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5.11.25 (오후) 목포해양대학교 초청강연


 

안녕하세요. 스님은 오전에 전남지방경찰청 초청 강연에 이어서 오후 3시부터는 목포해양대학교에서 마련한 초청강연에 참석해 대학생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을 해주었습니다. 

 

오후 3시가 되자 목포해양대학교 제2공학관 대강당에는 스님의 강연을 듣고자 많은 학생들이 몰려들어 빈자리 없이 빼곡이 앉아 있었습니다. 자리가 부족해 많은 학생들이 뒤에 서서 강연을 함께 들었습니다. 

 


▲ 목포해양대학교 제2공학관

 

그동안 스님은 외부 초청 강연에 응해 오지 않았는데, 목포해양대학교는 전체 학생이 기숙사 생활을 하다보니 단체 생활을 통해 겪는 어려움이 많다며 간절히 강연 요청을 해와서 광주에 내려온 김에 특별히 시간을 내게 되었습니다. 

 

스님의 소개 영상에 이어 사회자가 스님을 소개했습니다. 400여 명의 학생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로 스님을 반겼습니다. 

 


 

스님은 환한 웃음과 함께 인생은 다섯가지 제약을 제외하고는 자기 좋을 대로 살면 된다고 하면서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인생에는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정답은 없습니다. 자기 좋을 대로 살면 돼요. 그런데 ‘자기 좋을 대로’에는 다섯 가지 제한이 있습니다. 첫째, 태어난 사람은 자기 살고 싶은 대로 살면 되지만 남을 해칠 자유는 없어요. 죽이거나 때리면 안 됩니다. 둘째, 누구나 다 이익을 추구할 자유는 있지만 남에게 손해를 끼칠 자유는 없습니다. 남의 물건을 훔치거나 빼앗으면 안 됩니다. 셋째, 행복을 추구할 자유는 있지만 남을 괴롭힐 자유는 없습니다. 성추행이나 성폭행은 하면 안 돼요. 넷째, 말할 자유는 있지만 말로 남을 괴롭힐 자유는 없어요. 욕설하거나 사기 치거나 거짓말하면 안 돼요. 다섯째, 술 마실 자유는 있지만 술 마시고 취해서 행패부릴 자유는 없습니다. 술 마시고 취해서 남을 괴롭히면 안 돼요. 이 다섯 가지를 제외하고는 사람은 누구나 다 자기 원하는 대로 생활하면 됩니다. 남도 그렇게 사는 것을 간섭하면 안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깨우쳐주는 것과 잘못을 지적해서 야단치는 것을 잘 구분하지 못합니다. 서너 살짜리 어린아이라도 친구의 장난감을 빼앗으면 야단을 쳐야 하는데 그건 내버려두고, 공부를 못하면 야단을 치니까 가치관에 혼란이 생기고 사회가 혼란스러운 거예요. 소위 청소년 학교폭력이라고 하는 게 별 거 없어요. 다른 아이를 때리는 것, 다른 아이의 물건을 빼앗는 것, 성추행하는 것, 욕설하는 것밖에 더 있어요?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 없어요. 너무 남의 눈치 보고 살 필요도 없고 다른 사람 인생에 너무 간섭할 필요도 없습니다. 누구나 다 어떤 사람을 좋아할 권리가 있어요. 어떤 사람이 나를 좋아해서 나도 같이 좋아했는데 그에게는 또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좋아할 권리가 있는 거예요. 그걸 가지고 배신이라고 하면 안 돼요. 그러니 ‘그 동안 나와 재미있게 지내줘서 고맙다. 잘 가라’ 이렇게 말해줘야 합니다. 그걸 못 놓고 끈적끈적하게 붙어서 울고불고 하지 마세요.(학생들 웃음) 

 


 

그리고 내가 상대를 아무리 좋아해도 상대가 싫다고 하면 따라다니지 말고 그만둬야 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건 좋지만, 그렇다고 남을 괴롭힐 자유는 없습니다. 

 

이렇게 인생을 조금 교통정리하면 사는 게 별로 어렵지 않습니다. 산 속의 작은 다람쥐도 잘 사는데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이 힘들어하며 사는 건 사람의 존엄을 해치는 거예요. 그러니 여러분들이 고뇌하는 게 있으면 마음껏 이야기를 하세요. 함께 이야기하면서 조금만 들여다보면 ‘이건 고뇌할 일이 아니구나’, ‘이건 이렇게 하면 해결되겠구나’ 하고 스스로 답을 찾거나 애초에 그게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러면 찌푸렸던 얼굴이 좀 펴질 거예요. 

 


 

이렇게 여러분들이 문제제기하는 내용에 따라 대화를 하는 것이지, 정답은 없습니다. 다 자기 좋을 대로 살면 돼요. 부모님이 나를 20살까지 키워준 것은 고마운 일이니까 감사해야 합니다. 그러나 20살이 넘었으면 독립된 인간이에요. 20살이 넘었는데도 내내 부모 밑에서 시키는 대로 살면 그건 부모의 노예지 자유인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은 다 20살이 넘은 대학생이니까 자유인이에요. 자유롭게 살되, 자기가 선택한 것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합니다. 누구를 원망하거나 미워하는 것은 자기 인생에 대해 책임지는 자세가 아닙니다. 자, 그런 관점을 가지고 대화를 해봅시다.”

 

스님은 서두에서 먼저 인생을 어떻게 살면 좋은지 관점을 명확히 잡아주었습니다. 많은 학생들이 스님이 이야기한 다섯가지 제약에 대해 공감을 하면서도 의문이 드는 점을 서슴없이 손을 들고 질문했습니다. 

 

총 14명이 스님에게 질문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첫 번째 학생은 스무살이 안 된 청소년들이 학교 폭력이나 성폭력 범죄를 일으키면 어떻게 처벌을 해야 된다고 생각하는지 물었고, 두 번째 학생은 내 실력이 남들보다 뒤쳐짐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원하는 꿈이라면 끝까지 쫓아가야 하는지 물었고, 세 번째 학생은 사회에 대해서 배우면 배울수록 무섭다는 생각이 드는데 곧 사회로 진출해야 하는 상황에서 이 두려움을 어떻게 극복하면 좋을지 물었고, 네 번째 학생은 기숙사 생활을 하다보니 서로의 취향과 생각이 달라 갈등하는 경우가 많은데 어떻게 해결해 갈 수 있는지 물었고, 다섯 번째 학생은 대학생활의 즐거움 중에 하나가 연애인데 얼굴이 못 생겨서 아직 여자친구가 없다며 그냥 미래를 위해 공부에 집중할지 그럼에도 연애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할지 물었습니다. 

 


 

여섯 번째 학생은 대화를 하다가 상대가 상처를 받으면 그것은 말하는 사람의 잘못인지 듣는 사람의 잘못인지 물었고, 일곱 번째 학생은 기숙사에서 잠을 자다가 수업에 늦는 경우가 많아서 손해가 심하다며 어떻게 고칠 수 있는지 물었고, 여덟 번째 학생은 착하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살아왔는데 살다보니 착하면 손해보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물었고, 아홉 번째 학생은 다음학기부터 선상 실습을 하게 되면서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데 월급을 받게 되면 자산 관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고, 열 번째 학생은 스님이 생각하는 행복하게 사는 방법은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열한번째 학생은 시력이 안 좋고 잔병치레가 많았음에도 가족들이 제대로 돌봐주지 않은 것 때문에 많이 서운하고 지금도 불편하다며 어떻게 관계를 풀어야 할지 물었고, 열두번째 학생은 휴대폰이나 친구 관계를 모두 끊고 목표에만 올인하는 삶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고, 열세번째 질문자는 지금 다니고 있는 학과가 도저히 적성에 맞지 않아서 자퇴를 하고 새로 대입을 준비할지 망설여진다며 어떻게 해야하는지 물었고, 열네번째 질문자는 스님이 인생의 멘토로 삼고 있는 분이 누구인지 물었습니다. 

 

각각의 질문에 대해 스님은 재치있고 명쾌한 답변을 들려주었습니다. 특히 목표에만 올인하는 삶에 대해 질문한 학생은 얼굴에 화기가 많고 무척 상기되어 있어서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하는 것 같다며 안타까운 마음을 내비치기도 했습니다. 

 

그 중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서로 다른 생각과 기준으로 갈등하는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는지 물었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목포해양대학교 학생들은 기숙사 생활을 하다보니 많은 학생들이 이 답변이 기억에 남는다고 이야기했습니다. 

 


 

“1학년 학생입니다. 기숙사를 비롯해 폐쇄적인 공간에서 단체 생활을 하다보면 사람 관계에서 갈등이 생깁니다. 다들 자기만의 생각과 기준이 있어서 상대방 의도와 달리 서운해지거나 감정의 충돌이 생겨요. 스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상대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자 내가 숙이는 경우도 있는데, 그런 갈등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숙이고 살라고 이야기한 적이 없는데요. (청중 웃음) 아까 이야기했듯이 첫째, 한 방에 있는 사람을 때리지는 마세요. 물건 훔치지 말고, 성추행하지 말고, 욕하지 말고, 취해서 행패 부리지 말고요. 이것 외에는 눈치 볼 필요 없습니다.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면 상대가 불편한 점을 말할 거예요. ‘야, 청소 좀 하자’ 이러면 ‘알았다’ 하고 개선하면 돼요. (청중 웃음) 

 


 

굳이 상대의 비위를 미리 완벽하게 맞추려 들면 내가 피곤해서 못 살아요. 다섯 가지를 제외하고는 그냥 편한 대로 살다 보면 상대가 불편할 경우에 문제제기를 해옵니다. 문제제기하는 내용을 들어보고 저 사람 입장에서는 불편하겠다고 동의가 되면 맞춰주면 됩니다. 나도 불편한 게 있으면 이야기해서 서로 맞춰가고요.

 

그런데 나는 불편하지만 상대가 괜찮다고 하는 경우도 생깁니다. 예컨대 나는 추위를 많이 타서 히터를 좀 틀고 싶은데 상대는 덥다고 하지 말라고 할 수 있어요. 같이 살다 보면 이렇게 작은 걸로 부딪힙니다. 그러면 기숙사에 있는 다른 사람들과 의논해 방을 바꿔서 체질이 비슷한 사람끼리 함께 쓰면 돼요. 이런 길도 하나 있고, 둘이 원하는 온도의 중간으로 온도를 맞추는 방법도 있어요. 나는 약간 춥지만 견딜 만하고, 상대는 약간 덥지만 견딜 만한 겁니다. 추우면 스웨터를 한 장 더 껴입고, 더우면 벗는 식으로 해서 상대에게 내가 맞추는 방법도 있습니다. 여러 가지 길 중 선택해서 하면 됩니다. 

 

이 친구와 서로 너무 좋아해서 헤어지기 싫다면 방 바꾸는 것보다는 내가 스웨터 한 장 더 입고 맞춰주는 게 낫고, 굳이 둘이 한 방을 쓸 이유가 없다면 방을 바꾸면 돼요. 학교 규칙상 바꾸는 게 불가능하면 스웨터를 입고요. 이렇게 조정을 하는 거예요. 

 


 

서로 견해나 취향이 다른 것은 서로 조율을 해야 해요. 그럴 때 내 것만 고집하면 안 됩니다. 제일 쉬운 건 상대에게 맞춰주는 거예요. 내가 그렇게 맞춰주기 어려울 때는 내 의견도 내서 조율을 해야지, 고집하면 안 됩니다. 고집하지 말라는 말은 의견도 내지 말라는 게 아닙니다. 언제든지 의견은 낼 수 있지만, 서로 의견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그럴 때 고집하지 말라는 겁니다. 이렇게 조정해나가면 돼요. 지금 기숙사 방 하나 당 몇 명씩 살아요?”

 

“세 명이요.”

 

“그렇게 함께 살아보는 경험이 굉장히 좋아요. 옛날에는 형제가 보통 다섯에서 일곱쯤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엄마가 사탕을 하나씩 나눠줬는데 막내가 징징거리면서 사탕 더 달라고 하면 엄마는 큰 애 보고 ‘너는 다음에 사 줄게, 내놔’ 이렇게 해서 막내에게 줘버립니다. 엄마는 이렇게 할 수 있어요. 그러나 엄마가 밖에 나가면 큰 애가 바로 막내에게 가서 사탕을 빼앗아버립니다. (청중 웃음) 

 


 

그러면 형제 사이에 질서가 딱 잡혀요. 사회성을 갖추게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자기 요구가 다 관철되지만은 않는다는 사실을 익히게 됩니다. 

 

그런데 지금은 다 아이가 하나 아니면 둘이다 보니 어느 정도 성장할 때까지는 부모하고만 관계를 맺습니다. 자기가 울거나 고집하면 부모가 뭐든지 해주는 게 습관이 되어 있기 때문에 학교에 가면 자꾸 부딪힙니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다들 그렇게 자라서 습관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결혼한 뒤에도 이혼율이 자꾸 높아져요. 조그마한 차이도 못 견디거든요. 

 

기숙사 생활은 그런 면에서 결혼 연습과도 비슷합니다. 얼굴 예쁜 것은 하루 보기에는 좋지만 룸메이트로 함께 사는 데는 별로 도움이 안 돼요. 부잣집 자식이라는 점도 기숙사 생활에는 크게 도움이 안 돼요. 그것보다는 방 청소하기로 한 약속을 잘 지키는지가 훨씬 중요하죠. 결혼 생활은 룸메이트와의 생활과 같습니다. 약속을 지키고 서로 생활을 존중하면서 맞춰나가는 신뢰가 가장 중요합니다. 그래서 특별히 같이 못 살 만한 사유가 없어도 자잘한 것들이 안 맞아서 결국은 갈라서는 경우가 많습니다. 권투 경기에서 잔 펀치를 많이 맞으면 기절하는 것과 같아요. 갈라서는 이유가 뭐냐고 물으면 ‘성격 차이요’라고 대답해요. 몸이 아픈데 병원에 가서 진찰해 봐도 병명이 안 나오면 의사들이 ‘신경성입니다’ 하는 것처럼요. 

 


 

그래서 그걸 연습하는데 룸메이트가 굉장히 좋아요. 특히 까다로운 사람과 살아보면서 맞춰낸다면 앞으로 회사 생활도 잘 할 수 있고 결혼 생활도 잘 할 수 있어요. 그러니 지금 당장 편하게 살려고 하지 말고 좀 멀리 보세요. 서로 맞춰가는 연습을 지금 룸메이트와 한다고 생각하면 쉬워요.”

 

“예, 감사합니다.”

 

질문자는 답변이 마음에 들었는지 활짝 웃었습니다. 그리고 같이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옆에 앉은 친구들도 함께 웃음을 띠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질문에서는 학 남학생이 손을 번쩍 들고 일어나 스님의 행복론에 대해 질문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는지 명쾌한 답변에 모두가 깊이 공감했습니다. 

 


 

“스님이 생각하시는 행복과 행복하게 사는 방법에 대해 여쭙고 싶습니다.”

 

“우리가 말하는 행복은 별 게 아니라 기분이 좋은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내가 원하는 대로 되면 기분이 좋아지고, 원하는 대로 안 되면 기분이 나빠집니다. 그래서 이 기분 좋음의 첫째 조건은 ‘내가 원하는 대로 될 때’예요. 그런데 세상이 내가 원하는 대로 다 될 수가 없기 때문에 기분이 좋았다가 나빴다가 하며 널뛰는 것이 반복됩니다. 

 


 

그래서 이 기분 좋음은 분명 행복의 한 요소이지만, 기분 좋음만이 행복이라고 정의하기는 어렵습니다. 그 기분 좋음은 지속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속되지 않기 때문에 즐거움과 괴로움, 즉 고(苦)와 락(樂)이 반복돼요. 이걸 윤회라고 합니다. 사람이 죽어서 소가 되고 개가 되는 게 윤회가 아닙니다. 즐거움과 괴로움, 기분 좋음과 기분 나쁨이 하루에도 몇 번씩 널뛰기를 하고, 오늘은 좋았다가 다른 날은 나쁘고, 올해는 좋았다가 내년에는 나쁘고, 이생에는 좋았다가 다음 생엔 나빠지는 식으로 반복해서 돌고 도는 것을 윤회한다고 합니다. 

 

윤회의 사슬에서 벗어나려면 이렇게 오가는 진폭이 줄어들어야 합니다. 세상을 살다 보면 기분 좋음과 나쁨 사이의 진폭이 너무 크잖아요. 내가 원하는 대로 됐다고 해서 너무 좋아하면 그게 원인이 되어서 앞으로 괴로울 일이 생깁니다. 애인 생겼다고 좋아하지만 그러다가 헤어지면 엄청난 충격이 됩니다. (청중 웃음) 

 


 

결혼했다고 좋아하지만 결혼해 살다 보면 모든 고민이 결혼 때문에 생기고, 자식을 낳았다고 좋아하지만 나이든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죄다 자식 때문에 머리아파 죽겠다고 해요. 괴로움 속에 즐거움이 있고, 즐거움 속에 괴로움이 있기 때문에 즐겁다고 해서 너무 막 좋아하면 안 돼요. 그 속에 괴로움을 품고 있기 때문에 곧 괴로움으로 바뀌거든요. 

 

원하는 대로 됐다고 너무 좋아하지도 말고, 원하는 대로 안 됐다고 너무 기분 나빠할 필요도 없어요. 원하는 대로 안 된 게 오히려 복일 수도 있어요. 예컨대 비행기표가 취소돼서 공항에서 발만 동동 구르다 돌아왔는데 그 비행기가 사고로 추락했다는 소식을 들었다면 못 탄 게 잘 된 일이잖아요. 세상을 살다 보면 그런 경우가 허다합니다. 길고 짧은 건 대봐야 한다는 말도 있잖아요. 뭐가 뜻대로 안 됐다고 너무 동동거릴 필요가 없어요. 그게 나를 살리는 경우도 굉장히 많아요.

 

그렇기 때문에 너무 좋거나 나쁜 것 사이의 널뛰기를 좀 줄이는 게 행복으로 가는 길이에요. 행복을 정의한다면 즐거움이 지속되는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말하는 행복은 지속될 수가 없어요. 기분 좋음을 행복으로 삼으면 반드시 동전의 양면처럼 기분 나쁨이 같이 붙어 다니기 때문에 윤회고(輪廻苦)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은 좋다고 너무 흥분하지도 말고 나쁘다고 침체하지도 말고, 좋을 때 벌써 그 안에 나쁜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는 걸 알아서 진정을 하고, 나쁠 때 이게 도로 좋은 원인이 된다는 걸 알아서 가라앉지 마세요. 감정을 조절하기가 쉽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 진폭을 조금 줄이면 세상살이가 뜻대로 되든 되지 않든 어느 정도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저는 그게 행복이라고 봅니다.”

 

좋고 나쁨의 진폭을 조금씩 줄여나가는 것이 행복이라는 말씀에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박수로 공감을 표했습니다. 그동안 기분 좋음을 행복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그 기분 좋음은 언제든지 괴로움으로 뒤바뀔 수 있다는 사실에 눈이 번쩍 떠졌습니다. 

 

이렇게 14명의 질문에 대해 모두 답변을 마치고 나니 2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습니다. 언제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게 너무나 즐거운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수업 시간 때문인지 마지막에 일부 학생들이 빠져나가고 들어오기를 반복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다양한 질문들과 풍성한 답변 속에서 학생들은 모두 가벼운 마음이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은 우리들은 지나놓고 나서 그 때가 좋았다고 하면서 늘 후회한다고 하면서 지금 행복한 줄 알아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학생들을 격려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20대에 누릴 수 있는 행복이 많다며 지금 주어진 상황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볼 것을 당부하며 강연을 마쳤습니다.  

 


 

“재미있었어요?”

 

“예.”

 

“청춘이 힘들죠? 공부도 해야 하고, 연애도 해야 하고, 취직도 해야 하고, 결혼도 해야 해요. 늙으면 공부도, 연애도, 취직도, 결혼도 안 해도 됩니다. 그런데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70대 노인하고 이것저것 다 해야 하는 20대 청년 중에 선택하라면 여러분은 뭘 할래요?” (청중 웃음)

 

“20대요.”

 


 

“그것 보세요. 힘들지만 그래도 이게 좋다는 거잖아요. (청중 웃음) 여러분이 생각할 때는 공부하기도 힘들고 연애하기도 힘들고 취직도 힘들지만 제가 볼 때는 그게 다 ‘좋다’는 소리예요. 밥만 먹고 공부만 해도 아무도 잔소리하지 않는 시기는 여러분 때밖에 없어요. 앞으로 사회에 나가서도 밥만 먹고 공부만 하겠다면 가만히 놔두지 않습니다. 그러면 밥만 먹고 공부만 할 수 있었던 시기를 또 그리워합니다. ‘그때 공부 좀 더 할 걸’ 하고요. 

 

초등학교 다닐 때는 중학교 다니는 언니가 부럽고, 중고등학교 때는 대학생들이 부러워요. 대학 가면 취직한 선배가 부럽고, 취직하면 결혼한 선배가 부럽습니다. 결혼해서 아기 키울 때는 아이 다 키워놓고 여유로운 사람들이 또 부러워요. 그러다 40대, 50대가 되면 아이들을 보면서 ‘그래도 너희 때가 좋다’ 이러면서 부러워합니다. 경주에 가 보면 중년 어른들이 고등학교 교복을 입고 모여서 학창 시절을 그리워하며 노는 걸 볼 수 있어요.

 


 

이게 인생을 거꾸로 사는 거예요. 당시에는 죽겠다 하고, 지난 뒤에는 그때가 좋았다고 합니다. 그러니 도(道)는 학교 다닐 때는 학생인 때가 좋은 줄 알고, 직장 다닐 때는 직장 있는 게 좋은 줄 알고, 신혼은 신혼이 좋다는 걸 알고, 미혼이면 미혼일 때가 좋은 줄 알고, 스님이 되면 스님이 좋다는 걸 알고, 늙으면 늙은 게 좋다는 걸 아는 거예요. 

 

제가 낸 책 중에서 ‘인생 수업’ 이라는 책의 원래 제목이 <잘 물든 단풍은 봄꽃보다 아름답다>입니다. 잘 늙으면 청춘 못지않으니 한탄할 필요가 없습니다. 늙으면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공부할 일도, 결혼할 일도, 취직할 일도 없이 한가롭습니다. 그런데 늙은이는 젊은이를 쳐다보며 부러워하고, 청년들은 또 나이든 사람들을 보며 부러워합니다. 이런 걸 경상도 사투리로 ‘디비쫀다’고 해요. (청중 웃음) 

 


 

인생을 거꾸로 산다는 말입니다. 그래도 여러분들은 아까 물어보니 20대 하겠다고 했잖아요. 부부싸움 하는 사람한테 ‘그러면 머리 깎고 스님 될래요?’ 하고 물어보면 ‘아니요!’ 이래요. 스님 되는 것보다는 그렇게 싸우면서 같이 사는 게 낫다는 소리예요. 그러면서 저한테 하소연하면 제가 저보다 나은 사람을 왜 동정하겠어요?

 

이런저런 불평불만을 늘어놓지만 조금만 돌아보면 지금이 좋은 시절이에요. 우리는 지금이 좋은 시절이라는 걸 지난 뒤에야 압니다. 그 시절은 괴롭게 보내고, 지난 뒤에는 또 그 시절이 좋았다 그리워 하고, 그러면서 또 지금 시간은 괴롭게 보내고, 또 지난 뒤에 그때가 좋았다고 합니다. 얼마 전에 여든이 넘은 사회 저명인사를 만났어요. 올해 제 나이를 묻기에 예순 셋이라고 했더니 ‘아이고, 한창 좋을 때네요’ 이래요. (스님 웃음) 

 

저는 이제 은퇴하려는데 저더러 한창 좋을 때라는 거예요. 80살이 되어서 보면 60살이 한창 좋을 나이고, 60살이 보면 40살이 한창 좋을 나이고, 40살이 보면 20살이 한창 좋을 나이입니다. 그래서 인생은 다 한창 좋을 나이입니다. 

 


 

그렇게 자기에게 주어진 조건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여기에 재미를 붙여야 합니다. 지금 여러분들의 고민은 20대만이 할 수 있는 기회이고 고민입니다. 그걸 낭비할 필요가 없어요. 여러분들이 나쁘다고 생각하는 걸 뒤집어놓고 보면 그것마저도 좋은 겁니다. ‘그것마저도 좋다’ 이렇게 자기를 긍정적으로 보고 행복하게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힘차게 용기를 북돋워주는 스님에게 학생들도 큰 박수갈채로 감사의 마음을 표했습니다. 오늘 강연은 행복이란 무엇인지 많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요즘 대학생들이 어떤 고민을 하는지 들어볼 수 있어서 참 유익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강연을 마치고 오후 5시가 넘어서 목포해양대학교를 빠져나왔습니다. 학생들은 환한 웃음과 가벼운 발걸음으로 다시 수업을 들으러 교실로 향했습니다. 

 

저녁 7시부터는 광주 전남대학교에서 청년들을 위한 즉문즉설 강연이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목포에서 광주까지 제 시간에 도착할 수 있을지 불안했습니다. 원래는 저녁을 간단히 먹고 가려고 했는데 시간이 없어 곧장 광주로 내달렸습니다. 다행히 30분 전에 전남대학교에 무사히 도착했습니다. 

 

전남대학교 컨벤셜홀에서 열린 청년들을 위한 즉문즉설 이야기는 다음 편에 계속 이어집니다...

 

※ 법륜 스님과 함께하는 '인도 성지순례' 참가자 접수가 진행 중입니다.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서 인도의 10대 성지를 내 발로 직접 밟아보고 그 감흥을 느껴보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아래 배너에서 직접 신청하실 수 있습니다.

 

전체댓글 49

0/200

조상우

스님 늘 감사합니다 .ㅎ

2015-11-29 18:34:03

최윤주

감사합니다 삶에 힘이되는 글입니다^^지금이 제일좋을때다 ~ 라는말 '현재에 충실하며 살자'라고 학교다닐때 늘되뇌였는데 예전에는 '힘들어도 충실하며 살자 '였다면 스님말씀을 알고나니 '현재를 행복하게 충실하자 ' 행복도 자기안에서 나온다 자기를 잘다스리도록 노력해보겠습니다

2015-11-29 06:56:49

정주

지금 여기 행복한 줄 알고 깨어 있겠습니다

2015-11-28 16:17:15

전체 댓글 보기

스님의하루 최신글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