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6.1.19 (인도 14일째) 쉬라바스티 인근 절, 학교 방문 및 C팀 마중


 

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오전에 쉬라바스티에 있는 인도 절과 인터 칼리지(JETWAN INTER COLLEGE)을 방문하여 보시금을 전달한 후 오후에는 정토회 성지순례단 C팀과 함께 천불화현탑을 참배하고 저녁에는 즉문즉설 시간을 가졌습니다.  

 

새벽 3시 20분이 되자 성지순례단 B팀이 상카시아까지 먼 길을 떠날 채비를 했습니다. 스님도 새벽에 주차장에 나와 버스에 탑승한 순례객들이 출발하자 손을 흔들며 반갑게 배웅을 해주었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스님의 환한 웃음에 순례객들도 아쉬움이 큰지 버스 창밖으로 계속 손을 흔들었습니다. 

 

B팀을 떠나보낸 후 오전에는 원고 교정과 한국에서 온 보고서들을 처리하며 숙소에 머물렀습니다. 점심 때가 되자 스님은 “주위에 방문할 곳이 있다”며 길을 나섰습니다. 먼저 쉬라바스티에 있는 인도 절을 방문하여 보시금을 전달했습니다. 

 


▲ 쉬라바스티 인도 절

 

현재 인도 절에는 5명의 스님들이 상주하고 있는데, 불교가 거의 사라진 인도에서 인도 절이 유지되고 있다는 것은 무척 소중한 일입니다. 그래서 스님은 해마다 이곳 인도 절에 보시금을 전달하고 있는데, 오늘도 방문을 하니 인도 스님들은 반갑게 스님을 환영하면서 공경 합장하고 찬탄의 마음을 표했습니다. 스님은 작년에 비해 절이 많이 정비된 모습을 보고 인도 스님들을 더욱 격려해 주었습니다. 

 


▲ 인도 스님들에게 보시금을 전달하는 스님

 

이어서 쉬라바스티에서 운영되고 있는 인터 칼리지를 방문했습니다. 스님은 이 학교를 설립한 쁘라게난다 스님과 20여 년 전부터 인도 불교 부흥을 위한 활동과 관련해 인연을 맺어오고 있습니다. 

 


▲ 제트완 인터 칼리지(JETWAN INTER COLLEGE) 방문

 

스님이 학교에 도착하자 운영위원장님과 교장선생님이 반갑게 스님을 환영해 주었습니다. 스님의 발에 손을 대며 합장 공경의 예를 한 후 꽃목걸이를 걸어주었습니다.  

 


▲ 스님을 반갑게 환영하고 있는 학교 운영위원장

 

스님은 학교가 잘 운영될 수 있도록 보시금을 전달한 후 학교 곳곳을 둘러보았습니다. 6학년부터 12학년까지 총 15개 반에 900명의 학생들이 수업을 듣고 있었습니다. 교장선생님이 학년별로 각 반에 스님을 모시고 들어가자 학생들이 한 명씩 앞으로 나와 준비한 꽃송이를 스님께 전달했습니다. 

 


▲ 스님께 꽃을 드리는 학생들

 

스님은 수십 송이의 꽃을 받으며 학생들의 환영에 웃음과 함께 “열심히 공부하세요”라며 격려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또 어떤 학생에게는 “커서 뭐가 되고 싶어요?” 라고 물어보기도 했고, 또 어떤 반에는 스님들이 수업을 듣고 있어서 더욱더 격려를 해주기도 했습니다. 

 


▲ 스님께 꽃을 건네는 스님들

 

학교를 모두 둘러본 후 스님은 선생님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교장선생님은 각 선생님들이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지 자세히 소개해 주었습니다. 

 


▲ 학교 선생님들과 함께

 

스님이 선생님들을 격려한 후 학교를 떠나려고 하자 선생님들은 학교 바로 옆에 이 지역에 근세에 와서 처음으로 지어진 절이 있는데 지금은 매우 낡아서 사용할 수가 없게 되었다며 보수 공사를 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 요청했습니다. 

 


▲ 낡아서 지붕이 일부 붕괴되어 있는 절

 

스님은 그 자리에서 도와주겠다고 대답하지는 않았지만 나중에 천축선원으로 돌아와서 천축선원이 공사를 도와주는 형식이 되도록 지원금을 전달했습니다. 그렇게 해야 돈이 다른 곳에 유용되지 않고 절을 짓는데에 사용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어서 스님은 쉬라바스티에 있는 중국 절로 향했습니다. 중국 절은 기원정사와 담벼락을 마주하고 있을 정도로 아주 가까이에 붙어 있었습니다. 7층으로 된 큰 누각이 있어 멀리서도 금방 눈에 뛰었습니다. 

 


▲ 중국 절

 

스님은 중국 사람들이 이 절을 지을 때 7층 누각을 만든 이유에 대해 “현장 법사님이 인도 성지순례를 한 후 지은 책에 기원정사에 7층으로 된 큰 탑이 있었다고 기록했기 때문”이라고 알려주었습니다. 

 

현재 중국 절은 중국 사람들이 모두 철수하고 전혀 운영이 되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스님은 이 절을 승려들을 교육하기 위한 사미 학교로 사용할 수 있을지 알아보기 위해 곳곳을 꼼꼼히 점검해 보았습니다. 지금은 폐허처럼 방치되어 있지만 방이 25개나 있고 잘 보수하면 아주 훌륭한 학교가 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중국 절 답사를 마치자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인도는 지금 건기에 해당하는데 비가 오는 모습을 보니 반가운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스님은 “건기에는 밭이 바짝 마르게 되는데 비가 오니 밭작물에게 얼마나 좋아” 하면서 웃음을 지었습니다.  

 

이렇게 쉬라바스티 주변에 있는 곳을 모두 방문한 후 스님은 다시 천축선원으로 돌아왔습니다. 한번 인연 맺은 사람들을 잊지 않고 늘 챙겨주는 스님의 모습 속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오후 4시가 되자 정토회 성지순례단 C팀이 곧 도착한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A팀과 B팀에 비해 1시간 30분이나 일찍 도착하는 바람에 급하게 C팀을 환영하기 위해 천불화현탑으로 향했습니다. C팀은 네팔에서 인도국경을 통과할 때 대응을 비교적 잘 했는지 2시간 만에 국경을 통과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C팀이 도착하자 스님은 손을 흔들며 “쉬라바스티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하고 인사를 했습니다. 송수신기로 익숙한 스님의 목소리가 들리자 모두들 너무나 반가워하며 버스에서 내렸습니다. 

 


▲ 천불화현탑

 

석가모니불 정근을 하며 천불화현탑에 올라 탑돌이를 한 후 자리에 앉아 저녁예불을 올렸습니다. 

 


 

예불을 마친 후 스님이 천불화현탑에 대해 자세히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우리가 도착한 이곳은 쉬라바스티입니다. 부처님 당시에 300여 개 나라 중 16대국이 있었고 16대국 중 초강대국 둘이 있었는데 하나가 마가다국이고 다른 하나가 코살라국이었어요. 마가다국의 수도가 왕사성이고 코살라국의 수도가 사위성, 즉 이곳 쉬라바스티입니다.

 


 

‘쉬라바스티’는 ‘풍요롭다’는 뜻입니다. 마가다국은 전통적인 선진강국인데 코살라국은 신흥강국이었어요. 그러다 보니 이곳 사위성은 경제적으로 풍요롭고 군사적으로도 강력하지만 문화 수준은 좀 뒤처지는 편이었다고 합니다. 수닷타 장자의 초대를 받고 부처님이 이곳에 오시긴 했지만 이곳 사람들은 문명 수준이 좀 떨어지다 보니까 신통력을 보여주는 걸 좋아하고 복 빌기를 좋아해서 삿된 외도가 오히려 융성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이 오셨는데도 귀족이나 지식인 계층 일부를 제외하면 불법에 귀의하는 자가 많지 않았어요. 

 

이를 안타까이 여긴 수닷타 장자가 부처님께 간절히 청했다고 합니다. ‘부처님께서 신통은 중생을 현혹하므로 쓰지 말라고 하셨지만 이곳 주민들이 어리석어서 외도가 융성하니 부처님께서 뭔가 이적을 좀 보여주셔야 이 사람들이 따를 것 같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어느 날 쉬라바스티 성 동문 밖 이곳에 대중들을 모으라고 하셨대요. 사람들이 많이 모인 자리에서 부처님이 망고 한 개를 드시고 그 씨를 땅에 심었더니 대중이 보는 앞에서 싹이 트고 자라 금방 큰 망고나무가 되었습니다. 나무에 꽃이 피고 열매가 열려 다시 노랗게 익었는데, 그 모든 망고가 다 부처님으로 화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천불화현이 출현한 뒤 부처님께서 하늘로 가셨다고 해요.

 

그런데 이 이야기는 우리가 배운 부처님의 삶이며 인격과는 잘 안 맞아요. 나중에 대승불교에 들어와 생긴 이야기도 아니고 초기불교 때부터 있는 이야기인데 무슨 연유로 이런 이야기가 생겼을까요? (대중 웃음) 

 


 

‘부처님은 신통이 자재하시니까 그러실 수 있겠다’ 하는 신앙적인 것을 제외하고 생각해보면 실제로 어떤 사건이 있었기에 이런 식으로 기록에 남았는지 아직 저도 확실히 잘 모르겠어요. 그러나 어쨌든 이곳은 그런 이적을 보인 장소여서 이렇게 다른 곳보다 유별나게 큰 탑이 세워졌습니다.

 

그 이후로 쉬라바스티에서 부처님 법에 귀의하는 자가 늘어나고 결국은 이곳에서 불법이 융성하게 되었다고 해요. 물론 그렇게 되어서 좋은 점만 있었던 건 아니에요. 부처님을 시기 질투한 외도들이 부처님을 해치려 들었던 사건이 여기서 많이 생겼습니다. 왕사성에서는 그런 일이 거의 없었지만 여기서는 외도들이 부처님을 해치려고 다양한 음해를 벌였어요. 당시 여기가 문명이 뒤처진 곳이다 보니 신흥 사상가들 사이의 경쟁이 치열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천불화현은 그런 경쟁 속에서 불법이 우위에 서게 된 상징적인 사건이 아닐까 해요. 그래서 후대 사람들이 이렇게 큰 탑을 세운 것 같습니다. 

 

8대 성지를 상징하는 조각이 있다고 했죠? 우선 4대 성지가 있고, 그 다음에 왕사성을 상징하는 조각은 ‘취상조복(醉象調伏)’, 즉 술취한 코끼리가 부처님께 무릎을 꿇고 항복하는 모양입니다. 바이샬리의 상징은 ‘원후봉밀(猿猴奉蜜)’, 즉 원숭이가 부처님께 꿀을 공양 올리는 모양이고, 이곳 쉬라바스티는 ‘천불화현’이에요. 상카시아는 도리천에 가신 부처님이 하강하는 모습입니다. 인드라와 브라만이 부처님의 양쪽에 시립해서 계단을 타고 땅으로 내려오는 모습이에요. 

 


 

이 시간대에 여기 오면 석양을 볼 수 있어요. 맑은 날 여기 올라와서 보면 지구가 둥글다는 걸 마치 실제로 보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만 오늘은 안개가 자욱해서 그런 풍경을 보기 어렵습니다. 일단 오늘은 이 천불화현탑을 친견하고 들어가서 저녁에 법회를 한 뒤 내일은 기원정사와 사위성을 둘러보겠습니다.” 

 

스님의 말씀대로 어떤 사건이 이곳에서 있었기에 천불화현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지는지 정말 궁금함이 일었습니다. 역사적으로 꼭 고증이 되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스님의 설명이 끝나자 순례객들은 천불화현탑에서의 옛일을 생각하면서 잠시 명상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명상을 마치고 어둑해질 무렵 천불화현탑에서 내려와 숙소인 천축선원으로 향했습니다. 

 


 

천축선원에서 순례객들을 위해 따뜻한 국과 저녁식사를 마련해 주어 순례객들은 맛있게 식사를 한 후 세면도 할 수 있었습니다. 

 


▲ 순례객들에게 저녁마다 맛있는 국을 끓여주고 있는 천축선원 적조행보살님

 

이어서 저녁 7시부터는 천축선원 주지 대인스님을 모시고 저녁법회 시간을 가졌습니다. 먼저 스님이 직접 대인 스님을 순례객들에게 소개해 주었습니다. 

 


 

“이 절을 창건하신 분이 대인 스님이십니다. 대인 스님께서 17년 전에 이곳에 오셔서 순례자들을 위해 숙소를 마련하시고, 이제는 동네 주민들을 위해서 집 없는 사람들에게 집도 지어주고, 아픈 사람들을 위해 보건소도 운영하고, 올해 3월부터는 학교도 열어서 수업도 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보통 순례자 숙소에 가보면 불사한다고 야단인데 진행은 잘 안되는 곳이 많아요. 그런데 이곳은 불사한다는 소리도 없이 매년 올 때마다 하나씩 진행이 되고 있어요. 오랜 시간 동안 조용히 이렇게 순례자들을 위한 아늑한 숙소를 마련해 주셨어요. 깊이 감사 말씀을 드립니다.” 

 

순례객 모두 대인스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 스님의 소개를 이어 받아 대인 스님이 인사말을 해주었습니다. 

 


 

“몸을 아끼지 않으시고 온 인류에 부처님의 법을 전하시려고 다니시는 법륜 스님의 모습을 보면 부처님 당시가 절로 떠오릅니다. 저는 여기 있으면서 방문하는 순례자들과 이곳 주민들을 시봉하고 살고 있습니다. 걸망을 메고 부처님 8대 성지를 순례하다가 이곳에 와보니 여러 나라에서 도량을 지어놓고 있는데 오직 한국에서 지은 도량은 없는 것이 안타까웠는데, 많은 한국 불자님들의 요청도 있고 해서 그냥 머슴 노릇 좀 해보자 해서 불사를 시작했습니다. 올해로 이곳에 온지 17년 째입니다. 

 

매년 1월 마다 법륜 스님과 정토행자님들이 방문해 밝은 기운을 불어넣어주고 가시는 덕분에 저는 1년을 살아갈 에너지를 얻습니다. 정토행자님들을 보면 밥을 안 먹어도 배가 불러요.” (웃음) 

 

대인 스님의 인자한 미소에 순례객들도 환하게 웃었고, 법당 안에는 훈훈한 온기가 느껴졌습니다. 스님의 그을린 얼굴을 보니 머나먼 이국 땅에서 얼마나 고생이 많았을지 헤아려졌습니다. 

 

이어서 스님과의 즉문즉설 시간이 펼쳐졌습니다. 스님은 먼저 밝게 웃으면서 순례객들의 안부를 물었습니다. 특히 C팀은 세계 각국과 정토회 안팎에서 모인 분들이기 때문에 순례가 어땠는지 무척 궁금했습니다. 

 


 

“제가 바라나시에서 여러분을 처음 만났을 때 세계 각국에서 그리고 전국에서, 또 정토행자도 있고 아닌 사람도 있는 다국적군으로 C팀이 편성되어 있는 걸 보고 손발이 좀 안 맞아서 고생할 것 같다고 말씀을 드렸는데, 어땠어요? 다니면서 손발을 다 맞췄어요?” 

 

“예!”

 

“훈련이 됐어요?”

 

“예!”

 

“아이고, 다행이다.” (모두 웃음)

 


 

걱정이 되었는데 큰 목소리로 대답하는 걸 보고 스님은 밝게 웃었습니다. 그리고 스님이 오늘은 그동안 순례하면서 들었던 의문이나 궁금한 점에 대해 질문하면 스님의 생각을 들려주겠다고 하자, 여러 사람이 손을 들고 질문했습니다. 다양한 질문이 많았지만 모두가 궁금해할 수 있는 한 가지 질문과 답변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성지순례를 하면서 각 성지마다 그곳에서 일어났던 일과 관련된 경전을 독송했는데, 경전의 내용이 실제 부처님의 말씀과 어느 정도 이질성이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는 질문이었습니다. 

 


 

“경전이 부처님 당시에 기록된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뒤에 기록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럴 때 다른 종교들을 봐도 그렇고 많은 사람들의 손이 가면서 정치적인 내용도 개입이 되어 진리가 왜곡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번에 성지순례를 하면서 경전을 자세히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불교 경전도 부처님이 돌아가신 후 나중에 제자들이 구전으로 전하다가 기록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이 때 실제 부처님의 말씀과 경전의 내용이 어느 정도 이질성이 있다고 봐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오늘 제가 법문한 것도 그 뜻을 서로 달리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을 겁니다. 지금 이야기한 걸 금방 돌아가서 조별 나누기를 해도 ‘그게 아니라 이런 뜻이야’, ‘아니야, 네가 잘못 들었어’ 이러는 판에 어떻게 2600년 전 부처님 이야기가 그대로 전해지겠어요? 그것도 부처님이 한 자리에서 한 사람만 두고 이야기한 게 아니라 여기 가서 이 사람 두고 이야기하고, 저기 가서 저 사람 두고 이야기하고, 또 45년 동안 한 이야기를 또 500년이나 지난 뒤에 문서화했으니 고스란히 그대로 실릴 가능성은 거의 없어요. 그러나 불경은 인간이 할 수 있는 선에서는 비교적 정확하게 기록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부처님은 우선 어쨌든 80세까지 사셨잖아요. 여러 가지 비난도 받고 음해도 받았지만 그래도 예수님처럼 정치적으로 탄압받아 사형당하는 일은 안 겪었기에 깨달음 이후의 전법이 비교적 평탄한 편이었어요. 그리고 부처님이 돌아가시자 깨달았다고 하는 아라한이 500명이나 모여서 이게 부처님 말씀인지 아닌지 다 확인 작업을 거쳤습니다. 500명이 확인 작업을 했다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부처님 말씀을 제일 많이 들은 아난다가 초안을 내면 500명이 다 들어보면서 ‘그건 아니야’ 하고 수정도 하고, ‘그게 빠졌어’ 해서 보충도 하고, 이렇게 하나하나 다 확인해서 결집을 했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 당시에는 이걸 글로 쓰는 게 아니라 외워야 했어요. 외우려니까 부처님이 오래 말씀하셨다 해도 그 중 요지만 외워야 하잖아요. 그런데도 이걸 신문기사 쓰듯 반드시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어떻게’ 이렇게 딱 붙여서 외웠습니다. 경전의 편집 방식이 그랬어요. 가장 대표적인 게 ‘금강경’에 나오는 ‘여시아문(如是我聞)’, 즉 ‘나는 이렇게 들었습니다’라는 표현입니다. 들은 사람이 기록자예요. 경전 내용을 요즘에 비유해서 신문기사라고 한다면 ‘나는 이렇게 들었습니다’ 할 때의 ‘나’는 기사를 쓴 사람, 즉 기자입니다. 그는 바로 아난존자예요. 금강경 첫머리를 보면 ‘나는 이렇게 들었습니다. 어느 때 세존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의 1250명 대중과 함께 있을 때 이러저러한 일이 있었고 나중에 수보리가 이러저러하게 질문하니 부처님이 이러저러하게 대답하셨습니다...’ 라는 식으로 시작해서 내용이 전개됩니다. 앞부분이 그렇게 정리되어 있어야 외우기가 쉽잖아요. 그런 식으로 정리해놓고 그 내용을 다 같이 확인했어요. 500명이 다 같이 확인해서 암송하고 하나 끝내고 또 하나 끝내는 식으로 정리했기 때문에 불경에 기록된 내용은 비교적 정확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500명이 일일이 확인하긴 했지만 그 뒤에 시간이 흐르니까 ‘부처님이 말씀하셨는데도 여기 편집에서는 빠졌다’ 이런 주장이 나왔어요. 그래서 그것이 경전 안에 안 들어갔는데도 계속 중요한 가르침으로 구전되어 내려와서, 100년쯤 지난 뒤에 그 중의 일부를 다시 보충했습니다. 

 

그런데 부처님이 참 존경스러운 것은, 부처님이 이런 일이 생길 줄 미리 알고 기준을 정해놓았습니다. ‘내가 열반한 뒤에 분명히 부처님에게 직접 이야기 들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생길 것이다. 이렇게 주장하는 사람이 생기거든 기존에 없다고 하여 무조건 아니라고 하지도 말고, 부처님한테 들었다고 무조건 믿지도 말라. 지금까지 붓다에게 법문을 듣고 가르침을 받은 바에 견주어서 이 가르침이 합당한지를 보고, 합당하거든 수용하고 합당하지 않거든 버려라.’ 라고 해요. 지금까지 정리되어 내려온 가르침에 견주어 판단하라는 겁니다.

 

또 여래는 이런 말씀도 하셨어요. ‘과거로부터 전승되어 내려오는 윤리나 도덕, 관습이나 습관, 계율이나 경전에 의거해서 진리는 검증할 수가 없다.’ 이렇게 어느 경전에 써놨다고 해서 그걸 무조건 진리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는 관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역사가 흘러내려오면서 부처님 이름을 빙자해서 소위 ‘위경(僞經)’이라는 게 숱하게 제작되었습니다. 그런 것은 내용을 딱 보고 이런 기준으로 판단하면 됩니다. 우선 연기법에 어긋나면 진리가 아니에요. 뭘 어떻게 하면 복을 많이 받고 수명이 길어진다는 등의 이야기를 하면 부처님의 가르침과 안 맞습니다. 이렇게 불법의 원칙을 딱 몇 가지만 알면 판단하기가 쉽습니다. 즉 중도에 어긋나도 불법이 아니고, 사성제에 어긋나도 불법이 아니고, 연기법에 어긋나도 불법이 아니고, 삼법인에 어긋나도 불법이 아니라고 보시면 됩니다. 

 

부처님 법은 누구를 해치는 법이 아니고 이치에도 어긋남이 없어요. 전법선언에 ‘사람과 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는 표현이 나오잖아요. 누굴 해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이익을 위해서 하라는 겁니다. 다음으로 ‘법을 설할 때 처음도 중간도 끝도 조리 있게 설하라’고도 했습니다. 그러니 이치에 합당치 않은 이야기는 불법이 아니에요. 

 

그러면 불법은 논리적인 지식일까요? 아닙니다. 때로는 논리를 뛰어넘는 것도 있어요. 논리에 어긋나는 것은 불법이 아니지만 또한 논리를 뛰어넘을 수도 있어요. 논리에도 갇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불법의 위대함이 여기에 있어요. 

 


 

논리를 뛰어넘는 것과 논리에 어긋나는 것은 달라요. 내일 기원정사에 가서 더 이야기하겠지만 부처님이 말씀하신 내용을 보면 참으로 합당한 이야기가 굉장히 많아요. 요즘 우리가 들어도 놀랄만한 이야기들입니다.”

 

경전에 대해 어떤 관점을 갖고 이해해야 하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이 외에도 스님은 순례객이 궁금해하는 많은 질문들에 대해 답변을 해주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은 순례객들이 먼 길을 달려와서 피곤한 것을 헤아리며 오늘은 일찍 잘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좀 일찍 자야 해요. 내일은 어떻게 보면 차를 안 타니까 제일 좋은 날이지만, 어떻게 보면 제일 힘든 날이에요. 차를 타면 어쨌든 차 안에서 잘 수 있지만 내일은 차를 안 타니까 하루 종일 졸 수가 없거든요. 그래서 힘들다면 힘든 날이고, 차를 안 타니까 좋다면 좋은 날인데 오늘 저녁에는 눈을 좀 붙여둬야 합니다. 그런데 내일은 밤새도록 안 자고 법문해도 괜찮아요. 모레 최장거리를 가기 때문에 차 안에서 계속 자야 해요. (모두 웃음) 

 

 

그러니 오늘은 일찍 끝내지요. 저는 언제든지 밤샘해서 법문을 할 수 있어요. 여러분들이 ‘그만 하자’ 하면 그만하고 ‘더 하자’ 하면 더 하고. 저는 상관없어요. 그러나 여러분들이 ‘그만 하자’ 할 걸 제가 알기 때문에 이렇게 자신만만하게 이야기하는 거예요. (모두 웃음) 

 

자, 오늘 먼 거리 오느라 피곤했으니 이만 자고 내일 또 공부합시다.”

 

스님의 배려를 느끼며 오늘은 순례객 모두 10시도 안 되어 일찍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내일은 하루 종일 사위성을 걸어서 순례할 예정입니다. 부처님은 사위성에서 24번 또는 25번의 안거를 지내셨다고 합니다. 기원정사에서 19년, 베사카 부인이 건립한 동원정사에서 5년 혹은 6년, 그래서 총 24년 또는 25년을 지내신 것이지요.  

 

그동안 순례객들은 성지순례 일정이 빠듯해서 앞사람만 쳐다보고 쫓아가기 바빴지만, 내일은 하루 종일 차도 안 타고 걸어다니면서 여유롭게 기원정사를 둘러보고 법문도 충분히 듣는 시간을 가질 예정입니다. 

 

법륜 스님의 쉽고 명쾌한 강의를 1년 동안 들을 수 있는 '2016년 정토불교대학'이 신입생을 모집합니다. 정토불교대학에 입학하시면 법륜 스님과 함께 떠나는 '인도 성지순례'에도 우선적으로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전체댓글 30

0/200

최영애

감사합니다^^나무 석가모니불~

2016-01-23 15:16:45

오진수

오늘도 또 감동 먹고 내일도 기대하고 있습니다

2016-01-23 06:10:07

정근환

잘 읽었읍니다.감사합니다.

2016-01-22 13:53:32

전체 댓글 보기

스님의하루 최신글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