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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스님은 오전에 춘천 KBS홀에서 열린 즉문즉설 강연에 이어 저녁 7시부터는 서초구민회관에서 즉문즉설 강연을 했습니다.
손님과의 미팅을 마친 후 평화재단을 출발한 스님은 저녁 6시 50분 즈음에 서초구민회관에 도착했습니다.
오늘은 12월의 첫날인데요. 서울은 겨울 날씨답지 않게 하루 종일 맑고 온화했습니다. 그래서인지 평일 저녁인데도 올해 남은 마지막 한 달을 좀 더 의미 있게 보내고 싶은 사람들이 강연 시작 한참 전부터 삼삼오오 짝을 이루어 즉문즉설 강연장을 찾았습니다.
그중에서 올해 환갑이 되었다는 수원에 사는 조명자 님은 기독교 신자라고 자신을 소개하면서도 강연 시간보다 무려 2시간이나 일찍 강연장에 도착했는데 그 이유를 묻자 “지난번 강연 때 조금 늦게 왔더니 좌석이 없어 강연 시간 내내 통로에 쭈그리고 앉아 강연을 들어야 했어요. 그 이후로는 미리 강연장을 찾는 게 습관이 되었습니다. 내 종교와 달라도 스님 법문이 성경과 다 일맥상통하니 앞으로도 수도권에서 강연이 있으면 무조건 시간을 내어 참석하고 싶어요.”라며 의욕을 보였습니다.
또 엄마와 함께 강연장을 찾은 초등학교 6학년 남자 어린이에게 어떻게 강연장에 오게 되었는지 묻자 아주 솔직한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엄마가 오늘 저녁에 햄버거를 사준다고 했어요. 그래서 함께 왔어요. 그래도 혹시 스님에게 질문할 기회가 생긴다면 ‘어떤 계기로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되었는지 물어보고 싶어요.” 옆에 있던 아이 엄마의 손에는 아이와 약속한 대로 햄버거 세트가 들려 있었습니다. 아이 엄마는 “지금 사춘기 남자 아이를 혼자 키우면서 여러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평소 문제 극복을 위해 팟캐스트를 찾아서 듣다가 오늘 난생 처음으로 강연장을 찾았어요. 아직 낯선 사람들 앞에서 질문을 할 정도로 용기가 생기지는 않지만 다른 질문자들의 답변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답을 얻어가고 싶어요”라고 말했습니다.
또 어떤 여성분들 대여섯 명은 일찌감치 자리를 잡고 앉아 ‘센스쟁이. 스님’, ‘최고예요. 왕짱’이라는 푯말을 계속 들고 있으면서 열정적인 팬임을 드러내 대중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도 했습니다.
강연장을 찾는 이유야 각자의 인생만큼 천차만별이고 다를 수 있겠지만 괴로움에서 벗어나 온전히 행복해지고 싶다는 그 마음만큼은 똑같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오늘 강연은 저녁 7시부터 9시까지 약 2시간에 걸쳐 서초구민회관 대강당에서 있었습니다. 좌석은 총 800석인데요. 저녁 6시 50분경이 되자 강연을 위해 준비한 자리가 모두 차서 조금 늦게 강연장을 찾은 분들은 아쉽게도 발걸음을 돌려야 했습니다. 그동안은 통로에 보조의자를 놓거나 때로는 무대 위에 자리를 잡고 강연을 듣기도 했지만 오늘은 시설관리팀에서 안전상의 이유로 정원수 만큼만 입장할 수 있다는 지침을 내렸기 때문입니다. 아쉬울 따름이었습니다.
▲ 서초구민회관
저녁 7시가 되자 스님이 강연장으로 들어섰습니다. 이에 청중들은 뜨거운 박수로 스님을 맞이했습니다.
“여기 강연장 안에 있는 사람보다 조금 늦게 온 사람들 중 많은 분들이 못 들어오고 돌아갔다고 합니다. 예전에는 무대 위에도 앉고 그랬는데 안전이 제일 중요해서 정원만 받았으니 깊이 양해하시기 바랍니다. 그분들은 집에 가셔서 유튜브를 보시면 됩니다. 즉문즉설 어떻게 하는지 잘 알죠? 거두절미하고 시작하죠. 질문 신청하신 분 누굽니까? 손 번쩍 드세요.”
스님의 간단한 인사말이 끝나자 곧바로 즉문즉설이 시작되었습니다. 오늘은 총 6명이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첫 번째 질문자는 큰 아이가 평소 공부를 열심히 하고 모의고사에서도 성적이 좋은데 큰 시험만 보면 망쳐서 삼수를 하고 있다며 자책감이 들고 두려울 때가 있는데 엄마로서 어떤 자세를 가지고 기도하면 좋을지 물었습니다. 두 번째 질문자는 고등학생 딸과 중학생 아들, 그리고 아내를 둔 가장으로서 주말부부를 하면서 토요일에는 파킨슨병에 걸린 아버지를 돌보고, 일요일 단 하루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가족 내에서 자신의 존재감이 점차 없어지는 것 같아 걱정된다며 과연 누구도 실망시키지 않을 방법이 있는지 물었습니다. 세 번째 질문자는 결혼한 지 30년이 되었는데 술만 마시면 시작되는 폭언과 행패, 그리고 처갓집 식구를 무시하는 남편 때문에 가출했는데 최근 들어 용서를 구하는 남편 말을 믿고 다시 집으로 들어가야 할지, 아니면 깨끗이 포기하고 이혼해야 할지 고민이라고 물었습니다.
네 번째 질문자는 평소 중요한 시험이 있을 때마다 시험불안증이 있어서 시험을 망치곤 했는데 앞으로 시험 공포증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 물었습니다. 다섯 번째 질문자는 어린 시절부터 일방적으로 가족을 위해 희생을 강요당하며 살아야 했고, 간암이 발병한 지 3년 만에 돌아가신 엄마를 대신해 집안 경제를 책임지다가 도망치듯이 한 결혼에 실패한 후 최근에 재혼할 사람이 생겼는데, 언니가 자기 아이를 돌봐달라고 한다며 이제라도 이기적인 언니와 가족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물었습니다. 여섯 번째 질문자는 결혼 초 남편이 외도를 하면서 자신에게 이혼을 요구했는데 억울한 마음에 12년 동안 거부해오다가 5년 전부터 반대로 남편에게 이혼하자고 말하는데 지금은 남편이 거절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아이가 성년이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할지, 아니면 양육비를 본인이 전적으로 책임지고서라도 이혼을 감행해야 할지 고민이라고 물었습니다.
오늘은 그중에서 세 번째 질문자의 질문 내용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결혼한 지 30년 동안 남편과 싸워도 대문 밖을 나간 적이 없는데, 어제로 집을 나온 지 100일째 됐습니다. 남편이 술을 좋아하는데 마시면 자기도 기억을 못하는 악담을 많이 합니다. 예를 들어 자기는 좋은 부모 밑에서 집안 교육을 잘 받았는데 저는 안 그렇다면서 ‘독한 년’이라고 불러요. 또 본인은 좋은 소리라고 하지만 반복하면 듣는 입장에서는 잔소리가 되잖아요. 남편은 술을 먹으면 기본으로 3시간은 잔소리를 합니다. 아이들이 다 커서 29살, 25살, 21살이 된 지금까지도 불러서 앉혀놓고 잔소리를 합니다. 저와 싸우면 저녁에만 술을 마시는 게 아니라 다음날 아침까지 마시면서 잔소리를 해요. 항상 ‘네가 뭘 알겠느냐’는 식으로 무시하는 말을 하고요.
남편이 갈수록 심해지기도 하지만 이번에는 친정집 식구들, 돌아가신 지 40년이 된 친정아버지까지 들먹이는 걸 보면서 더 이상은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나가고 싶으면 나가봐라. 노래방 아니면 네가 갈 데가 어디 있겠냐. 먹고 살 길이 없어서 며칠 안에 돌아올 텐데 나가서 뭐 하냐?’라고 늘 무시하는 것도 화가 났어요. 더 참을 수 없어서 남편이 자는 사이 몰래 가방을 싸서 집을 나오자마자 전화기도 꺼버렸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제가 집을 나온 지 3일 만에 옷이나 이불 등 제 물건을 모조리 쓰레기봉투에 넣어서 내다버렸대요. 그 이야기를 아이들을 통해서 듣고 나니 ‘아, 이제는 내가 진짜 결심을 해야 되겠다’ 싶어서 서울의 큰딸 집에 와 있어요. 남편은 저를 죽인다고 하면서도 큰딸 성격이 자기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는 걸 알기에 아직 직접 찾아오지는 않았습니다.
집을 나온 뒤 취직해서 바쁘게 일을 하니까 마음도 좀 놓이고 잊혀졌나 싶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집에 두고 온 아이들이 성인이긴 하지만 걱정됩니다. 남편도 딸 몰래 두 번이나 저를 출근길에 만나러 와서 한 번만 기회를 달라고 빌어요. 제가 남편 일을 도왔는데 남편도 취하지 않았을 때는 제가 고생하는 줄 알고 인정해줬거든요. 친정어머니는 ‘혼자 사는 것보다는 같이 사는 게 낫다. 술 안 마실 때는 괜찮은 사람이니까 한번 생각을 해 보라’고 하시는데, 동생이나 다른 사람들은 제가 돌아간다면 다시는 절 보지 않겠다고 합니다. 아이들은 처음에는 ‘아빠를 버리라’고 하더니 이제는 한 번쯤 용서해 주라고 하고, 남편은 자기가 또 술을 마시고 행패를 부리면 당신이 집을 나가도 더는 찾지 않을 테니 한 번만 용서해달라고 합니다. 그런 소리를 듣고 살면서도 돌아갈 궁리를 하니 남들이 들으면 미쳤다고 하겠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갈등이 심합니다.”
“그런 사람이 뭐가 좋아서 30년을 살았어요? 나빴던 것은 이제 그만 이야기하고 좋았던 것을 이야기해 보세요.”
“그 사람이 처음부터 그러지는 않았습니다. 10년 전에 시동생이 죽고 난 뒤부터 시동생이 술 먹었을 때 하는 행동을 남편이 똑같이 하기 시작했어요. 점을 보니 ‘동생 귀신이 씌었다고 하기에 (청중 웃음) 제가 시동생을 위해 천도재도 지냈습니다. 그런데 잠시 좋아졌다가 시간이 좀 지나면 다시 똑같아졌어요. 무당 말을 안 믿으려고 해도, 술만 마시면 죽은 시동생과 똑같은 행동을 해요. 옛날에는 안 그랬는데 왜 저러는지 모르겠어요.”
“남편이 옛날에는 안 그랬던 게 아닙니다. 시아버지는 어때요?”
“시아버지가 젊었을 때는 이렇게까지는 안 했다고 하더라고요.”
“어머니는 살아 계세요?”
“예.”
“남편이 어릴 때 시아버지나 시어머니가 어땠는지 들어봤어요?”
“시아버지가 술을 드시고 나서 이런 식으로 잔소리를 하면 시어머니는 좀 피해 있곤 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제가 나간다면 대문을 걸어 잠글 정도예요. 그리고 제가 좋아서 남편과 결혼을 했으니까, 저는 집을 나가겠다는 생각은 전혀 안 해봤습니다.”
“시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남편이나 시동생의 속에도 그런 씨앗이 형성이 되어는 있었어요. 시동생이 먼저 발현됐고 시동생이 죽으니까 남편 안에 있던 것도 발현이 된 것이지, 없던 게 생긴 건 아닙니다. 그건 그렇다 치고, 남편이 좋았던 점은 뭐예요?”
“성실합니다. 일단은 일을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그래서 돈은 잘 벌었겠네요?”
“잘 번 건 아닌데요.” (청중 웃음)
“어쨌든 먹고 살만큼은 벌었잖아요?”
“예.”
“어쨌든 아내가 번 것으로 먹고 산 게 아니고, 같이 하긴 했지만 남편이 벌어서 식구들을 먹여 살렸네요. 또 뭐가 좋았어요? 애를 셋이나 낳을 정도면 금슬은 좋았나 봐요.”
“예, 좋았습니다. (청중 웃음) 그리고 남편이 술을 안 먹었을 때는 엄청 자상하고 가정적입니다.”
“그러니까 그런 좋은 점이 있기 때문에 술만 안 마시면 좋겠죠? 이제는 안 마시겠다고 하니까 한 번만 믿어볼까 하고 솔깃한 거잖아요.”
“예.”
“그런데 질문자가 집에 들어가면 남편이 술을 마실까요, 안 마실까요?”
“한동안은 안 마셔도 나중에는 마시겠지요.”
“남편이 나중에라도 술을 마시면 그 증상이 이전과 똑같이 나타날까요, 안 나타날까요?”
“안 나타날 것 같기도 합니다. 제가 집을 나온 지 100일이나 되니까 남편이 엄청 겁을 먹었거든요.”
“아이고, 저렇게 순진해서 어떻게 해요. (청중 웃음) 질문자가 집에 들어가면 남편은 전과 똑같이 술을 마시고 똑같은 주정을 할 가능성이 99.9%입니다. 그러니까 ‘남편이 예전처럼은 안 할 거다’라는 걸 전제하고 집에 들어가지 마세요. 그렇게 전제하고 들어가면 또 집을 나와야 돼요. 그러니까 ‘예전처럼 하더라도 들어가자!’ 이런 마음이 들면 들어가세요.”
“큰딸은 ‘아빠는 죽을 때까지 안 바뀐다’면서 저를 못 들어가게 합니다.”
“딸이든 엄마든 다른 사람이 하는 이야기는 듣지 마세요. 남편은 어릴 때 억압심리가 생겼기 때문에 술을 먹고 취했을 때 의식은 없어지고 무의식이 작동해서 어린 시절의 억압된 심리가 튀어나오는 거예요. 누구든 붙들고 욕을 해야 하는 거예요. 그건 정신질환과 같은 것이기 때문에 고쳐질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남편이 결심한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남편이 안 취했을 때는 ‘내가 고치겠다’고 결심하지만 술에 취하면 그게 안 되잖아요. 남편이 나빠서 그러는 것도 아니고, 그러고 싶어서 그러는 것도 아니에요. 어릴 때 심리가 억압되었기 때문에 술을 먹으면 자동으로 그렇게 나오게 돼 있는 거예요. 그러니 남편을 미워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래도 질문자가 남편과 살겠다면 남편에게 술을 먹지 말라든지 주정하지 말라는 말을 하면 안 돼요. 그러면 더 심해집니다. 그러니까 남편이 술을 마시고 욕을 하면 ‘그래, 그래. 당신 말이 맞아. 아이고, 내가 이렇게 못난이인데 당신 입장에서 우리 부모님이 뭐가 좋겠어? 그래, 그래’ 이렇게 등을 두드려줘야 합니다. 남편의 주정은 일종의 질환이기 때문에 그 주정하는 말에 집착하면 안 됩니다.”
“제가 그리 했기 때문에 여태까지 살아온 거예요. 남이 부끄러워서라도 그렇게 했어요.”
“그건 참아온 거잖아요. 남편 속의 작은 아이를 내 아들처럼 불쌍하게 여기란 말이에요. 남편이 아버지가 주정하고 엄마가 악쓰는 가운데 자라서 술만 먹으면 어릴 때로 돌아가는 겁니다. 그때 억압된 심리로 이렇게 주정을 하는 거니까 질문자는 남편을 보면서 ‘너무 너무 불쌍하다’ 이런 마음을 내세요. 남편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아들을 달래듯 하세요. 질문자의 아들도 이제 또 그렇게 됩니다.”
“그게 걱정입니다. 그래서 남편이 술을 먹으면 그냥 재우기 위해서 제가 항상 다독거려줬어요. 지금 돌이켜 보면 제가 그렇게 한 게 잘못이다 싶어요. 오히려 처음에 확 잡았으면 이렇게까지는 안 됐을 것 같아요.”
“확 잡으려 들다가 잘못하면 칼 맞아 죽어요. (청중 웃음) 질문자가 그렇게 남편을 다독거려줬는데도 효과가 안 나는 것은 참고 했기 때문입니다. 참고 한 것은 성내는 것보다 결과가 더 못합니다. 진짜 불쌍하게 여겨야 됩니다. 남편이 주정하는 게 괘씸하지 않고 너무너무 불쌍해야 됩니다. 질문자의 아들이 그러고 있다면 며느리는 아들과 싸우겠지만 질문자는 아들이 너무너무 불쌍해서 ‘아이고, 저게 제 아버지 닮아서 저렇구나. 내가 악을 써서 저렇구나. 쯧쯧’ 이럴 거 아니에요? 이렇게 아들 보듯이 해야 됩니다. 남편이라고 생각하지 말고요. 그렇게 등 두드리면서 살려면 집에 들어가도 됩니다. 전제조건은 붙이지 마세요.
그런데 질문자가 ‘내가 이 나이에 그렇게까지 하면서 살 이유가 뭐가 있나? 지금까지 산 것만 해도 다행이고 아이들도 모두 20살이 넘었으니까, 나는 어디 가서 파출부 하면서 살더라도 편안하게 내 인생 살겠다’라고 생각한다면 아무 신경 쓸 필요가 없습니다. 남편이 한 번만 오라고 해도 ‘네, 알았어요. 좀 더 있다가 갈게요’ 이렇게 말하고 안 가면 됩니다. 안 간다고 버티면서 다툴 필요도 없고, 약속 지키네 마네 하는 이야기도 할 필요 없어요. 그냥 ‘조금 더 따로 살아봅시다. 나도 너무 힘들었어요, 여보. 내가 조금 더 살아보고 들어갈 테니 먼저 가세요’ 이러고 그냥 살면 됩니다. 어느 걸 선택할래요? 집에 들어가고 싶으니까 저한테 물었겠지요? 스님한테 ‘가거라’는 말을 듣고 싶어서 여기 온 건데, 저는 그 말을 해 주기가 싫어요. (질문자 한숨, 청중 박장대소)
질문자는 우선 남편은 전과 똑같이 행패를 부릴 거라는 사실을 아셔야 해요. 똑같다는 걸 전제하고, 질문자가 택할 수 있는 길이 두 가지 있습니다. ‘전에는 남편의 주정 때문에 힘들어했지만 이제는 불쌍한 아들로 여기고 다독이며 살겠다. 진짜 관세음보살 같은 마음을 내서 불쌍하게 여기겠다. 얼마나 힘들면 저렇게 술만 마시면 악을 쓸까? 아이고, 저 한을 내가 풀어줘야 되겠다’ 이렇게 마음을 먹고, 매일 ‘우리 남편한테 내가 관세음보살이 되겠습니다’라고 절하면서 진짜 남편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들어가려면 들어가도 됩니다.
그렇지 않고 ‘내가 이 정도 했으니 남편이 이제 정신 차리지 않겠냐?’라고 생각한다면 절대 안 그렇습니다. 질문자가 집에 들어가면 남편은 더 보복을 할 거예요. 술을 안 마실 때는 괜찮겠지만 술을 마시면 ‘네가 나를 두고 도망을 가? 한 번 더 가면 다리몽둥이를 부러뜨린다.’ 이렇게 나올 겁니다. 남편이 질문자를 찾아갔을 때는 술을 안 마셨으니까 그렇죠. 사람이 똥 누러 갈 때 마음과 똥 누고 온 마음이 달라요. 결혼할 때 그렇게 사랑한다고 해놓고 막상 결혼하니까 딴 짓하는 걸 이미 경험해 놓고 뭘 또 물어요? ‘내가 더 튕기면 남편이 고쳐질 거다’ 이런 생각도 하면 안 됩니다.
어떻게 할래요? 딱 그대로 수용하고 들어가든지, 그냥 끝내든지요. 아이들 모두 20살 넘을 때까지 키웠으니까 이제 남편과 안 살아도 도덕적, 윤리적, 법률적으로 아무 문제가 안 됩니다. 그렇게 마음 졸여가면서 살 필요가 뭐가 있어요? 다 행복하려고 태어났는데 질문자도 행복하게 살아야지요. 그러니 질문자가 자기 인생을 딱 결정하세요. 그 남자가 술 먹고 행패 부려서가 아니라 ‘나도 이제는 내 인생을 살겠다.’ 이렇게 결정하면 돼요. 딸이나 엄마가 뭐라 그러든 남의 말을 들을 필요 없습니다. 자기 인생을 자기가 살아가면 됩니다. 남편이 와서 빌면 ‘알겠어요. 먼저 내려가세요. 내가 혼자 좀 더 살아보고 내려갈게요.’ 이렇게 좋게 이야기해 주세요. ‘난 안 간다. 너하고는 다시는 안 산다.’ 이런 말을 할 필요가 없어요. ‘내일 가겠다.’ 이런 말도 할 필요가 없고요.”
“어제 남편을 만나서 이야기를 했는데, ‘마지막 기회를 한 번만 달라. 다시 그런 일이 있으면 당신이 나가도 다시는 안 찾겠다’라고 했는데요.” (청중 웃음)
“그런 말은 믿지 말라니까요. 질문자가 경험을 해봤잖아요. 술 안 마셨을 때 했던 말은 술 마시면 달라진다니까요. 그 말을 믿고는 가지 말라는 겁니다.”
“예, 잘 알겠습니다.”
“가고 싶으면 그냥 가세요.” (청중 웃음, 박수)
“감사합니다.”
“연세가 몇이에요?”
“51살입니다.”
“아이고, 아직 남자가 필요할 나이네요.(질문자와 청중 웃음) 이해는 되는데, 남편이 술을 안 마시거나 다시는 주정 안 할 거라고 생각하고 가지는 마세요. 병이기 때문에 못 고쳐요. 앞으로 남편이 어떤 행동을 해도 ‘이건 병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크게 힘이 안 들어요.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그러니까 ‘두 다리가 부러져서 똥, 오줌 받아내는 것보다는 그래도 잔소리 좀 듣고 사는 게 낫다’는 마음으로 ‘아이고, 여보, 그랬구나. 그래, 그래, 당신 말이 맞다.’ 이렇게 등 두드려주며 살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고칠 거라는 전제하에 들어가려면 가지 말라는 거예요.
들어가고는 싶지만 못 들어가고 있었는데 마침 남편이 빌러오니까 그걸 빌미로 들어가려고요? 턱도 없는 소리입니다.(청중 웃음) 들어가려면 그런 말 믿지 말고 그냥 들어가세요. 남편은 옛날 모습 그대로입니다. 대신에 질문자가 바뀌어야 해요. 남편은 그대로지만 ‘내가 옛날엔 악쓰고 살았지만 이제는 악쓰고 살지는 않겠다. 주정은 병이다. 다른 병 수발하는 것보다는 그 병 수발하는 게 낫다.’ 이렇게 생각하면 괜찮습니다.”
스님의 반복되는 설명 끝에 그제서야 질문자도 수긍이 갔는지 넙죽 감사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았습니다. 청중들은 질문자를 위해 격려의 박수를 보내주었습니다.
오늘은 질문자들이 모두 연이어서 스님의 말뜻을 알아듣지 못해서 스님의 답변도 많이 길어졌는데 이 모습을 본 몇몇 청중들은 “이제 그만해!” 하며 답답한 마음을 표출하기도 했습니다. 그러자 스님은 질문자도 얼마나 답답하면 그러겠냐며 그 마음을 대신 헤아려주며 청중들을 진정시켜 주기도 했습니다.
“여러분들이 보시기에는 답답할지 몰라도 듣는 우리가 더 답답하겠어요, 질문하는 분이 더 답답하겠어요? 질문하는 분은 더 답답해요. 여러분들은 제3자 입장에서 들으니까 서너번만 들으면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되는데 자기 문제가 되면 제 얘기가 귀에 안 들려요. 본인도 길게 얘기하고 싶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얼마나 답답했으면 그러겠어요. 그러니 1시간이고 2시간이고 계속 얘기해도 괜찮아요. 질문을 많이 받는다고 좋은 게 아니잖아요. 한 사람이라도 답답한 사람의 마음을 해결해주는 것이 중요하지요. 듣는 여러분들은 귀찮을 수 있지만 즉문즉설은 단 한 명을 위해서도 1시간, 2시간을 할 수 있는 겁니다.”
한 사람의 고민이라도 제대로 해결해주고자 얼마나 집중하고 있는지 스님의 애틋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모든 질문에 대한 답변을 마치고, 닫는 말씀을 하면서도 스님은 우리가 어떤 마음 자세를 가져야 행복의 길로 들어설 수 있는지 이야기해주었습니다.
“재미있었어요?”
“네.”
“질문하신 분들은 참 고마운 분들이에요. 사실 자기 이야기 꺼내기가 어렵잖아요. 그런데 꺼낸 이야기를 들어보니 내 이야기하고 비슷한 것도 있어요. 나를 대신해서 질문해 준 셈입니다. 그러니 좋은 이야기를 들을 기회를 주신 6명의 질문자들께 큰 박수 한 번 주세요. 저도 감사드립니다.(청중 박수)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남자든 여자든, 얼굴이 검든 희든, 노인이든 청년이든,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종교가 뭐든, 어릴 때 성추행을 당했든 학대를 받았든, 지금 살아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행복할 권리가 있습니다. 우리는 다 행복할 권리가 있어요. 이혼해서, 애가 있어서,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이런 핑계를 자꾸 대면서 ‘나는 불행할 수밖에 없다’고 하는 건 자기 권리를 포기하는 겁니다. 이미 지나간 옛날 기억에 사로잡히거나 오지도 않은 미래의 상상에 사로잡혀 꿈속을 헤매면서 괴로워하는 거예요. 그런 과정을 겪고도 지금 안 죽고 살았잖아요. 지금 살아있다는 게 중요합니다. 당장 내일 죽을지도 모르지만 사는 동안에는 누구나 다 행복할 권리가 있고, 행복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 자기 괴로움을 자꾸 합리화하지 마세요. 여러분들이 자꾸 이유를 대는 건 ‘나는 괴로울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예요. ‘애가 시험에 떨어져서 괴롭다’, ‘남편이 술을 마셔서 괴롭다.’ 다 이해는 됩니다. 그건 결국 자기가 괴롭고 싶다는 소리일 뿐이에요. 얼마나 괴롭고 싶으면 온갖 이유를 다 갖다 대면서 괴롭다고 그렇게 주장하겠어요? 그러니 그런 핑계 대지 말고 ‘지금부터 나는 행복할 수가 있다’는 걸 아세요. 그걸 두고 부처님은 ‘모든 중생은 다 부처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부처’라는 말은 ‘행복하게 살 수가 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은 다 하나님 앞에 평등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다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어요. 하나님의 아들이 괴로워해서 되겠어요? 그러니까 자꾸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괴로워하지 마세요. 우리는 다 행복할 권리가 있고 행복할 수가 있습니다. 이걸 아시고 모두 행복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자기 권리를 포기하지 마세요. 행복할 권리를 당당하게 행사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청중 박수)
오늘도 6명의 질문자가 우리를 대신해 자신의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았고 간절하게 답을 구했으며 그 덕분에 우리 또한 인생에서 새로운 가능성과 희망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즉문즉설 강연은 서초 정토법당 봄불교대학과 봄경전반, 그리고 가을불교대학과 가을경전반 80여 명이 주축이 되어 진행되었습니다. 강연을 마치고 나서 봉사자들은 곧바로 팀별로 흩어져 마음나누기를 했습니다.
▲ 강연을 마치고 마음나누기를 하고 있는 봉사자들
그중 봄경전반 소속 박경래 님은 오늘 오후 강연장 물품 나르는 봉사를 위해 기쁜 마음으로 반가를 내고 일찌감치 강연장으로 달려왔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그동안 스님의 하루에 올라온 글을 스마트폰으로 쉽게 읽으면서도 거기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노고가 숨어 있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렇게 직접 강연장에 나와 보고서야 법륜 스님은 물론이고, 참으로 많은 봉사자들의 시간과 노력으로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오늘 저의 동참이 또 다른 분들에게 미약하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이어서 로비에서는 책 사인회가 열렸습니다. 길게 줄을 서서 스님의 사인을 기다리는 청중들의 얼굴에는 가볍고 행복한 표정이 가득했습니다. 스님은 강연장을 찾아와 준 사람들과 일일이 눈을 마주치며 환한 웃음을 보여주었습니다.
▲ 책 사인회
간혹 어린이들이 보일 때면 “안 지루했어? 엄마가 억지로 데려와서 힘들었겠구나” 하면서 그 마음을 헤아려주기도 했습니다.
오늘은 정토회 서울제주 지부에서 주관한 올해 마지막 강연이기에 종강연 기념 행사를 조촐하게 가지려고 했으나 서초구청 측에서 공간 사용을 허락지 않아 그냥 마쳐야 했습니다. 봉사자들은 아쉬움을 달래며 스님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오늘 하루 종일 강연 준비를 위해 분주히 움직였던 봉사자들은 스님과의 사진 한 장으로 그 노곤함이 모두 녹아나는가 봅니다. 모두들 얼굴에 환한 웃음이 가득했습니다.
봉사자들을 격려한 후 서초구민회관을 나온 스님은 밤 10시가 다 되어 서울 정토회관에 도착해 오늘 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
내일은 하루 종일 집무실에서 새책 원고 집필 작업을 한 후 저녁 7시에는 성남시 수정청소년 수련관에서 성남 시민들을 위해 ‘통일 이야기’를 주제로 즉문즉설 강연을 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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