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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스님은 오전에 전남지방경찰청 초청강연과 오후에 목포해양대학교 초청강연에 이어서 저녁 7시부터는 전남대학교 컨벤션홀에서 광주 지역의 청년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을 했습니다.
연이어 3번의 강연을 했기 때문에 피곤할 법도 한데 스님은 더 힘을 내어서 전남대학교 컨벤셜 홀로 들어섰습니다. 곳곳에 서 있는 주황색 티셔츠를 입은 봉사자들을 보고선 금새 환한 웃음도 보여주었습니다.
▲ 전남대학교 컨벤션홀
이번 강연은 청년정토회와 광주 지역의 청년들이 서포터즈가 되어 한마음으로 준비했습니다. 모두들 3시부터 강연 준비를 시작해 신속하게 일 나누기를 하고 무대 점검과 사전 리허설을 마친 후 밝은 표정으로 찾아오는 청년들을 맞이했습니다.
저녁 6시가 되자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청년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이었지만 청년들뿐만 아니라 다양한 연령층의 청중들도 많이 참석해 400석의 자리를 꽉 채우고도 자리가 부족해 계단에 앉아야 하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강의가 시작되자 스님은 청중들에게 “저녁식사는 하셨어요?”라며 안부 인사를 전했습니다. 그리고 청중석을 살펴보더니 늙은 청년들이 보인다고 하면서 웃음을 보인 뒤 오늘 청년 강연의 취지에 대해 설명을 하면서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오늘 강연은 청년정토회가 주관하는 강연입니다. 일반인들이 매일 시부모 모시는 문제, 고부 갈등, 부부 갈등 같은 이야기만 하니까 청년들한테 안 맞는다는 의견이 있었어요. 그런 자리에 청년들이 들어가서 배울 것도 있지만 청년들에게 따로 시간을 내어서 청년들의 고민만 집중적으로 다뤄줬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그래서 오늘 광주에서 청년 즉문즉설 강연이 잡힌 겁니다. 오늘 참석하신 분들 중 나이가 많으신 분들은 참관만 하세요. 원래는 참석도 안 시켜야 되지만 자리가 비어서 참석은 허용했으니 그렇게 아시고 오늘은 35세 이하 청년 대학생들만 질문할 수 있도록 양해를 해 주시기 바랍니다. 괜찮으시죠?”
“예.”
스님이 질문할 사람은 손을 들어보라고 하자 총 6명이 손을 들었습니다.
첫 번째 질문자는 21살 남학생이였는데 꿈을 크게 잡았지만 이게 허황된 것인지 아닌지 확인받고 싶어 하였고, 두 번째 질문자는 23살 여학생으로 주변 상황에 의해 마음이 불편해져 어떻게 해야 할지 그리고 헤어진 전 남자친구가 생각이 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물었고, 세 번째 질문자는 전남대학교 1학년 재학중인 남학생으로 부모님께 자신의 주장을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물었고, 네 번째 질문자는 31살 한국으로 유학 온 중국인 여학생으로 부모님이 있는 중국으로 돌아가야 할지 아니면 한국에 남아서 취직을 해야 할지 걱정이라며 질문했고, 다섯 번째 질문자는 결혼 생활을 하고 있는 여성으로써 매사에 부정적이고 죽음에 대해 자주 이야기하는 남편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물었고, 여섯 번째 질문자는 결혼을 생각하고 있는 여성으로써 사주를 보러 가서 안 좋은 이야기를 듣고 와 신경이 계속 쓰인다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습니다.
이렇게 사전에 신청했던 질문자들의 질문이 모두 끝나고 시간이 남자 스님은 즉석에서 추가 질문을 받았습니다. 일곱 번째 질문자는 남자 교사로써 꿈이 없이 살아왔는데 주변에서 꿈을 갖고 살라는 말 때문에 자신이 잘 살고 있는 건지 궁금하고 또 아버지와의 관계 회복을 물었고, 여덟 번째 질문자는 27살 직장인 여성으로 자신이 결혼하고자 하는 사람이 도인의 길을 가려고 하는데 자신이 어떤 마음으로 함께 해야 하는지 물었습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 꿈이 없어서 고민이고 아버지와의 관계 회복에 대해 물었던 남자 교사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지금까지 꿈이 없이 살아온 게 고민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남들은 장래희망을 쓸 때 다 자기의 꿈이며 진짜 원하는 걸 적던데, 저는 꿈이 없어서 부모님의 기대나 주위 사람들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그냥 제 꿈이라고 적었습니다. 대학에 입학할 때도 다른 친구들은 정말 자기가 원하는 전공에 따라 진학하는데 저는 그냥 수능성적에 맞춰서 대학을 갔습니다.
어쩌다 보니 제 꿈도 아니었지만 임용고시에 합격해서 35세인 지금은 학교 교사가 되었는데 이제 와서 딜레마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여러 강연을 다녀봤지만, 흔히 말하는 성공하거나 행복하다는 사람들은 우선 꿈을 가지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저는 일단 꿈이 없어 고민입니다.
두 번째로, 저는 교사로서 학생한테 ‘너는 꿈을 가져야 된다. 너의 꿈을 이루어가기 위해서 이런 단계를 밟으면 좋겠다’는 등의 말을 하지만 정작 교사인 저는 꿈이 없습니다. 과연 꿈을 갖는 것만이 정말 행복한 길인지, 또 꿈을 갖지 않는다면 실패한 삶인지 고민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꿈은 없을수록 좋아요. 있는 게 병입니다. 질문자는 지극히 정상적입니다. 토끼며 노루며 다람쥐는 다 꿈이 있어서 저렇게 살고, 나무는 뭐 꿈이 있어서 저렇게 자는 게 아니에요. 없는 게 자연스러운 겁니다.”
“그런데 모든 책에서는 꿈이 있는 게 정상이라고 하니까요.”
“그것은 책에 나오는 이야기이니까 신경 쓸 필요가 없어요.”
“많은 사람들도 ‘항상 꿈을 가지라. 꿈을 좇아서 살라’고 하니까요.”
“부처님은 그런 이야기 안 했습니다. 그 사람들은 뭘 모르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질문자가 자기 반에서 조사해보면 ‘선생님, 저는 꿈이 없어요’ 이런 이야기를 하는 아이가 있었나요? 없었나요?”
“사실 아무 생각 없이 그렇게 이야기하는 아이들이 더 많긴 합니다.”
“그래요, 없다고 말하는 아이들이 더 많잖아요. 그런 아이들에게 질문자는 용기를 줘야 합니다. ‘꿈이 있는 게 문제지, 꿈이 없는 건 아무 문제도 안 된다. 선생님도 꿈이 없었지만 이렇게 선생님이 되어서 너희들을 가르치지 않니? 걱정하지 마라’ 이렇게 격려를 해 줘야합니다.
현재 한국 사회의 교육이 잘못되어서 많은 젊은이와 아이들이 질문자처럼 ‘저는 꿈이 없어요’ 하는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고민이 지금 사회적으로 큰 문제입니다. 교육이 잘못돼서 그래요.
질문자는 교사가 되길 잘했습니다. 반에서 조사를 해 보세요. 3분의 1, 심하면 절반 이상은 꿈이 없습니다. 그게 지극히 정상적이에요. 학교 교육이 제대로 있기 전인 옛날에 시골 농가에서 태어나서 자란 사람들은 특별히 따로 꿈이 없었어요. 그냥 자라서 시집가고, 자라서 농사지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잘못된 교육 때문에 사람들이 병들게 됐어요.
제가 학교 다닐 때 운동을 굉장히 하고 싶어 하는 아이가 한 반에 한둘씩 있었어요. 소위 딴따라라고 하는 음악을 좋아하는 아이도 한 반에 한둘씩 있었고, 미술을 좋아하는 아이도 있었어요. 이렇게 특별한 아이들이 60명 중 부문별로 1, 2명 꼴로 있었어요. 그런 특기 있는 아이들이 중학교 때까지는 그 특기를 살리지만 고등학교 때부터는 부모가 그걸로 못 먹고 산다며 강력하게 반대해서 그 특기를 못 살리고 다 이과로 진학해 공대에 들어갔습니다. 우리 시절에는 문과보다 이과가 우세했거든요.
그런데 우리가 이제는 어느 정도 먹고 살 만해졌어요. 사람들이 먹고 사는 데만 전전긍긍해서는 행복하지가 않으니까 이제 ‘꿈’을 생각하게 된 겁니다. ‘나는 의사지만 사실은 음악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때는 음악을 해서는 못 먹고 살기 때문에 의사가 되었다’ 이렇게 됐어요. 그러다 보니까 자기 어릴 때 못 이룬 꿈을 생각해서, 자녀 세대에는 뭘 하고 싶은 사람은 그걸 할 길을 열어주자고 하게 됐어요. 그래서 ‘네가 원하는 게 있으면 그걸 해라’ 이런 분위기가 된 겁니다.
그런데 최근에 운동이나 예술을 해서 유명해지고 돈도 많이 번 사람들이 많다 보니 부모나 교사들이 돈 욕심에 미쳐서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골프를 시킨다, 테니스를 시킨다, 피아노를 시킨다 해요. 그러면서 자꾸 꿈이 없는 애들한테 ‘꿈을 가지라고 강요하니까 아이들이 도로 고민에 빠졌습니다. 지금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억지로 배우고 있는지 몰라요. 집중적으로 지도하면 아이들은 뭐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학교쯤 올라가서 진짜 본격적으로 자기 선택을 해야 될 때가 되면 다 지쳐서 나가떨어집니다. 그래서 다시 갈등이 시작돼요. 이게 잘못된 욕심이라는 겁니다. 전체가 미쳐서 ‘꿈을 가져라! 꿈을 가져라!’ 이렇게 강요하는 게 잘못됐다는 거예요.
물론 아이들 중에는 어릴 때부터 독특한 아이들이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만화 그리기를 좋아하는 아이가 있고, 노래를 좋아하는 아이가 있어요. 제가 시골에서 살 때 우리 윗집 총각은 학교도 안 다니면서 그렇게 노래를 잘했습니다. 그러나 옛날에는 그런 걸 아무도 안 알아줬기 때문에 그 재능을 살릴 수 있도록 도와주지 못했어요. 그런 특별한 ‘끼’는 극소수에게 있고, 다수에게는 없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이거 하라면 이거 하고 저거 하라면 저거 해요.
질문자는 특별한 ‘끼’가 없으니까 뭘 해도 됩니다. 선생님 하라면 선생님하고 공무원 하라면 공무원하고, 뭐든 다 할 수 있어요. 한 가지밖에 못하는 사람이 좋아요? 이것저것 다 하는 사람이 좋아요? 스님이 딱 불경밖에 모르는 게 좋아요? 성경 이야기도 하고 불경 이야기도 하고 과학 이야기도 하는 게 좋아요?”
“여러 가지 하는 게 좋아요.”
“그래요. 미래의 학문은 융합적인 게 좋아요. 그러니 질문자는 아무 문제가 없고, 선생님으로서도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아이들에게 ‘꿈을 가져라’ 이런 이야기도 절대 하지 마세요. 다른 선생님이 그런 이야기를 해서 아이들이 질문자에게 물으면 이렇게 말해주세요.
‘꿈이라는 건 없어도 돼. 그런데 너 뭐 좋아하니?’
‘좋아하는 거 없어요.’
‘너는 욕심이 없구나. 아주 훌륭하다’
이렇게 격려를 해줘야 합니다. 좋아하거나 하고 싶은 게 있다고 하면 ‘좋다. 한번 해 봐라’ 이렇게 격려해주면 됩니다. 꿈이 있는 아이가 인생이 괴로운 법입니다. 야구선수 되고 싶은데 집에서 뒷바라지해줄 형편이 안 되면 괴로워해야 하잖아요. 특별히 되고 싶은 게 없는 것보다 좋은 게 없어요.
그러니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지금 질문자는 ‘‘저는 걱정 없는 게 걱정이에요’ 이러는 것과 같아요. 질문자는 선생님으로서 아이들이 그렇게 ‘꿈이 없어요’ 할 때는 공감하지 못하는 다른 선생님들보다 훨씬 더 잘 격려해 줄 수 있습니다. 많은 아이들이 갖고 있는 고민은 ‘저는 이런 꿈이 있는데 실현을 못해요’가 아니라 ‘저는 꿈이 없어요’인 사회가 됐습니다. 교육이 얼마나 잘못됐는지 몰라요. 꿈이 없는 게 왜 문제고, 고민 없는 게 왜 고민입니까? 자꾸 ‘고민해라. 꿈을 가져라’ 하고 몰아붙이니까 그래요.
도의 최고 경지는 할 일이 없어지는 거예요. 할 일이 없어진다고 해서 논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가자’ 하면 할 일이 없기 때문에 가는 겁니다. ‘안 하겠다’하는 것은 그걸 안 하고 대신 해야 할 다른 일이 있다는 뜻이에요. 다시 말하면 이건 할 일이 있는 사람입니다. 할 일이 없는 사람은 ‘가자’ 하면 가고, 가다가 중간에 ‘돌아 가자’ 하면 도로 옵니다. 왜 이랬다 저랬다 하느냐고 화내지 않습니다. 다른 할 일이 없으니까 ‘이거 하자’ 하면 이걸 하고, ‘이거 그만 두고 저거 하자’ 하면 이걸 계속할 이유가 없으니 그만두고 저걸 합니다. 그게 도인(道人)입니다.
물을 네모난 그릇에 부으면 네모가 되고, 둥근 그릇에 부으면 둥글게 되듯이, 정해진 모양 없이 형편에 따라 되는 겁니다. 이게 최고의 경지입니다. 질문자는 최고의 경지, 도인의 경지에 이를 소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알았습니까?”
“예, 알았습니다.” (청중 박수)
“아무 문제가 없고, 선생님으로서도 아주 좋아요. 그런데 질문자가 헛된 생각으로 만들어 놓은 책이니 교육이니 하는 상에 얽매일 필요가 없습니다. 이것 때문에 지금 얼마나 많은 젊은이들이 없는 꿈을 만들려고 몸부림치는지 모릅니다. 그럴 때 질문자가 ‘나를 봐라. 나는 꿈 없이도 교사가 되었고, 꿈이 없기 때문에 꿈속에 살지 않고 항상 현실에 깨어있다. 괜찮다.’ 이래야 해요. 그래서 질문자는 내일이라도 선생님 하라면 선생님 하고, 공무원 하라면 공무원 하고, 농사지으라면 농사지으면 됩니다. 이게 도예요.
그래서 저도 여러분한테 주제를 정해주지 않고 아무거나 물으라고 하잖아요. 이거 물으면 이거 이야기하고 저거 물으면 저거 이야기하니 얼마나 좋아요? 그러니 질문자는 아주 훌륭한 선생님입니다. 자신감을 가지고 사세요. 더 이상 엉뚱한 소리는 듣지 말고요.” (청중 박수)
스님의 명쾌한 답변에 연이어 박수가 계속 쏟아져 나왔습니다. 질문자의 인상도 활짝 펴졌습니다. 특히 물이 그릇의 모양에 따라 모양을 달리하는 것이 도의 최고 경지라는 설명을 하면서 질문자는 그런 경지에 이를 소질 있다고 하자 청중도 웃고, 질문자도 활짝 웃었습니다. 무엇보다 잘못된 교육이 얼마나 아이들의 어깨를 무겁게 하는지 되돌아보는 뜻깊은 시간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마음이 가벼워진 질문자는 질문이 한가지 더 있다면 또 다른 질문을 했습니다.
“한 가지 더 궁금한 게 있습니다. 아버지와의 관계가 굉장히 안 좋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의 억압 속에서 자랐고, 저는 말씀드렸다시피 꿈이 없었기 때문에 부모님이 시키는 대로 산 경향이 있었어요. 그런데 20살 넘어 대학생이 되고 자기 정체성이 생기면서 보니까 아버지와 굉장히 안 맞아서 충돌이 잦아졌어요.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에 말을 섞다 보면 서로 감정이 상하고 말싸움으로 발전하는 경우가 다반사였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아예 말을 안 하고 있습니다.”
“그건 잘못됐어요. 아버지와 말을 안 하면 불효지요.”
“모르겠습니다. 그걸 알지만 말을 하면 더 감정이 악화되니까요.”
“말을 하는데 왜 감정이 악화됩니까?”
“표현방법이 잘못됐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오, 질문자가 아버지한테 감히 주장하고 나서니까 그래요. 아버지가 무슨 이야기를 하면 ‘네, 알았습니다, 아버지. 네, 네’ 이러면 되지요.”
“그런 말씀을 스님 책에서 읽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제가 아직 스님의 경지에 오르지 못해서 그런지 생각처럼 잘 안 되더라고요.”
“질문자는 꿈이 없다더니 꿈이 있네요. 아버지하고 싸워서 이기려는 꿈이 있잖아요.” (청중들 웃음)
“그 꿈을 가지고 살면 될까요?”
“아니오, 그 꿈은 헛된 꿈이니까 버려야 한다는 말입니다. 아버지와의 갈등에는 질문자가 배울 점이 있습니다. 아버지가 완고한 게 질문자는 좋았어요?”
“좋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질문자가 선생님으로서 아이들을 대할 때 완고한 게 좋을까요?”
“안 좋습니다.”
“그런데 질문자는 아이들한테 완고한 편이지요?”
“예.” (청중들 웃음)
“질문자는 아버지가 완고한 것을 싫어하면서도 그대로 하고 있어요. 앞으로도 아버지를 싫어하면서 아버지를 그대로 흉내 내고 살게 될 겁니다. 질문자가 정말 해야 할 일은 아버지와 싸우는 게 아닙니다. 어릴 때 아버지가 완고한 게 싫었다면 ‘나는 학생들이나 내 아이에게 완고하지 않아야 하겠다’ 이렇게 자기를 점검하는 게 필요합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내 인생에 너무 간섭해서 내가 억압을 받았다면 ‘나는 학생들이나 내 아이들에게 절대로 간섭하지 말아야겠다’ 이렇게 배울 수가 있어요. 그런데 질문자는 ‘아버지가 나에게 했던 게 싫었다’면서 아버지가 나에게 했던 그대로 따라 하고 있잖습니까. 아버지가 뭐라고 했을 때 아버지에게 반발하면 할수록 질문자는 아버지의 붕어빵이 될 겁니다.
아버지를 안 닮으려면 아버지를 안 미워해야 해요. 아버지가 완고하다는 사실을 알면서 거기에 대응을 한다는 건 질문자가 더 완고하다는 듯입니다. 그 완고한 영감한테 이기려 드니 얼마나 시건방진 생각입니까?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성격이 저런 줄을 아니까 이제는 기죽지 말고 ‘알겠습니다, 아버지 네, 그렇게 하지요’ 이렇게 말씀드리고 질문자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됩니다. ‘빨리 들어오너라’ 하시면 ‘네, 알겠습니다, 아버지’ 하고 일 다 본 뒤에 늦게 들어가면 됩니다. ‘왜 늦게 들어왔니?’ 하면 ‘아이고, 오늘 좀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하고, ‘내일은 빨리 들어와!’ 하면 ‘알겠습니다.’ 이렇게 대답하고 내일 늦게 들어가면 됩니다. 질문자가 질문자 인생의 주인이니까 구애받을 필요가 없어요. 그러나 부모의 걱정은 질문자가 받아줘야 합니다.
아버지가 나한테 지나치게 간섭해서 내가 어릴 때 참 안 좋았다 본인도 앞으로 아이들한테 간섭하지 마세요. 아버지가 엄마한테 너무 완고하게 하는 게 안 좋았으면 질문자도 결혼하면 아내한테 절대로 그렇게 하지 마세요. 그런데 질문자는 지금 상태로는 그렇게 할 확률이 100%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고치겠습니다.”
“오늘 질문 잘 하셨어요. 고치는 방법은 아버지한테 대들지 않는 것입니다. 아직도 질문자의 마음 속에서 아버지에 대한 거부반응이 일어나는 것은 질문자도 똑같은 업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진짜 아버지 안 닮았나, 닮았나?’ 하는 걸 알 수 있는 건 아버지를 대면했을 때 알 수 있어요. 질문자가 아버지를 만났을 때 자연스러우면 안 닮아져가는 것이고, 아버지를 만났을 때 반발이 생기면 똑같이 닮아간다는 증거입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뭐라 그러든 질문자는 ‘네, 알겠습니다, 아버지’ 이렇게 하세요. 옛날처럼 비굴하게 복종도 하지 말고, 반발도 하지 말고, 그냥 아버지 말씀은 아버지 말씀으로 받아들이되 나는 내 인생을 살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대화 중에 스님이 ‘결국 아버지의 성질을 고치려고 하는 것이 질문자의 꿈이였군요’ 라고 하자 더 큰 웃음이 터져나왔습니다. 아버지의 완고한 고집을 꺽으려는 질문자는 아버지보다 더 완고한 고집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는 말씀이 뒷통수를 한 대 툭 치는 것 같은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우리들도 평소에 그렇게 남을 탓하고만 있지 않았는지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무거운 문제도 가볍게 만드는 스님의 재치 있는 답변에 질문자는 한결 가벼워진 목소리와 밝아진 얼굴로 감사 인사를 했습니다. 청중들도 스님과 질문자가 대화를 나누는 중에 해결책을 찾아가는 것에 시원함을 느꼈는지 큰 박수를 보내주었습니다.
이렇게 모든 질문에 대해 답변을 마치고 나니 벌써 2시간이 훌쩍 지났습니다. 평소와 달리 약속한 2시간 보다 10분 일찍 강연을 마친 스님은 마지막으로 지금이 좋은 줄을 아는 것이 행복에 이르는 길이라고 하면서 청년들을 격려해 주었습니다.
“청년 여러분, 지금 공부하려니 힘들지요?”
“네.”
“취직도 어렵지요?”
“네.”
“연애도 하고 싶은데, 못하지요?”
“네.”
“결혼도 못하고 있지요?”
“네.”
“아이고, 불쌍하네요. 저는 늙어서 연애 안 해도 되고, 결혼 안 해도 되고, 취직 안 해도 되고, 공부 안 해도 되니 참 좋아요. 그런데 누가 여러분한테 ‘공부도 연애도 취직도 결혼도 할 필요 없는 70대 노인 할래? 아니면 연애도 공부도 취직도 결혼도 해야 하는 20대 청년 할래?’ 하고 물으면 어느 걸 할래요?”
“20대 청년이요.”
“그래요, 그러니까 젊은 여러분들은 저보다 지금 좋은 조건에 있다는 겁니다. 늙은 저도 이렇게 웃으면서 사는데 젊은 여러분이 왜 인상 쓰며 살아요? 지금 충분히 좋은데요. 그래도 저보단 나으니까 저 같은 처지를 하라면 안 하잖아요.
연애 고민, 취직 고민, 공부 고민 모두 다 젊은 시절에 할 수 있는 거예요. 늙으면 그런 고민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런 고민 안 할 수 있는 늙은이가 되라면 다 안 한다잖아요. 그런데 저는 늙은 게 좋아요. 그런 거 하기 싫기 때문이에요. (청중들 웃음)
그러니 늙은 사람은 늙은 게 좋아야 하고, 젊은 사람은 젊은 게 좋아야 합니다. 자기 세대와 자신에 대한 긍정성을 가져야 해요. 우리는 몇 살이고 어떤 처지이든 누구나 지금 여기에서 행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지금 여러분들에게 주어진 과제를 힘겹게 생각하지 마세요. 도저히 못 하겠으면 와서 저랑 바꿔요. (청중들 웃음)
나이든 사람의 입장에서는 ‘20대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공부도 하고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하고 취직도 하겠다. 막노동을 해도 그게 낫겠다’ 이렇게 생각한다는 걸 안다면 여러분들은 결코 불행한 세대가 아닙니다. 그러니 다 좋을 때인 줄 알고 행복하게 사세요. 감사합니다.”
스님의 유머가 섞인 따뜻한 격려에 모두들 웃음을 터뜨리며 기쁜 마음으로 감사의 박수를 보냈습니다.
이후 강연장 밖에서는 스님의 책이 구비 되어있는 도서 부스에서 책을 사려는 사람들과 스님의 책에 사인을 받으려는 사람들이 줄을 서 북새통을 이뤘습니다. 특히 스님의 신간 ‘야단법석’은 모두 완판이 되어서 책을 구매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 책 사인회
강연장을 나가는 한 청년은 중국인 유학생의 질문에 대한 답변 중에서 “자신이 좋다고 생각해서 한 선택이 항상 좋지만은 않다. 상황에 따라 좋아질 수도 있고 안 좋아질 수도 있다. 그래서 어느 한 선택만이 꼭 옳은 선택이라 할 수 없다는 말이 참 인상적이었다”며 소감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또 질문을 했던 한 학생은 “질문하기 전에는 매우 답답했는데, 지금은 괜한 것으로 힘들어 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라며 한층 밝아진 얼굴을 보여주었습니다.
책 사인회가 끝나고 강연을 준비했던 서포터즈들과 함께 단체사진 촬영이 있었습니다. 청년들답게 "광주 청년 파이팅!"을 신나고 우렁차게 외쳤습니다.
▲ 오늘 강연을 준비한 청년정토회 광주전라 지부 자원봉사자들
스님이 수고했다고 악수를 건네자 다들 신나서 스님의 손을 잡아보고자 아우성이었습니다. 스님과의 악수 한 번에 너무나 기뻐하는 봉사자들을 보니 서포터즈 역할을 하느라 강연을 자세히 들을 수는 없었지만 누구보다도 주인된 마음으로 강연에 함께한 그 마음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전남대학교를 빠져나온 스님은 곧바로 서울로 향했습니다. 하루 종일 3번의 강연을 연이어 하느라 많이 피곤하셨는지 차 안에서는 깊은 잠에 드셨습니다. 밤새 고속도로를 달려 밤 12시 30분이 되어서 서울 정토회관에 도착해 오늘 일정을 마쳤습니다.
내일은 아침 7시부터 오전 내내 평화재단에서 실무자들과 회의와 미팅을 가진 후 저녁 7시에는 진주 경남정보고등학교 대강당에서 진주 시민들을 위해 ‘통일이야기’를 주제로 즉문즉설 강연을 할 예정입니다.
※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 강연이 전국 52개 도시를 순회하고 있습니다. 우리 동네 강연 일정을 확인한 후 가족, 이웃, 친구와 함께 강연장으로 오세요.
강연은 선착순 무료 입장이며, 질문을 하고 싶은 분들은 강연장에 직접 오셔서 사전 신청을 하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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