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6.1.20 (인도 15일째) 성지순례단 C팀 쉬라바스티 순례


 

안녕하세요? 인도에 온 지 15일째 되는 날입니다. 오늘 스님은 정토회 성지순례단 A팀과 B팀에 이어 C팀을 이끌고 부처님이 가장 오래 머무신 곳 ‘쉬라바스티’를 순례했습니다. 

 

새벽 5시에 천축선원 법당에서 예불과 기도를 한 후 6시 20분에 기원정사를 향해 출발했습니다. 스님이 맨 앞에 서고 그 뒤를 이어 기러기떼처럼 한 줄로 서서 석가모니불 정근을 하며 천천히 걸었습니다.

 


 

어둑한 새벽 안개를 가르며 기나긴 행렬을 이루어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은 장관이었습니다. 간간히 차들이 지나가면서 헤드라이트를 비추자 순례단의 기나긴 행렬이 잠시 불빛에 비춰질 뿐 순례단은 조용히 한 발 한 발에 집중했습니다. 

 


 

한참을 걷자 어느덧 새벽 안개가 걷히고 기원정사가 환하게 모습을 드러내었습니다. 스님의 뒤를 따라 순례객들은 부처님과 제자들의 발자취가 남아 있는 곳곳을 참배하고 탑돌이를 하였습니다. 

 


▲ 부처님이 설법을 했다고 하는 곳

 


▲ 부처님이 안 계실 때 부처님을 대신 상징했다고 하는 보리수 나무

 

마지막으로 부처님이 머무신 처소로 알려진 간다 쿠티 앞에 서서 합장하고 삼배를 한 후 탑돌이를 마쳤습니다. 

 


▲ 부처님이 머문 처소 ‘간다 쿠티’ 

 

이어서 간다 쿠티를 바라보며 예참 불공을 올렸습니다. “지심정례공양...” 하는 소리가 나지막하게 기원정사에 울려퍼졌습니다. 

 


▲ 예참 불공

 

예참 불공을 마치고 스님은 상카시아를 제외한 9대 성지를 무사히 마친 순례단이 성지순례를 마지막까지 무사히 마칠 것과 그 공덕을 일체 중생에게 회향하며, 특히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에 회향할 것을 발원하는 기도를 해주었습니다. 

 


 

이어서 스님은 기원정사를 창건했으며 신심이 깊은 재가 수행자로 널리 알려진 수닷타 장자의  이야기를 실감나게 들려주었습니다. 그리고 이곳 사위성은 부처님이 성도 후 45년 중에서 무려 25안거를 보낸 곳이기 때문에 초기 경전의 절반 정도가 이곳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스님은 사위성에서 일어난 다양한 교화 사례들을 재미있게 들려주었습니다. 

 

그리고 경전 독송 시간을 가졌습니다. 사위성에서 일어난 다양한 교화 사례는 경전 속에도 아주 실감나게 묘사가 되어 있어 어느 때보다 경전 독송이 재미있었습니다.   

 


▲ 경전 독송

 

경전 독송을 마치고 스님은 2600년 전 당시 사회에 부처님의 가르침이 받아들여졌다는 것은 정말 기적 같은 일이라면서 불법은 무엇을 목적으로 하는지 몇 가지 사례를 들어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스님의 설법이 시작되자 간간히 빗방울이 날리기 시작했지만, 순례객들은 전혀 동요 없이 모자를 쓰는 것을 제외하곤 오롯이 스님의 법문에 집중했습니다. 

 

“부처님께서 그 당시의 대중들에게 법문하신 내용은 오늘날 우리가 들어도 때로는 깨닫기 어려운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니 신비주의, 계급적인 사고, 성차별적인 사고에 사로잡혀 있던 당시 사람들에게 붓다의 가르침이 받아들여졌다는 이런 사실이야말로 정말 기적이라고 할 만합니다.

 


 

불교 가르침의 근본 목적은 우리 삶의 행복과 자유를 향한 거예요. 우리가 생각하듯이 우리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게 자유와 행복으로 가는 길이 아닙니다. 우리의 욕구나 욕망을 굉장히 절제하는 가르침이에요. 그런데 그 절제가 단순히 억제하고 억압하는 것도 아닙니다. 욕망대로 행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욕망과 싸우는 것도 아닙니다. 욕망과 싸운다는 것 또한 욕망에 끌려다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욕망을 잘 이해하고 욕망을 알아차리되 그 욕망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운 상태로 나아가라고 가르칩니다.

 

그런 관점을 보여주는 몇 가지 교화 사례들이 있습니다. 부처님이 살아 계실 때 계율 문제에 대해 의견 차이가 있었어요. 출가사문들은 대부분 먹는 것은 얻어서 먹고, 입는 것은 분소의를 주워서 입고, 자는 것은 나무 밑이나 동굴에서 자는 것이 기본적인 생활이었어요. 부처님이 출가사문의 길을 처음 제시한 게 아니라 그 출가사문의 길에 부처님도 참여하신 것이라고 했잖아요. 그래서 부처님이 6년 고행을 하실 때도 절대 목욕을 하면 안 된다거나 자리를 살피면 안 된다거나 부드러운 음식을 먹으면 안 된다는 식의 금기나 엄격함 같은 게 좀 있었어요. 그러나 붓다는 중도를 깨달으면서 그것이 필요하긴 하지만 그것만 가지고 해탈의 길에 들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6년 고행하실 때는 계율에 대해 굉장히 엄격했다면 중도를 발견하신 이후에는 유연해진 셈입니다. 친구들의 눈에는 그게 해이해진 것으로 보였지만, 사실 부처님은 해이해진 게 아니라 유연해지셨어요. 그래도 지금 우리가 보면 굉장히 엄격한 모습이지만 당시 고행주의의 기준에 비하면 유연해졌다고 볼 수 있어요. 

 

그런데 교단 안에서 데바닷타라는 사람이 계율에 대해 문제 제기를 했습니다. 데바닷타는 부처님과 같은 석가족 출신이고 재주가 뛰어나서 데바닷타를 따르는 재가신자들이 많았습니다. 데바닷타는 자기가 부처님의 뒤를 이어 교단을 이끌겠다는 생각까지 했다고 해요. 그러나 그저 사람들이 부처님을 존경했을 뿐이지, 부처님은 당신이 교단의 지도자라든지 교단을 이끈다는 생각을 하지 않으셨어요. 그렇기 때문에 ‘내가 죽으면 교단의 지도자는 누가 하거라’라는 이야기를 하실 분도 아니고 그럴 필요도 없었어요. 그러나 데바닷타는 그런 생각을 했기 때문에 부처님께 자기가 그런 역할을 좀 하겠다 말씀드렸지만 부처님께서 그걸 받아들이지 않으셨어요. 

 


 

‘데바닷타여, 상가에 특별히 지도자를 정할 필요가 없다. 모든 사람이 자기 수행을 자기가 주체가 되어 하기 때문이다. 설령 그럴 필요가 있다 해도 장로인 사리푸트라나 목갈리나가 있지 않느냐.’

 

부처님과 개인적인 대화를 통해 자기가 후계자가 되기 어렵다는 걸 안 데바닷타는 이렇게 대중이 많이 모인 자리에서 자기의 지도력을 보이기 위해 어느 날 부처님께 ‘수행자라면 마땅히 이건 지켜야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질문했습니다. 첫째, 먹는 음식은 하루 한 끼만 먹어야 하고, 걸식을 해야 하고, 물고기가 든 음식은 먹지 말아야 한다는 거예요. 둘째, 입는 옷은 분소의만 입어야 한다는 거예요. 셋째, 자는 것은 동굴이나 나무 밑에서만 자야지 처마 밑 같은 장소에서 자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일종의 엄격주의라고 할 수 있겠죠. 

 

부처님은 그게 틀렸다고도 맞다고도 하지 않으셨어요. 다만 그 엄격주의에서 생겨나는 모순을 보이는 것으로 대답을 하셨습니다. 출가수행자가 분소의를 입는 것은 참 훌륭한 일이지만, 분소의만 입어야 한다고 정할 필요는 없다고 하셨어요. 그렇게 정해놓으면 예를 들어 500명이 갑자기 출가를 했는데 화장장에 가보니 시체를 싸서 버린 분소의가 300벌밖에 없을 때 200명은 벌거벗고 지내야 한다는 문제가 생기잖아요. 그렇다고 200명 분의 천을 마련해서 시체를 한번 쌌다가 다시 벗겨서 입는다면 인위적인 형식주의가 되는 거예요. (대중 웃음)

 


 

그러니 분소의를 주워 입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분소의가 없을 때는 그냥 새옷을 입어도 됩니다. 분소의를 놔두고 새 옷을 입자는 것도 아니고, 분소의만 입어야 한다는 것도 아니에요. 분소의를 입는 것은 좋은 일이고 훌륭한 일이고 칭찬받을 일이지만 분소의만 입어야 된다고 단정하게 되면 이런 모순이 발생한다는 거예요. 

 

수행자가 나무 밑이나 동굴에 자는 것은 훌륭한 일이라고 하셨어요. 그러나 부처님은 항상 자발성을 중시하셨습니다. 자기가 그렇게 하는 건 훌륭하다는 거예요. 그러나 그렇게만 해야 한다고 단정해버리면 갑자기 비가 쏟아지는데 동굴을 발견하지 못하면 비를 맞고 자야 하잖아요. 그럴 때는 빈집의 처마 밑 정도는 괜찮다고 하셨습니다. 아무 집이나 좋다고 하진 않고 빈집이라는 제한을 두시기는 했습니다. 빈집의 처마 밑이라도 그건 인위적인 것이어서 원래 고행주의에서는 허락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사는 집이라면 수행자가 가까이 하면 안 된다는 데 해당되지만, 사람이 살지 않는 빈집의 처마 밑이라면 나무 밑이나 동굴과 무슨 차이가 있느냐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걸식을 하는 건 좋은 일이고 훌륭한 일이지만 신심 있는 재가 수행자가 공양을 초대할 때 응할 수도 있다고 하셨습니다. 하루 한 끼 먹는 것은 훌륭한 일이지만, 환자나 사미나 사미니는 두 끼 먹을 수도 있어요. 사미나 사미니는 미성년자가 출가한 경우라서 아직 더 성장해야 하니까요. 채식을 하는 것은 훌륭한 일이지만, 사람들이 고기가 들어 있는 음식을 주면 먹을 수도 있다는 거예요. 안 받는다 하면 걸식 정신에 어긋나고, 고기만 건져낸다고 해도 분별이잖아요. 수행의 핵심은 분별하지 않는 데 있지, 거기에 고기가 섞여 있나 안 섞여 있나가 핵심은 아니라는 거예요. 

 

이걸 자칫 잘못 들으면 계율을 어기는 쪽으로 가기 쉽지만, 부처님 말씀의 뜻은 계율을 어기자는 게 아니라 그런 경직된 자세가 중도의 정신에 어긋난다는 겁니다. 이건 누가 들어도 합당한 이야기에요. 

 


 

이처럼 불교는 신행, 즉 말하고 행동하는 게 굉장히 절제돼 있지만 그렇다고 그런 윤리나 도덕이 그 사람을 옭아매거나 속박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게 속박이 안 되려면 스스로 행해야 해요. 남의 눈치를 보면서 하면 그게 감옥이 되지만, 스스로 즐거이 한다면 그게 속박이 되지 않습니다. 나무 밑에 자는 것도 걸식하는 것도 분소의 입는 것도 마찬가지에요. 

 

종교라는 것도 그래요. 이렇게 깨달음이라는 것을 통해서 사유가 자꾸 자유로워져야 해요. 이 ‘자유롭다’는 건 자기 욕망대로 한다는 것과는 개념이 조금 달라요. 이게 참 어렵죠. 우리는 자유라고 하면 자기 마음대로 하려 들고, 절제하라고 하면 억압하려 듭니다. 그래서 중도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중도는 자발적인 선상에서 연습을 해야 중도가 되지, 억지로 해서는 중도를 터득할 수 없어요. 

 

아무튼 부처님의 가르침은 2,600년 전의 가르침인데도 참으로 자유롭고 합리적이에요. 전법선언 할 때도 ‘처음도 중간도 끝도 조리 있게 법을 설하라’ 이런 말이 나오잖아요. 

 

그래서 우리는 부처님을 일부러 우상화시킬 필요가 없어요. 붓다의 인격 그 자체가 최상입니다. 그런데 오히려 우상화시켜서 인격을 떨어뜨리는 경우가 더 많아요. 신격화시켜서 오히려 격하시키는 격입니다. 그러니까 부처님 그대로가 ‘천인사(天人師)’, 사람과 신들의 스승이라고 하죠. 우리의 관념은 항상 인간 위에 신을 두는데 깨달음이라는 것은 그런 신의 관념보다 더 위여서 거기로부터 벗어난 개념이에요. 지금 우리의 학교 교육이나 세상의 윤리나 모든 사상은 신을 사람의 위에 둡니다. ‘천부인권’이란 말도 ‘하늘이 부여한 인권’이란 뜻이잖아요. 거기 비해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은 신들까지 포함한 세계에서 가장 존귀하다는 뜻입니다. 신 아래에 존엄한 게 아니라 신을 넘어 존엄한 거예요. 그래서 오히려 ‘신의 이름으로도 인권은 해칠 수가 없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은 불교를 자꾸 다른 종교와 비슷하게 만들면 안 돼요. 다른 종교와 경쟁하려 들거나 비교우위를 차지하려고도 하지 마세요. ‘그러냐? 아이고, 그거 좋구나’ 하고 다른 종교를 그냥 다 인정해 주세요. 다른 철학, 다른 과학, 다른 사상, 다른 종교를 모두 그대로 두고도 불법은 그 한 단계 위에서 인간의 자유와 행복을 추구하는 가르침이기 때문에 그걸 갖고 경쟁하거나 시비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불교가 더 나으니 어쩌니 비교해서 시비하는 것 자체가 불교의 격을 낮추는 일입니다.”

 

스님의 깊이 있는 법문에 순례객들도 모두 큰 박수를 보내며 공감을 표했습니다. 부처님이 많은 제자들과 고통받는 중생들에게 설법을 하신 바로 이곳에서 스님으로부터 이렇게 깊이 있는 법문을 들을 수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순례객들은 모두 기쁜 마음이 되었습니다. 

 

이어서 스님은 아침 겸 점심 식사 시간을 순례객들에게 주었습니다. 기원정사 밖을 나가 넓은 공터에서 조별로 자리를 깔고 앉아 전기밥솥을 꺼내 맛있게 식사를 했습니다. 

 

식사 후에는 자유롭게 기원정사를 둘러보고 사진도 찍을 수 있을 수 있는 자유 시간이 주어졌습니다. 그리고 자유시간을 갖기 전에 스님은 일대일로 기념사진도 찍어 주었습니다. 

 


▲ 스님과 일대일 기념사진 촬영

 

스님과의 기념사진 촬영을 마친 순례객들은 삼삼오오 흩어져서 부처님이 머무신 간다 쿠티, 아난다 존자가 머물렀던 곳, 라훌라 존자가 머물렀던 곳, 부처님이 설법을 하시던 곳, 부처님이 안 계실 때 부처님을 생각하기 위해 심었다는 보리수 나무, 후세에 승려들이 머물기 위해 지어진 승방터 등 곳곳을 둘러보고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다음은 1시간 동안의 개인 정진 시간이 주어졌습니다. 나무 밑이나 한적한 곳을 찾아 108배를 하는 분, 명상을 하는 분 등 곳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성지에서의 감흥을 느끼며 정진을 했습니다. 

 


 


 

이렇게 기원정사에서 여유롭게 시간을 보낸 후 다시 길게 한 줄을 이루어 사위성을 향해 들어갔습니다. 마치 부처님과 제자들이 탁발을 하러 사위성으로 들어가던 그 때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듯이 묵언을 한 채 천천히 사위성을 향해 한 발 한 발 걸었습니다. 

 


▲ 기원정사를 나와 사위성을 향해 한 줄로 걸어가는 순례단 

 

사위성 안에는 앙굴리말라 탑과 수닷타 장자의 탑이 높게 솟아 있었습니다. 묘하게도 악인으로서 부처님의 법을 듣고 깨달은 사람과 선인으로서 부처님의 법을 듣고 깨달은 사람의 탑이 서로 마주보고 있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습니다. 스님은 이것을 가르켜 “부처님의 법은 모든 사람에게 평등한 것을 말해준다”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먼저 앙굴리말라 탑을 한 바퀴 돌고 삼배를 한 후 스님으로부터 부처님이 어떻게 99명을 죽인 살인자 앙굴리말라를 교화하였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 앙굴리말라의 탑

 

그리고 바로 맞은 편에 있는 수닷타 장자의 탑으로 이동해 탑을 한바퀴 돈 후 삼배를 하고, 5분 간 자유 시간을 가졌습니다. 순례객들은 탑 위에 올라가 보기도 하고, 탑 앞에서 사진을 찍기도 하면서 스님의 설명을 곱씹어 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 수닷타 장자의 탑

 

다시 스님은 순례객들을 이끌고 사위성을 가로질러 동문쪽으로 향했습니다. 이번에는 A팀과 B팀이 걸어갔던 길과는 달리 북문에서 남문 쪽으로 길게 뻗은 길을 향해 걸어보았습니다. 남문 쪽으로 난 길에는 한참 유적지 발굴이 이루어지다가 홍수가 나서 침수가 되어버린 흔적이 남아 있었습니다. 

 


▲ 유적지 발굴이 이루어지다가 홍수로 침수가 된 흔적

 

스님은 곧게 뻗어 있는 길이 지대가 낮은 것을 보고선 “이 길이 아마 사위성의 가운데를 관통하는 주작대로인 것 같다”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왜냐하면 길에는 건물이 세워지지 않아서 후대에 건물이 무너져서 지대가 높아지는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 북문에서 남문으로 곧게 뻗은 주작대로로 추측되는 길

 

곧게 뻗은 길을 한참 걸으니 남문 자리로 보이는 곳이 나타났고, 다른 곳과 달리 옹성이 있었지 않았을까 하는 둔덕도 보였습니다. 조금더 고고학적인 고증이 필요해 보였습니다. 

 


▲ 남문 자리로 통해 사위성을 나오고 있는 순례단

 

이렇게 성문을 나오니 논길이 펼쳐졌습니다. 논길을 걸어 나오니 베사카 부인이 지었다고 하는 ‘동원정사’가 나왔습니다. 아쇼카석주로 추정되는 곳이 신령스럽게 모셔져 있었는데, 그곳을 순례객들은 세 바퀴 돌고 삼배를 했습니다. 

 


▲ 베사카 부인이 지은 ‘동원정사’ 

 

자리에 앉은 순례객들을 향해 스님은 이곳에 절을 지은 베사카 부인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먼저 이 절은 녹자모 강당이라고 불리우기도 하는데, 왜 그런 이름이 불려지게 되었는지 설명을 한 후, 이어서 이곳에 절이 지어진 사연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스님은 자리에 앉은 채로 설명을 시작했습니다. 

 

“베사카 부인이 어느 날 기원정사에 설법 들으러 가면서 아주 값비싼 외투를 걸치고 갔어요. 아버지가 아주 부자였는데, 시집올 때 아버지가 딸을 귀하게 여겨 온갖 보석으로 장식된 외투를 주었거든요. 더운 지역에서 외투라고 하니 실제로는 무슨 옷이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요즘으로 치면 수십 억, 수백 억 원쯤 되는 으리으리한 옷이었어요. 법문 듣는 동안 비싼 외투는 벗어서 하인더러 들고 있게 하고 법문을 들은 뒤 기뻐하며 돌아왔는데, 집에 와서 하인더러 옷을 달라고 하니까 그만 정사에 놔두고 왔다는 거예요. 빨리 가서 찾아오라고 하인을 보내려다가, 부인이 하인을 다시 불러 이렇게 일렀어요. ‘네가 놓아둔 자리에 옷이 그대로 있으면 가져오고, 아난존자가 이미 보관을 했거들랑 그냥 보시하고 오너라.’ 

 


 

법회가 끝나면 아난존자가 사람들이 떠난 자리를 둘러보고 두고 간 물건이 있으면 보관했다가 나중에 찾아주잖아요. 베사카 부인은 불자니까 보시를 할 인연이면 인연을 따라 보시하고 오라고 한 거예요.

 

하인이 가봤더니 이미 아난존자가 외투를 보관하고 있다가 내어줬어요. 그래서 하인이 ‘아이고, 우리 주인님이 보시하고 오라고 했습니다’라고 했지만 아난존자가 보시를 허락하지 않았어요. 승단에는 값비싼 옷이 필요하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하인이 할 수 없이 옷을 다시 가져왔어요. 베사카 부인은 마음에서 이미 보시를 해버렸으니 승단에서 이 옷을 받지 않는다면 옷을 팔아서 그 돈으로 보시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곳 사위성 부자들이 왕사성 부자들보다 좀 못했는지, 워낙 비싼 물건이어서 아무도 살 사람이 없었어요. 그래서 결국은 베사카 부인이 천만 금을 내고 자기 옷을 자기가 샀어요. 그렇게 낸 옷값으로 지은 것이 이 동원정사라고 합니다. 

 

당시에는 건물을 안 짓는 게 풍습이었으니 아마 땅을 구입해서 숲을 마련한 게 아닐까 해요. 그래서 부처님을 이곳에 머물도록 청해서 부처님은 이곳에서 여섯 번의 안거를 나셨다고 합니다. 기원정사에서 보낸 19번의 안거와 여기 동원정사에서 보낸 안거를 합쳐서 25번의 안거를 사위성에서 보냈다고 합니다. 이것이 동원정사가 지어진 유래예요.

 


 

4대 정사라고 하면 첫 번째가 죽림정사, 두 번째가 기원정사, 세 번째가 이 동원정사예요. 네 번째는 암라빨리가 부처님의 마지막 여로에 기증한 암라원입니다. 암라빨리가 나중에 출가해 비구니가 되어서 암라원은 후대에 비구니절이 되었어요. 이곳 동원정사도 부처님이 머무시던 당시에는 비구니절이 아니었지만 기록을 보면 나중에 비구니절이 됩니다. 4대 정사 중 뒤의 2개가 비구니절이 되었고 둘 다 여성이 지었는데 모두 장부 같은 여성들이었어요. 

 

저쪽을 보면 동쪽 성문 벽 밖에 프라세나짓왕이 비구니들을 위해서 마련해준 절이 있습니다. 스님들은 숲에서 살잖아요. 비구니, 즉 여성수행자들이 숲에서 다 떨어진 옷을 입고 지내다 보니 성추행을 많이 당했어요. 성 안에는 수행자가 못 사니까 성벽에 붙여서 절을 마련해 주어 비구니들을 보호하려 했던 것 같아요. 왕이 지은 절이라고 해서 절 이름이 ‘왕사’입니다. 저기도 비구니절이에요. 나중에는 물론 건물이 들어섰지만 초기에는 건물이 아니라 숲이에요. 

 

경전에 기록된 비구니들의 게송을 보면 낮에 숲에서 정진을 하고 있는데 마왕 마라가 나타나서 유혹을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지나다니던 남자들이 유혹을 했던 거예요. 게송을 보면 그 당시 비구니들이 얼마나 정진의 힘이 셌는지 알 수 있습니다. 숲에서 명상을 하고 있는데 어떤 남자가 지나가다가 ‘당신 눈이 참으로 아름답다’며 유혹을 했어요. 그러자 손가락으로 자기 눈알을 빼서 가져가라고 내어줬대요. (모두 놀람) 

 


 

굉장하지요? 눈을 빼서 내미는데 무슨 다른 욕망이 일어나겠어요? 정진의 힘이 그런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 당시 사회적 조건이 여성이 출가해 수행하기에는 그만큼 어려웠음을 보여주는 예이기도 합니다. 동원정사는 이런 유래가 있으니까 특히 여성 신자 여러분들에게 중요한 곳입니다.

 

그리고 동원정사가 여성이 지은 절이다 보니 여성 신자들이 많이 다녔나 봐요. 옛날 부처님 당시에는 한 달에 한 번씩 신자들이 다 절에 와서 참회하고 포살을 합니다. 한 번은 베사카 부인이 포살에 참가한 약 500명의 여자들한테 각자 무슨 소원을 빌고 있는지 물어봤어요. 늙은 여성들은 죽어서 천상에 태어나는 것이 소원이라고 했어요. 중년 여성들은 남편이 하룻밤이라도 둘째 부인에게 안 가기를 원했어요. 결혼한 젊은 여자들은 아들 낳는 게 소원이라고 했어요. 처녀들은 인물 잘생기고 마음씨 너그럽고 돈 많은 남자한테 시집가는 게 소원이래요. 예나 지금이나 똑같죠? (모두 웃음)

 


 

그래서 베사카 부인이 그 500명의 여성을 데리고 기원정사로 가서 부처님의 설법을 청하면서 ‘여기 500명의 대중이 이런 소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라고 했더니 부처님께서 이렇게 법문하셨어요. 

 

‘육신이라는 것은 늙고 병들어 죽어가는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중생들은 윤회의 사슬로 올가미를 만드는 것을 자청하느냐? 그러니 그런 무익한 것에 마음을 쓰지 말고 윤회의 사슬을 끊는 해탈을 향해 나아가라.’

 

여기 성지순례에 오신 분들 보니까 일본이며 미국처럼 잘 사는 나라에서 많이들 왔는데 그 정도면 이미 받은 복이 충분하지 않아요? 아직도 부족해요? (모두 웃음) 

 


 

요즘 대한민국에 태어난 것만 해도 받은 복이 충분해요. 밥 먹지, 옷 입지, 비 안 새는 집에서 잠 자지, 차 있지, 그러면 됐지요. 그러니 이제 복은 그만 구하고, 마음이 자유롭고 행복한 해탈의 길을 좀 더 찾아보면 좋겠습니다. 특히 이곳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니까 우리가 다시 한 번 우리 인생을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처음에는 규모가 너무 볼품 없어서 그 중요성이 다가오지 않았는데, 스님이 동원정사가 지어진 유래를 실감나게 들려주니 그제서야 비로소 그 의미가 깊이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스님은 왜 이렇게 규모가 작은지, 힌두교의 링가가 왜 놓여 있는지 대중들이 의아해하는 것을 헤아리며 아직 고고학적으로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이곳 지형지세를 꼼꼼히 답사한 후 스님이 추측해본 나름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원래의 동원정사가 이렇게 작았을 리는 없어요. 제 생각에는 이 앞에 있는 동네가 전부 동원정사 터가 아니었나 싶어요. 유적지가 오래되어 허물어진 곳은 지대가 높으니까 사람들이 다 거기에 집을 짓고 살거든요. 평지에는 별도의 언덕이 없는 데다가 지대가 낮은 곳은 쉽게 물에 잠기니까요. 상카시아도 내일 가서 보면 동네가 있는 곳이 지대가 높습니다. 사위성도 보면 바깥보다 지대가 높아요. 지난번에 여기 비가 와서 이곳 랍띠 강 전체가 범람해서 죄다 물바다가 되었는데 안 잠긴 곳이 사위성과 기원정사와 저 큰 도로뿐이었다고 해요.

 

여기 보면 링가가 있지요. 링가는 힌두교에서 다산을 상징합니다. 불교가 사라지고 이곳은 나중에 힌두교, 즉 브라만이 지키고 있는 동네 기도처가 되었는데 사실은 이게 링가가 아니라 아쇼카석주라고 합니다. 여기가 베사카 부인이 지은 동원정사라는 걸 알리는 석주였는데, 유적지가 파괴되면서 힌두교인들이 석주의 윗부분을 자르고 다듬어서 링가로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여기 계시는 스님은 브라만인데 머리 깎고 출가해서 여길 지키고 있어요.”

 

스님의 설명을 들으니 의문이 많이 풀어지고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이렇게 동원정사 참배를 마치고 순례단은 논두렁 길을 따라 걸으며 숙소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동네 아이들 100여 명이 구걸을 하러 모여 들어서 아수라장이 될 뻔 했습니다. 그러자 스님은 순례단을 먼저 보내고, 동네 아이들을 한 줄로 앉혀 모두가 안심하고 사탕 한 움큼씩을 받을 수 있다는 확신을 준 후 사탕을 나눠주었습니다. 

 


 

아이들이 온순하게 자리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니 오랜 시간 인도에서 구호활동을 해 온 스님의 연륜과 경험이 느껴졌습니다. 아이들은 사탕을 받고 너무나 기뻐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몇몇 아이들은 계속 순례객들 따라오며 구걸을 했습니다. 한 거사님은 땅바닥에 머리를 수 차례 조아리며 쫓아오는 아이들 때문에 무척 곤혼스러워 하기도 했습니다. 

 


▲ 구걸을 하며 먼 길을 계속 따라오는 아이들

 

그러나 한적한 논두렁길로 들어서니 시골 마을이 나타났고, 이 동네 아이들은 순례객을 봐도 천진난만한 웃음을 지으며 반갑게 손을 흔들 뿐 아무도 구걸을 하지 않았습니다. 500미터 남짓한 거리의 두 마을이 이렇게 서로 다른 모습이라는 점이 참 신기했습니다. 

 


▲ 구걸하지 않고 천진난만하게 웃기만 하는 시골 아이들

 

스님은 이 모습을 보고 “관광객들이 자꾸 주기 때문에 아이들을 거지로 만드는 것”이라고 알려주었습니다. 왜 스님이 수자타아카데미를 만들었는지와도 일맥 상통하는 말씀이었습니다. 

 

순례객들은 화사한 유채꽃밭과 망고나무 숲을 지나 서로 정겨운 이야기를 나누며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 망고나무 숲

 

저녁식사 후 저녁 6시 30분부터는 스님이 이번 성지순례를 총정리하는 강연을 해주었습니다. 바라나시를 시작으로 보드가야, 라즈길, 바이샬리, 쿠시나가라, 룸비니, 카필라바스투 등 이번 성지순례에서 무엇을 보았고, 무엇이 중요했고, 무엇을 가슴에 새겨야 하는지 자세히 알려주었습니다. 스님의 명쾌한 정리 말씀에 성지순례의 감흥이 다시 살아나는 듯 했습니다. 

 


 

강연을 마치면서 스님은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해서 자신을 가볍게 만들어나가야 함을 강조했습니다. 

 

“옛날 이야기를 자꾸 할 필요도 없고, 미래 이야기를 할 필요도 없고, 지금이 중요해요. 어쩌고 저쩌고 토를 달거나 머리 굴리지 말고, 상대가 욕할 때 빙긋이 웃는 연습을 한번 해보세요. 몸이 아파서 병원에 갔는데 의사가 진찰을 해보더니 굉장히 심각한 얼굴로 ‘암인 것 같습니다’ 하면 빙긋이 웃으면서 ‘축하드립니다. 드디어 발견하셨군요!’ 라고 하세요. (모두 박장대소) 

 


 

암은 오늘 생긴 게 아니라 원래 있었던 것이잖아요. 어차피 돈 들여 검사했는데 한 번에 발견했으니 좋은 일이에요. 지금 발견 못했다면 나중에 또 돈 들여서 검사를 해야 하잖아요. 의사가 기막혀 하면서 ‘도대체 어떻게 이런 상황에서 웃을 수 있소?’라고 물으면 ‘저는 부디스트입니다’라고 대답하세요. (모두 웃음) 

 


 

이것이 바로 유마거사가 병든 몸을 갖고 중생을 교화하는 것과 같아요. 불행을 행복으로 만드는 방법입니다. 우리가 ‘재앙’이라고 하는 것은 내가 재앙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재앙인 거예요. 그냥 하나의 사건인데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서 그게 복이 되기도 하고 재앙이 되기도 합니다. 세상 사람이 말하는 재앙이 복인 줄 알아버리면 인생 해탈하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여기 와서 불편한 것들에 대해서 자유로워지면 그게 큰 복이에요. 불편한 것으로부터 자기가 자유로워졌다는 것은 세상살이에 훨씬 더 자유로워진 겁니다. 그런 공부를 하려고 돈 들여서 여기까지 온 거예요. 그런데 얼굴이 대부분 밝아진 것 같긴 하지만 몇몇은 내내 인상 쓰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어요. 먹는 게 못마땅했는지, 자는 게 못마땅했는지, 화장실이 못마땅했는지, 스님이 너무 늦게까지 붙들어서 잠 안 재우고 법문해서 못마땅했는지, 뭐가 그리 못마땅했는지 모르겠어요. (모두 웃음)

 

이렇게 직접 경험하면서 배우는 거예요. 경험하면서 배워야 내 것이 되지, 지식으로 배우는 것은 지식으로 끝나요. 성지순례는 체험학습이에요. 어려움에 부닥쳐서 ‘아, 내가 사로잡혔구나’하고 알고, 넘어지면서 딱 깨치는 거예요. 넘어진 걸 보고 다른 사람이 걱정이 되어서 ‘아이고, 어째’ 하면서 일으켜 세워줄 때 빙긋이 웃어보세요. 그러면 뭐 이런 인간이 다 있나 싶겠죠. ‘당신은 뭔데 이럴 때 웃소?’ 하거들랑 ‘부디스트입니다’ 라고 하세요. (모두 웃으며 박수)

 


 

우리의 가장 큰 힘은 무슨 세력도 아니고, 돈도 아니고, 지위도 아니고, 바로 이 행복입니다. 행복을 여러분들의 가장 큰 힘으로 삼으세요. ‘이 상황에서는 이 세상 누구보다도 내가 더 행복할 수 있다,’ 이게 가장 큰 힘입니다. 다른 사람이라면 이 상황에서 괴로워하겠지만 나는 이 상황에서도 나를 행복하게 할 수 있는 거예요.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게 나를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술 마시고 취해서 전봇대 붙들고 오줌누고, 지하철 계단에 쓰러져서 자는 건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를 학대하는 사람이에요. 내내 자기를 괴롭히면서 약 먹고 죽겠다고 하는 것도 자기를 괴롭히는 사람이에요. 아버지가 어쨌고 어릴 때 가난했고 뭐가 어쨌고 하면서 지나간 이야기를 갖고 자기를 괴롭히잖아요. 

 


 

더 이상 자기 에너지를 자기를 괴롭히는 데 쓰지 말고 이렇게 자기를 가볍게 만들어 나가야 해요. 우리는 워낙 무겁게 사는 습관이 많이 들어서 잘 안 되는데, 그래도 자꾸 노력을 해야 해요. 가볍게, 좋게 생각하세요. 긍정적 사고는 낙관적 사고와는 달라요. ‘뭐든지 잘 될 거다’ 이런 게 아니라, 이미 일어나버린 일을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는 거예요. 넘어지면 앉아서 울지 말고 일어나야 해요. 지금 일어나는 게 중요하지, 앉아서 우는 건 중요하지 않아요. 차가 지나가버렸으면 지나간 걸로 자꾸 시비하지 마세요. 이미 지나간 차는 잊어버리고 다음 차나 잘 잡을 생각을 해야 한다는 거예요.”

 

이제 순례를 마치고 각자 사는 나라로 돌아가면 성지순례에서 배운 경험이 삶의 행복으로 나타날 수 있게 해주려는 스님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스님은 깨달음은 논리를 뛰어넘는다고 하면서 한 가지 이야기를 더 들려주었습니다. 부처님이 얼마나 지혜로운지 다시 한 번 깊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부처님 말씀 중에 재미있는 게 많습니다. 부처님 말씀이 얼마나 지혜로운지 한번 보세요. 어느 동네를 갔더니 웬 아이가 부처님을 찾아와서 ‘아버지 때문에 못 살겠어요’라는 거예요. 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아버지가 할머니 무덤가에 가서 뗏집을 짓고 하루 세 번씩 거기에 공양물을 갖다 올리며 운다는 거예요. 인도는 무덤이 없는데 왜 이런 묘사가 나오는지 모르겠어요. 아마 중국 사람이 번역하면서 그렇게 된 것 같아요. 어쨌든 3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그러고 있어서 집안에 아무것도 일이 안 된대요. 부처님이 가만히 듣더니 아이한테 뭐라고 뭐라고 말했어요. 부처님 말씀을 들은 아이는 씩 웃으며 돌아갔습니다. 

 


 

조금 있으니 온 동네에 아무개네 집 아들이 미쳤다는 소문이 났어요. 인도는 소가 죽어도 소고기를 안 먹으니까 그냥 버려둡니다. 그런데 이 아이가 죽은 소 앞에 가서 꼴을 한 움큼 들이밀면서 ‘소야, 먹어라. 소야, 먹어라’ 이러는 거예요. 사람들이 ‘야 인마, 죽은 소가 어떻게 먹냐?’라고 해도 신경 안 쓰고 계속 ‘소야, 먹어라, 소야, 먹어라’ 이래요. 그래서 결국 그 집 아들이 미쳤다는 소문이 퍼져서 무덤가에 있던 아버지에게까지 들어갔어요. 아들이 미쳤다니까 아버지가 찾아왔겠죠. 아이가 그 짓을 하는 걸 본 아버지가 ‘이 놈의 자식아, 죽은 소가 꼴 먹으라고 한다고 어떻게 먹냐!’하고 화를 벌컥 내니까 아이가 올려다보면서 ‘그럼 아버지는요?’ 이랬대요. 그래서 아버지가 탁 깨달았어요. (대중 모두 박장대소)

 


 

이렇게 깨달음은 지식하고 좀 달라요. 깨달음은 논리가 있긴 하지만 논리도 초월합니다. 단순한 지식과는 개념이 좀 달라요.”

 

스님은 부처님의 일생에 대해 온갖 가지 이야기를 잘 알고 있어서 대중들의 상황을 살피며 그 때 그 때마다 적절한 부처님의 교화 사례들을 쑥쑥 꺼내어 주었습니다. 

 

오늘도 스님이 한 편의 영화를 보듯 세세히 설명을 해준 덕분에 부처님 당시를 그대로 재현한 듯한 기분을 느끼며 기쁜 마음으로 오늘 일정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A팀, B팀, C팀의 쉬라바스티 순례 안내를 모두 마쳤기 때문에 스님은 내일부터 다시 C팀을 따라 상카시아로 함께 이동할 예정입니다. 상카시아를 마지막으로 정토회 성지순례단 C팀은 부처님의 10대 성지순례를 모두 마치게 됩니다.  

 

※ 불교에 대해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쉽고 명쾌한 강의 '2016년 법륜 스님의 정토불교대학'이 신입생을 모집합니다. 정토불교대학에 입학하시면 법륜 스님과 함께 떠나는 '인도 성지순례'에도 우선적으로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전체댓글 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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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래심

글을 읽는 동안 훅 빨려들어가는 듯하네요. 정토스님의 법문은 그래서 더 많이 와닿는가 봅니다.

2016-01-26 15:14:25

김은경

내가 가진 가장 큰 힘은 권력도 지위도 돈도 아니라 행복이다.
어떤 상황에서든 행복할 수 있게하라 지나간 이야기로 나를 괴롭히지 말라.....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2016-01-25 16:17:30

영린

읽는내내 감사하고 행복하고 몇번이고 웃음짓게 하신
스님 너무 감사하고 고맙습니다.
이런걸 환희심이라고 하나요... 다음에 꼭 스님과 인도성지순례 손꼽아 봅니다.
이런 환희심이 나도록 스님 법문 올려주시고 직접 순례 중인것처럼 사진 올려주시며 고생하는 분들께도 감사 드립니다. 모두 건강하게순례 잘 마치고 돌아오세요

2016-01-24 15:5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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