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6.1.7 (인도 2일째) 성지순례 A팀 바라나시 도착


 

안녕하세요. 인도에서의 2일째 아침이 밝았습니다. 오늘 드디어 첫 번째로 성지순례 A팀이 바라나시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스님은 공항에서 나오는 순례객 한 명 한 명에게 환영의 마음을 담아 직접 꽃목걸이를 걸어주었습니다. 

 


▲ 바라나시에서의 일출 모습

 

바라나시 숙소에서 새벽 예불과 기도를 마친 스님은 오전 내내 성지순례 실무 준비상황을 점검한 후 11시에 순례객을 마중하기 위해 공항으로 향했습니다. 

 

바라나시 공항에 도착한 스님은 순례객을 환영해주기 위해 꽃목걸이 120여 개를 보자기에 싸서 도착장으로 향했습니다. 

 

▲ 꽃목걸이를 직접 들고 온 스님
 

12시가 되자 수하물을 모두 찾은 정토회 성지순례단 A팀이 선주 법사님과 자광 법사님의 인솔로 드디어 줄을 지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공항에서 나오자 마자 순례객 모두를 깜짝 놀라게 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스님이 직접 꽃목걸이를 들고 환한 웃음을 지으며 서 있었던 것입니다. 모두들 깜짝 놀라 어쩔줄 몰라 했습니다. 어떤 분들은 “어머나! 이게 꿈이야 생시야!” 하며 너무나 기뻐했고, 어떤 분들은 “세상에!” 하며 감격해서 할 말을 잃은 듯 했습니다. 예고되지 않은 갑작스런 이벤트에 모두들 기뻐했습니다. 

 


 


 

스님은 한 분 한 분에게 꽃목걸이를 걸어주며 “인도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이어서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 순례객들을 14박 15일 동안 성지로 데려다 줄 버스가 도착했습니다. 순례객들은 신이 났는지 버스 앞에 삼삼오오 모여 스님이 걸어 준 꽃목걸이를 자랑삼아 기념사진을 즐겁게 찍었습니다. 

 


 

정토회 성지순례단 A팀을 총괄하는 선주 법사님의 신호에 따라 버스들이 일제히 출발했습니다. 버스가 출발하자 송수신기를 통해 유튜브와 팟캐스트에서 늘 듣던 익숙한 스님의 목소리가 흘러나왔습니다. 

 

스님은 먼저 “바라나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어제 저녁에 잘 주무셨어요? 못 잤죠?”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순례객들이 “예” 하면서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A팀은 어제 오후 1시 50분에 한국을 출발하여 밤 9시 30분에 델리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델리 공항에서 침낭을 깔고 노숙을 한 다음 오늘 아침 10시 15분 비행기를 타고 바라나시에 도착했습니다. 

 


▲ 델리공항에서 하룻밤을 잔 순례객들

 

어제 공항에서 노숙을 했기에 힘들 수도 있었던 순례객들의 마음을 헤아리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서 순례를 떠나는 것이기에 우리는 어떤 마음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 강조했습니다. 

 

“인도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우리는 여행객이 아니라 순례객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밥은 얻어드시고, 옷은 버린 걸 주워입으시고, 잠은 나무 밑에서 주무심으로 해서 의식주에서 완전히 해방된 삶을 사셨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들도 앞으로 의식주는 걱정하면 안 돼요. 성지순례 와서 의식주 불평하는 사람은 차에서 그냥 내려놓고 가버릴 거예요. 하하하. (모두 웃음) 

 

 

첫째, 음식은 3일 정도 굶어도 안 죽습니다. 제가 70일까지 굶어봤는데 안 죽었습니다. 이미 이렇게 실험을 해봤으니까 걱정할 필요가 없어요. 여기서 지내는 21일 동안 하나도 안 먹어도 아무 문제가 없어요. 그러나 예외가 있습니다. 당뇨병 환자는 굶으면 안 돼요. 당뇨병 환자는 당분이 떨어지면 죽진 않아도 뇌에 에너지가 공급이 안 돼서 정신이 가버려요. 

 

둘째, 옷은 좀 꾀죄죄해도 괜찮으니까 ‘갈아입었네’, ‘못 갈아입었네’ 이렇게 따지면 안 돼요. 대신 색은 맞춰서 입어야 해요. 즉, 내일 가사를 받으면 반드시 걸치고 다녀야 합니다. (모두 웃음) 

 

셋째, 자는 것은 첫날인 오늘과 내일,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마지막 날, 이렇게 사흘만 호텔에서 묵습니다. 오늘처럼 호텔에 묵을 때 씻어야 해요. 나머지 기간은 모두 학교나 절 같은 순례자 숙소에서 잡니다. 호텔에서 자는 것은 바라나시에서 오늘과 내일, 아그라에서 마지막 날 하루입니다. 아그라에서는 오늘보다 더 좋은 호텔에 묵을 거예요. 그래야 한국 갈 때 호텔에서 잤다는 기억을 남겨서 가죠. 순례하는 마음은 단단히 갖고 오셨어요?”

 

“예!”

 


 

“먹는 것이나 자는 것을 두고 불평하면 안 돼요. 침낭 다 챙겨오셨죠? 침낭만 가져왔으면 걱정할 것 없습니다. 밥은 안 먹어도 되고, 옷은 이미 입고 있고, 잠은 안 잘 수 없는데 침낭만 있으면 길거리에서 자도 돼요. 아침에 추워봐야 10도, 12도 정도니까요.”

 

부처님이 어떻게 사셨는지를 이야기하자 모두들 불평이 쑥 들어가고 웃음만 남았습니다. 한국에서 사전교육을 받을 때 이미 다 숙지한 내용이라 이제는 현장에서 즐기는 일만 남은 것 같습니다. 

 

바라나시 도심에 점점 가까워지자 스님은 ‘바라나시’라는 도시에 대해 개괄적으로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바라나시는 부처님 당시에는 카시국의 수도였습니다. 부처님 당시부터 카시산 비단이 아주 유명했습니다. 지금도 바라나시는 비단과 공예가 유명합니다. 바라나시라는 지명보다 카시가 더 옛날 지명이에요. 인도 사람들은 카시 또는 바라나시라고 불렀고, 서양 사람들이 들어와서는 베나레스라고 불렀어요. 카시(Kashi), 바라나시(Varanasi), 베나레스(Benares) 모두 같은 지역을 가리키는 이름입니다. 지금은 그냥 바라나시라고 불러요. 강가강과 지류인 바루나강과 아시강, 그 사이에 도시가 생겼기 때문에 ‘바라나시’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바라나시는 현존하는 도시 중 가장 오래 전부터 사람이 살아온 도시라고 알려져 있어요. 옛날에 사람이 많이 살았던 도시들 대부분이 중간에 사람이 살지 않게 되어 없어졌는데, 바라나시는 옛날부터 지금까지 계속 사람이 살아왔어요. 그래서 바라나시는 도시가 생긴 지 약 4천 년이 되었다고 합니다. (모두 감탄) 

 

부처님 당시에도 바라나시는 한 나라의 수도로 아주 유명한 도시였는데 지금도 120만 명 정도가 사는 도시입니다. 부처님 당시의 큰 도시들은 지금 거의 다 없어지고 빈터나 작은 마을로만 남았습니다. 왕사성, 사위성, 카필라성, 바이샬리가 다 그래요. 그런데 이 바라나시만 그때도 큰 도시였고 지금도 큰 도시로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이곳은 힌두교 제일의 성지입니다. 강가강은 전체가 다 성스러운 강이지만 바라나시 앞을 흐르는 이 유역을 특히 성스럽게 여겨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몸을 씻고 경배를 드립니다. 바라나시는 힌두교의 본거지이며 바라나시 힌두대학이 아주 유명합니다. 불교인에게는 부처님께서 처음으로 설법을 하신 곳이여서 성지로 여겨지는 곳이고요.

 

바라나시에 가봐야 인도에 온 기분을 제대로 느낍니다. 인도에 온 기분이라면 우선 뭘까요?”

 

“더럽다는 거요.” (모두 웃음)

 


 

“복잡하다는 거예요. 엄청나게 북적이는 가운데 소도 다니고, 말도 다니고, 개도 다니고, 사람도 걸어도 다니고, 릭샤도 다니고, 오토바이도 다니고, 자전거도 다니고, 차도 다닙니다. 3천 년 동안 인간이 개발한 모든 탈 것이 한꺼번에 다녀요. 탈 것 종류가 얼마나 되는지 나중에 한번 세어보세요. 오토바이, 자전거, 자전거 릭샤, 오토바이 릭샤, 자동차, 소가 끄는 수레, 말이 끄는 수레, 사람이 끄는 수레 등등 끝이 없어요. 전부 세어보면 지금까지 인류가 개발한 모든 교통수단이 한꺼번에 전시된 박물관이나 다름없어요.”

 

스님의 설명을 들으며 버스 창밖을 바라보니 정말로 온갖 탈것들이 뒤엉켜 굴러가고 있었습니다. 

 


 

거기다 경적 소리는 얼마나 삑삑 거리는지 정말로 ‘살아있음’이 저절로 느껴졌습니다. 마치 서로 다른 온갖 것들을 포용하는 용광로 같았습니다. 이런 모습 때문에 부처님이 인도에서 출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잠시 해보았습니다. 

 

스님의 설명을 들으며 1시간을 달려 드디어 사르나트에 도착했습니다. 오늘은 사르나트를 참배하지는 않고, 내일 사르나트 박물관이 문을 닫기 때문에 박물관만 먼저 관람을 했습니다. 

 

박물관 입구에서는 카메라나 스마트폰을 비롯한 촬영을 일절 금하고 있어서 사진을 찍지는 못했습니다. 스님은 순례객들을 이끌고 박물관 안으로 들어가 구석구석을 자세히 안내해 주었습니다. 특히 조각 작품들에 대한 위트 있는 설명에 간간히 웃음이 터져나오기도 했습니다. 

 


▲ 사르나트박물관

 

순례객들은 사르나트박물관 관람을 마치고 나서 오후 2시가 다 되어 숙소에 도착해 짐을 풀었습니다. 

 

이어서 오후 3시에는 방콕을 경유하여 오는 팀이 덕생 법사님의 인솔로 바라나시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스님은 숙소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늦게 도착한 순례객들이 버스에서 내리자 한 명 한 명에게 직접 꽃목걸이를 걸어 주었습니다.

 

저녁 6시부터는 만찬과 더불어 성지순례 입재식이 열렸습니다. 원래 성지순례 기간 동안 조별로 직접 밥을 해서 먹어야 하는데, 오늘과 마지막날만 예외로 식당에서 밥을 먹습니다. 푸짐한 인도식 뷔페 음식을 맛있게 먹은 후 참가자들을 모두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 저녁 만찬

 

우선 한국에서 온 A팀 참가자들에 대한 전체 소개가 있었습니다. 경남, 대구경북, 부산울산에서 오신 분들을 비롯해 공동체, 청년정토회가 연이어 소개되자 각 지역 별로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이번 순례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해줄 버스 운전기사들을 스님이 직접 소개해 주었습니다. 운전기사들을 소개하면서 덧붙여 이번 순례에서 가장 중요한 것 네 가지를 알려주었습니다. 

 


 

“순례를 하는데 있어서 제일 중요한 것은 첫째, 이동을 해야 하니까 운전기사입니다. 둘째, 잠을 자야 하니까 침낭이 필요합니다. 셋째, 먹어야 되니까 전기밥솥이 중요합니다. 넷째, 한국으로 돌아가려면 여권을 잃어버리면 안돼요. 그 외에는 잃어버려도 괜찮아요.” (모두 웃음)

 

스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웃는 사이 버스 운전기사들과 조수들이 앞으로 나왔습니다. 순례객들은 열렬한 환호와 박수로 운전기사들을 맞이했습니다. 총 10명의 인도인들이 이번 성지순례에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 순례객들을 성지로 안전하게 데려다 줄 인도인 운전기사들

 

박지나 JTS 대표님과 선주 법사님이 인도인들 모두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선물을 건네자 순례객들은 다시 한번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 열렬한 환호에 응답하는 의미로 인도인들을 대표해서 수바스지가 인도 노래를 맛깔스럽게 들려주었습니다. 

 

이어서 이번 성지순례 실무를 맡은 스텝들에 대한 소개가 이어졌습니다. 호텔, 버스 등 전체 운영을 총괄하는 역할을 박지나 JTS 대표님이 맡았고, 스님을 수행하는 역할을 최말순님이 맡았고, 스님의하루를 매일 써서 올려주는 역할을 이준길님이 맡았습니다. 스님을 포함한 이렇게 4명은 바라나시에서 A, B, C팀을 모두 맞이해서 보내고, 바로 쉬라바스티로 넘어가서 다시 A, B, C팀을 맞이할 예정입니다. 

 


▲ 성지순례 전체를 총괄하는 스텝들

 

그리고 A팀 전체를 총괄하면서 1호차를 담당하는 선주 법사님, 2호차를 담당하는 김윤미님, 3호차를 담당하는 자광 법사님, 4호차를 담당하면서 성지 안내를 맡은 덕생 법사님이 소개되었습니다.  

 

이렇게 소개를 모두 마친 후 입재식 및 오리엔테이션 시간을 가졌습니다. 삼귀의, 반야심경, 청법가를 부른 후 순례객들이 스님에게 삼배를 올리자, 이어서 스님의 법문이 시작되었습니다. 

 

스님은 먼저 성지순례 기간에는 밖으로는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 순례하고, 안으로는 내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분별심을 살펴 자기를 알아가는 순례를 할 것을 당부하면서 14박 15일 동안 꼭 명심해야 할 내용들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그제 한국에서 출발해 여기까지 오느라고 수고들 많이 하셨습니다. 우리가 비행기를 타고 와도 이틀이 걸리는 셈인데, 혜초스님 같은 옛날 우리 선배들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겠어요? 대부분 육로로 걸어오거나 해로로 동력이 없는 돛단배를 타고 여기까지 왔으니 참으로 위험하고 머나먼 길이었습니다. 그런 분들의 순례를 생각하면서 우리는 이제 14박 15일 동안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 가보고자 합니다. 

 


▲ 입재식

 

순례를 하면서 우리가 가져야 할 첫 번째 자세는 우리가 순례자라는 사실을 늘 명심하는 것입 니다. 이것은 재미있는 해외여행이 아니라 고행을 각오하고 떠난 순례의 길이에요. 순례의 목적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보다 올바르게 이해해서 내 삶이 행복하고 자유로워지기 위해서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우리가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나 행복한 열반을 얻고 모든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해탈을 얻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불교의 궁극적 목표는 사후에 천국 가는 것이 아니라 해탈과 열반을 증득하는 것입니다. 요즘 말로 하면 참자유와 참행복을 얻는 것이 목적이에요.

 

그래서 부처님이 태어나신 곳에서 시작해 부처님이 출가하시고, 수행하시고, 성도하시고, 교화하시고, 마지막으로 열반하신 곳에 이르기까지 부처님의 위대한 삶을 우리가 한 발 한 발 현장을 밟아가면서 이곳에서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살펴보는 것입니다. 단순히 과거 역사에 대해 알기 위해서가 아니라, 부처님의 일생에 대해 앎으로써 나도 부처님처럼 어떠한 경우에도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불교가 이 세상에 출현한 지 2,600년 정도 되었습니다. 2,600년이라는 긴 세월을 지나는 가운데, 나라가 바뀌고 문화가 다른 지방으로 전해져 내려오면서 불교가 많이 왜곡되어 그 가르침이 본질에서 많이 벗어났어요. 그래서 첫째, 우리가 다시 이곳 현장에 와서 처음 시작할 때의 모습이 어땠는지를 살펴봄으로써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을 이해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둘째,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 즉 정법은 누구에게나 다 적용되는 것이기 때문에 난해하지 않고 아주 쉽습니다. 셋째, 그리고 그것은 우리의 생활과 떠나지 않아서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 경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 가지 특징입니다. 첫째, 바른 불교입니다. 즉 정법을 공부해야 합니다. 둘째, 쉬운 불교입니다. 그 정법은 난해하지 않아서 누구나 다 이해할 수 있는 가르침입니다. 셋째, 생활불교입니다. 정법은 우리의 일상 속에서 경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토회는 바른 불교, 쉬운 불교, 생활 불교를 모토로 하고 있어요. 우리 정토행자들은 반드시 인도성지순례를 와서 이렇게 붓다가 어떤 가르침을 설하고 어떻게 살아가셨는지를 직접 경험해봐야 합니다. 그래야 머리로만 이해하거나 믿는 것을 넘어서서 우리가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을 저절로 믿고 받들게 됩니다. 그렇게 때문에 우리는 여행객이 아니라 순례자입니다. 

 


 

그리고 이번 일정 동안 여러분들은 자기 내면의 변화도 함께 여행해야 합니다. 미국이나 유럽에 가보면 언어만 좀 다를 뿐 건물도 비슷하고 모든 게 우리와 비슷합니다. 그런데 인도는 많이 달라요. 연세 드신 분들은 ‘우리도 50~60년대에는 이렇게 살았지’ 하고 향수를 느낄 수도 있지만 젊은 사람들은 ‘진짜 이런 데도 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달라요. 이렇게 바깥 구경도 가지각색이지만, 사실은 그 경계에 부딪히는 자기 마음 구경이 바깥 구경보다 더 좋습니다. 마음이 죽 끓듯 시시각각 변하거든요. 

 

지금은 이렇게 밝은 얼굴로 웃고 있지만 내일이든 모레든 언제 다시 얼굴이 찌그러져서 도무지 펴지지 않게 될지 몰라요. 이걸 사로잡힘이라고 해요. 사로잡히면 보름 내내 괴롭게 지내게 되니, 나도 모르게 사로잡히더라도 사로잡힌 줄을 빨리 알아차려서 돌아와야 합니다. 그렇게 돌아오려면 지금 여기서 순례를 떠날 때 마음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늘 자기 마음을 잘 살펴야 합니다. 살펴보면 마음이라는 게 얼마나 간사한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예컨대 우리는 약속이 중요하지만 여기서는 말로 약속한 건 의미가 없어요. 그러니까 여러분이 그런 걸 한국식으로 생각하면 막 싸우게 되기 쉬워요. 물건을 살 때도 100루피 달라고 하다가 안 사고 돌아서려하면 금방 10루피로 내려갑니다. 금액 차이가 문제가 아니라, 도대체 물건에 값이 있는지 없는지도 종잡을 수 없는 나라예요. 역시 부처님의 나라여서 값이 원래 없나 봐요. 이런 경험들을 할 수 있습니다. (모두 웃음)

 


 

그래서 우리들의 고정관념을 가지고 사물을 보면 분별심이 끝도 없이 일어나게 됩니다. 여러분은 인도에 와서 사흘만 지나면 ‘인도 정부는 도대체 뭐햐나, 정치인들은 뭐하고 있냐’라며 욕을 하면서 남의 나라를 몽땅 고쳐주고 가려고 들어요. 다니다 보면 온갖 생각을 다 하게 됩니다. 그러니 바깥 구경도 좋지만 이런 자기 마음의 변화도 놓치지 마세요. 내 마음이 경계에 따라 얼마나 자주, 크게 변하는지 구경하는 것도 아주 재미있는 여행입니다.

 

지금은 제 이야기가 귀에 들어오겠지만 당장 내일부터는 들리지도 않고 보이지도 않을 거예요. 델리에 가서 제가 마지막에 또 이런 이야기하면 그때서야 ‘아, 내가 놓쳤구나’ 할 겁니다. 그러니 항상 순례라는 걸 잊지 말아야 해요. 바깥으로의 순례도 있지만, 그 바깥 경계를 따라 일어나는 마음의 변화를 잘 살펴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순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순례를 하는 동안 공동체생활을 하게 됩니다. 아마 이렇게 낯선 사람과 한 식구가 되어서 같은 방에 자고, 같은 버스를 타고, 같이 밥 먹으며 다녀본 적이 가족을 제외하면 별로 없었을 거예요. 같이 사는 데는 인물이 잘나거나 돈이 많거나 지위가 높은 게 하나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서로의 책임을 다하는 것이 가장 좋은 관계예요. 다시 말하면 밥도 돌아가면서 하고, 밥통도 돌아가면서 드는 등 뭐든지 일을 나누어서 해야 좋아요. 

 

그런데 이렇게 사흘만 다녀보면 ‘밉상’이 나타납니다. 물건 들어야 할 때는 어디 갔는지 흔적도 없다가 밥 먹을 때 되면 숟가락 들고 맨 먼저 와서 앉아 있고, 설거지할 때 또 없어져요. 이런 사람들이 나타나면 처음에는 좋은 마음으로 해주지만 사나흘만 지나면 분별심이 생기죠. 분별심이 생기는 사람은 자기 마음을 봐야 합니다. 

 

또 자기가 자기도 모르게 습관적으로 얼마나 밉상이 되고 이기주의적인 모습을 보이는지 알아차리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평소에는 자기 성질을 숨기면서 다른 사람을 만날 수 있지만 부부지간에는 오래 살다 보니 성질이 안 숨겨집니다.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보름이 지나면 자기 성질머리를 숨기려야 숨길 수 없습니다. 어차피 다 나오게 되어 있으니 아예 처음부터 긴장하지 말고 성질 내어놓고 사는 게 좋아요. (모두 웃음)

 


 

이렇게 공동체생활이라는 걸 늘 생각하세요. 여기서는 차장이라고 해서 무슨 스탭도 아니고, 조장이라고 해서 돈을 10원이라도 적게 낸 것도 아닙니다. 똑같이 돈을 내고 똑같이 순례자로 왔는데 그저 전체 진행을 원활하게 하고자 차장이며 조장을 뽑은 것이지, 따로 온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특히 이번 여행은 정토불교대학생들을 중심으로 해서 왔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거의 전체 여행을 자율적으로 진행하다시피 해야 합니다. 일반 여행처럼 다른 누군가가 해주는 대로 따라만 가면 되는 여행이 아닙니다. 따로 챙겨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차에 딱 법사님 한 분밖에 없고, 나머지는 전부 여러분들이어서 똑같이 온 사람들입니다. 

 

향로에 불을 붙이든 밥을 지어먹든 다 우리 손으로 직접 일을 해가면서 다니는 여행이지, 누가 해주는 대로 받으면서 따라다니는 여행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은 늘 돈만 주면 여행사가 알아서 하고 여러분들은 손님으로 다니는데 익숙하지만 이번은 그렇지 않고 함께 만들어가는 여행이에요. 이렇게 첫날 하루와 마지막 날 하루에만 식사를 주는 걸 제외하면 당장 내일 아침부터는 다 밥도 여러분들이 해먹어야 하고, 물건도 나눠서 들고 가야 하고, 모든 걸 다 같이 해야 합니다. 그런 공동체로서, 가족으로서 같이 생활하는 거예요. 여행의 주인이나 스님이 따로 있고, 나는 그저 따라만 가는 여행이 아니라 내가 여행의 주인이라는 걸 알아야 합니다. 

 


 

이렇게 설명해도 귀에 잘 안 들어올 거예요. 며칠 다니면서 밥도 못 먹고 물건도 잃어버리고 우왕좌왕 시행착오를 거듭하다 보면 조금씩 정리가 되긴 하지만, 지금 처음부터 마음가짐을 바꿔두면 여행하기가 훨씬 수월합니다.”

 

밖을 보는 순례도 좋지만 안을 보는 순례도 해야 한다는 말씀에 어떤 마음으로 순례를 해야할지 명쾌하게 정리가 되었습니다. 안을 들여다보는 공부를 하자고 마음을 먹으니 마음도 한층 가벼워진 느낌입니다. 

 

이어서 스님은 인도의 역사와 기후, 사회 문화 환경 등에 대해 지도를 짚어 가며 자세히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그런 후 부처님의 생애와 순례객이 찾아갈 10대 성지에 대해 개괄적인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순례객들은 자료집에 열심히 메모를 하며 눈을 반짝이면서 스님의 법문을 경청했습니다. 

 

“부처님은 인도 북쪽인 히말라야 산 기슭 카필라바스투에서 태어나셔서 29살까지 거기서 살다가, 진리를 찾아 왕위를 버리고 출가하셔서 당시 가장 큰 나라였던 마가다국으로 오셨습니다. 요즘으로 치면 미국의 뉴욕으로 가신 것과 같아요. 마가다국의 왕사성 주변에서 스승을 만나서 공부를 했습니다. 그때 만났던 위대한 스승이 ‘웃타카 라마푸트라’와 ‘아라라 까라마’라는 선정주의자입니다. 열심히 수행한 끝에 그 스승의 경지에 이르렀지만 완전한 해탈이 아님을 아시고 스스로 수행하러 떠난 곳이 마가다국 안에 있는 가야 지방이었어요. 가야 시의 변방에서 6년 고행을 하시고 마침내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깨달음을 얻은 곳을 ‘깨달음을 얻은 가야’라고 해서 ‘보드가야’라고 부릅니다. 

 


 

부처님이 최초로 설법을 하신 곳은 지금 우리가 있는 이곳, 바라나시입니다. 여기는 16강국 가운데 하나였는데 당시 이름은 카시였어요. 첫 설법을 바라나시 근교의 사르나트에 와서 하시고 다시 보드가야로 돌아가셔서 거기서 1천 명의 비구를 교화하신 뒤, 다시 왕사성으로 가셔서 빔비사라 왕을 교화하고 최초의 절인 죽림정사를 기증받게 됩니다. 부처님이 이곳에서 3년을 머무시는 동안 초기 교단의 중요한 제자들 대부분이 이때 귀의를 하게 됩니다. 우리가 ‘1250인’ 또는 ‘1200 제대 아라한’이라고 부르는 초기 제자들과 대 선지식들은 주로 부처님의 성도 후 3년 안에 출가하신 분들이에요. 지혜제일 사리푸트라, 신통제일 목갈리나, 두타제일 마하가섭 같은 존자들은 모두 부처님께서 왕사성에 계실 때 교화되신 분들입니다. 

 

그러다 부처님은 수닷타 장자의 초대를 받고 두 번째 강국이었던 코살라국의 쉬라바스티로 가셨습니다. 우리 말로 하면 사위성이에요. 여기에서 수닷타 장자가 기증한 절이 기원정사입니다. 사위성에서 또 많은 제자들이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그래서 왕사성과 사위성은 불교의 8대 성지에 속합니다.

 


 

부처님은 이 지역들을 다니면서 교화를 하셨어요. 또 8대 성지에는 원숭이가 부처님께 꿀을 공양 올렸다는 바이샬리가 있습니다. 바이샬리에는 릿차비족과 밧지족이 살았는데 여기는 절대왕정이 아니라 공화제였어요. 릿차비족이나 밧지족이 통치하는 그 정치 체제가 부처님께서 가장 좋아하셨던 체제였어요. 오늘로 말하면 민주적인 국가였습니다. 상가가 민주적으로 구성된 것도 여기에서 어느 정도 따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부처님은 제일 서북쪽으로는 상카시아까지 가셨어요. 부처님이 하늘나라의 어머니를 구제하기 위해서 도리천에 갔다가 하강하신 곳이라고 전해오는 상카시아도 8대 성지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부처님이 태어나신 곳인 카필라바스투의 룸비니, 도를 이루신 곳인 마가다국의 보드가야, 최초로 설법하신 곳인 바라나시 근교의 사르나트,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곳인 쿠시나가라를 4대 성지로 꼽습니다. 8대 성지라고 하면 4대 성지에 네 곳을 더하면 됩니다. 첫번째가 왕사성입니다. 부처님이 죽림정사를 최초로 지은 곳으로 우리가 말하는 영축산이 있는 곳입니다. 당시 인도 지명은 ‘왕들의 집’이라는 뜻인 ‘라자그라하’였고 지금은 ‘라즈길’이라고 불립니다. 여기서 성난 코끼리가 부처님께 귀의했다고 해요. 두번째는 천불화현을 했다는 쉬라바스티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쉬라바스티에 가면 천불화현탑을 참배할 예정이에요. 세번째는 원숭이가 부처님께 꿀을 공양했다는 바이샬리이고, 네번째는 부처님이 도리천에서 내려오셨다고 하는 상카시아입니다. 그래서 박물관에 가면 4대 성지를 하나의 돌판에 새기거나 8대 성지를 하나의 돌판에 새겨놓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또 10대 성지라고 하면 8대 성지에 카필라바스투와 둥게스와리가 더해집니다. 부처님께서 태어나신 건 룸비니지만 29년간 자라신 곳은 카필라바스투예요. 룸비니는 거기에서 태어났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곳이지만, 29년간 실제로 시간을 보낸 곳은 카필라바스투, 즉 카필라성입니다. 또 부처님이 성도하신 곳은 보드가야지만, 성도를 얻기까지 6년 간 고행하신 곳은 전정각산입니다. JTS가 수자타아카데미를 세운 둥게스와리는 전정각산 아래에 있습니다. 이 전정각산에서 6년간 수행하신 후 마지막에 보드가야에 가서 49일간 정진해서 성도하시고 성도 후 49일간 그곳에 머물며 법열을 느끼셨어요. 그러니 보드가야에는 길어봐야 98일 정도만 머무르신 셈이고 실제로 6년간 머물렀던 곳은 전정각산입니다. 그래서 카필라바스투와 전정각산을 포함해서 10대 성지라고 부릅니다. 

 


 

우리의 여정은 10대 성지를 둘러보게 됩니다. 오늘과 내일 초반 이틀은 초전법륜 성지인 사르나트, 그 다음 이틀은 보드가야와 전정각산, 하루는 라즈길(왕사성), 이틀은 바이샬리와 쿠시나가라, 이틀은 룸비니와 카필라바스투, 그 다음 이틀은 쉬라바스티(사위성), 그 다음은 상카시아를 둘러볼 예정이에요. 그런 뒤 아그라에 가서 타지마할을 보는 것으로 여정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아그라에 가면 순례는 다 끝나고 여행이에요. 그때 가면 화장도 하고 옷도 갈아입고 여행객으로 다녀도 됩니다. 순례 일정 중 이렇게 하루만 여행으로 보낸 뒤 델리로 가서 한국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래봤자 모두 북인도 지역을 벗어나지 않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앞으로 14일간 다녀야 할 여행지입니다. 한 군데 한 군데씩 찾아가면서 자세히 공부하게 돼요.”

 

인도 지도를 조목 조목 짚어 가며 자세히 이야기를 들으니 벌써부터 앞으로의 일정이 기대가 됩니다. 

 

이렇게 입재법문과 오리엔테이션을 모두 마치고 덕생 법사님의 간단한 공지가 있은 후 오늘 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 

 

한국에서 이곳 바라나시까지 꼬박 이틀 동안 머나먼 길을 달려와서 그런지 모두들 얼굴에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순례객들은 졸린 눈을 비비며 모두 숙소로 돌아갔고, 법사님들과 차장, 조장님들은 다시 모여서 늦게까지 내일 순례 일정을 준비했습니다. 

 

내일은 새벽 5시에 기상해서 각자 숙소에서 기도를 한 후 6시 30분에 사르나트로 출발할 예정입니다.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은 후 처음으로 설법을 해서 불법승 삼보가 이뤄진 곳이고, 구리가장자를 비롯해 처음으로 재가신자가 탄생해 삼귀의 오계가 이뤄진 곳인 ‘사르나트’에서 순례객들 모두가 삼귀의 오계 수계식을 가질 예정입니다. 이제 진정으로 부처님의 제자가 되어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 순례의 길을 떠날 채비를 마치게 되는 것이지요. 오후에는 강가강으로 가서 삶과 죽음을 대하는 인도인들의 문화를 느껴보는 시간도 가질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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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댓글 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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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

성지순례 다시 하는 기분으로 스님의 하루 정독하겠습니다. 참석자 모든 분들 건강한 순례 되시기 바랍니다.

2017-01-13 19:43:24

겸손

참자유 행복을 얻으시길 바래요^^~

2017-01-13 12:22:55

정지화

벌써 1년이 지났네요~ 또 가고 싶습니다.

2017-01-12 23:3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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