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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에 핀 진달래
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한국을 방문한 필리핀JTS 이원주 대표님과 함께 경주 남산을 산책하며 오랜만에 여유있고 편안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오늘도 새벽 예불과 기도로 하루를 시작한 스님은 아침 식사 후 두북 정토수련원에 잠시 들러 김장 울력이 어떻게 되고 있는지 살펴보았습니다. 어제 1차로 선물용 김장 김치를 배달한 이후 오늘은 추가로 더 김장을 담그었습니다. 아침 일찍부터 몇몇 봉사자들이 와서 열심히 김장을 하고 있었습니다.
▲ 선물용 김장 김치의 포장 상태를 확인하고 있는 스님
스님은 “김치를 포장할 때는 비닐로 한 겹을 싸고 그 위에 다시 한 겹을 더 싸야 나중에 택배로 배달할 때 한 겹에서 김칫물이 새더라도 비닐이 한 겹 더 있기 때문에 밖으로는 새지 않는다”고 주의를 주고, 또 “플라스틱 통을 들 때는 통이 무겁기 때문에 손잡이를 들면 뚜껑이 벗겨져서 쏟을 수 있으니 통을 안고 들어야 한다” 면서 혹시나 배달 과정에서 사고가 생기지 않도록 단속했습니다. 어떤 일을 하든 허투루 보지 않고 꼼꼼히 연구하는 자세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추운 날씨에 김장을 담그고 있는 봉사자들을 격려해 주면서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간식으로 먹을 수 있게 스님이 직접 감나무에 올라가 딴 감홍시를 한 상자 주었습니다. 모두들 스님의 자상한 배려에 기쁜 마음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 김장 울력을 하고 있는 봉사자들과 함께
그리고 오늘은 필리핀JTS 이원주 대표님이 한국을 방문해서 스님도 다른 약속을 잡지 않고 하루종일 대표님과 함께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 대표님은 지난 10여 년 간 JTS가 필리핀 민다나오 지역에서 구호사업을 개척하는 일을 도맡아 해오신 분입니다. 개인 사업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JTS가 하는 일이라면 만사를 제쳐두고 봉사를 해오셨습니다. 이번 방문은 내년도 스님의 필리핀 방문 일정을 잡고 사업을 어떻게 할 것인지 의논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스님도 오늘은 아무런 약속을 잡지 않고 특별히 시간을 내었습니다.
▲ 경주 남산
마침 이원주 대표님이 경주 남산은 한번도 순례하지 않았다고 해서 산책도 할 겸 의논도 할 겸 경주 남산을 올랐습니다.
아침 10시 30분에 배리 삼존불에 도착한 스님은 먼저 안내 표지판을 가르키며 오늘 등산할 코스에 대해 설명해 주었습니다. 오늘은 배리 삼존불에서 출발해서 산기슭을 걷다가 삼릉을 지나 냉골(삼릉 계곡)을 따라 금오산 정상을 거쳐 창림사지로 내려오는 길을 코스로 택했습니다.
▲ 필리핀JTS 이원주 대표님에게 오늘 산행 코스를 설명해주고 있는 스님
먼저 배리 삼존불을 참배했습니다.
▲ 배리 삼존불
배리 삼존불은 풍만한 얼굴에 크게 반원을 그린 눈썹이 깊이 패어졌고, 그 위에 눈두덩이 부풀어 올라 가느스름한 눈자위에 그늘을 지우면서 두 눈이 천진스럽게 웃음을 짓는 형상이었습니다.
스님은 “원래는 이 위에 처마가 없었어요. 처마가 없을 때는 햇살이 드리워서 그 미소가 정말 아름다웠는데 지금은 처마 때문에 그 모습을 볼 수가 없어요.” 라며 아쉬운 마음을 내비쳤습니다.
삼배로 참배를 한 후 곧이어 등산을 시작했습니다. 울창한 소나무 숲길을 걸으며 맑은 공기를 마시니 머리가 아주 상쾌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 삼릉 계곡
스님은 이 대표님과 등산을 하면서 많은 이야기들을 편안하게 주고 받았습니다. 가장 먼저 도착한 곳은 삼릉계곡 마애관음보살상입니다. 산등성이에 뾰족한 바위 기둥들이 솟아 있었는데 그 중 한 바위에 빙그레 미소를 머금고 하계를 내려다보고 있는 관세음보살상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오른손은 설법인을 하고 연꽃을 들고 있고, 왼손은 감로수병을 들고 있었는데, 감로수병을 든 것은 몸과 마음이 아픈 사람을 치료하기 위한 것이여서 저 물을 마시면 모든 고통에서 벗어난다고 하고, 연꽃을 든 것은 어떤 중생도 깨달으면 부처가 된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 마애관음보살상
광배를 따로 만들지 않고 뒤쪽의 비스듬한 바위를 광배 삼아 보살상을 조각했기에 방금 하늘에서 하강한 듯한 모습 같았습니다.
그런데 정상으로 향하는 도중에 길가 바위 근처에 쓰레기가 마구 버려져 있었습니다. 아마도 바위 위에서 앉아서 놀다가 그냥 버리고 간 것 같았습니다. 스님은 쓰레기를 보자마자 허리를 숙이고 손으로 직접 다 쓰레기를 주웠습니다.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인데다가 하루에도 많은 관광객들이 이곳을 찾고, 또 불자들은 이곳을 민중 불교의 요람으로 신성시하는 곳인데, 이렇게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고 가는 사람들의 태도가 참 안타깝게 느껴졌습니다.
계곡을 계속 거슬러 올라가니 넓은 바위에 선각으로 새겨진 불상이 있었습니다. 스님은 ‘선각육존불’이라고 이 불상을 소개해 주었습니다.
▲ 선각육존불
바위에 선각으로 새겨져 있어서 마치 신라의 불교 회화를 보는 듯 했습니다. 동쪽 바위 면에는 설법하고 있는 석가모니 삼존불이 새겨져 있었고, 서쪽 바위 면에는 아미타 삼존불을 새겨, 현생과 내생을 함께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햇살이 잘 드리우는 곳에서 스님은 이 대표님과 기념 사진을 찍었습니다. 이 대표님은 “한국에 자주 오지만 경주 남산은 오늘 스님 덕분에 처음으로 와 봤다”고 하면서 매우 기뻐했습니다.
그런데 정상으로 오르는 길에 스님이 갑자기 깜짝 놀라하며 “우와, 저기 봐라” 했습니다. 고개를 돌려보니 아니나 다를까 정말로 연분홍 진달래가 피어 있었습니다. 지금은 겨울로 진입하는 12월 초인데 봄이 되어야 활짝 피는 진달래가 핀 것입니다.
▲ 겨울에 핀 진달래를 발견하고 반가워하고 있는 스님
아마도 요즘 가을 날씨가 예년과 달리 많이 따뜻해져서 이상 기후로 인해 일어난 현상 같았습니다. 이 대표님은 “날이 따뜻해지니 진달래도 봄인 줄 착각하고 나왔는가 보네요” 하고 나름의 해석을 붙이며 웃었습니다.
▲ 겨울에 핀 진달래
그리고 스님도 “오늘 강연이 없어서 스님의 하루에 쓸 내용이 없을 줄 알았는데, 겨울에 핀 진달래야말로 진짜 특종이다” 하며 웃으셨습니다.
웃으며 대화를 이어가다 보니 드디어 남산의 두 봉우리 중 한 봉우리인 금오봉 정상에 도착했습니다. 스님은 이곳은 해발 468m라고 알려주면서 “그래도 정상에 올라온 기념으로 사진 한 장 찍고 가자”며 금오산 비석 앞에 섰습니다.
▲ 금오산 정상
남산에서 내려오는 길은 아주 넓고 평탄한 길이었습니다. 옆으로 나란히 서서 걸으며 이야기 하기에도 안성맞춤이었습니다.
내려오는 길에는 겨울에 핀 진달래를 한 송이가 아니라 여러 송이가 핀 것을 발견했습니다. 스님은 “옛말에는 한 겨울에 꽃이 피면 새로운 나라가 일어날 징조인데...” 하며 풀어진 운동화 끈을 묶으며 상서로운 기운을 반겼습니다.
아무튼 오늘 경주 남산에서 만난 겨울에 핀 진달래는 두고 두고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진달래 뿐만 아니라 집 안에는 장미, 코스모스, 민들레, 채송화도 피어서 참 신기했습니다. 모두 겨울에 핀 꽃들입니다.
▲ 민들레
▲ 사철 채송화 (송엽국)
▲ 코스모스
▲ 장미꽃은 여러 송이가 피었습니다.
산능성이에는 칼바람이 불어서 몸이 오싹할 정도였습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찬 바람을 피할 겸 잠시 큰 바위를 바람막이로 하고 앉아 간식을 먹었습니다.
이 대표님은 스님이 필리핀 민다나오를 방문할 때 마다 항상 함께 동행하며 온갖 밀림과 정글을 헤치며 다니신 분인데, 오늘 산행은 그냥 동네 뒷산을 산책하는 기분이었나 봅니다. 등산을 하는 내내 편안한 웃음을 내비쳤습니다.
또 산능성이에는 전혀 물이 있을 것 같지 않은 곳에 약수물이 졸졸졸 나오고 있었습니다. 대장균도 전혀 검출되지 않은 1급수라고 표시되어 있었습니다. 땀을 흘리고 나서 그런지 차가운 물맛이 일품이었습니다.
내려오는 코스는 창림사지로 정했습니다. 스님은 “창림사지는 인근에 박혁거세의 탄생지인 ‘나정’과 신라 6촌의 촌장을 모시는 사당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일대를 신라 건국 초기의 궁궐터로 추정하고 있다”고 알려주었습니다.
지금은 복원된 3층 석탑만 홀로 서 있어서 조금 황량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신라의 첫 출발지였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어 보이는 곳이였습니다.
▲ 창림사지 삼층석탑
겨울이라 더욱 누런 논밭을 가로질러 다시 배리 삼존불이 있는 삼불사 주차장에 도착해 경주 남산 산책을 모두 마쳤습니다.
삼불사 옆에는 망월사라는 원효종 사찰이 있는데, 이곳은 스님이 20대 때 청소년과 대학생 포교를 위해 영남불교교육원을 차리고 사무실로 사용했던 곳입니다. 주지 스님도 스님과의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언제나 환대를 해주시는데, 오늘은 주지 스님이 밭에서 직접 재배한 배추와 상추를 스님에게 주었습니다.
이곳을 자주 지나가면서 배추와 상추 농사가 잘 된 것 같다는 말씀을 가끔 하시곤 했는데, 오늘은 직접 시식을 해볼 수 있게 된 셈입니다.
텃밭에서 수확한 김장 김치, 그리고 망월사 주지 스님이 준 배추와 상추를 곁들어서 맛있게 저녁 식사를 한 후 이 대표님 부부를 울산역까지 배웅해 주었습니다.
스님이 필리핀 민다나오에 갈 때 늘 이 대표님 부부가 마중과 배웅을 나와 주었는데, 오늘은 스님이 이 대표님 부부를 배웅해 주었습니다. 이 대표님은 “오늘 스님 덕분에 좋은 시간 보내고 간다”며 감사 인사를 했고, 스님은 “아이고 무슨... 이 대표 때문에 내가 하루 운동도 하고 잘 쉬었구마는...” 하며 악수를 건넸습니다.
두 분이 역사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본 후 스님은 곧장 울산역을 출발해 문경으로 향했습니다. 문경 정토수련원에 밤 11시 무렵에 도착해 오늘 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
내일은 새벽 6시부터 9시 30분까지 특강수련에 참가한 정토불교대학 수강생들을 위해 그동안 수업을 들으며 궁금했던 점을 묻고 답하는 즉문즉설 강연을 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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