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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 스님께서는 백일출가에 입재하여 만배 기도를 마친 행자들을 위해 출가자의 마음 자세에 대해 법문해 주셨습니다.
새벽 4시30분, 스님께서는 문경정토수련원 대웅전에서 새벽 예불 및 천일결사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셨습니다.
▲ 문경정토수련원 대웅전
기도를 마친 후에는 공동체 대중들이 참석하는 발우공양에 함께 하셨습니다.
▲ 발우공양
발우공양을 마치고 나서 스님께서는 먼저 “어제와 오늘 불교대학 특강수련이 메르스 때문에 취소가 되었다”면서 “그렇지만 원래 잡혀 있었던 일정이었기 때문에 새벽 예불과 발우공양에 참석했습니다” 하고 인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발우공양에 참석한 대중들을 살펴보시더니 어제 입재 만배를 마친 25기 백일출가 행자님들을 보고선 환영 인사와 함께 출가자의 마음 자세에 대해 법문을 해주셨습니다. 먼저 ‘출가’와 ‘가출’의 차이에 대해 얘기해 주셨습니다.
“백일출가에 입재한 여러분 모두 환영합니다. 출가라고 하는 것은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집을 떠난다’ 이렇게 해석이 됩니다. 왜 집을 떠나는가? 집은 우리를 안온하게 하는 측면도 있지만 우리를 속박하는 측면도 있습니다. 그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롭기 위해서 집을 떠나는 것이죠. 대다수 사람들은 집을 속박으로 느끼기 때문에 집을 떠나고 싶어하지만 집을 나가면 속박에서는 벗어나는데 안온함도 같이 사라지니까 집을 다시 그리워하게 됩니다. 집을 그리워하는 이유는 집이 안온한 보호처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시 집을 찾게 됩니다.
그래서 집으로 들어오면 또 속박을 느끼고, 나가면 외로움을 느끼고, 그래서 다시 안온한 곳을 찾아서 들어오게 되고, 또 얼마 있으면 속박을 느낍니다. 그래서 우리는 속박은 없고 안온함만 있는 그런 집을 원합니다. 새로 결혼을 하면 그런 집이 될까, 외국으로 가면 그런 집이 있을까, 절에 가면 그런 집이 있을까, 이렇게 속박은 없고 안온함만 있는 그런 집을 찾아가는데 가보면 또 속박을 느끼고, 나오면 또 외로워지고, 이렇게 방황하는 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이것을 ‘가출’이라고 부릅니다. 집을 나오긴 나왔는데 더 좋은 집을 찾아 나왔기 때문에 새로운 집에 들어가면 또 속박을 느끼게 됩니다. 이렇게 들락날락하는 것은 가출입니다.
그러면 출가란 것은 무엇이냐? 집은 안온함과 속박 이 두 가지가 같이 있다고 아는 것입니다. 이 둘은 분리시킬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롭기 위해서는 이 안온함도 같이 버려야 합니다. 이 안온함마저도 버려야 출가가 됩니다. 즉 집을 불살라 버려서 돌아갈 집이 없는 것이 ‘출가’입니다.
여러분들은 직장을 다니다가 직장에서 속박받고, 가정을 이루고 살다가 가정에서 속박받고, 부모의 보호를 받고 살다가 부모에 속박이 되고, 그래서 늘 속박을 느껴서 ‘이제는 좀 자유롭게 살아보자’ 해서 이곳에 왔습니다. 그러나 집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났다는 자유로움은 잠시일 뿐 몇일만 살면 집의 안온함이 그리워집니다. 그래서 떠나온 곳을 자꾸 돌아보게 됩니다. ‘괜히 왔다’, ‘이 고생 안해도 될텐데’ 이렇게 시작도 하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려는 마음이 자꾸 커집니다. 그렇게 되면 이것은 출가가 아니고 가출이 됩니다.”
이어서 왜 백일출가를 시작하기 전에 만배를 시키는지 그 이유를 얘기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런 마음이 일어나는 것을 조금이라도 해소하려고 만배를 하는 겁니다. 집이 그리운 사람은 만배를 하는 중에 빨리 집으로 돌아가라 이런 얘기입니다. 사람이 어려움에 처하면 의지처를 찾게 됩니다. 만배는 일상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볼 때는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절을 하다보면 온갖 생각이 일어나게 됩니다. ‘괜히 왔다’, ‘집에 있는 게 나았을 걸’, ‘어떻게 오자마자 만배부터 시키냐?’, ‘다리 다치면 어떡하냐?’
그래서 만배하는 중에 자신의 까르마에 사로잡혀서 집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럼 만배를 끝내면 괜찮아지느냐? 그런 뜻은 아니에요. 만배 중에 일어나는 자신의 분별심 때문에 그만두는 사람은 여기와서 살아도 백일 안에 그만두게 됩니다. 그러니 그 자신을 위해서도 시간 낭비입니다. 출가를 해서 좋은 소득을 얻는 것이 아니고 괴롭게 보내다가 불교를 부정적으로 보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그만두고 가게 되면 다시 여기 찾아오는 것도 어려워집니다. 중간에 그만두었기 때문에 여기 오는 것을 마음에서 피하고 싶어지고, 백일출가 하다가 중간에 나갔다는 말도 듣기 싫어집니다. 좋은 마음을 내었는데 결과적으로는 원수가 됩니다. 여기 오지 않았으면 원수가 안 될텐데 와서 원수가 됩니다. 그래서 원수가 되지 않으려면 먼저 집으로 돌아갈 사람은 갈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만배입니다.”
다행이 오늘 발우공양에 참석한 분들은 모두 만배의 관문을 통과한 사람들이였습니다. 그래서 만배의 관문을 통과한 후 다음 과제는 무엇인지 말씀해 주셨습니다. 어려울수록 의지하는 마음이 많이 드는데 이제는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해 주셨습니다.
“이제 여러분들은 이 만배의 관문을 통과했습니다. 만배의 관문을 통과하면 수행이 저절로 되느냐? 아닙니다. 어떻게 다겁생래로 지은 무명 업식이 만배 한다고 없어지겠어요? 다만 하나의 관문을 넘은 것입니다. 즉 여기서 백일 정도 살 힘을 키웠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어쨌든 이것도 자랑스러운 일이죠.
수행의 목표는 모든 속박으로부터 벗어나서 자유로운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모든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서 행복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자유롭지도 못하고 행복하지도 못합니다. 우리의 목표는 자유롭고 행복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목표를 향해서 한발 한발 나아가는 사람을 ‘수행자’, 즉 ‘보디사트바’라고 말합니다. 괴로움에서 벗어난 사람을 이름하여 ‘붓다’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려움이 닥쳤을 때 그 어려움을 극복하려고 하기 보다는 항상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서 안온함에 들어가려고 합니다. 이것이 종교의 큰 목적 중에 하나입니다. 어려움에 처할 때 더 힘 있는 자에게 의지해서 안온함을 추구하려는 인간의 심리, 이것이 종교입니다.
그런데 불교는 이런 의미의 종교가 아닙니다. 어려울 때 의지하고 싶은 중생의 이 까르마를 극복하는 것이 불교입니다. 신의 노예가 되는 것이 아니라 신의 스승이 되는, 즉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도록 하는 것이 원래 불교의 가르침입니다. 어려울수록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는 것은 중생의 업식이고, 어려울 때 의지하고 싶은 그 마음을 극복해내는 것, 그래서 괴로움이 없는 사람이 되는 것, 그게 수행의 목표입니다.
여러분들도 이곳에 수행하러 들어왔지만 자기도 모르게 점점 신자가 되기 쉽습니다. 자꾸 의지하려고 합니다. 부처님께 의지하려고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법사님께 의지하고, 스님께 의지하려고 합니다. 즉, 잘 보일려고 합니다. 이런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이제는 그분들을 안내자로 삼아서 내가 그 길을 가야 합니다. 그럴려면 자발성이 있어야 됩니다. 자발적이지 않으면 그렇게 되기 어렵습니다.”
▲ 백일출가 입재자들
수행은 자발적으로 해야 한다는 것에 모두 고개를 끄덕이자 다음은 선배들을 문제삼지 말아야 한다고 얘기해 주셨습니다. 남들이야 계율을 어기든 말든 나는 나대로 갈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오리엔테이션도 받고 수행의 원칙을 잡아서 몇일 열심히 하다보면, 선배들도 원칙대로 안 하고 동료들도 원칙대로 안 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러면 ‘안해도 되네’ 이렇게 되기가 쉽습니다. 세상에 나가서 살면 세상에 물듭니다. 거짓말 하는 사람과 같이 살게 되면 거짓말을 하게 되고, 욕하는 사람과 같이 살면 욕하게 되고, 술 먹는 사람과 같이 살게 되면 술을 먹게 되는데, 이렇게 물드는 존재가 범부중생입니다. 그러나 수행자는 물들지 않는 자입니다. 옆에 사람이 술을 먹으면 그건 그 사람의 식성이고, 옆에 사람이 욕을 하면 그건 그 사람의 성질이고 말버릇입니다. 그건 그의 문제이고, 그것이 옳지 않다면 남이 다 먹어도 나는 먹지 않고, 남이 다 욕해도 나는 욕하지 않고, 남은 다 늦잠 자도 나는 일찍 일어나서 내 할 일을 하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남이 안 하면 나도 따라서 안 하는 사람이거나 내가 한다고 안 하는 사람을 미워하거나 비판하는 사람이 되기 쉽습니다. 내가 한다고 남이 안 하는 걸 비판해도 안되고, 남이 안 한다고 나도 따라서 안 하면 안된다는 겁니다. 그 사람이 안 하는 것은 그 사람의 인생이고, 그것이 옳다면 나는 내 인생의 길을 가야 합니다.
이제 오늘부터 ‘때 아닌 때 먹지 않는다’, ‘비닐에 쌓인 음식은 먹지 않는다’ 이런 계율을 받게 됩니다. 만약 ‘늦게까지 일해서 피곤하니 내일 아침 예불은 좀 늦게 해도 됩니다’ 이렇게 공지가 나가더라도 대중들이 다 늦게 해도 그건 그들의 일이고 나는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서 혼자라도 한다, 간식을 줘도 먹는 것은 그들의 일이고 나는 안 먹기로 했으니까 나는 안먹는다, 술을 한잔 하라고 해도 먹는 것은 그들의 일이고 안 먹는 것은 나의 일이다, 이런 자세가 되어야 합니다. 원칙을 정했으면 선배가 어떻게 하더라, 스님이 어떻게 하더라, 동료가 어떻게 하더라, 이런 얘기는 할 필요가 없어요.
자발적이라야 이런 태도를 갖지 자발적이지 않으면 ‘스님이 쉬라고 했는데’ 이렇게 되기가 쉽습니다. 자기가 자기 힘을 키우려면 거기에 구애받지 말아야 합니다. ‘안 먹기로 했으니 나는 안먹는다’ 이런 정도의 자세가 되어야 해탈로 갈 수 있습니다.
대중이 안 먹는데 혼자서 몰래 먹는 것은 계율을 어기는 것입니다. 먹어도 된다고 해도 안 먹는 자발성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할 수 있겠어요? 잘 안될 겁니다. 안 먹기로 했는데 혼자서 몰래 먹는 수준이겠지요. (웃음)
안 먹기로 했는데 혼자서 몰래 먹는 것은 계율을 어긴 범부중생이고, 먹어라고 해서 먹는 것은 보통 사람이고, 먹어라고 해도 안 먹는 것은 자기 인생의 주인이 자기가 되어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밖에 있을 때는 늘 이것저것 먹고 싶을 때 먹었기 때문에 먹는 것에 대해서는 별로 안 끄달릴 것 같은데, 때 아닌 때에 안 먹는 생활을 해보면 내가 얼마나 먹는 것에 끄달리는지 알 수 있습니다. 같이 살 때는 속박만 느끼고 집이 얼마나 좋은지 모르는데, 집을 떠나보면 집이 좋은 줄 아는 것처럼 자신의 까르마를 멈춰봐야 내가 거기에 얼마나 중독이 되어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먼저 점검을 해야 합니다. 내가 어떤 것에 끄달리는지 점검을 해야 합니다. 다음은 거기로부터 자유로워지려면 자기 수행의 원칙이 딱 있어야 합니다. 자기 혼자서 마음대로 원칙을 정하면 안돼요. 정해진 계율에 따라 지켜야 합니다. 그런데 공동 생활을 하기 때문에 대중이 다 하니까 나도 따라서 하기가 쉬워요. 세속에서 혼자서는 못하지만 대중이 같이 하니까 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가끔 필요에 따라서 원칙을 유예시킬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자기 중심을 잡고 갈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이 되면 수행자 소질이 있고, 그게 안되면 좋은 환경에 있으면 좋은 환경에 물들고, 나쁜 환경에 있으면 나쁜 환경에 물드는 수준입니다. 좋은 환경에서 좋은 것에 물드는 것이나 나쁜 환경에서 나쁜 것에 물드는 것이나 오십보 백보입니다. 그러니 남이 하고 안하고 따질 필요가 없습니다. 좋은 일은 남이 안해도 하고, 나쁜 일은 남이 해도 안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여기 백일출가 행자님들은 딱 새로운 마음으로 결심하고 들어왔기 때문에 자신만 마음을 먹으면 변화가 가능합니다. 그런데 여기 오래 산 사람들은 잘 안돼요. 이미 포기해 버렸기 때문이에요. (웃음)
좋은 것에 물이 들어서 아침에 깨우면 벌떡 일어나서 잘 해요. 그러나 ‘이래도 된다’ 이렇게 유예를 주면 좋아서 어쩔 줄을 모릅니다. 마치 학교 선생님이 오늘 수업 없다고 얘기하면 학생들이 펄쩍 펄쩍 뛰면서 좋아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자발성이 없이 하기 때문에 이렇게 됩니다. 자발성 없이 좋은 일을 하면 착한 사람일 뿐이지 수행자는 아닙니다. 해탈과 열반을 추구하는 수행자는 세상이 함께 해주면 좋지만, 세상이 함께 해주지 않아도 자기 갈 길을 갑니다. 그래서 붓다의 가르침은 세상을 거스른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수행자는 항의하고 싸우는 방식이 아닌 정말 개선을 원한다면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 말씀해 주셨습니다.
“초발심이 중요합니다. 이제 시작이니 오늘부터 원칙을 정해놓고 한번 해봐요. 그래서 정토수련원의 분위기를 여러분들이 확 바꿔보세요. 그렇지 않고 ‘선배들도 제대로 못하는데 뭐’ 이렇게 되면 안됩니다. 남을 따라 가면 안됩니다. 나쁜 행동은 금방 따라하기 쉽습니다. 아무리 교육을 해도 안바뀌는 이유는 윗물이 흐리기 때문입니다. 이럴 때 ‘선배들이 문제다’ 라고 얘기하는데, 원인은 맞지만 이렇게만 생각하면 개선할 길이 없어요. 선배들이 그렇든지 말든지 그것이 부처님 법이 아니면 안 따라가면 됩니다. 그것이 바른 길이 아니면 안 해야지요. 이런 자세로 해나가면 세월이 흐르면 개혁이 되어 버립니다. 기존 선배들은 제대로 못하더라도 새로 들어온 사람들부터 딱 바로 하면 수행 분위기가 바뀌는데 새로 들어온 사람 대부분이 그렇게 할 역량이 안되는 겁니다. 즉 그만큼 발심이 안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자발적인 수행자가 자꾸 자꾸 들어오면 정토회가 좀 문제가 있어도 시간이 흐르면 확 개선이 되어버립니다. 막 항의하고 싸워서 개선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윗물이 맑아도 밑으로 내려가면 흐려져서 시간이 흐르면 못해지는 쪽으로 가기 쉽습니다.”
그러면서 백일출가를 한 행자님들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누가 뭐라든 주어진 계율대로 할 수 있겠어요?”
“네”
“대답이 신통찮네요. 평생 하라는 것이 아니고 백일만 해보세요. 백일만 해보고 좋으면 계속 하고, 안 좋으면 그만두면 됩니다. 때 아닌 때에 먹지 않는다, 이거 백일 동안 할 수 있을까요? 이거 한 개라도 백일 동안만 딱 해봐요.”
“네”
백일 만큼은 해볼 수 있겠는지 묻는 질문에는 우렁찬 대답이 터져나왔습니다. 한 개라도 꼭 지켜보라는 말씀에 조금 마음이 가벼워졌나 봅니다. 마지막으로 스님께서는 거센 세속의 물결을 거스르는 것이 불교라고 하면서 남이 아닌 오직 나를 돌아볼 수 있어야 함을 강조했습니다.
“수행의 원칙이 이렇다는 겁니다. 선배가 해탈 안한다고 나도 해탈 안할 거에요? 선배가 중생놀음 한다고 나도 중생놀음 할 거예요? 내가 해탈하고 부처되려고 들어왔지 선배 본받으려고 들어온 것 아니지 않아요? 같이 해주면 좋은 일이지만 안해주면 나 혼자라도 가야 합니다.
만배 하는 게 쉬워요? 때 아닌 때 안 먹는 게 쉬워요? 만배도 했는데 때 아닌 때 안 먹는 걸 왜 못해요? 그런데 만배는 이를 악 다물고 해놓고 간식은 그 유혹을 못 이겨요. 그래서 예로부터 협박보다 유혹이 더 어렵다고 한 겁니다. 협박을 하면 이를 악 다물고 저항을 하거나 참는데, 유혹을 하면 금방 넘어가 버립니다. 만약 새벽 2시에 들어와서 4시 예불에는 참석 안 해도 된다고 공지하더라도 자기는 그냥 4시에 일어나서 예불을 하는 겁니다. 아무도 안해도 나 혼자 하는 겁니다. 그렇게 할 수 있으면 해탈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거센 세속의 물결을 거슬러 갈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이 전부 소비주의에 물들어 있다 해도 나는 거기에 물들지 않는 겁니다. 그래야 세상 속으로 들어가 살아도 흔들림이 없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여기처럼 격리된 공간에서 물을 좀 빼고 나가면 또 물이 들어서 들어오고 또 나가고 이렇게 됩니다. 그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나아요. 그러나 우리는 세상에 물들지 않는 자를 넘어서서 세상을 정화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은 우선 세상에 물들지 않는 자가 되기 위해서 지금 격리 수용되어 있는 거에요. 이렇게 격리 수용되어 있는데도 몰래 혼자서 물들고 그러잖아요.
그러니 여기에서 세상 속으로 나갈 것을 대비해서 법이 아닌 것은 따르지 않아야 합니다. 남이 하는지 안 하는지는 얘기할 필요가 없어요. 그 누구도 볼 필요가 없어요. 내가 되나 안 되나, 내가 짜증이 나나 안 나나, 오직 나를 봐야 합니다. ‘그 사람은 화를 내던데’ 이렇게 보면 안됩니다. 도반이 어떻게 하든, 선배가 어떻게 하든, 법사님이 어떻게 하든, 그건 볼 필요가 없어요. 내가 되나 안 되나, 오직 이것만 보고 정진을 해야 주인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 처음 들어왔다고 하니까 이런 얘기를 해주는 겁니다. 벌써 오래된 사람들은 이런 얘기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아요.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스님께서는 오늘 백일출가를 처음 시작하는 분들을 위해 조금이라도 수행적 관점을 분명하게 잡아주고자 정성껏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특히 ‘남 볼 필요 없이 오직 나만 보라’는 말씀은 큰 울림으로 다가왔습니다.
스님의 법문을 듣고 백일출가 행자님들은 기쁨의 미소를 지었습니다. 오늘부터 백일출가 생활을 시작하게 되는데 스님 법문이 큰 선물이 된 것 같습니다.
발우공양을 마치고 스님께서는 곧바로 서울로 이동하셨습니다. 원래 오늘은 문경정토수련원에서 정토불교대학 특강수련 법문을 해주기로 시간을 비워 놓으셨는데 메르스 때문에 취소가 되는 바람에 오랜만에 여유가 생겼습니다. 아침 10시30분에 서울 정토회관에 도착한 스님께서는 하루 종일 집무실에서 업무를 보셨습니다.
내일부터 3일 동안은 중국을 방문하여 폐교 위기에 놓인 조선족 학교들을 어떻게 지원할 것인지 답사를 하실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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