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6.1.12 (인도 7일째)
오후
성지순례 C팀 강가 강 투어


오전에 사르나트 순례 일정을 모두 마친 후 오후에는 인도의 전통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 곳이면서 힌두교의 성지인 바라나시의 강가강으로 향했습니다. 

강가강으로 향햐는 길은 너무나 많은 인파들이 있어서 자칫하면 사람을 잃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스님은 여러 차례 주의를 당부했습니다. 버스에 내려 두 명씩 짝을 지어 자전거 릭샤를 타고 다사스와메드가트로 향했습니다. 


다사스와메드가트에서 배를 탄 순례객들은 강가강을 따라 라지가트까지 향했습니다. 



중간에 강가강의 화장터에 가까이 다가가자 순례객들은 조용히 화장이 이뤄지는 풍경을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스님은 물끄러미 시신이 불에 타는 모습을 보고 있는 순례객들에게 인도의 화장 풍습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저기 계단에 저렇게 시신이 있잖습니까. 하나, 둘, 셋, 넷, 다섯... 계단에 많네요. 저길 보세요. 저쪽도 그렇고 저기 구석에 황색 금빛 천을 많이 갖다 버려놨죠? 저걸 분소의라고 해요. 분소의는 더 떨어진 옷이라기 보다는 시체를 쌌던 천이니 부정탄다고 해서 누구도 손을 안 대는 옷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수행자는 누구도 손 대기를 꺼려해서 버린 옷을 입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게 가사의 원형입니다.



저기 시신이 있는데 얼굴이 보이죠? 발도 다 보이네요. 저렇게 시신을 들고 와서 물에 한번 적셨다가 가져가잖아요. 만약 인도에서 한국사람이 죽으면 여기서 화장해서 유골만 가져가면 되는데 한국 사람들은 꼭 시신을 냉동시켜서 한국까지 가져오라고 하잖아요. 인도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아요. 관을 만드는 문화가 없기 때문입니다. 인도사람들은 가족이 죽으면 바로 이곳으로 가져와서 화장을 합니다.


자, 나무아미타불 10번 부르며 염불하겠습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왕생극락하옵소서.” 

돌아가신 분들의 극락왕생을 바라며 간절히 염불을 한 후 다시 스님은 강가강과 관련된 경전 이야기를 들려 주었습니다.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으니 경전에 나온 이야기 하나를 들려드릴게요. 어느 날 비사카부인이라고 하는 여성이 눈물을 흘리며 부처님을 찾아왔어요. 왜 그리 슬퍼하는지 물어보니 사랑하는 손자가 죽었다는 거예요. 그러자 부처님께서 ‘사랑하는 사람이 많으면 좋소? 적으면 좋소?’라고 물었어요. ‘많으면 좋다’고 하자 ‘사랑하는 사람이 이 쉬라바스티 시민만큼 많으면 어떻겠소?’라고 다시 물었어요. ‘그러면 그 사람은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일 것입니다’라고 부인이 대답했습니다. 


부처님이 다시 ‘그러면 이 쉬라바스티 성에는 하루에 몇 명이 죽소? 한 명, 두 명, 열 명?’ 하고 묻자 부인이 ‘그 이상 죽을 겁니다’라고 대답했어요. 하루 열 명이 뭐예요, 지금도 한꺼번에 열 명 이상 화장하고 있잖아요. 그러자 부처님이 ‘그러면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은 매일매일 슬피 울어야 겠구려’ 라고 했습니다. 그때 비사카부인이 깨달았어요. 그래서 눈물이 채 마르기도 전에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습니다. 

이렇게 죽은 사람 앞에서도 행복할 수 있는 게 해탈인데 여러분들은 지금 화장터를 보면서 좀 깨쳐졌어요? (모두 웃음)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기에 슬프다’, ‘사랑하는 사람이 많으면 행복하다’ 이 두가지는 모순이에요. 이 세상에 사랑하는 사람이 많으면 사랑하는 사람이 매일매일 죽을 거 아니에요. 그러면 그 사람은 매일매일 슬퍼야 하잖아요. 부처님은 그 슬픔에 어떤 모순이 있는지를 비사카 부인이 깨닫도록 한 거예요. 



강가강에서 하신 부처님 말씀 중 유명한 것으로 이런 이야기도 있습니다. 가미니라는 한 젊은이가 ‘저 바라문들이 말하기를 아무리 사람이 죄를 많이 지어도 강가강에서 목욕을 하면 하늘나라에 간다고 하는데 그게 사실입니까?’라고 물었어요. 그러자 부처님께서 ‘그들의 말이 맞다면 강가강에 사는 물고기가 가장 먼저 하늘나라에 가겠구나’라고 하셨어요. 얼마나 지혜로운 말씀입니까?”

강가강 위를 유유히 흘러가며 강가강과 관련된 경전 속의 이야기들을 들으니 그 이야기가 더욱 더 귀에 쏙쏙 들어왔습니다. 삶과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배에서 내려 다시 가트로 올라오는 길에는 강변에 많은 빨래들이 널려 있었습니다. 빨래하는 모습을 직접 볼 수는 없었는데 스님은 “인도 사람들은 우리처럼 빨래를 돌판에 놓고 방망이로 때리는 것이 아니라 옷을 돌판에 턱턱 치면서 빨래를 한다”고 얘기하자 모두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강가강 투어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스님은 강가강을 둘러본 소감을 순례객들에게 물어보면서 한마디 덧붙여 주었습니다. 



“화장하는 모습 잘 보셨어요? 나중에 스님도 죽거든 울고불고 하지 마세요. 알겠죠? 그 영감 온갖 것 간섭하고 바쁘게 살더니 이제 좀 쉬겠네 하면서 잘 죽었다고 생각해야 해요.” 

스님의 이야기에 모두 큰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웃고 있는 사이에 버스는 야사가 부처님을 만나기 위해 신발을 벗어 놓고 강을 건넜다고 하는 바루나강을 건너고 있었습니다. 곳곳에 경전에 나오는 지명들이 보여서 ‘정말로 그런 일이 있었겠구나’ 하는 것이 실감났습니다.

▲ 바루나 강

숙소로 돌아와서 조별로 저녁 식사를 했습니다. 전기밥솥에 밥을 앉히고 한국에서 가져온 반찬들을 꺼내니 순식간에 푸짐한 상이 차려졌습니다. 강가강에서의 감흥이 아직 가시지 않은지 밥을 먹으면서도 강가강의 화장터를 보고 난 소감을 계속 나누었습니다. 

저녁 6시부터는 스님이 성지순례를 떠나는 C팀 전체를 위해 부처님의 일생과 10대 성지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특히 C팀은 해외에서 오신 분들이나 정토불교대학생들이 아닌 일반 참가자들도 섞여 있어서 A팀과 B팀 때 보다 더 자세히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그 중에서 오늘은 부처님이 돌아가시기 직전의 마지막 해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 준 내용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부처님의 성도 후 6년까지는 연대순으로 경전에 기록이 잘 되어 있습니다. 굉장히 사실적으로 적혀 있어요. 그런데 활동하신 45년을 다 연대순으로 기록하기는 쉽지 않아서, 그 이후에는 연대순이 아니라 교화 사례별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 이후에는 몇 년도에 뭘 하셨는지 정확히 알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다가 부처님이 80세가 되어 돌아가시기 직전의 마지막 한 해는 매일 날짜별로 부처님의 삶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마지막 여행을 기록한 경전이 열반경입니다. 경의 시작을 보면 영축산에 부처님이 계실 때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빔비사라 왕의 아들인 아자타사투가 아버지를 죽이고 자기가 왕이 되었습니다. 나중에 그 아들도 아버지를 죽이고 왕이 되어 석가족을 멸망시켰어요. 아자타사투는 부처님과 적대 관계였다가 나중에 크게 뉘우치고 부처님의 착실한 재가신자가 되긴 했지만, 그 때의 아자타사투는 이웃 나라인 밧지족과 전쟁을 하려고 했습니다. 신하더러 부처님을 찾아가 이 전쟁에서 이기겠는지 물어보도록 시킵니다. 열반경은 그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아자타사투의 신하가 왕을 대신해서 부처님께 문안을 드리고 ‘지금 왕이 밧지족을 치려고 하는데 이 전쟁에서 승패가 어떻게 됩니까?’ 이렇게 물어요. 부처님은 이긴다거나 진다는 말씀을 안 하시고 대신 옆의 아난존자에게 묻습니다. ‘내가 옛날에 밧지족에게 이러저러한 것을 하라고 일렀다. 그런데 그들이 그것을 하고 있느냐?’ 이렇게 일곱 가지를 확인해요. 그 일곱 가지에는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것, 약자를 보호하는 것, 전통을 잘 계승하는 것 등이 있습니다. 아난다가 ‘그들은 아직도 그것을 잘 지키고 있습니다’ 이렇게 대답합니다. 이것이 나라가 망하지 않는 일곱 가지 법입니다. 대신이 들어보더니 ‘부처님, 일곱 가지 중의 한 가지만 지켜도 그 나라는 망하지 않겠습니다. 그런데 밧지족이 일곱 가지를 다 지키고 있다면 망할 리가 없습니다. 그러니 무력으로는 안 되겠고 다른 계책을 세워봐야 하겠습니다’ 이러고 돌아갑니다. 그러니까 결과적으로 전쟁을 막은 거예요. 부처님이 세상에 무관심했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전쟁 하지 말라’ 이렇게 말하지 않고도 전쟁을 막으신 겁니다.

그리고 부처님은 죽림정사로 오셔서 상가, 즉 승단이 망하지 않는 일곱 가지를 설하시고 파탈리푸트라로 가서 앞으로 200년 후 여기가 대도시가 되겠다고 예언하십니다. 

그리고 강가강을 건너서 바이샬리로 건너가 망고나무 아래에 앉아 계셨어요. 수행자가 자신의 망고나무 아래에 앉아 있으면 공양을 올리는 게 당시 풍습이었나 봅니다. 부처님이 앉아 계셨던 망고나무는 그 지역에서 천하제일 기생으로 손꼽히는 암나팔리의 것이었어요. 그래서 암나팔리가 마차를 타고 와서 부처님을 친견하고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깨달음을 얻었어요. 너무너무 기뻐서 부처님께 ‘내일 아침에 제가 공양을 올리겠습니다’ 하니 부처님이 승낙하셨어요. 

그리고 암나팔리가 돌아가는 길에, 부처님이 오셨다는 소식을 듣고 마차를 타고 오던 바이샬리의 릿차비족 왕족들과 마주쳤습니다. 왕족들보다 기생인 암나팔리가 부처님 식사 초대권을 먼저 가져가서 왕족들이 실망했습니다. 체면을 생각하면 자기들이 먼저 초대해야 하잖아요. 왕족들이 암나팔리에게 초대권을 넘겨달라고 부탁했지만 거절해서, 10만금을 주겠노라 제안했어요. 그랬더니 암나팔리의 대답이 재미있습니다. ‘어르신들, 호의는 고맙지만 싫소. 이 바이샬리 나라를 다 준다 해도 나는 응하지 않겠소.’ 

부처님의 법을 듣고 깨달은 사람들의 자존심이 어느 정도였는지 알 수 있어요. 이건 교만과는 성격이 다릅니다. 왕족들에게 태도가 그랬다고 경전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릿차비 족왕족들은 할 수 없이 부처님을 친견하고 부처님께 다시 요청합니다. ‘내일 아침에 우리가 식사 초대를 하겠습니다.’ 그러자 부처님이 선약이 있다고 거절하셨어요. 

초대권을 내어주지 않는 기생도 굉장하지만, 기생과 먼저 약속했다고 왕족의 초대를 거절하는 부처님도 굉장하죠? 제가 여러분들과 식사 약속했다가 청와대에서 초대를 받으면 어떻게 할까요? 전화해서 ‘내일 급한 일이 있으니 다음으로 미루자’라고 하는 게 십중팔구일 겁니다. (모두 웃음) 



빔비사라왕이 부처님을 왕궁에 여러 번 초대했지만 부처님은 한 번도 안 갔습니다. 빔비사라 왕은 부처님을 참으로 귀하게 여겨 가르침을 신실하게 따르는 제자였는데도 부처님은 왕궁에 한 번도 가지 않고 늘 산속의 동굴에 머무셨어요. 왕이 식사초대를 해서 왕궁에 부처님을 모시면 자기 인생 괴로운 걸 하소연할 텐데, 부처님이 왕궁에 안 오시니까 자기가 부처님을 찾아갈 수밖에 없잖아요. 부처님이 산꼭대기에 있으면 왕이 산꼭대기까지 가야 해요. 그래서 지금 왕사성 근방에 가면 동굴마다 ‘빔비사라킹로드’라는 게 있습니다. 왕이 부처님을 보러 가니까 신하들이 왕 때문에 죽기살기로 길을 닦아놓아서 아직도 그 축대가 남아 있어요. 부처님이 영축산에 계시니까 왕이 자기 고민이 있으면 부처님을 뵈러 올라가야 하는 거예요. 지금은 관광객이 많으니까 새 길을 닦았는데 그 밑에는 2,500년 전에 닦았던 그 길이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왕은 이 세상에서 제일 큰 집에 제일 좋은 마차에 제일 좋은 침실에 제일 좋은 음식에 제일 좋은 보석은 다 가지고 살아요. 부처님은 맨발에 다 떨어진 옷을 입고 밥은 얻어먹고 다니는 거지잖아요. 그런데 부처님이 괴롭다며 왕에게 뭔가 요구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어요. 신발 한 켤레 달라고 이야기해본 적도 없어요. 그런데 온갖 것을 다 가진 왕이 부처님을 찾아와 하소연한 적은 무척 많습니다. 

2,60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는 부처님을 흉내조차 내기 어렵습니다. 자는 것도 부처님을 흉내조차 낼 수 없고, 먹는 것도 흉내조차 낼 수 없고, 입는 것도 흉내조차 낼 수 없고, 세상에 대해서도 흉내조차 내기 어렵기 때문에 우리는 부처님을 존경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늘 만족하고 살아야 해요. ‘부처님도 이렇게 사셨는데 우리가 뭘 불평하겠느냐’ 이렇게 생각하면 우리는 호화판으로 사는 거예요. 



왕은 그렇게 많이 가지고도 늘 불안해서 침실 입구며 성문 안팎으로 경비병을 세우고 살지만 부처님은 높은 산속 동굴 속에서도 주위에 아무도 없이 잘 생활하지 않습니까. 이렇게 우리는 부처님의 삶을 통해 자유와 행복의 길이 뭔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260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들은 흉내내기조차 어려운 검소한 삶을 살았다는 말씀을 들으니 작은 것에 불평 불만을 가졌던 모습들이 되돌아봐졌습니다. 

또 스님은 열반에 들기 전에 부처님이 하신 말씀을 소개하면서 부처님의 위대함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을 한가지 더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부처님은 또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뒤에 반드시 ‘내가 부처님한테 들었는데...’, ‘부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반드시 생겨날 거라는 거예요. 그럴 때 ‘그건 경전에 없으니 네 이야기는 거짓말이야’ 이렇게 말해도 안 되고, 부처님한테 들었다고 한다 해서 ‘그러냐?’ 이렇게 말해도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가 말할 때 지금까지 경전에 기록돼 있는 내용을 살펴봐서 내용이 이와 합당하면 그의 이야기를 수용하고, 내용이 합당하지 않으면 그의 이야기를 수용하지 말라’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부처님이 말했다고 해서 무조건 믿지 말라는 거예요. 부처님의 위대함은 이런 데 있어요. 


과거로부터 전승되어 내려오는 윤리나 도덕, 관습이나 습관, 계율이나 경전에 근거해서 진리를 검증할 수가 없다는 거예요. 과거로부터 전승되어 내려오는 것이라고 해서 다 진리라면 강가강에서 목욕하면 천국에 간다는 것도 진리가 되겠죠. 그래서 항상 이치에 맞는지를 살펴야 합니다. 설법할 때도 ‘처음도 중간도 끝도 조리 있게 법을 설해라’ 이런 이야기가 나오잖아요.

그래서 붓다의 가르침은 지금 시대에도 참으로 합리적이고 이치에 맞으며 동시에 이론에 갇히지도 않는 진리예요. 그렇게 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인도에 와서 순례를 하는 거예요.

한국불교는 무조건 좋다거나 나쁘다고 말해도 안 되고, 소승불교를 무시해서도 안 됩니다. 소승불교는 소승불교의 수행법과 계율과 부처님의 가르침에 충실하려고 하는 태도 등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으니 ‘소승’이라는 말만 가지고 무시하면 안 돼요. 또 우리 대승불교에도 모순도 있고 한편 많은 장점도 있습니다. 티벳 불교도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어요. 

그러나 문화와 담마는 구분해야 합니다. ‘담마’는 ‘진리’라는 뜻이에요. 우리는 진리에 귀의하는 것이지 어떤 문화에 귀의하는 것은 아닙니다. 문화는 나라마다 서로 다르고, 그것은 서로 존중해야 합니다. 그러니 티벳불교나 남방불교를 보고 ‘에이, 저건 불교가 아니다’ 이런 말을 하면 안 돼요. 그건 티벳불교 문화이고 남방불교 문화니까 존중해야 합니다. 한편 요즘 우리나라 젊은 스님들은 우리나라 불교를 무시하고 티벳이나 미얀마로 가서 배우는 데만 열을 올리는데 그것도 올바르지 않아요. 불교만 잘났다고 내세우면서 기독교는 다 틀렸다고 해도 안 되고, 그렇다고 불교와 기독교가 똑같다고 말해도 안 됩니다. 사과와 배는 같은 과일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똑같은 것은 아니어서 서로 다르잖아요. 사과만 과일이고 배는 과일이 아니라고 말해도 안 됩니다. 



그런 데서 우리가 자기 정체성도 가지면서 다른 것들에 대한 이해와 포용성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이 중도예요. 정체성이 너무 지나치면 배타성이 되고, 포용성이 너무 지나치면 자기 정체성이 없어져버려서 이렇게 양극단으로 치우치게 됩니다.”

이렇게 태어나서 열반하실 때까지의 부처님의 일생에 대한 모든 설명을 마치니 강연을 시작한지세 시간이 거의 다 되었습니다. 

밤이 늦어져서 강연을 마쳐야 할 시간이 되자 스님은 마지막으로 바깥 구경만 하지 말고 자기 내면 구경도 할 것을 강조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바라나시에서 보드가야를 지나 라즈길로 갑니다. 라즈길에서 바이샬리를 거쳐서 쿠시나가라로 가서 부처님 열반하신 모습을 보고, 룸비니와 카필라바스투로 가서 부처님의 태어나심과 어릴 때 성장과정, 사문유관 등을 살펴볼 예정입니다. 그리고 부처님이 가장 오래 머무셨던 쉬라바스티에 가서는 주로 부처님의 교화사례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나서 부처님이 어머니를 위해서 하늘나라에 가서 교화하고 내려오셨다는 상카시아를 마지막으로 성지순례가 끝납니다. 상카시아에서 가사를 반납해요. 

이런 순례를 순례객으로서 다니면 재미가 있어요. 오줌누는 것도 재미있고, 모든 에피소드가 다 재미있어집니다. 그런데 이걸 여행으로 생각하면 좀 힘들어요. 세수도 잘 못하고,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쫓기기도 하고, 무거운 짐도 들어야 한다고 성질내면서 다니면, 돈은 돈대로 버리고,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몸과 마음은 괴로운 지옥 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기쁘게 다니면 돈도 안 아깝고, 시간도 안 아깝고, 이보다 더 큰 경험이 없어요. 그러니 바깥 구경만 하지 말고 자기 내면 구경도 하세요. 

다니면서 보니 오늘도 아주 복잡하죠? 생기가 돌지 않습니까? 저는 인도에 올 때마다 홍수에 쓰레기 쓸려 내려가듯이 사람과 소와 돼지와 릭샤가 막 섞여서 흐르는 광경을 보면서 이런 데 살면 우울증에 걸릴 일은 없겠다 싶어요. 생기가 저절로 돌고 어딜 가도 친절하잖아요. 어디서 여러분들을 이렇게 환영해주겠어요? (모두 웃음) 



이처럼 재미있게 생각하면 재미있어요. 그런데 여러분들은 여기 와서 3일만 지나면 인도를 다 고쳐놓고 가려고 합니다. ‘인도 정부는 뭐하나? 길도 안 고치고 뭐하나? 이런 데는 좀 이렇게 하지. 인도 사람은 왜 이것도 안 하느냐?’... 그래서 순례 왔다가 인도 대통령 노릇을 해요. 그런 교만을 떨면서 자기만 괴롭히다가 가지 말고, 여기에 순응하면서 즐기셔야 합니다. 알았죠?” (모두 웃음) 

스님의 이야기에 모두들 박장대소를 하면서 웃었습니다. 오늘 강연은 해외 참가자, 일반 참가자 등 초심자들을 더욱 배려하는 스님의 애정을 많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연이은 강연과 순례 일정으로 건강이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무려 세 시간 동안 열강을 해준 스님에게 순례객들은 뜨거운 박수 갈채를 보냈습니다. 



내일은 스님도 C팀과 함께 버스를 타고 수자타아카데미가 있는 가야로 향합니다. 새벽 5시에 바라나시를 출발해 낮 12시 무렵에 수자타아카데미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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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댓글 50

0/200

광운 서대뭇

알아차리고
깨어있겠습니다 _()_

2022-04-11 04:43:22

베라

인도 대통령 노릇하려한다는 스님 멘트가 참 위트있으시네요..^^ <br />사실 허를 찌르는 멘트인데 (전 이 대통령 노릇하시는 분들 수없이 모시다가 병들어 죽을 뻔 했는데..)<br />스님이 말씀하시니 너무 재미있습니다..<br />감사합니다.

2016-01-23 00:15:46

이지은

고맙습니다 스님.

2016-01-17 09:3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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