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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NGO탐방차 서울에 와 있는 26기 백일출가 행자들을 위해 법문을 해주었습니다.
어제밤 12시에 울산 두북을 출발한 스님은 새벽 4시에 서울 정토회관에 도착했습니다. 스님은 “차 안에서 충분히 쉬었다”고 하며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하루 일과를 시작했습니다.
새벽 4시 30분, 도량석을 시작으로 서울공동체 상주대중들과 백일출가 행자들의 우렁찬 염불 소리가 법당에 가득 울려퍼집니다. 백일출가 행자들은 JTS, 평화재단, 좋은벗들 등 정토회 내 다양한 사회활동단체들을 견학하기 위해 5박 6일간 서울에 머무는 중입니다.
이어서 6시 30분부터는 발우공양을 함께 했습니다. 백일출가 행자들과 함께한 덕에 평소보다 꽤 많아진 인원으로 경건하게 발우공양을 마쳤습니다.
▲ 발우공양
발우공양을 마치고 대중공사 시간이 되자 스님은 백일출가 행자들이 많이 참석한 것을 확인한 후 가볍게 질문을 던지며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엄숙한 분위기에서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갑자기 전환이 되었습니다. 먼저 백일출가 행자들이 누구인지 직접 손을 들어보게 했습니다.
“백일출가생들 몇 명이나 왔어요? 손 들어봐요. 어디 앉았나요?”
행자들이 손을 번쩍 들자 스님은 행자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유심히 살펴보았습니다. 모두 14명이 함께 자리했습니다.
“백일출가 회향이 1월 2일이면 연말은 정토회에서 보내야 되겠네요. (웃음) 누가 소감 한마디 해봐요. 대표를 맡고 있는 행자님은 어떻게 오셨어요?”
백일출가 대표를 맡고 있는 여자 행자님이 씩씩하게 답합니다.
“백일출가 전에는 직장생활을 하다가 사표내고 왔어요.”
“요즘 직장 구하기 어렵다던데 왜 좋은 직장을 그만두고 왔어요?”
“백일출가 너무너무 오고 싶어서요.”
“해보니까 어떤가요? 괜히 왔다 싶어요?”
“잘 모르겠어요.”
“후회하는구나. (대중 웃음) 백일출가 끝나면 직장 다시 다닐 거예요?”
“아니요. 하고 싶은 일이 딱히 없어요.”
“하고 싶은 일이 없으면 정토회에서 살면 되겠네요. 오갈 데도 없는데, 먹여주고 재워주는 정토회가 있잖아요.” (웃음)
이번에는 맨 끝줄에 앉은 여자 행자에게 물어봅니다.
“저기 맨 끝에 행자님은 뭐하다 왔어요?”
“저는 1월 달에 직장 그만두고 문경수련원에서 바라지생활 계속 하다가 들어왔습니다.”
“바라지생활 하면서 왔다갔다 하다가 직접 들어와서 살아보니 어때요?”
“들어와서 사는 게 더 좋은 것 같아요.”
“여기 오래 산 실무자들은 어때요? 살아보니까 좋아요?” (대중 웃음)
스님 옆자리에 앉아있는, 20년이 넘게 정토회에서 일해 온 실무자를 향해 가볍게 농담조로 물어보니 모든 대중은 빵하고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그러자 실무자 분이 환한 웃음과 함께 대답했습니다.
“얼굴이 좀 환해졌다고 하더라구요.” (웃음)
편안하고 유쾌한 분위기가 되어 또 다른 행자에게 물어봅니다.
“이번엔 남자 행자님도 한번 이야기 해봐요. 저기 키 큰 남자 행자님은 뭐하다 왔어요?”
“호텔에서 25년간 요리사로 일하다 왔습니다.”
“25년이나... 그럼 무슨 요리 잘해요?”
“다 잘합니다.”
“다 잘하는 거 보니 특별히 잘하는 건 없나 봐요. (웃음) 그럼 왜 그만 뒀어요?”
“나 자신에게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서요.”
“백일출가 해보니 나 자신에게 줄 시간이 더 없지 않아요?”
“그렇지만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된 것 같아요.”
그리고 스님은 새로운 환경 속에서 긴장을 한 탓에 밤에 잠을 못자는 사람은 없는지 확인을 했습니다.
“백일출가하면서 밤에 잠 안 오는 사람 있어요? 없어요? 코고는 소리 때문에 못자고 이런 사람 없고요? 눈 감았는데 뜨면 바로 새벽이지요? (대중웃음) 회향 때까지 앞으로 1달도 안 남았네요. 뭐가 제일 궁금해요? 살아보니 ‘이런 것 좀 고치면 어떠나’ 이런 것 없어요? 문경에 화장실 고쳐줄까요?” (대중웃음)
아무런 대답이 없자 그제서야 법문을 시작했습니다. 회향할 때까지 앞으로 남은 시간을 어떤 마음가짐으로 보내면 좋을지에 대해 법문을 해주었습니다.
“태국에 가면 전통적으로 남자들이 3년간 출가생활을 하게 되어있어요. 우리 나라 남자들이 군대 가는 것과 비슷하죠. 그런데 요즘은 점점 변해서 1년 하다가, 6개월 하다가, 언제 가서 얘기 들어보니까 이런 사람도 있데요. 오늘 아침에 출가 의식을 거창하게 하고 내일 회향한대요. 성인식처럼 요식 행위로 하는 것이지요. 어찌됐든 그래도 머리를 한번 깎아보고, 가사를 한번 입어보고 벗고, 그렇게 출가를 한 번은 해봐야 사람이 된다 이거예요. 요즘은 하나의 문화처럼 돼서 그렇게 요식행위로 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그래도 보통 6개월, 1년 이렇게 출가생활을 하게 돼요.
그것처럼 여러분들이 이렇게 3개월 정도 출가 생활을 해보는 건 인생에 아주 좋습니다. 원래 한 3년 정도 해야 돼요. 돈이나 대가를 받고 자기의 기술, 재능을 파는 것에 너무 익숙해지면 뭐든지 돈으로 계산하거든요. 삶의 가치가 뭐든 게 다 돈이 되는 거예요. 어떤 일을 하다가도 ‘어이구 이렇게 하는 게 이게 돈이 얼만데.’ 자꾸 이런 생각을 하게 되고, 부모가 선물을 사줘도 ‘얼마짜리냐?’ 묻고, 시골에서 부모들이 상추나 배추를 뽑아다 주면 ‘이게 몇 푼 된다고 이렇게 들고 오세요. 사먹으면 되는데.’ 하지요. 이런 것들은 정성이 깃든 거라 돈으로 계산할 수 없어요.
그래서 자기의 하루 노동에 드는 재능이나 기술을 돈을 받고 팔지 않고, 그냥 필요에 따라서 사용해봐야 해요. 마치 내가 내 얼굴 세수하고, 내 빨래 내가 빨듯이 살아보는 거에요. 이렇게 살면, 첫째, 세상일을 내가 주인이 되어서 하는 거예요. 주인이 아닐 때에는 반드시 돈을 받아야 되는데 주인이면 돈 계산을 안 하잖아요. 두 번째는, 이렇게 살아본 경험이 있으면 세상에 나가서 직장 구하기가 아주 쉬워져요. 전에는 일은 적게 하고 돈은 많이 받는 직장을 구하려니 구하기도 어렵고, 설령 구하더라도 눈치보고 살고 그러는데, ‘돈을 안 받고도 일했는데 다만 몇 푼이라도 주면 좋지.’ 이렇게 가볍게 생각하면 직장 구하기가 쉬워져요. 백일출가를 했기 때문에 부처님이 예뻐해서 직장을 쉽게 구해주는 게 아니라 내가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니까 직장 구하기가 쉬워지는 거예요.
또 어떤 모임이나 남의 집이나 어디를 가도 부엌에 쉽게 들어가서 거들어 줄 수도 있고, 남들이 일할 때 뻘쭘하게 서있지 않고 거들어 줄 수 있어요. 등산을 가더라도 휴식시간에 농민들이 무를 뽑던지 벼를 베든지 하면 10분이라도 거들어 줄 수 있는 거지요. 세상살이가 자유로워지는 거예요. 늘 관객처럼 구경꾼으로 있는 게 아니라. 놀이가 있을 때 그 속에 들어가서 잠시라도 같이 어울려서 놀아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는 거예요.
그게 자기가 주인이 되어가는 삶이예요. 그러니까 자기가 돈을 받고 요리를 해주는 게 아니라 사람들의 먹는 모습이 좋아서 요리를 하는 이런 자세가 필요하지요. 그런 연습을 하는 거예요. 여러분들은 늘 남이 해주는 밥을 먹고 살았잖아요. 그러니까 나이가 들어도 어린애예요. 지금까지 늘 누군가가 챙겨주는 걸 받고 살았는데 이제 내가 늘 챙겨주는 연습을 해보는 거예요.
이 연습은 절에 들어와서 행자생활을 하며 할 수도 있고, 또 결혼을 해서 내 아이를 갖게 되면 어쩔 수 없이 해야 돼요. 아이를 낳자마자 입양시키지 않는 이상 아이가 있으면 기저귀도 갈아야 되고 여러 가지를 해야 한단 말이에요. 그래서 ‘아이를 낳아서 길러봐야 사람이 된다, 어른이 된다, 보살이 된다.’ 이런 말을 하지요.
그런데 그렇게 해보지 않고도 백일출가를 하든, 3년을 출가해 공부를 하든, 뒷바라지 해보는 게 참 중요해요. 우리는 늘 얼굴이 되려고 하지 손발이 되려고 하는 사람은 별로 없어요. 그래서 옛날에 ‘절에서 100명의 대중에게 밥을 해먹일 능력이 돼야 도를 이룬다.’ 이런 말이 있어요. 공양주가 되어서 100인 분의 밥과 반찬을 해먹일 역량이 돼야 수행을 해서 도를 이루지, 그런 수준이 안 되면 공부 하나마나라는 거예요.
옛날에는 경전을 읽고 얼마나 잘 이해를 했느냐, 이렇게 스님을 평가하지 않았어요. 절에 오면 바로 공양주를 시키든 머슴살이를 시켜서 일하는 걸 보고 오히려 ‘저거 크게 되겠다, 안 되겠다.’ 평가했거든요. 남을 뒷바라지 해줄 수 있는 마음이 있어야 보살의 길로 갈 수 있지, 자꾸 뺀질거리면 자기도 살기 피곤하고 큰 뜻을 이루기가 어려워요.
그러니 농사일이든 설거지든 밥이든 즐거운 마음을 내서 하면 재미가 있어요. 그런데 자꾸 ‘내가 왜 이거 하고 있나’, ‘내가 공부하러 왔는데 이것만 하고 있어야 하나’, ‘내가 이 일을 할 바에야 직장 다니는 게 낫지’ 자꾸 이런 생각을 하면 여기 살기가 힘들어져요. 그래서 예전에 선사들이 수행한 이야기들을 살펴보면 다 큰 스승을 찾아와서 뭘 배우려고 왔는데 가르쳐 주진 않고 몇 번 문제제기 해도 계속 일만 시켰다고 해요.
그래서 깨달은 사람 중에는 이런 사람이 있었어요. 큰스님을 찾아 공부를 배우러 왔는데 일만 시켜서 가버릴까 하니 이제껏 참아온 게 아깝고, 있으려니 공부는 안 알려주고. 결국 3년을 견디다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서 가겠다고 하니까 잡을 줄 알았는데 안 잡고 ‘그래 잘가라’ 이래요. 너무 섭섭한 거예요. ‘이번에는 아무리 잡아도 가겠다’ 결심을 하고 갔는데 안 잡으니까 도로 섭섭한 거예요. 절을 나와 내려오면서 부르나 싶어 돌아보고, 또 돌아보고 하면서 내려오는데 그래도 안 부르니 포기하고 한 5리 정도 내려와서 개울가에 앉아 있는데 스승이 ‘아무개야!’ 하고 쫓아 내려오는 거예요. ‘그러면 그렇지. 내가 얼마나 많은 일을 하는데 나를 안 불러?’ 이렇게 생각하고 속으로 웃고 있는데, 스승이 가까이 오더니 ‘내가 상추를 씻다가 한 장이 물에 떠내려 갔는데 그것 못 봤냐?’ 하더래요. 그 말을 듣는 순간 깨쳤다고 해요. (모두 웃음)
마음이 어떻게 작용하느냐 하는 도리를 깨달은 거에요. 잡으면 뿌리치고 싶고, 안 잡으면 섭섭해 하는 마음의 이치. 그러니 스승이 부를 때 ‘옳거니’ 했는데 ‘상추 하나 떠내려 온 것 못봤냐.’ 라고 한 순간 자기가 자기 마음을 봤다 이런 얘기예요.
그러니까 여러분들도 학습이 필요없다는 뜻이 아니라, 너무 학교공부하듯 생각하지 말고 첫째는 그런 헌신적인 자세로 일하고, 두 번째는 마음을 늘 살펴야해요. 마음에 온갖 분별이 일어나는 걸 살필 줄 알아야 해요. ‘분별이 일어나면 안 된다’가 아니라 ‘마음이 어떻게 서로 모순되게 일어나느냐’ 하는 것을 살피는 겁니다. 그 모순된 마음을 내려놓는 것을 경험해 봐야 여러분들이 자기 업식으로부터 자유를 얻을 수 있어요.
그렇게 출가하고 싶어서 직장 다닐 때는 늘 백일출가 노래를 부르다가, 백일출가를 하니까 이제 또 ‘언제 끝나나, 끝나야 빨리 나가서 뭘 할텐데.’ 이런 건 모순이잖아요. 그런데 우리만 그런 건 아니에요. 부처님도 10년을 애타게 기다리며 출가를 원했는데 출가 후 며칠 만에 후회하는 마음이 일어나는 자기를 보고 크게 재발심을 했다고 해요.
‘그런 마음이 일어나면 안 된다, 잘못됐다’ 가 아니라 그런 자기를 자기가 알아야 돼요. 모순을 터득하는 순간 얼굴이 밝아지고 마음이 편안해져요. 그러니 끝나는 날짜만 세고 이런 건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아침에 ‘끝났다, 가라’ 하면 그때 가서 ‘아, 끝났나보다.’ 하면 돼요.
처음 입재해서 보내는 하루나 마지막 회향할 때 하루나 똑같은 하루에요. 그런데 우리는 입재해서 처음 들어올 때는 소중한 하루가 되고 끝날 때 하루는 지루한 하루가 돼요. 그러면 자기 인생을 낭비하는 거예요. 보통 세속에도 이런 말이 있어요. ‘사람이 갈 때 어떻게 뒷정리를 하고 가느냐, 그걸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고 하지요. 우리는 많은 과정을 거쳐서 만나는데 헤어질 때는 안면몰수하고 헤어지잖아요. 연애할 때나 사람을 만날 때는 여러 과정을 거쳐서 만나놓고 헤어질 때는 원수가 되고 딱 그걸로 끝나버리지요.
그래서 마무리를 잘해야 해요. 남은 3주만 해도 깨닫고도 남을 소중한 시간이니까 열심히 공부하시기 바랍니다.”
스님의 이야기를 귀기울여 듣던 백일출가 행자들의 얼굴이 한층 밝아졌습니다. 스님이 들려준 법문을 가슴깊이 새기고 NGO 탐방과 남은 백일출가 기간을 아주 잘 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대중공사를 마치고 스님은 곧바로 평화재단으로 이동해 아침 7시 30분부터 오후 2시까지 실무자들과 미팅과 회의를 연이어 가졌습니다. 특히 오늘은 다음주부터 시작하는 통일의병 2차 교육 내용에 대한 집중적인 검토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후 2시부터는 국제한민족재단의 이창주 박사님 일행과 연해주 신한촌역사회복재건위원회 관련 회의가 진행됐습니다.
▲ 연해주 신한촌역사회복재건위원회 관련 회의
블라디보스토크에 있는 신한촌은 한인독립운동의 기지였습니다. 러시아 지역의 한인독립운동을 대표하는 1910년대의 권업회, 권업신문, 대한광복군정부, 한인신보사, 한민학교 등이 이곳에 있었으며, 이동휘 등 수많은 한인 애국 지사들이 신한촌에 거주하며 활동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곳은 일제의 무자비한 공격과 학살에 의해 참담한 피해를 입게 됩니다. 1920년 4월에 연해주 신한촌에서 일본군이 조선인을 대량 학살한 사건을 신한촌참변이라고 부릅니다. 이렇게 신한촌에서 있었던 역사적 아픔을 회복하고 재건하기 위해 스님과 이창주 교수님은 그동안 많은 교류를 해왔습니다.
오늘 회의에서는 신한촌 역사회복재건을 위한 추진위원회를 어떻게 구성할 것인지, 어떤 분들을 집행위원으로 모시면 좋을지, 집행위원들을 모시는 방법 등에 대해 세세하게 논의하는 자리였습니다.
또 신한촌 역사회복재건을 위해 집행위원 33인을 모시는 작업이 끝나는 대로 후원금을 모으고 공사에 착수하는 동시에, 2016년 2월 29일에는 프레스센터 19층에서 기자회견도 갖기로 했습니다.
이어 3월 11일에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기공식을 하기로 했는데, 관련 업무를 어떻게 진행하게 될지에 대해서는 평화재단과 국제한민족재단의 실무단위에서 역할분담을 해서 추진해나가기로 한 후 회의를 마쳤습니다. 신한촌역사회복재건위원회를 통해 신한촌 등 러시아 전역에서 이루어진 항일투쟁의 역사가 새로이 평가되고 부활되기를 기원해 봅니다.
이렇게 회의를 마치고 치과에 들러 치료를 받고, 오후 6시에 서울을 출발해 밤 10시에 울산 두북에 도착한 후 오늘 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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