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검색
원하시는 검색어를 입력해 주세요
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경남정보고등학교 체육관에서 진주 시민들을 위해 ‘즉문즉설과 통일이야기’를 주제로 강연했습니다.
오늘도 새벽 예불과 108배 정진, 명상으로 하루를 시작한 스님은 평화재단에서 아침 7시부터 오후 1시까지 오전 내내 회의 및 미팅을 연이어 가졌습니다.
오후 1시 30분에는 서울을 출발해 진주로 향했습니다. 고속도로 위를 달리는 도중 하늘에서 펑펑 눈이 내렸습니다.
첫눈이 내린다며 모두가 기뻐하는 순간이었지만, 스님은 창밖 구경을 하지 못하고 계속 원고 교정 업무를 보았습니다.
온 세상을 하얗게 뒤덮은 풍경은 감탄사를 절로 자아내게 했습니다. 첫눈을 만끽하며 부지런히 내려온 까닭에 약속 시간인 6시 20분에 무사히 진주 경남정보고등학교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 진주 경남정보고등학교
먼저 교장실로 이동해 이순덕 교장선생님과 환담을 나누었습니다. 스님은 장소를 사용할 수 있게 해준 것에 대해 감사 인사를 했고, 교장선생님도 “스님께서 학교를 방문해 주신 것은 더할 나위 없이 영광”이라며 기쁜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 경남정보고등학교 이순덕 교장선생님(오른쪽)
교장선생님은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다며 학생들 지도의 어려움을 이야기했고, 스님은 “오래 전부터 청소년 교화소를 대안학교처럼 운영해보는 것을 계획했었다”고 하면서 “공부 잘하는 아이들보다는 부적응 아이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지 않느냐”고 하면서 내년에 기회가 되면 이 학교 학생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을 해주겠다고 약속을 하기도 했습니다.
최근 들어 가장 추웠던 오늘, 저녁 7시가 되자 경남정보고등학교 대강당에는 300여 명의 진주 시민들이 자리한 가운데 큰 박수와 함성으로 강연이 시작되었습니다.
통일의병 백왕순 사무총장의 인사말과 장소를 대여해준 경남정보고등학교 교장 선생님의 인사말, 내빈소개, 통일시민학교 안내에 이어 통일의병 고문인 법륜 스님의 활동 소개 영상을 끝으로 스님이 큰 박수를 받으며 무대로 올라왔습니다.
스님은 날이 추운데도 불구하고 강연장에 오신 분들에게 인사를 한 후, 오늘 강연은 주관 단체의 입맛에 맞게 공동체의 미래 희망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져보자고 하면서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안녕하세요? 늦가을 날씨가 봄 날씨처럼 계속 따뜻하다가 어제, 그제부터 갑자기 추워졌어요. 추운데 오신다고 수고들 하셨습니다.
오늘 저를 강사로 초청한 통일의병이라는 단체는 ‘한반도에 다시 전쟁은 없어야 되겠다. 평화가 정착되도록 해야 되겠다’ 하는 목표와 ‘우리가 이 평화를 딛고 통일을 이룸으로써 미래의 희망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조직된 단체입니다. 그 단체에서 주관해서 오늘 이 강연회가 마련된 것이니까 오늘은 우리들의 관심사인 통일에 관해 함께 대화하는 시간입니다.”
그리고 혹시 질문자 중에 개인적인 고민이 너무 커서 꼭 질문을 해야겠다면 통일의병학교에 가입하는 조건으로 질문을 받겠다고 하자 청중도 모두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첫 번째 질문자는 고등학교 1학년 학생으로 삼촌이 자신에게 욕설과 막말을 한 이후 세상에서 가장 증오하고 미워하는 사람이 되었는데,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야 할지 물었고, 두 번째 질문자는 통일이되어야 한다는 당위성을 느끼면서도 북한의 핵 개발, 군사훈련을 보면 인도적 지원을 해야 하는지 의문이 들고, 북한의 인권 문제는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궁금해 했습니다. 세 번째 질문자는 통일에 관심이 많은 30대 아가씨였는데, 통일에 관련된 서적이나 자료를 찾아가다 보니 해결해야 할 과제가 너무나 많다는 걸 알게 되었고, 과연 통일이 될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며 30대 청년으로써 무엇을 해야 할지 물었습니다.
개인적 고민에 대한 질문보다 통일에 대해 궁금해하는 질문이 많았던 탓에 간단히 웃음이 터져나오긴 했지만 다소 진지한 분위기가 되었습니다.
특히 스님은 두 번째 질문자의 답변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인도적 지원에 대한 관점과 함께 우리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자세히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저도 한민족으로서 통일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막상 북한의 핵개발 모습이나 남침을 위한 군사 훈련을 보면 왜 북한에 인도적 지원을 해야 하는지 의문이 듭니다. 과연 인도적 지원을 할 필요가 있는지 스님께 속시원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첫째, 비록 적국의 국민이라도 굶어죽게 되었을 때는 지원을 해서 굶어죽는 건 면하게 하자. 둘째, 병들어 죽어간다면 약품을 지원해줘서 죽는 것은 막도록 하자. 또 아이들이 전쟁 통에 배우지 못하면 비록 적국의 아이들이라고 하더라도 기초적인 교육은 받을 수 있도록 학습 자료는 지원하자. 전 세계가 이렇게 합의를 본 것이 UN 인권 헌장입니다. 내 형제나 내 나라 사람, 우방국의 경우에는 이런 이야기를 할 필요가 없어요. 위에서 이야기한 경우는 모두 ‘우리와 적대적인 나라의 사람들이라 하더라도’라는 게 전제입니다.
‘적국 사람이라도 전쟁 중에 민간인은 공격하지 말자. 적국의 병사라도 부상을 당했으면 치료해 주자. 포로는 보호하다가 돌려주자. 적진에 있는 사람들이 굶어죽으면 식량을 지원하자. 병으로 많은 사람이 죽으면 약품을 지원하자. 물이 없으면 물을 지원하자.’
옛날엔 적국에 물이 떨어지거나 양식이 떨어지면 공급을 봉쇄해서 죽이는 전략으로 이용했어요. 그러나 지금은 물이나 약은 주자고 합니다. 이를 가리켜 ‘인도적 지원(humanitarian aid)’이라고 해요. 이것의 전제는 ‘종교가 다르더라도, 나라가 다르더라도, 적이라도 그렇게 하자’입니다. 사람이 굶어죽어가는지만 보지 그 사람이 불교인인지 기독교인인지, 흑인인지 백인인지, 중국 사람인지 한국 사람인지, 아군인지 적군인지는 보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게 인도적 지원의 원칙입니다. UN에 가입한 나라들이 그렇게 하자고 합의를 본 것이 UN 인권 헌장입니다.
인도적 지원의 원칙은 딱 두 가지입니다. 첫째 ‘정말 굶어죽느냐? 정말 병들어죽느냐? 정말 물이 떨어졌느냐?’ 하는 인도적 위기, 즉 생존위기에 처했다는 것이 정말로 사실일 때만 지원합니다. 두 번째, 위기가 사실이라 하더라도 그냥 지원해 주면 중간에 다 새어나가서 정말로 죽어가는 사람들에게는 도달하지 않을 가능성이 커요. 그래서 우리가 인도적 지원을 하는 게 그 문제를 개선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는지 확인하는 검증, 즉 모니터링이 있어야 합니다. 이 두 가지 조건만 갖춰지면 적이라도 지원을 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내가 우리나라의 고아원에 먹을 것을 가져다주면 그것은 인도적 지원이라고 안 합니다. 누군가 자기 아들을 도왔다고 해서 그것을 인도적 지원이라고는 안 해요. 인도적 지원이라고 하는 것은 내가 도와야 할 아무런 의무가 없는 상대가 위와 같은 위기에 처했을 때 도와서 같이 문제를 푸는 것을 말합니다. 이게 사람으로서 사람답게 사는 길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이니까, 혹은 부처님의 가르침이니까 이렇게 하자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사람답기 위해서 이렇게 하자는 겁니다. 성질이 나서 싸울 때는 싸우더라도 사람답게 하자는 거예요.
부부가 머리채 잡고 멱살 잡아가며 싸우더라도 밥 먹을 때 되면 휴전하고 애 밥은 해 준 뒤 싸우자는 겁니다. 안 싸우면 더 좋지만, 싸우게 된다면 싸우더라도 아이들은 보호하자는 거예요.
그러니 인도적 지원을 하는데 있어서 ‘북한이 핵을 개발했느냐? 북한이 공산주의 국가냐? 북한이 독재국가냐? 북한이 미사일을 개발했느냐? 북한이 군비를 증강했느냐?’ 이런 건 논할 필요가 없어요. ‘북한 사람들이 정말 굶어죽을 위기에 처했느냐? 아이들과 노인, 임산부의 영양실조가 심각해서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느냐? 북한에 정말 콜레라나 성홍열이나 장티푸스가 발생했느냐? 약이 없다는 것도 정말이냐?’ 이게 첫 번째로 검토가 되어야 하고, 두 번째로 ‘우리가 보낸 식량과 약이 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됐느냐?’가 검증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주로 첫 번째 기준을 두고 논쟁을 해요. ‘굶어죽기는 뭘 굶어죽어? 군량미 비축하려고 일부러 거짓말한다.’ 주기 싫은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런 말이 무조건 틀렸다는 게 아니라 확인을 해야 한다는 겁니다. 어느 정도 확인이 되면 보내고, 보낸 뒤에는 그게 어떻게 되었는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북한에 식량 100㎏을 보냈는데, 군인이 20㎏을 가져가버리고, 20㎏는 중간에 누가 시장에 팔아버리고, 나머지 60㎏는 고아원에 전달이 되어서 아이들이 그것을 먹고 영양실조를 극복했다고 칩시다. 그런데 지원에 대한 평가는 다 다릅니다.
‘우리가 준 식량이 군대로 갔다.’
‘우리가 준 식량을 간부들이 시장에 팔아서 돈벌이를 했다.’
‘우리가 준 식량이 고아원에 잘 전달되어서 아이들의 영양실조가 개선이 되었다.’
모두 각자 원하는 부분만 보려고 들어요. 지원을 해야 한다는 사람은 ‘우리가 보낸 식량이 고아원에 전달되어서 아이들의 영양실조가 개선되었다’고 강조하고, 지원을 하기 싫은 사람은 ‘그것 봐라, 우리가 보낸 식량이 군대로 가고 시장에 풀렸다’라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그래서 북한에 인도적 지원을 하는데 조금 관심을 갖고 있는 대통령한테는 지원해서 효과가 난 것만 계속 보고하고, 지원에 조금 부정적인 입장인 대통령한테는 지원 물자가 군대나 시장으로 흘러들어간 것만 계속 보고하니까 ‘줄 필요 없네. 주지 마라’ 이렇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북한의 사정을 보면 군인도 굶어죽었습니다. 군인도 사람이니까 굶고 있다면 인도적 지원의 대상이에요. 또 생각해보면 내가 보낸 100㎏이 고아원에 전량 가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지원을 함으로 해서 굶어 죽어가던 아이들의 영양실조 문제 개선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되었습니다.
저는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 활동을 1996년부터 시작했어요. 1994년부터 1998년 사이 북한에서는 식량부족과 질병으로 인해 300만 명이 죽는 대량 아사 사태가 있었습니다. 그것을 두고 북한에서는 ‘고난의 행군’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처음에는 국제 사회가 북한을 탐탁찮게 여겨서 안 주려고 했는데, 사태가 너무 심각하니까 지원을 했어요. 남한에서도 지원을 했고요. 그렇게 3년 정도 지원을 해서 1999년부터 대량 아사는 막았습니다. 아직도 굶어죽는 사람이 있긴 하지만, 2000년대 들어오면서 대량 아사는 멈췄습니다. 그런데 그에 대한 평가가 이렇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식량지원도 하고 쌀과 비료도 주었는데 북한은 미사일 만들고 핵 개발했다. 북한은 정책이 하나도 안 변했다.’ 그래서 지원을 끊은 겁니다.
그런데 이런 평가는 맞지 않습니다. 인도적 지원의 평가 기준에 따르면 ‘우리가 이렇게 인도적 지원을 했더니 아사 사태가 어느 정도 멈췄고 병이 어느 정도 잡혔다’ 이렇게 되어야 해요. 인도적 지원의 목표에 따른 성과가 평가가 되고, 지원을 했는데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면 안 된 이유를 분석해봐야 합니다. 지원한 양이 적었기 때문인지, 중간에서 다 빼돌렸기 때문에 아무리 지원해 봐야 밑 빠진 독에 물붓기 인지를 확인하는 식으로 평가가 이루어져야 해요. ‘우리가 지원을 했는데 북한은 미사일 쏘고 핵무기를 개발한다’ 이렇게 결론내려 버리는 것은 인도적 지원의 목적과 안 맞는 평가입니다.
국제 사회에서는 지금 인도적 지원을 정치적 압력수단으로 삼아 무기화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런데도 각국은 무기화를 합니다. 미국도 늘 인도적 지원은 정치와 관계없다고 주장하지만, 제가 미국에 20년째 다니면서 사람들을 만나보면 인도적 지원을 무기화합니다. 대화가 되면 지원을 하고, 말 안 들으면 끊어요. 그 때는 모니터링에 문제가 있어서 지원을 끊는다고 말하죠. 그래도 미국에서는 누구도 ‘말 안 듣기 때문에 인도적 지원을 끊는다’는 노골적인 말은 하지 않습니다. UN 인권 헌장에 어긋나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대한민국은 솔직해서 좋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러나 국가지도자나 종교지도자가 ‘말도 안 듣는 사람들한테 왜 주나?’, ‘공산주의자들한테 왜 주나?’, ‘하나님도 안 믿는데 왜 주나? 굶어죽어도 싸다’ 이런 식으로 말한다면 의식 수준이 아주 전근대적인 겁니다. 그래서 한국 사람들은 시민의식의 측면에서 보면 그냥 강남에서 땅 좀 가지고 있다가 졸부 된 수준입니다. GDP만 세계 선진국 대열에 들어있지, 시민 의식 수준은 후진국 수준이에요.
모든 사람이 ‘저 놈 죽여야 한다’라고 해도 불교 신자라면 자비로 감싸야지요. 기독교 신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십자가에 매단 사람을 보고도 ‘주여 저들을 용서하소서’ 라고 하셨어요. 종교 없는 사람들이 ‘저 놈 죽이자’고 아우성쳐도 불교 신자나 개신교 신자나 천주교 신자는 나서서 ‘인도적 지원은 신앙과 일치하는 것이니까 지원을 하자’고 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그렇게 많은 불교 신자들이 많은데 악을 쓰면서 지원을 반대하고, 서울의 대형교회에 다니면서 신앙이 깊다는 개신교인들도 악을 쓰면서 반대합니다. 그걸 보면 그 사람들의 신앙이 뭔지, 과연 신앙이 있기는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대한민국의 발전 정도로 볼 때 시민의식이 인도적 지원은 찬성하는 수준이 되어야 해요. 시민의식 수준이 그 정도 못 된다면 적어도 종교인들만이라도 인도적 지원을 해야 한다고 나서는 의식 수준은 되어야 합니다. 종교의 원래 가르침을 이해한다면 그래야 할 텐데, 종교인들이 더 나서서 반대합니다. 북한의 정치를 비난하는 건 괜찮습니다. 그런데 인도적 지원을 반대하는 것은 본인의 신앙과 시민의식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는 거예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미워서 못 주겠다’고 말하는 건 화끈하고 솔직하긴 합니다. 미국처럼 미워서 안 주면서도 ‘모니터링이 잘 안 돼서 못 준다.’ 하고 괜히 딴 소리 하는 것보다 나을지도 몰라요. 그래도 미국은 북한하고 저렇게 적대적이지만 지금 인도적 지원이 금지되어 있지 않습니다. 또 금지할 수도 없습니다. 미국의 정체성과 미국적 가치가 훼손되기 때문에 금지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인도적 지원을 금지시켜 버립니다. 김영삼 대통령 때 강릉 잠수함 사건이 나자마자 지시를 내려 적십자 지원을 중지시켜 버렸어요. 그래서 우리가 문제제기 했더니 6개월 후에 다시 열어놨어요.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 들어와서는 천안함 사건이 나니까 5.24조치를 내려서 인도적 지원을 끊어버렸습니다.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로는 지금까지 우리가 대북 인도적 지원을 단 한 번도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명박 대통령 당시에는 비판을 많이 했지만 지금은 구관이 명관이다 싶어요. 그때는 중간 중간 중단되긴 했지만 그래도 하긴 했거든요. 중단시키면 우리 종교인들이 청와대에 찾아가서 대통령이나 수석 면담 요청해서 항의하고, 통일부 장관을 설득해서 허용을 받아낼 수 있었어요. 그렇게 우리가 한 번 지원하면 다음에는 막히고, 또 그러면 찾아가서 설득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이 문제를 들고 청와대 문 앞에도 못 갑니다. 나서서 이야기하는 종교인도 아무도 없습니다. 지레 겁을 먹었는지, 이야기해 봐야 귀에 안 들어가리라 생각해서 포기한 건지,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해서 그런지는 모르겠어요. 전에는 지원을 신청해놓고 허가가 안 되면 ‘왜 허용을 안 해 주느냐? 대한민국이 이거 밖에 안 되느냐?’면서 항의라도 했는데 이 정부 들어선 신청도 한 번 못했습니다. 분위기를 보니까 도무지 될 것 같지 않아서요. 이런 식으로 가는 건 옳지 않습니다.
북한의 행태를 갖고 인도적 지원을 이야기하면 안 됩니다. 그것은 국제적인 의식 수준에 비해 너무 떨어지는 것입니다. 또 인도적 지원은 첫째, 우리나라의 도덕성을 위해서 해야 됩니다. 이웃에 있는 같은 민족도 안 도우면서 아프리카에 있는 나라에 가서 돕는다고 하는 걸 보면 외국 사람들이 보기에 얼마나 우습겠어요? 보수적이기로 유명한 조선일보가 언젠가 1면에 이런 기사를 실었습니다. 우리가 해외에 지원한 ODA 자금 중에 북한에 지원한 금액이 1.68%라는 거예요. 조선 일보가 나서서 비판할 정도예요. 제가 옛날에는 미국이나 UN기구에 가면 인도적 지원 좀 하라고 요청도 하고 설득도 했습니다. 그런데 요새는 가도 할 말이 없습니다. 제가 말만 꺼낼라치면 ‘한국정부는 얼마나 합니까? 당신은 얼마나 합니까?’라고 물으니까요. 거리도 가깝고 같은 민족인데 왜 너희는 안 하면서 나한테 하라고 하냐는 거지요. 우리도 지원을 하면서 좀 부족할 때는 요청하기가 쉬운데, 우리가 하나도 안 하고 있으니까 뭐라 말할 입장이 안 됩니다.
두 번째, 통일을 위해서 해야 합니다. 북한 주민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들대로 북한 정부에 불만이 굉장히 많습니다. 그래서 옛날에는 남한에서 지원하면 ‘아이고, 그래도 동족이 낫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자기들이 굶어죽든지 말든지 한국은 아무 관심이 없으니까, 북한 주민들의 통일에 대한 열망이 굉장히 컸다가 요즘은 식었습니다. ‘우리가 사는 건 다 중국 덕분이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시장의 모든 물건이 다 중국제이니까요. 북한이 굉장히 민족주의적이긴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자꾸 중국으로 경도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북한사람들은 ‘중국은 사회주의 천국이다’라고 합니다. 중국에 가보니까 개도 이밥, 즉 쌀밥을 먹더라는 거예요.
인도적 지원은 통일로 가는 굉장히 중요한 수단입니다. 북한의 민심을 얻는 굉장히 중요한 수단이에요. 우리와 미국과 중국이 협력해서 핵 문제를 막고자 북한을 봉쇄하더라도, 그런 중에도 인도적 지원은 열려 있어야 합니다. 봉쇄하면 할수록 인도적 지원의 효과는 더 나잖아요. 그러니 한쪽은 막더라도 한쪽은 열어줘야 그걸로 민심을 잡는데, 우리는 봉쇄만 하고 있어요. 중국은 북한을 봉쇄하면서 뒷문은 열어놓았습니다. 그러니까 시간이 흐르면 북한은 더 중국 쪽으로 기울어집니다. 이건 통일전략적으로도 올바른 방법이 아니에요.
감정적으로는 이해가 됩니다. 반대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해요. ‘얻어먹었으면 고맙다고 인사는 해야 되는데 이 사람들은 인사도 할 줄 모른다. 달라는 놈들이 엎드려 절해야 되는데, 우리는 거꾸로 주는 놈이 절하고 얻어먹는 놈이 큰소리친다. 그런 놈들한테 왜 주느냐?’
저도 이해가 갑니다. 굶어죽는 주민들만 아니면 팍 끊어버리고 싶고 만나고 싶지도 않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에요. 그런데 그 지도부를 보고 주는 게 아니라 그 지도부 뒤에 있는 북한주민을 보고 주는 거예요. 그런데 수행을 안 하는 사람들은 그 지도부를 탁 보고는 북한 지원을 하다가도 다 반대로 돌아서버렸습니다. 특히 종교인들이 그랬습니다. 자기가 저보다 먼저 북한 돕기를 시작해서 열정적으로 하다가 저까지 끌어들여놓고 정작 자기는 지금 북한 돕기에 반대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몇 번 북한을 가보고는 화가 나버린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간부들의 행태를 보는 게 아니라 그 뒤에 말 못하고 고통받는 국민들을 보고 ‘그들의 처지가 어떤가? 이 지원이 그들에게 도움이 되나?’ 이런 관점에서 인도적 지원을 결정해야 합니다.
반대로, 아무리 같은 동족이고 아무리 북한이 달라고 조르더라도 인도적인 위기상황이 아니면 인도적 지원을 안 해야 합니다. 인도적 위기상황이 아니라면 인도적 지원이 아닌 개발 지원을 해야 합니다. 북한에 수로를 판다든지, 저수지를 만든다든지 하는 걸 개발지원이라고 해요. 개발지원은 서로 합의가 되어야 하는 것이에요. 인도적 위기 상황이 아니라면 아무리 사이가 좋고 친해도 인도적 지원이 아니라 개발 지원으로 지원 형태를 바꿔야 합니다. 아무리 사이가 나빠도 인도적 위기 상황이 닥치면 인도적 지원을 해야 하고요. 이렇게 인도적 지원과 개발지원은 다릅니다.”
“감사합니다.”
인도적 지원을 바라보는 관점과 그 필요성, 효과에 대해 다시 한 번 되짚어 볼 수 있었습니다. 인도적 지원을 해도 군대에 가기 때문에 반대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스님의 답변을 듣고 나니 이것은 한쪽 측면만 바라본 것에 불과했음을 명확하게 알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세 명의 질문에 대해 답변을 마치고 나니 벌써 2시간이 다 지났습니다. 마칠 시간이 되자 마지막으로 스님의 당부 말씀이 이어졌습니다. 평화적인 방법으로 합의 통일을 하려면 상대인 북한을 포용할 수 있어야 하며, 우리가 노력한 만큼 통일은 빨리 올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통일의병 활동에 적극 참여해줄 것을 당부했습니다.
“북한을 설득해서 남북이 합의통일을 하면 중국이 우리에게 간섭할 이유도 없고, 또 남북은 중국하고도 일본하고도 미국하고도 관계를 다 잘 개선해 나갈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 반드시 합의통일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합의통일을 하려면 상대의 요구를 좀 들어줘야 해요. 지원도 좀 해 줘야 하고, 신분도 보장해 줘야 합니다. 지배층은 신분을 보장해 줘야 하고, 밑에 있는 사람은 득이 되도록 해 줘야 됩니다. 동독 국민이 통일에 동의한 이유는 다른 게 아닙니다. ‘통일 되면 자가용을 가질 수 있다. 통일되면 우리도 유럽으로 여행할 수 있다’ 이게 통일의 가장 큰 요인이었어요. 대한민국이 가난한 사람도 좀 잘 살도록 하는 복지국가가 돼야 북한사람들이 볼 때 ‘따로 살 거 뭐 있어? 남한 가면 제일 못 살아도 저 정도로는 사니까 우리도 같이 사는 게 좋겠다’ 이렇게 되어서 통일의 유인효과가 됩니다. ‘거기도 못 사는 사람은 굶어죽더라. 남한이 잘 살면 뭐해? 우리가 남한 가면 거지될 텐데’ 이렇게 생각하게 되면 통일하기도 그만큼 어려워집니다.
통일이 되면 남한에도 이익입니다. 우선 경제적으로 이익입니다. 또 우리 대한민국을 좋은 나라로 만드는 것이 북한주민이 통일에 동조하게끔 하는 데 유리해요. 따라서 ‘대한민국을 복지국가로 만들 거냐’ 하는 것과 ‘통일할 거냐’ 하는 것은 배치되는 게 아니라 상생의 요인으로써 같이 가야 하는 겁니다.
우리가 이런 걸 두루 생각하고 강력하게 통일을 추진하면 통일이 빨리 올 겁니다. 더 많이 노력하면 더 빨리 올 것이고, 조금 노력하면 천천히 올 것이고, 노력 안 하면 안 오겠지요. 아무 노력도 안 했는데 통일이 온다면 통일은 될지 몰라도 통일로 인한 새로운 고통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나라가 독립할 때 겪었던 아픈 경험들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우리가 지금 정신을 좀 차려야 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선거 때마다 여러분은 어느 당의 공천만 받으면 그냥 뽑아주는, 그래서 주민이 투표할 필요도 없는, 그런 국민이 되지 마세요. 적어도 우리가 선출할 수 있는 권리, 헌법에 보장된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시민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통일의병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통일 문제를 바라보며 답답했던 부분들에 대해 쉽게 풀어준 스님에게 청중들은 박수로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교복 차림으로 강연에 참석한 중학생에게 오늘 강연을 듣고 난 소감을 물어보았습니다. “친구들과 통일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 답변하기 어려웠는데 강연을 듣고 나니 왜 통일을 해야 하는지 명쾌해졌다”고 했습니다. 50대 남성도 “오늘 강연을 들으니 앞으로 어떤 자세로 통일을 대해야 할지 정말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모두들 통일에 대한 가슴 뛰는 설렘을 갖게 되었다며 기뻐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강연을 마친 후 대중과 스님은 함께 손을 잡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를 불렀습니다. 오늘 강연이 진주 지역에서 많은 통일의병들이 나오도록 하는 작은 계기가 되길 간절히 기원해 봅니다.
이어 책 사인회가 진행되었습니다. 스님은 강연장을 찾아준 분들에게 정성껏 사인을 해주었습니다.
▲ 책 사인회
사인회를 마치고 스님은 오늘 강연을 준비한 봉사자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했습니다. 밝은 표정의 얼굴 속에는 통일의 희망을 만들어간다는 보람과 기쁨이 가득해 보였습니다.
사진 촬영을 마치고 나가는 길에는 봉사자들 한 명 한 명에게 악수를 건네며 격려도 해주었습니다.
추위에 떨며 외부에서 안내 봉사를 한 분부터 오늘 행사 준비를 도와주기 위해 멀리서 달려와 준 통일의병들의 모습을 보며, 통일은 먼 목표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의 작은 노력으로 시작된다는 다짐의 말이 생각났습니다. 언론에 크게 기사화되지도 않고, 세상에 널리 알려지지도 않고, 그저 미미한 움직임일지 모르지만, 이렇게 정성을 다해 한발 한발 내딛는 통일의병들의 모습이 오늘은 유난히도 가슴 뭉클하게 다가왔습니다.
강연장을 나온 스님은 곧바로 진주를 출발하여 서울로 향했습니다. 밤새도록 고속도로를 달려 새벽 2시에 서울 정토회관에 도착한 후 오늘 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
내일은 오전 10시 30분에 남양주 경복대 우당아트홀에서 남양주 시민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을, 저녁 7시에는 정발산 성모성탄성당에서 일산 시민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을 할 예정입니다.
※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 강연이 전국 52개 도시를 순회하고 있습니다. 우리 동네 강연 일정을 확인한 후 가족, 이웃, 친구와 함께 강연장으로 오세요.
강연은 선착순 무료 입장이며, 질문을 하고 싶은 분들은 강연장에 직접 오셔서 사전 신청을 하셔야 합니다.
전체댓글 36
전체 댓글 보기스님의하루 최신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