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6.1.22 (인도 17일째) 아그라, 성지순례 정리 강연


 

안녕하세요? 인도에서 맞이하는 17일째 아침입니다. 오늘 스님은 정토회 성지순례단 C팀을 이끌고 아그라에 도착했습니다. 

 

송수신기에서 들려오는 유수 스님의 새벽예불 소리에 맞춰 각자 숙소에서 기도를 마친 성지순례단은 6시에 버스에 탑승하여 상카시아를 출발했습니다. 원래 6시 30분에 출발 예정이었으나 대중들이 6시에 모두 탑승을 완료하는 바람에 30분 일찍 출발을 할 수 있었습니다. 

 

새벽 5시부터 짐을 다 챙겨서 버스 앞에 가져다 놓은 사람이 있다고 하자 스님은 “좋아요. 한국에 돌아가시면 기도도 매일 아침 5시에 일어나셔서 꼭 챙겨 하세요” 라며 웃었습니다. 내일 모레 고국으로 돌아갈 생각에 잠을 설친 사람들이 많았나 봅니다. 

 

상카시아에서 아그라로 가는 길은 안개가 자욱해서 버스도 가다서다를 반복했습니다. 인도의 겨울 날씨는 이렇게 항상 안개가 짙어서 특히 기차의 경우 6시간 이상 연착되는 것은 기본입니다. 

 


▲ 안개가 자욱한 도로

 

11시가 다 되어서 아그라의 외곽에 다달았을 무렵 스님은 이제 30분만 더 가면 아그라 성에 도착한다고 알려주면서 아그라, 아그라 성, 타지마할, 인도의 역사 전반에 대해 개괄적인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아그라는 인구가 100만명 정도 되고요. 인도의 근대 왕조였던 무굴제국의 수도였습니다. 그래서 무굴제국의 왕궁이었던 아그라 성이 유명하고요. 또 여러분들이 잘 아는 타지마할이 가장 유명합니다. 그리고 무굴제국을 완성시킨 사람이 악바르대제인데요. 악바르대제의 무덤도 여기에 있습니다. 여기서 40~50km 나가면 악바르대제 때 새로운 왕궁을 건설했지만 30년 정도 밖에 사용하지 못했던 시켄드라바드 유적지도 있습니다. 

 


▲ 아그라성

 

오늘 우리가 가는 아그라성은 악바르대제 때 지은 겁니다. 야무나강의 서쪽 면에 지어져서 동쪽 면은 야무나강을 해자로 하고, 성벽을 높이 쌓아서 그 안에 궁궐을 지었습니다. 1565년에 짓기 시작해서 1573년에 완공을 했다고 하니까 8년 내지 9년 걸렸다고 볼 수 있습니다. 중국 역사와 비교하면 시기는 한 100년 앞서지만 악바르대제는 청나라의 강희제와 비슷합니다. 

 

악바르대제의 뒤를 이은 사람이 ‘자한 기르’이고요. 자한 기르 때 영토가 더 넓어졌고, 자한 기르 다음에 왕위에 오른 사람이 타지마할을 만든 ‘사자한’입니다. 사자한은 왕위에 오르고 나서 영토를 더욱 더 넓히고 선정도 많이 베풀었다고 해요. 그런데 부인을 워낙 사랑해서 그 부인을 위해서 무덤을 만든 것이 타지마할입니다.”

 

야무나 강을 건너자 곧바로 높게 솟은 붉은 성벽으로 이루어진 아그라성이 그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아그라성 앞 주차장에 버스를 정차시키고 모두 내려서 점심 식사 시간을 가졌습니다. 어제밤 숙소에서 미리 해 둔 전기밥통의 밥과 반찬으로 맛있게 식사를 한 후 아그라성을 구경하러 들어갔습니다. 

 


▲ 아그라성 앞에서 점심 식사

 

대중들이 아그라성을 관람하는 사이 스님은 먼저 숙소로 돌아와 저녁 프로그램 준비 상황을 점검한 후 원고 교정 등 업무를 보았습니다. 

 

대중들은 오후 3시에 숙소로 들어와 조별로 성지순례 소감문 작성과 소감나누기 시간을 가졌습니다. 15일 동안 보고 듣고 느낀 점을 직접 글로 쓰며 다시 정리해보니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오후 5시에는 강당에 모여 조별로 한 명씩 소감문을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총 12명을 각 조를 대표해서 발표를 했는데, 각기 느낀 점이 정말 다양했습니다. 

 

 소감문 발표 

 

스님은 대중들의 발표를 유심히 경청하며 틈틈이 메모를 했습니다. 발표가 모두 끝나자 한 사람 한 사람 마다 인상 깊었던 부분을 언급해 주면서 모두가 다시 한번 명심했으면 하는 부분은 자세히 설명을 보태주었습니다. 

 


 

특히 길거리에서 극빈자들의 모습을 보고 많은 것을 느꼈다고 한 것과 관련해서 부처님의 ‘사문유관’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더 유심히 살펴볼 것을 강조했습니다. 

 

“인도의 빈곤 실태를 보면서 빈곤문제 해결을 위한 활동에 여러분들도 동참하겠다는 마음을 냈다는 이야기를 잘 들었습니다. 이번 여정에 캘커타가 안 들어갔는데 제가 인도에 처음 왔을 때는 캘커타로 들어왔어요. 캘커타는 세계적으로 알려진 빈곤 도시 중 한 곳이어서 인도 중에서도 구걸하는 사람이 특히 많은 편이에요. 그 때는 방 하나에 200루피 하는 게스트하우스에 주로 묵었는데, 한번은 인도 전통 무용 공연을 보러 캘커타 시내에 있는 5성급 호텔에 갔었어요. 그런데 안에 들어가니 궁전이 따로 없었습니다. 그릇도 전부 금빛이고, 건물 안은 죄다 대리석으로 장식되어 있고, 수영장도 있고, 야자수도 무성했어요. 

 


 

그런데 호텔을 들어갔다가 나오면 바로 호텔 입구에서부터 장애가 있는 걸인들이 엎드려 있거나 동전통을 끌고 기어다닙니다. 저는 거기서 사문유관을 봤어요. 부처님이 왕궁에 있다가 왕궁 밖에 나갔을 때 대면했을 정황이 너무나 절실히 다가왔습니다.

 

한 소년이 이런 정황에 부딪혔을 때 인간의 생각은 결국 두 가지로 흘러가요. 하나는 ‘내가 저런 꼴이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는 겁니다. 이게 지금 우리들이 따르는 세속의 길이에요. 결국은 경쟁에서 이기는 거예요. 

 

또 다른 하나는 ‘함께 행복해지는 길이 뭘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고타마가 처음에 궁 밖으로 나가서 농경제에 참여했다가 농부들의 비참한 모습을 보고 ‘저들의 불행 위에 나의 행복이 있구나’ 하고 자각했지만, 함께 행복해질 수 있는 해결 방법을 부모님이나 스승님들에게 물어도 아무도 답을 못해 주었기 때문에 그게 고뇌가 되었어요. 그것이 더 구체적으로 다가온 게 사문유관이 아니었나 해요. 

 


 

경전을 읽어보면 고타마가 마주친 늙은 사람, 병든 사람, 죽은 사람의 묘사가 아주 구체적입니다. 늙었는데 보호받지 못하고 길거리에 버려져 있는 사람, 즉 가족과 일가 친척이 모두 떠나 아무도 돌봐주지 않는 모습, 턱은 숨에 차고 가래가 끓고 눈이 안 보이고 다리가 떨리는 모습을 자세히 묘사하고 있어요. 당시에는 노예가 늙어서 쓸모가 없으면 갖다 버렸잖아요. 병든 사람도 마찬가지예요. 길거리에 버려진 행려자의 모습을 아주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죽은 자도 그냥 죽은 게 아니라 죽은 시신이 길거리에 버려져 있는 모습이에요. 

 

그 당시 인도 사회에서는 90%가 노예였어요. 민주정치를 꽃피웠다는 고대 그리스에서도 시민은 10~20%이고 나머지는 모두 노예였으니까요. 지금도 인도에서 상위 카스트라고 하는 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샤가 전 인구의 15%에 불과합니다. 시간이 흐르면 상위계급이 자꾸 늘어나게 마련인데, 늘어난 게 15%라고 하니 그 당시에는 10%도 안 되었다고 볼 수 있어요.

 

이런 것을 인도에 와서 직접 보고 느꼈기 때문에 저는 부처님에 대한 이해를 좀 더 깊이 할 수 있었어요. 우리는 책에서 ‘사람은 나고 늙고 병들어 죽는다’ 이런 식으로 좀 관념적이고 추상적으로 배워요. 그런데 호텔 앞에서 제 나름의 사문유관을 경험하면서 사춘기의 소년이었던 부처님이 어떤 사유를 했는지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거기에 대해서 고뇌하다가 결국은 모순을 회피하는 게 아니라 극복하는 쪽으로 새로운 길을 찾아 가셨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오늘날 여러분이 한국이나 미국, 독일, 일본에 살다가 여기 들어오면 그게 바로 사문유관인 거에요. 여러분들이 사는 나라가 궁궐이고, 여기 도착하면 성 밖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한국에 있다가 여기 오면 부처님이 성문 밖을 나갔을 때 받았던 혼란과 충격을 직접 경험해보게 되죠. 그러니 나중에 집에 돌아가면 사문유관을 다시 읽어보셔야 해요. 그냥 ‘동문으로 나가서 늙은 사람을 보았다’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그 늙음이 어떻게 묘사되어 있고 병든 모습이 어떻게 묘사되어 있는지 잘 살펴보세요.

 

이처럼 사문유관을 확실하게 체험해야 붓다의 출가를 이해하게 됩니다. 출가가 확실히 이해돼야 불법을 이해한다고 볼 수 있어요. 왕위를 버리는 출가 없이 우리가 불법을 이해하기는 어렵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위제희부인이에요. 위제희부인도 부처님 법문을 듣고 엄청나게 좋아하며 부처님께 공양도 올리던 독실한 불교 신자였어요. 그런데 그 때의 불교는 불교가 아니었어요. 위제희 부인은 남편이 왕이고 아들도 왕이 될 사람이니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여자였어요. 그런데 어쩌다 보니 남편과 아들이 왕위를 두고 싸우는 일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둘이 싸우면 하나는 이기고 하나는 질 수밖에 없잖아요. 남편이 이기면 아들이 죽고, 아들이 이기면 남편이 죽어요. 이 세상 어떤 여자도 그런 고통을 겪는 여자는 없어요. 그러니까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여자가 이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여자가 된 거예요. 그런데 여러분들은 제일 행복하지도 않지만 제일 불행하지도 않아요. 그래서 어중간한 게 원래 좋아요. (모두 웃음) 

 


 

위제희부인이 이 모순을 알기 전에 알았던 불법은 불법이 아닌 거예요. ‘아, 부처님 말씀 참 논리적이다, 합당하다, 부처님 인격이 훌륭하시다’ 하고 자기 행복에 겨워서 그저 좋아한 것에 불과합니다. 그러다가 자기가 그 모순에 딱 처하자 위제희부인은 ‘나는 이 세상이 싫습니다. 이런 괴로움이 더 이상 없는 세상을 원합니다’라고 했어요. 그 내용이 기록된 경전이 ‘관무량수경’입니다. 

 

젊을 때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합니다. 부처님도 6년 고행을 하셨어요. 이렇게 일부러 고생도 하는데, 우리가 일부러 고생할 필요도 없이 그냥 주어지는 고생이야 피할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 앞에 주어진 인생, 주어진 고행을 굳이 피할 필요가 없어요. 부처님은 왕위를 버리고 일부러 그 길을 가셨는데, 우리는 왕위가 주어지지도 않았으니 버릴 것도 없잖아요. 얼마나 쉬워요? (대중 웃음) 

 


 

인생의 고뇌를 알려면 결혼도 해보고, 이혼도 해보고, 아이가 말을 안 들어서 고생도 해봐야 하는데 저절로 아이가 말을 안 들어주잖아요. (모두 웃음) 인생을 경험하려면 일부러도 고생을 해 볼만한데 공짜로 주어지는 것을 굳이 피할 필요가 없고, 그걸 갖고 ‘죽는다, 산다’ 야단할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이것이 재앙이 곧 복임을 아는 거예요. 한편으로 보면 재앙이고 불행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보면 사실은 복이고 행복이에요. 거기서 어떤 교훈을 얻느냐에 따라서 재앙이 되기도 하고, 복이 되기도 합니다. 

 

‘일체유심조’라는 말을 외우기는 쉽지만 그걸 경험하기는 쉽지 않아요. 우리가 불경과 교리를 공부해도 해탈이 안 되는 이유는 신해행증(信解行證) 중에서 해, 즉 이해할 뿐이지 그것을 경험해서 증득하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리에게 주어지는 인생 경험의 기회를 굳이 회피할 필요는 없어요. 지은 인연의 과보를 안 받으려고 회피하면 그게 내내 따라다녀요. 부처님께서 ‘지은 인연의 과보는 피할 수가 없다, 깊은 산속 깊은 바다속에 숨는다 하더라도’라고 하셨잖아요. 저는 그걸 보면 요즘 새로 개발한 미사일이 생각나요. 열추적기 달린 신형 미사일은 아무리 피해도 끝까지 따라다니잖아요. (대중 웃음)

 


 

그러니까 우리가 이걸 터득해야 합니다. 부처님 당시에는 락이 고임을 터득해야 했는데, 우리는 불행이 곧 행복임을 터득해버리면 인생이 자유로워지겠죠. 붓다의 가피가 우리가 말하는 복으로 안 오고 재앙으로 오는 줄 알아야 해요.

 

성경에도 이와 비슷한 말씀이 있어서, 하나님의 음성은 고뇌를 통해서 들린다고 합니다. 평소에는 아무리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싶어도 잘 안 들리지만 우리가 굉장한 고통에 처했을 때 비로소 하나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구하는 하나님의 은총이며 부처님의 복은 그런 게 아니잖아요. 지금 우리가 구하는 것은 윤회의 세계 안에 있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런 데서 여러분들이 성지순례를 하면서 사문유관을 조금이나마 느끼셨길 바랍니다. 사문유관을 느끼게 되면 삶이 조금 달라져요. 여기서 마냥 힘들어하고 ‘지저분해서 다시는 인도 쳐다보기도 싫다’ 이런 게 아니었다면, 앞으로 여러분들의 삶에 여러분들도 모르게 변화가 일어납니다. 돌아가서 또 잊어버리고 지내더라도 한번 경험한 건 늘 쌓여 있어서 여러분들의 삶에 크든 작든 변화를 가져와요. 

 


 

구걸하는 아이들에게 우리가 어떻게 대응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돈을 줬든, 주지 않았든, 귀찮아했든, 그건 다 내 까르마의 반응이거든요. 그걸 감싸줬다고 해서 잘 했고, 그걸 내쳐서 잘못한 건 아니에요. 저도 제일 처음에 왔을 때는 외면하고 내쳤습니다. 문제는 그것을 통해서 자기를 보는 게 중요합니다.”

 

부처님이 경험한 사문유관을 오늘날에 비유하면 한국이나 선진국은 부처님이 출가 전에 살았던 왕궁과 같고, 이곳 인도의 극빈자들의 삶은 성 밖의 사문유관과 같다는 말씀이 다시 한번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인도 성지순례는 부처님의 사문유관을 직접 경험해보는 시간이었던 셈입니다. 

 

각각의 소감문에 대한 스님의 생각을 모두 들려준 후 마지막으로 스님은 문화 기행과 성지 순례의 차이점을 알려주면서 이제 성지순례를 마치면 앞으로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면 좋겠는지 강조하면서 강연을 마쳤습니다. 

 

“아잔타 석굴이며 엘로라 석굴, 산치 대탑 같은 곳에 가면 오늘 아그라 성 보았듯이 구경거리가 많아요. 그러나 그것은 순례가 아니라 문화기행이에요. ‘이건 몇 세기에 마련했고 이건 언제 작품이고 이건 무슨 양식이고...’ 이렇게 문화와 예술 작품을 보는 겁니다.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서 우리가 다녔던 길은 문화기행이 아니라 순례예요. 순례는 거기에 허물어진 벽돌더미가 없어도 큰 상관이 없어요. 여기서 어떤 일이 벌어졌고 그것이 내 삶에 어떤 교훈이 되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리고 문화기행은 편안하게 하는 것이 좋아요. 문화기행이나 여행은 호텔에 자고, 설명도 자세히 듣고, 사진도 찍으면서 즐기는 것이지요. 그러나 순례는 일부러 고행할 것까지는 없지만 그렇다고 편안하지도 않아요. 여러분들이 따로 호텔에 잔다고 해도 우리가 그동안 묵었던 순례자 숙소와 크게 차이가 날까요? 우리가 다녔던 것보다 더 빨리 갈 수 있을까요? 우리가 타고 다닌 차보다 더 좋은 차를 타고 우리가 먹은 밥보다 더 맛있는 밥을 먹을까요? 아니에요. 안개 없는 날, 안 추운 날만 골라서 다닐 수도 없어요. 큰 도시가 아닌 시골 유적지에서는 어차피 호텔에 들어가도 난방이 안 됩니다. 여러분들은 호텔에 가면 좀 낫지 않겠냐고 하지만, 제가 다 시도해 봤는데 오십보백보예요. 호텔이 세수 좀 하기 쉬운 정도예요. 

 

그리고 우리는 14일 동안 10대 성지를 다니는데 문화기행을 온 분들은 8일 만에 다 다니려니 더 바빠요. 기원정사에서 마주쳤을 때 봤겠지만 도착해서 입구만 겨우 보고 30분 만에 갔잖아요. 사위성에서는 아예 차에서 내리지도 않은 채 설명만 듣고 갔어요. 하루에 두 군데씩 보려니 아무리 설명을 줄여도 시간이 부족한 거예요. 그래서 돈 많이 들인다고 꼭 좋은 게 아니에요. 궁금하면 나중에 여행사 상품으로 다시 한 번 와서 비교해 보세요. 

 

그래서 순례는 고생을 좀 하는 게 좋아요. 방금 고생을 좀 더 하게 해달라는 제안도 있었는데, 고생을 좀 더 하면 느끼는 게 더 많긴 해요. 그런데 여기서 고생 더 시켰다가는 거사님들한테 제가 맞아죽을 것 같아요. 거사님들 이야기 들어보니까 제가 머리카락만 붙었으면 벌써 다 뜯겼을 것 같은데, 머리카락이 없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대중 박장대소) 

 


 

우리가 성지에 가든, 여기에 오든, 뭘 하든, 결국 하는 이야기는 ‘어떻게 인생이 행복해질 거냐’입니다. 그저 경전이 나오면 경전 이야기를, 부부싸움 이야기 나오면 부부싸움 이야기를, 고생한 이야기 나오면 고생한 이야기를 소재 삼을 뿐이에요. 결국은 우리가 마음을 어떻게 가질 때 행복해지느냐가 핵심이에요. 술을 마셔도, 밥을 먹어도, 남녀가 함께 있어도 이 이야기 빼고 할 이야기가 뭐 있겠어요? (웃음) 

 

앉아서 뭘 먹었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그래서 제가 연애도 해야 하고 공부도 해야 하고 술도 마셔야 한다며 고민하는 젊은이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그건 간단하다. 공부하는 여자랑 둘이 앉아서 술 마시면서 공부 이야기를 하면 된다.’ 둘이 이야기하면서 술도 마시고 연애도 하고 공부도 하고, 이렇게 셋 다 할 수 있어요. (청중 감탄하며 박수)

 


 

불법이라고 하는 것은 결국 진리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그것이 종교화되어 있는 불교는 여러 종교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는 점도 인정해야 해요. 불교는 종교 가운데 하나이지만, 불법은 ‘종교 가운데 하나’의 개념이 아니라 종교를 넘어서 있습니다. 종교의 범주에 들어가는 요소도 있지만 넘어서 있어요. 그 안에는 과학의 요소도 있고, 인문학의 요소도 있고, 문화사의 요소도 있지만 그런 특정한 범주를 넘어선 진리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의 개인 신앙이 무슨 종교이고 무슨 종파인지 너무 따지지 마세요. 그건 그냥 개인이 좋은 대로 하세요. 교회 다니고 싶으면 다니고, 성당 다니고 싶으면 다니고, 다른 종파인 절에 가고 싶으면 가면 됩니다. 천주교 쪽은 좀 멋있잖아요. 음악이 웅장하게 울리는 가운데 뭐라 뭐라 하면 ‘또한 사제와 함께’ 엄숙하게 말하잖아요. 교회에 가면 또 노래 부르고, 이것저것 재미있어요. 절에 가면 무릎을 꿇고 앉아서 목탁 치고 염불하니까 좀 재미는 없지요. 대신 조용하게 지내려면 절이 좋지요. 그런데 이것도 저것도 다 귀찮으면 아무데도 안 가면 돼요. (대중 웃음)

 

그러나 모든 인간은 종교가 뭐든, 종교가 있든 없든, 행복하기를 원해요. 오늘 행복했다가 내일 괴로움이 되는 이런 행복이 아니라 괴로움으로 바뀌지 않는 행복, 속박으로 도로 바뀌지 않는 자유가 열반과 해탈입니다. 그런 행복을 조금이라도 확대해나가고 싶으면 이 마음 공부를 해야 합니다. 마음 공부를 하면 이런 요소를 성경에서도 발견할 수 있고, 논어에서도 발견할 수 있고, 서양 철학에서도 일부 발견할 수 있고, 과학에서도 발견할 수 있어요. 꼭 불경을 읽어야 한다는 게 아니라, 눈을 좀 크게 뜨고 멀리서 관조하면 행복의 윤곽을 잡을 수 있습니다. 마음이라는 건 좁히면 바늘 하나 꽂을 자리도 없고, 넓히면 우주를 다 집어넣어도 어디 들어갔는지 보이지도 않는다고 하잖아요. 

 

그런 관점에서 앞으로 인생을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내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없다’, ‘어릴 때 무슨 경험을 했다’, 이런 이야기는 이제 그만하고요. 제일 중요한 것은 무슨 경험을 했든 안 죽고 지금 살아 있다는 거예요. 우여곡절을 겪고도 지금 살아 있으니 나는 행복할 권리가 있습니다. 산 사람은 다 행복해야 해요. 죽은 뒤의 세계는 죽은 뒤에 가서 보면 되니까 우선 놓아두고, ‘지금 내가 행복하다’ 이것을 중시해야 합니다. 

 


 

성지순례 온 것이 몸은 좀 고단하고 고생은 좀 했지만 여러분들 삶의 큰 양식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대중 환호, 박수)

 

마지막까지 애정어린 조언을 듬뿍 쏟아내어 준 스님에게 모두 큰 박수갈채를 보냈습니다. 

 


 

이렇게 강연을 모두 마치고 저녁 만찬 시간을 가졌습니다. 지난 15일 동안 낡은 순례자 숙소에서 세수도 제대로 못하고 꾀죄죄하게 다녔는데, 오늘은 고급 호텔에서 하룻밤을 자는 데다가 푸짐한 저녁 식사가 차려져 나왔습니다. 

 

스님은 “그래도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세수는 하고 가야하니까 오늘은 호텔에서 자는 것”이라며 웃음을 보인 뒤 테이블 별로 건배도 할 수 있도록 배려를 해주었습니다. 

 


 

한껏 흥이 오른 만찬장의 분위기를 이어서 조별로 장기자랑 시간이 펼쳐졌습니다. 어떤 조는 트로트를 부르며 성지순례 내용으로 개사를 해서 부르기도 했고, 어떤 조는 빨간 목도리를 통일되게 걸치고 나와 신나는 댄스를 보여주었고, 어떤 조는 바보 분장을 하고 나와 재미있는 율동과 구호를 보여주어서 큰 박수를 받았습니다. 

 


 


 


▲ 조별 장기자랑 시간

 

준비할 시간도 별도로 주지 않았는데 짧은 시간에 순식간에 팀웍을 발휘해 재미있게 장기자랑을 보여주는 모습을 보며 15일 동안 동고동락한 내공을 가득 느낄 수 있었습니다. 친교의 시간을 통해 성지순례단은 더욱더 하나가 된 기분입니다. 

 


 


 

장기자랑 시간을 모두 마친 후 스님은 내일 아침에 출발할 때 숙소에 두고 가는 물건이 없도록 각별한 주의를 당부한 후 오늘 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 

 

내일은 아침 6시 30분에 숙소에서 나와 먼저 타지마할을 관람한 후 곧바로 델리로 이동해 라즈가트와 간디 박물관, 델리 박물관을 연이어 관람하고 공항으로 이동할 예정입니다. 스님은 성지순례단을 공항까지 배웅한 후 델리 정토법당에서 주무실 예정입니다. 

 

※ 불교에 대해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쉽고 명쾌한 강의 '2016년 법륜 스님의 정토불교대학'이 신입생을 모집합니다. 정토불교대학에 입학하신 분에 한해 법륜 스님과 함께 떠나는 '인도 성지순례'에 우선적으로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전체댓글 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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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흥란

성지순례를잘마치셨네요.모두수고하셨습니다.

2016-01-27 04:19:58

윤경님

자비의전화에 봉사자분들이 상담을 해주시니 상담을 받아 보시라고 권해 드립니다
지혜로 운 삶을 사시기 빕니다()

2016-01-24 12:51:24

길벗.

부처님께서는 왕위를 버리시고 일부러도 고생을 하셨는데,<br />주어진 고생이야 피할 이유가 없다는 말씀...!<br />큰 힘이 됩니다...<br />감사합니다..~~

2016-01-24 12:4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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