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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 인천시 평생학습관에서 열린 즉문즉설 강연에 이어서 저녁 7시부터는 강서구민회관에서 서울 시민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이 열렸습니다.
오후 5시 30분에 평화재단을 출발한 스님은 6시 30분에 강서구민회관이 위치한 우장산 기슭에 도착했습니다. 출발 전 병원에 들러 치료를 받았지만 건강이 계속 좋지 않으신지 차 안에서는 내내 쓰러져 주무셨습니다.
▲ 강서구민회관
이번 강연은 양천정토회 산하 강서, 양천, 구로, 영등포 4개의 정토법당에서 110여 명의 봉사자가 함께 모여 준비를 하였습니다. 강연장 앞에서 봉사자들은 안내, 접수, 책 판매, JTS 모금 활동 등 각자의 역할을 분주히 하는 가운데 환한 미소로 강연장을 찾는 시민들을 반겼습니다.
▲ 양천정토회 자원봉사자들
스님은 강연 전 내빈실에서 노현송 강서구청장과 상해 총영사를 지냈던 구상찬 전 국회의원님과 최근 일어나고 있는 정국 현안에 대해 잠시 환담을 나눈 후 새책 ‘야단법석’을 사인해서 선물한 후 강연장으로 들어왔습니다.
▲ 노현송 강서구청장과 상해 총영사를 지냈던 구상찬 전 국회의원님
강서구민회관에는 1100여 명 이상의 청중들이 몰리는 바람에 2층까지 좌석을 다 채우고도 사람이 넘쳐나 어쩔 수 없이 일부는 돌아가고 많은 분들이 뒤쪽에 서서 강연을 들었습니다. 노현송 강서구청장의 인사말씀에 이어 스님 소개 영상이 끝나고 드디어 법륜 스님이 가벼운 발걸음으로 등장했습니다.
▲ 객석을 가득 메운 청중들
청중들은 일제히 환호하며 박수를 치며 스님을 맞았습니다. 스님은 “저녁식사는 하셨어요?”라고 인사말을 가볍게 던진 후 “뒤에 서 계시는 분들이 많으시네요. 죄송합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지요. 저도 서 있는데요”라며 청중들을 웃게 한 뒤 서있는 청중을 앞으로 오게 와서 바닥에라도 앉게 하여 편안하고 유쾌한 분위기를 만든 후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즉문즉설이란 부처님을 이야기한 다음에 그걸 중생에게 적용하는 게 아니라 그와 정반대로 우리 이야기, 즉 중생의 이야기를 먼저 한 다음에 부처의 세계로 올라가는 방식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살아가면서 고뇌하는 게 곧 부처의 세계로 통합니다. 이것을 불교에서는 ‘번뇌즉보리(煩惱卽菩提)’라고 말합니다. ‘번뇌’라는 것은 우리들의 고뇌이고, ‘보리’라는 것은 깨달음을 뜻합니다. ‘번뇌에서부터 깨달음의 길이 열린다’는 이야기입니다. ‘예토즉정토(穢土卽淨土)’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러니 본인의 의문이나 괴로움에 대해서 망설이지 말고 편안하게 무엇이든 서슴없이 이야기하시기 바랍니다.”
스님이 시작을 알리자 총 6명의 질문자가 차례로 질문을 하였습니다. 첫 번째 질문자는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마음으로 진짜 이해하는 것의 차이는 무엇인지 궁금하다고 물었고, 두 번째 질문자는 직장생활하면서 상사 때문에 욱하고 화날 때가 많은데 참는 것이 능사인지 물었고, 세 번째 질문자는 자신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면 자신감이 부족한 것 같다면서 어려서부터 닥치지도 않는 일에 대한 불안이 많았는데 어떻게 하면 스스로에 대한 불신을 떨치고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해서 물었습니다.
네 번째 질문자는 주부인데 2가지 질문을 하였습니다. 첫째 질문은 최근에 아버지 같은 오빠를 잃었는데 그것이 요즘 제일 괴롭고 둘째 질문은 두 번째 질문자가 상사와의 관계가 괴롭다고 했는데 그것이 부부관계에도 적용될 수 있는지 궁금하다면서 자신과 성격이 맞지 않는 남편 때문에 괴롭다고 질문을 하였고, 다섯 번째 질문자는 미혼 여성인데 처음에는 적극적이었던 8세 연하 남친이 점차 자신을 멀리하는 것 같아서 그 마음을 알 수 없어서 괴롭고 답답하다고 질문을 하였고, 여섯 번째 질문자는 40대 주부인데 예민해서 잠이 잘 안 오고 자다가도 자주 깨니 건강도 상하는 것 같은데 어떻게 하면 잡념과 잡생각을 떨치고 편안하게 살 수 있을지를 질문하였습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 자기에게 기분을 맞춰줄 것을 강요하는 직장 상사 때문에 화날 때가 많은데 참는 것이 능사인지 질문하였던 남성분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저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욱’ 하고 화나는 일이 많습니다. 참을수록 화는 더 쌓이는데, 꼭 참는 것만이 화를 다스리고 직장생활을 잘하는 것인지가 궁금합니다.”
“질문을 들어보니 이미 답을 정해놓고 묻고 있어요. 질문자는 지금 ‘참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라는 결론에 도달했지요?”
“네.”
“그런데 왜 저한테 물어요?”
“직장은 계속 다녀야 되니까요.”
“직장에 안 다니면 되잖아요. (청중 웃음) 미우면 직장을 그만두면 됩니다. 마음에 안 들면 ‘안녕히 계십시오’하고 나오라고 스님이 늘 이야기하잖아요.
그런데 ‘안녕히 계십시오’라고 할 상황이 안 되면 그 상황을 수용해야 합니다. ‘사람은 좋은데 술을 먹고 가끔 주정을 해서 못 살겠다’ 이렇게 상담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주정하는 사람이 정말 싫으면 저한테 묻기 전에 알아서 헤어졌겠지요. 다른 건 다 좋은데 주정하는 것만 싫으니 어떻게 해야 되느냐고 묻는 거예요.
그러니까 질문자가 결정을 해야 해요. 사람들은 대개 ‘고쳐가지고 살겠다’, ‘이것만 고치면 살겠다’고 미련을 갖는데 그건 불가능하거나 아주 어렵습니다. 사람이 자기 천성을 고치면 그걸 ‘기적’이라고 부를 정도예요. 고치는 걸 전제로 하면 죽을 때까지 거기에 매달려서 전전긍긍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니까 안 고쳐진다는 걸 미리 알아야 합니다. 고쳐서 살겠다, 혹은 고치면 살겠다는 건 그냥 질문자의 바람이에요. 안 고쳐진다고 딱 전제했을 때 ‘못 살겠다’ 싶으면 빨리 ‘안녕히 계십시오’ 하고, ‘안 고쳐진다’고 전제해도 아직 다른 게 좋은 게 많아서 ‘이건 손실이지만 좋은 게 많다’ 싶으면 수용해야지요. 이것도 저것도 다 내 뜻대로 되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러나 세상살이가 안 그래요. 이것이 좋으면 저것은 문제가 있는 법입니다. 내 마음에 드는 이것을 받아들이면 마음에 안 드는 저것까지도 수용을 해야 됩니다.
‘주정은 마음에 안 들지만 그래도 같이 살겠다’고 결론을 냈다면 이왕 사는 거 괴롭게 사는 게 좋아요? 행복하게 사는 게 좋아요?”
“행복하게 사는 게 좋겠지요.”
“행복하게 살려면 술 마시는 걸 그냥 수용해야 합니다. 수용해 버리면 오히려 상대가 술을 마셔도 안 괴롭거든요. 술을 마시는 게 좋다는 게 아니라, 어차피 같이 살기로 결정을 했으면 술 마시는 걸 수용하라는 겁니다. 이걸 잘못 듣고 ‘스님은 자꾸 술 마시는 걸 놔두라고 하냐’ 이렇게 이해하시면 안 됩니다. 그걸 안 놔두겠다면 매일 싸워야 해요. 어차피 같이 살 거면 싸우면서 사는 것보다 안 싸우고 사는 게 낫잖아요. 질문자는 회사에서 누구 때문에 화가 나요? 회사 때문에 화가 나요? 동료나 상사 때문에 화가 나요?”
“상사 때문입니다.”
“상사를 쫓아낼 방법이 있어요?” (청중 웃음)
“아니요. 없습니다.”
“그러면 질문자가 회사를 나오면 되겠네요. 나오는 건 질문자가 결정할 수 있잖아요. 그게 ‘안녕히 계십시오’라는 겁니다. 그건 언제든지 쓸 수 있는 전략이기 때문에 굉장히 중요한 전략이자 최후의 전략입니다. 36가지 전략 중에 온갖 것을 다 해봐도 안 될 때 마지막으로 쓸 수 있는 전략이기 때문에 그 카드를 미리 꺼낼 필요가 없어요. 그러니 질문자는 가장 먼저 ‘수용하는 전략’을 써봐야 해요. 그 상사가 밉다고 회사를 그만 둘래요? 아니면 그래도 다닐래요?”
“다니겠습니다.” (청중 웃음)
“회사를 다니는 데는 세 가지 길이 있습니다. 그 상사를 쫓아내는 방법이 있고, 그 상사를 바꾸는 방법이 있고, 그 상사를 수용하는 방법이 있어요. 첫째, 질문자가 그 상사를 쫓아낼 수 있어요? 없어요?”
“없습니다.”
“둘째, 질문자가 그 상사를 바꿀 능력이 돼요? 안돼요?”
“안 됩니다.”
“그러면 수용하는 방법밖에 없어요. (청중 웃음) ‘스님은 뭐든지 다 수용하라고 가르친다’ 이렇게 생각하면 안 돼요. 제가 현실을 모르고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닙니다. 회사를 그만두는 길도 있고 상사를 내보내거나 바꾸거나 수용하는 길도 있어요. 지금 질문자가 회사를 그만두는 길은 선택하지 않겠다고 했으니까 그 다음으로 상사를 내보내거나 바꿔보라고 했는데 그것도 안 되겠다고 했잖아요. 그러니 남은 길이 수용하는 길뿐이에요.
질문자도 생각해보세요. 본인이 상사를 내보내거나 바꾸지 못 한다는 걸 알면서도 상사를 내보내거나 바꾸려는 생각을 계속 하고 있어요. 회사를 그만두지도 못 하면서 계속 그만두려는 생각을 하잖아요. 그러니 본인만 피곤한 겁니다. 그 상사가 뭐가 문제예요?”
“말씀드리기 곤란합니다.”
“말해도 관계없어요. 질문자가 그 상사에 대해서 뭐라고 말해도 그건 ‘그 상사가 나쁘다’는 뜻이 아니라 ‘질문자하고 어떤 점이 안 맞는다’는 뜻이니까요.”
“모든 게 다 안 맞습니다.” (청중 웃음)
“그 사람과 모든 게 다 안 맞다는 건 질문자 본인이 문제라는 이야기입니다. (청중 웃음) 특별히 안 맞는 건 뭐예요?”
“기분을 못 맞추겠습니다. 저에게 자기 기분을 맞춰줬으면 하고 바랍니다.”
“상사가 바라든지 말든지 내가 안 맞추면 되잖아요. 지금 질문자는 기 싸움에서 지고 있네요. 상사의 기분을 질문자가 맞춰줘야 할 이유가 없어요. 상대가 화를 내고, 짜증을 낼 때 질문자는 오히려 빙긋이 웃어야 해요. 그러면 그 사람이 질문자 때문에 나갈 거예요. (청중 박장대소)
그 사람이 뭐라고 하면 질문자가 죽을만치 괴로워하니까 결국은 질문자가 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상사가 화를 내면 질문자는 ‘화를 낼 일이 있나 보다. 오늘 집에서 마누라랑 싸웠나?’ 이렇게 생각하고, 그 사람이 웃으면 ‘뭐 좋은 일이 있나? 어젯밤에 애인 만났나?’ 이렇게 생각하세요. 그냥 ‘그 사람의 성질이 그렇구나’ 이렇게만 받아들이라는 겁니다. 그 사람이 질문자한테 화를 내도 ‘좋다’, ‘나쁘다’를 따지지 말고 ‘오, 화가 나셨네. 오늘은 기분이 안 좋으신가 보다’ 이렇게 받아들이세요. 그 사람이 ‘이리 가져와라’ 그러면 가져오고, ‘가져가라’ 하면 다시 가져가고, 갖고 가는데 ‘다시 가져와라’ 그러면 또 다시 가져오면 됩니다. 그런데 지금 질문자는 ‘왜 가라 그랬다가 오라 그랬다가 변덕을 부리나’라고 생각하니까 피곤한 겁니다. 그냥 ‘가라’고 하면 ‘네’ 하고 가고, ‘오라’고 하면 ‘네’ 하고 오면 됩니다. 이렇게 하면 그 사람이 자기 성질을 못 견디고 그 사람이 오히려 제게 상담을 하러 올 겁니다. (청중 박장대소)
‘밑에 들어온 직원이 마음에 안 들어서 도저히 못 살겠다’ 하고 상담하면 제가 ‘안녕히 계십시오’ 하고 나오라고 조언해줄게요. (청중 웃음)
질문자는 지금 기에서 밀려서 그러는 거예요. 그건 윗사람이니 아랫사람이니 하는 것과 아무 관계가 없어요. 그러니 거기에 말려들지 말고, 그냥 ‘아, 성격이 저러시구나. 오늘 기분이 좀 저러시구나’ 이렇게 이해하면 됩니다.
오늘 가서 한번 연습해 보세요. 그렇게 이해를 하면 내가 답답하지 않고, 입가에 미소가 빙긋이 번지게 됩니다. ‘오늘은 또 무슨 일로 기분이 나쁘신 걸까?’ 하면서요. ‘이 분은 감정기복이 심한 분이구나’ 하고 알고, 그냥 연구를 한번 해 보세요. 그러면 ‘이 분의 성향은 이렇구나. 이 분이 나빠서가 아니라 기본 까르마가 이렇게 형성되어서 기분파가 되었구나. 그래서 기분이 좋았다가 나빴다가 하면서 널을 뛰는 거구나’ 이렇게 이해를 하게 돼요. 사람이 원래 그렇게 생겨서 그 사람도 자기를 어떻게 못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냥 이해하고 받아들이면 됩니다. 그러면 그 사람이 아니라 질문자한테 좋아요. 절에 다녀요? 교회 다녀요?”
“교회 다닙니다.”
“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정신이 십자가 정신입니다. 모든 교회에 예수님이 매달린 십자가를 걸어놓는 것은 그걸 보고 크리스천으로서 삶의 기준을 삼으라는 겁니다. 질문자가 크리스천이라면 십자가 정신을 가져야 합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았어요. 재판정에서 ‘혹세무민한다’고 하여 사형판결을 내리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아 사형을 집행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신을 비난하고, 자기를 십자가에 매단 사람들을 향해 ‘주여, 저들을 용서하소서’라고 하셨어요. 우리 같으면 그런 마음을 못 내요. 평상시에 용서 잘 하더라도 자기를 죽이려는 사람들에게는 ‘주여, 다른 건 몰라도 저 두 놈은 지옥에 확 처넣어 주십시오’라고 할 거예요. 감정으로 하면 그렇게 할 텐데, 예수님은 그 감정을 뛰어넘으셨던 겁니다. 그러니까 성인이시지요.
그런데 그 두 사람은 그냥 사형집행인이었습니다. 아침 먹고 나와서 하는 일이 판결 받은 사람을 십자가에 매다는 거예요. 자기들이 십자가에 매단 사람이 살았는지 죽었는지 확인하려고 창으로 찔러보기도 하지요. 매단 사람이 죽었으면 십자가에서 내린 뒤 거기에 다른 사람을 또 매달고요. 그 두 사람은 아침마다 출근해서 하는 일이 그런 일이었기 때문에 자기들이 뭘 잘못했는지 모릅니다. 그런 사람들을 두고 감정에 휩싸이면 내가 그 사람들을 미워하게 되는데, 예수님은 감정에 휩싸이지 않았기 때문에 ‘주여, 저들을 용서하소서. 저들은 자기 지은 죄를 모르옵니다’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십자가에 자신을 매단 사람들에 대한 이해가 있었기 때문에 미움이 없었던 겁니다. 그들의 행위가 옳은지 그른지를 떠나서, 그들이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이해하셨기 때문에 미워하지 않으셨던 거예요. 이것을 사랑이라고 합니다. 우리 같으면 증오할 텐데, 예수님은 증오하거나 미워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 이전의 하나님은 징벌의 하나님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을 안 들었다고 유황불로 지져버리고, 소금 기둥으로 만들어버렸다는 게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이야기잖습니까. 그런데 예수님 이후의 하나님은 징벌의 하나님이 아니라 용서의 하나님입니다. 우리가 잘못한다고 벌을 주는 하나님이 아니라 다 용서해주는 하나님입니다. 용서를 해 주시니까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어요.
그런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크리스천인데, 크리스천들이 저한테 와서 ‘예수 천당, 불신 지옥’ 이러면서 ‘네가 아무리 좋은 일하고 돌아다녀도 하나님 안 믿으면 지옥 간다’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도 용서해 주시는데, 제가 뭘 잘못했다고 용서를 안 해 주시겠어요? (청중 웃음)
그 사람이 말하는 하나님은 예수님 이전 유대교의 하나님입니다. 즉 구약의 하나님, 징벌하는 하나님입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은 크리스천이 아니에요. 그 사람이 무슨 말을 해도 제가 끄떡도 안 하는 이유는 저와 종교가 달라서가 아니라, 크리스천이 아닌 사람이 크리스천 흉내를 내는 게 우습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제가 빙긋이 웃을 수밖에요.
질문자가 크리스천이라면 십자가 정신을 살려야 해요. 질문자가 예수님을 털끝만큼이라도 따라가려면 상사가 질문자의 목을 쳐도 ‘주여, 저 사람을 용서하소서’ 이래야 합니다. 상사가 가끔 짜증 좀 냈다고 해서 ‘저 인간 팍 지옥에 처넣어버릴까?’라고 생각한다면 질문자는 교회를 다닐 필요가 없으니 개종을 하세요. (청중 박장대소)
그러니 그 분을 이해해야 합니다. 이해를 안 하면 결국 질문자가 손해예요. 본인이 괴로워지는 거예요. 어차피 회사를 그만두지도 못할 처지이고, 그럴 용기도 없고, 상사를 쫓아내거나 고칠 능력도 없잖아요. 질문자의 처지에서는 용서해 주는 길밖에 없어요. 질문자의 처지가 형편없기 때문이 아니라, 질문자가 크리스천이기 때문이라고 스스로를 긍정적으로 생각하세요. ‘나는 뭐도 못하고 뭐도 못하니까 할 수 없이 용서해 줘야겠다’가 아니라 ‘나는 크리스천이니까 그를 이해하고 용서해야지’ 이렇게 적극적인 태도를 가지세요. 그래서 상사가 화낼 때마다 ‘아이고, 화나셨구나. 저분이 나빠서가 아니라 타고난 성질이, 직위가 저러니까 어떡하겠어?’ 이렇게 생각하고 빙긋이 웃으세요.
그게 잘 안 되면 십자가 붙들고 계속 기도하세요. ‘주여! 주님은 당신을 죽이는 사람도 용서하고 사랑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저는 제게 화내는 사람 하나도 용서 못하고, 사랑도 못해서 오늘 또 성질내고 짜증냈습니다. 크리스천으로서 정말 부끄럽습니다. 오늘은 이 수준밖에 안 되지만 내일은 제가 주님의 제자답게 다시 한 번 도전해 보겠습니다.’
이렇게 해 보고, 안 되면 또 하고, 안 되면 또 하면 됩니다. 안 된다고 드러누워서 울면 안 돼요. 그렇게 해 보세요.”
“감사합니다.”
질문자는 환하게 웃으며 스님에게 감사 인사를 했습니다. 스님은 자기를 죽인 자조차 용서하는 예수님의 사랑에 대해 설명하면서 그 마음을 화 좀 내는 직장 상사에게 적용하면 아무 문제될 것이 없다고 명쾌하게 답변하였습니다. 종교를 초월하여 타인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강조한 스님의 답변에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였고 질문자의 환해진 얼굴을 보면서 함께 감동받은 청중들도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
마지막으로 강연을 마치면서 스님은 다음과 같이 닫는 말씀을 하였습니다. 우리는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려고 하다보니 그 의미에 갇혀서 괴로움을 자초할 때가 많다고 하면서 살아있는 모든 사람은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재미있었어요? 사는 게 별 거 아니에요. 우리는 울고불고 난리지만 그렇게까지 살 만한 가치가 없습니다. 인생에는 특별한 의미가 없습니다. 의미는 내가 만들어서 부여하는 거예요. 기독교인들은 ‘하나님, 예수님, 천당’ 이런 의미를 부여하고 불교신자들은 ‘깨달음, 극락’ 이런 의미를 부여하는 것처럼, 우리가 의미를 부여하고 그 의미에 매달려서 사는 겁니다. 마치 누에고치가 자기 입에서 낸 실로 고치를 만들어놓고 그 속에 갇혀가지고 ‘죽네, 사네’ 하듯이, 우리는 자기 생각으로 일으켜서 만든 상(想)에 갇혀서 스스로 속박 받고 살아요. 그러나 고치를 뚫고 나오면 나비가 되어 날아가는 것처럼, 이 상을 깨고 나가면 이 세상은 자유로운 세상입니다.
토끼도 살고 다람쥐도 사는 세상인데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은 토끼나 다람쥐보다는 더 재미있게, 더 잘 살아야 되지 않겠어요? 그런데 다람쥐보다 재미있게 사는 사람이 드물어요. 얼마나 사는 게 괴로우면 날아가는 새를 보고 ‘아이고, 너는 좋겠다. 훨훨 날아가서’ 이러고, 다람쥐를 보고 ‘아이고, 너는 좋겠다. 근심, 걱정이 없어서’ 이러고 부러워하겠어요? 그렇게 동물을 좋아하면 다음 생에 동물로 태어난다고 합니다. 내가 아무리 못 살아도 새보다는 낫고, 다람쥐보다는 나아야 돼요. 그런데 우리는 스스로 일으킨 한 생각에 사로잡혀서, 그 환상 속에 묶여서 고통 받고 삽니다.
과거는 아무 상관없어요. 그건 다 지나간 일이에요. 제일 중요한 건 지금 살아있다는 점입니다. 아시겠어요? 내가 사생아로 태어났든, 고아로 자랐든, 남편과 사별했든 어쨌든 지금 내가 살아있다는 게 중요합니다. 그리고 살아있는 인간은 행복할 권리가 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행복할 수가 있다는 뜻이에요. 그러니까 그 행복을, 내 권리를 찾는 게 중요해요. 자꾸 지난 이야기하면서 ‘내가 태어날 때 어땠고, 아버지가 어땠고, 남편이 어땠고, 부모가 어땠고’ 이러면서 자기 괴로움을 합리화하지 마세요.
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제가 몇 번씩 이야기해줘도 자꾸 괴로워하면 ‘그래, 괴로워해라. 자기가 괴롭고 싶다는 데 뭐 어떡할 거야?’라고 이야기할 때도 있지만, 우리는 누구나 다 긍정적 사고를 가지면 행복할 수가 있습니다. 이 점을 명심해서 모두들 행복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한마디 한마디 주옥같은 말씀에 감동을 받은 청중들의 뜨거운 박수가 이어졌습니다.
강연을 마치니 어느덧 2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습니다. 스님은 평소보다 30분 일찍 강연을 마쳤음에도 많은 시민들이 스님의 책 사인을 받고자 북새통을 이루는 바람에 사인회는 30분 이상 계속되었습니다.
▲ 책 사인회
조용히 미소 지으며 사인 받는 분이 있는가 하면 어떻게든 스님에게 말 한번 붙여보려고 이런 저런 질문을 하는 분도 있었습니다. 아이들을 함께 데리고 온 가족도 많았습니다. 모두 활짝 웃으며 행복한 모습이었습니다.
생각과 마음의 차이를 질문하였던 첫 번째 질문자에게 스님의 말씀을 듣고 어땠는지 소감을 물어보니 “평소 궁금했던 것이 풀렸고 유튜브로 즉문즉설 영상도 많이 보았지만 직접 질문하니 속이 더 편안하고 후련하고, 직접 온 보람도 느껴진다.”라고 답해주셨습니다. 이 분은 한결 편안해진 표정으로 스님에게 책 사인도 받았습니다.
사인회를 마치고 스님은 양천정토회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환한 미소로 사진 촬영을 하였습니다. 자원봉사자 수가 너무 많아서 사진에서 잘리지 않으려고 봉사자들 모두가 스님을 중심에 두고 가운데로 마구 몰려들었습니다.
▲ 오늘 강연을 준비한 양천정토회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봉사자들은 뭐가 그리 좋은지 연신 웃음꽃을 터뜨리면서 강연장을 나가는 스님에게 마지막까지 악수라도 한번 더 해보려고 안간 힘을 쓰는 모습이었습니다.
스님이 떠난 뒤 봉사자들은 끝까지 남아 뒷마무리를 깔끔하게 하고 행사를 잘 마무리 하였습니다. 오늘은 즉문즉설을 들었던 청중과 자원봉사자들이 스님을 직접 뵌 감동과 함께 행복이라는 선물도 가득 가져갈 수 있었던 날인 것 같습니다.
▲ 강연장 뒷정리를 하는 봉사자들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있는 스님
강서구민회관을 빠져나온 스님은 서울 정토회관에 밤 10시가 다 되어 도착했습니다. 집무실에서 원고 교정 업무와 보고서를 체크하며 늦은 시간까지 업무를 보다가 오늘 일정을 마쳤습니다.
내일은 하루 종일 새책 원고 집필 업무를 보다가 저녁 7시부터는 원주 치악예술관 공연장에서 원주 시민들을 위해 ‘즉문즉설과 통일이야기’를 주제로 강연을 할 예정입니다.
※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 강연이 전국 52개 도시를 순회하고 있습니다. 우리 동네 강연 일정을 확인한 후 가족, 이웃, 친구와 함께 강연장으로 오세요.
강연은 선착순 무료 입장이며, 질문을 하고 싶은 분들은 강연장에 직접 오셔서 사전 신청을 하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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