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5.12.17 (저녁) 쑥고개 성당 초청강연

 

안녕하세요. 오후에 서울 정토회관에서 열린 통일의병교육에 이어서 저녁 8시부터는 쑥고개 성당에서 ‘민족의 화해와 남북의 통일’을 주제로 천주교 신자들을 위한 즉문즉설 강연이 열렸습니다. 

 


▲ 쑥고개 성당

 

강연 시간보다 30분 일찍 쑥고개 성당에 도착한 스님은 대기실에 머물며 스님을 초청한 쑥고개 성당 김홍진 신부님과 담소를 나누었습니다. 

 


▲ 스님을 초청한 김홍진 신부님

 

신부님은 스님께 다음주 성탄절 미사에도 참석해서 강론을 해줄 것을 요청하면서 정토회에서 몇 명의 대중들이 함께 올 것인지 물어보았습니다. 매년 성탄절 미사에 스님과 정토회 대중들을 초청해서 미사를 마친 후 식당에서 식사를 대접해 주셨는데, 올해는 단골 식당이 문을 닫았다며 성당 사목회에서 직접 식사를 마련하겠다고 합니다. 특히 작년부터는 정토회 청년회와 쑥고개 성당 청년회 간의 교류 활동도 시작되었는데, 청년들이 많이 왔으면 좋겠다고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스님도 성탄절 날 정토회 청년들과 함께 오겠다고 말하며 대기실을 나왔습니다. 

 

200여 명의 천주교인들이 자리한 가운데 스님과 신부님이 함께 성당 안으로 들어서자 큰 박수로 스님을 반갑게 맞이해 주었습니다. 

 


 

먼저 사회자가 지난 20여 년 동안 스님이 걸어온 통일을 위한 활동들을 소개해 주었습니다. 94년부터 시작된 북한의 식량난을 해결하기 위해 해온 온갖 노력들, (사)좋은벗들을 설립해 북한 난민들을 도운 일, 평화재단을 설립해 다양한 통일정책 연구활동과 대중 통일교육을 해온 일, (사)JTS를 설립해 북한의 탁아소, 양로원 등을 지원해온 일 등을 소개한 후 큰 박수로 스님을 무대 위로 모셨습니다. 

 

스님은 오늘은 공동체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는 시간이라며 무엇이든 편안하게 물어볼 것을 제안하며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는 주로 개인이 괴로워하는 문제를 다뤄요. 인생을 굳이 힘들게 살 필요가 없으니 생각을 좀 바꾸면 편안하게 살 수 있다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그런데 오늘은 개인이 아니라 개인들이 모여 이루는 공동체, 즉 국가 공동체 또는 민족 공동체를 우리가 어떻게 만들어갈 때 그 구성원인 우리들이 더 행복할 수 있느냐라는 문제를 가지고 대화하는 시간이에요. 

 

그래서 이름은 통일문제라고 하지만 통일을 중심으로 하는 여러 사회 현상들에 대해 여러분과 대화를 나눠보고 싶어요. 제가 일방적으로 하는 것보다는 여러분과 주고받는 게 낫잖아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궁금해 하는 것을 이야기하려 합니다. 통일이든, 북한 사정이든, 주변 강대국들 이야기든, 한국 정치문제든, 요즘 일어나는 현상들을 보면서 어떤 게 궁금하고 어떤 게 이해가 잘 안 되는지, 미래를 예측할 때 어떤 게 잘 예측이 안 되는지, 자기가 문제 삼는 것을 물어보세요. 아들딸이나 배우자와의 문제 같은 개인의 문제처럼 우리 사회의 문제도 자기 문제의식을 갖고 대화를 해야 재미가 있습니다. 안 그러면 다들 재미없어서 졸아요. (청중 웃음) 

 


 

날씨도 추운데 졸면 힘들어요. 손들고 우리 공동체에 대해서 아무 이야기나 질문해보세요.”

 

여기저기서 손을 들었고, 총 3명이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첫 번째 질문자는 통일이 과연 언제 될지 궁금하고, 스님은 통일의병이라는 단체를 만들어서 국민들의 의식을 깨우치는 일을 하고 계신데 어떤 노력을 해야 통일이 될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두 번째 질문자는 정치인들이 국민을 위해 봉사하기 보다는 자기 이익만 추구하는 것 같다며 어떻게 갈등을 통합할 수 있을지 물었습니다. 세 번째 질문자는 비용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통일을 반대하는 젊은 사람들에게 한 말씀 해달라고 부탁한 후 스님이 생각하는 통일 방안은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 정치인들의 행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며 국민통합을 이뤄가기 위한 방안을 물었던 내용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스님은 정치인들의 개인적 성향으로부터 시작해서 한국 사회가 갖는 승자 독식의 폐해, 제왕적 대통령제의 한계, 양당 구도로 인해 국민의 삶과 괴리되어 가는 정치 현실에 이르기까지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대한민국의 위정자들이 국민을 위해 봉사하고 섬기는 마음으로 일하거나 국가의 통일에 주안점을 두고 움직이지 않고 자기 이익만 추구하는 것을 많이 경험합니다. 그러다보니 여론이 나눠져서 서로 상대를 비난하며 다투게 되고, 선거를 할 때도 정말로 대한민국과 국민을 위하는 위정자를 뽑는 것이 아니라 자기 지역이나 종교가 일치하는 사람을 뽑으려 하다 보니 방향이 흔들리는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아무리 작은 선거라도 빠져본 적 없이 항상 주권을 행사하고는 있지만 이런 것들을 보다 보니 마음속에서는 정치나 경제의 주체가 되는 큰 세력들을 바꿀 힘이 나에게 없다, 대한민국의 변화가 정말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 점점 무관심해집니다. 젊은 사람들의 무관심이 이해가 가더라고요. 

 

이런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과 나누다 보면 우측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빨갱이란 말을 듣고, 좌측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너무 우유부단하다는 말을 듣습니다. 저는 정치인이든 국민이든 통일이라는 그 목표에 초점을 맞춘다면 그런 대화는 전혀 문제가 안 될 것 같은데, 한국에서는 나눠진 여론 속에서 자기 이익만 내세우는 것 같아요. 그럴 때 마음을 어떻게 다스려야 정말로 이 변화를 만드는 데 동참할 수 있을까요?”

 

“좋은 질문을 해주셨습니다. 그렇게 된 데에는 두 가지 원인이 있습니다. 하나는 개인의 성향문제이고 하나는 제도의 문제예요.

 

개인의 성향부터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어릴 때부터 누가 아프다고 하면 팔도 주물러 주고 물도 떠주며 보살피는 심성이 있던 사람들이 의사가 되면 의사의 본분을 다하겠죠. 그런데 본인은 전혀 그런 심성도 생각도 없는데 성적이 좋으니까 주변에서 ‘의사 되라. 돈 많이 번다’ 해서 의대에 보냅니다. 부모든 아이든 돈 벌기 위해 의사가 되니까 아무리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를 읽고 의사의 본분을 이야기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의사 된 뒤에도 제일 돈을 많이 번다는 성형외과로만 몰려가고 일반 외과 수술은 기피해서 요즘 외과 의사가 부족해요. 이렇게 돈 많이 벌려고 의사가 됐으니까, 돈을 못 벌면 주변에서 ‘너는 의사가 돼서 왜 돈도 못 버냐’라는 말을 듣습니다. 처음부터도 잘못되었지만 중간에 정신을 차리려 해도 주위 사람들 때문에 멈출 수가 없어요. 돈을 못 벌면 왕따나 실패자가 됩니다. 그러니 아픈 사람이 없으면 의사가 좋아해야 할 텐도 오히려 ‘환자가 왜 안 올까’ 하고 걱정하는 거예요. 이 말은 ‘좀 아파야지. 그것도 이왕 아프려면 좀 크게 아파야지’라는 말입니다. (청중 웃음) 

 


 

게다가 돈 벌려고 과잉진료를 해서 검사 안 해도 될 것도 다 검사합니다. 그래서 요즘은 의사의 의술을 못 믿는 게 아니라 과잉진료를 못 믿어서 이 병원 저 병원을 전전합니다. 의료보험이며 여러 가지 부정이 생기는 이유도 출발이 이렇고 주변에서도 그런 시각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괴롭게 사니 주말 되면 술을 마시거나 골프를 치면서 다른 걸로 스트레스를 해소해야 하는 거예요.

 

법대 가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어떤 사람이 법을 몰라서 시민으로서의 당연한 권리를 빼앗기는 걸 보고 정의감을 느낀 사람이 법대에 가서 판사든 검사든 변호사가 돼야 정의를 세우는 일을 하는데, 문과에서 공부 잘 하는 학생에게는 덮어놓고 법대 가라고 해요. 돈 많이 번다고요. 그러니 아무리 유명한 판사든 검사든 변호사든 권력이나 돈에 약할 수밖에 없어요. 지위가 높고 경력이 오랜 사람들이 나중에 다 불쌍하고 억울한 사람들을 변호하지 않고 대형 로펌에 가서 재벌 탈세하는 걸 뒤처리해주고 돈을 법니다. 그런 걸 해야 돈이 벌리니까 대법관 출신들은 다 후자로 가요. 

 

개인이 문제라고도 할 수 있지만, 우리 사회가 지금 이렇게 잘못돼 있어요. 정치인도 그래요. 국가 권력이나 돈에 억압당하는 약자들을 보호하고자 정치인이 된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요? 우리는 직업을 막론하고 권력 지향적입니다. 의사협회 회장 하면 다음엔 국회의원 하고, 간호사 협회 회장도 다음에 국회의원 하고, 노동조합 전국위원장도 다음엔 국회의원 하고, 장애인 단체 회장도 다음에는 국회의원을 합니다. 이렇게 권력지향적인 사람들만 모여 있으니까 일반인보다 훨씬 더한 해바라기들이어서 이런 문제가 생기는 거예요. 이것은 제도 문제만으로도 해결이 안 되고, 개인을 욕한다고도 해결 안 돼요. 우리 사회 전체가, 우리 모두가 다 공범이에요. 이런 가치관의 문제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나서 몇 백 년 동안은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 손해를 보는 세상이었습니다. 손해 보는데도 믿는 것이 신앙이에요. 200년 전 조선에 천주교가 들어왔을 때 천주교를 믿으면 손해 보는 정도가 아니라 죽었어요. 그런데 지금 천주교 믿으면 재산 몰수당하고 직장 쫓겨나고 죽는다고 하면 믿을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요. 하나도 없진 않겠지만 거의 없을 거예요. 반면에 천주교든 불교든 그걸 믿으면 공부 못 해도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국회의원에 당선되고, 돈 많이 벌린다고 하니까 대다수가 그리로 쫓아갑니다. 이건 신앙과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언제부터 이렇게 되어버렸는지 모르겠어요.

 


 

이렇게 하나님의 은총이 신도 수와 돈으로 표현되니까 교회를 크게 지어야 성공한 목사이고 교회가 작으면 하나님의 은총이 없는 교회가 되는 것이지요. 큰 교회에 신도가 더 많이 가는 것은 거기가 하나님의 은총이 있는 곳이라서 그런 거예요. 일부 기독교인들이 작은 교회에는 구원이 없다고들 하잖아요. 종교마저 성전을 크게 짓고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몰려와야 하나님의 은총을 받았다는 식으로 지금 접근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된 게 첫째 문제입니다. 그러니 참답게 사는 가치를 회복해야 해요. 제가 보기에는 천주교, 개신교, 불교를 떠나서 지금 세상에는 돈교라는 딱 하나의 신앙만 있는 것 같아요. 신앙은 돈교 하나인데 그 밑에 점포가 여럿 있어서 ‘우리 집에 오면 돈 잘 벌린다’ 하며 서로 경쟁하는 거예요. 북한에는 김일성 유일신앙이 있고, 남한에는 돈이 유일 신앙이에요. (청중 웃음)

 


 

그런데 이런 사회 흐름에 거슬러 나타나는 현상이 세 가지 있다는 이야기를 얼마 전 어디서 읽었습니다. 그 첫 번째가 프란체스코 교황입니다. 이 분은 전부 다 돈을 따라 가는 로마카톨릭 교회에서 아웃사이더였는데 주류로 올라왔어요. 그래서 교황님이 좋은 말씀 많이 하시지만 여러분들 입장에서 받아들이려면 불편한 이야기도 있잖아요. 두 번째가 미국 민주당 대선 주자 중 힐러리 클린턴 다음인 버니 샌더스 의원입니다. 이 사람은 미국 사회에서 오랫동안 사회주의 운동을 해온 사람입니다. 옛날 같으면 명함도 못 냈을 사람이 2위로까지 올라와서 높은 지지를 받고 있어요. 세 번째는 ‘구식 좌파’라고 불릴 정도로 성향이 뚜렷한데도 영국 노동당의 당수가 된 제레미 코빈입니다. 특정한 사상이 정당하다거나 특정 인물이 훌륭하다는 뜻으로 말씀드리는 게 아니에요. 거대한 자본의 흐름에 약간 다른 징조가 지금 나타나기 시작한 반증이라는 겁니다. 이런 면에서 우리가 조금 미래사회를 주의 깊게 예측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대로 흘러가서 같이 패망할지, 아니면 예수님 같은 성인이 또 나와서 이 흐름을 바꿀지 지금은 모르겠습니다만 어쨌든 지금은 사회의 흐름이 이렇기 때문에 정치인들 개개인을 나무랄 수는 없어요. 여러분들이 생각하듯 순수하게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정치하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말만 그렇게 하지요. 그런데 정치인만 그런게 아니에요. 스님, 목사, 신부도 다 말만 그렇게 하잖아요. 주일 헌금을 공중에 집어던지면서 ‘하나님의 것이거든 하늘로 가고 내 것이거든 땅으로 떨어져라’라고 한다는 농담이 있을 정도입니다. (청중 웃음) 

 


 

신앙을 흔들려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이만큼 우리가 물질적 가치로 치우쳐져 있다는 거예요. 물질적 가치가 아예 필요 없으니 중세 사람들이나 청교도처럼 살자는 게 아닙니다. 물질적 가치로 너무 치우쳐버려서 신앙의 근본까지도 놓쳐버렸다는 말씀을 드리는 거예요.

 

다른 하나는 제도의 문제입니다. 첫째, 지역주의에 뿌리를 둔 양당 구조 때문입니다. 지역주의에 뿌리를 둔 양당구조 때문에 제3의 선택을 할 수 없어요. 경상도에서 아무리 새누리당이 미워도 전라도 당을 찍을 수 없고, 전라도에서 아무리 민주당이 미워도 경상도 당을 찍을 수 없으니 비판하다가도 표 찍을 때는 ‘우리가 남이가’ 하고 찍습니다. (청중 웃음) 

 


 

전라도에서 민주당을 반대하는 사람과 경상도에서 새누리당을 반대하는 사람은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에요. 자기 투표가 국정에 반영된 적이 없으니까요. 이게 다 사표(死票)예요. 이런 시스템이 잘못됐다는 겁니다. 

 

그러니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는 다당제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정당은 자기들이 획득한 득표율만큼의 의석 수를 가져야 해요. 예컨대 새누리당이 전체 표의 40퍼센트를 얻었다면 국회의원 수도 총 100명이라면 40명이어야 해요. 그런데 지역구에서 이미 40명이 넘어버렸다면 비례 대표는 받지 못해요. 그런데 지지율 5퍼센트를 얻으면 지역구에서는 한 자리도 못 얻는다 하더라도 5명을 배정해줘야 해요. 개인이 나서서 지역에서 경쟁해 올라온 사람과 비례대표제의 경우도 각 득표 별로 배정해줘서 국민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줘야 해요. 

 

옛날에는 자본가와 노동자를 딱 나누어서 자본가의 이익을 대변하는 게 보수당이고 노동자의 이익을 대변한 게 진보당이라고 말했는데 지금은 자본가와 노동자를 나누기 어려워요. 자본가 안에서도 재벌 기업과 중소기업의 이해관계는 완전히 달라요. 자영업자와도 또 이해가 다르고요. 자영업자는 노동자가 아닌 자본가인데도 재벌기업 노동자보다 수입이 적어요. 노동자 중에서도 재벌기업에서 일하거나 민노총에 소속된 노동자들은 연봉이 1억 가까운 경우도 많고요. 말은 노동자인데 학력이나 수입은 자본가인 자영업자보다 훨씬 높고, 중소기업 노동자와는 임금 차이가 배 가까이 나요. 또 중소기업 노동자들 중에서도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에 임금 차이가 배 가까이 나고요. 이제는 자본가니까, 혹은 노동자니까 이해관계가 같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사회가 이렇게 다양해졌어요. 그러니 어느 한 당이 전 국민의 이익을 대변한다는 말은 거짓말입니다. 현재 새누리당이라면 재벌기입의 이익을 대변한다, 즉 국민의 1퍼센트를 대변한다고 해야 맞아요. 야당은 소위 진보당까지도 민주노총의 이익을 대변한다고 보면 10퍼센트의 이익을 대변하는 셈입니다. 나머지 90퍼센트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당은 대한민국에 없어요. 지역주의에 뿌리를 둔 양당 구조에서는 우리 피부에 와 닿는 생활 개선 정책이 나올 수 없어요. 또 이게 승자독식 구조니까 죽기 살기로 싸워요. 

 

 

그러니 다당제로 가서 연정을 해야 해요. 지역 정당을 하고 싶으면 지역 정당을 하고, 이념 정당을 하고 싶으면 이념 정당을 하고, 환경 정당을 하고 싶으면 환경 정당을 하되 연정을 통해 이해관계를 조율해야 합니다. 정치가 이해관계를 조율하는 역할을 못 하니까 강정마을이다 밀양 송전탑이다 해서 온갖 충돌이 일어납니다. 공권과 국민이 직접 충돌하는 거예요. 원래는 그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치인이 의회 내에서 이익을 조율하고, 다시 현장에 내려가서 주민을 설득해야 합니다. ‘주민들의 이익을 도저히 다 수용할 수는 없지만 60퍼센트는 받아들일 수 있다고 한다’ 이런 식으로 설득하고 타협해서 조율해 나가야죠. 

 

그런데 현재의 사회 구조에서는 갈등이 극심해서 한국의 갈등지수가 OECD 가입국 중 2위입니다. 1위인 터키는 종교와 민족이 엄청나게 섞여 있어서 당연히 갈등이 심할 수밖에 없는데, 그런 나라 다음으로 갈등이 극심한 나라가 대한민국이에요. 이 갈등으로 인한 손실이 몇 백 조에 이릅니다. 어떤 통계에서는 248조라고 계산해놨어요. 이런 막대한 손실이 발생하는 것도 국민의 의사를 대변하는 정치세력이 없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입니다. 

 

제왕적 대통령제도 문제입니다. 권력이 대통령에게 지나치게 집중되어 있는데 이게 대통령에게도 좋은 게 아닙니다. 대통령의 권력은 너무 크고 장관은 권력이 없어요. 삼권분립을 해야 하는데 의회에게도 사법부에게도 힘이 없어요. 뭐가 잘못되면 장관이 책임지고 나가야 할 텐데, 장관이 아무 권한이 없으니까 뭐가 잘못되면 죄다 대통령을 탓해요. 그러니 이건 대통령 개인에게도 불행이에요. 우리 역대 대통령들 중 성공한 대통령이 한분도 없잖아요. 지금 대통령도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청중 웃음) 

 


 

이렇게 너무 큰 권력이 한 사람에게 몰려 있으니까 그 주위의 책임 없는 사람들이 권력을 행사하잖아요. 이런 일은 권한이 너무 비대해서 생겨요. 장기독재를 막기 위해 단임제 하는 것만 생각하고, 대통령의 막강한 권한을 줄일 생각은 안 하고 헌법을 만든 게 지금까지 왔어요. 그래서 역대 대통령들이 다 불행해졌습니다. 외교, 안보, 국방, 통일이라는 국가에 대한 권한만 대통령이 갖고 나머지는 내각이 가져서 각자 나누어 집행하고 책임져야 국가가 제대로 유지되고 관리됩니다. 그래서 삼권분립을 다시 제대로 해야 하고, 행정부 안에서도 대통령의 권한을 내각으로 많이 이전해야 해요. 장관이 대통령의 비서가 되면 안 됩니다. 

 

그리고 권력이 중앙에 너무 많이 모여 있으니 지방 분권을 추진해야 합니다. 중앙권력이 지방으로, 지방에서 다시 기초자치단체로, 기초자치단체에서 다시 주민센터로 분산되어야 해요. 돈이 분산되는 게 경제민주화, 권력이 분산되는 게 정치민주화예요. 이렇게 분산이 돼야 국민에게 그 권리가 가까이 다가오고 또 국민이 고루 잘 사는 세상이 되어서 국민의 행복지수도 높아집니다. 지금 이게 안 되니까 국민의 행복도가 자꾸 떨어져요.

 

그러니까 이걸 질문자 말대로 바꿔줘야 해요. 여당 정치인들을 만나서 제가 질문자 같은 비판을 하면 대부분 답하기를, 줄서기 잘하는 것 외에는 개인이 어떻게 해볼 수가 없대요. 야당과 만나면 야합했다면서 배신자 취급을 하니 줄 서는 것 빼고는 다른 선택이 없다는 거예요. 정치인들의 그런 출발도 문제지만, 개중 괜찮은 정치인마저도 이런 체제 안에서는 운신할 폭이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오히려 밖에서 변화를 좀 도모해줬으면 좋겠다고 해요. 우리는 ‘너희가 어떻게 좀 잘해봐라’ 하는데 자기들은 우리더러 ‘밖에서 어떻게 좀 변화를 만들어줘야 우리가 어떻게 해본다’라고 하면서 얽혀 있어요. 

 

이런 점을 이해해서 여러분들도 앞으로 권한이 시장과 도지사, 기초자치단체장, 또 그 아래 주민자치센터까지 내려올 수 있도록 하는 지방분권에 힘써야 합니다. 

 


 

또 국가는 통일을 해야 하니까 연방에 준하는 체제를 갖줘야 해요. 또 다당제로 가서 국민의 다양한 의견들이 수렴되고, 또 의회에서는 상시적으로 국민 각계각층의 이해를 조정할 수 있는 연정을 해야 해요. 그런데 지금은 국민이 51퍼센트 지지한 대선 후보가 대통령이 되고 49퍼센트 지지를 받은 사람은 그냥 떨어지는 승자독식구조입니다. 국민의 전체가 아닌 절반이 찍어준 거니까 절반의 대통령이에요. 그러나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면 나를 찍어주지 않은 절반도 국민이니 그들의 권익도 보전해줘야 합니다. 그러면 적어도 떨어진 사람을 국무총리로 임명하든지 해서 전체 국민의 의사를 최대한 반영해줘야 해요. 그런데 우리 나라는 지금 그렇게 안 돼 있다는 것이 저렇게 계속 싸우는 원인 가운데 하나이지 않을까 합니다. 

 

첫째는 사람의 문제, 즉 참여한 개인의 참여 동기 문제이지만, 둘째는 제도의 문제도 함께 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정치 갈등의 원인을 개인적 측면에서 그리고 제도적 측면에서 함께 이야기해 주어서 문제의 본질에 대해 더욱 명쾌하게 이해를 할 수 있었습니다. 스님의 논리적이고 명쾌한 설명에 모두들 감탄하며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 

 


 

이렇게 모든 질문에 대해 답변을 마치고 나니 약속한 2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은 너무 감정적 대응에만 치우쳐서 천년의 꿈을 이룰 절대절명의 기회를 놓치지 말고, 예수님의 십자가 정신을 상기하며 북한을 포용해내어서 세계 문명의 중심으로 도약하자고 강조하며 강연을 마쳤습니다. 

 

“남북이 통일 되면 영토가 9만 8천에서 21만 제곱킬로미터, 인구가 5천만에서 7천 5백만이 됩니다. 그러면 이탈리아나 영국을 능가합니다. 조금만 내부 정비가 되면 스페인이나 이탈리아는 경쟁이 안 돼요. 지금 남한만으로는 어림없지만 통일이 되면 국가적으로 세계 10위에 진입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립니다. 

 


 

그리고 통일 한국이 일본과 중국까지 협력해 동아시아공동체를 만들면 이 동아시아공동체의 경제력이 세계 경제집단 중 제일 커집니다. 그러면 유럽에서 미국으로 이동했던 세계 문명의 중심이 아시아로 와서 동아시아시대가 도래합니다. 빈말이 아니라 1세기, 즉 100년 정도만 우리가 이렇게 해나가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어요. 21세기 초에 우리가 남북통일을 이룩하고, 중엽에 동아시아공동체를 만들어 나간다면, 21세기 말엽에는 동아시아시대가 도래하고, 우리가 그 동아시아시대의 중심국가로 설 수 있습니다. 반드시 그렇게 된다는 건 아니지만 이런 가능성이 있어요. 

 

이 가능성은 선조들의 노력 덕분에 가능한 것입니다. 그 어려운 속에서도 우리 선조들이 나라의 독립을 위해 싸워서 독립했고, 배고픈 걸 극복하는 산업화를 성공했고, 투쟁을 통해 민주화를 이루어놓았기 때문에 그들의 공로를 딛고 이제 우리가 마지막 과제인 통일을 이루자는 거예요. 통일을 해도 그저 통일에 머무르면 안 됩니다. 통일은 첫 발걸음이에요. 통일을 이루어서 동아시아 공동체로, 나아가 세계 문명의 중심으로 간다면 고구려와 발해 멸망 이후 천 년의 꿈을 실현하는 겁니다. 

 

우리가 미래 100년을 이렇게 그려본다면 지금의 작은 이해관계와 다툼 정도는 능히 극복할 수 있습니다. 북한도 남한도 서로 여러 가지 상처를 입어서 적대감이 있는 건 사실이에요. 그러나 이 감정에 치우치면 우리에게는 미래가 없습니다. 이런 감정은 이해하지만, 감정을 뛰어넘어야 해요. 

 


 

그럴러면 예수님께서 ‘주여, 저들을 용서하소서’라고 하신 것과 같은 우리의 용서가 있어야 합니다. 자꾸 인간적 감정만 주장하면 우리에게 부활은 없습니다. 감정을 뛰어넘을 수 있어야 민족적 부활을 향해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니 누구보다 여러분들이 가장 앞장서 주시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리며 마치겠습니다.”

 

스님이 예수님의 십자가 정신을 이야기하며 민족적 부활을 이야기하자 천주교인들도 너무나 기쁜 마음으로 박수 갈채를 보냈습니다. 

 


 

오늘 강연 주제인 ‘민족의 화해와 남북의 평화통일’의 방법은 바로 예수님이 걸어가신 그 길 속에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한국 사회가 갖고 있는 근본적인 모순들을 직시할 수 있어서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인 차원에서도 성인의 가르침을 따르기 보다 욕망을 쫓아왔던 우리들의 삶을 돌아볼 수 있어서 참 좋았습니다. 

 


 

이렇게 강연을 마치고 스님은 다시 대기실로 이동해 스님을 초청한 김홍진 신부님을 비롯해 사목회 분들과 조촐하게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한 분은 “어쩜 그렇게 논리적이고 명쾌하게 강연을 하실 수 있느냐?”고 하면서 “너무나 재미있게 강연을 들었다”며 소감을 말해주었습니다. 

 


▲ 성당 사목회 분들과의 차담

 

함께 자리한 수녀님은 불교에 대해 평소 궁금한 점이 많았다며 ‘보살은 무엇을 뜻하는지’, ‘비로자나 부처님은 어떤 분이신지’, ‘아라한은 무엇을 말하는지’ 물어보았고, 어떤 천주교인은 ‘스님은 성경도 정말 잘 알고 계신데 어떻게 성경을 공부하게 되셨는지’, ‘한국은 자살율이 세계 1위라고 하는데 이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등 여러 가지를 스님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스님이 쉽게 설명을 해주자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고, 종교의 벽을 허물고 아주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되었습니다. 

 


▲ 김홍진 신부님과 법륜 스님

 

스님은 “크리스마스 날에 다시 뵙겠습니다”고 인사를 한 후 성당을 나왔습니다. 서울 정토회관에는 11시가 다 되어 도착한 후 오늘 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 내일부터 이틀 간은 평화재단 평화연구원 전문가 30여 명과 함께 2015년을 평가하고 2016년을 조망해 보는 통일 정책 연구 워크샵에 참석해 대화를 나눌 예정입니다. 

 

※ 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을 한 권의 책으로 엮은 '야단법석'을 지금 인터넷 서점에서 만나보세요. 14만 킬로미터의 여정에서 만난 2만 2천여 명 세계인과의 행복한 대화가 생생하게 담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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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댓글 64

0/200

정석

진짜 멋지십니다 스님

2016-01-11 13:57:06

김봉석

스님께서도 말씀하셨듯이 개인적인 양심개발이던 수양을 통해서던 지속적 수행을 할 수 있어야 그런 정치적인 자리에 가서도 빛을 발휘할 수 있지 아니면 부패의 흐름에 나약한 에고는 섞여갈 거 같네요..저도 입장바꿔 만약 그런 위치에 있다면 과연 양심에 맞게, 정의롭게 처리할 자신이 아직은 없다고 생각되거던요..남을 비판하듯이 자신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어야 할 거 같습니다..스님의 촌철활인의 말슴에 감사드리며 늘 건강하세요^^

2015-12-22 12:17:18

오진수

언제나 명쾌하고 명료한 가르침 감사합니다

2015-12-22 06:2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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