돌보는 선생님이기 때문에 이 두 가지 역할에서 학생들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에 대해 질문을 받았습니다.
많은 질문과 건의사항들이 쏟아졌는데, 그 중에 한 학생은 컴퓨터 교실을 만들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러자 스님은 그 필요성에 대해 충분히 수긍을 하면서도 얼마전 있었던 도난 사건을 예로 들며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말했습니다.
“컴퓨터 교실을 만들어 주세요.”
“컴퓨터 교실은 만들면 좋지만, 교실에 놔둔 컴퓨터를 누가 가져가버리면 어떡해요?”
“우리는 안 훔쳐갈 거예요.”
“컴퓨터가 없어져서 주니어 선생님들이 지금 힘든 거 알잖아요. 선생님들도 컴퓨터를 가져가버리는데 어떡해요. 누가 가져가면 누가 가져갔는지 저한테 이야기해줄 수 있어요?”
“예!”
“얼마전 선생님들 중에 컴퓨터 하나를 훔쳐간 것 다들 알고 있죠? 여기가 학교잖아요.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이렇게 물건을 훔치는 것은 좋지 않아요. 아무리 공부를 잘 가르쳐도, 물건을 훔치는 사람이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것은 옳지 않아요. 그래서 그만두게 한 거예요. 누가 가져갔는지 알려주면 그 사람만 그만두면 되는데 다들 말을 서로 안 하니까 전체가 다 그만두게 됐어요. 자기가 순간적으로 갖고 싶어서 가져갔다 하더라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보면 돌려줘야 합니다. 자기를 밝히지 못해도 돌려줄 수는 있잖아요.
바깥 세상에서는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지만 여기는 학교잖아요. 또 가져간 사람이 선생님이잖아요. 그래서 이게 큰 문제가 된 거예요. 앞으로 여러분들이 필요한 건 컴퓨터뿐 아니라 뭐든지 할 수 있어요. 옛날에는 학교에 총 든 강도가 들어와 다 가져가 버리기 때문에 못 했지만 지금은 그런 건 없어졌어요. 그러나 우리가 여기에 좋은 물건을 뒀을 때 누군가가 훔쳐가게 된다면 훔쳐간 사람도 문제지만 좋은 물건이 또한 문제가 되는 거예요. 컴퓨터 교육이 필요하다는 건 저도 인정합니다. 그러나 이런 문제들이 해결돼야 해요. 선생님들이 늘 보안을 신경쓰는 교무실 안쪽에다가 컴퓨터를 설치했는데도 그게 없어져 버렸어요. 그러니까 이건 문을 잠근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에요. 어쨌든 여러분들이 컴퓨터 수업을 하게 해달라고 건의하니까 의논해 보겠습니다.
내가 순간적으로 욕심을 내면 모든 사람이 피해를 보기 때문에 이런 것은 여러분들이 잘 생각해야 해요. ‘내가 갖고 싶다’라는 마음은 이해가 되지만, 그 때문에 많은 사람이 피해를 보게 돼요. 그래서 부처님이 다섯 가지를 꼭 지키라고 했어요. 첫째, 남을 때리거나 죽이면 안 돼요. 둘째, 물건을 빼앗거나 훔치면 안 돼요. 셋째, 다른 사람, 특히 여성을 성추행하거나 성폭행하면 안 됩니다. 인도 남자들이 여자를 성추행해서 신문에 난 거 봤죠? 그것 때문에 전 세계에서 인도의 이미지가 많이 나빠져 버렸어요. 여성을 존중하지 않고 자기 욕심대로 강제로 그렇게 하는 것은 나빠요. 신문에 나서 알려진 것만 해도 1년에 몇 만 건인데 알려지지 않은 것까지 하면 훨씬 많아요. 그러니 여러분들은 절대로 이건 하면 안 돼요. 나는 잠깐의 욕심을 채우는 것이지만 당하는 여성은 평생 고통을 겪는 거예요. 우리에게는 남을 괴롭힐 아무런 권리가 없습니다. 넷째, 거짓말하거나 욕설해서는 안 돼요.
다섯째, 술을 취하도록 마셔서는 안 됩니다. 동네에 술 마시고 취해서 행패부리는 사람 많죠. 여러분들 아버지나 오빠가 그러면 얼마나 힘들어요? 앞으로 안 마시는 게 제일 좋지만, 마시더라도 조금만 마셔야지 취하도록 마시면 절대 안 돼요. ‘홀리’ 때 한 잔씩 마시는 것까지는 괜찮지만 절대 취하면 안 돼요.”
학생들은 간절히 요청을 했지만, 스님 또한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없는 상황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특히 얼마전 컴퓨터 도난 사건으로 인해 대학생 교사들을 모두 학교를 그만두게 했는데, 오계를 어긴 것에 대해서는 스님이 얼마나 단호한 입장을 갖고 있는지, 학생들의 교육에 대한 스님의 애정이 얼마나 큰지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이야기하고 중등학생들과의 대화 모임을 모두 마쳤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스님과의 대화를 통해 학생들은 많은 것을 느낀 것 같았습니다.
스님은 학생들 한 명 한 명을 앞으로 불러내어 용돈과 더불어 수자타아카데미에서 제작한 달력을 선물했습니다. 학생들은 스님이 주신 용돈과 달력을 받아들고 아주 기쁜 표정을 지었습니다.
▲ 수자타아카데미 달력과 용돈을 받고 기뻐하는 아이
그리고 모두 계단 위에 서서 스님과 함께 기념 사진을 찍었습니다. 환하게 웃는 학생들의 얼굴 속에서 둥게스와리의 희망찬 미래가 보였습니다.
▲ 수자타아카데미 중학생들과 함께
저녁 6시 30분에 예불을 모신 후 7시부터는 한국인 봉사자들만 모두 모여 실무 점검 회의를 했습니다. 모레 있을 22주년 개교기념식과 마을잔치 프로그램, 내외빈 선물 준비 상황, 행사 당일 식사 배분 계획, 인도인 스텝들과 함께 떠날 소풍 장소 선정, 산 너머 마을 유치원과 학교 방문 계획 등에 대해 각 담당자들의 보고를 듣고 점검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특히 스님은 회의를 마치면서 앞으로 학교를 월급 시스템으로 운영할지 자원봉사 시스템을 더욱 확대해 갈지에 대한 장기적 전망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이렇게 정리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이제 문맹 퇴치는 거의 마무리되었다고 봅니다. 이제 다음 단계로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일반 학교에서 이제는 기술학교로 갈 것인가, 문화예술체육을 가르치는 특별학교로 갈 것인가, 아예 고급 사립학교로 갈 것인가 하는 것을 고민해서 세 가지를 겸하거나 한 가지를 선택하거나 해야 합니다.
학교 스텝들의 월급 문제는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지금 인도 사람들의 월급이 빠른 속도로 오르고 있어요. 월급 시스템으로는 정토회의 설립 취지를 살릴 수 없어요. 그러나 마을 청년들이 먹고 살아야 하는 생활 문제도 해결해야 하는 문제도 있습니다. 스텝으로 일하되 월급은 없고, 그러나 주택, 식량, 보건 의료 문제 등은 보장되는 시스템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 연구가 필요합니다.
제가 처음 시작할 때는 건축 노동자들도 월급을 주지 않고 봉사자로 참여했습니다. 필요하면 식량만 나눠주었거든요. 그런데 제가 한국에 다녀오면서 가야에 있는 대학교수에게 일을 맡겨 두었는데 그 사람이 귀찮으니까 전부 월급 시스템으로 바꿔 버렸어요. 한 명도 월급 주는 직원이 없었는데 지금은 선생님들만 월급 시스템이 아니지 건축 노동자들은 다 월급 받는 직원이 되어버렸잖아요. 이렇게 해서 자꾸 봉사 시스템에서 월급 시스템 쪽으로 점점 넘어가고 있는 중입니다. 현실적으로는 자연스런 현상이지만 우리가 가고자 하는 이상은 아닙니다.
한국에서 봉사자들을 충분히 파견할 수 있으면 이 문제를 극복할 수 있어요. 그렇지 않으면 여기서 인도 사람들을 봉사자로 키워서 배치를 시킬 수 있으면 극복이 가능합니다. 그런데 한국에서 파견할 봉사자도 부족하고, 현장에서 교육시켜서 봉사자 확보하는 것도 안 되고 있는 가운데 현상 유지는 계속 해야 하니까 어쩔 수 없이 이렇게 되어가고 있는 겁니다. 가난한 마을이지만 봉사 시스템을 어떻게 만들 것이냐 여기에 관건이 달려 있습니다.
결국 우리들이 어떤 방침을 세울 건지의 문제입니다. 지금까지 정토회의 원칙은 ‘사람을 고용하지 않는다’입니다. 적어도 우리들의 생활하는 문제와 관련해서는 사람을 고용하지 않아야 합니다. 어느 절을 가도 다 주방 아주머니를 고용해서 식사 문제를 해결하잖아요. 이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어긋나요. 이 원칙까지 포기하고 살 것 같으면 굳이 정토회를 만들 이유가 없잖아요. 그냥 기존 절로 가서 살면 되지요. 안 그렇게 살려고 정토회를 만든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의 식사는 여러분들이 당번을 정해서 하도록 하는 겁니다.
부처님이 하인을 두고 살지는 않으셨잖아요. 출가하기 전에는 하인을 많이 두고 살았는데, 출가한 뒤에는 평생 동안 하인을 두고 살지 않으셨어요. 물론 아난다 존자가 시봉을 했지만 그것은 하인이 아니라 같은 수행자로서 시봉을 한 것이지 월급을 주고 종을 부린 것은 아니었습니다.
여기서 노동자를 고용하는 것은 신분사회에서 종을 부리는 것과 같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노동자나 신분사회에서의 종이나 사실은 같습니다. 사람을 돈으로 부리느냐, 신분을 갖고 부리느냐의 차이 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해야 된다, 안 된다’ 하는 얘기가 아니고 ‘우리의 기본 정신도 살리면서 현실도 어느 정도 수용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 연구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드리는 겁니다. 내일 더 점검해 보고 의논해 봅시다.”
현재 수자타아카데미 운영에 관련된 스님의 깊은 고민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내일은 마을 리더들, 학교 스텝들과 미팅이 있기 때문에 더 현황을 파악해보면 좋은 방안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를 해보며 오늘 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 오늘은 교실도 둘러보고, 학생들도 만나보고, 학교 문제와 관련해 회의도 하는 등 학교 운영에 대해 충분히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내일은 오전에 전정각산을 넘어가 마을 유치원과 분교를 방문해 마을개발 상황을 살펴보고, 오후에는 학교 스텝들, 마을 리더들과 연이어 미팅을 가질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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