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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오후 3시 30분에 영남대병원 초청 강연에서 의사와 환자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을 한 후 저녁 7시에는 진주교대에서 청년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을 했습니다. 먼저 영남대병원 초청 강연 소식부터 전해드리겠습니다.
어제밤 관악구청에서 올해 마지막 통일 강연을 마친 스님은 서울 정토회관에서 하룻밤 주무신 후 새벽 4시에 법당에 내려와 새벽 예불과 108배 정진을 마친 후 4시 30분에 서울을 출발했습니다.
▲ 새벽 예불
새벽녘 고속도로 위에는 그믐달이 선명하게 떠서 탄성을 자아내었습니다. 미소짓는 표정의 그믐달의 향기를 은은하게 받으면서 부지런히 고속도로 위를 달려서 아침 8시 30분에 울산 두북에 도착했습니다.
▲ 새벽녘 고속도로 위에 보이는 그뭄달
스님은 아침 식사를 하고 9시부터 곧바로 하루 일과를 시작했습니다. 먼저 담벼락 주위에 있는 나무들을 겨울이 오기 전에 정비하는 일을 했습니다.
엄나무 하나가 썩어가고 있었는데 전기톱으로 잘라내는 일을 했습니다. 혹시나 잘라진 가지가 지붕 기와를 쳐서 떨어뜨릴까봐 나무에 밧줄을 묶어 안전 장치를 하고,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서 윗가지부터 하나씩 잘라서 가볍게 한 후 마지막으로 밑둥을 잘랐습니다.
베어낸 나무는 땔감으로 사용하기 위해 다시 더 잘게 잘랐습니다. 또 잘라진 나무토막은 장작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도끼질을 해서 더 가늘게 쪼개었습니다.
옹이가 있는 나무는 너무 단단해서 도끼질을 여러 번 해도 쪼개지지 가 않아서 애를 먹었습니다. 스님은 “으라찻!!” 하고 힘을 모아서 갈라진 틈을 여러번 반복해서 찍었고, 마침내 반으로 갈라지자 “아이고, 힘들다” 하며 땀을 닦았습니다.
이렇게 오전 내내 장작을 팬 후 갈라진 장작들은 한켠에 가지런히 쌓아두었습니다. 오늘 스님은 전기톱도 사용하고, 도끼질을 하느라 힘을 많이 썼는데 “그러시다가 앓아 누우시면 어쩌시려고요?” 라고 물으니 “아니야, 옛날에 늘 하던 일인데 뭐.” 하며 웃으셨습니다. 스님은 아직도 혈기왕성한 청춘인 것 같았습니다.
▲ 겨울에 땔감으로 사용하기 위해 가지런히 쌓아둔 장작
마당에 소나무도 잔가지가 많아져서 가지를 쳐주었고, 대문 앞에 감나무도 잔가지가 많아서 가지를 쳐주었습니다. 톱질을 할 때도 스님은 다람쥐처럼 나무 위에 성큼 올라갔습니다.
나무에서 자른 잔가지들과 톱질을 하고 남은 토막들은 모두 한데 쓸어모아 아궁에 넣었습니다.
이렇게 곳곳을 가지런하게 정비를 하다가 강연을 위해 출발해야 하는 시간이 다 되어 일을 모두 마쳤습니다.
울산 두북을 출발해 오후 3시에 영남대병원에 도착했습니다. 병원 입구에 도착하니 스님을 초청한 영남대 의과대학 김성규 교수님이 나와 반갑게 환영해주었습니다.
▲ 영남대병원
김교수님과 함께 의료원장실로 이동해 잠시 의료원장님과 차담을 나누었습니다. 최병연 의료원장님은 바쁘신 일정에도 불구하고 초청 강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를 했고, 스님도 감사한 마음을 표하며 새책 ‘야단법석’을 사인해서 선물했습니다.
▲ 최병연 의료원장님(왼쪽)과 김성규 교수님(오른쪽)
의료원장님과 기념사진을 찍은 후 강연이 열리는 본관 1층 이산대강당으로 이동했습니다. 대강당에는 100여 명의 환자들과 의사들이 자리해 있었는데, 스님이 얼굴을 비치자 모두들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
먼저 의료원장님이 나와 스님을 간단히 소개해 주었습니다. 오늘 강연 주제는 ‘환자와 의료인에게 편안을’ 이라고 소개해 주면서, 환자들도 심적 어려움이 많고, 의사들도 여러 가지 고민이 많은데 오늘 스님을 모시고 뜻깊은 시간을 갖게 되어 무척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하며 스님을 무대로 모셨습니다.
스님은 먼저 오늘은 아픈 사람과 아픈 사람을 치료하는 사람이 함께 모였다고 하면서 눈치 보지 말고 서슴없이 편안하게 대화하는 시간을 가져보자며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살다 보면 다칠 수도 있고, 아플 수도 있고, 내가 간호할 수도 있고, 간호 받을 수도 있습니다. 오늘은 아픈 사람과 아픈 사람을 치료하는 사람이 함께 모였습니다. 서로 도움이 되는 부분도 있어요. 환자가 와야 의사 선생님들도 먹고 살 수 있고, 의사 선생님이 계셔야 환자가 병을 치료할 수 있잖아요. 이렇게 서로 돕는 상생, 공생 관계인데 또 어떤 때는 서로 상대방 때문에 힘들어하는 일도 있는 것 같아요.
오늘은 여러분들의 속마음을 편안하게 이야기하는 자리입니다. 여기 의료원장님도 계시고 의사 선생님도 계시지만, 즉문즉설이란 그런 데에 구애받지 않아요. 상대가 나쁘다는 게 아니라 내가 괴롭다는 문제니까 편안하게 이야기 나누어보겠습니다.”
그리고 스님은 병원 측에서 초청 강연에 대한 요청이 여러번 있었지만 강연 일정이 이미 다 잡혀 있어 약속을 하지 못했는데, 마침 오후 시간 밖에 시간이 나지 않아서 부득이하게 이렇게 일정이 잡히게 되었다며, 낮시간이라 근무 중인 의사와 간호사들은 많이 참석하지 못한 점에 대해 양해를 구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중석에는 많은 환자들과 의사, 간호사가 함께 자리했습니다. 어떤 환자 한 분은 닝겔을 꽂은채 휠체어를 타고 강연장을 찾기도 했습니다. 다소 아픈 표정의 환자들도 많이 보였지만 모두들 스님의 말씀에 귀를 쫑긋 세우고 경청했습니다. 환자들은 환자복을 입고, 간호사들은 간호사 복장을 입고, 의사 선생님들은 흰 가운을 입고 자리했습니다. 그야말로 의사, 간호사, 환자가 함께한 야단법석인 셈입니다.
이어서 손을 들고 질문을 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먼저 흰색 의사 가운을 입고 앞자리에 앉은 교수님이 손을 들고 질문했습니다. 업무보다 인간관계가 더 힘들다며 소통을 어떻게 잘 할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직장인 모두가 힘들어하는 것이 업무가 아닌 인간관계, 소통의 문제라고들 합니다. 저도 업무보다는 사람과의 관계가 힘들어서 고민도 많이 해봤지만 쉽게 풀어지지가 않습니다. 이런 인간관계와 소통을 어떻게 하면 잘 풀어지게 할 수 있는지 질문 드립니다.”
“교수님이라 그런지 너무 막연한 질문을 하십니다. (청중 웃음) 인간관계라는 게 구체적으로는 스승과의 관계일 수도 있고, 제자와의 관계일 수도 있고, 동료와의 관계일 수도 있고, 부모와의 관계일 수도 있고, 부부 간의 관계일 수도 있고, 자식과의 관계일 수도 있고, 상사와의 관계일 수도 있고, 부하와의 관계일 수도 있습니다.
‘인간관계가 어떻다’라고 한 마디로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 관계에서 생겨나는 문제도 구체적으로 살펴봐야 합니다. 예컨대 배우자가 용건만 말하는 걸 좋아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걸 귀찮아한다면 딱 용건만 이야기해주면 됩니다. 간섭을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내버려두면 되고요. 반대로 이것저것 이야기를 나누기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별로 할 말이 없어도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 되는 거예요.
질문에 굳이 답을 한다면 상대에게 맞추면 됩니다. 사람마다 각각 성질이 다르기 때문에 상대에 따라 하면 돼요. 그런데 내가 맞추기가 좀 어렵죠. 사람은 다 자기를 고집하기 때문입니다. 고집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라 자기 성향, 자기 성질, 자기 취향을 자꾸 주장하기 때문에 상대에게 맞추기가 어려운 거예요. 소통이 안 된다는 것은 상대에게 내가 잘 맞춰주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맞추려면 상대를 알아야 하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다 자기 식대로만 생각하니까 상대에 대해서 잘 모르죠.
사랑하는 부부도 같이 살면 갈등이 생기거든요. 상대가 어떤 성질인지, 뭘 원하는지를 살펴서 거기에 맞춰주면 특별히 문제가 없어요. 처음부터 잘 맞출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살아보면서 맞추는 것이지요.
같이 길을 갈 때 내가 조금 빨리 가면 상대가 ‘뭘 그리 급하다고 빨리 가느냐?’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속도를 늦추면 ‘그렇게 천천히 가면 언제 가느냐?’ 또 이렇게 아이기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 사람, 성질이 뭐 이래? 조금 빨리 가면 빨리 간다고 그러고, 느리게 가면 느리게 간다고 그러고, 나한테 어떻게 하라는 거냐?’ 이러기가 쉽습니다. 조금 느리게 간다고 하면 조금 빨리 가면 되고, 조금 빨리 간다고 하면 조금 느리게 가면 되고, 또 느리다고 하면 조금 빨리 가면 되고, 빨리 간다고 하면 조금 느리게 가면 됩니다. 그렇게 하다보면 적절하게 맞아집니다. 그렇게 적절히 맞아지는 것을 불교용어로 중도(中道)라고 해요. 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는 상태입니다. 과녁을 향해 날아가는 화살처럼 딱 정확하게 맞는 거예요. 현실 속에서는 아주 정확하게는 안 되지만, 약간 넘쳤다가 모자랐다가를 반복하며 몇 번 조율하다 보면 비교적 과녁에 맞게 됩니다. 그런데 질문자는 그렇게 잘 안 맞추지요?”
“예, 그러기가 상당히 힘듭니다.”
“그게 왜 힘들어요? ‘조금 느리게 간다’ 그러면 조금 빨리 가면 되고, ‘조금 빨리 간다’ 그러면 조금 느리게 가면 되는데요. 질문자는 ‘나보고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이야기냐?’라는 마음이니까 안 맞아지는 겁니다. 그러니까 누구하고 안 맞는지, 뭐가 안 맞는지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봐요.”
“조직사회에서 제일 안 맞는다고 느끼는 게 대화의 단절입니다. 나는 상대방에게 이야기를 하는데 상대방은 나의 이야기를 전혀 수용하지도 않고 표현도 하지 않는 그런 대화의 단절이 제일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사람 중에는 자기의 속을 드러내놓고 대화하는 사람도 있고, ‘내 이야기를 해 봤자 세상 사람 누구도 나에게 도움이 안 되더라’ 해서 용건만 이야기하고 마음의 문을 안 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네가 마음의 문을 안 연다’라고 이야기하지만 그것은 그렇게 이야기하는 ‘내’가 마음의 문을 안 열고 있다는 것을 말하는 거예요. 안 여는 사람은 안 여는 대로, 여는 사람은 여는 대로, 그냥 거기에 맞추면 됩니다.
예를 들어 ‘강연은 어떻게 해주실 거예요?’ 이렇게 물으면 대부분 강연하는 사람이 복잡해지지요. 그런데 저는 강연하기가 굉장히 쉽습니다. 왜 그럴까요? 첫째, 묻는 대로 이야기하면 되니까요. 보통 강연을 하는 사람들은 준비를 하잖습니까. 저는 준비할 필요가 없습니다. 뭘 물을지 모르니까 미리 준비한다고 되는 게 아니잖아요. 둘째, 모르면 모른다고 이야기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즉문즉설을 하면서 해본 가장 짧은 답은 ‘모른다’입니다. (청중 웃음)
모를 때 모른다는 말을 안 하려고 하니까 긴장이 되고 노력이 많이 드는 거예요. 모르면 그냥 ‘제가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하고, 다음에 설명해 줘도 되는 사람이면 ‘제가 다른 데 가서 물어보고 말씀 드리겠습니다’ 라고 하면 됩니다. 틀리면 ‘틀렸네요. 죄송합니다. 제가 고치겠습니다’ 라고 하면 됩니다. 이렇게 상대의 필요에 따라서 응하면 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하면 이런 겁니다. 인천 사람이 서울 가는 길을 물으면 동쪽으로 가라고 말해줘야 합니다. 그러나 강릉 사람이 서울 가는 길을 묻는데 동쪽으로 가라고 하면 그 사람은 바다에 빠져 죽습니다. 강릉 사람에게는 서쪽으로 가라고 해야죠. 이렇게 인연에 따라서 대응해야 합니다.
인간관계를 어떻게 해야 한다고 정해진 원칙은 없고, 인연에 따라서 대응하면 됩니다. 그런데 질문자는 인간관계를 어떻게 해야 한다며 ‘1원칙, 2원칙, 3원칙, 4원칙’을 정하려 들기 때문에 오히려 대화가 안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아이 보고 ‘어른한테 인사 안 한다’고 말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도 잘못된 생각입니다. 인사는 먼저 본 사람이 하는 겁니다. 어른이 아이한테 인사를 하면 아이가 그 모습을 보고 인사하는 법을 배우지요. 그런데 우리는 자기는 안 하면서 아이한테 ‘임마, 왜 어른을 보고도 인사를 안 해?’라고 야단치잖아요. 그렇게 억지로 하는 인사는 생활화가 안 돼요. 아이한테 먼저 인사하라고 말할 필요가 없고, 누구든지 먼저 보는 사람이 인사하면 됩니다. 내가 인사를 했는데 상대가 인사를 안 받는 경우도 있을 수 있어요. 그러나 인사라는 것은 받기 위해서 하는 게 아닙니다. 그냥 내가 반가우면 ‘반갑습니다’하면 됩니다. 상대가 말하기 싫으면 그냥 지나갈 것이고, 받을 사람은 받을 거예요. 인사를 ‘주고받는’ 것이라며 계산적으로 생각하니까 자꾸 갈등이 생기는 겁니다.
그러니 질문자도 그냥 자기 편할 대로 하면 됩니다. ‘안녕?’ 이러고 그냥 들어가면 되고, 학생이 물으면 대답해 주면 되고, 말 안 하면 놔두면 돼요. 그걸 내가 문제 삼지 말아야 합니다. ‘너는 소통이 안 된다’, ‘너는 말이 없다’, ‘너는 왜 인사를 안 하니?’, ‘너는 왜 말을 안 듣니?’ 자꾸 이렇게 하니까 오히려 인간관계가 복잡해지는 것이지요. 그냥 학생들이 알아서 살도록 내버려 두고, 꼭 필요한 것만 이야기하고, 학생들이 질문자의 업무 중에 와서 묻더라도 시간이 있으면 이야기해 주고, 시간이 없으면 ‘지금은 업무시간이니까 이따 휴식시간에 보자’라고 이야기하면 됩니다. 질문자의 질문에 정답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냥 인연에 따라서 대응을 하시면 좋겠습니다.”
“예, 제 마음과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고맙습니다.”
교수님은 환한 표정을 지으며 스님에게 감사 인사를 했습니다. 함께 강연을 들은 의사, 간호사, 환자들 모두 큰 박수로 공감을 표했습니다. 인간 관계의 갈등은 모두 비슷하기 때문일 겁니다.
이어서 교수님이 한가지 질문을 더 했고, 환자 가족분의 질문도 추가로 이어졌습니다. 이렇게 3명의 질문에 모두 답하고 나니 벌서 1시간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스님은 세 번째 질문자가 남의 시선을 의식해서 힘이 든다고 질문한 것에 대해 답해 주면서 마지막 마무리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즉문즉설 시간 동안에는 제가 최선을 다해서 시간을 할애해 답하지만 딱 그 시간 끝나고 밖에 나갔을 때 누군가 제 소맷자락을 붙잡고 ‘한 가지 더 물어보겠습니다’라고 하면 ‘안 됩니다’ 하고 쌩하니 찬바람을 일으키며 가버립니다. 나도 살아야 하기 때문이에요. (모두 웃음)
이처럼 남이 하는 이야기에 너무 전전긍긍할 필요가 없습니다. 귀담을 이야기인지 살펴봐서 들을 만한 이야기라면 내가 바꾸면 되고, 그냥 그 사람의 기분을 이야기하는 것이면 흘려야지요. 누군가가 ‘스님, 훌륭하십니다’, ‘스님 좋아요’ 라고 하는 건 그냥 그들의 생각이나 기분이 그렇다는 뜻일 뿐, 저와는 아무 관계없는 이야기입니다. 제가 그런 이야기를 듣고 진짜 자기가 잘난 줄 착각하면 연예인이나 인기 탤런트처럼 정신질환이 생겨요. 영화를 한 편 봐도 기분이 좋아지는데, 사람을 보고 기분 안 좋을 리가 없잖아요. ‘그런 것은 그들의 기분이지 나와는 아무 관계가 없는 이야기이다’라고 해야 칭찬에 들뜨지 않고 비난에 괴로워하지 않게 됩니다. 그들이 그렇다는데 내가 어떻게 할 거예요? ‘아, 상대는 그렇게 느끼나 보다’ 하고 넘어가면 됩니다.”
“예, 고맙습니다. 스님 말씀을 들으니까 제가 너무 그런 데에 신경을 썼던 것 같습니다.”
“왜 신경을 썼을까요? 잘 보이려고 신경을 썼던 겁니다. 뭐 잘났다고 잘 보이려고 그럽니까? 생긴 대로 살면 되지요.”
“예, 고맙습니다.”
스님의 명쾌한 답변에 질문자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습니다. 닝겔을 꽂고 있던 환자 분도 마침내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스님이 “더 질문하실 분이 있어요?” 라고 여러 차례 물었지만 더 이상 질문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스님은 방금 마지막 질문자에게 대답해준 대로 더 이상 질문이 없자 곧바로 강연을 마쳤습니다. 약속한 시간보다 일찍 강연이 끝나서 당황해하는 분도 몇몇 보였지만 스님은 다음 일정이 바빠 웃으면서 양해를 구하고 강연장을 나왔습니다.
▲ 스님을 초청해준 김성규 교수님(맨 왼쪽)과 최병연 의료원장님(맨 오른쪽)
그리고 스님은 강연을 주관한 김성규 교수님에게 “근무 시간인 오후 밖에 시간이 나지 않아서 이번에는 이렇게 되었는데, 내년에는 저녁 시간에 꼭 시간을 내어주겠다”고 하면서 다음 초청강연 일정을 의논한 후 오후 5시에 병원을 출발했습니다.
청년들을 위한 즉문즉설 강연이 저녁 7시에 진주에서 예정되어 있는데, 시내에서 교통 체증을 감안하면 대구에서 진주까지 부지런히 달려야 겨우 시간에 맞춰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강연이 일찍 끝나는 바람에 다행히 무사히 제 시간에 진주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진주교대에서 열린 즉문즉설 강연 소식은 다음 이야기에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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