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5.8.21 전국 대의원 회의


 

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정토회의 최고 의결기구인 전국 대의원 회의에 참석하여 정토회의 설립 취지에 대해 입재 법문을 했습니다. 

 

어제부터 문경 정토수련원의 명상원에 머물고 있는 스님은 새벽 예불과 기도를 한 후 아침 일찍부터 각종 보고서들을 점검하다가 10시가 되자 전국 대의원 회의가 열리는 대강당으로 올라갔습니다. 

 

전국에서 100여명의 대의원들이 자리한 가운데 10시30분부터 제6차 전국 대의원 회의가 시작되었습니다. 삼귀의와 반야심경 봉독 후 대의원들은 스님께 청법가와 삼배를 하며 ‘정토회 대의원의 역할’에 대해 입재 법문을 청했습니다. 

 


 

입재 법문을 통해 스님은 먼저 2015년이라는 지금 시기를 어떻게 인식할 것인지 물음을 던지며 말문을 열었습니다. 30년을 내다보며, 100년을 내다보며, 1000년을 내다보며 각각의 시야에서 볼 때 우리는 지금 어떤 준비를 해야 미래의 희망이 될 수 있는지를 이야기하는 가운데 그 속에서 정토회의 설립 취지와 방향도 자연스럽게 강조해 주었습니다. 

 

“2015년이라고 하는 올 한해는 30년의 긴 시간에서 볼 때는 어떤 시기로 인식이 될까요? 지난 50년을 경제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고도 성장기, 중간 성장기, 저성장기로 나눠볼 때 지금은 저성장기에 속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앞으로는 어떻게 전개될까요? 장기적 침체기로 나아갈 것이고, 더 시간이 흐르면 쇠퇴기로 나아가게 됩니다. 즉 공을 하늘 높이 던지면 포물선을 그리며 올라가는데 우리는 이제 포물선 꼭지점의 막바지에 이르러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나라와 민족의 100년을 내다본다면 어떻게 될까요? 전반기는 나라를 일본에 빼앗긴 일제 침략기였고, 그 이후에는 나라를 되찾았지만 분단된 시기였고, 지금은 분단을 극복하는 통일의 시대를 내다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나라를 빼앗기려고 할 때는 나라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하는 의병 운동이 있었고, 나라를 빼앗겼을 때는 나라를 되찾으려고 하는 독립운동이 있었고, 나라가 분단되려고 할 때는 분단되지 않으려고 하는 통일 정부 수립 운동이 있었고, 분단이 되어서 서로 원수가 되었을 때는 서로 이기려고 하는 적대적인 경쟁의 시기가 있었고, 그 경쟁이 지나치면 서로에게 손실이 오기 때문에 경쟁을 완화시키려고 하는 평화와 공존의 시기가 있게 되고, 공존의 이익이 큼을 알게 되면 하나로 통합해야겠다고 하는 통일의 시기가 오게 됩니다. 

 

그래서 일제 강점기 때는 독립이 시대적 과제였습니다. 분단이 되고 나서 남한 안에서는 가난했기 때문에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자 하는 산업화 시기가 있었고, 먹고 살 만 하니까 우리도 자유롭게 살아보자고 하는 민주화 시기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어떤가요? 어느 정도 살 만 하고 자유롭게 사는 데도 늘 불안하고 쫓기며 사는 것은 경쟁이 지나치고 사회적 안정망 구축이 안 되어 있고 빈부격차가 심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남이 보면 먹고 살 만 한데 그 안에 사는 국민들은 행복하지 못합니다. 이제는 국민들의 행복도가 높아질 수 있도록 빈부격차를 줄이는 경제민주화, 안전망을 구축하는 복지사회, 민주주의가 심화되어 시민이 진정으로 주권자가 되는 분권 사회, 이런 것들이 시대적 과제가 되었습니다. 남쪽만 생각하면 이런 것들이 시대적 과제가 되지만, 남북을 통합해서 보면 이제는 통일이 시대적 과제가 됩니다. 

 


 

우리 나라만 보지 않고 주변국까지 같이 보면 어떻게 될까요? 국제사회는 지금 질서가 새롭게 재편되고 있습니다. 세계 최강국인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가 이제는 경쟁자인 중국이 부상하면서 미국과 중국이 경쟁하는 시대가 출발했습니다. 아직은 미국 중심이지만 시간이 흐르면 힘의 균형점에 도달하게 될 것이고, 그것이 뒤집어질지 경쟁이 오래갈지 그렇지 않으면 도전자가 찌그러질지 그것은 지나가봐야 알겠지만, 그러나 세력이 새롭게 재편되는 시기입니다. 이렇게 세력이 새롭게 재편되는 시기에 대한 인식이 없다면, 즉 그 전 시기에 안주해 있다면, 새로운 변화의 시기에 낭패를 겪게 됩니다. 

 

조금 더 크게 보면 어떻게 될까요? 세계를 주도하는 문명의 중심이 이동해가고 있습니다. 19세기의 유럽에서 20세기의 미국으로, 그것이 21세기 들어오면서 동아시아 지역으로 규모 면에서 조금씩 이동해가고 있습니다. 아직은 미국이 중심이지만 그 비율이 조금씩 바뀌어나가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100년을 바라본다면 영토나 인구나 발전 속도를 봤을 때 동아시아가 그 규모 면에서 세계 재부의 중심으로 등장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런 시대의 변화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 나갈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더 크게 보면 어떻게 될까요? 문명적 전환의 시기입니다. 인간은 인지 능력이 점점 발달하면서 자연의 주어진 한계 속에서 그 활동 영역을 넓혀 왔는데, 인간이 자연에 대한 이치를 터득함으로 인해서 이제는 오히려 자신을 규정했던 조건인 자연을 개조하는 시대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물질도 만들고 나아가서는 새로운 생명 종의 변화도 가져왔습니다. 즉 물질의 근원을 이해하게 되면서 물질적 변화도 가져오고, 생명의 근원을 이해하고 DNA의 비밀을 풀어서 종의 변화를 가져오기에 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러면 인간은 더욱 자유롭고 행복해졌을까요? 그렇지가 못합니다. 이런 자연의 변화와 종의 변화가 인간의 행복에 도움이 되는 건가요? 반드시 도움이 된다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환경 변화를 가져와서 인류 문명을 멸망시킬 수도 있고, 그것은 어떤 바이러스를 출현하게 해서 인류가 멸망할 수도 있는 위험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큰 변화이기는 한데 진정으로 우리의 자유와 행복을 보장해준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부처님은 지금으로부터 2600년 전에 자기에게 주어진 운명을 바꿀 수 있는 새로운 길을 열어서 괴로움이 없는 열반과 해탈의 삶을 살 수 있는 길을 제시했습니다. 당시 우리의 삶은 자연으로부터만 규제받는 것이 아니고 정신적인 운명이란 것으로부터도 규정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어리석은 인간들은 자신의 운명을 바꿔서 운명의 주인이 되는 삶 보다는 남을 바꾸고 환경과 물질을 바꾸는 것에 더 욕심을 냈기 때문에 오늘날 물질의 변화는 가져왔는데 자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어두웠습니다. 그래서 물질의 변화가 오히려 우리의 삶을 위험에 빠트리기도 했습니다. 

 

이런데서 현대 문명은 위기가 도래했습니다. 우리의 삶에 맞게 자연을 변화시킨다는 것이 자연을 파괴하는 데에 까지 이르러서 우리 삶의 토대를 붕괴시키고 있습니다. 인류 공동체의 모순을 극복한다는 것이 지나쳐서 공동체가 점점 파괴되고 있습니다. 인류 공동체는 말할 것도 없고, 국가 공동체와 민족 공동체가 해체되고 있고, 심지어는 가족 공동체까지 점점 해체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점점 외로워지고 있고, 이것이 더 나아가서는 자신의 삶 조차도 제대로 온전시키지 못하는, 그래서 마약에 의지하고 쾌락에 의지하고 이렇게 중독이 되어가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자아 마저도 상실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기에 우리는 자연이 주인이고 인간이 노예인 것도 아니고 인간이 자연을 정복하는 것도 아니고 자연과 인간이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삶, 인간과 인간이 경쟁이 지나쳐서 서로 투쟁하고 살아가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 돕고 조화를 이루는 평화로운 삶, 이런 삶을 추구함으로 해서 자유와 행복도가 높아지고 자기 삶의 주인이 자기가 되는 새로운 문명을 만들어가야 됩니다. 바로 이러한 시기에 붓다가 가졌던 문제 의식은 오늘날 현대 문명이 갖고 있는 한계 상황을 극복하는데 좋은 해답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가장 크게는 문명 전환에 대비한 삶의 모델을 우리가 만들어나가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적어도 현대 문명 이후를 내다보는, 현대 문명의 종말이 100년 후에 올지 200년 후에 올지 500년 후에 올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우리는 1000년을 내다보고 그 씨앗을 심고 그 싹을 가꾸자는 것입니다. 

 

더 좁혀서는 동아시아 시대의 도래에 대비해 서양 문명의 한계를 개선해서 이 문명 안에서는 동아시아 문명을 꽃피우는 준비를 해나가고, 조금 더 좁혀서는 나라의 통일을 통해서 민족사의 천년의 꿈을 실현하는 방향 위에 우리가 서 있습니다.” 

 

붓다가 가졌던 문제 의식은 오늘날 현대 문명이 갖고 있는 한계 상황을 극복하는데 좋은 해답이 될 수 있다는 말씀에 온 몸이 오싹해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문명적 전환의 시기에 1000년을 내다보고 그 씨앗을 심고 가꾸고 있다는 말씀에 가슴이 뛰었습니다.  

 

이어서 스님은 2600년 동안의 불교 역사 속에서 다시 정토회의 설립 취지를 조망해 주었습니다. 

 

“불교사적으로 보면 기존에 있는 한 종파의 부분으로서 이 종파를 어떻게 혁신할 것이냐에 관심을 둘 것인지, 아니면 한 종파의 혁신이 아니라 새로운 종파를 형성해서 이 종파의 다음을 대비할 것인지, 아니면 종파를 넘어서서 새로운 불교를 준비할 것인지, 더 넘어서서는 새로운 불교를 넘어서서 모든 종교를 초월하는 새로운 정신 문명에 대비할 것인지, 이것 또한 우리가 우리의 시대를 언제까지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와 관계가 있습니다. 

 


 

지난 2600년의 불교사만 보더라도 크게 네 시기로 나눌 수 있습니다. 소승불교 시대, 대승불교 시대, 밀교 시대, 그리고 동아시아에 와서는 선불교 시대로 나눕니다. 소승불교 시대에는 많은 부파가 있었고 부파가 서로 경쟁하면서 흥망성쇠를 거듭했습니다. 부파 안에서 그 부파를 혁신하는 많은 운동이 있었습니다. 새로운 부파가 형성되고 기존의 부파가 사라지기도 했고, 혁신을 해서 다시 그 부파가 부흥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부파 운동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불교 운동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대승불교 운동입니다. 기존의 부파에서 볼 때 다른 부파는 경쟁의 상대였지만 그래도 하나의 부파로 인정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대승불교는 그런 부파 수준도 안 되는 사이비라고 해서 ‘대승 비불설’이라고 규정받았습니다. 그러나 대승불교는 그런 부파 가운데 하나가 되기 위해서 새로운 불교 운동을 시작한 것이 아니였습니다. 그 모든 부파가 다 불교의 근본 가르침에서 벗어났다고 보고 새로운 불교 운동을 일으켰기 때문에 이 운동은 기본 부파들의 공공의 적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비불설이라는 누명을 썼습니다. 이것이 바로 대승불교 운동입니다. 

 

부파 불교에서는 승단의 주체자인 출가 승려들 사이에서 경쟁을 했고, 지역 간에 경쟁을 했고, 부처님의 가르침 중에서 어느 경전을 중요시하느냐 이런 경쟁을 했다면, 대승불교는 주체자가 아예 달랐습니다. 출가 승려가 중심이 된 것이 아니라 재가 신자로 규정하던 사람들이 오히려 중심이 되었습니다. 수행자는 출가 사문을 지칭했는데 대승불교에서는 수행자를 보디사트바로 규정했습니다. 출가와 재가를 구분하지 않는 새로운 개념의 보디사트바로 승단을 구성했습니다. 소의 경전도 그 전의 경전 중에 하나가 아니라 대승 경전이라고 하는 새로운 경전이 출현했습니다. 그래서 대승은 소승의 한 부파가 아니고 소승의 부파와는 차원이 다른 새로운 불교 운동이였습니다. 

 

이 대승불교와 소승불교가 모두 중국에 와서 경쟁을 했는데 인도 안에서는 소승불교가 원조이기 때문에 경쟁에서 유리했는데 새로운 지역인 중국에 오니까 오히려 대승불교가 유리해져서 중국은 대승불교권이 되었습니다. 기득권을 갖고 있던 그 세계에서는 아무리 새로운 것이 일어나도 그 기득권을 극복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새로운 개척지로 나아가게 될 때는 현실에 안주해 있는 집단은 규모는 크지만 경쟁력이 없고, 오히려 기존의 세력으로부터 온갖 탄압을 받고도 일어선 새로운 불교 운동이 탁월한 경쟁력을 보여 준 것입니다. 그래서 중국은 처음에는 소승불교가 먼저 들어왔지만 대승불교가 월등히 빠르게 민심을 잡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대승불교가 세력이 커지면서 그 안에서 또 수많은 종파가 생겨나 경쟁하고 또 흥망성쇠를 거듭했습니다. 종파 안에서 혁신이 일어나고 종파가 부흥하다가 소멸하기도 하고 신흥 종파가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대승불교의 한 종파가 아닌 전혀 다른 새로운 불교가 일어났습니다. 그것이 바로 선불교입니다. 그래서 기존의 제 종파가 경쟁하면서도 이 선불교에 대해서는 ‘저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인 경전에 의지하지 않고 있다’고 하면서 사이비로 규정했습니다. 첫째는 불교로 인정을 못 받았고, 이 새로운 운동이 땅에 뿌리를 내리고 성장하자 나중에는 많은 종파 중에 하나로 규정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선종이라고 불렸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모든 종파가 통합이 되어 교종이 되고 새롭게 일어난 것은 선종이 되어서 선종과 교종의 양쪽으로 경쟁을 하다가 전체적으로는 선종으로 통합이 되고, 오히려 기존의 불교가 선종 안으로 흡수가 되어서 선불교의 새로운 시대가 생겨났습니다. 

 

우리가 불교를 새롭게 시작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선불교 안에서 한 종파의 혁신을 도모할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한 종파가 될 것인가, 아니면 이 모든 제 종파와는 차원이 다른 새로운 불교가 시대적 요청인가, 이것을 볼 수 있는 안목이 있어야 합니다. 어디까지로 규정할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불교에 있어서도 제4의 새로운 운동을 한다는, 또한 불교의 울타리를 넘어서서 문명 전환을 꾀하는 새로운 씨앗을 만든다는 꿈을 가지고 정토회를 창립했습니다. 즉 우리는 우리의 시대를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 지금 우리는 오늘 중 오전을 살고 있고, 이 달의 하순을 살고 있고, 이 해의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환절기에 살고 있고, 이렇게 좁게는 하루가 인식이 되지만, 크게는 통일을 준비하는 시대에 살고 있고, 동아시아 공동체를 꿈꾸며 살고 있고, 동아시아 문명의 미래를 보면서, 더 나아가서는 새로운 문명의 씨앗을 심으며 살고 있습니다. 

 

그렇듯이 불교 안에서도 우리는 한 종파 안에서 한 시민단체로서 출발했지만 우리는 어떤 불교를 내다보고 어떤 시대를 내다보고 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그런데서 지금의 구조는 완성된 구조가 아닙니다. 우리는 새로운 불교와 새로운 문명으로 나아가는데 합당한 실행 체계와 조직 체계를 만들어나가야 되기 때문에 지금 규모에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또 지금 규모가 작고 인정을 못 받는 것에 헐떡 거려서도 안 됩니다. 우리는 멀리 목표점을 보고 한발 한발 딛고 나가기에 이 역사적인 관점을 분명히 가져야 흔들림 없이 갈 수 있습니다. 

 


 

여름이라고 해서 하루만 보고 여름 옷만 준비해 왔더니 아침에 일어나니까 벌써 가을 기운이 돌아 날씨가 쌀쌀하다고 우왕좌왕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더워서 여름 옷을 준비하지만 환절기인 줄 알고 가을 옷도 한 벌 더 챙겨와서 찬바람이 불면 하나 더 걸치고 안 불면 입던 옷을 그냥 입어도 되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역사적인 안목과 큰 시야를 이야기해 주니 정토회의 설립 취지가 한 눈에 쏙 이해가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은 이와 같은 정토회의 설립 취지와 방향 속에서 대의원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말씀해 주었습니다. 

 

“이런 관점 위에 규모가 커짐에 따라서 점점 역할을 분담해야 하고, 자립을 시켜서 분권을 해야 하고, 더 규모가 커지면 분화를 해야 하고, 그럴 때 통합은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감사 기능이 보완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먼 목표에서 보면 이제 우리는 겨우 씨앗이 싹을 틔워 자라는 수준이 된 것입니다. 이것을 한번 옮겨심게 되면 더 큰 변화가 올 수 밖에 없습니다. 

 


 

1차 만일결사는 씨앗을 심어서 대한민국이라는 틀 안에서 모종을 잘 키우는 것이라면, 2차 만일결사를 맞아 한국 밖으로 나갈 때는 이것은 온실에서 자란 모종을 밖으로 옮겨심는 것이기 때문에 죽는 것도 생기고 제대로 자라지 못하는 것도 생기고 그러다가 뿌리 내리고 다시 커져 나가는 과정을 겪게 될 것입니다. 그럴 때 거기에는 새로운 혁신도 필요하고 인내도 필요하고 실패와 정체를 감수해내는 인욕행도 필요합니다. 조급하거나 성과에 급급하면 결국 한 그루 보리수를 심는 것이 아니고 하나의 콩씨를 심는 것에 불과해집니다. 

 

바로 대의원 여러분들이 이런 일을 해나가는 정토회 안에서의 최고 결정권자들입니다. 실제로 정토회를 지금 이끄는 것은 행정처의 임원들이지만 그것은 결정된 것을 집행하는 실행기구이지 방향을 잡아가는 기구는 아닙니다. 바로 여러분들이 앞에 서서 방향을 잡아가고 그 실행과정에서 나타나는 많은 문제점들을 모니터링해서 다시 보완하는 작업을 해야 합니다. 현실적으로 지금 당장 이 역할들을 해낼 수는 없겠지만 하루 하루 지날수록 대의원들의 역할이 무엇인지 인지가 되어야 하고 그 역할도 해내야 합니다. 그 핵심이 바로 이런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정토회를 이끌어가는 일입니다. 그래서 사업을 결정하는 권한이 여러분들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초기에는 저 혼자서 그런 역할을 했고, 다음은 법사단이 그 역할을 했고, 그 다음은 더 넓혀서 보살단이 그 역할을 했는데, 이제는 서원행자 중에서 선출된 대의원회에서 이 모든 결정권이 넘어갔습니다. 여러분들이 정토회의 최종 책임자들입니다. 다만 아직은 조금 부족하기 때문에 법사단이 한번 더 결정을 걸러주는 감사 기능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여러분들은 이렇게 정토회의 미래를 보고 정토회가 현실에 뿌리를 두지 않은 공허한 단체가 되지 않도록, 정토회가 현실에 안주하는 비전 없는 단체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정토회는 현실에 두 발을 딛고 있되 문명 전환의 꿈과 새로운 불교 운동의 꿈을 가진 단체라는 것을 늘 생각해야 합니다. 또한 정토회는 대중 조직이기 때문에 소수의 선각자에 의해서 이끌어지는 단체가 아닙니다. 늘 민의가 수렴되어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의 개인 생각을 갖고 이 자리에 와서 이러쿵 저러쿵 한다면 대한민국의 국회의원과 하등 다를 바가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이 이 자리에 설 수 있게 해준 10명의 정회원을 대표하는 사람들입니다. 그 10명의 정회원들의 의사를 대변하는 사람이지 자기 생각을 얘기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대중들의 의사만 물어서 가면 중우 정치가 됩니다. 각성된 수행자들이 앞에서 방향을 잡아나가고 개척하지만 대중들은 따라오기만 하라가 아니라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대중의 애로와 의견을 늘 수렴하면서 나아가야 합니다. 여러분들에게는 앞서 가야 하는 원래의 사명이 하나 있고, 또한 대중의 의사를 늘 반영하면서 대중을 함께 이끌고 가야 할 사명도 있습니다. 이 둘을 함께 가야 합니다. 이런 관점에 서서 이번 전국대의원대회에서는 올해의 상반기를 어떻게 평가하고 하반기를 어떻게 계획할 것인가, 동시에 3년 천일결사의 중반기이기 때문에 앞선 1년 반을 어떻게 평가하고 향후 1년 반을 어떻게 마무리지을 것인가, 또한 만일결사의 제8차 시기이니까 9차와 10차에 대비한 준비를 지금 어떻게 해야 되겠는가, 더 크게 보면 만일결사의 후반기이니까 제1차 만일결사를 어떻게 마무리짓고 제2차 만일결사의 출발을 위해서 우리가 어떤 기반을 마련해 줄 것인가, 이런 문제들이 모두 함께 살펴져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여러분들이 진지하게 대의원의 역할을 해나가시기 바랍니다. 

 


 

이미 서원행자가 되었다는 것은 여러 경험을 해서 정토회의 취지와 방향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방향대로 갈 수 있도록 사업 방향을 잡아주어야 하고, 그것을 행정처에서 실행하는 것을 잘 도와주고 지켜보면서 대중과의 사이에서 괴리가 생길 때 대중의 처지를 잘 반영시켜서 현실 괴리가 생겨나지 않도록 민의를 반영하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대의원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들을 수 있었습니다. 아직은 부족함이 많지만 대신 문명 전환이라는 큰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음을 알게 되자 가슴 한켠에서 뿌듯함이 느껴졌습니다. 

 

스님의 가슴 뛰는 이야기가 끝나자 대중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 갈채를 치며 감사의 마음을 표했습니다. 

 


 

입재 법문이 끝나자 곧바로 자리를 정비한 후 제6차 전국 대의원 회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전국 대의원 대회는 정토회 대표 이기혜님을 의장으로 해서 2015년 상반기 사업보고와 하반기 사업 계획, 분과별 토론 시간, 안건 토의 등을 하루 종일 이어가 밤 10시 30분이 되어서야 중간 갈무리를 짓고 오늘 일정을 마쳤습니다. 정토회의 사업 방향에 대해 열띤 토론을 해나가는 대의원들의 모습을 보며 대중이 주체가 되어 만들어가는 정토회의 미래가 현실 속에서 잘 뿌리내려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스님은 대의원들이 열띤 토론을 하는 동안 전국 대의원 회의에 참석하지 않고 명상원에 머물며 원고 교정 업무를 보면서 하루를 보냈습니다. 

 

 

내일 스님은 전국 대의원 회의를 마치는 대중들을 위해 회향 법문을 한 후 연이어 계속되는 서원행자대회에서도 입재 법문을 해줄 예정입니다.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 

 

※ 법륜 스님의 쉽고 명쾌한 강의! 2015년 정토불교대학 가을 학기가 전국 114개 지역과 해외 33개 지역에서 동시 개강합니다. 마음이 작용하는 이치와 불교에 대해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배워보세요.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찾는 분들의 많은 신청 바랍니다. (신청 마감 : 8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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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사적으로 보면 기존에 있는 한 종파의 부분으로서 이 종파를 어떻게 혁신할 것이냐에 관심을 둘 것인지, 아니면 한 종파의 혁신이 아니라 새로운 종파를 형성해서 이 종파의 다음을 대비할 것인지, 아니면 종파를 넘어서서 새로운 불교를 준비할 것인지, 더 넘어서서는 새로운 불교를 넘어서서 모든 종교를 초월하는 새로운 정신 문명에 대비할 것인지, 이것 또한 우리가 우리의 시대를 언제까지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와 관계가 있습니다. >> <그래서 대승은 소승의 한 부파가 아니고 소승의 부파와는 차원이 다른 새로운 불교 운동이였습니다. > <즉 우리는 우리의 시대를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벌써 정토회 1차 만일결사의 후반기군요..대단합니다^^*

2015-08-31 03:12:00

김영원

네 스님 잘알겠습니다

2015-08-23 19:48:23

수미향

정토회는 현실에 두 발을 딛고 있되 문명 전환의 꿈과 새로운 불교 운동의 꿈을 가진 단체라는 법문을 새깁니다. 보고 듣고 돌이켜 생각해 보며 불법 배워갑니다. 고맙습니다.

2015-08-23 18: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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