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6.1.24 (인도 19일째)
오후
델리 한국교민 즉문즉설

 

오전에 인도 사람들을 위한 즉문즉설 강연에 이어서 오후에는 델리에 거주하는 한국 교민들을 위한 즉문즉설 강연이 열렸습니다. 

 


▲ 델리 시내 곳곳에 붙은 한국 교민들을 위한 즉문즉설 강연 포스터

 

인도 사람들과 함께한 즉문즉설 강연이 끝난 후 식당으로 이동해 한국문화원 측에서 준비해 준 비빔밥으로 점심 식사를 했습니다. 

 


 

식사 자리에는 한국문화원 원장님 부부, 총영사님, 주델리한국대사 부인이 함께 자리해 식사 후 잠시 담소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특히 스님이 그동안 인도에 있으면서 겪은 웃지 못할 에피소드들을 이야기하자 모두들 공감을 하면서 크게 웃었습니다. 

 

오후 1시에는 오전과 같은 장소에서 한국 교민들을 대상으로 즉문즉설 강연이 열렸습니다. 100여 명의 교민들이 자리를 가득 메운 가운데 스님이 무대 위에 오르자 큰 박수와 환호가 터져나왔습니다. 어린이 한 명이 무대로 올라와 스님께 꽃다발을 건네자 더 큰 박수가 쏟아졌습니다. 

 

스님은 먼저 점심 식사는 다들 하고 왔는지 물어본 후 한국과 인도의 교류는 2천년 전에 아유다국의 공주가 가야에 불교를 전한 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고 하면서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인도의 잠재적인 성장 가능성에 대한 스님의 생각을 먼저 들려주었습니다. 

 

“인도는 면적이 330만 제곱킬로미터로 남한의 33배 이상이고, 인구는 12억 5천만 명으로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습니다. GDP도 세계 7위예요. 명목상 순위가 그렇고 구매력 기준으로는 중국과 미국에 이어 세계 3위입니다. 이처럼 잠재적인 강대국인 인도는 앞으로 발전 가능성도 매우 큽니다. 

 

중국은 국가의 강제적인 힘에 의한 계획경제를 통해 빠르게 성장한 반면, 인도는 굉장히 민주적인 과정을 거쳐서 경제성장을 했기 때문에 초기에 발전 속도가 굉장히 늦었어요. 중국은 앞으로 민주화라는 혼란의 과정을 겪어야 한다는 과제가 남았지만 인도는 그런 것을 어느 정도 극복한 상태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이후 지속적 성장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이런 곳에 일찍 와서 터를 잘 잡으셨어요. (모두 웃음) 

 


 

벌써 땅값이 많이 올라서 이제는 자리를 잡기에 좀 늦었어요. 제가 20년 전에 왔을 때는 한국사람이 땅을 사기가 쉬웠지만 지금은 한국사람이 사기는 벌써 힘들어졌어요. 도시는 땅값이 서울과 거의 비슷해졌습니다. 여러분들은 다 일찍 와서 돈 많이 벌어놓으셨죠? (모두 웃음) 

 


 

중국이 20년 전에는 개발했다 해도 형편없었지만 지금 완전히 변했듯, 앞으로 20년 지나면 인도도 굉장한 변화를 가져올 거예요. 비하르주 같은 시골에 가면 아직도 옛날 모습 그대로지만 델리는 벌써 많이 변했던데요. 제일 눈에 띄는 게 두 가지 같아요. 첫째, 도로를 포장하고 확장하는 곳이 많이 보였어요. 공사 때문에 차 다니기가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둘째, 새로운 집이며 건물을 많이 짓는 것 같아요. 제가 인도를 다닌지 20년이 넘었는데 처음 10년은 아무런 변화도 없는 것 같더니 최근 10년은 눈에 띄게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 보입니다.

 

개발이라는 게 꼭 다 좋지만은 않아요. 제가 20년 전에 중국 갔을 때는 조선족들이 착하고 성실했는데 요즘의 조선족들은 돈을 밝힌다고들 하잖아요. 공산주의의 순수함은 노인들에게나 남아 있고, 젊은 사람들은 한국사람들보다 더 영악하게 바뀌었어요. 인도도 좋게 말하면 개발이 되고 질서가 잡혔다고 볼 수 있고, 나쁘게 말하면 인도사람이 영악해졌다고 할 수 있어요. 제가 보기에 인도사람들은 다른 가난한 나라 사람들에 비해 순수함이 좀 적은 편인데, 여기서 더 영악해지면 상대하기 좀 어려울 거예요. 

 

제가 생활해보니 인도는 모든 걸 한국식으로 생각하고 살려면 정말 많이 부딪치고 피곤한 곳입니다. 그런데 그 생각만 놓아버리면 세상에 이보다 살기 좋은 곳이 없어요. 간섭하는 사람도 없고요. 중국은 살아보면 경찰국가예요. 온갖 것에 제재와 간섭이 심합니다. 낯선 동네에 가거나 남의 집을 방문하기만 해도 금방 신고가 들어가서 공안이 찾아와요. 인도는 나무 밑에 자든, 남의 집 처마 밑에 자든, 지나가면서 몸을 부딪치든, 밀치든, 밤새도록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든, 아무 데나 자리 펴고 밥을 먹든 도통 신경을 안 쓰니까 마음대로 살아도 되잖아요. 화장실도 사방에 너무 많아서 곤란할 정도고요. (모두 웃음) 

 


 

어떻게 생각하면 불편하지만 어떻게 생각하면 참 편한 나라예요. 그래서 저는 인도에 가능성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벵갈로르 가 보셨어요? 저는 못 가봤는데, 벵갈로르는 IT산업도 급속히 발전하고 시 전체도 많이 발전해서 아주 좋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인도 사는 사람들에게 제가 지금 인도 이야기를 하고 있네요. (모두 웃음) 

 

 

여러분들이 인도에 살면서 겪는 문제, 수행이나 불교에 대해서 의문 나는 점, 인생에 대한 고민 등 주제에 제한 없이 아무 이야기나 자유롭게 하는 시간이 즉문즉설입니다. 그럼 시작해 보죠.”

 

스님의 이야기에 인도에서 오래 사신 분들은 박수를 치며 공감을 표했습니다. 어떤 분은 “인도에 살고 있는 우리들보다 가끔씩 오는 스님이 인도에 대해 더 잘 아는 것 같다”며 놀라워 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스님이 강연의 시작을 알리자 여기저기서 손을 들고 질문을 했습니다. 많은 질문들 중에서 인도에 살고 있는 교민들이 많이 공감했던 질문과 답변을 소개합니다. 델리에 있는 교민들은 주재원으로 나온 경우가 많은데, 한국으로 돌아갈 경우 어떻게 적응할 수 있을지에 대해 걱정되는 마음에 대해 묻자 많은 교민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의 마음을 내비쳤습니다. 

 


 

“저는 델리 인근에서 한국 기업 주재원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지금 5년 정도 인도에서 근무하고 있는데 나이가 많진 않지만 앞으로 어떻게 가정을 꾸려나갈지, 그리고 한국으로 복귀하면 어떻게 적응을 하고 살지 고민입니다. 지금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는 있지만 제가 여기서 평생을 살 것 같진 않아요. 그래서 복귀를 한다고 해도 한국에서 또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한 두려움이 좀 있습니다. 지금 한국에 계신 분들도 많이 어렵다고들 하시고요. 아마 30~40대 분들, 직장생활 하시는 분들, 자영업 하시는 분들 모두 비슷한 고민을 하고 계실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인도에 계속 사는 것도 좋은 방안일 수 있겠지만... 앞으로 인생을 설계하는데 있어서 조언 부탁드립니다.”

 

“너무 막연한 질문이에요. 질문자는 한국에 언제 갈 거예요?”

 

“회사에서 들어오라 하면 들어가야죠.” (청중 웃음)

 


 

“그래도 질문자가 생각하기에 언제쯤이 될 것 같아요?”

 

“제 생각으로는 최소 2~3년은 더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 2~3년 뒤까지 질문자가 안 죽고 산다는 보장이 있어요?”

 

“아직 젊어서 살 것 같습니다.” (청중 웃음)

 

“확실히 그러리라는 보장이 있어요?”

 

“없습니다.”

 

“그래요. 여기서 ‘평생 안 살 것 같다’고 말해도 여기서 지금 당장 죽으면 평생 사는 게 되어 버려요.”

 

“예, 맞습니다.”

 

"그러니 ‘여기서 평생 안 산다’ 이런 말을 할 필요가 없어요. 여기서 살 땐 여기서 행복하게 살고, 한국 갈 땐 한국에서 행복하게 살면 되잖아요. 인도에서도 행복하게 살았는데 한국 가서 행복하게 못 살 이유가 뭐 있어요?" (청중 웃음)

 

“예, 지금 인도에서 사는 건 무척 만족하고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을 떠나온 지 시간이 좀 흐르다 보니까 과연 복귀하면 적응을 잘 할 수 있을지 걱정됩니다. 특히 한국은 인도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변화가 있다 보니 직장인으로서 적응을 잘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변화는 한국보다 인도가 더 많지요. 다만 한국과 인도 생활의 차이는 이거예요. 질문자는 인도에 왔지만 회사에서 주는 한국식 월급을 받으니까 여기 일반 주민보다는 월급이 많은 편이잖아요. 회사에서 준 집도 여기 동네 사람들의 평균에 비해서는 크고 좋아요. 여기서는 내가 사는 위치가 상위 10퍼센트 안에 들어간다면, 한국에 돌아가면 20퍼센트나 30퍼센트 안에 들어가게 된다는 게 차이에요. 서울의 중학교에서 공부를 중간 정도 하는 아이가 시골 중학교에 가면 1등할 수 있지만 시골 중학교에서 1등 하던 아이가 서울의 이름난 학교에 오면 중간밖에 못하는 것과 같아요. 시골에서는 놀아도 늘 1등 했는데 여기서는 죽어라 해도 중간밖에 못한다면 충격이 크죠. 지금껏 자기가 잘 하는 줄 알았는데 여기서는 그리 잘 못하니까 힘들어요. 

 

마찬가지로, 여기서는 언어가 힘들고 문화가 힘들긴 해도 정신적으로는 내가 약간 상위그룹에 속한단 말이에요. 사람을 부리고 살고, 상사가 있긴 하지만 거의 왕 노릇 하고 살아요. 그런데 한국에 들어가면 회사에서도 위로 층층이 높은 사람들이 포진하고, 집도 여기서만큼 상류에 속하지는 않아요. 평수로 따져도 중간 정도 될 거예요. (청중 웃음) 그런 차이 때문에 결핍감을 느껴서 사는 게 좀 빡빡해지지요.

 


 

그러나 질문자가 한국에 가서 밥만 먹고 살면 된다고 생각하면 가도 아무 걱정이 없어요. 한국은 사회보장제도가 기본은 갖추어져 있기 때문에 오히려 인도보다 더 걱정이 없죠. 다만 그 상대적인 개념의 차이가 힘든 것뿐이에요. 또 누구나 다 한국에 살다가 인도에 오면 인도에 적응하기 힘들 듯, 인도에 5년이나 10년씩 살다가 한국에 들어가면 다시 적응하는 데 당연히 시간이 좀 걸려요. 그건 어쩔 수 없습니다. 학교 졸업하고 10년 가까이 공부 안 하다가 나이 먹어서 대학이나 대학원 가서 다시 공부하려면 힘들죠. 그건 두려워할 일은 아니에요. 장소를 옮기든, 직장을 옮기든, 공부를 다시 하든, 어떤 것이 바뀌면 적응하는 데 시간이 좀 걸릴 수밖에 없어요.

 

그러니 첫째는 옮겨가는 데 따르는 적응 시간이 좀 걸린다는 게 하나 있고, 두 번째는 여기서 가졌던 만큼의 지위를 가지지 못하니까 그게 조금 힘들다는 게 있어요. 제3세계에 나오면 위험하고 어려운 점이 없진 않지만 대신 약간 속된 말로 하면 왕 노릇을 좀 할 수 있는데, 도로 들어가면 못하니까요. 그래서 마닐라를 ‘마나님들의 천국’이라고 불러요. (청중 웃음) 마닐라에 주재원들이 오면 그 지역에서 아주 왕 노릇을 하거든요. 보통 가정부 두 명에 운전수 두 명씩 두고 큰 집에 살다가 한국에 들어가면 다 자기 손으로 해야 하잖아요. 문화가 다르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라고 생각하세요. 인도 오면 인도에 맞춰서 살고 한국 가면 한국에 맞춰서 살면 되지, 두려워한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에요.”

 

“잘 알겠습니다.” (청중 웃음)

 


 

“내일이라도 발령 나면 들어와서 살면 돼요. 처음에 한국에서 외국으로 발령 내면 싫어하지만 와서 살아보면 여기에도 괜찮은 점이 있어요. 마찬가지로 여기서 살다가 또 한국 오라 그러면 어찌 적응할지 걱정하는데 들어가서 있어보면 또 괜찮아요. 회사에 20년, 30년씩 다니다가 나가라고 하면 어떻게 살지 막막한 건 맞아요. 그렇다고 그게 욕한다고 해결될 일은 아니잖아요. ‘그래도 20년간 밥 먹고 살았으니 감사합니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와서 새로운 환경과 새로운 일에 적응해야죠. 

 

제가 상담을 해보면 경찰서장이며 세무서장 했던 사람들이 은퇴 후 제일 힘들어합니다. 자기가 서장 할 때는 부하들이 전부 와서 굽신거렸는데 은퇴하고 나니 자식 결혼식장에 옛날 부하들이 코빼기도 하나 안 내밀더라는 거예요. 그래서 정말 배신감을 느낀다기에 제가 이렇게 이야기했어요. 

 

‘그 사람들이 당신한테 고개를 숙인 게 당신의 인격입니까, 당신의 직위입니까? 직위라면 당신은 이제 직위가 없기 때문에 더 이상 고개를 숙일 이유가 없는 게 당연합니다. 그래서 옛말에 정승집 개가 죽으면 문상객이 많지만 정승이 죽으면 문상객이 없다고 했어요. 당신이 경찰서장이든 세무서장이든 직장에서만 그 직위의 역할을 하고 퇴근 후 술을 한잔 하거나 밥을 먹으러 갈 때는 그냥 친구가 되어줬다면 상대는 당신이 직위가 없어졌어도 친구니까 왔을 겁니다. 이건 당신이 직장에 다닐 때 자기 직위의 권위만을 갖고 사람을 대했지, 사람과 사람으로 대하지 않았던 과보입니다. 현 상황은 당신이 만든 것이지, 그 사람들이 배신한 게 아닙니다.’

 

여기 살면서 여기에 익숙했던 것을 움켜쥐고 한국에 가면 사는 게 힘들듯이 한국에 살던 버릇을 여기 와서 움켜쥐고 있으면 또한 힘들어요. ‘로마 가면 로마 법을 따르라’라는 말처럼 여기서는 여기 사정에 맞추어 적응하고, 한국에 돌아가면 또 한국 사회 안에 맞춰서 사는 수밖에 없습니다. 또 내가 사장 할 때는 사장을 했더라도 그만뒀으면 그냥 한 사람으로 돌아가 줘야 해요. 

 


 

그걸 못 버리면 ‘내가 옛날에는 그래도 한 자리 했는데’, ‘떵떵거리고 잘 살았는데’ 이런 생각에만 빠지면 노후에 살기가 굉장히 어려워져요. 서울역 앞에 노숙자가 300명쯤 되는데 노숙자 중 농민이 한 사람도 없어요.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일용직 노동자도 한 명도 없어요. 거기 있는 사람들은 첫째, 거의 다 남자입니다. 어쩌다 여자가 한두 명 있긴 해도 거의 남자에요. 둘째, 직장에서 중간 이상의 지위를 가졌거나 작은 식당이라도 하나 열어서 자기가 사장 노릇을 했던 사람들이에요. 노숙자들이 대부분 과거 경력이 화려합니다. 사정이야 어쨌든 직장을 그만두거나 가게가 망했는데 집에는 회사 간다고 하고 나와서 빙빙 돌기만 하는 거예요. 그러다가 정신적인 어려움을 못 이겨서 술도 마시고, 결국은 알콜 중독에 빠져 노숙자가 됩니다. 대부분 정신적으로 힘든 사람들이에요. 지금이라도 가서 막노동하면 될 텐데 옛날 생각에 사로잡혀 있어서 그렇게 못하고 소위 ‘폐인’이 되어가는 거예요. 

 


 

그래서 부처님 가르침은 항상 지금 깨어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지금 내가 살아 있다는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면 늘 웃고 살 수 있습니다. ‘과거에 내가 어땠다’ 이게 늘 우리를 괴롭힙니다. ‘나는 어릴 때 가난했다’, ‘어릴 때 성추행 당했다’, ‘어릴 때 학대 받았다’, 늘 이런 과거 생각 때문에 힘들어요. 또 반대로 ‘내가 어릴 때 공부 잘 했다’, ‘어릴 때 예뻤다’, ‘젊을 때 잘 나갔다’ 이런 생각 때문에 인생살이가 피곤해집니다. 그런 생각을 버리고, 현재 주어지는 직위는 주어지는 대로 활용하되 직위가 내가 아니라는 사실을 늘 명심해야 해요. 언제든지 한 자연인으로 돌아가는 자세를 잊지 않아야 사는 게 피곤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어딜 가서 어떤 직책을 가지고 어떤 상황에 처해도 편안하게 살 수 있어요. 결혼했어요?”

 

“예, 했습니다.”

 

“결혼까지 했겠다, 아이도 있겠다, 저보다 젊겠다, 그런데 왜 질문자가 걱정을 해요? (청중 웃음) 이 나이에 장가도 못 가고 아이도 없는 저도 지금 웃으면서 사는데 질문자가 못 웃을 이유가 없잖아요.”

 

“죄송합니다.” (모두 큰 웃음) 

 


 

스님의 답변을 듣고 나니 질문자는 고민이 사라져버린 듯 오히려 스님에게 죄송하다며 크게 웃었습니다. 이 모습을 보고 청중들도 함께 웃으며 격려의 박수를 보냈습니다. 

 

무엇보다 지금 살아있는 것에 감사할 줄 알면 늘 웃고 살 수 있다는 말씀이 가슴에 많이 남았습니다. 우리는 늘 과거 생각, 미래 생각으로 괴로워하는데 살아 숨쉬고 있는 지금 현재에 깨어있으면 근심 걱정이 사라진다는 말씀에 질문자도 마음이 편안해진 것 같습니다. 

 

모든 질문에 대해 답변을 마치고 나니 2시간 30분이 훌쩍 지나가 있었습니다. 질문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더 많이 있었지만, 스님은 지금 곧바로 공항으로 가야 스리랑카로 가는 비행기를 탈 수 있다며 아쉬움을 달래며 마지막으로 격려 말씀을 덧붙여 주었습니다. 

 

“여러분들이 인생을 살면서 ’나중에 행복하게 살겠다’ 이런 생각을 하지 마세요. 지금 행복해야 합니다. 옛날에 내가 어떻게 태어났든 어떻게 자랐든 따질 필요 없어요. 지금 안 죽은 것만 해도 성공이에요. 죽은 사람이 이렇게나 많은데 안 죽고 산 것만 해도 대성공이에요. 

 


 

살아 있는 사람은 누구나 다 행복할 권리가 있습니다. 행복해지려면 사물을 긍정적으로 봐야 해요. 이미 일어난 일을 갖고 자꾸 ‘안 그랬으면 좋겠다’ 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어요. 이미 일어난 건 넘겨버리고 매사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얼굴에 미소가 돌고 마음이 훨씬 가볍습니다. 

 

인도에 살면서 인도 욕하고 살지 마세요. 그런 사람은 바로 한국 가는 게 나아요. 인도에 살면 조금 불편한 것도 있고 먼지도 많지만 그래도 이곳의 좋은 점을 생각하고 기쁘게 살아야 해요. 부부도 그래요. 이왕 이 남자와, 이 여자와 살려면 기분 좋게 사세요. 욕하면서도 같이 살려면 피곤하잖아요. ‘이 사람 아니면 누가 나랑 살아주겠어’ 이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하세요. 

 


 

종업원들에 대해서도 ‘나 같으면 그 돈 받고 일 안 할 텐데 일해주니 참 고맙다’ 이렇게 생각하세요. 일 잘 하고 못 하고를 너무 따지지 말고요. 이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살면 좋은데 자꾸 자기 생각대로 따지니까 인도 사는 게 지옥이고 스트레스잖아요. 그러니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살면서 이 좋은 부처님의 나라에서 행복을 얻고 가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비행기 시간이 다 되었지만 조금이라도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안내해 주려고 온 힘을 기울이는 스님의 모습에 교민들은 뜨거운 박수갈채를 보내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스님의 이야기에 교민들도 큰 힘을 얻은 듯 곳곳에서 환호성도 터져나왔습니다. 

 


 

이렇게 강연을 모두 마치고 다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매년 인도 성지순례를 올 때마다 델리 교민들을 잊지 않고 법문을 꼭 설해주고 가시는 스님께 모두들 너무나 고마워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이어서 스님은 곧바로 한국문화원을 출발하여 델리 국제공항으로 향했습니다. 강연을 예정보다 늦게 마친 것도 있고, 인도 공항은 늘 검색대 통과에 시간이 많이 걸리는 편이어서, 여러 우여곡절 끝에 보딩을 끝마칠 시간인 6시에 겨우 맞춰서 비행기에 탑승했습니다. 

 


 

하마터면 비행기를 놓칠 수도 있었는데 스님은 비행기 탑승을 무사히 마치고 나서 방금 전 법문 때 했던 말씀을 인용하는 듯 “여러 우여곡절 끝에 결국은 비행기를 탔다는 사실이 중요하다”고 해서 함께 동행한 수행팀도 모두 웃었습니다. 

 

저녁 6시 30분에 델리를 출발한 비행기는 3시간 30분을 비행하여 10시에 스리랑카 콜롬보 국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공항에서 걸어나오니 정토회 국제부 최정연 팀장과 통역 봉사자 이진아님이 반갑게 스님 일행을 맞이해 주었습니다. 

 


 

인도는 날씨가 무척 추워서 아침 저녁으로 파카를 입어야 할 정도였는데, 스리랑카는 열대 지방이어서 밤에도 30도를 웃도는 무더위에 땀을 계속 흘려야 할 정도였습니다. 스님 일행은 공항 근처 숙소로 이동해 짐을 풀고 먼 길을 달려온 여독을 풀었습니다. 

 


 

 

내일은 작년에 INEB 정토회 방문단에 참여해 스님과 인연이 되었던 적이 있는 스리랑카의 앗사지 스님을 만나 스님이 운영하는 절의 탑 준공식에 참석하고, 오후에는 INEB(국제 참여불교 네트워크)의 주관으로 열리는 국제 불교 지도자 컨퍼런스에 참석하기 위해 대회장으로 이동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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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댓글 39

0/200

김명주

활력소가되는 스님의 말씀 감사드립니다
지금 여기에~~깨어있는삶~
공감합니다

2016-01-29 11:35:31

규원

정말 스님덕분에 모든것에 감사함을 알게 되었습니다.감사합니다.

2016-01-27 21:57:51

월광

고맙습니다. 지금 살아 있음에 행복합니다.

2016-01-27 15:4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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