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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인도에 머문지 7일째를 맞이하여 정토회 성지순례단 C팀을 이끌고 붓다가 처음으로 법을 설한 사르나트와 인도인들이 신성시하는 강가강을 둘러보았습니다.
오늘도 각자 숙소에서 새벽 예불과 기도를 마치고 6시 30분에 사르나트로 향했습니다. 7시에 정문이 열리자마자 제일 먼저 정토회 순례단이 향을 피우며 입장을 했습니다.
▲ 부처님이 다섯 비구에서 첫 설법을 한 곳, 다르마라지크 수투파
“석가모니불”을 염하며 한 발 한 발 스님을 따라 걸으면서 부처님이 처음으로 다섯 비구에서 법을 설한 자리에 세워진 다르마라지크수투파를 한 바퀴 돌고, 이어서 두 번째로 법을 설한 곳에 세워진 다메크수투파를 세반퀴 돌았습니다.
▲ 부처님이 두번째로 법을 설한 곳, 다메크 수투파
안개가 조금씩 걷히고 동이 틀 무렵, 순례단 C팀 100여 명은 다메크수투파 앞에서 정성을 다해 예불공양을 올렸습니다. 예불이 끝나자 스님은 15일 동안 순례를 떠나는 대중들을 위해 축원 및 발원 기도를 해주었습니다.
“우러러 바라옵니다. 시방삼세 부처님과 팔만사천 큰 법보와 보살성문 스님네께 지성귀의하오며 발원하옵나니 전세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정토행자들이 오늘 이렇게 부처님께서 처음 진리의 법바퀴를 굴리신 바라나시 사르나트 녹야원 다메크스투파 앞에서 부처님께 공양 올리고 부처님을 찬탄하고 공경하면서 참회하고 발원하옵니다.
이와 같이 참배한 공덕으로 오늘 이 자리에 참여하신 순례대중 일동이 과거 지난 생에 지은 모든 업장 소멸되고 세세생생 보살도를 행하여 해탈과 열반을 증득하기를 바라옵니다. 저희들의 간절한 발원을 제불보살님들께서는 증명하여 주옵시고 천룡팔부 신중님들은 옹호하여 주옵소서.
또한 오늘 초전법륜성지 참배 인연공덕으로 이번 14박 15일 순례기간 동안 아무런 사고 없이 건강하게 기쁜 마음으로 순례를 마칠 수 있도록 보살펴 주옵소서.
오늘 저희들이 부처님의 초전법륜성지 녹야원 참배 인연 공덕을 일체 중생에게 회향하오니 고통 받는 일체 중생들 다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여 주옵시고, 특별히 저희가 태어나고 자란 한반도에 다시는 전쟁이 없는 평화가 정착되고 남북이 화해하고 협력하여 마침내 통일이 이루어지도록 옹호하여 주옵소서.
먼저 돌아가신 조상영가님들께도 회향하오니 조상영가님들뿐만 아니라 일체 유주무주 모든 고혼들 함께 왕생극락케 하옵소서. 오늘 저희의 이런 발원을 제불보살님들께서는 증명하여 주옵시고 천룡팔부 신중님들은 저희의 이 발원이 성취될 수 있도록 옹호하여 주옵소서.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시아본사 석가모니불.”
스님의 간절한 목소리를 들으며 순례단도 한 마음이 되어 합장을 하고 마음을 모았습니다. 특별히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발원할 때는 많은 대중들의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했습니다.
예불을 마치고 자리에 앉은 대중들을 향해 스님은 이곳 사르나트에서 성지순례를 시작하는 이유에 대해 간단히 이야기하면서 처음으로 법을 설하실 때의 정황과 그 때 이곳에서 일어난 몇 가지 일화들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바로 이곳 사르나트에서 부처님이 설법을 하심으로써, 그리고 그 설법을 듣고 깨달음을 얻은 이가 나타남으로써 비로소 우리 중생은 부처님이 이 세상에 출현하신 줄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중생에게 있어서 부처님이 출현한 이곳 사르나트에서 우리가 순례 여정을 출발하기로 했어요. 교통상황이나 순서로 봐도 여기서 출발해 한 바퀴를 도는 게 가장 효과적입니다. 그래서 해외에서 인도로 들어올 때 델리로 들어오거나, 캘커타로 들어오거나, 뭄바이로 들어오는 등 여러 방법이 있고, 인도 안에서도 기차든 비행기든 여러 가지 오는 방법이 있지만, 전부 바라나시에 모여 출발해서 부처님의 8대 성지를 순례하도록 계획을 잡았습니다.”
이어서 야사라는 한 청년의 출가에 대해 재미있게 이야기를 한 후 그 아버지인 구리가 장자의 삼귀의 오계 수계와 그 의미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이곳 바라나시에서 야사라는 청년이 출가를 했는데, 야사가 ‘출가하겠습니다’라고 했더니 부처님께서 이렇게 대답했어요. ‘오라, 비구여.’ 이게 끝이예요. (모두 웃음) 어떤 절차가 필요 없어요. 옛날에는 깨달으면 그 자리에서 출가를 했어요. 부처님께서 ‘오라, 비구여. 여기 법이 잘 설해져 있도다. 부지런히 정진해서 괴로움의 뿌리를 뽑아라.’ 이렇게 말하자, 곧바로 야사는 출가 사문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야사의 아버지인 구리가 장자가 아들이 없어진 줄 알게 되었어요. 친구들에게 물어봐도 모른다 하고, 온 동네를 다 찾아도 아들이 없어요. 하인을 풀어서 찾으라 시켜놓고 자기도 찾으러 다니다가 바루나 강변에서 아들의 신발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강을 건너 이곳까지 와서 부처님을 만나게 되었어요.
우리 아들 못 봤냐고 물으니까 부처님께서는 ‘장자여, 여기서 잠시 기다리시오’ 이렇게 마음을 편안하게 진정시킨 뒤 야사 비구를 보여줬어요. 아들을 본 장자가 몹시 반가워하면서 ‘너희 어머니가 널 찾느라 몹시 괴로워하고 있으니 얼른 집으로 돌아가자’라고 했지만 아들이 안 가겠대요. 아버지가 ‘수행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너는 귀하게 자랐기에 이런 들녘이나 숲속에서 살 수 없다’라고 다시 설득했더니 아들이 이렇게 말했어요. ‘아버지, 제 얼굴을 한번 보십시오. 이제까지 저를 본 중에 지금처럼 제가 행복해 보인 적이 있습니까? 제가 이 행복한 곳을 두고 그 괴로운 곳으로 왜 돌아가야 합니까?’
아버지와 아들이 생각 차이가 많죠? 아버지는 아들이 그 동안 좋은 곳에 살았으니 먹고 입고 자는 것이 불편한 이곳에서는 못 산다고 만류하는 것이고, 아들은 지금 이렇게 편안한 곳에 있는데 그 괴로운 세속으로 왜 다시 돌아가야 하냐는 거예요. 아버지가 아들의 답을 듣고 아들을 보니까 과연 얼굴이 환하고 정말 행복해 보여요. 그래서 아들의 권유로 아버지가 부처님께 법을 청했고 부처님은 장자를 위해서 법을 설했는데, 장자도 법을 듣자 깨달음을 얻었어요. 그래서 구리가 장자는 최초의 재가수행자가 되었습니다.
‘재가신자’라는 말은 최근에 생긴 말입니다. 원래 불교에는 ‘신자’라는 말은 없고 ‘수행자’란 말만 있습니다. 출가해서 수행하는 사람이 있고 재가에서 수행하는 사람이 있는데 구리가 장자는 재가수행자가 된 거예요. 이 분의 신앙고백이 이렇습니다.
‘위대하셔라, 세존이시여. 위대하셔라, 세존이시여. 마치 넘어진 자를 일으켜 세워주심과 같고, 덮여 있는 것을 벗겨내어 보여주심과 같고, 길을 잃고 헤매는 자에게 길을 가르쳐주심과 같고, 어두운 밤에 등불을 비춰주심과 같이 갖가지 설법으로 저를 깨우쳐 주셨습니다. 저는 오늘부터 거룩한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거룩한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거룩한 상가, 스님들께 귀의합니다.’
이렇게 스스로 삼보에 귀의하자 부처님께서 답하셨습니다.
‘장하다. 삼보에 귀의한 자는 다섯 가지를 지켜야 한다. 첫째, 살아있는 생명을 함부로 해쳐서는 안 된다. 둘째, 주지 않은 남의 물건을 함부로 가져서는 안 된다. 셋째, 삿된 음행을 해서는 안 된다. 넷째,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 다섯째, 삿된 소견을 가져서는 안 된다.’
마지막에 ‘삿된 소견을 갖지 말라’는 나중에 ‘술 마시고 취해서는 안 된다’ 로 바뀌었어요. 그래서 구리가 장자가 ‘오늘부터 목숨을 마칠 때까지 이 가르침을 지키겠습니다.’라고 하면서 기꺼이 오계를 받자 최초의 재가수행자가 되었습니다.
구리가 장자의 공양 초청을 받아 부처님과 야사는 장자의 집으로 갔습니다. 집에는 야사의 어머니와 부인이 있었지만 야사는 이미 출가했으니 수행자로서 집에 간 거예요. 그래서 공양을 받고 야사의 어머니와 부인을 위해서 부처님께서 설법을 하셨는데, 설법을 들은 두 분 역시 다 깨달음을 얻었어요. 그래서 그들 또한 삼보에 귀의하고 오계를 받아서 재가수행자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이 세상에는 사부대중(四部大衆) 중 세 가지가 처음으로 생겼어요. 출가 남자 수행자인 ‘비구’, 재가 남자 수행자인 ‘우바새’, 재가 여자 수행자인 ‘우바이’가 생겼습니다. 출가 여자 수행자인 ‘비구니’는 한참 후에 바이샬리에서 생깁니다.
그래서 이곳에서 구리가 장자가 계를 받았듯이 우리도 오늘 이곳에서 삼귀의 오계를 받고 재가수행자가 되어서 가사를 수하게 됩니다. 여기 있는 동안은 출가수행자처럼 가사를 수하고 12일 동안 수행자로서 순례를 합니다. 8대성지 순례를 다 마친 뒤 상카시아에 가면 속퇴를 시켜드립니다. 그때 계속 출가 수행자로 남고 싶은 사람은 그냥 저를 따라가면 되고, 다시 돌아가고 싶은 사람은 가사를 반납하고 돌아가면 돼요. 그러나 여기 있는 동안은 모두 수행자로 살아야 합니다. (모두 웃음)
그리고 이곳 사르나트에서 전법 선언을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나도 우루벨라의 병장촌으로 가서 교화 설법하겠다’라고 하셨습니다. 우루벨라는 부처님이 6년 고행하셨던 곳이에요. 두 사람씩 가지 말고 혼자서 가라고 해서 다들 흩어지고, 부처님은 여기서 혼자 다시 보드가야로 가셨어요. 보드가야에서 여기까지 혼자 오셨다가 다시 혼자 가신 것입니다.
이렇게 여기에서 첫 법바퀴를 굴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 여기에 온 거예요. 스님이 이렇게 이야기하니까 여러분들이 ‘스님이 부처님을 좋게 설명하려고 혼자서 지어서 하는 이야기 아닌가’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불경은 굉장히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지금 경전을 펴보세요.”
이어서 경전을 펴고 방금 스님이 설명한 내용을 경전을 독송하며 다시 떠올려 보았습니다. 스님이 아주 실감나는 설명 덕분에 마치 그 당시를 그대로 재현해보는 것처럼 머릿속에서 상상을 해볼수 있었습니다. 경전의 내용도 더 깊이 다가왔습니다.
▲ 경전 독송
경전 독송까지 마치고 부처님이 처음으로 법을 설하신 그 때의 정황을 떠올리며 명상을 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참으로 소중한 곳에 내가 지금 와 있구나’ 하는 마음이 저절로 일어났습니다.
해가 다 뜨고 따뜻한 기운이 감돌자 잠시 휴식을 취하며 식사 시간을 가졌습니다. 어젯밤 숙소에서 조별로 전기밥솥에 밥을 해놓도록 했는데, 오늘은 첫 번째로 전기밥솥을 개봉하는 순간이여서 밥이 잘 된 조와 그렇지 않은 조 사이에 희비가 엇갈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지에서 오순도순 함께 먹는 밥맛은 꿀맛이었습니다.
▲ 점심시간
대중이 식사를 하는 동안 스님은 아이들이 물건을 훔쳐가지 않도록 법회가 열린 장소를 지켜주었습니다.
다시 법회가 열렸던 곳으로 모두 모이자 드디어 삼귀의 오계 수계식을 거행하였습니다. 스님이 계사가 되어 삼귀의 오계를 설하자, 대중들은 마치 2600여 년 전에 바로 이곳에서 부처님께 귀의한 구리가 장자처럼 기쁜 마음으로 참회와 연비를 마쳤습니다.
▲ 삼귀의 오계 수계식
“이제 참회와 연비를 마쳤습니다. 선남자, 선여인들이여, 따끔한 그 찰나에 여러 생에 지은 모든 죄업이, 마치 마른 풀이 불에 타 사라지듯 즉시 소멸되었습니다. 여러 대중들의 몸과 마음은 깨끗해지고 순결해졌습니다. 이제 그 깨끗하고 순결한 마음으로 다시 한번 삼보님께 귀의할 차례입니다.”
“저희 수계자들은 거룩하신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저희 수계자들은 거룩하신 부처님의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저희 수계자들은 거룩하신 대중들께 귀의합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을 재가 수행자로 받아주십시오. 저희들은 오늘부터 이와 같이 목숨이 다하기까지 귀의합니다.”
순례단은 이렇게 삼귀의를 한 후 오계 수계를 약속했습니다. 스님이 오계에 대해 하나 하나 설하자 모두 “잘 지키겠습니다” 하고 크게 대답하고 절을 했습니다.
삼귀의 오계를 수계 받은 순례단 모두에게 법사님들은 가사와 바랑을 전달했습니다. 태어나서 가사를 처음으로 수해보는 대중들이 주위를 두리번거리자 스님은 어떻게 가사를 수하는지 자세히 알려주며 “오늘부터는 성지를 참배할 때마다 꼭 가사를 수해야 합니다” 라고 강조했습니다.
▲ 가사를 수하는 순례객들
여법하게 가사를 수하자 정말로 출가수행자가 된 기분이 들었습니다. 순례단은 정말로 수행자의 마음으로 15일 동안 순례를 떠날 것을 다짐하며 부처님이 법을 설하신 다메크수투파를 향해 삼배를 올렸습니다.
수계식을 모두 마치고 마지막으로 스님은 이곳 사르나트에 있는 유적에 대해 자세히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특히 신물간다쿠티를 세운 담마팔라 스님에 대해서는 특별한 인연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저기 보이는 신물간다쿠티는 마하보디소사이어티를 창시한 담마팔라가 지은 절입니다. 참 묘하게도 그 분과 우리 한국 불교를 일으켜 세우신 용성 조사님은 닮은 점이 많습니다. 그 분이 세운 단체 이름이 마하보디소사이어티인데, 용성 조사님이 세운 단체 이름도 대각회입니다. 이름이 똑같습니다. ‘대’는 ‘마하’를 뜻하고, ‘각’은 ‘보디’를 뜻하고, ‘소사이어티’는 ‘회’를 뜻합니다. 그리고 하신 일도 담마팔라 스님은 인도불교 부흥을 시작했다면, 용성 조사님은 조선불교 부흥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두 분은 교류도 있으셨어요. 기록은 없지만 아마도 용성 조사님께서도 인도 성지순례를 하시는 중에 담마팔라를 만난 것 같아요. 담마팔라가 일본에 왔다가 한국까지 와서 용성 조사님께 부처님의 사리를 주고 갔습니다. 조계사 앞마당에 사리탑이 하나 있는데, 그 사리탑은 용성 조사님이 담마팔라로부터 받은 사리를 봉안해 놓은 것이예요.”
비행기도 없던 시절에 어떻게 용성 스님과 담마팔라가 서로 교류를 할 수 있었는지 다소 놀랍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제서야 왜 용성 스님이 인도에 있는 5대 성지를 잘 가꾸어라는 유훈을 남겼는지도 어렴풋이 이해가 되는 듯 했습니다.
이어서 다함께 기념 사진을 찍었습니다. 스님의 안내에 따라 순식 간에 100여 명의 대중들이 나란히 줄을 섰습니다.
▲ 단체사진
또 단체사진을 찍은 이후에는 곧바로 조별 사진을 찍었습니다. 두 조씩 순서대로 동시에 포즈를 취하자, 그 사이를 스님이 번갈아 가며 아주 빠른 속도로 사진을 찍을 수 있었습니다. 대중들은 효율적으로 사진을 찍는 스님의 모습을 보며 모두들 감탄을 했습니다.
▲ 조별사진
다음은 법사님들의 안내에 따라 사르나트 곳곳을 둘러보았습니다. 다메크수투파 앞을 지나 다르마라지크수투파와 물간다쿠티를 더 자세히 둘러보고, 사르나트박물관, 신물간쿠티에 차례대로 가까이 가보았습니다. 1호차는 유수 스님, 2호차는 희광 법사님, 3호차는 스님이 직접 안내를 해주었습니다.
▲ 부처님이 성도 후 첫 안거를 머무신 곳, 물간다쿠티
순례를 마치고 나서는 다섯 명의 친구들이 부처님을 영접한 자리에 세워진 영불탑을 참배했습니다. 스님은 대중들을 이끌고 영불탑을 한 바퀴 둘러본 후 다함께 탑을 향해 삼배를 하도록 안내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짧게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 영불탑
“이곳이 부처님과 5비구가 처음 만난 영불탑입니다. 모든 탑은 처음부터 이렇게 크게 지어진 것이 아닙니다. 아쇼카대왕이 지을 때는 작게 지었고, 그 뒤에 쿠샨왕조 때 덧붙이고, 굽타왕조 때 또 덧붙인 겁니다. 그래서 규모가 이렇게 커진 겁니다.
인도에 이렇게 와보면 경전에 나오는 얘기들의 흔적이 다 남아 있습니다. 부처님이 5비구와 처음 만난 곳, 첫 번째로 설법한 곳, 두 번째로 설법한 곳, 부처님이 머무시던 곳 등 많은 곳에 기념탑을 세웠기 때문에 경전에 나온 내용 그대로 그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이것으로 사르나트 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 오후에는 인도의 전통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 곳이면서 힌두교의 성지인 바라나시의 강가강으로 향했습니다.
강가강 순례 이야기는 다음 이야기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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