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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동지날을 맞이하여 동지에 담긴 수행의 의미에 대해 법문해 주었습니다.
아침 일찍 조찬부터 종교인 모임이 있었습니다. 각 종교계 대표들이 모여 3.1 운동 100주년 기념사업 준비, 연해주 블라디보스톡 신한촌 독립운동 유적지 재건 문제, 남북관계 개선 방안 등에 대해 많은 의견을 서로 나누며 회의를 했습니다. 그리고 정토회관으로 돌아왔습니다.
정토회관에는 동지날을 맞이하여 아침부터 많은 대중들이 몰려 들었습니다. 300여 명이 법당을 가득 메운 가운데 자리가 부족해 2층과 3층에서 영상으로 법문을 들어야 하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죽비 삼성과 함께 명상이 끝나자 스님은 빼곡이 들어찬 대중들을 보며 “동짓날인데 왜 이렇게 많이들 오셨어요?” 하고 웃으면서 법문을 시작했습니다. 왜 동지가 불교의 큰 명절이 되었는지, 동짓날이 가지는 수행적 의미는 무엇인지에 대해 아주 재미있게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불교의 4대 명절은 부처님이 태어나신 사월 초파일, 출가하신 출가일, 성도하신 성도절, 열반하신 열반절입니다. 그런데 현재 한국 불교에서 행하는 불교 명절에는 민속명절이 불교에 들어 온 경우가 있습니다. 먼저 정초기도와 입춘기도가 있고, 다음으로 백중기도가 있습니다. 백중기도는 원래 인도의 민속명절인데 불교를 통해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불교 명절이 되었습니다. 현재 한국의 불교문화에서는 부처님 오신 날 다음으로 백중을 다른 명절보다 크게 행하는 편입니다.
마지막으로 동지기도가 있습니다. 정토회에 비해 전통 절에서는 동지기도를 아주 중시합니다. 정토회에서는 하지 않지만, 전통 불교문화에서는 ‘동지 건대’라고 해서 동지 때는 반드시 주머니에 쌀을 담아가지고 절에 보시하는 풍습이 있습니다. 그렇게 보시를 받으면 절에서는 그걸로 내년 봄까지, 즉 사월 초파일까지 먹고삽니다. 그리고 사월 초파일에 또 보시 받아서 백중까지 먹고살고, 백중 때 보시 받아서 동지까지 먹고살아요. (모두 웃음)
사계절 중 겨울에 있는 동지를 이렇게 중시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1년 중에 해가 가장 짧은 날이 동짓날입니다. 주식으로 말하면 가장 주가가 떨어졌을 때를 ‘최저점을 찍었다, 바닥이다’라고 하잖아요. 동지가 그렇습니다. ‘인생에서 오늘이 바닥이다. 더 이상 나쁠 수 없다’, 즉 ‘나쁜 건 끝이다’는 뜻이 있습니다. ‘앞으로는 점점 더 좋아진다’, ‘내리막으로 갔다가 바닥을 치고 오늘부터 올라간다’ 이런 뜻입니다.
서양에서는 태양이 다시 살아났다고 해서 이 때를 태양절이라고 불렀어요. 드러난 현상만으로 이야기하면 태양이 작열할 때인 하짓날로 태양절을 잡아야 해요. 그런데 동짓날을 태양절로 잡은 것은 ‘해가 새로 생겼다. 다시 부활한다’ 이런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인생에 비유하면 ‘우리의 재앙은 이걸로 끝이다. 앞으로 불행이 없진 않겠지만 적어도 이보다 더한 불행은 없다. 이미 최고의 불행을 겪었기 때문에 설령 어떤 불행이 닥친다 하더라도 능히 이겨낼 만하다. 그리고 갈수록 불행이 줄어든다’라는 개념입니다.
그래서 동짓날 재앙을 쫓는 행사를 하는 거예요. ‘잡귀들은 이걸로 끝났다’ 해서요. 옛날부터 잡귀 쫓는데는 붉은 팥이 좋다고 했는데, 붉은 색은 옛날부터 ‘금지’를 의미했습니다. 중국의 자금성, 불국사의 자하문의 ‘자’자도 붉은 색을 의미하는데, 붉은 색은 전통적으로 재앙, 귀신, 악귀를 쫓는 색깔이에요. 그래서 붉은 색의 팥죽을 쑤어서 뿌리면 재앙을 막을 수 있다고 믿었어요. 그리고 팥죽을 끓일 때 새알을 집어넣어 자기 나이만큼 먹습니다. 저는 옛날에는 항상 ‘나이가 빨리 차야 새알을 더 많이 먹을 텐데’ 했는데, 이제는 주어진 것도 다 못 먹는 수준이 됐습니다. (모두 웃음)
이렇게 한 해가 끝나고 새로운 한 해가 시작이 되는 날이 동지입니다. 달도 기울었다가 다시 차기 시작하는 날이 초하루예요. 그러니 태양의 길이로만 말하면 오늘이 초하루와 같아서 신년이 돼야 해요. 그래서 동지를 ‘작은 설’이라고 하고, 팥죽을 먹어야 나이를 먹는다는 풍속도 있는 겁니다.
이렇듯 이치로만 따지면 새해의 시작을 동짓날로 잡아야 됩니다. 그런데 이치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 이치가 눈에 보이면 우리가 어리석을 이유가 없지요. 해가 점점 길어지면 날도 따뜻해져야 되는데, 실제 현상은 전혀 그렇지 않고, 오늘부터 앞으로 더 추워지거든요. 편차가 있긴 하지만 평균적으로는 동짓날부터 한 달 지난 때가 제일 춥습니다. 여름은 하지 지나고 한 달 이후가 제일 덥고요. 그러니까 여름은 하지 지난 뒤가 오히려 더 덥고, 겨울은 동지 지나고 한 달 전후가 제일 추워요. 그래서 동지 뒤에 소한, 대한이 있습니다. 동지로부터 딱 한 달 뒤가 대한이에요. 지구가 데워지는데도 시간이 걸리고, 지구가 식는데도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일어납니다. 지금까지는 해가 짧아지면서 지구가 식었기 때문에 앞으로 해가 길어지더라도 그 식는 속도가 그대로 한참은 더 가요. 그래서 한 달 지나서야 제일 추운 데서 다시 따뜻한 데로 움직입니다. 하지도 마찬가지예요. 그때까지 지구가 데워지는데 한 달이 걸리니까 하지 지나고 한 달 이후는 더 덥다가 조금씩 다시 식어가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 우리가 현상으로 느끼기로는 대한을 지나야 ‘날씨가 이보다 더 추워지는 날은 없다. 앞으로도 춥지만 이보다 더 추워진 않는다’라고 느끼게 됩니다. 그것이 봄의 소식, 입춘입니다.
입춘이라고 해서 바로 따뜻하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소한, 대한 지나면 얼어 죽을 사람 없다’고 하잖아요. 그 말은 대한을 넘으면 안 춥다는 뜻이 아니라, 가장 추운 시기를 지났기 때문에 앞으로 추운 것 정도는 견딜 만하다는 겁니다. 대한을 넘겼다는 건 나머지는 견딜만하다는 겁니다.
대한을 지나고 맞는 첫 번째 절기는 ‘봄이 왔다. 봄에 들어간다’는 뜻을 가진 입춘이지만 그렇다고 그게 곧 따뜻하다는 뜻이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더 이상 이보다 더한 추위는 없다’는 정도의 뜻이니까요. 참 재밌지요? ‘아직도 춥지만 벌써 봄의 문턱에 들어섰다’는 표현인 것입니다.
봄이 올 첫 번째 징조는 해가 길어지는 건데, 그런 의미에서 새해의 시작이 동지라는 겁니다. 두 번째 징조는 우리가 피부로 느낄 때 ‘이보다 더 추워질 날은 없다. 앞으로는 점점 따뜻해질 거다’ 하는 것이 입춘입니다. 그래서 입춘과 가장 가까운 음력 달을 정월로 잡았어요. 음력설은 입춘을 기준으로 해서 입춘과 비슷한 날이거나 열흘 전후입니다. 1월 하순에 빠른 설이 오고, 입춘 전후로 중간 설이 오고, 입춘하고도 한 열흘 뒤에 늦은 설이 오고, 다시 또 빠른 설이 오는 게 3년 주기로 반복됩니다. 음력은 3년마다 윤달이 드니까요.
이렇듯 입춘을 전후로 한 달이 정월이고, 그 첫날이 설날입니다. 그러니까 입춘하고 설은 같은 거예요. 그래서 중국에서는 설을 춘절(春節)이라고 하잖아요. 계절로 따지면 입춘을 새해의 시작으로 잡고, 그것을 음력으로 잡은 것이 음력설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한 해의 시작이 양력과 음력하고 다른데, 양력 1월도 왜 추울 때로 잡을까요? 양력은 태양력이니까 동지를 지나고 첫 시작을 정월로 잡은 겁니다. 그래서 1월 1일 새해를 추울 때 맞게 되는 거예요.
그런데 실제로 누구나 다 ‘진짜 추위가 가고 따뜻해졌다’고 느끼는 건 입춘이 지나고도 거의 두 달이 지나야 됩니다. 즉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춘분을 지나야 이제 꽃이 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춘분 지나야 개나리며 벚꽃, 진달래 같은 꽃이 피니까 그때는 너도 나도 다 봄인 줄을 알 수 있습니다.
이걸 우리 수행에 비유하면, 오늘 부처님 법문 듣고 ‘아, 모든 것이 다 내 마음이 짓는 거구나. 내가 미워하고 원망하고 괴로운 건 누가 나를 괴롭혀서가 아니라 내가 마음으로 짓는 것이구나’ 하고 자각해서 ‘오늘부터 나도 수행해야지’ 하는 마음을 먹고 입재하는 날이 바로 동짓날입니다. 그래서 동짓날 기도를 열심히 하라는 거예요.
그런데 동짓날 입재하면 앞으로 좋은 일이 생길까요? 아니에요. 동지 지나고 날씨가 더 추워지듯이, 기도는 시작했지만 한 달을 해도 좋아지기는커녕 더 힘들어져요. 예컨대 부부갈등은 더 심해지고, 남편은 더 성질을 부리고, 애는 말을 더 안 듣고, 나는 더 괴로워집니다. 그러면 대부분 하다가 그만두지요. 이걸 마장이라 그래요. 그러나 이치적으로는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 당연한 거예요. 이런 장애는 기도를 하기 때문에 생기는 게 아니라, 그 전에 어리석게 살았던 것의 과보가 늦게 나타나는 거예요. 그런데 나타나기는 기도한 뒤에 나타나니까 여러분은 기도를 잘못 했나 싶어서 자꾸 묻잖아요. 첫째는 ‘기도해 봐야 소용 없더라’ 싶어 그냥 집어치워버리고, 둘째는 자꾸 ‘기도가 잘못 됐느냐?’고 물어요. 기도를 잘못해서가 아니라 고비가 찾아온 것입니다. 그래서 그 고비를 넘겨야 합니다. 십중팔구는 이 고비를 못 넘기고 그만둡니다.
지구가 데워지는 데는 한 달이 걸리는데, 우리의 업식과 관계 있는 이 고비는 보통 백 일이 걸려요. 백 일을 해야 고비를 넘기는데 대부분 그 백 일을 못 채워요. ‘백일기도해서 고비를 넘겼다’는 것은 날씨에서 ‘대한을 지났다’는 것과 같은 말이에요. 가장 큰 어려움을 이겨냈기 때문에, 아직도 어려움이 많이 남아있고 수행하기 싫은 마음도 들지만 백 일이 넘으면 자기 꼬라지를 자기가 좀 알 게 돼요. ‘아이고, 내가 성질이 더럽구나. 내가 이렇게 나를 괴롭히는구나’ 이런 걸 좀 알게 되니까 그게 수행을 이어갈 동력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백일기도를 회향하면 그게 곧 입춘을 맞고 설을 맞는 것과 같아요. 그렇다고 괴로움이 다 없어지지는 않습니다. 더 정진을 해서 춘분을 지나야 합니다. 그래서 꽃도 피고 누가 봐도 ‘봄이 왔구나’ 하고 알 수 있는 수준이 되려면 천 일이 지나야 됩니다. 그래서 천일기도를 하는 겁니다. 기도를 하려면 3년은 하라고 많이들 얘기하잖아요. 천일기도를 해야 변화가 일어나요. 자기가 생각해도 ‘아직 많은 과제가 남았지만 내가 조금 변한 것 같다’고 느껴져집니다. 그리고 남이 옆에서 나를 보고 ‘요새 당신 보니까 화가 좀 줄어든 것 같아’라고 이야기해 주기도 하는데, 그때까지 걸리는 시간이 천 일입니다. 그러면 벚꽃도 피고 개나리도 피는 걸 볼 수 있어요.
그런데 진달래, 개나리가 핀 뒤에도 또 한 번 추위가 찾아옵니다. 꽃샘 추위가 와서 꽃이 얼어 죽는 경우도 많잖아요. 수행을 하다 보면 그런 때가 역시 옵니다. 그러면 수행하기 전으로 되돌아가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때 또 그만두는 사람이 많아요. 수행해서 좋아졌다고 까불다가 꽃샘 추위 한번 맞고 나면 정이 뚝 떨어져서 수행을 관두는 사람이 많아져요. 그럴 때도 일시적인 장애를 넘어서야 합니다. 날씨가 추웠다 더웠다를 반복하다가 점점 따뜻해지듯, 수행을 계속하면 수행이 된 것 같다가 후퇴하는 것 같기를 몇 번 반복해야 해요. 그렇게 꾸준히 하다 보면 드디어 따뜻한 봄날을 맞게 됩니다.
절에서 24절기 중 동지와 입춘을 명절로 삼은 이유는 이런 원리와 관계가 있습니다. 동지기도는 입재와 같고, 입춘기도는 백일기도를 회향하고 3년 기도에 들어가는 것과 같습니다. 여러분을 예로 들면 그 3년 기도하는 동안 불교대학도 졸업해야지, 천일결사에 입재해야지, ‘깨달음의 장’도 갔다 와야지, 경전반도 졸업해야지, 명상수련도 해야지요. 그러다 보면 안 변할래야 안 변할 수가 없어요. 자기도 모르게 수행자가 되어서 우리 인생의 봄날을 맞게 됩니다. 그 시작이 바로 동지가 되기 때문에 동지를 중요시하는 겁니다.
그래서 동지는 우리의 전통문화로 잘 유지해나가야 할 의미가 있는 날입니다. 발렌타인데이보다 훨씬 의미가 있어요. 이런 중요한 민속은 앞으로 복원할 필요가 있어요. 우리 정토회에서도 전법 같은 건 초현대적으로 잘 해가더라도 우리의 전통문화 중에 아주 소중한 것은 다시 되살리는 활동도 함게 해나가면 좋겠습니다.”
수행을 날씨와 절기에 비유해서 한 설명이 참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 대중들은 스님의 법문을 가슴에 새기며 동짓날을 계기로 다시 한번 발심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동지날의 수행적 의미에 대해 이렇게 설명을 마친 후 다음으로는 이런 수행을 통해 내가 먼저 행복해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가장 큰 경쟁력은 행복이라고 하면서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 처해도 빙긋이 웃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보자며 법문을 마쳤습니다.
“여러분이 먼저 행복해야 합니다. 안 그러면 아무리 부처님의 좋은 법을 사람들에게 전달하려 해도 ‘그러는 너는?’이라는 반응이 돌아오기 때문에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그래, 나는 사는 게 재밌다. 내일 죽어도 좋다. 스님 법문을 약으로 먹어보니까 정말 좋아졌다’ 이래야 전달할 때 경쟁력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부처님 말씀 어쩌고저쩌고 할 때 아들이나 딸, 남편이 ‘너나 잘해라’라고 하면 딱 막혀서 할 말이 없어지잖아요. (청중 웃음)
여러분이 아직 부족한 건 사실이에요. 그래서 짜증도 내고, 성도 내고, 욕심도 내지만 ‘그래도 남보다는 내가 더 행복하다. 짜증을 내지만 너보다는 덜 낸다. 나도 괴롭지만 너보다는 덜 괴롭다’ 이런 게 하나라도 있어야 경쟁력이 있지요. 이런 행복 무기를 하나 가져야 이 세상에 법을 전파할 힘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게 있는 한은 전파력이 있고 이게 점점 줄어들면 전파력이 없어져요. 기성의 종교는 이게 없기 때문에 전파력이 없어요. 일부 기독교에서도 복음을 전할 도덕성이 없으니까 신도 수로, 돈으로, 거대한 건물로, 권력과 결탁한 파워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모습을 볼 수 있잖아요. 자신이 행복한 것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게 아닙니다.
조선시대 때 천주교가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온 초기에는 천주교 신자들이 박해받다가 죽게 되더라도 웃으면서 죽었답니다. 같이 사형당하는 형제들끼리 ‘천국에 가서 보자. 우리 천국에 가서 점심 먹자’라고 인사하면서 죽었다고 해요. 그러니 죽이는 사람도 그 모습을 보고 감화를 받았다는 겁니다. 안중근 의사가 사형 당하게 되었을 때 그 어머니는 아들에게 수의를 준비해 주면서 ‘1심 재판 결과에 불복해서 항소하거나 상고를 하지 마라. 침략자를 상대로 무슨 재판을 하느냐. 천국에 가서 보자’라고 했답니다. ‘이 옷 입고 죽어라. 이 세상에서 너와는 더 이상 볼 일이 없다’라는 건데, 엄마가 아들한테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요? 우리 같으면 울고불고 야단이었을 겁니다.
천주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와 박해를 받으면서도 200년 만에 이렇게 큰 교파를 형성한 것은 그런 신앙심 때문입니다. 저는 여러분들도 아무리 못해도 그 정도는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부처님 법이 훌륭하다 말하면서도 실제로 하는 행동은 영 다르니까 다른 사람들로부터 ‘너나 잘 해라’라는 말을 듣는 거예요. 그러니 오늘 동지를 맞아서 다시 발심을 하셔야 해요. (모두 웃음)
똑같은 일을 당했는데도 다른 사람들은 ‘죽네 사네’ 야단이더라도 우리는 빙긋이 웃어야 해요. 예를 들어 병원에서 암이라는 진단을 받으면 빙긋이 웃으면서 의사 선생님한테 ‘아이고, 축하드립니다. 드디어 발견하셨네요’라고 할 수 있어야 해요. (청중 웃음)
의사가 그거 발견한다고 애썼잖아요. 환자가 돈을 들였는데, 뭐라도 발견이 안 되면 돈만 많이 쓰게 한 것 같아서 괜히 미안할 수도 있잖아요. 그렇게 병난 몸으로 의사를 교화할 수도 있어요. 굳이 ‘불교 믿으세요’ 이런 이야기를 할 필요가 없어요. 그런 수준이 될 때까지 수행하셔야 합니다. 어떤 일을 당해서 처음에는 화나 슬픔이 올라오더라도 금방 정신을 차리고 ‘아, 그래’ 할 수 있어야 돼요. 암이 오늘 갑자기 생긴 건 아니잖아요. 내 몸에 이미 있던 거예요. 그러니 오늘 발견한 건 잘 된 거예요. 오늘 발견하지 못했으면 암덩어리가 계속 커져서 나중에 더 큰일이 되었을 텐데, 지금 발견해서 더 커지기 전에 치료할 수 있게 되었잖아요. 그러니 죽겠다고 인상 쓰지 말고, 오늘 발견한 걸 축하하면서 건배를 해야 해요. 그런 자세가 필요합니다.
암 선고를 들었을 때 슬픔이 올라오더라도 ‘아, 그래. 발견했으니 잘된 거야’ 이렇게 생각을 돌이켜서 얼른 표정을 바꾸고 웃으면서 ‘축하합니다’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같이 수행해봅시다.”
암 선고를 받아도 웃을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수행을 해보자는 말씀에 대중들은 큰 박수로 공감을 표했습니다. 너무나 적나라한 비유였지만 그 어떤 비유보다 수행이란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는 말씀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동지 법회를 모두 마치고 곧 이어 정진 시간이 이어졌습니다. 대중들은 스님의 법문을 가슴에 새기며 처음 수행을 시작할 때의 마음으로 돌아가 한 배 한 배 절을 했습니다. 내년 봄에 입춘이 되면 제8차 백일기도 입재식이 열리는데 스님 말씀대로 그 때가 되면 여러 고비를 넘기고 곳곳에서 봄소식을 접하며 따듯한 날을 맞이하게 되겠지요.
한편 공양간에서는 동지 날을 맞이하여 많은 봉사자들이 아침 일찍 나와서 팥죽을 쑤어 주었습니다. 오늘은 팥죽을 먹고자 평소보다 많은 대중들이 배식대 앞에 길게 줄을 섰습니다.
팥죽을 먹으며 한 해의 액운을 모두 떨쳐내고 내년에는 더욱더 수행정진을 많이 할 수 있기를 다짐해 보았습니다. 농담삼아 새알을 나이 수만큼 먹으려고 하는 대중들도 보였는데, 새알이 부족해서 웃으면서 아쉬움을 달래야 했습니다.
동지 법회 후 스님은 찾아온 손님들과 연이어 미팅을 가지면서 오후 내내 집무실에서 업무를 보았습니다. 내일은 오전 10시에 주간반 대중들을 위해 송년법회를, 저녁 7시에 저녁반 대중들을 위해 송년법회를 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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