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6.1.30 (인도 25일째) 석가족 불상 점안식 및 담마센터 회의


 

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석가족이 살고 있는 마을 두 곳에 불상 점안식을 한 후 저녁에는 석가족들과 함께 인도불교 부흥을 위한 회의를 했습니다. 

 

석가족 청년회 회장인 수바스지의 집에서 하룻밤을 머문 스님은 수바스지의 가족이 차려준 아침 식사를 드시며 하루 일과를 시작했습니다. 

 


▲ 수바스지 가족이 차려준 아침 식사

 

아침 식사 후 원고 교정 업무를 마치고 8시 30분에 불상 점안식이 열리는 석가족 마을로 향했습니다. 스님은 인도에 올 때 마다 석가족들이 집성촌을 이루고 살고 있는 마을에서 법당이 지어지면 매년 불상을 기증하고 점안식을 해오고 있습니다. 오늘은 두 군데 마을에 불상 점안식을 할 예정입니다. 

 

1시간 넘게 논밭 사이로 난 시골길을 달려 먼저 이타와 디스트릭에 있는 우스라하르읍의 인근에 다라나가라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절 이름은 ‘레스마 보드 비하르’. 다라나가라 마을에서 사립학교를 운영하고 있는 ‘산트 꾸마르 사캬’라는 분이 학교 정문 옆에 작은 공간을 마련하여 절로 운영할 수 있게 보시를 해주었다고 합니다. 

 


 

아침 10시가 되자 드디어 불상 점안식이 시작되었습니다. 불상이 아직 흰 천으로 가려져 있는 가운데 스님은 팥을 뿌려 재앙을 쫓고 천을 걷어내고 불상을 향해 붓을 들고 한국식으로 먼저 점안식을 해주었습니다. 

 


 

이어서 한국식과 인도식으로 예불 공양을 한 후 예불이 끝나자 스님은 이곳에 불상을 조성할 수 있게 법당 공간을 보시한 ‘산트 꾸마르 사캬’라는 분에게 앞에 나와 불상을 향해 삼배를 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스님은 이 분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며 머리 위에 손을 대고 축원을 해주었습니다. 

 

이어서 점안식을 하는 이유와 앞으로 이곳 법당을 어떤 마음으로 사용해야 하는지에 대해 스님의 기념법문을 듣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스님은 경전에 나온 부처님의 말씀을 토대로 의미가 분명하면서도 재미있게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오늘 다라나가라 마을에 절을 창건하고 부처님을 모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부처님이 말씀하신 경전에 보면 부처님이 열반하시고 부처님이 계시지 않을 때 부처님을 그리워하면서 부처님의 형상을 조성해서 마치 부처님이 계시듯이 부처님을 그리워하고 예배 올리고 공양 올리면 큰 공덕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부처님이 계실 당시에는 물론 사람들이 부처님께 예배하고 부처님께 공양을 올렸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이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실 수는 없었습니다. 부처님이 라자그라하에 계시면 쉬라바스티 사람들이 부처님을 뵙지 못하고, 부처님이 쉬라바스티에 계시면 바이샬리 사람들이 부처님을 뵙지 못하는 등 모든 사람들이 부처님을 항상 뵐 수는 없었습니다. 쉬라바스티 사람들은 부처님이 항상 제따바나(기원정사)에 계시기를 원했지만 부처님은 한 곳에 계시지 않고 늘 옮겨다니셨기에 항상 뵐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난드핀디카(수닷타) 장자가 아난다 존자에게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으신 보드가야의 보리수를 쉬라바스티의 젯따바나에 심어주면 부처님이 안 계실 때는 우리가 보리수를 부처님이 계시듯이 생각하겠습니다’라고 부탁했고, 그래서 아난다 존자는 보드가야에서 보리수를 가져와서 제따바나에 심었습니다. 지금도 제따바나에 가면 아난다 존자가 보드가야에서 가져와 심었다는 보리수가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 참배를 합니다. 

 

제가 어제 스리랑카에서 여기로 왔습니다. 스리랑카에 가면 ‘아누라다푸라’라고 하는 도시가 있는데 그곳이 스리랑카의 불교가 처음 전래된 곳입니다. 지금으로부터 2,300년 전에 아쇼카왕이 인도를 통치하던 시절, 아쇼카왕의 아들이 출가해 스님이 돼서 스리랑카에 처음 불교를 전하러 갈 때 보드가야에 있는 보리수 한 포기를 가져갔습니다. 2,300년 전에 심은 그 보리수가 지금도 아누라다푸라에 남아 있어요. 큰 가지가 무너지고, 작은 가지가 나고, 또 가지가 나고 해서 아직도 한 가지가 남아 있습니다. 저도 거기에 어제 참배하고 왔습니다. 보드가야에 있던 보리수는 150년 전쯤에 큰 폭풍에 부러져서 죽었습니다. 그때 아누라다푸라에서 다시 보리수를 가져와 심은 것이 지금 보드가야에 있는 보리수입니다. 이렇게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으실 때 앉았던 그 보리수의 맥이 지금도 계속 유지되고 있습니다. 

 


 

부처님이 돌아가시고 부처님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탑을 세우고 조각이며 그림으로 장식할 때 처음에는 부처님을 사람 모양으로는 그리지 못하고 보리수로 상징해 표현했습니다. 다시 말해 초기에는 이런 모양의 불상을 만들지 않았습니다. 부처님을 감히 사람 모양으로 그릴 수 없다고 해서 모양을 그리지 않았어요. 모양을 그려 표현할 때는 두 가지로 했습니다. 첫 번째로는 부처님이 밟았던 발자국 무늬가 남아 있기에 그것을 그려서 섬겼습니다. 두 번째로는 보리수를 그려놓고 그것을 부처님처럼 섬겼습니다. 부처님을 사람 모양으로 그리거나 이런 불상을 만들어 표현하게 된 것은 한참 지난 뒤의 일입니다. 

 

여기에 계시는 불상은 부처님이 아니라 부처님 모양을 새긴 조각입니다. 조각품에게 절을 할 수는 없잖아요. 하지만 부처님 당시의 사람들이 보리수가 나무지만 부처님처럼 보리수를 공경했듯이, 우리도 ‘이것이 조각이지만 오늘부터 부처님처럼 공경하겠습니다’라는 뜻을 담아 점안식을 하는 것입니다. 점안은 부처님이 눈을 뜬다는 뜻입니다. 스님이 이 붓을 들고 여기에 점을 찍는 것은 ‘이것은 조각이지만 우리는 이 불상을 이제부터 부처님으로 생각하겠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눈을 뜨셨다’ 이런 의미를 가지는 것입니다. 처음에 만든 것은 조각품이지만 지금부터는 부처님으로 모시겠다고 우리가 약속한 거예요. 그러니 여러분들이 앞으로 여기 와서는 부처님이 계신 듯이 기도해야 합니다. 

 

여기에 이 다섯 가지 색깔의 실은 부처님이 점안식을 통해 이 세상에 새로 태어나신 셈이니까 여러분들도 이 부처님과 연결되어서 ‘나도 오계를 잘 지켜고 수행 정진해서 부처가 되겠다’ 이렇게 발원하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  오색 실을 잡고 있는 마을 주민들

 

부처님께서는 ‘담마를 보는 자가 나를 본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느 날 병든 비구가 부처님 뵙기를 원했습니다. ‘나는 지금 죽어도 아무런 후회가 없다. 다만 나에게 소원이 하나 있다면 부처님을 마지막으로 한번 뵙고 죽는 것이다.’ 그래서 친구가 부처님께 이 이야기를 전했고, 부처님이 이 병든 비구를 찾아왔습니다. 병든 비구가 부처님께 인사를 드리고자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자 부처님이 그냥 누워 있으라고 하셨어요. 그러자 비구가 말했습니다. 

 

‘저는 지금 죽어도 아무 후회가 없습니다. 저에게 마지막 한 가지 소원이 있다면 부처님을 한 번 더 뵙는 것이었는데, 오늘 이렇게 부처님을 뵙게 돼서 저는 이제 아무런 여한이 없습니다.’

 

그러자 부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비구여, 이 늙은 육신을 보아서 무엇을 하려고 하느냐? 이 육신은 늙고 병들어 죽어가는 것이다. 그러니 이 육신을 보려고 해서는 안 된다. 바로 여래의 가르침을 간직해야 한다. 그대가  여래의 가르침을 간직하고 있으면 늘 여래와 함께 있는 것이다.’

 


 

부처님이 쿠시나가라에서 열반에 드실 때, 부처님이 돌아가신다는 생각에 아난존자가 슬피 울었습니다. 그때 부처님께서 아난존자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난다여, 슬퍼하지 마라. 여래는 육신이 아니라 깨달음의 지혜다. 육신은 비록 너희 곁을 떠나지만 깨달음은 영원히 너희 곁에 남아 있으리라.’

 

또 이렇게도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가르침을 잘 따르고 지킨다면 항상 나와 함께 있는 것이고, 설령 내 옆에 있다 하더라도 나의 가르침을 지키지 않는다면 그는 나와 함께 있는 것이 아니니라.’

 

이런 말씀을 종합해보면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붓다의 가르침을 배우고, 이해하고, 그것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불교가 없던 곳에 여러분들이 힘을 모아 이렇게 법당을 마련한 것은 참 훌륭한 일입니다. 이렇게 불상을 모신 것도 아주 훌륭한 일입니다. 그런데 여기에만 멈춰서는 안 됩니다. 여기서 멈춘다면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과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붓다 담마가 나에게 경험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괴로움이 없고 평화로운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부디스트, 즉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 조금 달라야 합니다. 

 


 

부처님의 말씀은 종교를 넘어섭니다. 힌두교는 인도 사람은 믿어도 한국 사람이나 중국 사람은 믿지 않고, 크리스트교는 유럽에서는 믿지만 인도 사람은 잘 안 믿어요. 부처님 당시에도 여러 종교가 있었어요. 그때 가장 강력한 신이 브라만과 인드라였습니다. 부처님이 상카시아로 내려오실 때 옆에서 브라만과 인드라가 부처님을 받들었다는 것은 부처님은 종교보다 위에 있다는 뜻입니다. 불교는 불교, 기독교, 힌두교 등 많은 종교 중 하나지만, 붓다 담마는 이런 종교를 넘어서서 그 위에 있어요. 그래서 제가 불교를 믿는 것은 여러분의 자유지만 부디스트가 된다면 반드시 붓다 담마를 공부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스님이 법문을 마치자 다라나가랴 마을 주민들은 무척 기뻐하며 크게 박수를 쳤습니다. 

 

이어서 스님이 “그러면 궁금한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라며 질문을 해보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두 명이 손을 들고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한 분은 술을 먹지 말라는 계율에 대해서 불자라면 무조건 술을 먹지 말아야 하는 것인데, 왜 스님께서는 취하지 말라고 하느냐며 물었고, 다른 한 분은 붓다 담마와 붓다 담마가 아닌 것은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스님이 각각에 대해 명쾌한 답변을 들려주자 마을 주민들은 다시 한번 기뻐하며 스님께 합장 공경의 예를 취했습니다. 

 

이어서 스님은 마을 주민들이 잡고 있던 오색 실을 가위로 모두 잘라 주었습니다. 오색 실은 앞서 스님이 설명했듯이 오계를 지킬 것을 다짐하는 것을 뜻합니다. 

 


 

마지막으로 다시 점안식을 마친 불상을 향해 삼배로 인사를 올린 후 점안식 법회를 모두 마쳤습니다. 법회를 마치고 나서는 참석한 주민들 모두에게 기념 선물을 나눠주었습니다. 먼저 스님이 단주를 한 명 한 명에게 걸어준 후 이어서 수자타아카데미에서 직접 제작한 달력과 볼펜을 하나씩 나눠주었습니다. 

 


 

좋은 법문도 듣고 선물까지 받으니 모두들 너무나 기쁜 표정을 지으며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밖으로 나오자 넓은 마당에 이곳 사립학교 주인인 ‘산트 꾸마르 사캬’ 씨가 내외빈들이 점심 공양을 할 수 있게 대접을 해주었습니다. 스님도 인도 음식으로 공양을 한 후 마을 주민들에게 붓다 담마를 더 열심히 배우고 공부할 것을 당부한 후 점안식이 열리는 다음 마을로 이동했습니다. 

 


 

다시 논밭 사이로 난 시골길을 약 20분 정도 차를 타고 가니 메인뿌리 디스트릭에 있는 ‘사마드푸르’ 라는 마을이 나타났습니다. 논밭 한 가운데에 작은 마을이 있었고, 마을의 한 귀퉁이에 작은 법당이 정성스럽게 조성되어 있었습니다. 법당 바로 옆에 소가 여러 마리 자리잡고 똥을 누고 있어서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 논밭 한가운데에 자리한 절, 샤캬무니 부드 비하르. 

 

절 이름은 ‘샤캬무니 부드 비하르’. 이곳을 법당으로 사용할 수 있게 보시한 사람은 ‘비리하므 라치트’ 라는 분입니다. 이곳 점안식에는 많은 인도 스님들이 함께 참석했습니다. 점안식을 할 수 있게 장엄을 준비하고 있는 사이에 스님은 인도 스님들과 잠시 담소를 나누었습니다. 

 


 

인도 스님들은 어떤 권위 의식도 없이 참 소박하고 편안해 보였습니다. 특히 매년 스님이 법당을 개원하고 불상을 기증해 주는 것에 대해 무척 고마워하고 있었습니다. 

 

오후 1시가 되자 드디어 점안식이 시작되었습니다. 먼저 한국식으로 정성스럽게 점안식을 했습니다. 스님은 불상을 향해 팥을 던지며 재앙을 쫓고, 불상을 덮고 있던 천을 벗긴 후 붓으로 불상의 미간을 겨냥하고 점안을 하였습니다.  

 


 

먼저 한국식으로 예참 불공을 올리고 이어서 인도 스님들이 인도식으로 예참 불공을 올렸습니다. 법당이 좁아서 마을 주민들은 법당 밖에서 스님들이 불공 올리는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점안식을 마치고 모두 밖으로 나와 넓은 마당에서 법회가 열렸습니다. 석가족 청년회 회장인 수바스지가 오늘 법륜 스님을 모시고 점안식을 하게 된 의미에 대해 마을 주민들에게 설명을 한 후 스님의 설법이 시작되었습니다. 

 


 

스님은 법당을 개원하고 불상을 모신 공덕에 대해 알려주면서 이제는 불상을 모시고 정성껏 기도를 하면서 ‘다섯 가지 계율’을 꼭 지킬 것을 당부했습니다. 

 

“오늘 사마드푸르 마을에 ‘샤캬무니 부드 비하르’ 절을 개원하고 부처님을 모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또 이 절을 창건하신 ‘비리하므 라치트’ 씨에게 깊이 감사말씀을 드립니다. 이렇게 절을 짓고 부처님을 모신 공덕으로 다음 생에는 꼭 부처를 이룰 것입니다. 오늘 이 행사에 참여해주신 여러분들도 참여한 공덕으로 모두 건강하시고 마음이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저 불상은 조각품이지만 이제 점안식을 했기 때문에 지금부터 여러분들에게는 부처님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그러면 지금부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여러분들이 법당에 가서 기도를 해야 합니다. 불상을 모셔도 기도를 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둘째, 붓다 담마를 배워야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부처님의 살아 있는 육신보다 더 중요한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붓다 담마를 배운다는 것은, 첫 번째로 담마를 믿고, 두 번째로 담마를 이해하고, 세 번째로 담마를 실천하고, 네 번째로 담마를 경험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담마를 자기 것으로 하게 되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머리가 맑아져서 괴로움이 없어지고 행복해집니다. 마음이 더 가벼워지고, 입에서는 부드럽고 좋은 말이 나오고, 남을 위하는 행동을 하게 되고, 지혜가 생깁니다. 그러니 반드시 붓다 담마를 공부해서 그것을 실천해야 합니다. 

 

붓다 담마를 공부하려면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계율(실라, 戒)을 잘 지켜야 합니다. 두 번째가 선정(사마디, 定)을 닦아야 합니다. 세 번째는 지혜(빤야, 慧)를 증득해야 합니다. 불자라면 붓다(佛), 담마(法), 상가(僧)에 귀의하고 실라, 사마디, 빤야를 수행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계율을 지켜야 할까요? 우리는 살다보면 마음에서 욕심이 일어납니다. 돈도 많이 벌고 싶고, 지위도 높아지고 싶고, 인기도 얻고 싶어요. 여기 있는 우리 모두에게는 이런 욕망이 있습니다. 다음으로, 우리는 자기 주장과 자기 생각을 고집하는 성질이 있습니다. 자기가 원하는 대로 안 되면 성질이 나고, 화가 치솟고, 짜증이 나게 되어 있어요. 짜증이 나면 말과 행동을 거칠게 하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지혜롭지 못하고 어리석습니다. 쥐가 쥐약을 먹는 것과 같아서 먹을 때는 좋지만 나중에는 죽게 됩니다. 물고기가 낚싯밥을 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먹을 때는 좋지만 나중에 죽게 됩니다. 이걸 어리석음이라고 해요. 지금은 좋은데 그것이 계속 이어지지 못하고 나중에는 오히려 손해가 납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걸 알지 못하고 스스로 재앙을 자초합니다. 이걸 어리석음이라고 해요. 

 


 

술 마실 때는 좋지만 나중에 취해서 건강도 나빠지고 주위 사람들에게 행패를 부리잖아요. 그래서 술을 깨고 나면 후회합니다. 이처럼 지금 좋은 것이 반드시 좋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리석어서 항상 자기 원하는 대로 다 하려고 해요. 우리 중생에게 나쁜 점 세 가지가 있는데 첫째가 탐심, 즉 욕심을 내는 거예요. 두 번째가 진심, 즉 성질을 내는 것입니다. 세 번째가 치심, 즉 어리석은 것입니다. 이것 때문에 우리가 고통을 겪는 거예요. 

 

그러니 이 괴로움에서 우리가 벗어나려면 첫째, 계율을 잘 지켜야 합니다. 계율의 첫번째는, 아무리 욕심이 나고 아무리 화가 나도 남을 때리거나 죽여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두번째, 아무리 내가 욕심이 나도 남의 물건을 빼앗거나 훔쳐서는 안 됩니다. 

 


 

세번째, 내가 아무리 좋아해도 상대가 싫다는데 내 마음대로 하려고 하면 안 됩니다. 즉 여자를 강제로 성추행하거나 성폭행해서는 안 됩니다. 특히 인도에서 여성을 성추행하는 경우가 아주 많습니다. 인도에서 일어난 이런 사건들 때문에 세계적으로 인도의 이미지가 굉장히 나빠졌어요. 외국 사람들이 인도 남성들은 다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건 지금 인도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지키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니 내가 좋다고 다른 사람을 강제로 만지거나 껴안으면 안 돼요. 

 

네번째, 말로도 남을 괴롭혀서는 안 됩니다. 거짓말을 해서 남을 속이거나, 화가 난다고 욕을 해서는 안 돼요. 

 

다섯번째, 술을 마시고 취해서는 안 됩니다. 술이라는 것은 좀 많이 마시게 되면 취해서 정신이 없어집니다. 그래서 남과 주먹질하고 싸우고, 욕설을 하고, 남의 물건을 부수고, 여자를 성추행해요. 술에 취하게 되면 앞에 있는 네 가지 계율을 다 어기게 됩니다. 그래서 술을 마시지 말라고 한 거예요. 그런데 여러분들은 다 술 마시죠? (모두 웃음) 

 


 

술을 안 마시는 게 제일 좋아요. 그러나 농사를 짓거나 빨래를 하다 보면 술을 좀 마시게 될 때가 있어요. 그러나 그렇게 마시더라도 술을 마시고 취해서는 안 됩니다. 취하도록 마셔서는 안 돼요. 여기 취하도록 마시는 사람 있죠? 

 

술 마시고 취해서 길거리에 쓰러져 있거나, 술 마시고 들어와서 아내를 때리거나, 옛날에 했던 말을 계속 하고 또 하면서 남에게 피해를 주면 안 돼요. 마시는 것은 자유지만, 남을 괴롭힐 자유는 없습니다. 남편이나 아버지가 술 마시고 취해서 들어오면 얼마나 괴로운지 여자들에게 물어보세요. 여기에는 그런 사람 없어요? 한국에는 그런 사람이 많아요. 인도 사람도 제가 전에 물어보니까 많다던데요. 그러면 안 돼요. (모두 웃음) 

 


 

다시 이야기하지만, 술은 안 마시면 가장 좋습니다. 그러나 마시더라도 취해서는 안 됩니다. 마시는 것은 내 자유라 하더라도 마시고 남을 괴롭힐 권리는 없습니다. 자, 술을 아예 안 마시겠다는 사람 손들어 봐요. 술을 마시더라도 절대로 취할 정도로는 안 마시겠다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상당수가 손을 듬)

 


 

손 안 든 사람들은 취하도록 마시겠다는 거예요? (대중 웃음) 한 번 더 이야기합니다. 술을 안 마시면 가장 좋습니다. 어쩔 수 없이 마신다 하더라도 절대로 취하도록 마셔서는 안 됩니다. 몸이 흔들리거나 정신이 오락가락하거나 말이 자꾸 나오도록 술을 마신다면 부디스트라고 할 수 없습니다. 

 

불자라면 엄마들도 아이가 말 안 듣는다고 때리면 안 돼요. 남자들도 술 마시고 취하거나 해서 여자를 때리면 절대로 안 돼요. 사무지가 헤? (이해하셨어요?) 

 


 

불자라면 불자 아닌 사람과 차이가 나야 해요. 여성이 낯선 남자와 같이 있다 하더라도 상대가 불자라고 하면 안심할 수 있어야 해요. 불자라면 나를 해치지 않을 것이고, 나에게 손해 끼치지 않을 것이고, 나를 괴롭히지 않을 것이고, 나를 속이지 않을 것이고, 술 마시고 취해서 나를 괴롭히지 않을 것이니까요. 그런데 내 남편, 내 아들이라고 해도 자기가 성질나면 나를 때리고, 집안의 물건을 훔쳐가고, 괴롭히고, 욕설하고, 술 마시고 취해서 행패 부리면 싫을 수밖에 없어요. 그러니 이 다섯 가지가 참으로 중요합니다. 이 다섯 가지만 지켜지면 세상의 갈등과 혼란의 90퍼센트는 가라앉고 조용해져요.

 

둘째, 사마디, 즉 명상을 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은 늘 들떠 있기 때문에 마음을 편안하게 가져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아침에 일어나면 최소한 30분이라도 이렇게 편안하게 마음을 안정시켜야 해요. 욕심이 나거나 짜증이 날 때일수록 마음을 더 편안하게 가져야 합니다. 하던 일을 잠시 쉬고, 자세를 바로 하고, 마음을 콧구멍 끝에 집중해서 숨이 들어가고 숨이 나오는 것을 가만히 알아차립니다. 그렇게 10분, 20분, 30분이 지나면 흥분되거나 들떴던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셋째, 지혜를 얻어야 합니다. 지혜를 얻으려면 붓다 담마를 공부해야 합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은 꼭 절에 오셔서 한 시간이라도 공부를 하세요. 자기가 지난 일주일 동안 계율을 어긴 게 있으면 참회를 하고, 다시는 계율을 어기지 않겠다고 다짐을 하고, 조용히 앉아서 마음을 안정시키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워서 삶의 지혜를 얻어야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지금보다 번뇌나 괴로움은 훨씬 더 줄어들고, 훨씬 더 행복해집니다. 다른 이웃 종교인들보다 비록 재산은 좀 적더라도, 지위는 좀 낮더라도, 내가 훨씬 더 행복해져요. 다른 사람들에게 ‘야, 너는 그런 일을 당했는데도 화가 안 나고 안 괴롭냐? 너는 어떻게 그렇게 행복하냐?’ 이런 소리를 들을 정도가 되어야 합니다. ‘행복하다는 것에서만큼은 이 세상에서 내가 제일이다. 나보다 더 행복한 사람 있으면 나와 봐라’ 이런 자신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니 부디스트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행복해야 해요. 열반이란 것은 행복하다는 거예요. 괴로움이 없는 거예요. 괴로움이 있더라도 작고, 조금 있다 하더라도 금방 극복한다는 거예요. 괴로움이 없는 아라한이 되는 것은 어렵지만, 지금보다 더 행복해지는 것은 쉬워요. 미국이나 유럽에 가면 여러분보다 경제적으로 사는 형편이 훨씬 좋지만 행복하지는 못해요. 붓다 담마를 몰라서 그래요. 앞으로 경제가 많이 성장한다 해도 붓다 담마를 모르면 행복해지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 붓다 담마가 더 많이 전파돼야 합니다.”

 

스님은 여러 차례 다섯 가지 계율을 강조하며 마을 주민들이 잘 지킬 수 있는지 확인했습니다. 주민들은 스님의 설명을 듣고 다섯가지 계율을 지키겠다고 흔쾌히 마음을 내었습니다. 

 

여기까지 이야기하고 스님은 “질문 있으면 하세요. 아무 것이나 물어도 됩니다.”라며 궁금한 점에 대해 질문을 받았습니다. 여러 사람이 손을 들고 질문을 했습니다. 그 중에서 두 가지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먼저 내생에 대한 질문에 스님이 너무나 짧고 명쾌하게 대답해 주어 주민들 모두 크게 웃었습니다. 

 


 

“다시 태어나게 되면 어떻게 되나요?”

 

“다시 태어나면 어떻고, 안 태어나면 어때요? 안 태어나면 안 태어나서 좋고, 태어나면 또 살면서 불법 만나 수행하면 되잖아요. 태어나든지 말든지 저에게는 그게 아무 문제가 안 돼요. 태어나면 태어난 대로 좋고, 안 태어나면 안 태어난 대로 좋고, ‘노 프라블럼’이에요.” (모두 웃음) 

 


 

질문한 할아버지는 스님의 시원시원한 대답에 고민이 금방 해결되었다며 환하게 웃었습니다. 

 

다음은 귀신이 정말 있는지에 대해 질문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귀신이 되어 집에 들어온다는 이야기를 특히 여자들이 많이 하던데, 진짜로 사람이 죽으면 귀신이 되어서 이렇게 찾아옵니까?”

 

“모든 것은 다 마음에 달렸습니다. 신이 있다고 믿으면 그 사람에게는 신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고, 없다고 믿으면 그 사람에게는 없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신이 있다, 없다’가 아니라 ‘그 사람의 마음에 달렸다’라는 것입니다. ‘귀신이 있어서 찾아온다’라고 강하게 믿으면 정말로 귀신이 오는 것 같은 경험을 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오느냐, 안 오느냐가 핵심이 아니에요. 마음을 그렇게 쓰면 그렇게 느껴진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사람이 죽었을 때 하루나 이틀만 울고 그만 울어야 해요. 만약에 귀신이 있다고 치면, 계속 슬퍼하면 귀신이 떠나지를 못해요. 계속 운다는 건 가지 말라고 계속 잡아당기는 셈이니까요. 그러면 ‘귀신이 든다’는 말과 같은 경험을 하게 돼서 정신이 약간 이상해집니다. 그러니 죽는 것은 슬픈 일이지만 잠시만 슬퍼하고 그만둬야 해요. 인도 사람들이 믿듯이 윤회를 한다면 내가 놓아줘야 빨리 윤회하잖아요. 또 기독교 식으로 말해서 천당에 간다면 내가 놓아줘야 빨리 천당에 가잖아요. 

 

다시 말하면 천당에 가든 윤회를 하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죽음을 갖고 슬퍼하지 말라는 게 중요합니다. 붓다의 가르침은 슬퍼하지 말라는 것이지, 천당에 간다거나 윤회를 한다거나 하는 게 아닙니다. 천당에 가든 윤회를 하든 그건 상관없어요. 니르바나를 추구하는 불자는 고뇌가 없기 때문에 태어나도 좋고, 안 태어나도 좋고, 천당 가도 좋고, 안 가도 좋아요. 그건 별로 중요한 관심사가 아닙니다. 죽음이라는 것은 하나의 자연현상이기 때문에 그 슬픔에 빠지지는 마세요. 이것이 붓다의 가르침입니다.

 

사람이 죽었는데도 슬프지 않다면 헤어졌다고 슬플 게 뭐 있으며 재산을 잃었다고 슬플 게 뭐 있겠어요? 몸이 아파서 병원에 갔는데 의사가 진찰을 해보고 ‘암입니다’라고 말한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어요?“ (대중 웃음)

 

“슬플 겁니다.” 

 

“죽어도 안 슬픈데 병이 뭐가 슬퍼요? (대중 웃음) 여러분들은 웃으면서 ‘의사 선생님, 수고하셨습니다. 드디어 찾아냈군요. 아이고, 축하합니다’ 이렇게 말해야 해요. 없던 암이 오늘 갑자기 생긴 게 아니잖아요. 어제도 그제도 있었습니다. 오늘 일어난 일은 애초에 있던 것을 발견한 것뿐이에요. 발견한 건 좋은 일인데 왜 울어요? (대중 웃음) 

 

의사가 ‘제가 지금까지 많은 환자를 대했지만 암이라고 하는데도 빙긋이 웃으면서 축하한다고 하는 사람은 처음 만났습니다’ 이러고 놀라면 ‘아, 저는 부디스트입니다’ 이러세요. 그러면 의사가 ‘와, 불교 신자는 다르구나’라고 생각해서 다음에 절에 올 거예요. (모두 웃음) 

 

 

그런데 암이라고 하니까 ‘아이고, 암이라고요?’하고 울고불고 하면 부디스트라고 해서 다른 종교인들과 다른 게 뭐가 있겠어요? 그러니 절에만 다니는 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붓다 담마를 알아서 여러분들의 생활에서 실천해야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의 삶이 더 행복해져야 해요. 이건 스님이 안 되어도 얼마든지 할 수 있어요. 스님이 되고 안 되고가 중요한 게 아니라, 이 담마를 실천하느냐 못 하느냐가 중요해요. 그렇다고 스님이 필요 없다는 이야기도 아니에요. 물론 스님은 중요하지만, 여러분들도 할 수 있다는 말이에요. ‘우리는 재가신자니까 안 해도 된다’ 이렇게 생각하면 안 돼요.”

 

스님의 명쾌한 답변에 마을 주민들은 크게 환호하고 박수를 치며 기뻐했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손을 들고 질문을 하고 싶어했으나 더 길게 시간을 가질 수 없어 법회를 모두 마쳤습니다. 이어서 스님은 참석한 마을 주민들 모두에게 단주, 수자타아카데미 달력, 볼펜을 차례대로 나눠주었습니다. 

 


 

스님께 선물을 받은 주민들은 스님의 발에 이마를 대고 합장 공경의 예를 취하며 감사한 마음을 표했습니다. 

 

마을 주민들은 점안식을 하기 위해 저 멀리 한국에서 온 스님 일행을 위해 짜이와 간식을 나눠주었습니다. 잠시 담소를 나누다가 스님이 차에 다시 타려고 하자 주민들은 스님을 에워싸고 다시 한 번 감사의 마음을 표했습니다. 

 

이렇게 불상 점안식 두 차례를 모두 무사히 마쳤습니다. 스님의 간절한 염원대로 석가족 마을주민들로 인해 인도에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이 다시 흥기하게 되는 날이 빨리 도래하길 기원해 봅니다. 

 

다음은 상카시아로 향했습니다. 상카시아에는 정토회가 석가족들의 불교 교화활동을 돕기 위해 담마센터를 지으려고 구입해 놓은 넓은 부지가 있어서 그곳에 잠시 들렀습니다. 

 


▲ 담마센터 부지

 

스님은 부지를 한 바퀴 둘러보며 곳곳에 어느 위치에서 어떤 건물들을 지으면 좋을지 대략적인 구상에 대해 알려주었습니다. 또 승려들을 교육시키는 불교학교를 운영하자는 제안도 있어서 불교학교는 어떤 곳에 지으면 좋을지도 함께 검토했습니다. 

 

담마센터 옆에는 석가족 출신인 담마팔 스님이 운영하는 법당이 있는데, 오후 6시부터는 이곳 법당에서 석가족 청년회(YBS) 간부들과 작년 사업과 올해 사업계획에 대해서 보고 받고 의논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약 2시간 30분 동안 많은 토론과 제안이 있었습니다. 지난주에는 수바스지가 석가족 청년회를 대표해서 정토회 성지순례단에 참여했는데 다녀온 소감도 잠시 들어보았고, 더불어서 석가족들을 위한 인도 성지순례를 언제 어떻게 다녀올 수 있을지 그 방안을 함께 검토해 보기도 했습니다. 

 

또 스님은 담마센터를 짓는 것과 관련해 이야기가 나오자 스님은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스님이 어떤 관점에서 인도 불교 부흥 사업을 펼치려고 하는지, 담마 센터가 한국인의 센터가 아니라 정말로 인도 사람들의 센터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스님의 고민을 충분히 들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처음에 세웠던 원래 계획은 맨 안쪽에 명상센터와 숙소를 짓고, 가운데에 대강당을 짓고, 입구 쪽에 상카시아를 상징하는 수투파를 짓자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아직 못했지만, 우리가 건축을 시작하기 전에 혹시 다른 계획을 제안하고 싶은 내용이 있어요?” 

 

“이곳에 와서 많은 사람들이 말합니다. 왜 법륜 스님이 왔다 가셨는데, 아무것도 지어지지 않을까. 스님은 둥게스와리에서는 수자타아카데미 학교도 짓고 병원도 짓고 많은 일을 하시는데 왜 상카시아에는 아무 일도 안하시는지 사람들이 얘기하는데 듣기에 별로 좋지 않습니다.”

 

“수자타아카데미를 지은 이유는 불가촉 천민들이 사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들을 돕기 위해서 지은 겁니다. 그런데 상카시아는 여러분들이 함께 참여해야 한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습니다. 여러분들이 돈을 모아서 하겠다고 하면 저는 항상 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도 여러분들이 안 하니까 지금 몇 년이 그냥 흘러가고 있습니다. 

 

이곳에는 한국절을 지으려고 하는 것도 아니고, 불쌍한 사람들을 도우려고 하는 것도 아니고, 담마 센터를 지으려고 합니다. 그것도 이 주위에 살고 있는 석가족들이 중심이 된 담마센터를 지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어쨌든 밥은 먹고 살잖아요. 그래서 같이 짓자는 겁니다. 지난번에 와서는 제가 이런 말도 했습니다. ‘제가 여러분의 스승입니까? 사장입니까?’ (모두 웃음)

 


 

그래서 저를 사장으로 생각하지 않고 스승으로 생각한다면 절반은 여러분들이 나서서 하고 나머지 절반은 제가 도움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도 계속 기다리고 있어요. 붓다 담마를 전하는 일은 건물만 짓는다고 되는 일이 아니예요. 무엇이든 같이 해야 해요. 그런데 같이 하는 것이 잘 안 되고 있어요. 

 

선택은 두 가지에요. 하나는 여러분들이 준비될 때까지 계속 기다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여러분들을 무시하고 그냥 제가 지어버리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이곳은 여러분들의 절이 아니라 한국 사람들의 절이 되는 거예요. 물론 여러분들이 이 절을 사용할 수는 있지만 한국 사람들이 운영할 수 밖에 없게 돼요. 여러분들은 사용만 할 수 있는 거예요. 그러나 만약 여러분들의 힘으로 짓게 된다면 앞으로 운영도 여러분들이 하게 되는 거예요. 저는 지원만 하고 끝내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이곳이 인도 사람들의 절이 되려면 여러분들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들도 ‘우리는 못하겠습니다’ 하고 포기할 거예요? (웃음)

 

그러면 저 혼자 하는 수밖에 없어요. 제가 절을 다 지어서 만약 여러분들에게 넘겨준다면 이 절을 갖고 여러분들이 싸우게 될 거예요. 저는 안 봐도 다 알아요. 그렇기 때문에 이 절을 만들어가는 과정 속에서 서로 화합을 이뤄내야 해요. 여기 와서 일도 하고, 도네이션도 하고, 서로 의논도 하면서 상가처럼 만들어가야 해요. 그래야 여러분들이 미래에도 운영을 잘 해나갈 수가 있는 거예요. 그래서 스님이 계속 기다리는 거예요. 

 


 

그러나 스님도 계속 나이가 들어가고 있어요. 만약에 스님이 갑자기 죽는다고 하면 이 프로그램을 계속 끌고 갈 사람이 없어져요. 한국에도 해야 할 일이 많아요. 실무자들도 다 자기 일 하기 바빠요. 사람을 파견하려고 해도 보낼 사람이 없어요. 둥게스와리는 이미 학교를 지어놓았기 때문에 운영을 안 할 수가 없잖아요. 거기도 사람이 없어서 제대로 운영을 못했어요. 이제 쁘리앙카가 돌아왔기 때문에 제대로 운영되기 시작한 겁니다. 또 학교를 졸업한 아이들이 이제 커서 선생님이 되었기 때문에 자체적인 운영이 가능해졌어요. 그런데 상카시아는 지금 이 일을 할 사람이 없어요. 그래서 스님도 고민이예요.”

 

스님의 고민에 석가족 청년들도 모두 공감을 표했습니다. 무엇보다 이곳 담마센터가 인도 사람들이 주인이 되어 운영되도록 하려는 스님의 애정을 많이 느낄 수 있어서 무척 감명 깊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석가족 청년들은 자신들의 여건도 그리 녹록치 않아서 선뜻 나서지는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조금만 더 기다리면 석가족 청년들이 더욱 마음을 내어서 이제 곧 담마 센터 공사가 시작되지 않을까 하는 희망의 기운들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회의를 마친 후 스님은 회의에 참가한 모두에게 수건, 양말, 달력을 선물로 주었습니다. 또 석가족 청년회와 담마팔 스님에게는 각각 올해 1년 동안의 활동에 보태어 쓰라고 지원금도 전달했습니다.

 


 

스님으로부터 하루 종일 법문도 듣고, 활동에 대한 조언도 듣는 등 행복한 시간을 보낸 석가족 청년들은 기쁜 표정을 지으며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모두들 스님이 이렇게 한번씩 오셔서 기운을 듬뿍 주시는 것에 대해 무척 기뻐했습니다.

 


 

석가족 청년회와 회의를 마친 후 스님은 다시 수바스지의 집으로 돌아와서 오늘 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 내일은 석가족 청년회(YBS) 멤버 중 한 사람이 운영하는 학교를 잠시 방문한 후 이타와 역에서 기차를 타고 가야까지 12시간 동안 이동할 예정입니다. 수자타아카데미에 도착해서는 앞으로 일주일 동안 학생들, 교사들을 위한 법문과 회의 일정 등을 가집니다. 


2016년 '법륜 스님의 정토불교대학'이 신입생을 모집합니다. 불교에 대해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배워보고 싶은 분들은 지금 신청하세요.   


전체댓글 46

0/200

임무진

계정해 삼학을 닦고 탐진치 삼독을 멸하겠습니다

2016-02-07 06:03:30

정근환

잘 읽었웁니다.감사합니다.....

2016-02-03 21:27:55

월광

5색실이 5계를 지킨다는 의미임을 새롭게 알았습니다.<br />5계의 중요함을 다시 느낍니다.<br />고맙습니다.

2016-02-03 13:5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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