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5.8.2 동북아 역사기행 1일째, 홀본산성


 

안녕하세요. 드디어 오늘부터 21년째를 맞이하는 동북아 역사기행 7박8일 간의 여정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번 역사기행은 법륜 스님의 안내로 총 138명이 참가하여 버스 3대에 몸을 싣고 선조들의 숨결이 묻어 있는 역사적 현장을 찾아 동북아 지역 일대를 신나게 달려가 볼 예정입니다. 

 

역사기행 1일째를 맞이하여 스님은 고구려의 첫 수도였던 홀본산성에 올라가 고구려를 건국한 고주몽에 관련된 설화를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또 저녁에는 우리 민족의 시원인 배달 문명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아침 6시, 인천국제공항은 이른 시간에도 불구하고 휴가철을 맞아 해외로 나가는 여행객들로 북새통을 이루었습니다. 138명의 기행단은 질서정연하게 출국 수속을 밟고 심양으로 향했습니다. 

 


▲ 인천공항 출발

 

심양공항에 도착하자 해마다 한결 같이 기행단을 반갑게 맞이해주고 있는 조춘호 선생님이 열띤 환영을 해 줍니다. 

 


▲ 심양공항 도착

 

기행단이 처음으로 도착한 곳은 고구려의 첫 수도였던 홀본산성입니다. 홀본산성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스님은 수신기를 통해 인사를 하며 우리가 왜 이곳까지 역사를 공부하러 왔는지 그 의미를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안녕하세요. 기분이 괜찮아요? 아침은 제대로 먹었어요? 오늘은 점심도 없어요.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었어요. (웃음) 

 


 

먼저 만주에 오신 것을 환영하고요. 그리고 귀한 시간을 내어서 역사기행에 참여해 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이번 여행의 목적은 우리의 뿌리에 대해서, 그리고 우리가 지금 이러한 시기 이러한 조건에서 왜 이렇게 행동할 수 밖에 없는가 하는 것에 대해서 그 원인을 찾아가기 위함입니다. 어떤 사람이 제대로 상황 대처를 못하게 되면 처음에는 많이 나무라죠. 그러다가 나중에 그 사람의 성장 배경과 부모님, 가정환경을 알게 되면 ‘아, 그 사람은 그렇게 행동할 수 밖에 없구나’ 하는 것을 이해하게 됩니다. 먼저 그것을 이해해야 조정이 필요하다면 조정을 할 수 있죠. 

 

그것처럼 현재 우리 대한민국이 국제 여건 속에서 정치든 경제든 교육이든 이렇게 할 수 밖에 없는 것에 대해 아쉬움이 많은데 우리 민족이 여기까지 온 역사를 살펴보면 그것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현재 이렇게 된 것은 과거의 결과물이란 것을 알게 되고, 우리 스스로에 대해 너무 과대망상이거나 부정적이였던 것을 치료할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느냐 하는 것도 배울 수 있습니다. 과거의 경험 속에서 어느 시대에 어떻게 대응해서 어떤 불안을 겪었느냐 하는 것을 보면, 100년 후에 우리가 현 시점을 돌아보면 ‘아, 그렇게 했었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것을 지금 살면서 그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즉 미래 100년 후로 가서 지금을 돌아보듯이 과거 역사를 주욱 살펴보면 지금에 대해서 더욱 자세히 알 수 있습니다. 결국 역사 공부는 과거의 사실을 아는 데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가 어떻게 바르게 대응할 것이냐 하는 것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 과거의 역사적 경험을 다시 살펴보는 것입니다. 

 

역사기행이라는 이름으로 우리가 여기에 온 것은 우리 민족의 현재와 미래의 진로를 어떻게 잡아갈 것인가 하는 것에 대한 그 답을 찾기 위해서 온 것입니다. 그래서 놀러가기 위한 여행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가 가는 이 곳이 현재는 중국 땅이지만 과거에는 우리 민족의 주된 활동 공간이였습니다. 즉 우리의 고향이 바로 이곳입니다. 그 사람의 성장 배경을 알려면 그 사람의 고향 마을을 살펴봐야 하는 것처럼 우리의 과거 역사를 알려면 그 때 살았던 그곳에 가서 유적도 보고 산천도 보면서 ‘아, 이런 환경에서 이런 방식으로 살았구나. 그 경험이 우리 민족에게 내재되어 있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때 있었던 것 중에서 잃어버린 것도 있을 것이고, 또 그 때 없던 것이 새로 생겨난 것도 있겠지만, 기본 줄기는 맥을 이어서 흐르고 있습니다. 

 

오늘과 내일 이틀은 고구려 유적지를 찾아 갑니다. 고구려의 역사를 공부하면서 고구려가 책 속에 전설 속에만 있는 역사가 아니고 손으로 만지고 눈으로 보고 발로 밟을 수 있는 역사적 사실임을 알게 됩니다. 고구려의 유물과 유적, 문화의 특징이 무엇인지, 주변의 나라들과는 어떤 차이가 있었느냐, 이것을 우리가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고구려의 뿌리는 무엇이었느냐, 이렇게 찾아감으로 해서 결국 우리 민족사의 출발로 거슬러 올라가 공부를 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고구려가 멸망하고 나서는 그것이 어디로 계승이 되었느냐? 그것은 발해로 연결되게 됩니다. 고구려를 중심으로 놓고 위 아래를 살펴서 우리가 잃어버렸던 역사를 되찾아 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현재 우리나라의 국경이 압록강과 두만강인데, 압록강을 따라 올라가면서 예전에는 하나의 땅이였는데 지금은 중국과 북한으로 나뉜 모습을 보고, 또 동북아 지역에서 가장 높은 산이 백두산인데 이곳에서 환웅 천황께서 신시를 여셨기 때문에 민족의 성산으로의 백두산과 거기서 흘러내리는 압록강과 두만강을 살펴보게 됩니다. 

 


▲ 버스 안에서 점심 식사 대신 옥수수를 맛있게 먹는 참가자들

 

또 고구려를 계승한 발해의 유물과 유적을 살펴보게 되고요. 그리고 두만강 유역으로 가서는 조선조 말엽에 나라를 잃고 이곳 이국 땅에 와서 이민 생활을 하던 동포들의 이야기, 또 나라를 되찾기 위한 독립운동이 전개된 역사를 살펴봄으로 해서 지금 우리가 해결해야 할 과제가 무엇인지 찾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려 합니다.” 

 

스님의 얘기를 들으며 왜 우리가 이곳에 역사기행을 하러 왔는지 그 목적을 분명히 할 수 있었습니다. 특별히 올해는 우리 민족의 숙원이라고 할 수 있는 통일에 대해 많은 관심과 열정을 가지고 있는 통일의병들이 대다수 주축이 되어 참여를 했기에 이번 역사기행이 더욱더 기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스님은 새벽 5시부터 시작되는 빡빡한 일정 속에서도 하루 종일 운전해서 우리들을 유적지까지 안전하게 데려다 줄 기사 분들에게 큰 박수를 치며 감사의 마음을 표현할 것을 부탁했습니다. 또 20여년 넘게 애정을 갖고 역사기행의 전체 일정을 준비해 주고 계신 조춘호 선생님과 그 딸인 조신 양에게도 열렬한 환영의 박수를 부탁했습니다. 대중들은 열렬한 환호를 함께 박수를 보냈습니다. 

 

오후 1시 30분 무렵 홀본산성 입구에 도착했습니다. 입구에 기념관이 마련되어 있어서 스님의 설명을 들으며 홀본산성의 지형과 유물에 대해 개략적인 설명을 들었습니다. 특히 고구려인들의 특유한 축성 기술에 대해 자세히 듣고 나니 자긍심도 생기고 실제 가까이서 보면 어떨까 두근거리는 마음도 들었습니다. 

 


▲ 홀본산성 기념관

 

산성으로 올라가는 셔틀버스를 타고 굽이굽이 산모퉁이를 돌아서 올라가니 입구에 오녀산성비가 보였습니다. 

 


▲ 셔틀버스를 타고 올라가며 멀리서 본 홀본산성

 

비문이 잘 보이도록 서서 도착하는 대로 기념사진을 찍은 후 좁고도 가파른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스님은 돌계단을 오르며 이 홀본산성을 처음 답사할 때의 재미있는 사연을 들려 주었습니다. 스님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웃으며 듣고 있다보니 별로 힘들지도 않게 어느덧 정상 가까이에 도착했습니다. 

 


▲ 홀본산성 올라가는 길

 

아래 마을이 훤히 내려다 보이는 평평한 곳에 대중들을 오밀조밀 앉히고 스님은 주몽의 탄생과 고구려가 부여의 정통성을 계승한 나라임을 일깨워주는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고구려는 부여를 계승했어요. 부여를 처음 세운 사람이 해모수예요. 주몽의 아버지도 해모수이거든요. 그럴려면 해모수가 200년을 살아야 하잖아요. 그런데 단군도 마찬가지입니다. 단군은 임금의 직위 이름입니다. 환웅도 마찬가지이죠. 그러나 우리는 단군을 마치 한 사람을 지칭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해모수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말로는 ‘해를 모시는 우두머리’ 라는 뜻입니다. 즉 천제라는 뜻이죠. 반면 주몽의 어머니인 유화 부인은 수신을 섬기는 토착 세력의 족장 딸이였습니다. 즉 민족사의 정통을 계승한 천손의 왕족과 토착 세력인 족장의 딸이 낳은 아들이 주몽이였다고 보시면 됩니다. 

 


 

어느날 유화 부인이 동생과 함께 봄에 나물을 따러 산에 갔는데 바퀴 다섯 개가 달린 오륜거를 타고 영감이 나타나서 ‘나는 천제인 해모수다’ 하면서 하룻밤 자자고 하니까 거절을 못했습니다. 영감은 사랑을 나누고 나서 너를 곧 데리러 오겠다고 하고 가버렸습니다. 집에 와서 아버지에게는 말도 못하고 있었고, 결혼할 나이가 되었는데도 결혼을 절대로 안 하겠다고 계속 하였습니다. 결국 동생이 아버지에게 자초지종을 다 얘기해 주게 됩니다. 그러자 아버지는 노발대발 했고 유화를 집에서 쫓아내 산속에 유배를 했습니다. 그러나 쫓겨나 유배 생활을 하면서도 반성은 안 하고 산 속에서 움막 치고 살았습니다. 

 

묘하게도 동부여의 금화왕이 사냥을 나왔다가 산 속에서 유화와 만납니다. 자초지종을 듣고 나서는 궁궐로 데려온 겁니다. 즉 역사적으로는 동부여 왕의 두 번째 부인이 된 겁니다. 결국 궁궐에서 애를 낳게 되었는데, 당연히 왕의 입장에서는 남의 자식이니까 갖다 버리려고 한 겁니다. 그러나 유화 부인이 끝까지 그럴 수 없다고 하니 결국 할 수 없이 돌려준 겁니다. 즉 두 번째 부인의 아들이니까 서자가 된 것입니다. 아무튼 그로 인해서 밖으로는 왕자라고 대우 받았지만 안에서는 굉장한 차별을 받았겠죠. 결국 신분이 위험해지니까 북부여로 도망을 가게 된 겁니다. 

 


 

도망을 가서 내려오다가 물을 건널 수 없었는데 ‘나는 천자의 아들이고 화백의 외손자다. 나에게 길을 열어라’ 하니 물고기와 자라들이 돌다리를 놓아주었다고 하죠. 이것은 달리 생각하면 도망을 가면서 어머니 고향 쪽으로 도망을 가게 되었다고 볼 수 있고, 어머니의 고향 사람들이 힘을 합해 피신을 시켜 주었다고 볼 수 있겠죠. 

 

그래서 주몽은 동부여에서 도망을 나와서 이곳 졸본 부여 왕의 딸인 소서노와 결혼을 했습니다. 졸본 부여는 북부여의 후예들입니다. 즉 동부여에서 도망을 나와서 북부여로 온 겁니다. 소서노는 주몽보다 8살이 나이가 많았습니다. 즉 사위가 되어서 졸본 부여의 왕이 된 것입니다. 졸본 부여를 계승한 것은 엄격하게 말하면 주몽의 아버지가 왕이 아니라 사위로 들어와서 계승한 것이니까 주몽의 후예들이 볼 때는 정통성에서 동부여에게 밀리게 되잖아요. 동부여는 해모수로부터 직계에 해당하고, 주몽은 동부여에서 도망을 나와서 북부여의 사위가 되어 계승한 것이니까 그래서 후대에 주몽으로부터 새로운 나라가 시작한 것으로 한 것 같아요. 아버지가 불분명하니 천제 해모수라고 한 것이지요. 인류 문화사를 연구해보면 아버지가 없거나 불분명한 경우는 대부분 자수 성가한 경우입니다. 

 


 

이렇게 볼 때 신분적으로 말하면 사실 가장 정통성이 없는 것이 고구려입니다. 그러나 주몽이 워낙 똑똑하니까 주도권을 잡은 것이고, 역사가 그를 중심으로 만들어지다 보니 이런 설화가 조성되었지 않았을까 싶어요. 북부여에서는 다물군을 일으킨 고두막이 동명성왕입니다. 주몽도 이 다물군에 참여를 했었거든요. 그래서 고구려의 건국 이념도 다물 사상입니다. 다물 사상은 잃어버린 고조선의 옛땅을 되찾자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 최초의 의병이 이 다물군입니다.”

 


 

스님의 얘기를 듣고 있노라면 무엇보다 설화나 전설 같은 이야기들을 인류 문화사적 입장이나 역사적 사실로서 실제는 어떠했겠는지 재해석해 준다는 점이 늘 새롭습니다. 

 

다음은 서문 자리에 가서 성문에 대해 설명을 들었습니다. 개이빨식으로 튼튼하게 쌓은 성벽이 무엇보다 기억에 크게 남았습니다. 

 


▲ 서문 앞에서 고구려인들의 축성법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있는 대중들

 

조금 더 걸어가 보니 평평한 가운데 천지가 나타났습니다. 이 우물은 일년 내내 마르지가 않는다고 합니다. 전쟁 중에 이곳 산성에 오를 경우 무엇보다 물이 가장 소중했을 터인데 주위에 병풍처럼 우뚝 솟은 절벽도 그렇지만 우물까지 갖춘 모습을 보니 과연 천연 요새이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 홀본산성 안 천지

 

그리고 거주지라고 표시된 곳에는 온돌 문화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온돌을 사용한 역사가 참 오래되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 온돌을 사용한 주거지

 

어쨌거나 홀본산성은 산성에서 가장 중요한 물, 곡식, 잠자리의 세 박자를 모두 갖춘 천연 요새임에는 틀림 없어 보였습니다. 

 


▲ 홀본산성에서 바라 본 혼강

 

조금 더 가니 점장대가 나왔습니다. 점장대는 적군의 동정을 살피는 곳인데 시원한 바람이 불고 정말 경치가 좋았습니다. 

 


▲ 주위가 훤히 보이는 점장대

 

내려올 때는 동편으로 가파른 길을 따라 내려와 동쪽 성벽과 공(工)자형 동문 자리를 보고 남문을 지나 버스 승차장으로 내려 왔습니다. 

 


▲ 동문 자리

 

3시간 30분 간의 도보 기행을 마치고 다시 셔틀버스에 오르자 그제서야 비가 막 쏟아집니다. 하늘도 우리 기행단을 돕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환인시에서 저녁 식사를 하면서는 참가자 중에서 특별히 소개하면 좋은 사람들을 소개해 주었습니다. 

 


▲ 인사하는 연제식 신부님

 

특히 연제식 신부님은 “8년 전에 인도성지순례도 다녀왔다”고 하면서 “초파일에는 제가 정토회로 가고, 크리스마스에서는 정토회 식구들이 우리 성당에 오고 한 지가 10여년이 되었다”며 “이번에 역사기행도 함께해서 무척 기쁘다”고 소감을 나눠주었습니다. 

 

맛있게 저녁 식사를 한 후 오후 6시 무렵 숙소에 도착했습니다. 첫째날 저녁 강의는 저녁 7시에 시작되었습니다. 스님은 우리 민족의 시원에 대해 긴 역사를 꿰뚫으며 열정적으로 강연을 해주었습니다.  

 

“홀본산성에 올라가보니 경치가 참 좋죠? 오늘 강의는 우리 민족의 시원에 대한 것입니다. 지금으로부터 추적해서 올라가 보겠습니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이름은 어디에서 왔을까요? 상해임시정부에서 정했습니다. 대한민국은 대한제국에서 왔습니다. 용성 스님이 왕이 주인인 대한제국 부흥 운동이 아니라 백성이 주인이 되는 대한민국 수립 운동을 해야 한다고 한데서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이 처음에는 나왔습니다. 그럼 대한제국은 어디에서 왔을까요? 청의 속국인 상태에서 자주 독립임을 선포할 때 조선왕조를 대한제국으로 바꾼 것입니다. 그럼 조선왕조는 어디에서 왔을까요? 나라를 새로 세운 것이 아니라 역성 혁명, 즉 왕의 성만 바뀐 것입니다. 다만 고려에서 조선으로 개명을 한 것입니다. 

 


 

그럼 고려는 어디에서 왔을까요? 고려를 창건한 세력들은 ‘우리는 고구려를 계승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건국을 했습니다. 여기에는 다물군과 같은 부흥하려고 하는 정신이 있었습니다. 그럼 고구려는 어떤가요? 고구려를 창시한 주몽이 자신은 해모수의 아들이라고 한 점을 보면 부여를 계승한 것입니다. 이것은 광개토대왕비에도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해모수는 ‘나는 단군을 계승한다, 단군의 아들이다’ 라고 했습니다. 해모수는 단군의 이름이 바뀐 것 뿐입니다. 단군 조선은 자신이 환웅의 아들이라고 했습니다. 환웅은 ‘나는 환인의 아들이다’ 라고 했습니다. 그럼 환인은 뭐라고 했을까요? 그 위로는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 민족의 시작입니다. 

 

그래서 우리 민족의 시원은 한나라이고, 임금의 이름은 환인입니다. 그 다음은 배달 나라이고, 임금의 이름은 환웅입니다. 그 다음은 조선 나라이고, 임금의 이름은 단군입니다. 이렇게 해서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나라의 시작을 한나라 라고 하기에는 조금 애매모호합니다. 왜냐하면 가장 문명이 발달한 한나라 라는 나라가 있었는데, 한나라의 아들 중에 하나가 이주를 해와서 토착세력과 결합해서 세운 나라가 배달 나라입니다. 그래서 한나라는 우리나라라고 말할 수도 없고, 또한 우리나라가 아니라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나라의 첫 번째 뿌리인 원시조는 환인의 한나라 라고 말할 수 있어요. 그러나 거기서 3천명이 내려와서 토착세력과 어울러가면서 세운 나라가 배달나라입니다. 이것이 신시, 즉 개천이죠. 이것은 확실히 우리나라라고 말할 수 있어요. 그래서 배달나라가 우리나라의 첫 번째 나라라고 볼 수 있고 그 뿌리가 한나라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주해 온 세력과 토착 세력이 결혼해서 낳은 단군이 왕위에 오르면서는 이것은 확실하게 우리 모두의 조상이라고 말할 수 있게 된 것이죠. 그러나 우리나라의 시작은 배달나라이고, 그 연원은 한나라입니다. 

 

그런데 최근 요녕성의 서쪽과 내몽고 자치구의 남쪽 요하강 상류 지역에 초원 지대가 있는데 여기서 엄청난 유물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황하문명보다 천년 내지 2천년 앞선 유물이 나오니까 중국이 지금 크게 놀라고 있습니다. 그래서 중국 문명의 기원은 황하문명이라는 단일 기원설에서 중국 문명의 기원은 황하 문명과 요하 문명이고 이 두 문명은 상호 교류를 했다, 이렇게 공식적으로 정리를 했습니다. 이것이 동북공정입니다. 

 

그런데 중국에는 어떤 역사 기록에도 6천년 된 기록이 없습니다. 그런데 만약 우리가 갖고 있는 6천년 전의 배달 나라의 역사 기록과 요하에서 발견된 이 유물이 같이 연구된다면 굉장한 일이 될 텐데, 중국은 유물만 있고 기록이 없고, 우리는 기록만 있고 유물이 없으니 뜬구름 잡는 소리처럼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요하 지역에서 출토된 유물들 중에는 9천년 된 신석기 유물도 있습니다. 한 군데가 아니라 여러 군데에서 발견되었습니다. 황하 문명보다 훨씬 앞선 문명이었습니다. 요하 문명에서 황하 문명으로 문명이 흘러갔다고 보는 것이 사실에 가깝습니다. 고대 문명은 동시에 오간 것이 거의 없습니다. 대부분 앞선 문명에서 흘러가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환웅의 배달 나라는 유물만 보더라도 터무니 없는 얘기는 아닙니다. 이 지역이 우리 민족이 이주해서 살게 된 첫 본거지라고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이제 고구려 발해 역사기행을 마치면 다음은 배달 문명을 찾아서 요하 지역도 기행을 가봐야 하는데 아직 논쟁이 많고 한참 발굴 중에 있어서 단체 기행은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요하 지역에서 출토된 유물들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듣고 나니 배달 문명이 다만 전설 속의 얘기가 아니라는 것이 크게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황하 문명보다 훨씬 앞선 문명을 갖고 있었다는 얘기에 무한한 자긍심도 느껴졌습니다. 

 

이어서 스님은 홍익인간 재세이화의 건국 이념의 의미에 대해 들려주며 우리 선조들은 6천년 전에 벌써 이런 높은 사상을 갖고 있었음을 알려주었습니다.   

 

“환웅이 3천의 무리를 이끌고 내려오니 여기에는 이미 살고 있던 원주민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홍익인간 재세이화’라는 건국 이념을 문명사적으로 해석하면 이렇습니다. 이주민들이 토착 세력을 무력으로 정복해서 노예로 부리는 것이 대부분의 인류 역사입니다. 그러나 홍익 인간이라는 건국 이념을 내세웠다는 것은 원주민들에게 고급 문명을 전해서 원주민들을 이롭도록 하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시 개천의 건국 이념입니다. 저의 경우에도 지금 인도에 가서 학교 짓고 병원 세우고 하면서 그들을 착취하는 것이 아니고 돕지 않습니까. 이런 것과 같은 행위가 6천년 전에 있었던 겁니다. 선진 문명의 사람들이 후진 문명으로 이동하면서 그들을 억압하고 착취한 게 아니라 그들에게도 이 선진 문명을 전해서 그들에게도 이익이 되도록 해주겠다고 한 것이 ‘홍익인간’입니다. 

 


 

‘재세이화’는 하늘의 이치를 이 세상에 실현하겠다는 뜻입니다. 기독교의 주기도문에 나오는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리라’ 하는 이것을 한문으로 고치면 ‘재세이화’가 됩니다. 후진 지역도 선진 지역과 같은 문명 사회가 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청교도인들이 아메리카로 가서 꿈을 실현해보고자 했던 것과 같은 일이죠. 그러나 그들도 막상 가서는 원주민들을 학살하고 학대하고 그랬죠. 그래서 홍익인간 재세이화는 국가 이념으로도 이보다 더 좋은 이념이 있을 수 없고, 종교 이념으로도 이만한 종교 이념을 가진 종교가 없습니다.  그것도 6천년 전에 이런 사상을 갖기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것은 불교든 기독교든 유교든 그 어떤 외래에서 들어온 종교보다도 모자라지 않은 사상이였습니다. 

 

이렇게 해석할 때 호랑이는 동굴에서 뛰쳐나가 버리고, 곰은 사람으로 변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자기들 나름대로는 선정을 베푼다고 했지만 토착 세력의 입장에서는 좋게 생각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나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호랑이족 입장에서는 선진 이주민에 대해 저항을 했고, 곰족은 협력을 했다고 볼 수 있는 겁니다. 곰족은 협력을 하니까 곰족 하고는 혼혈이 생긴 겁니다. 즉 천손 세력이 곰족의 추장 딸과 결혼해서 낳은 자식이 단군인 것입니다. 

 


 

천부인 3가지는 청동 거울, 청동 방울, 청동 검입니다. 즉 이것은 환인의 한나라에서 이주해서 내려올 때 청동기 문명을 가지고 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6천년 전에 벌써 청동기를 사용했다는 것이 됩니다. 이 흔적은 지금도 남아서 무당이 굿을 할 때는 방울을 흔들고 칼을 휘두르는 것을 볼 수 있죠. 

 

그렇다면 개천절은 어떤 날일까요? 단군으로 이해하면 안 됩니다. 환웅 천황이 이 땅에 와서 나라를 처음 연 날이 개천절입니다. 그 도시 이름이 신시이고, 나라 이름이 배달이고, 수도가 아사달이였습니다. ‘아시’는 ‘첫’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아사달’은 ‘처음으로 새운 도시’라는 의미가 되죠. 

 

최근에 유물이 많이 발견되었는데 BC 4500년~ BC 3000년 경 유물은 정교한 옥기들이 엄청나게 나왔습니다. 이것도 배달 나라의 기록과 이 유물들이 거의 근접합니다. 또 5천년 전에 쌓아진 산성도 발굴되었습니다. 그리고 치가 있는 성도 발견되었습니다. 그 다음에 피라미드형 무덤도 나왔습니다. 크기가 광개토대왕릉 만합니다. 이와 같은 무덤 양식을 같고 있는 민족이 이 주위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거란족도 없고, 여진족도 없고, 몽골족도 없고, 한족은 더더둑 없습니다. 그래서 이 유물이 발견되기 전까지는 고구려가 이 세상 어느 곳에도 없던 것을 창조했다고 생각했는데, 그와 비슷한 무덤과 축성법이 고구려보다 3천년 앞서 나온 것입니다. 이것은 고구려가 배달 문명을 계승한 사람들이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홍산 문화’입니다. 처음 홍산 지역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에. 또 중국에서는 요하강 상류 지역에서 발견되었다고 해서 ‘요하 문명’이라고 부릅니다. 이것을 우리 이름을 붙인다면 ‘배달 문명’입니다. 이것은 세계에서 최고로 앞선 문명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배달 문명을 전설로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패배의식이나 열등의식은 극복해야 하겠지만 그렇다고 우월의식을 가져서도 안 됩니다. 그러나 이 정도의 역사의식을 가지면 전 세계 어디를 가서 어떤 문명을 봐도 열등의식은 갖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미국을 가든 유럽을 가든 위축될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외국에 가면 기가 죽고 위축이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 마음에 민족사에 대한 당당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상고사는 잘 몰라서 그렇고, 독립운동사는 일본에게 패배해서 그렇고, 현대사는 서구 문명으로부터 모방을 해서 살기 때문입니다. 이 세가지 부분에서 열등 의식이 있습니다. 

 


 

이것을 극복하려면 고대사는 사실대로 아는 것이 필요하고, 일제 침략사는 독립운동사를 좌우로 나누지 말고 실제로 어떻게 싸웠는지 복원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서구 문명에 대한 열등의식은 우리가 창조성을 키울 때 극복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것을 염두에 두고 자긍심을 좀 갖고 사셨으면 합니다.” 

 

홍익인간 재세이화의 건국 이념에 대한 해석은 정말 큰 감동이였습니다. 이렇게 높고 깊은 사상으로 나라를 건국했다고 생각하니 선조들에 대해 무한한 감사함과 더불어 자긍심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상고사와 독립운동사, 현대사에 대한 왜곡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점과 스님이 제시해 준 그 극복 방법에 대해 모두들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리고 오랜 단식 끝에도 불구하고 2시간이 넘도록 열정적인 강의를 해준 스님께 기행단 모두 큰 박수로 감사의 마음을 표했습니다. 

 

저녁 강연이 끝나니 밤 9시가 넘어 있었습니다. 1일째 일정을 모두 마친 기행단은 피곤한 몸을 이끌고 숙소로 향했습니다. 하지만 선조들에 대한 감사함과 자긍심으로 가슴은 점점 뜨거워지고 있었습니다. 

 

내일은 고구려의 두 번째 수도인 집안으로 가서 국동대혈, 장군총, 광개토대왕릉, 5회분 5호묘, 환도산성, 산성하무덤떼, 국내성을 둘러보며 고구려인들의 숨결을 느껴보는 시간을 가질 예정입니다.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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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희

역사공부가 하고 싶습니다^^

2017-12-29 08:21:25

클릭커

법륜스님 정말 감사드립니다

2015-08-22 12:28:32

김성례

우리나라의 연원은 한나라이나 그 한나라의 아들 중 한 명인 환인이 3천의 무리를 이끌고 내려와 토착세력인 원주민들을 다스리며 나라를 열었으니 환웅의 배달나라를 우리의 시원으로 보는 것이 맞다~ 홍익인간이란 선진문명인 이주민이 앞선 문명으로 원주민인 토착세력을 이롭게 하며 교화시켜 나아가는 것을 말한다. 인류 문명사적으로 대부분 이주민이 토착민을 억압하고 노예로 삼은 것에 비하면 우리의 건국이념인 홍익인간이 얼마나 훌륭한 지 제대로 앎으로써 우리는 그 어떤 민족이나 문명에 대해서도 당당해질 수가 있다. 제세이화 또한 기독교식으론 하늘의 뜻이 땅에서 이뤄지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환웅과 웅족이 결합하여 단군을 낳고 다시 부여의 해모수-해를 모시는우두머리-천손과 하백의 딸 유화부인-또 다른 토착세력의 결합으로 고주몽이 태어났다.

고구려를 이은 고려 그리고 고려를 이은 조선 그리고 대한제국- 용성스님의 나라의 주인은 백성이니 이를 대한민국으로 바꿔서 내려오게 되었다. 최근에 중국의 요하강 상류지역에서 발견된 유물- 홍산문명은 무덤이나 축성법이 고구려의 것과 유사하니 우리의 배달문명이 분명하나 중국은 동북공정으로 황하문명과 그 보다 1000-2000년 앞선 것인 요하문명을 자기네 것이라고 주장한다. 우리가 이제는 외국에 가면 위축되고 기가 죽을 일이 없으려면 우리의 상고사를 제대로 알아야 하고 독립운동사도 좌우 나누지 말고 그대로 알아야 일본에게 패배의식이 없을 것이고 이러한 우리 역사를 제대로 알고 앞으로 새로운 문명을 창조해갈 때 서양 것을 모방한 것에 대한 열등감도 없을 것이다. 스님의 역사 강의 정말 귀감입니다. 감사합니다.

2015-08-11 11:5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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