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5.9.5 고향 마을 석문암 초청법회


 

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고향 마을인 울주군에 위치한 석문암 초청법회에 참석해 고향 사람들을 위해 법문을 했습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예불과 천일결사 정진을 하며 하루를 시작한 스님은 아직 해가 뜨지 않아 어둑어둑한 5시부터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농사일을 시작했습니다. 

 


 

여름 한철 명상수련과 동북아 역사기행을 다녀오느라 텃밭을 방치해 두었더니 풀이 무성하게 자라 있었습니다. 어제는 나무를 쳐내고 풀을 베어냈다면 오늘은 삽으로 땅을 고르고 가을 국화와 배추, 무를 새로 심었습니다. 

 


 

땅을 고르는 작업은 바닥이 단단해서 힘이 많이 들어갔는데 스님은 땀을 뻘뻘 흘리며 삽질을 했습니다. 동트기 전 새벽부터 부지런히 일하다가 잠깐 쉬면서 아침 공양은 텃밭에서 딴 가지와 호박으로 반찬을 해서 드신 후 다시 마당으로 나와 일을 시작했습니다.

 


 


 

스님은 땅을 파고 가을 국화를 심고 다시 땅을 북돋워주는 동작 하나 하나에 온 정성을 기울였습니다. 잘 심어진 국화를 보면서는 “예쁘지?” 하면서 함박 웃음을 머금었습니다. 시간이 어떻게 가는 줄도 모르고 일을 하고 있는데 법회 시간이 다 되었다고 연락이 계속 와서 급히 법복과 가사를 수하고 석문암으로 향했습니다. 

 


▲ 석문암

 

석문암은 스님이 졸업한 두북 초등학교 뒤편의 나지막한 산 아래에 자리잡은 작은 암자입니다. 스님의 고향 마을 어르신들이 다니는 사찰인데 오래전부터 스님을 초청하여 법회를 열고 싶다는 요청이 있었으나 들어주지 못했는데 오늘에서야 법회가 열리게 되었습니다.  

 

법회 시간 보다 30분 일찍 석문암에 도착한 스님은 석문암 주지 스님을 비롯해 신도회 분들, 두북초등학교 동기 분들 등과 반갑게 인사를 나눈 후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었습니다. 특히 스님은 이곳 주위에 산들이 많이 있는데 모두 다 올라가보았는지 물어보면서 어릴적 추억들을 얘기했는데 모두들 옛날 생각에 환한 웃음을 띠었습니다. 

 


 

오전 10시가 되자 석문암 신도회장님의 인사말씀과 함께 법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오늘 법회는 그야말로 ‘야단법석’이 되었습니다. 암자가 작아서 많은 대중이 들어갈 수가 없어 법당 마당에서 법회가 열린 것입니다. 좁은 마당에 250여명이 참석하여 발디딜 틈 없이 빼곡이 자리를 메웠습니다. 

 


▲ 석문암 법륜 스님 초청법회

 

먼저 스님은 고향 사람들을 위해 법회를 하게 되니 느껴지는 소회를 말하면서 법문을 시작했습니다. 

 

“고향에 와서 여러분들을 뵈니까 편안하기도 하고 약간 부담스럽기도 해요. 왜냐하면 여기 계신 어르신들 중에는 제 친구 부모님들도 많이 계세요. 또 두북 초등학교 선배님들도 많이 계시고요. 또 제 초등학교 동기들도 많이 왔어요. 저희 누님도 오셨어요. 또 조금 젊으신 분들은 대부분 후배 되시는 분들이고요. 스님과 불교 신자로서의 만남이라기 보다는 동네 어르신들, 선배님들, 친구들, 후배들을 만나서 같이 얘기 나누는 시간이 되지 않겠나 싶어요. 

 


 

제가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이곳 석문암에 소풍을 많이 왔는데 올해로부터 꼭 55년 전부터 다녔던 곳이에요. 여러분들은 여기 사니까 여기가 좋은 줄 모르시는데 자세히 둘러보시면 참 좋은 곳이예요. 저도 나이가 드니까 회귀본능이 생기는지 자꾸 고향이 좋아져요. 저는 젊었을 때부터 전세계로 늘 다녔기 때문에 한국에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별로 없었어요. 그런데 최근 몇 년 전부터는 한국에 오면 여기가 제일 좋은 것 같아요. 나이가 들수록 고향 쪽으로 자꾸 오게 되요. 

 


 

이곳은 특히 물이 굉장히 맑습니다. 냇가에 흐르는 물도 그렇고 우물도 그렇고 바닥이 다 보일 정도입니다. 경주만 가도 우물 바닥이 잘 안 보이거든요. 이렇게 물이 맑은 곳이 많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이 대부분 건강한 이유가 첫째 물이 좋아서인 것 같아요. 둘째는 공기가 맑아서 그런 것 같아요. 그래서 도시로 나가서 사는 것도 좋지만 고향을 아끼고 사랑하는 것도 아주 중요합니다. 자, 그러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무엇이든지 같이 대화를 나눠보면 좋겠습니다.” 

 

법회를 들으러 오신 분들이 모두 고향 선배님들과 친구들이여 약간의 부담이 느껴진다고 솔직한 마음을 표현하자 청중들도 공감을 하며 웃음을 보였습니다. 

 


 

질문하고 싶은 사람은 손을 들어라고 하자 모두들 머뭇거렸습니다. 그래서 스님이 “동네가 좁아 소문날까 싶어서 질문을 못하겠어요?”라고 하면서 웃자, 그제서야 청중들도 웃음을 띠며 여기저기서 질문을 했습니다.  

 


 

총 6명이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한 남성분은 보통 스님들은 통가사를 많이 하는데 스님은 반가사를 주로 하고 계신 이유가 무엇인지 물었고, 한 여성분은 그동안 이뭐꼬를 화두 삼아서 참선 수행을 해오다가 최근에는 새로 비파사나 명상법을 배웠는데 그 방법을 자세히 알고 싶다고 물었고, 한 거사님은 스님이 자신의 고향 선배라는 사실을 영광스럽게 생각한다고 하면서 15년을 목표로 매주 토요일마다 철야기도를 해오고 있는데 올해 12년이 되었고 앞으로 회향을 하게 되더라도 계속 기도를 해야 하는지 물었고, 또 다른 거사님은 스님과 같은 고향 출신인데 스님은 고향에 올 때마다 특별한 감흥을 느끼는 것이 있는지 물었고, 마지막으로 한 거사님은 치술령 자락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어떤 생각으로 그림을 그리면 좋을지 물었습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 언니가 항암 치료를 받고 있는데 아무것도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는 것 같아 답답한 마음이 든다는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언니가 항암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동생인 제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이 너무 답답하고 힘이 듭니다.”

 


 

질문자는 울먹이면서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스님은 이렇게 답해주었습니다. 

 

“동생인 자기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것이 아니고, 자식도 해줄 수 없고, 남편도 해줄 수 없고, 부모도 해줄 수가 없어요. 남의 인생을 위해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인생 살이에서 두 가지 착각을 하고 있어요. 첫째, 남이 원하는 것을 내가 다 해줄 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남이 원하는 것을 내가 다 해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다 해줄 수 없는 것을 다 해줄 수 있다고 착각을 하면 내가 못해준 것에 대해 자꾸 죄책감을 느끼게 돼요. 

 


 

스님이 된 사람 중에 이런 사람이 많아요. 스님이 되면 부모님이 자꾸 장가가라고 얘기하겠죠. 이 때 ‘부모 마음도 하나 편안하게 해주지 못하면서 무슨 중생을 구제하느냐’고 고리를 걸면서 덤빕니다. 이럴 때 대부분 속아 넘어갑니다. 법을 아는 사람은 ‘어차피 내가 세상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다 못해준다’는 사실을 압니다. 그러니 못해 주는 것으로 죄책감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인생은 늘 이것과 저것 사이에 선택을 해야될 때가 있는데 그 선택에 따른 책임만 질 줄 알면 됩니다. 

 

제가 제자들을 두고 있으니 가끔 부모들이 절에 찾아와서 주로 하는 얘기가 “절에서 나와라. 안 나오면 내가 죽겠다. 내 죽는 꼬라지 볼래?”입니다. 이렇게 걸면 대부분 넘어갑니다. 그러나 그렇게 부모가 죽겠다고 해도 출가한 사람은 집으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설사 부모님이 돌아가신다 해도 돌아가시면 장래를 치뤄드리면 됩니다. 돌아가시는 건 그 부모의 결정이고 나는 내 길을 가야 합니다. 내가 부모를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아무리 부모라 하더라도 자식의 인생을 제 마음대로 할 수가 없는 것이고, 부모가 원하는 대로만 살면 그것이 어떻게 내 인생이라고 할 수 있겠어요? 부모의 노예이지요. 그래서 남이 원하는 요구를 못해준다고 죄책감을 갖는 것은 아무에게도 도움이 안 됩니다. 

 

둘째, 사람들은 자기가 원하는 대로 안 이루어진다고 괴로워 하잖아요. 아이가 결혼을 안 했다고 괴로워하고, 돈 많이 못 번다고 괴로워하고, 시험에 떨어졌다고 괴로워합니다. 그러나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질 수가 없습니다. 다 이루어질 수 없는데 마치 다 이루어질 수 있다고 착각을 하기 때문에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괴로워하는 겁니다. 이루어지면 다행이고 안 이루어지면 그만두면 됩니다. 그래도 아쉬우면 또 도전하면 되고요. 그래도 안 되면 그만두면 되고요. 그래도 아쉬우면 또 하면 될 뿐이지 괴로워할 일은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기가 원하는 것이 안 이루어졌다고 괴로워하는데 이것은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또 우리가 원하는 것이 다 이루어진다고 반드시 좋을까요? 예쁜 여자 한명이 있는데 백명의 남자가 그 여자와 결혼하고 싶다는 소원을 다 이루면 한 여자가 백명의 남자와 살아야 되는 일이 벌어져야 하는 겁니다. 국회의원 선거에 나온 열명의 소원이 다 이뤄져서 한 지역에 국회의원 열명이 당선되면 되겠어요? 그렇게 되면 세상은 엉망진창이 되어 버립니다. 조금만 잘 생각해 보면 우리가 원하는 일이 다 안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나마 요만큼이라도 세상이 유지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진다고 반드시 좋다고 할 수도 없고, 또한 다 이루어질 수도 없는 것입니다. 

 

제가 대학생들을 지도할 때의 일입니다. 4학년 학생이 데모를 했어요. 경찰에 잡혀 가서 구치소를 가게 되었는데 그 어머니가 매일 같이 찾아와서 부처님께 제발 좀 우리 아들 빨리 나오게 해달라고 기도를 했어요. 그런데 3개월 후에 아들이 재판을 받아서 집행유예로 나왔어어요. 그래서 어머니가 저를 붙잡고 부처님 가피를 입었다고 좋아했어요. 그런데 그 아들이 3개월 만에 교통사고가 나서 죽었어요. 그래서 다시 어머니가 저를 붙잡고 ‘내가 아들을 죽인 것이다’ 하면서 울었어요. 이 액난을 피할려고 감옥에 들어간 것을 억지로 끄집어 내었으니 결국 자기가 죽였다는 것이죠. 이렇게 우리는 한치 앞을 볼 줄 몰라요. 지금 벌어진 일이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알 수가 없잖아요. 이것을 인생지사 새옹지마라고 하죠. 

 

그런데 우리는 자기 마음대로 되면 좋다고 난리를 피우고, 조금만 자기 마음대로 안 되면 괴롭다고 난리를 피웁니다. 이래서 우리 인생사는 늘 희로애락에 젖어서 괴롭습니다. 그래서 진짜 니쁜 일인지 좋은 일인지는 조금 더 두고 볼 일입니다.  

 


 

시골에 노름할 때도 초장 끗발 개끗발이란 말이 있잖아요. 초장에 끗발이 오른다고 좋다고 할 수 없어요. 좀 더 길게 봐야 하는데 그걸 못하니까 우리 인생이 늘 괴로운 거예요. 그래서 남이 원하는 걸 내가 다 해줄 수도 없고 내가 원하는 것도 다 이루어질 수 없다, 이 두 가지만 안다면 바라는 대로 되면 좋고, 안 되면 그만이고, 그래도 되길 원하면 더 해보면 되고, 그래도 안 되면 그만두면 되고, 그래도 또 더해보고 싶으면 더 하면 돼요. 꼭 그만둬야 한다는 법은 없습니다. 또 내가 다른 사람이 원하는 것을 다 이루어줄 수도 없어요. 

 

언니가 암치료를 받고 있다고 했지요. 내가 원하는 게 뭐예요? 언니의 암이 낫길 바라지요? 그런데 그게 내가 원한다고 낫고, 원하지 않는다고 안 낫는 게 아니에요. 아베 총리가 일본에서 자꾸 망언하니까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고 바라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런다고 안 죽어요. 내가 사랑하는 부모는 오래 살면 좋겠죠? 그렇다고 오래 사는 게 아니에요. 그건 내가 원한다고 되고 안 원한다고 안 되는 게 아니에요. 그렇기에 특히 수명과 관계된 것은 내가 관여할 일이 아닌데 첫째, 내가 자꾸 관여하려고 하는 거예요. 마치 내가 뭘 하면 어떻게 될 것 같이 생각해요. 두 번째, 남편이든 부모든 아내든 자식이든 사람이 평소에는 내 말을 잘 듣다가도 자기가 다급할 때는 남의 말을 들어요? 자기 마음대로 해요? 자기 마음대로 하죠. 인간 성질이 그래요. 

 

암 치료를 받는 중이라는 것은 목숨이 달린 문제잖아요. 급한 문제라 해도 목숨이 달린 문제보다 더 급한 문제는 없겠죠. 그러니 옆에서 뭐라고 권해도 잘 안 들어요. 이런 성질을 알아야 해요. 내 말대로만 하면 잘 들을 것 같은데 왜 그러냐고 하지만 그것은 성질 자체가 원래 잘 안 듣게 되어 있어요.

 

그러기 때문에 내가 원하는 대로 언니가 약을 먹든 치료를 받든, 낫도록 하겠다는 것은 언니를 위한 것 같지만 사실은 나를 위한 거예요. 언니와는 아무 관계가 없는 자기 만족이에요. 어머니가 일하면서 자꾸 아프다고 ‘아야 아야’ 하니까 그게 듣기 싫어서 일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지 부모에게 관심이 있어서 그러는 게 아니에요. 그러니까 ‘일하려면 아프다 소리 하지 말아요’라고 하잖아요. 이건 다 내 문제예요. 진정으로 부모를 생각한다면 부모가 일을 하려 하면 호미를 찾아드리고, 부모가 아프다 하면 주물러드리고, 그냥 그대로 도와줄 수 있으면 도와주고, 그게 듣기 싫으면 조용히 어디 가 버리면 돼요. ‘엄마, 나 바쁜 일이 있어요’ 하고 어디 가버리면 되지, 이래라 저래라 하면 갈등밖에 안 일어납니다. 

 

혼자 일하시는 게 좀 안쓰러우면 주말에 와서 거들어줄 수 있으면 거들어주고 못 거들어주겠으면 주말에 안 오면 돼요. 그런데 안 오려니 불효 같고, 와서 거들려니 힘들죠. 그러니 일을 안 했으면 좋겠다, 농사 안 지었으면 좋겠다고 하는 거예요. 이게 다 자기 필요 때문에 생기는 문제예요. 제 말 이해하셨어요? 

 

굉장히 효자 같지만 아니에요. 질문자도 언니를 굉장히 걱정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아니에요. 그게 다 내가 원하는 대로 언니가 이러저러하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내 욕구란 뜻이에요. 이렇게 이야기하면 기분 나빠요? (대중 웃음)

 


 

아픈 사람은 내가 아니라 언니잖아요. 언니를 생각하면 나는 첫째, 아무 것도 해줄 수 없다는 걸 알아야 해요. 그나마 조금이라도 해줄 수 있다면 언니가 원하는 것을 해주면 돼요. 이야기나누고 싶다 하면 이야기 나누면 되고, 그저 밥 한 끼 같이 먹고 싶다면 같이 먹으면 되고, 병원비가 조금 부족하니 조금 보태줬으면 좋겠다고 하면 병원비를 보태주는데, 100만원을 부탁했는데 내 형편이 안 되면 50만원 주면 되고 50만원도 어렵다 하면 30만원만 주면 돼요. 원하는 만큼 못 줄 때는 ‘언니야, 미안하다’ 라고 주면서 이렇게 말하면 됩니다. ‘주면서 미안할 게 뭐 있나, 내가 인사받아야지’ 라고 생각할 게 아니에요. 언니가 원하는 만큼 못 줬으니까 ‘아이고, 미안하다’ 이러고 그냥 주면 돼요. 원하는 대로 다 해줄 수 없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해주면 돼요. 

 

오라고 해도 갈 수 있으면 가고, 못 가면 ‘아이고, 언니야 미안하다’ 이러고 안 가면 돼요. 갈 수 있으면 가면 되지 그걸 가지고 부담을 느낄 필요도 없고 또 내 식대로 하려 들어도 안 됩니다. 그러니 언니 하시는 대로 하세요. 

 

그리고 병은 의사가 치료하지 내가 치료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치료비가 필요하다면 내가 치료비 다 대겠다고 나설 것도 없어요. 그냥 어려워 보이면 내 형편 안에서 돕고, 말벗이 없어 보이면 가서 말 좀 나눠주면 되고, 가끔 밥 한번씩 같이 먹으면 돼요. 

 


 

밥도 내가 먹고 싶어서 사면 안 돼요. 언니가 먹고 싶을 때 사야 돼요. 이 말은 신도님들도 잘 들으셔야 해요. 봉암사 선방에 있어 보면 냉면을 좋아하는 신도는 선방에서 공부하는 스님들이 여름철에 냉면을 한번 먹어야 한다고 여러 사람을 동원해가며 야단을 떨면서 냉면 공양하러 올라옵니다. 자기가 수박을 좋아하면 수박을 한 트럭 들고 와요. 자기가 빵을 좋아하면 어디 유명한 빵집에서 빵을 사와요. 생각해보세요. 여러분이 선물을 사갈 때 누가 좋아하는 걸 사 가요? 

 

이렇게 인간 자체가 전부 자기 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해요. 그렇다고 나쁘다는 건 아니에요. 자기가 밥을 먹고 싶으면 괜히 붙잡고 ‘아픈데 밥을 챙겨 먹어야지’ 이러면서 아픈 사람 끌고 밥 먹으러 가고, 자기가 이야기 나누고 싶으면 또 가서 이야기를 한다는 거예요. 이렇게 나를 중심으로 하는 것은 언니에게 도움이 안 돼요. 

 


 

언니가 원하는 걸 해주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최고로 좋은 도움입니다. 언니가 아무것도 원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 해주는 게 언니를 최고로 위하는 길이란 말이에요. 우리가 남을 위한다지만 자세히 보면 다 자기 얘기일 뿐입니다. 그러니 편안히 사세요. 언니가 전화 와서 뭐라고 하면 가서 해주시고요.” 

 

무거운 표정으로 질문을 시작한 여성 분은 스님의 답변을 듣고 나서 환한 표정이 되어 “감사합니다” 하고 인사를 하면서 자리에 앉았습니다. 

 

모든 질문에 대한 답변을 마치니 2시간이 훌쩍 지났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은 이 말씀을 꼭 드리고 싶다면서 오늘 법회를 마무리하는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만약에 버스 대절을 해서 같이 가다가 교통사고가 나서 버스가 넘어졌어요. 깨어나 보니 나는 팔만 하나 부러져 있었고 주위를 둘러보니 모두 다 죽고 자기 혼자 살아남았어요. 팔이 하나 부러졌지만 재수가 참 좋구나 하고 느껴지죠. 산다는 것은 이렇게 늘 재수가 좋은 거예요. 우리의 인생은 이렇게 재수가 좋은 기적이 매일 매일 일어나고 있어요. 그게 언제인가요? 아침에 눈을 뜨니 살아있을 때입니다. 밤에 눈을 감았는데 아침에 눈을 못 뜨면 죽은 거예요. 그래서 아침에 눈 뜰 때 이렇게 외쳐보세요. 

 


 

‘아이고, 오늘도 살았네!’ 

 

이렇게 매일 아침 감사한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면 다른 소소한 일은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살았다는 기적 앞에서 돈 몇푼 벌거나 잃었거나 하는 것이 뭐가 그리 중요하겠어요? 이렇게 기도하는 것이 부처님 관세음보살님 찾는 것보다 더 영험이 있어요. 아침에 일어나서 눈 뜨자마다 세수하기 전에 ‘아이고, 오늘도 살았네! 감사합니다’ 하고 기분좋게 하루를 시작해 보세요. 그렇지 않고 일어날 때 온갖 인상을 쓰고 하루를 시작하니까 예쁜 얼굴에도 자꾸 주름살만 지는 겁니다. 

 

항상 첫 시작이 중요합니다. 하루의 첫 시작을 항상 ‘오늘도 살았네! 감사합니다’ 하고 기분좋게 시작을 하면 여러분들의 인생에 아주 좋은 부처님의 가피가 내릴 것입니다. 꼭 명심하세요.”

 

대중들은 ‘아이고, 살았네! 하고 따라하면서 기쁜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2시간이 넘도록 긴 시간 동안 정성을 다해 법문을 해준 스님에게 감사한 마음을 담아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 

 


 

이어서 스님은 법회를 들은 두북초등학교 동기들, 선후배들과 함께 악수를 하면서 오랜만에 만난 기쁨을 표현하면서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고향 분들은 모두들 스님에게 “좋은 일 많이 하고 있는 모습을 멀리서나마 열심히 응원하고 있다”고 하면서 뿌듯해 했습니다. 

 


 

그리고 오랜만에 만난 기념으로 다함께 기념 사진을 찍었습니다. 주름진 얼굴과 흰 머리를 보니 55년의 세월이 고스란히 느껴져서 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 초등학교 동기들과 함께

 

스님은 오늘 초청법회를 주관한 석문암 주지 스님인 석봉 스님에게 다시 한 번 감사의 마음을 전한 후 오후 1시가 다 되어 다시 두북 정토수련원으로 돌아왔습니다. 

 

오후 4시에는 황룡사터로 가서 행정처 간부들과 함께 내일 이곳에서 열릴 통일의병대회 준비 상황을  점검했습니다.  

 


 

이후 다시 두북으로 돌아와 오늘 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 내일은 전국에서 통일의병 16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제1차 정토회 통일의병대회가 황룡사와 능지탑, 선덕여왕릉, 사천왕사지, 통일암 일대를 순례하며 진행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77

0/200

이정화

스님덕분에 저두 고향갔다 온 기분입니다 너무반가웠습
니다 저두 울주군언양에사는데 포항으로 시집오고는
잘가지지 않았는데 스님 통해 고향보니 더더욱좋습니다
항상스님글열심히보면서참회하려고노력하나 잘되고있
지는않지만언제가는저두선한마음이생길꺼라생각합니다
스님법문 늘감사드리구요 늘~건강하십시요 얼굴뵐수
있을지모르겠지만저에게도스님얼굴뵐수있는행운이오길
간절히바랍니다 고맙습니다

2015-09-25 16:34:31

박재후

제언니도 가까이에서 투병이랄까 생활중인데 저의 마음가짐을 정확히 알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2015-09-23 20:01:37

이성숙

함 찿아 뵙고싶습니다

2015-09-18 17:35:05

전체 댓글 보기

스님의하루 최신글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