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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INEB(국제 참여불교 네트워크)에서 주관하는 불교지도자 컨퍼런스에 참가해 패널들의 발표를 경청한 후, 오후에는 그룹별 토론에 참여해 교류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아침 8시 30분, 컨퍼런스가 시작되기에 앞서 스리랑카 스님들의 기도가 있었습니다. 스님도 합장을 하고 테라바타식 기도를 함께 따라했습니다.
기도 후 9시가 되자 컨퍼런스의 첫 번째 주제에 대한 사회자의 소개가 있었습니다. 각국에서 온 참가자들이 오늘 함께 고민할 주제는 ‘오늘날의 구조적인 폭력’입니다. 3명의 패널이 나와 이 주제에 대해 각각 발표를 하면서 본격적으로 컨퍼런스가 시작되었습니다.
첫 번째 발표자인 ‘조안 메이시(Joanna Macy)’는 구조적인 폭력의 하나로 거대 기업의 폭력을 들었습니다. 거대 기업에 저항하는 방법으로 그들의 레이다에 잡히지 않고 로컬 단위에서 기층 민중들이 그 저변을 확대해나가야 함을 강조했습니다. 두 번째 발표자인 인도네시아에서 온 이슬람 단체 활동가 ‘야야 기스비야(Yayah Khisbiyah)’ 씨는 많은 이슬람인들이 ‘비이슬람 인과는 친구도 맺지마라’ 하는 식의 잘못된 이해를 갖고 있는데, 이슬람의 경전인 코란을 잘 읽어보면 불교에서 이야기하는 관용과 존중의 정신이 다 들어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특히 본인이 속한 단체는 코란의 언어로 제대로 된 이슬람을 교육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소개해 주었습니다. 세 번째 발표자인 ‘페레라(Perera)’ 신부님은 스리랑카에서 신부님을 하고 있는 분이신데 다수가 불교인 이곳에서 소수가 배척받을 때가 있다며 타밀지역을 그 예로 들었습니다.
스님은 각 패널들의 발표 내용을 경청하며 공감이 갈 때는 때론 웃기도 하면서 오전 시간을 보냈습니다.
12시가 다 되어가는데도 발표가 끝나지 않자 스님은 남방불교 스님들과 함께 점심 식사를 하러 일찍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스님은 웃으면서 “여기서는 오후 불식을 하지 않으면 스님 취급을 못 받는다”고 하면서 이곳에 머무는 동안에는 오후 불식을 하기로 했다고 알려주었습니다. 날이 너무 더워서 스님도 오후에는 더욱 간소해진 차림으로 컨퍼런스홀로 나왔습니다.
식사 후 오후 1시 30분부터 다시 컨퍼런스가 시작되었습니다. 오후에는 ‘World Caffe’라는 프로그램이 열렸는데, 총 세 번에 걸쳐 그룹을 바꿔가며 오늘 주제인 ‘구조적인 폭력’에 대해 자유토론을 하는 방식이었습니다.
먼저 스님은 각각 캐나다, 인도네시아, 중국,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모여 있는 조를 하나 선택해서 들어갔습니다. 각자 자기 소개가 있은 후 사람들은 스님의 소개를 듣기를 요청했습니다. 스님은 왜 출가를 하게 되었는지 어렸을 때 이야기부터 들려주었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왔고 고등학생 때 스님이 됐어요. 원래는 과학자가 꿈이었고 종교는 굉장히 안 좋아했어요. 초등학생 때 교회 다니면서 노래도 배우고 좋았지만, 처녀가 아기를 낳았대서 어떻게 처녀가 아기를 낳을 수 있냐고 계속 물었더니 나더러 믿음이 없는 나쁜 사람이어서 지옥 간다는 거예요. 의문이 나서 물었을 뿐인데 왜 나쁘다고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서 교회 나가길 그만뒀어요. (모두 웃음)
중학생이 됐을 때 친구가 절에 가자고 해서 따라갔더니 부처님이 태어나자마자 서서 말을 했다고 해서 어떻게 갓난아기가 설 수 있냐고 물었더니 스님이 ‘그러니까 부처지!’ 그랬어요. ‘그럼 저는 태어났을 때 서지 못했으니까 부처가 될 수 없겠네요. 그러면 절에 다닐 필요가 없지 않아요?’ 했더니 스님이 아무 대답을 못했어요. 그래도 절에서는 저더러 지옥 간단 말은 안 했어요. (모두 웃음)
그러다 고등학생이 되었는데 학교 옆에 있는 절의 스님이 저를 보더니 스님이 되라고 했어요. 그래서 불교 신자도 되기 싫은데 무슨 스님이냐고 했어요. 저는 원래 물리학자나 천문학자가 되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어떻게 하다 보니 스님이 되었어요.”
“어쩌다 상황이 그리 되었습니까?”
스님은 조금 망설이는 듯 하더니 출가한 계기를 얘기했습니다. 모두들 재미있다는 듯이 듣고, 또 질문도 했습니다.
출가의 동기를 설명한 후 스님은 이야기를 이어갔습니다.
“저는 종교라는 게 마음에 안 들었어요. 너무나 허황된 소리를 하니까 그런 것에는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신비하다고 여기는 것은 모두 무지의 소산이라고, 즉 어떤 현상의 원인을 모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붓다 담마에 대해 공부해보니까 그 가르침이 과학과 같이 합리적이어서 오히려 적응이 잘 되었어요. 저에게 있어서 붓다 담마는 종교를 넘어선 것이었기에, 사람들에게 설명할 때도 쉽게 다가갈 수 있었습니다. 어떤 현상이나 문제도 근본 원인을 알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INEB와 인연 맺은 것은 1992년입니다. 보스턴에서 ‘불교와 기독교의 대화’라는 학술대회가 있었어요. 그때 이야기한 주제가 지구환경 파괴, 인류공동체 붕괴, 자아상실이었는데 마침 그 주제 발표를 제가 했습니다. 한국 불교인들 중에 그 주제로 발표할 사람이 없다고 해서 요청이 돌고 돌아 제게까지 와서 국제회의에 참석한 것이 인연이 됐습니다. 그 때 참석한 슐락 시바락사 박사와 아리아트네 박사와도 알게 되었고요.
지금 한국에서는 주로 환경운동, 제3세계 구호활동,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운동, 사람들의 행복을 위한 수행 지도 등을 재미있게 하고 있어요.”
스님의 소개를 듣던 인도네시아에서 온 키시비야 씨는 큰 감명을 받았다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특히 스님이 출가하게 된 계기에 대한 말씀 중에서 스승님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놈이 바쁘기는 왜 바쁘냐?’라고 말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는 대목은 자신이 오래 전부터 고민했던 문제였다며 그 부분이 가장 가슴에 와 닿았다고 합니다. “스님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았나요?” 라고 물었지만 첫 번째 토론 시간이 끝나서 스님은 환한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습니다.
또 토론 참가자 중에 중국에서 오신 한 분은 “불교의 종착지는 마르크수 주의라고 생각한다”고 하면서 불교에 관심을 갖고 있음을 표현했는데, 쉬는 시간이 되자 스님은 중국 분에 대해서 “불교 공부를 좀 더 해야할 것 같다”고 하면서 한 가지 조언을 덧붙여 주었습니다.
“경제나 정치나 권력만 갖고는 이 세상을 바꿀 수 없습니다. 마르크스 주의는 이론적으로는 불교와 비슷한 부분이 있긴 하지만, 사회문제에 대해서 설명할 수는 있어도 사람의 마음에 대해서는 설명할 수 없어요. 인간이라는 것은 사회적 환경도 중요하지만 또한 거기에 사는 개인의 마음이 어떠한지도 중요해요. 예컨대 마르크수 주의는 사회적 환경 문제에 대해서는 충분히 설명을 했지만 개인의 문제, 즉 마음의 문제에 대해서는 이해가 없기 때문에 불완전하다는 거예요. 그런데 불교는 이 마음의 문제를 함께 다루고 있습니다. 한문으로 ‘인연’이 뭔지 알죠? ‘인’이 개인 문제라면 ‘연’은 조건, 즉 사회적인 조건 문제입니다. ‘인’과 ‘연’이 결합해야 ‘과’가 생깁니다. 그래서 인연과보(因緣果報)라고 해요.”
“저도 내적인 문제와 환경적인 문제를 함께 해결해나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론만 갖고는 안 되고 직접 경험해야 해요.”
“아까 스님께서 말씀하신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라는 문제가 사실 모든 사람들에게 굉장히 중요한 문제예요. 자기 자아에 대해서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답을 바깥이 아니라 안에서 찾아야 할 겁니다.”
“아주 좋아요.” (웃음)
스님은 중국 분의 어깨를 토닥여 주며 응원의 마음을 보내 주었습니다.
이어서 두 번째 토론 시간에서는 다시 새로운 그룹 참가자들과 ‘내 삶 속에서의 구조적인 폭력’을 주제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먼저 일본에서 온 참가자는 직장에서 여성이라는 이유로 늘 차별받아야 했던 경험을 들려주었습니다. 그런 후 스님은 차별받은 경험이 없는지 묻자 스님은 “남자이고 스님이고 나이도 비교적 많은 편에 속해서 그 정도로 심한 차별을 받아본 경험이 적다”고 이야기하면서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차별 문제에 대한 스님의 생각을 들려주었습니다.
대화 중에 미국에서 온 여성 분이 스님의 이야기에 적극 공감하면서 여러차례 질문을 해서 문답 형식으로 계속 대화가 이어졌습니다.
“한국에도 많은 차별이 있어요. 일단 구조적 차별과 문화적 차별이 있습니다. 문화적 차별 중에는 첫째, 여성이 차별을 받고 있습니다. 많이 개선됐다고 하지만 아직도 많은 차별이 남아 있습니다. 직장에서의 남녀 차별도 있고요. 또 한국에서는 나이를 갖고 차별하는 것도 많습니다.”
“저는 나이든 사람이 존중받는 게 좋아 보여요. 농담입니다.” (모두 웃음)
“유교문화권에서는 ‘장유유서’라고 해서 나이 많고 적음을 굉장히 따집니다. 이렇게 대화를 하다가 몇 살인지 물어보고 자기보다 나이가 적으면 바로 말을 놔버려요.”
“존중이라는 건 서로 동등해야 할 텐데 그저 나이가 더 많다는 이유만으로 존중받는다니 흥미롭네요. 나이가 많다고 해서 더 나은 사람이라고 할 수도 없고, 더 많이 안다고 할 수도 없고, 단지 오래 살았을 뿐인데요.”
“그래요. 그러나 문화라는 건 그리 쉽게 바뀌지 않아요. 보수적인 사회에서는 변화를 추구하면 예의 없는 사람으로 취급받기 쉽습니다.”
“우리 모두 각자 다른 문화에서 왔지만 언어적 측면에서는 다들 매우 깨어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사용하는 모국어를 바꾸라는 게 아니라, 말을 풀어내는 방식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한국어 같은 경우는 존댓말과 반말이 있는데 이런 위계적인 요소도 예를 들어 세대가 바뀌면 바뀔 수 있겠지요.”
“실제로 지금 한국에서 빠른 속도로 바뀌고 있습니다. 예컨대 남녀차별의 경우,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오히려 남자가 차별받는다는 항의가 나올 만큼 여성들의 평등성이 점점 확산되고 있습니다.”
“남자들의 불만이 어떤 건가요? 차별적이던 것이 조금씩 균형을 찾게 되면서, 남자들은 예전에 자기들이 익숙하고 우위에 있던 것이 바뀌니까 불편하게 느낄 수 있겠어요.”
“그렇죠. 그래서 인터넷의 익명 게시판들에서는 여성에 대한 저항이 굉장히 큽니다.” (모두 웃음)
“한국에서 자살은 어떤가요? 남녀 성비에 따른 차이가 있나요?”
“성비에 따른 차이는 모르겠지만 한국의 자살률이 세상에서 제일 높은 편입니다. 예전에는 일본이 1위였는데 지금은 바뀌었습니다.”
“가장 자살률이 높은 연령층이 어떻게 됩니까?”
“아마도 노인이 가장 많습니다.”
“정말요? 노인이라면 60세 이상 아닙니까? 일본에서도 노인층의 자살이 큰 문제가 되고 있어요. 사회복지체제가 완전히 바뀌어버렸습니다.”
“우선은 경제적으로 어렵고, 배우자가 죽은 뒤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문화가 바뀌어서 자식들이 돌보지 않고, 사회보장제도가 아직 충분하지 않아서라고 생각합니다.”
“경제적으로 불안정하다고 하셨는데...”
“노인 빈곤층이 많지요.”
“갈 곳도 없고 돌봐줄 사람도 없다는 건가요?”
“아직 정부가 제공하는 사회보장이 충분하지 않아요. 그리고 전통적으로는 자식이 나이든 부모를 돌봤는데 지금은 그 전통이 거의 사라졌습니다.”
“노인은 정부 지원이 없고, 가족의 책임이 없고, 노인 자살률이 세계에서 제일 높다는 것은 한국의 급격한 문화적 변화를 보여주는 강렬한 예인 것 같아요. 젊은이는 자기 문제를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지만 노인들의 경우에는 선택지가 없다는 것이 굉장히 어려운 문제인 것 같네요.”
“한국은 경제성장의 정도에 비해 사회보장제도가 못 따라 가는 것이 지금 굉장히 큰 과제입니다. 그리고 노령화가 매우 급격히 진행되고 있어요. 사람들은 언제나, 누구나 나이 들게 마련이에요. 이제 베이비붐 세대가 나이 들어가니까 사회 전체의 노령화가 문제가 되고 있어요. 한국은 또한 출산률이 세계 최저입니다.”
“예, 일본도 마찬가지여서 문제입니다.”
“그래서 인구 구성의 불균형이 심합니다. 20대는 총 사망자 중 자살자가 53퍼센트나 돼요.”
“정말입니까? 못 믿겠어요.” (모두 깜짝 놀람)
“30대와 40대는 자살률이 20대만큼 높지는 않지만, 그래도 자살이 30~40대의 사망원인 1위입니다.”
“이런 문제가 스님이 하시는 일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며, 사람들이 자살을 하는 원인은 무엇인가요?”
“자살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습니다. 첫째, 사회적인 빈부격차가 한 원인이에요.”
“한국 20대의 경우 경쟁사회이기 때문에 자살률이 높지 않나 싶은데요.”
“그것도 한 원인입니다. 공부에 대한 부담은 크고 취직은 거의 안 되니까요. 대학을 나와도 직장을 구하기가 아주 어렵기 때문에 대부분이 부모에게 의지해 생활합니다. 두 번째, 젊은이들이 정신적으로 아주 약합니다. 부모의 과잉보호 때문에 독립적이지 못해요.”
“문화적으로 어떤 사이클이라고 볼 수 있겠어요. 부모의 양육이 그런 결과를 낳는군요.”
“세 번째, 어릴 때 엄마가 정신적으로 힘들어하며 아이들을 키웠기 때문에 아이들이 자라서도 힘들어합니다. 여성의 교육수준이 빠른 속도로 높아졌는데 사회적으로는 아직 남녀 평등이 보장되지 않는 가운데 결혼하니까 부부 갈등이 아주 심합니다. 그리고 여자도 직장에 나가야 하지만 집안일은 여전히 여자가 주로 해야 하니 그 사이의 갈등도 심합니다. 지금도 그런 면이 있지만, 20년 전에는 이런 갈등이 아주 심했습니다. 그래서 그 시기에 그렇게 힘들어하는 엄마 밑에서 어렵게 자란 아이들이 이제 성인이 되어서 그 영향으로 힘들어하는 거예요.”
“굉장히 흥미롭군요. 여성들이 교육수준이 높으면 결혼해서도 배우자와 평등한 것을 모색해서 찾으려고 할 텐데요.”
“지금 젊은이들은 많이 달라졌어요. 남자들이 점점 평등을 받아들이고 있으니까요.”
“남자들이 불편하게 생각하면서도 여자 쪽에서 요구하는 변화들을 받아들이고는 있다는 거네요.”
“지금은 받아들이는 편이지만, 20년 전부터 지금까지의 과거가 문제였지요. 사회가 바뀌면서 문화도 바뀌는데, 전통문화가 바뀌는 속도와 사회가 바뀌는 속도가 안 맞으니까요.
제가 하는 일은 ‘가정에서나 사회에서의 이런 갈등들을 우리가 붓다 담마를 통해서 어떻게 해소할 거냐’에 주로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첫 번째로 중요한 것은 이런 갈등 속에서 우리가 마음을 어떻게 가져서 이 문제를 극복할 것이냐는 겁니다. 이런 갈등을 개인이 어떤 관점으로 바라봐야 하겠느냐가 일단 우선순위예요. 다음이 제도적인 개혁인데, 이건 사회적인 운동이 필요합니다. 이 두 가지 모두를 추구해야 합니다.”
“개인수행은 명상과 같은 방식을 통해 하시는지요?”
“아뇨, 사물을 보는 관점을 바르게 하는 겁니다. 다시 말해 상대를 이해하는 거예요. 부모는 자식에 대해 이해가 없고, 자식은 부모를 이해 못하고, 다들 언제나 자기 생각으로만 재단하잖아요.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개인의 차원에서는 우선 중요합니다. 그 다음으로 우리가 힘을 합쳐서 사회적, 구조적인 변화를 풀어나가야 합니다.”
“개인적인 변화가 사회적인 변화로 이어진다고 이해하면 될까요?”
“아니오, 두 가지 측면에서 동시에 접근해야 한다는 겁니다. 사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를 개인 책임으로 떠넘겨도 안 되고, 모든 게 사회문제라고만 봐서도 안 돼요. 사회적인 구조의 변화도 가져와야 하고, 동시에 개인의 자세도 바뀌어야 합니다.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걸 다 개인 문제라고만 말해도 안 되고 사회 구조적인 문제라고만 말해도 안 됩니다. 원인을 잘 살펴서 제도적인 문제일 때는 제도를 바꾸어야 하고, 개인적인 문제일 때는 개인의 관점을 바꿔야 해요. 그게 불교로 말하자면 ‘인연’의 문제입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우리가 밭에 곡식을 심었을 때 수확량이 얼마가 되는지는 씨앗과도 관계가 있고 밭과도 관계가 있습니다. 씨앗의 문제만 이야기해도 안 되고, 밭의 문제만 이야기해도 안 되고, 두 개를 함께 봐야 해요. 그것이 인연입니다. ‘인’은 씨앗, ‘연’은 밭과 같습니다. ‘인’은 원인이고, ‘연’은 원인이 작용하는 환경입니다. 개인과 사회라는 관점에서도 이렇게 설명할 수 있겠지요.
원인이 사회적인 데 있을 때는 사회적인 변화를 가져와야지 그걸 두고 개인한테 책임을 물으면 안 된다는 겁니다. 예컨대 구조적 폭력의 문제를 개인의 잘못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남녀차별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를 여자 개인의 문제로 봐서는 안 돼요. 노인의 자살 문제를 모두 자살한 노인의 개인 문제라고 보면 안 됩니다. 사회적 조건 때문에 생긴 것이니까요.
‘인연’이 한 단어로 보이지만 한문으로는 ‘인’과 ‘연’이라는 두 개의 단어예요. ‘인’이라는 것은 직접적인 원인을 말하고 ‘연’이라는 것은 그 인이 작용하는 사회적인 환경을 말합니다. 영어 표현인 ‘causality’나 ‘cause and effect’로는 그 뜻을 정확히 표현하기가 어려워요. ‘연’은 ‘condition(조건)’에 가깝습니다. 여기 씨앗, 즉 콩이 한 알 있다고 해요. 그러면 콩 싹이 트는 직접적 원인은 씨앗입니다. 그런데 콩을 천장에 매달아 놓으면 싹이 안 트고, 불에 떨어져도 싹이 안 트고, 사막에 떨어져도 싹이 안 터요. 적당한 온도와 습기가 있어야 싹을 틔웁니다. 그럴 때 이 씨앗을 직접적 원인, 즉 ‘인’이라고 하고 온도와 습도와 햇빛 같은 조건을 ‘연’이라고 해요.”
“스님의 명쾌한 설명이 너무 좋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스님에게 질문을 계속 했던 미국 여성 분은 스님의 명쾌한 설명에 무척 만족해하며 좋아했습니다. 다만 이 내용을 다시 전체 정리 시간에 자신이 요약해서 발표해야 하는데, 스님의 말씀 내용이 너무 깊은 내용이어서 그 부분에 대해서는 자신이 없다며 스님에게 양해를 구했습니다.
세 번째 토론 시간에는 맨 뒤에 앉으신 방글라데시 스님 한 분의 한 쪽 눈이 벌겋게 충혈이 되어 있고 앞이 잘 보지 못보는 듯 한데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자 스님은 토론에 빠지고 이 분에게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눈병의 증상이 지금 어떠한지, 혹시 백내장이 아닌지, 수술은 받았는지 등을 체크한 후 스님이 한국에서 가져온 눈 세정제와 몇 가지 약들이 도움이 될 것 같아 다시 숙소로 가서 약을 가져왔습니다.
스님이 직접 눈에 안약을 넣어주고 눈 주위를 휴지로 닦아주자 방글라데시 스님은 감사한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INEB 관계자는 이 모습을 보고 “혹시 스님이 의사이셨냐고?” 물어보기도 해서 잠시 웃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세 번의 토론 시간을 모두 마치고 다시 전체가 빙 둘러앉아 각 그룹별로 토론한 내용을 한 명씩 대표로 나와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오늘날의 구조적 폭력’이라는 주제로 세계 각국에서 정말 다양한 이야기들이 오고 갔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사회자는 "우리들은 이런 문제로 대화를 하기 위해 전세계에서 비행기를 타고 여기까지 온 이상한 사람들인 것 같다"고 농담을 해서 모두 크게 웃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오후 토론 시간까지 모두 마치고 저녁 식사 시간을 가진 후 저녁 8시부터는 문화행사가 열렸습니다. 참가자들이 세계 각국에서 오다보니 나라마다 고유의 전통문화를 보여주었습니다. 중국에서 온 참가자들은 다도 공연을 음악과 함께 아름답게 보여주었고, 특히 스리랑카의 세바란카재단에서 스리랑카의 전통 춤을 다양하게 보여주어 큰 박수와 환호를 받았습니다.
공연이 한참 진행 되던 중 스님은 중간에 자리를 빠져나와 숙소로 향했습니다.
이렇게 INEB 첫째날 발표와 토론, 친교의 시간을 모두 마쳤습니다. 내일은 “인간과 자연, 모든 생명의 총체적인 발전을 어떻게 가능하게 할 것인가?” 라는 주제로 스님의 기조 발제가 있은 후 여러 패널들과의 토론 시간이 이어질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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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7 (스리랑카 3일째) INEB 기조발제 ‘총체적이고 지속가능한 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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