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6.1.15 (인도 10일째) 성지순례단 A팀 쉬라바스티 도착

 

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오전에 쉬라바스티 지역의 불교유적지를 답사했고, 오후에는 정토회 성지순례단 A팀을 맞이하고 천불화현탑을 참배한 후 저녁에는 즉문즉설 시간을 가졌습니다. 

 

어젯밤 보드가야에서 차를 타고 13시간 반이 걸려 쉬라바스티에 도착한 스님은 한국 절인 천축선원에서 하룻밤을 주무셨습니다. 새벽예불과 기도를 마치고 아침에는 천축선원 주지인 대인스님과 차담을 나누었습니다. 차담을 나누는 중에 스님이 베사카 부인이 창건한 동원정사의 위치에 대해 묻자 대인스님은 쉬라바스티에는 최근에 발굴된 여러 불교 유적지가 있다고 소개해 주었습니다. 

 

스님은 성지순례 때 마다 이곳을 방문하지만 늘 시간에 쫓겨서 주위를 답사해 보지 못했다며 대인 스님과 함께 답사를 나섰습니다.  

 

먼저 경전에 많이 나오는 베시카부인이 지은 절이 있다고 해서 찾아가 보았습니다. 인도말로 ‘풀바람 비하르(PULVARAM VIHAR)’ 라고 불리우는 곳이었습니다. 스님 일행이 도착하자 이곳을 지키고 있는 인도 출신 스님이 나와서 이곳에 대해 몇 가지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 베사카 부인이 지은 절, 동원정사

 

‘풀’은 ‘동쪽’이라는 뜻이고 ‘바람’은 명상하는 곳, 즉 ‘정사’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말로는 ‘동원정사’라고 부를 수 있는 곳입니다. 이 정사를 창건한 베사카부인은 부처님 당시에 재가 수행자 중에서 가장 신심이 컸던 분으로 널리 알려진 분입니다. 남자 재가 수행자 중에 가장 신심이 컸던 분이 수닷타장자라면 여자 재가 수행자 중에 가장 신심이 컸던 분은 베사카부인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곳은 비구니 처소였다고 합니다. 부처님 당시에는 비구니 처소가 아니었던 것 같은데, 베사카부인이 지은 절이기 때문에 세월이 흐르면서는 자연스럽게 비구니 처소가 된 것 같았습니다. 부처님은 45안거 중에 25안거 내지 24안거를 쉬라바스티에서 보냈다고 하고, 그 중 19안거를 기원정사에서 보내셨기 때문에 이곳 동원정사에서는 다섯 번 내지 여섯 번을 지내셨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부처님의 발자취가 많이 남아 있는 중요한 곳이지만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았는지 순례객들의 발길이 많이 닿은 것 같지는 않아 보였습니다. 

 

벽돌로 둘러쳐진 곳 안에는 작은 돌기둥이 신령스럽게 모셔져 있었습니다. 인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힌두교의 ‘링가’입니다. 이곳을 지키는 스님은 “이것이 원래부터 링가였던 것이 아니라 부처님의 발자취를 상징하는 아쇼카석주였다”고 알려 주었습니다. 아쇼카석주가 깊이 묻혀 있었는데 인도에서 불교가 사라지고 나서 힌두교에서 이 아쇼카석주를 잘라서 링가로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스님은 유적지가 높은 지대에 있는 것을 확인한 후 “후세에 벽돌이 무너져내리면서 지대가 높아졌을 것”이라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유적지 바로 옆에 인도 스님이 운영하는 법당이 있어 참배를 했습니다. 스님은 “내일 오후에 한국에서 순례객 150여 명과 함께 다시 이곳을 방문하겠다”고 인사하고 절을 나왔습니다. 

 

▲ 동원정사 터에서 출토된 유물들

 

절에서 나와 논두렁 길을 조금 걸으니 사위성의 동문이 나왔습니다. 또 동문 바로 앞에는 왕이 비구니 스님들을 위해 지은 절, 즉 ‘왕사’라고 불리우는 절터가 발견된 흔적이 남아 있었습니다. 아마도 당시에 여성 출가자는 외호를 받지 않으면 위험했기 때문에 왕이 사위성 바로 가까이에 절을 지어준 것이 아닐까 추측해 볼 수 있었습니다. 

 


▲ 저 멀리 보이는 것이 사위성 동문 쪽 성벽


▲ 동문 바로 앞에 있는 왕사 터 

 

동문을 통해 사위성 안으로 들어가니 황무지로 변해있는 정글이 나타났습니다. 부처님 당시에는 이곳이 가장 번성한 도심이었을텐데 황량하게 변해 있는 모습을 보니 세월의 무상함이 느껴졌습니다. 

 


▲ 동문을 통해 사위성 안으로 들어온 스님 일행

 

사위성 안에는 곳곳에 땅에 묻힌 벽돌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발에 채이는 벽돌들을 보며 이곳이 2500년 전에는 많은 건물들이 들어서 있었음을 가늠해 볼 수 있었습니다. 

 


▲ 사위성 안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벽돌

 

다시 사위성 서문 쪽으로 계속 걸으니 수닷타장자 스투파가 나타났습니다. 스투파 앞에서 삼배를 한 후 답사를 마쳤습니다. 

 


▲ 수닷타 장자의 스투파

 

답사를 마치고 나서 스님은 “내일 A팀을 안내할 때는 코스를 좀 바꾸어야겠다”고 하면서 오늘 답사한 것을 토대로 기존에 순례하던 코스에서 ‘동원정사’를 참배하는 것을 추가했습니다. 어떤 순서로 순례를 하면 동선이 가장 효과적일지 고민한 후 스님이 짠 코스대로 다시 길을 따라가 보았습니다. 마을로 난 길을 순례객들이 걸어야 하는 것이 문제였는데, 다시 답사를 해보니 논두렁으로 난 길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대중을 안내하기 위해서 직접 답사하고 꼼꼼히 체크하는 스님의 모습 속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오후에는 원고 교정 업무를 보면서 휴식을 하다가 오후 5시 정도에 성지순례단 A팀이 쉬라바스티에 다 와간다는 연락을 받고 마중을 나갔습니다. A팀은 쉬라바스티에 도착하자마자 스님과 함께 천불화현탑을 참배할 예정이어서 스님도 천불화현탑으로 향했습니다. 

 

덕생법사님, 선주법사님, 자광법사님과 함께 8대 성지 순례를 모두 마친 A팀은 스님을 다시 만나기 위해 울퉁불퉁한 도로 위를 열심히 달려왔습니다. 해가 넘어가서 어둑해진 가운데 드디어 A팀의 버스 4대가 나란히 천불화현탑 앞에 도착했습니다. 스님은 천불화현탑 앞에서 “쉬라바스티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하며 환한 웃음으로 순례객들을 맞이해 주었습니다. 

 

▲ 천불화현탑

 

순례객들은 가사를 수하고 향을 피운 후 석가모니불 정근을 하면서 차례로 줄을 지어 천불화현탑 위로 올라갔습니다. 점점 어두워지더니 탑돌이를 모두 마치자 해가 다 지고 말았습니다.  

 


 

저녁예불을 이곳 천불화현탑에서 올린 후 이어서 8대 성지 순례를 마치고 먼 길을 달려온 순례객들을 위해 스님이 축원기도를 해주었습니다. 

 


 

순례객들이 앉아 있는 탑 위에는 다행히 인도 스님들이 촛불을 밝히고 앉아 있어서 겨우 순례객들의 형체를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잠시 명상의 시간을 가진 후 스님이 이곳 천불화현탑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저희들이 도착한 이곳이 쉬라바스티, 즉 사위성에 있는 천불화현탑입니다. 사위성은 코살라국의 수도입니다. 코살라국은 마가다국과 함께 당시 초강대국이었던 2개 국가 가운데 하나입니다. 부처님 당시에 이곳 왕은 프라세나짓왕이었습니다. 코살라국은 신흥 강국이었습니다. 마치 유럽이 전통 강국이라면 미국이 신흥 강국이고, 지금 미국이 전통 강국이라면 중국이 신흥 강국이듯이 말이죠. 그렇게 신흥 강국이다 보니까 군사적, 경제적으로는 매우 강력하지만 문화적으로는 많이 뒤떨어졌던 것인지 종교적, 사상적, 철학적인 부분에는 조예가 깊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육사 외도들의 가르침이 널리 성행했다고 합니다. 

 


 

부처님이 수닷타 장자의 초청을 받고 이곳에 오셔서 설법을 하셨지만 아주 뛰어난 일부 엘리트들을 제외하고는 불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수닷타장자는 무척 안타까워 하면서 부처님께 ‘이 중생들을 구제하기 위해서는 방편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예외적으로 신통력을 좀 보여주셔야겠습니다’ 라고 청했다고 합니다. 부처님의 인격이나 말씀하신 걸로 봐서는 맞지 않는 일인데 어쨌든 그렇게 청하자 부처님께서 어느 날 ‘성 밖으로 모여라’라고 하시자 대중들이 이곳에 구름처럼 많이 모였답니다. 우리가 지금 있는 이곳은 성에서 좀 떨어진 곳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망고 하나를 드신 후 그 씨를 땅에 심었더니 금방 싹이 트고 자라서 거목이 되었고 망고가 주렁주렁 달렸는데 그 망고가 다 부처님으로 변했답니다. 그것을 두고 ‘천불이 화현을 했다’고 하는 곳입니다. 그 후 부처님은 하늘로 오르셨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쉬라바스티 사람들은 그 일로 인해서 불법에 귀의하기 시작했는데, 이후 이곳이 쉬라바스티 사람들을 교화하기 위해 부처님께서 기적을 행하신 곳으로 알려지면서 이렇게 큰 기념탑이 쌓이게 된 것입니다. 

 

술 취한 코끼리가 부처님께 항복했다는 ‘취상조복’이 라즈길을 상징하고, 원숭이가 부처님께 공양을 올렸다는 ‘원후봉밀’이 바이샬리를 상징한다면, 쉬라바스티를 상징하는 것은 ‘천불화현’입니다. 지금은 비록 허물어진 탑이지만 산같이 높은 탑이 쌓였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좀 늦었지만 천불화현탑을 참배했습니다. 여러분들, 오늘 먼 길을 오시느라 특히 국경을 드나드느라고 애 많이 쓰셨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신통을 쓰지 말라고 가르치셨다고 알고 있어서 왜 이런 유적지가 있는지 처음에는 이해가 가지 않았는데 스님의 설명을 들으니 그만큼 사위성에서는 육사 외도의 공격이 많았음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이렇게 천불화현탑 참배를 무사히 마치고 순례객들은 쉬라바스티의 유일한 한국 절인 천축선원으로 들어갔습니다. 

 


 

천축선원에서는 따뜻한 국과 함께 저녁 식사를 준비해 주어서 순례객들 모두 무척 기뻐했습니다. 

 


▲ 천축선원

 

그동안 전기밥솥과 밑반찬으로 끼니를 해결하느라 따뜻한 국을 구경해보지 못했는데 오랜만에 맛본 국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나 봅니다. 게다가 오늘은 스님이 직접 국을 떠주었습니다. 순례객들은 익숙한 목소리로 스님이 “따뜻한 국 맛있게 드세요”라고 하자 마치 고향에서 아버지를 다시 만난 듯 기뻐했습니다. 



 

저녁 7시 30분부터는 천축선원 법당에서 저녁 법회가 열렸습니다. 스님은 천축선원 주지인 대인스님께 순례객들을 위해 좋은 법문을 들려달라고 하면서 법을 청했습니다. 

 

대인스님은 어떻게 해서 이곳 인도에 불사를 하게 되었는지, 지금은 어떤 일들을 천축선원에서 하고 있는지 자세히 설명해 준 후 간단히 인사말을 해주었습니다. 

 


 

“게으름을 피우다가도 법륜스님을 생각하면 정신이 번쩍 들 때가 많습니다. 법륜스님 보다 제가 잠도 더 많이 자는 것 같고요. 부끄러움을 느끼고 스님을 의식하면서 저도 항상 본받으려고 합니다. 그리고 정토행자님들이 신년에 세원 원력들이 꼭 이루어지시길 바랍니다.”

 

대인스님의 법문에 이어서 스님의 즉문즉설 시간이 이어졌습니다. 먼저 스님은 순례객들에게 성지순례를 해본 소감이 어떤지 물어보면서 법회를 시작했습니다. 

 

“성지를 한바퀴 돌아보니까 어땠어요?”

 

“좋았어요.”

 


 

“뭐가 좋았어요? 솔직하게 말해보세요. 따라다니기에 급급했죠? 본 것이라고는 허물어진 벽돌 밖에 기억이 안 나지요? 여기저기 가봐도 똑같죠? (웃음) 

 

한국 같으면 산 모양이라도 다른데, 인도는 평평한 곳에 이 탑인지 저 탑인지 이곳인지 저곳인지 그냥 동그란 탑이 하나 있고, 소똥도 있고, 개똥도 있고, 그저 버스에서 내리면 머리 숙이고 절이나 좀 하고 그랬죠? 저녁에 도착하면 밥 해먹기 바빴을 것이고요. (웃음) 

 


 

여러분들이 순례하면서 궁금한 점을 메모해 놓으라고 바라나시에서 말씀드렸잖아요. 그래서 오늘은 순례하면서 궁금했던 점, 경전 독송하면서 궁금했던 점, 수자타아카데미에 대해 궁금했던 점, 성지에 있는 한국 절을 보면서 궁금했던 점에 대해서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스님의 이야기가 끝나기 무섭게 여러 명이 손을 들고 질문을 했습니다. 2시간 20분 동안 다양한 질문들이 쏟아졌습니다. 

 

그 중에서 순례객 한 분의 질문은 많은 공감을 얻고 큰 박수를 받기도 했습니다. 성지순례를 했지만 기대했던 것보다 감흥이 크지 않다며 어떡해야 하는지 물었습니다. 

 


 

"성지순례를 다녔는데 그냥 무덤덤 했습니다.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것이니 환희심이 나고 좋아야 되는데, 별로 감흥이 없이 당황스럽습니다. 제가 이럴 줄은 몰랐습니다. 여기 오기 전까지는 제가 너무나 좋아할 줄 알았는데, 제가 제 마음을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니까 내 마음이 이러저러해야 하는데 그렇게 안 된다는 얘기지요? ‘내 마음은 성지에 가면 흥분되고 좋고 눈물이 나야 하는데 이게 왜 눈물도 안 나고 기쁘지도 않냐?’ 이거나 ‘내가 저 사람을 좋아하면 저 사람도 나를 좋아해야 하는데 왜 저 사람은 나를 좋아하지 않냐?’ 이거나 사실은 똑같은 애기예요. 

 


 

질문자가 갖고 있는 고민의 본질은 ‘내 마음은 이래야 한다’라고 정해 놓았는데 내가 생각하는 그런 식으로 내 마음이 지금 안 움직인다는 거예요. 자기 욕구를 중심에 놓고 ‘안 된다’고 문제 삼는 겁니다. 이것을 가르켜서 바로 ‘쾌락주의’라고 말하는 겁니다. 부처님은 쾌락주의와 고행주의를 넘어선 제3의 길인 중도를 발견했다고 이번 순례를 하면서 여러 차례 들었잖아요. 

 

질문자가 제대로 수행을 하려면 ‘아, 내 마음이 이렇구나’하고 알아차려야 해요. 이건 좋은 것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니에요. 내 마음이 들뜨면 ‘아, 내가 성지에서 마음이 들뜨는구나’ 하고 알고, 내 마음이 슬프면 ‘아, 내가 저런 아이를 보면 슬픈 마음이 일어나는구나’ 하고 알고, 무덤덤하면 ‘아, 내가 이럴 때 무덤덤하구나’하고 알아야 해요. 이렇게 자기 마음을 있는 그대로 ‘내 마음이란 이런 것이구나’ 하고 알면 됩니다. 흥분해야 좋은 것도 아니고 가라앉아야 좋은 것도 아닙니다.

 

질문자는 벌써 좋고 나쁘다는 생각, 즉 선입관을 갖고 있잖아요. ‘나는 성지에 오면 막 눈물날 줄 알았더니 눈물이 안 나니까 문제다’라고 하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에요. 성지에 와서 깨진 벽돌 보고 눈물 흘리는 게 뭐 중요해요? ‘나는 어떠해야 한다’라는 전제를 미리 해놓으니까 지금 내가 안 그렇다는 걸 갖고 문제 삼는 거예요. ‘우리 남편은 이런 사람이어야 한다’ 하고 결혼했는데 살아보니까 안 그렇다고 문제 삼는 것과 똑같아요. ‘이렇게 되어야 한다’라고 생각하지 말고 그냥 지금 일어나는 마음을 보면 되잖아요. 

 

여러분은 인도 아이가 막 돈을 달라고 조르니까 불쌍하다고 말하지만, 내가 그걸 불쌍하게 여겨 울어봤자 아이에게는 아무 도움이 안 됩니다. ‘이런 경계에 부딪히니 내 마음이 이렇게 일어나는구나’하고 알아야 해요. 불쌍하다며 주는 건 아이를 위해서 주는 게 아니라 나를 위해서 주는 거예요. 내가 불쌍하게 여기니까 주는 겁니다. 그 애는 불쌍한 애가 아니에요. 불쌍한지 아닌지 어떻게 알겠어요? 정작 그 아이는 재미로 한번 시험해 보는지도 모르는데요. (대중 웃음) 

 

 

‘내 업식이 이렇구나’ 하고 알면 됩니다. 이렇게 불쌍한 마음이 들어서 돈을 줬다가도 아이가 안 가고 또 달라고 하면 성질을 팍 내잖아요. 불쌍하면 계속 불쌍해야지, 왜 두 번 달라 한다고 성질을 내요? (대중 웃음)

 

그러니 ‘아, 내 업식이라는 게 이렇구나’ 이렇게 자기를 보는 공부를 하세요. 다니면서 바깥 성지만 보지 말고 마음 성지도 보라고 제가 계속 이야기했잖아요. 마음이 시시각각 어떻게 바뀌는지 살펴보면 더 재미있어요. 벌써 다 잊어버렸죠? 

 

다시 정리하면 질문자의 문제의 본질은 ‘내 마음은 이래야 한다’라는 전제를 두고 내 마음이 그렇지 않다고 해서 문제 삼는 거예요. ‘내 마음이 이래야 한다’, ‘세상이 이래야 한다’, ‘인도가 이래야 한다’ 이렇게 정하지 마세요. ‘인도는 이래야 한다. 이럴 줄 알았다’ 했는데 정작 와 보니 안 그러니까 지금 힘든 거예요. ‘한국에서 내가 인도를 잘못 생각했구나’ 이렇게 생각하면 됩니다.

 

제가 봉암사에 부목으로 있을 때 일입니다. 우리는 지금 돈에 너무 의지하고 살잖아요. 그래서 일부러 돈도 하나도 없이 살고, 간식도 안 먹고 하루 한 끼만 먹으면서 수행하려고 작정했는데 제가 여름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 장작을 패는 모습이 신도님들에게는 너무 불쌍해 보였나 봐요. 그래서 저는 간식 안 먹기로 결심했는데 간식을 갖다 주고, 저는 돈을 몸에 안 지니려고 하는데 돈도 찔러주고 갑니다. 그러면 그건 제가 정말로 불쌍한 사람인 게 아니라 그 사람이 보기에 불쌍한 거예요. 우리가 지나가면서 ‘저 사람 불쌍하다’라고 하지만 그 사람이 진짜 불쌍한 건지 내가 보기에 불쌍한 건지 생각해보세요. 저도 다 떨어진 옷 입고 꾀죄죄한 행색으로 여기 앉아 있으면 여러분들이 지나가면서 보고 불쌍한 사람이라고 할 거예요. 그런데 제가 정말로 불쌍한 사람인가요?

 

그러니까 그건 다 우리들의 마음이에요. 불쌍한 마음이 든 건 좋아요. 그런데 불쌍함에 사로잡혀서 슬프면 안 돼요. 연민이 일어나는 건 좋지만, 슬퍼하지 말고 실제로 어떻게 도울 건지를 생각해 보세요. 내가 사탕을 하나 줘서 그 아이에게 정말로 도움이 되는지 안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주는 게 편하다고 하면 주면 돼요. 그 아이는 하루에 10루피만 받아서는 살 수가 없으니까 계속 따라다니는 거예요. 물건을 한 개 판다고 그날 장사를 다 한 게 아니잖아요. 10개 가져왔으면 10개 다 팔아야 하고 100개 가져왔으면 100개 다 팔아야 해요. 그런 것처럼 그 아이도 10명에게 받아야 한단 말이에요. 같은 사람에게 10번을 받든, 사람을 바꿔가며 10번을 받든 그 아이에게는 중요하지 않아요. 한번에 10,000루피를 주면 안 따라와요. (모두 웃음) 

  

그러니까 그 아이는 내가 주든지 안 주든지 그냥 누구에게든 돈을 받으려고 ‘박시시, 박시시’ 이럴 뿐이에요. 그게 내 마음에 거슬리면 주면 되고 안 거슬리면 안 주면 됩니다. 그건 내가 결정할 일이에요. 그 아이는 돈을 안 준다고 나한테 성질내지 않는데 나는 그 아이가 날 따라다닌다고 성질내는 거예요. 귀찮기야 하지만 귀찮다고 하는 것도 내 문제예요. 뒤에 따라오도록 두는 내가 힘들겠어요? 따라다니는 아이가 힘들겠어요? (대중 웃음)

 


 

성질은 내도 괜찮지만 어쨌든 그런 것이 상대의 문제가 아니라 내 문제라는 점을 봐야 합니다. 주고 싶으면 주고, 주기 싫으면 안 주고, 그건 여러분들이 알아서 하면 돼요. 그러나 그것을 통해서 마음공부를 해야 합니다. 

 

뭘 정말 도와줘야겠다고 생각한다면 그 자리에서 10루피든 100루피든 주는 것도 필요하고, 또 제대로 도와주려면 더 근본적인 지원을 하는 것도 필요해요. 구걸은 나쁘다고 하지만 그 사람이 10루피가 필요할 때 10루피를 버는 것도 필요해요. 저도 처음에 구걸에 응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둥게스와리에서 구걸하고 사는 장애인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구걸을 꼭 나쁘다고 해야 할 이유가 없어요. 오늘 얼마 벌었는지 물어보면 ‘오늘은 30루피 벌었어’, ‘오늘은 50루피 벌었어’, ‘오늘은 좋은 사람을 만나서 300루피 벌었어’ 이러는데, 장사하는 사람이 오늘 장사해서 얼마 벌었는지 이야기하는 것과 똑같아요. 그 사람은 그게 자기 하루 수입원이잖아요. 단지 물건을 주고 돈을 받으면 괜찮다고 하고, 물건을 안 주고 돈을 받으면 나쁘다고 하는 차이일 뿐입니다. 다만, 아이들은 교육상 나빠요. 그래서 저는 아이들은 잘 안 주지만, 어쨌든 그건 그 사람들의 생활이에요. 

 

시장가면 물건 사라고 계속 부르면서 호객행위를 하지만 사고 안 사는 건 여러분들의 자유입니다.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박시시, 박시시’하고 따라올 때 주고 싶으면 주고 안 주고 싶으면 안 주면 돼요. 그건 여러분들의 자유예요. 그러나 이제 그런 모습을 보고 ‘아, 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내가 좀 도와야겠다’ 하면 개인적으로 그렇게 주는 방법도 있지만 다른 방법도 있습니다. 학교나 구호기관의 활동을 후원하거나 직접 자원봉사를 하는 것 등 여러 가지 방식이 있어요. 근본적으로 보면 여러분들이 상대적으로 가진 게 많으니까 좀 주기는 줘야 하지만, 어떻게 주는 게 좋을지는 여러분 스스로 생각해서 결정하면 돼요. 

 


 

요지는 자기 마음의 문제니까 자기 마음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봐야 한다는 겁니다. 산을 보고 시비하듯이 지금 자기를 보고 ‘성지에 왔는데 왜 나는 눈물도 안 나냐!’하고 시비하는 거예요. 그걸 두고 ‘자기 마음 자기가 모른다’고 해요.” (모두 웃음) 

 

스님의 답변에 모두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입재식 때 밖을 보는 성지순례 뿐만 아니라 내 마음을 보는 성지순례를 꼭 할 것을 스님이 강조했는데, 까막득히 잊고 있다가 순례객들은 오늘에서야 다시 그 마음을 되새길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모든 질문에 대해 답변을 마치니 순례객들은 그동안 궁금했던 의문이 많이 풀렸다며 기쁜 마음이 되었습니다. 특히 그동안 법사님들의 안내를 계속 받다가 오랜만에 다시 스님의 목소리를 들으니 너무나 반가워 했습니다. 

 


 

내일은 한국 불교인들에게는 마음의 교양인 금강경이 쓰여졌다는 기원정사로 가서 오전 내내 스님의 설법을 듣고 정진을 할 예정입니다. 오후에는 사위성으로 들어가서 수닷타 장자와 앙굴리말라의 수투파를 참배한 후 오늘 답사한 베사카부인이 지었다고 하는 동원정사를 참배할 예정입니다.  


※ 카카오톡으로 '법륜 스님의 하루'를 매일 받아보세요. 아래 배너를 누르고 친구 추가!


전체댓글 33

0/200

김영주

고맙습니다. 덕분에 매일 행복합니다.

2016-01-19 13:57:01

이지은

고맙습니다 스님.

2016-01-19 10:28:31

한혜련

제 마음을 제가 몰라줬군요. 내 마음은 이래야 된다, 저래야 된다 미리 정해놓고 지내고 있었는데 다시 정신차리게 됐습니다. 내 마음은 상대방때문에 일어난 게 아니라 내가 이르킨 것이라는 걸 스님의 부목생활을 할 때 스님의 입장과 신도분들의 관점을을 들으니 확 와닿네요. 감사합니다.

2016-01-19 08:46:07

전체 댓글 보기

스님의하루 최신글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