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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에 영남대병원에서 열린 초청강연에 이어서 저녁 7시부터는 진주교대 대강당에서 청년들을 위한 즉문즉설 강연이 열렸습니다.
대구 영남대병원에서 오후 5시에 출발한 스님은 2015년 마지막 즉문즉설 강연을 하기 위해 진주교대로 향했습니다. 대구에서 진주로 가는 길에는 지평선 너머로 붉은 태양이 뉘엇뉘엇 넘어가면서 장관을 이루었습니다. 스님은 올 한해에도 100여 회의 즉문즉설 강연을 했는데, 오늘이 마지막 강연이라고 태양도 수고했다고 축하를 해주는 것만 같았습니다.
진주시내에서 차가 많이 밀리긴 했지만 다행히 오후 6시 30분에 진주교대에 도착했습니다.
▲ 진주교대 대강당
먼저 강연장으로 들어서며 수고하는 자원봉사자들에게 환한 웃음으로 격려를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저녁 7시가 되자 520여 명의 청중들이 자리한 가운데 사회자의 밝은 목소리와 함께 드디어 2015년 스님의 마지막 즉문즉설 강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번 강연은 진주 청년정토회와 진주교대 불교동아리 ‘선각회’ 학생들이 함께 모여 강연 준비부터 홍보, 진행까지 서로 도와가며 만들었습니다. 대학생 봉사자들이 많아 연신 발랄하고 즐거운 분위기로 접수부터 안내까지 진행되었습니다.
스님은 “저녁 식사는 하셨어요?”라는 가벼운 인사로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특히 이번 강연은 청년들을 위한 강연임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삼삼오오 자리에 참석하였습니다.
“오늘은 2015년 마지막 강의입니다. 청년정토회에서 주관하는 청년들을 위한 강의도 오늘이 마지막이고요." (청중 박수)
"올해는 정토회가 주관하는 희망세상만들기 강연, 통일의병이 주관하는 통일이야기, 청년포럼이 주관하는 청춘콘서트, 청년정토회에서 주관하는 희망강연, 이렇게 이 4개 단체에서 강연을 열다보니 진주에 저도 여러 번 오게 되었어요. 진주가 좋긴 좋은가 봐요. 네 개 단체가 다 진주를 한 번씩 넣다 보니 올해 네 번이나 오게 됐습니다. 얼마 전에도 오더니 또 왔나 싶어서 식상하죠? 그런데 오늘은 청년들을 위한 강의예요. 청년들이 마음껏 질문할 수 있도록 기회를 좀 열어주세요.
제가 보기에는 이런저런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청년이라는 점만으로도 좋지 않을까 싶은데, 본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가끔 물어봅니다.
‘공부도 해야 하고, 취직도 해야 하고, 연애도 해야 하고, 결혼도 해야 하고, 아이도 키워야 하고 일이 많은 건 알겠다. 나처럼 60대 되면 공부도, 취직도, 결혼도, 아이 키우기도 안 해도 된다. 지금 그런 일 다 하면서 20~30대 할래, 한가로이 지낼 수 있는 60~70대 할래?’
그러면 다들 20~30대 하겠대요. (청중 웃음)
그러니 60~70대도 잘 사는데 20~30대가 왜 못 살까요? 바꾸자고 해도 안 바꿀 정도로 그게 더 좋다면서요. 그래서 제가 볼 때는 별로 걱정이 없을 것 같은데, 자기들은 힘들다고 야단입니다. 돈이 없어서 데이트도 못 한 대요. 데이트를 돈이 없어서 못 해요? 애인이 없어서 못 하죠. (청중 웃음)
저는 이해가 안 돼요. 여자와 남자만 있으면 나무 밑에 앉아서도 데이트 할 수 있고 진주성 산책하면서도 할 수 있는데요. 그러면 품위가 없어서 안 된대요. 멋진 카페에도 가야 하다 보니 데이트하는 경비가 많이 든대요. 요즘 세대는 우리 때와 다른가 봐요.
어쨌든 젊은이들은 고민이 많습니다. 그런데 이 기준을 우리 세대에 두고 보면 걱정거리가 아니고, 자기 세대에 두고 보면 엄청난 걱정거리예요. 누구 기준으로 하느냐가 문제입니다. 우리 사회의 여러 문제도 가난을 겪어본 6~70대 사람들을 기준으로 보면 문제가 아니지만 젊은 사람의 기준으로 보면 큰 문제가 됩니다. 그러다 보니 요즘은 이념적, 지역적인 차이보다 세대적인 견해 차이가 굉장히 커요. 여론 조사를 해보면 세대에 따른 여론 차이가 굉장히 큽니다. 세대 간의 단절이지요.
그래서 서로 이해하는 자세가 좀 필요합니다. 상대가 옳다고는 하지 않더라도, 그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다는 점을 이해해야 합니다. ‘젊은이들 입장에서는 그럴 수 있겠다’, ‘어른들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런 시대에 자라고 보고 들으며 살았으니 그럴 수 있겠다’ 이렇게 청년들은 부모 세대를 이해하고 부모 세대들은 청년들, 자녀들을 이해해야합니다. 항상 자기 기준만 세워서 ‘그게 뭐가 문제냐’ 이렇게 이야기하니까 소통이 잘 안 되는 것 같아요.
그러니 오늘도 젊은이들은 자기 이야기와 고민을 실컷 편안하게 토로하고, 청년 아닌 분들은 우리 자녀들이 어떤 문제로 고민하는지 듣고 참고해서 이해의 폭을 넓혔으면 좋겠습니다. 자, 그러면 시작해보죠. 질문자들 손들어보세요.”
스님의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여기저기서 손을 들고 질문을 하고자 했습니다. 총 7명이 스님께 질문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첫 번째 질문자는 3년째 원하는 곳에 취업을 하고자 취업 공부를 하고 있는 27살의 취업준비생인데 집에서는 그냥 평범한 곳에 취직하라고 한다면서 27살이나 돼서 자기가 원하는 것만 하려고 하는 것이 철없고 불효하는 것인지 물었고 두 번째 질문자는 행복이란 무엇인지 모르겠다며 우리가 행복하다고 하는 순간이 현재가 아니라 과거에 행복했었다는 생각이 드는 경우가 많은데 어떻게 해야 현재에 행복하다고 느낄 수 있는지 물었고, 세 번째 질문자는 살다보면 무기력해지는 때가 있는데 그때 스님은 어떻게 대처하는지 물었습니다.
네 번째 질문자는 2년 동안 공무원 시험에 떨어지고 사무보조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취업준비생인데 현재 아르바이트 일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도 모르겠고 어떤 일을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는 질문을 하였고, 다섯 번째 질문자는 기간제 교사로 일하고 있고 집에 어머니가 아프신데 임용고시를 준비하고 싶다는 질문을 하였고, 여섯 번째 질문자는 중국, 미국, 러시아 강대국들 사이에서 갈 길을 잃은 듯 보이는 한국의 통일 전망에 대해 질문했습니다.
특히 마지막 질문으로는 곧 직장에 들어가는데 형편이 안 되지만 외제차를 사고 싶은 욕심이 든다는 질문과 함께 스님의 희망 강연이 청년들에게 꼭 희망을 주는 것 같지 않다는 당돌한 질문이 나오면서 청중이 모두 크게 웃기도 했습니다.
오늘은 여러 질문들 중에서 스님에게도 무기력한 시기가 있었고 그 극복 방법을 들을 수 있었던 질문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또 당돌했던 마지막 질문에 대해서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철없는 청춘이 질문하겠습니다. 살다 보면 하루나 이틀, 길게는 일주일까지 무기력해져서 자기 생각에 빠져들 때가 있습니다. 그런 무기력함에 빠져들 때 어떻게 벗어나오거나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요? 스님께서는 보통 어떤 생각을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저는 20대에 약간 무기력해지면 이렇게 했습니다. 무기력한 정도가 비교적 덜할 때는 제가 주로 활동했던 경주로 가서 황룡사 터나 김유신 장군 묘 옆, 혹은 무열왕릉 묘 옆에 몇 시간이고 누워 있었어요. 눈 감고 가만히 누워서 1,300년 전에 그 사람들이 활동했던 모습을 영화 보듯이 주욱 상상해보는 겁니다. 그러면 그 시대에 좋았던 것도 지나고 봤을 때 반드시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어요. 예컨대 연애하다가 헤어진 일이 역사 속 인물에게 더 잘된 일일 때도 있고, 어떤 사람이 실패한 게 결과적으로 잘 된 일인 경우가 역사에는 많습니다. 그렇게 옛일을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내가 지금 겪고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아니라는 자각이 되기도 했습니다.
간단한 무기력은 그렇게 해결을 했는데, 심한 무기력은 단식을 했습니다. 5일 이상 굶으면 몸뚱이가 ‘뭘 먹어야지, 어떻게 해 봐야지’하고 살려고 합니다. 살려고 하는 욕구야말로 무기력을 극복하는 최고의 방법입니다. 무기력은 배부를 때 생기지, 배고프면 절대로 안 생깁니다.(청중 웃음)
제 경험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배가 고파서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일어날 때 ‘죽고 싶다’는 생각은 안 일어납니다. ‘살고 싶다’는 생각이 일어나지요. 자살을 하려고 산에 올라가서 나뭇가지에 줄을 매고 목에 딱 거는 순간 호랑이가 나타나면 ‘아이고, 잘 됐다. 안 그래도 죽으려던 참이니 나를 물어 죽여라’ 이러지 않아요. ‘사람 살려’ 소리지르며 줄행랑을 치지요. 자살하려고 목을 매달려는데 옆에서 폭탄이 터지면 도망갑니다. (청중 웃음)
무기력한 것은 의식의 문제지만 살고자 하는 욕구는 생존의 문제입니다. 어떤 의식도 생존을 토대로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생존의 욕구가 더 근본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정신이 약간 무기력해지면 자기 목숨을 자기가 죽일 수 있습니다. 남도 죽일 수 있듯이 자기도 죽일 수 있는 겁니다. 남을 죽이면 살인이고 자기를 죽이면 자살인데, 그건 정신이 약간 고장나서 그런 거예요. 그런데 생존 자체가 위협에 부딪치면 무기력은 날아가 버립니다. 제 경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겁니다. 저는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잘 모르니까요.
그래서 제 경험에 비추어서 말해 보자면, 질문자가 좀 굶어보면 어떨까요? 제가 직접 굶어 봤는데 4~5일을 넘어가면 ‘살아야지!’ 이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 몸이 저절로 ‘살아야 되겠다’ 하는 게 일어납니다. 그러면 무기력이 극복됩니다.
그런데 제가 그 이후에 몸의 한계를 시험해본 적이 있습니다. 무기력을 극복하고자 한 것이 아니라, 북한 동포들이 굶어 죽어가는데도 제가 외면한 것을 생각해서 ‘저들은 굶어죽는데 어떻게 나만 밥을 먹을 수가 있겠어? 나도 같이 굶어야겠다’ 해서 30일 굶다가 중지한 적도 있어요. 최대로 굶어본 건 2008년에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던 때에 북한에서 또 대량아사사태가 일어나서 70일을 굶은 일입니다. 그래도 안 죽었습니다.
70일까지 굶어도 안 죽더라고요. 대신, 그렇게 굶을 때는 정신이 맑아야 됩니다. 일상생활은 아무 문제가 없는데, 심한 노동을 하거나 극심하게 분노하면 에너지 소모가 많아서 기력이 빨리 소진됩니다.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면서 단식을 하면 일상생활은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다만 해 보니까 말이 잘 안 나와서 강연은 조금 힘들더라고요. 49일이 넘어가니까 기력이 급격히 떨어져서, 명상을 하면서 단식을 계속 했습니다. 명상을 하면 에너지 소모가 적거든요.
또 여러분들은 단식이라고 하면 굶는다고만 생각하는데 안 그렇습니다. 단식을 하면 하루에 300그램의 순수한 살코기만 먹고 삽니다. 무슨 말일까요? 자기 살코기를 먹고 산다는 겁니다. 그래서 단식은 채식이 아니라 육식입니다. 몸무게를 재보면 하루, 이틀, 삼일은 무게가 급격히 줄어듭니다. 대변이 빠지니까요. 그 다음부터는 하루 평균 300그램씩 몸무게가 빠집니다. 매일 똑같지는 않고, 몸의 수분 함유량에 따라 조금씩 다르긴 합니다. 소변이 잘 안 빠지면 어제와 몸무게가 똑같고, 소변이 빠져버리면 500그램이 빠집니다. 그래서 사람이 기초 체온을 유지하고 생각을 하고 약간 움직이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에너지를 주는 게 300그램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명상을 시작하니까 평균 200그램씩 빠지고, 조금 더 명상을 하니까 평균 150그램씩 빠졌습니다. 머리 쓰는 데 에너지가 많이 드는데, 명상을 하면 머리도 거의 안 쓰고 대화도 안 하니까 에너지 소모량이 적어져서 체중감량의 정도도 덜했던 겁니다.
저는 굶으면 굶을 때 몸에 어떤 현상이 생기고 그로 인해 마음에는 어떤 현상이 생기는지 늘 연구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단식할 때 뭘 먹느냐? 복식은 언제 하느냐?’ 이런 연구를 하지만 저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굶는 데 무슨 방법이랄 게 있겠습니까? 안 먹으면 되는 거지요. 그런데 ‘복식’은 문제입니다. 음식이 조금씩 들어오기 시작하면 욕구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생명과 정신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심리가 어떻게 변화하고, 몸이 어떻게 작용하고, 뭘 먹으면 설사를 하고, 뭘 먹으면 속이 불편한지, 양이 어떻게 느는지, 이런 걸 본인이 체험해 보면서 연구하는 게 제일 확실합니다.
질문자 나이에 한 5일 굶으면 아마 일어날 거예요. 무기력 할 때 제일 좋은 것은 굶는 거예요. 무기력하다는 건 살고 싶지가 않다는 거예요. 그러면 약 먹거나 목매서 죽지 말고 그냥 굶어 죽으려고 해보면 됩니다. (청중 웃음)
정신이 확 사로잡혀서 목을 매거나 약을 먹고 죽으면 돌이킬 수 없게 되지만, 굶으면 서서히 죽어가는 동안 죽을지 살지를 자기가 다시 판단하게 되니까 ‘아이고, 살아야지’ 하면서 기력이 다시 돌아올 거예요. 더 좋은 방법이 있다면 질문자가 찾아서 해 보세요.”
“감사합니다.”
정말 무기력해 보였던 질문자의 표정이 환하게 밝아졌습니다. 스님의 경험을 진솔하게 들려주어서 더 가슴에 와 닿았던 답변이었습니다.
이렇게 모든 질문에 대해 답변을 마치자 어느덧 2시간이 훌쩍 지났습니다. 강연을 막 치려고 하는 찰나에 맨 앞에 앉아서 열심히 강연을 듣던 여학생이 번쩍 손을 들고 꼭 질문을 받아주기를 간청했습니다. 스님은 시계를 보더니 웃으면서 질문을 받아주었습니다.
학생의 질문은 지금까지와는 달리 외제차를 사고 싶다는 다소 엉뚱해보이는 질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문답이 계속되면서 욕심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고 그 과정에서 청중들도 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곧 직장을 갖게 되는데, 저는 욕심이 많습니다. 저는 제가 욕심이 많다는 걸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욕심이 많으니까 이룬 것도 많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외제차를 사고 싶은데 살 능력이 없어요. 어떻게 해야 되는지 궁금합니다.”
“안 사면 되지요.”
“그런데 제가 욕심이 있어요.”
“사고 싶어도 안 사면 된다는 겁니다.”
“출근을 해야 하니까요.”
“걸어서 출근하면 되지요.”
“거리가 멀면 차를 타야 될 거 같은데요.”
“버스를 타면 되지요. (청중 웃음) 제가 지금 질문자의 질문을 농담으로 넘기는 게 아닙니다. 예를 들면 이렇게 묻고 답하는 것과 같은 거예요.
‘지하철을 탔는데, 앞에 앉은 여학생의 종아리가 너무너무 예뻐서 만지고 싶을 때 어떻게 해야 될까요?’
‘만지지 말아야지요.’
‘그래도 만지고 싶은데요?’
‘그래도 만지지 말아야지요.’
‘한번만 만지면 안 될 까요?’
‘그래도 만지지 말아요.’
스님이 ‘그래, 만져라’라고 하겠어요?” (청중 웃음)
“그런데 그건 부도덕한 질문이었고, 저는 부도덕한 것은 아니잖아요.”
“맞아요. 질문자가 외제차를 살 형편이 되면 사세요. 형편이 안 되니까 못 사는 거잖아요. 그런데 사고 싶긴 한데 못 사니까 질문자 자신도 모르게 점점 부도덕한 짓이나 불법행위를 해서라도 사는 쪽으로 가게 돼요. 그래서 제가 사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살 형편이 안 되는데 계속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에요. 외제차를 살 수만 있다면 누군가가 부도덕한 행위나 불법적인 행위를 요구해도 질문자가 그것을 감수하게 됩니다. 지금이야 누군가 부도덕한 행위나 불법적 행위를 요구해도 안 하겠지만, 어머니가 편찮으시거나 수술을 해야 하는 것처럼 돈이 간절히 필요한 상황이 되면 응하게 됩니다.
요즘 보이스피싱 많지요? 은행에 가서 한번만 돈을 찾아오면 몇 십만원을 주겠다는 사기꾼의 전화에 응하는 사람들은 형편이 풍족한 사람들이 아니라 궁한 사람들이에요. 그게 부도덕하거나 범법행위라는 생각을 전혀 안 하는 겁니다. ‘통장 줄 테니까 은행에 가서 돈만 찾아오면 된다. 한 번만 다녀오면 30만 원 주겠다’라고 하니까 ‘그게 뭐가 문제겠어?’라고 생각해서 요구에 응하다가 돈도 못 받고 체포되어 후회를 하게 되잖아요. 나중에 자기가 잘못했다는 걸 알게 되지요.
며칠 전 TV를 보니까 노인 두 명이 사기를 치는 내용이 나와요. 술 마신 사람에게 일부러 부딪혀 넘어져놓고 다리가 부러졌다며 치료비를 내놓으라고 하거나, 젊은 사람을 약 올려서 욕을 유도해 놓고 옆에서 그 욕하는 장면을 동영상으로 찍어서 ‘노인한테 막말하는 젊은이’라는 제목으로 유튜브에 올리는 식으로 협박해서 300만 원씩 뜯더라고요. 왜 그런 짓을 하는지 봤더니 할머니가 궁하니까 할아버지를 도와서 그렇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이 다 궁해서 그런 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질문자처럼 형편이 안 되는데도 너무 욕심에 집중하면 그렇게 끌려가기 쉬워요. 지금은 당연히 ‘내가 왜 그런 짓을 해?’라고 생각하겠지만 눈에 뭐가 씌면 아무 것도 안 보여요. 은행 직원이 5억 원을 빼돌려서 썼다거나 경찰이 사기꾼 뒤를 봐주고 몇 억 원을 받았다는 사건 기억나지요? 그 사람들이 나쁜 사람이 아닙니다. 여러분들 생각에는 굉장히 나쁜 사람들 같지만 저는 그런 사람들을 면회하고 상담하잖아요. 집에 환자가 생겼거나, 주식에 실패해서 집을 날렸거나, 알고 보면 다 그런 유혹에 빠질만한 나름의 이유가 있습니다.
질문자가 외제차를 사고 싶다는 욕심이 있는 건 좋아요. 그러나 그 욕심이 어느 순간에 쥐약처럼 되어서 질문자를 위험에 빠뜨리는 상황이 오게 됩니다. 그러니 욕심을 버리세요. 욕심을 버리라는 건 뭔가 하고 싶은 마음을 전혀 내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내가 대통령 되고 싶다’, ‘내가 외제차를 사고 싶다’ 이런 건 욕심이 아니에요. 대통령이 되고 싶다면서 노력을 안 하고, 외제차를 사고 싶다면서 노력을 안 하는 걸 욕심이라고 합니다.
‘외제차를 사고 싶다.’
‘사라.’
‘그런데 살 형편이 안 된다.’
‘그럼 사지 마라.’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은, 거기에 너무 집착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이런 덫에 걸려들 위험이 있다는 걸 자각하라는 겁니다.”
“그럼 욕심을 가져도 된다는 말씀이신가요?”
“욕심은 가지면 안 됩니다. 질문자가 ‘뭘 하겠다’ 하는 건 욕심이 아니에요. ‘외제차를 사고 싶다’ 이것도 욕심이 아닙니다. 그런데 ‘외제차를 살 형편이 안 되는데 사겠다’라고 하면 그건 욕심입니다.”
“그럼 살 형편을 만들면 되나요?”
“그렇지요. 혹시 부모님이 재산이 좀 있나요?”
“예.”
“그럼 부모님께 잘 하세요. 아침에 밥상도 차려드리고, 저녁에 안마도 해 드리고, 예쁘게 아양도 떨면서 ‘어머니, 아버지, 외제차 사주세요’ 하세요. 그게 밖에 나가 돈 버는 것보다 훨씬 돈 벌기가 수월할 겁니다. 돈 있는 남자를 만나든지, 직접 돈을 벌어서 사든지, 방법은 여러 가지입니다. 다만 돈 있는 남자를 만나더라도 부인 있는 남자는 안 돼요. 그건 부도덕한 일이기 때문에 비난을 받아요. 욕심이 많으면 그런 덫에 걸릴 확률이 높아요. 당시에는 본인이 굉장히 잘한 것 같지만 나중에 보면 큰 위험을 자초하는 법이에요. 그래서 스님이 ‘욕심은 내려놔라’라고 말하는 겁니다.”
조금 당돌하게 질문을 던졌던 이 여학생은 곧이어 또다른 질문을 당돌하게 던졌습니다. 오늘 강연을 들은 소감을 말하면서 왜 이 강연을 희망 강연이라고 부르는지 물었습니다. 답변을 주욱 들어보니 스님이 청년들의 희망을 오히려 꺾은 것 같다는 것이였습니다.
청중석에서 웃음이 터져나왔지만 스님은 일리가 있는 지적이라고 하면서 오히려 청중들의 전체 평가를 확인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런 후 차분하게 설명을 덧붙여 주었습니다.
“강연을 처음부터 들었는데, 제 생각에 스님은 고민이 있는 청년들에 대해서 희망을 주는 게 아니라 희망을 꺾는 것 같습니다. 계속 ‘하지 말라’고 하시니까요. 어떤 점에서 스님의 강연이 ‘희망강연’이라고 하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청중 웃음)
“질문자는 그렇게 생각했군요. 스님은 질문한 각각의 질문자에게 희망을 주는 게 목적이겠어요? 지금 질문하고 있는 질문자한테 희망을 주는 게 목적이겠어요?”
“질문한 사람한테 희망을 주는 게 목적이겠지만 또한 듣는 사람들한테도 희망을 줘야 되는 거 아닌가요?”
“질문자한테 물어봤을 때 ‘나한테는 도움이 됐다’ 그러면 된 거 아닐까요?”
“예. 그런데 이 강연의 방청객 중에도 질문자들의 처지와 비슷한 처지에 놓인 사람이 있다면 스님의 답에 영향을 받을 텐데, 저는 그게 좀 걱정이 됩니다.”
“좋은 아이디어네요. 저는 지금 질문자의 질문이 굉장히 좋은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제 강연을 평가를 해봐야겠어요.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스님이 솔직하게 이야기하지 말고 약간 거짓말을 섞더라도 격려를 해 주는 게 낫겠다. 그게 오히려 희망이 되겠다’라고 평가한다면 저도 앞으로는 강연하는 태도를 바꾸겠습니다. 질문자는 뒤로 돌아 방청객들을 향해 서보세요. 자, ‘오늘 스님이 즉문즉설을 통해 젊은이의 기를 팍 꺾었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손을 한번 들어보세요.”
“저기 젊은이 2명이 손을 들었는데요.”
“자, 그럼 ‘스님이 젊은이의 기를 꺾은 것도 아니고, 기를 살린 것도 아니고, 사실대로 말했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손을 들어보세요. (거의 모두 손을 듬)
손을 내리세요. 보세요. 그러니 그 질문은 당신의 생각인 것 같아요. (청중 웃음)
100% 만족할 수가 없습니다. 젊은이들이 꿈을 갖고 있다가도 부모님이나 은사님에게 찾아가 조언을 구할 때 ‘현실적으로 보고 꿈을 좀 포기하라’는 말을 듣는 사례가 많아서 이런 의문이 들지 않을까 싶은데요. 스님은 ‘부모의 말을 들어라’라는 말을 안 하잖아요. ‘부모의 희생 위에 살지 말라’고 하지요.
다시 말해 자기가 뭘 하고 싶다고 남을 괴롭혀서는 안 된다, 내 이익을 위해서 남에게 손해 끼쳐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아까 ‘자립해서 살겠다’고 하는 사람에게 스님은 ‘그래, 네 맘대로 하라’고 했잖아요. 자립해서 살기 위해서는 부도덕하거나 범법 행위만 아니라면 무엇을 해도 좋고 누구의 눈치를 볼 것도 없어요. 그런데 부모의 지원을 받으면서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한다는 것은 범법 행위에 버금갈 만큼 아주 나쁜 행위입니다. 그건 빚지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예, 이해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당돌했던 여학생은 그제서야 수긍을 하며 웃으면서 자리에 앉았습니다. 청중들도 명쾌한 답변에 박수갈채를 보냈습니다.
오늘 강연은 참 다이나믹했던 것 같습니다. 청년들이여서 그런지 마음껏 질문하는 분위기였고, 스님도 편안하게 이야기해 주어서 아주 솔직한 대화가 오갔고, 그 속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강연이 끝나고 곧장 책 사인회가 진행되었습니다. 스님은 청년들과 함께 눈인사를 하며 차분하게 사인회를 마쳤습니다.
강연이 끝난 뒤 무기력증에 대해서 질문했던 참가자에게 다가가 스님의 답변을 듣고 난 소감이 어떤지 물어보았습니다. “참 현실적인 답변을 해주신 것 같고, 무기력은 배부른 상황에서나 할 수 있는 생각인 것 같다. 내년에 스님이 강연을 오시면 꼭 다시 참여하고 싶다”며 기쁜 표정을 지었습니다.
사인회를 마친 스님은 희망강연을 준비한 청년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사진도 찍고, 한 명 한 명 손을 잡고 악수도 해주었습니다.
자원봉사를 했던 진주교대 학생은 “스님의 손이 아기 손처럼 부드러워 놀랐다”며 무척이나 설레어 했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2015년 마지막 즉문즉설 강연이었습니다. 진주청년정토회 봉사자들은 둥그렇게 서서 스님을 모시고 조촐하게 축하 이벤트를 했습니다.
먼저 청년들이 준비한 작은 선물 전달식이 있었습니다. 선물을 받고 곧바로 포장지를 뜯어 보았는데, 작은 주머니 속에는 겨울을 따뜻하게 나게 해 줄 회색 장갑, 손목 토시, 양말이 가지런하게 담겨 있었습니다.
스님은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선물이네” 하면서 감사히 선물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2015년 한해 동안 100여 회의 즉문즉설 강연을 하느라 수고한 스님에게 한반도가 그려진 편지지에 통일의 염원과 감사의 메시지를 적어 건넸습니다.
특히 편지 내용 중에는 평양이 위치한 곳에 점을 콕 찍고 “스님, 통일 되어 요기 평양에서 강연 들을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라고 적은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이 외에도 “올 한해 강연하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스님, 저 인간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인생에 희망과 행복을 느낄 수 있게 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통일을 향해 계속해서 노력해 나가는 진주 통일 아가씨가 되겠습니다” 등의 메시지가 청년들의 강연 준비 모습이 담긴 사진과 함께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었습니다.
작은 선물에도 좋아해 주는 스님을 보면서 다함께 마음이 따뜻해지는 시간이었습니다.
청년들에게 “수고했다”고 격려를 한 후 진주교대를 나온 스님은 곧바로 울산 두북으로 향했습니다. 밤 12시가 다 되어 도착해 오늘 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
이렇게 2015년 희망세상만들기 즉문즉설 강연이 모두 끝났습니다. 무엇보다 전국을 누비며 잠도 거의 차 안에서 주무시며 강행군을 하며 많은 대중들에게 소중한 가르침을 설해준 스님에게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스님은 오늘도 강연을 마치고 나서 몸이 좀 안좋으신지 차 안에서 단잠을 주무셨습니다.
내일은 오랜만에 강연이 없는 날입니다. 스님도 내일 하루 만큼은 아무런 약속을 잡지 않으시고 휴식을 취할 예정입니다. 물론 휴일에도 이것저것 소일거리를 만들어 하시는 스님의 일상은 그대로일 테지만. 운전하고, 촬영하고, 글을 쓰고, 식사를 챙기는 수행팀도 내일은 하루 휴식을 취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스님의 하루’도 내일 하루만 잠시 쉬어 가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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