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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동해 인적이 드문 바닷가에서 수행공동체 정토회에서 상주하고 있는 실무자들과 함께 2016년 새해 첫 일출을 함께 본 후 기림사, 오어사, 나원리 5층석탑을 찾아가 발원 기도를 하고, 저녁에는 수행과 관련해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새벽 예불과 기도, 아침 식사를 마치고 새벽 6시 20분에 두북 정토수련원을 출발한 공동체 대중 일동은 해가 뜨기 30분 전인 7시 무렵에 동해 바닷가에 도착했습니다.
인파가 몰리는 유명한 곳을 벗어나 비교적 인적이 드문 곳을 찾아가 해가 뜨기를 기다렸습니다. 예상보다 날씨가 따뜻해서 추위에 떨지 않고 정겹게 대화를 나누며 바다를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아침 7시 40분, 드디어 해가 손톱만큼 모습을 드러내자 모두가 탄성을 지르며 환호했습니다. 정말로 2016년 새해가 밝은 것입니다. 모두들 가슴 속에 소원 한 가지씩은 떠올렸을 텐데, 정토회 실무자들이다 보니 대부분 남북의 평화통일을 간절히 발원했을 것입니다.
자연스럽게 손을 맞잡고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를 불렀습니다. 익숙한 노래이지만 오늘만큼은 더욱더 간절한 마음을 담아서 불러봅니다. 그리고 “광야에서”, “터” 등 노래들을 열창하며 기쁜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했습니다.
모두가 설레임을 감추지 못하는 가운데 스님이 공동체 대중들을 위해 새해 덕담을 들려주었습니다. 스님은 깨달음과 통일을 일출 보는 것에 빗대어 아주 재미있게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해뜨기 전에 늘 그 징조로 여명이 먼저 밝아오지요. 그처럼 이미 통일의 여명은 밝았다고 할 수 있지만, 아직 해가 보이진 않았어요. 원래 해뜨기 직전에는 해가 잘 안 보이다가 ‘안 뜨려나’ 싶을 때 쑥 올라옵니다. 통일도 그렇게 오지 않을까 해요.
깨달음도 그렇게 옵니다. 딱 그만둬버리고 싶을 때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지만 안 돼요. 3년 내내 붙어 있다가 도저히 안 돼서 완전히 그만두고 돌아서면 그 순간 해가 뜹니다. 그런데 그게 쉽지가 않아요. 가면 뜨고, 안 가면 계속 안 뜹니다. (모두 웃음)
뜨기를 기대하면서 하면 안 되고 무조건 그냥 해야 생각지도 않은 어느 순간에 떠요. 해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올해 통일의 해는 아직 눈에는 보이지 않고 지금의 여명처럼 뜰 듯 말 듯 해서, 가버리는 사람들도 꽤 생길 거예요. (모두 웃음)
그래서 제가 붙어만 있으라고 늘 이야기합니다. 새해에는 모두 건강하십시오.”
스님의 유쾌한 덕담에 모두들 큰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이어서 스님은 각 부서별로 기념사진을 찍어 주었습니다. 어떤 분은 오늘 스님과 찍은 사진을 사무실 책상 앞에 꽂아 두겠다며 무척 좋아했습니다.
이렇게 새해 일출을 본 후 곧바로 ‘기림사’로 향했습니다. 경주 함월산 자락에 위치한 기림사는 ‘임정사’라고 불리우던 절을 신라 643년에 원효 스님이 중창을 하면서 기원정사에서 ‘기’자를 따와 ‘기림사’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올 정도로 원효 스님과 인연이 깊은 절입니다. 특히 임진왜란 때는 전략적 요충지라 승병운동의 중심지가 되었던 곳이라고 합니다.
▲ 기림사
특히 스님은 임진왜란 때 무기를 보관하던 곳을 가리키며 “산에 있는 절이 대부분 임진왜란 때 불에 탄 이유는 일본 사람들이 볼 때는 산이 전부 군사기지로 보였기 때문” 이라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경내에는 감나무가 몇 그루 보였는데, 아직 따지 않은 감이 주렁주렁 열려 있어 운치를 더해 주었습니다.
스님은 대적광전으로 들어가 공동체 대중들과 함께 간절히 통일 발원 기도를 했습니다. 세 분의 부처님이 모셔져 있어서 한 번은 “나무 비로자나불”을 염하고, 한 번은 “나무 아미타불”을 염하고, 마지막 한 번은 “나무 약사여래불”을 염하며 짧은 시간이었지만 온 정성을 기울여 함께 기도를 했습니다.
다음은 포항 근교에 위치한 ‘오어사’로 향했습니다. 오어저수지를 옆에 끼고 길가에 주차한 수많은 차들을 지나 깊숙이 들어가니 오어사가 나타났습니다. 원효대사와 혜공대사가 이곳에서 수도하실 때 서로의 법력을 겨루고자 개천의 고기를 한 마리씩 삼키시고 변을 보았는데 한 마리는 죽고 한 마리는 살아서 힘차게 헤엄치는 것을 보고 서로가 자기 고기라고 해서 나 ‘오(吾)’, 고기 ‘어(漁)’자를 써서 ‘오어사’라 명명했다고 합니다.
천도재를 지내고 있어서 대중전 안에는 들어가보지 못하고 먼 발치서 둘러보고 있는데, 스님은 “이곳은 경치가 아주 좋은 곳”이라고 하면서 절벽 꼭대기에 있는 작은 암자를 가리켰습니다.
▲ 절벽 꼭대기에 있는 것이 오어사 자장암
성큼성큼 걸으니 금새 암자에 다다를 수 있었습니다. 이곳은 오어사의 산내 암자로서 ‘자장암’이라 이름 붙어져 있었습니다. 깍아지른 기암 절벽을 이루는 바위 봉우리 위에 사뿐히 내려앉은 듯한 모양새로 지어져 있었습니다.
자장암으로 올라가는 산길에는 한겨울임에도 불구하고 진달래꽃이 활짝 피어 있어 모두를 놀라게 하기도 했습니다. 옛말에 '한겨울에 꽃이 피면 좋은 일이 일어난다'는 것이 있듯이 상서로운 징조를 보니 새해에는 우리 나라가 통일을 향해 진일보하는 좋은 일들이 많이 일어나지 않을까 기대감도 가져 보았습니다.
자장암에서 내려다 보니 오어사를 감싸 안은 오어지의 큰 호수는 경치가 무척 아름다웠습니다.
법당, 삼성각, 요사, 보탑을 차례로 둘러본 후 법당에 들어가 간절한 마음을 담아 “관세음보살” 염불을 하며 통일 발원기도를 했습니다.
높은 절벽 위에 세워져 하늘과 가까운 곳이라서 그랬는지 누구라도 이곳에서 지극정성으로 기도를 하면 모두 성취가 된다는 것으로 유명한 곳이라고 합니다. 암자의 신도님들이 스님을 알아보고 인사를 건네자 스님은 “영험있는 곳이라서 해서 통일 기도를 하러 왔다”며 웃음을 보였습니다.
다함께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한 후 스님은 대중들에게 오어사에 대해 간단히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오어사에는 신라의 4대 고승이 머물렀다고 하는 전설이 있어요. 우리가 잘 아는 자장, 원효, 의상, 혜공, 네 분이 있죠. 원래는 저수지가 아니라 깊은 계곡이었어요. 그런데 저수지로 막으니까 물이 고여서 물 아래의 절경들이 모두 수장되어 버렸습니다. 옛날부터 경치가 아주 좋아서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입니다. 제가 학창 시절에 수련을 하기 위해서 권선을 하러 다녔는데, 그 때 와 본 기억이 있어요.”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나원리 5층탑을 찾아가 참배하고 역시 다함께 통일 발원 기도를 했습니다. 하루 종일 이곳저곳을 다니느라 다소 지친 대중들을 향해 스님은 “통일을 하려면 지극정성을 기울여야지” 하며 웃었습니다.
▲ 나원리 5층탑
나원리 5층탑은 인적이 드문 한적한 곳에 위치해 있지만 국보 제39호로 지정된 유물이었습니다. 보기 드문 거대한 규모인데다가 각 부의 구조도 정연하고, 비례도 아름다우며 다소 높은 둔턱에 세워져 있어 주위를 압도하는 당당한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어릴 적에 이 탑을 그냥 ‘백탑’이라고 불렀다고 소개해 주었는데, 가까이서 보니 정말로 빛깔이 빼어나게 하얀 것 같았습니다.
마침 오후 햇살이 포근하게 비춰서 다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오늘 곳곳을 찾아가 정성껏 기도한 공덕으로 새해에는 통일의 초석이 튼튼히 다져지길 기원해 봅니다.
이렇게 오늘은 가는 곳곳마다 통일 발원 기도를 했는데, 스님이 얼마나 통일 문제를 풀려고 정성을 쏟고 있는지 그 마음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오후 3시가 다 되어 두북 정토수련원으로 다시 돌아온 대중 일동은 점심 겸 저녁 식사를 한 후 5시부터는 스님과 함께 수련을 함께 했습니다.
먼저 새해를 맞이하여 언제나 우리들을 바른 가르침으로 이끌어주시는 스님께 삼배로 인사를 올렸습니다.
이어서 지난 5일 동안 명상 수련을 하고 나서 썼던 소감문과 2일 동안 정일사 수련을 하고 나서 썼던 소감문을 돌아가며 발표했습니다. 특히 정일사 수련에서는 각 개인들에게 ‘이런 점은 좀 고치면 좋겠다’는 도반들의 애정어린 비판을 모아서 선물로 건네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는데, 선물로 받은 그 내용들이 모두 공개가 되면서 큰 웃음을 자아내었습니다.
먼저 스님은 소감문을 발표를 경청한 후 이에 대한 스님의 소감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전체적으로 느낀 소감을 먼저 말씀드리자면, 이렇게 우리가 조금씩 좋아지는 원동력은 같이 산다는 데 있는 것 같아요. (모두 웃음)
인류 문명의 발전이나 진화도 이렇게 사람이 한 군데 모여 사는 데서 일어납니다. 언어도 발달하고, 기술 전파도 빠르게 이루어지고, 정보가 축적되는 가운데 새로운 아이디어도 더 나옵니다. 수행도 이렇게 문명사적 관점에서 볼 수 있는 것 같아요. 같이 살면서 늘 싸워대면 분열과 파괴로 가겠지만, 이렇게 마음을 모으게 되면 특별한 노력 없이도 서로 탁마(琢磨)하면서 조금씩 좋아져갑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좋은 도반은 수행의 전부다’라고 말씀하신 것 같아요. 특히 불교로 말하자면 말법(末法) 시대라고 하는 지금, 탁월한 스승이 없더라도 부족하나마 우리가 이렇게 모여서 함께 수행생활을 해나간다면 시간이 흐르며서 조금씩 개선되어 가지 않겠나 생각합니다.
공동체 안에서 길게는 10~30년씩 함께 산 사람도 있고, 저와 개인적으로 만난 사람들 중 공동체에 안 들어오고도 그만큼 오랫동안 인연을 이어온 사람들도 있습니다. 공동체에 안 들어오고, 수행도 안 했는데 공동체 생활하며 수행하는 사람보다 더 자기중심이 잡혀 있고 능력이 뛰어난 사람도 있어요. 그런데 그건 처음부터 자기 토대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런 걸 갖고 ‘수행한다는 사람이 왜 저것 밖에 안 되나? 수행 안 해도 저렇지 않느냐?’ 이렇게 비교하는 건 온당치 않은 것 같아요. 그러나 비슷한 기질, 성질, 까르마를 가진 사람들을 놓고 수행공동체에 사느냐, 밖에 사느냐, 공동체 생활한 기간이 얼마나 됐느냐를 비교해보면 대체로 차이가 납니다. 물론 우리 공동체에 갓 들어온 사람이 여기서 20년 산 사람보다 인격적으로나 능력면에서나 잘 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겠죠.
그러나 그 사람의 업식이라는 걸 고려해서 공동체 생활을 5년, 10년씩 했을 때 일어나는 변화를 살펴보면 차이가 납니다. 처음에는 ‘5년 지나도 저 모양인데 수행자라고 할 수 있겠냐? 변하기나 하겠냐?’ 이렇게 느낄지 모르지만, 더 길게 보면 변화가 확연합니다. 그 변화는 일직선상이 아니라 계단 모양으로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거의 안 변하는 것 같다가 어느 날 훅 자각해서 변화하고, 변하는 것 같다가도 멈춰 서서 몇 년씩 그대로 있고, 또 그래서 안 되는 줄 알았더니 다시 어느 날 변화가 생겨요. 길게 보면 그런 과정을 거듭하는 가운데 점진적으로 좋아져갑니다.
여기 공동체에 우리 자신을 비춰보는 거울이 있기 때문에 그런 변화가 가능한 것 같습니다.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과 특히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이 함께 살잖아요. 부부나 부모자식만 되어도 자기 자식, 자기 부모, 자기 배우자라는 집착 속에서 살기 때문에, 같이 살더라도 상대나 자기를 객관적으로 비춰보기가 좀 어려워요. 자기가 보는 자식, 자기가 보는 부모, 자기가 보는 남편, 자기가 보는 아내라는 자기 주관이 더 강하게 비춰져서 객관적 현실이 오히려 남보다 더 왜곡되기 쉽습니다.
그런데 여기 사는 우리들은 경제적인 이해관계도 없고, 가족 사이의 집착이나 정에 끄달리는 것도 비교적 적은 편입니다. 물론 서로에게 애정이 있어야 하지만 그게 집착과 결부된 애정과는 조금 다르니까요. 그러다보니 상대를 보는 것도 처음에는 자기 감정과 분별심에 따라 보지만 10년, 20년씩 지나면 비교적 집착에서 자유로운 애정을 가지고 상대를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거울 같은 도반들이 있기에 이번에 함께한 ‘선물주기’와 같은 수련 프로그램이 생길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불교의 오랜 수행 전통 중 최고의 수행 가운데 하나가 도반들과 함께 자자(自恣)를 하는 것입니다. 내가 가르침을 청하고, 상대가 보기에 내가 어떤 면에서 개선되면 나를 위해서 좋을지 말해주는 거예요. 그런데 지적하는 사람은 그 사람을 위해 이야기하기보다는 평소 자기 속에 있던 감정을 드러내거나 자기 맺힌 걸 이야기하며 시비하기 쉽고, 듣는 사람 입장에서도 잘못을 지적하거나 비난하거나 힐난하는 것처럼 들리기 쉬워요. 그래서 자자를 하다 보면 울거나 상처가 남기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참 수행자라면 도반이 거울이기 때문에 자자보다 더한 스승은 없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스승’이라고 하면 항상 어떤 신통력을 가진 것처럼 생각합니다. 스승이라고 하면 나를 안 보고도 내 마음을 다 알고 내 이야기 안 듣고도 내 본질을 다 알아서 지적을 다 해줄 거라는 환상이 좀 있어요. (모두 웃음)
스승은 점쟁이나 도사가 아니라 바른 길을 안내해주는 분이고, 그 길을 따라서 내가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문화적으로 익숙해진지 오래 되었기에 스승을 점쟁이처럼 여기고, 또 자기가 법사나 스승이 되면 그런 역량이 있어야 할 것처럼 여기는 잘못된 관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함께 오래 정진한 도반들은 내 모습을 비춰주는 가장 좋은 거울이자 나를 바른 길로 나아가도록 인도해주는 최고의 스승입니다.
사실 세속에서도 수행적 관점만 딱 잡히면 아내에게는 남편 이상의 거울이 없고, 남편에게는 아내 이상의 거울이 없습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약간의 집착이 섞이게 마련이라 그 거울이 때로는 흐려지기도 합니다. 여기서는 초기에는 자기감정이 배어있기 때문에 거울이 거울 역할을 하더라도 그냥 비춰지는 게 아니라 상처가 되기도 했지만, 여러분들이 이제 조금씩 그 감정을 넘어서게 되면서 서로의 거울 역할을 제대로 해주고 있습니다. 지금 ‘선물 주기’라는 부드러운 표현을 빌렸지만 엄격히 말하면 이것은 자자와 같은 성격입니다. 형식을 살짝 바꾸어서 전통적인 의식을 행하는 부담을 덜고 좀 편하고 가볍게 진행할 수 있도록 한 것 뿐이에요.
지난 여름 수행 뒤에도 느꼈고 이번에도 그렇지만, 전체적으로 우리는 좋아지고 있습니다. 본인들은 부족한 게 많다고 생각하겠지만 그건 자기가 어디서 출발했는지를 잘 몰라서 그래요.(대중 큰 웃음)
빨리 못 가는 것만 생각하고 자기 출발점이 어디였는지를 모르니까 자꾸 자기가 부족하다고 하는데, 제가 좀 위에서 내려다보면 어디서 출발하는지를 대강 아니까 나름대로 잘 가고 있는 게 보입니다. 채소로 치면 잘 자라고 있는데 자기 생각에 자꾸 못 자란다고 여기는 게 아닌가 해요. 그렇게 좋아지는 가장 큰 힘은 여러분들은 ‘스승의 은혜’라고 하지만 제가 보기에 그런 건 부차적이고, 결국 첫째는 자신이고 둘째는 도반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2일 동안 ‘선물주기’를 하면서 도반의 소중함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는데, 스님의 말씀을 통해 다시 명쾌하게 듣게 되니 도반의 소중함이 더욱 크게 와 닿았습니다.
이어서 스님은 같이 생활하고 업무를 하다보면 자기 상태를 가볍게 드러내고, 상대의 상태를 알아주려고 하는 노력이 필요한데 그런 점이 부족해 보인다고 하면서 몇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명상을 할 때 ‘통증을 통증으로만 느껴라, 마음의 평정을 유지해서 참지 말고 느껴라’ 하지만 잘 안 돼서 억지로 참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것처럼 여러분들은 지금 수행한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참는 거예요. 그래서 스트레스가 쌓이다 보니 표현할 때 툭 튀어나옵니다.
생각대로 마구 말하는 건 물론 나쁘지만, 그렇다고 말 없는 게 꼭 좋은 것도 아닙니다. 내부에 억누르고 있기 때문에 소통만 안 되는 게 아니라 갈등이 심화돼요. 그래서 우리가 감정을 내뱉는 것이 아니라 자기 상태를 적절하게 알려나가는 것, 즉 자기 표현하기가 필요한 거예요.
내 상태를 적절하게 표현하는 것은 요구하는 것과 다릅니다. ‘내가 이러니까 이거 해주세요. 내가 이러니까 이거 봐주세요’ 이렇게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하면 내가 좀 불편합니다. 이러저러해서 내가 몸이 좀 아픕니다’ 이렇게 자기 상태를 알리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가 이걸 표현하지 못하는 것은 달라 해도 안 줄 것이고 봐달라고 해도 안 봐줄 것이니 말해봤자 아무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말을 참게 되고, 참다가 도를 넘어서 터지면 입이 나오고 말이 세지는 거예요.
아픈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아프다고 해서 동정심을 구하거나 아프다는 핑계로 쉬려 하는 게 아니라, 아픈 것에 대해서 자기가 적절하게 표현하는 거예요. ‘제가 지금 몸이 좀 불편합니다’라고 이야기했는데도 상대가 ‘아, 그렇지만 이 일은 지금 해야 합니다’ 하면 그 일을 해야죠. 이럴 때 ‘이야기 해봤자 자기 생각만 하는 걸’ 이렇게 섭섭하게 생각하면 안 돼요. 내가 적절하게 표현을 했는데도 해야 한다면 좀 아파도 할 수는 있잖아요. 졸린다고 말 했지만 해야 할 일이 있다면 해야죠. 그러나 지레짐작해 입을 닫아버리거나 쌓아두지는 말고 적절한 표현을 해줘야 합니다. 굳이 안 해도 되는 상황이라면 조금 쉬라거나 조금 자라고 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늘 적절하게 자기 표현하기를 해야 합니다.
이걸 알림이라고 하죠. 이렇게 우리가 서로에게 알려야 해요. ‘이 정도 하는 걸 보면 상대가 알지 않겠냐’라고 하지만 인간 존재가 그렇지 않아요. (모두 공감하며 웃음)
자기가 자기도 잘 모르는데 남의 마음을 헤아리기는 불가능해요. 다 자기 생각만 하지, 남 생각할 여유가 없습니다. 자기가 누굴 사랑해준다고 해도 사실은 그 사람을 생각해주는 게 아니라 자기가 좋아하는 마음, 자기 욕구를 채우는 것일 뿐인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사랑이라는 게 사실 받는 사람에게는 굉장히 부담스럽습니다. 자기가 좋아서 그러니까 상대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거든요.
그러니까 이렇게 자기의 상태를 늘 적절히 표현해야 합니다. 다만 자기표현은 요구가 아니어야 하는데, 우리는 표현하면 반드시 요구를 하게 되고, 요구가 들어지지 않을 상황에서는 아예 표현을 안 합니다. 어릴 때부터 ‘말해봤자 야단만 맞지’ 이렇게 입 다문 적이 많잖아요.
수행자들은 감정을 꾹꾹 쌓아뒀다가 어느 순간에 터뜨리지 말고 이렇게 자기 상태를 적절하게 표현할 줄 알아야 하고, 상대에 대해서는 상대가 말을 꺼내기 전에 적절하게 알아줘야 합니다. ‘네가 말 안 했잖아!’ 이것도 맞는 말이긴 하지만 상태를 봐서 적절하게 알아주기가 필요해요. 그러나 가장 기본적으로는 자기가 자기에 대해서 적절하게 표현하기를 해야 합니다.”
이 외에도 스님은 실무자들이 더욱더 용기와 힘을 가질 수 있도록 많은 격려를 해주었습니다. 신년초부터 스님으로부터 애정이 가득 담긴 말씀을 듬뿍 들으니 감사한 마음이 많이 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은 ‘지금 여기 깨어있기’를 늘 실천하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해 주었습니다.
“오늘 아침에 ‘새해에는 행복합시다’라고 새해 인사를 드리면서, ‘내가 어떻게 태어났다 하더라도, 내가 지난날 어떤 경험을 했다 하더라도, 내가 지금 어떤 상황에 처해 있다 하더라도’라는 세 가지를 말씀드렸습니다. 내가 어떻게 태어났느냐, 즉 내가 사생아로 태어났느냐, 내가 아버지 없이 태어났느냐, 내가 가난한 집에 태어났느냐는 중요한 게 아니에요. 내가 태어나 보니 그 집에 태어난 것이고 내가 태어나 보니 피부 빛깔이 그렇게 되어 있었던 것뿐이지, 그건 나와 아무 관계없는 일이에요.
내가 어떤 경험을 했는지도 마찬가지입니다. 살아오면서 성추행을 당했든, 가난한 집에서 자랐든, 여자여서 차별을 당했든, 학교 다닐 때 공부를 못했든, 대학을 못 갔든, 신체에 장애가 있든, 키가 작든 다 지나간 일이에요. 그게 지금 나한테 뭐가 문제예요? 뭘 기준으로 해서 지금 문제를 삼느냐는 거예요. 키 작은 걸 두고 ‘나는 키가 작다’라고 한탄한다고 지금 뭐가 해결되겠어요? 키가 작으면 작은 상태, 학교를 못 갔으면 못 간 상태, 여자면 여자인 상태, 가난하게 자랐으면 가난한 상태가 현재의 나의 상태잖아요. ‘지금 내 상태가 어떠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지금 여기서 내가 어떻게 할 거냐?’가 중요합니다.
그러니 이미 지나가버린 일을 가지고 자꾸 문제 삼지 마세요. 그걸 어떻게 문제 삼지 않을 수 있냐는 말도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걸 문제 삼아봤자 아무런 득이 없잖아요. 그건 이미 다 지나가버린 일이어서 지금 어떻게 돌이킬 수도 없고 나와는 아무 관계도 없어요. 아직 안 죽고 살아 있는 이 상태, 지금 여기에서 내가 어떡할 건지가 문제입니다. 장애가 있다면 극복의 대상으로 삼아야 합니다.
그런 관점을 갖는다면 여러분들의 삶이 한결 자유로워지지 않을까 해요. ‘지금 여기 깨어있다’라는 건 그저 앉아서 코끝에 드나드는 숨만 지켜보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산다는 건 지금이잖아요. 과거와 미래라는 것은 머릿속에서 흘러가는 영상일 뿐이에요. 지금 산다는 건 지금 여기서 숨 쉬고 사는 이거예요. 우리는 지금 이렇게 살아 있습니다.
그런 데서 우리가 ‘지금 여기 깨어있기’의 문제를 조금 더 깊이 살펴봐서 삶을 좀 가볍게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지금 여기 깨어있어야 한다는 스님의 강조에 모두들 합장을 하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이렇게 약 2시간 동안 스님의 조언을 들은 후, 잠시 쉬었다가 다시 약 1시간 동안은 즉문즉설 시간을 가졌습니다. 주로 개인 수행을 하면서 느끼는 어려움과 궁금함을 스님에게 묻고 대답을 듣는 시간이었습니다.
3명으로부터 질문이 있었고, 답변을 마치고 나서 더 이상 질문이 없자 밤 10시가 되어 오늘 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
내일은 새벽 예불과 기도 후 아침 7시부터 다시 수련을 계속 이어갈 예정입니다. 오늘은 주로 개인 수행에 대해 집중적으로 대화를 나누었다면 내일은 활동과 관련해서 집중적으로 대화를 나눌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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