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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새벽 1시가 되어 문경 수련원에 도착하신 스님께서는 새벽에 몸이 좀 불편하다고 하시면서 방에서 기도를 하신 후 6시부터 불대 특강수련 법문을 하셨습니다.
이번 수련에는 서울제주지부와 광주전라지부 불교대학생 380명과 봉사자 80여명 등 총 460여명이 참가했습니다. 불교대학생들은 그동안 영상으로만 접해왔던 스님을 직접 뵙고 그동안 공부하면서 풀리지 않던 의문을 풀 수 있는 즉문즉설 시간을 가졌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감정을 기준으로 할 때 “하고 싶다”와 “하기 싫다” 의 두 가지가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사는 환경의 조건은 “해도 되는 것”과 “해서는 안되는 것” 두 가지가 있습니다. 이 감정과 환경의 조건들을 결합하면 경우의 수는 4개가 생깁니다. 첫째, 하고 싶은데 해도 되는 것, 둘째, 하고 싶은데 해서는 안되는 것, 셋째, 하기 싫은데 해야 하는 것, 넷째, 하기 싫은데 하지 않아도 되는 것입니다.
하고 싶은데 해도 되는 조건이 만날 때는 하고 싶은 데로 하면 되고, 하기 싫은데 하지 않아도 되는 조건을 만나면 안해도 되니 문제가 안됩니다. 그런데 하고 싶은데 하지 말아야 하는 조건을 만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고 싶은 것을 왜 못하게 하느냐’고 난리입니다. 그런데 쥐가 배가 고파서 쓰레기장을 뒤지다가 접시에 맛있는 고구마가 놓여있는 것을 보고 너무 좋아서 먹으려고 하니 쥐약이 들어있다고 합니다. 이럴 때 먹어야 하나요? 안 먹어야 하나요? 이때 쥐가 ‘배고픈데 어떻게 안 먹어요?’ 하면 먹지 말라고 할까요? 먹고 죽어라고 할까요? 이처럼 아무리 하고 싶어도 그것을 했을 때 큰 손해가 난다면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고 싶은 걸 하는 게 자유라고 하면, 자유는 네 가지 경우 중에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과 하고 싶지 않을 때 하지 않는’ 이 두 가지밖에 없게 됩니다. 그러니 인생의 절반만 자유이고 절반은 속박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필연적으로 자유와 속박이 되풀이 될 수밖에 없어요. 이것이 윤회이며, 우리는 윤회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완전한 자유, 즉 고가 발생하지 않으려면, 절반의 속박을 해결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는 ‘하고 싶은데 안 할 자유가 있고, 하기 싫을 때 할 자유가 있다면’ 가능합니다. 어떤 조건이 와도 나의 자유가 속박되지 않을 때 참자유, 즉 해탈이라고 합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자유는 반쪽 자유, 즉 윤회입니다.
우리가 해탈, 참자유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연습을 많이 해야 합니다. 하고 싶을 때 멈추는 연습, 하기 싫을 때 해버리는 연습입니다. 오늘 아침 일어나기 싫을 때 일어나는 자유, 혼자 자고 싶을 때 여럿이 자는 자유를 누리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디를 가나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에 메어 삽니다. 이런 상태에서는 죽을 때까지 자유와 행복을 추구해도 오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공부하는 목적은 기술이나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바로 이 문제를 풀려는 겁니다. 여러분들은 “스님, 기도, 명상 어떻게 합니까?” “절을 어떻게 합니까?”, “목탁을 어떻게 칩니까?” “공이 뭡니까?”, “무아가 뭡니까?”이렇게 기술 습득과 지식에 대해 질문합니다. 기술과 지식은 모르면 물어볼 수는 있으나 이런 것은 행복으로 가는 방법이 전혀 아니예요.
진정으로 자유롭고 행복해지려면 지혜로워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삶은 왜 지혜롭게 안될까요? 결혼할 때는 행복하려고 합니다. 결혼 해보니 나아졌어요? 여러분은 매일 돈이 많으면, 승진을 하면, 애가 있으면 지금보다 더 나아질까 해서 이렇게 몸부림을 치고 살고 있어요. 그런데 결과는 나아진 게 없잖아요. 그런데 깨달음의 장에 다녀오거나 즉문즉설 듣고 수행하면서 전보다 조금 더 행복해진 사람은 예전보다 조금 더 지혜로워져서 그렇습니다.
지혜에는 세 가지가 있어요. 문혜, 사혜, 수혜가 있는데, 이것은 지혜가 어떤 것인지에 대한 지식에 불과합니다. 불교로 박사 학위를 받아도 행복해지지 않습니다. 즉문즉설 1,000개를 듣고 분류해서 ‘즉문즉설의 원리가 무엇이다’라고해서 박사학위를 받으면 행복해질까요? 이것은 지식적으로 많이 아는 것 뿐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이 문경에 와서 무엇을 얼마나 더 배우는 지보다 더 중요한 것은 화장실 가서 약간 불편할 때 그 원인이 무엇인지 아는 것입니다. 화장실 가서 불편할 때는 화장실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것이 내 습관의 문제입니다. 지금 계절에 화장실이 크게 불편하지 않지만 겨울에 화장실에 가면 밑에서 찬바람이 쏴악~ 불고, 냄새가 나면 여러분들은 당장 화장실 문제라고 여기죠. 그러나 이때 ‘화장실 문제가 아니고 내 습관의 문제다’로 돌이킬 수 있으면, 해탈로 가는 길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화장실이 문제다. 세수도 못하고...’ 이렇게 궁시렁하다가 스님께 ‘공이 뭡니까’ 이렇게 질문합니다. (대중 웃음) 공부는 지금 이 순간해야 하는데, ‘지금’은 늘 놓치고 ‘생각’만 가지고 질문합니다. 여러분들의 습관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 이것이 참자유, 참행복으로 가는 길입니다. 문경에 와서 불편을 느껴야 ‘내가 이런 습관을 가지고 있구나’ 하고 알 수 있습니다. 불편을 안 느끼면 내가 다 잘하는 줄 알게 됩니다.
그리고 관점이 확실히 바뀌어야 합니다. 원효가 해골바가지인 줄 모르고 물을 마셨을 때에는 불편하지 않았는데, 해골바가지인줄 알고는 구역질을 하며 토했습니다. 그때 ‘똑같은 바가지이고 똑같은 물인데 왜 불편할까?’ 생각하다가 더럽고 깨끗함이 물이나 바가지에 있는 것이 아니고 내 마음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똑같이 잠을 자고 화장실 쓰는데, 왜 나는 불편할까?. 조건이 문제면 모두가 불편해야 하는데 좋았다는 사람도 있잖아.’ 이것을 자각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조건부 자유, 조건부 행복이 아니라, 무조건 이래도 좋고 저래도 괜찮은, 자기가 하고 싶은 것으로부터의 자유를 지향해야 합니다. 하고 싶은 것은 무조건 해야 한다는 것은 쾌락주의예요. 무조건 안한다고 하는 것은 고행주의입니다. 그런데 불교는 이 둘의 양극단을 떠난 중도주의입니다.
여러분들이 공부할 때 목표점이 없으면, 1년을 공부해도 발전이 없고 2년을 공부해도 변화가 없습니다. 목표가 분명하면 ‘놓쳤구나’ 이러면 실패가 연습이 되는 거예요. 그러면 어느 순간 될 때가 있는 것입니다. 내가 할 일은 여러분들에게 관점을 바로 잡아주는 것이고, 연습은 여러분들 자신이 스스로 해야 합니다. ”
스님께서는 시종일관 애정어린 마음으로 이제 갓 한 학기를 마친 불교대학생들이 수행자의 관점에서 어떤 마음가짐으로 수행정진해야 하는지에 대해 상세히 말씀해주셨습니다.
이어서 스님께서는 불교대학생으로부터 사전에 받은 질문내용을 하나씩 소개하면서 질문에 대해 답변해 주셨습니다. 여러 질문 중 대표적인 것 한 가지만 소개합니다.
“의무와 봉사의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청소나 정리 정돈 등은) 절에서나 가정에서 우리 모두가 해야 하는 의무 아닌가요? 너무 무거워 봉사로 포장하는 것 아닌지요?”
위의 질문에 대해서 스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해주셨습니다.
“의무는 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 하는 것, 봉사는 하기 싫은 것을 능히 하는 것이예요. (대중 박수) 어떤 일을 하고 돈을 받는 것을 노동이라고 합니다. 장사가 주고 받는 것이라면, 봉사는 주고 받는 것이 아니라 그냥 내가 필요에 의해 하는 것입니다. 죽어라 일을 시키고 돈을 안준다고 하면 강제 노역, 노예라고 해요. 돈을 받으면 노동이라고 하고, 아무 조건 없이 내일처럼 하면 자원봉사라고 해요. 그러니까 결론을 내리면 자원봉사는 사랑과 같습니다.
여러분은 실제로 사랑을 나누고 삽니다. 부부관계는 사랑이지요. 부부관계를 했다고 계산을 하나요? 안하잖아요. 아이들 옷 갈아입히고 빨래해서 입히는 것을 계산하나요? 안하잖아요. 그러니까 사랑을 나누고 사는 거예요. 정토회에서 일을 하고 돈을 받으면 노동이 되며, 돈을 조금 받으면 저임금이고, 그러면 내가 악덕기업주가 되는 것이예요. 그런데 여러분들이 정토회에서 돈을 안받고 일하면 봉사고, 봉사는 사랑이예요. 스님은 좋은 기업주도, 악덕기업주도 되고 싫지 않아요. 여러분들과 사랑을 나누고 싶은거예요.
노동의 진정한 해방은 노동이 놀이가 되는 것입니다. 놀이는 사랑입니다. 우리의 재능을 마음껏 나누고, 거래를 없애는 것이 사랑입니다. 일을 안하는 것이 아니라 사고 파는 거래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크게 생각하면 수행은 내가 주인이 되는 것이고 사랑을 나누는 일이며, 조건 없이 베푸는 것이예요. 조건은 거래입니다. ‘부부는 사랑이다’ 하지만 실제로 부부지간에도 거래하고 있잖아요. ‘살아보니 손해다’라고 생각해서 살까 말까 고민하며 머리가 아픈 것은 거래하기 때문이예요. 애들한테 까지도 그래요. ‘내가 너 키운다고 얼마나 고생했는데’ 라고 생각해요. 친구지간에도 매일 거래 하는 거예요. ‘술을 3번 샀는데’, ‘이사 갔을 때 도와줬는데’라고 생각하며 섭섭해 하는 것은 장사하고 있는 거예요. 태어나서 장사만 하고 사니까, 머리가 자동적으로 그렇게 돌아가는 거예요. 장사를 하고 있는데 어떻게 진정한 친구예요. 사랑을 해서 괴로운 게 아니고, 장사를 해서 괴로운 거예요.
그래서 ‘봉사하고 보시해라’라고 하는 거예요. ‘주인되는 연습을 해라’ 하는 것은 사랑하는 것을 연습하는 것이예요. 이렇게 보시를 자꾸 하다 보면 내 남편에게도 할까요? 안할까요? 저절로 됩니다. 집에서만 하는 것은 밖에서 안하게 됩니다. 남의 자식에게 잘하라고 하면 자기 아이는 지가 알아서 하게 됩니다.”
라고 위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해주시고, 다음과 같이 마무리 말씀도 해주셨습니다.
“공부하는 기본 원리를 터득하셨어요? 우리가 공부하는 목표는 해탈과 열반이며, 이것으로 가는 길은 기술과 지식이 아니라 지혜입니다. 지혜로운 것은 이치에 밝은 것이예요. 심리와 마음, 몸뚱이의 작용, 세상 사람들, 사회가 어떻게 작용하는지 등 이것을 이해하면 문제를 푸는데 도움이 됩니다. 이해를 못하면 욕만 나오고, 미친 놈, 죽일 놈, 하면서 미움만 생깁니다. 그러면 내가 괴롭습니다. 이해를 하게 되면 여러분들이 좀 더 밝아지고 가벼워집니다. 그러면 화장을 덜 해도 되고, 안 해도 됩니다. 자연스레 얼굴에 생기가 돕니다. 녹슨 철판에 페인트를 칠하면 자꾸 벗겨지고 지저분해져요. 여러분들이 마음이 더러운데 화장만 자꾸하면 덕지덕지 되어요. 그래서 여러분들은 저녁에 지우고 아침에 다시 화장해요. 마음이 행복하면 화장 안해도 좋아요. 행복이 영원한 화장입니다.
이제 수행도 기분 좋게 할 수 있겠지요?. 밥을 늦게 줘도, 안 줘도 불만이 없어야 합니다. 이것을 긍정적 사고라고 해요. 긍정적인 사고위에 개선할 것이 있으면 개선을 하면 좋아요. 불만으로 하지 말고요. 앞으로 더 나아가기 위한 개선을 해야 합니다. ‘불편은 내 문제다’ 하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상대가 하고 안하고는 그 사람의 문제입니다. 이게 말이 쉽지, 쉬울까요 안 쉬울까요? 안쉽겠지요. 그래서 연습이 필요합니다. 이런 연습이 수행입니다. 열심히 연습해보세요.”
라고 하시면서 스님께서는 3시간 동안 꼼짝도 하지 않으시고 봄불교대 학생들에게 해탈과 열반의 길을 자상하게 일러주셨습니다. 학생들의 표정도 문경 정토수련원의 맑은 공기만큼이나 밝고 가벼워 보였습니다.
불대 특강후 스님께서는 바로 새터민 가족 나들이가 있는 부여로 향했습니다. 도착하니 점심시간이어서 점심공양을 먼저 하셨습니다. 좋은벗들이 새터민 지원할 때 처음 지원했었던 김홍익 거사님이 오랜만에 오셔서 스님께 인사를 드렸고 함께 공양을 하시면서 그간에 있었던 이야기들 - 아들 이야기, 직장이야기, 현재 북한의 상황등 -을 나누었습니다.
이어진 새터민 노래자랑을 신나게 들으신 후, 궁남지로 이동해서 먼저 화지산에 세운 백제오천결사대출정식 계백장군동상을 둘러보셨고, 길을 따라서 다시 서동과 선화공주의 사랑이야기를 담은 서동공원의 궁남지와 포룡정을 둘러 본 후 오늘 강연이 있는 부여 박물관으로 이동했습니다. 조금 시간이 있어 부여박물관을 잠깐 관람했습니다.
관람을 마친 새터민들이 하나 둘 스님과의 즉문즉설을 위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자리가 3분의 2 가량 찼을 때 스님께서 무대 위로 올라가 아까 노래자랑이 성에 덜 차지 않았냐고 말씀을 꺼내십니다. 야외라 제대로 집중이 안 되고, 춤과 노래를 좋아하는 새터민들이 마음껏 놀지 못한 것을 염두에 두셨던 듯합니다. 아니나 다를까 아까 못한 사람 지금 노래하라고 하니 여기저기서 손을 번쩍 듭니다. 공연장 안에서 들리는 노래소리에 다른 새터민들도 속속 들어와 어깨를 들썩입니다. 노래를 마친 한 새터민이 스님도 한 곡 하셔야 한다고 마이크를 넘겨서 스님의 선창으로 다같이 ‘고향의 봄’을 불렀습니다.
예정된 시각을 조금 넘기기는 했지만 강연은 어느 때보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상대에 따라 달리 설법하는 것이 즉문즉설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은 중국에서 카톨릭 세례를 받았으나 한국에서 인정이 안 되어 고민인 여성, 기도하면 소원이 이루어지는지 묻는 어린이, 우리 대에 통일이 될지, 또 통일인 된다면 새터민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 묻는 여성, 고향의 가족을 생각하면 늘 죄책감에 마음이 아프다는 여성, 자신의 정체성이 고민된다는 남성 등의 질문이 있었습니다. 이 중 몇 가지를 전하겠습니다.
“저는 중국에 오래 살다가 한국에 왔습니다. 중국에 살 때는 쫓겨 다니느라 생각을 못했는데 여기 오니 고향 생각, 가족 생각이 너무 많이 납니다. 우리 대에 통일이 되겠습니까?”
“통일의 가능성은 매우 높아졌습니다. 또 정치적으로 꼭 통일이 안 되더라도 남북한이 자유롭게 왔다갔다 할 수 있어 사는데 크게 지장이 없는 상황은 조만간 올 것입니다. 지금 북한은 현재의 체재를 유지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경제나 사회구조 같은 하부구조가 거의 붕괴됐습니다. 그런데 주체사상, 정치, 군대 같은 상부구조는 아직도 탄탄하지요. 하지만 하부구조가 약하기 때문에 상부구조 역시 자생력을 갖기가 어렵습니다. 개선을 해서 살아남든지 개선을 못하면 붕괴가 되든지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개선을 한다는 것은 내부에서 개혁개방 정책을 취한다든지 해서 서서히 변화 되는 것이고 붕괴된다는 것은 갑자기 폭발적으로 변화가 오는 거겠죠.
북한은 이름은 공화국이지만 현실은 왕조와 같습니다. 결정권이 왕한테 다 있기 때문에 인민들이 아무리 반발을 해도 쉽게 안 무너집니다. 또 정권이 무너져도 북한이라는 국가는 유지가 되는 거지, 나라가 없어지는 게 아닙니다. 만약 북한에 변고가 생기더라도 중국은 조중동맹을 근거로 개입할 수 있고, 미국은 힘으로 밀어붙여 개입하겠지만 현재와 같이 남북이 적대 상태에서는 우리가 개입할 수 있는 국제법상의 근거가 없습니다.
남북한의 교류협력이 잘 되어 국가 연합의 형식을 취해 놓으면 만일의 사태에 가장 먼저 개입할 수 있는 법적 권한이 우리에게 있고, 국제적으로도 저건 korea 내부문제라고 쉽게 받아들이겠지만 지금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따라서 남한 정부가 통일 정책을 좀 더 적극적으로 펴나가야 하는 겁니다. 물고기 잡으려면 미끼를 줘서 통 속으로 들어오게 해야 하잖아요. 국민들도 그렇고 자꾸 감정적으로 대응하니까 지금 상황이 안 좋은데, 이성적으로 대응하면 여러분들의 아픔도 좀 더 짧아지고 남북한 모두의 미래에 큰 이익이 됩니다.
여러분들도 여기 있으면 북한에서보다는 잘 살지만 남한 사람만큼 성공하기는 현실적으로 힘들잖아요. 장기적으로 인생의 목표를 통일조국이 건설될 때 내가 내 고향을 건설하는 역할을 하겠다고 하면 여러분에게 더 희망이 있습니다. 통일이 되면 체제나 경제나 구조가 남한 중심으로 통일이 될 거기 때문에 여러분이 불이익을 받을 일이 없습니다. 그러니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여러분이 통일에 앞장서야 합니다. 한일 관계가 나빠지면 일본에 사는 한국 사람이 힘들 듯이 남북관계가 나빠지면 여러분도 힘들고 북쪽 가족들도 더 고통을 받습니다. 지금 힘들어도 통일을 지향하면 여러분들이 여기서 배운 앞선 기술이나 모아놓은 자본을 가지고 고향에서 성공하고 통일 조국 건설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에게도 쨍하고 볕들 날이 있을 테니 지금 처지를 비관하지 말고 희망을 가지고 사십시오.”
스님의 말씀에 새터민들은 가슴이 다 트이는지 크게 박수를 쳤습니다. 다음은 두고 온 가족생각에 괴롭다는 여성의 질문이었습니다.
“고향을 떠난 지 20년이 되고, 한국 온지는 5년 되었는데 마음이 많이 괴롭습니다. 아침마다 스님 즉문즉설을 들으려고 매일 유투브를 찾아 듣습니다. 얼마 전에 동생과 20년 만에 통화를 했는데 그러니까 조금 나은 것 같습니다. 두고 온 형제들에게 늘 미안하고 죄스러운 마음인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지금 여기서 매일매일 울면서 걱정한다고 동생들의 처지가 좋아지나요? (아니요.) 그러면 내 인생은? (안 좋아요.) 그런데 내 인생에도 도움이 안 되고, 동생도 안 좋은 일을 왜 해요? 차라리 어디 가서 즐거운 마음으로 일을 더 하든지요. 잠 못 들고 우는 시간에 일을 더 하지. 아무리 못해도 최저 임금이 시간당 5천원이잖아요. 그 시간에 일을 더 하면 한 달에 12만원 되잖아요. 그러면 100달러죠. 그러면 동생한테 매월 100달러를 보내주는 게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아니면 여기서 매일 우는 게 도움이 될까? 북쪽에 있는 동생은 남쪽에 있는 언니가 매일 우는 게 좋을까, 즐겁게 사는 게 좋을까요?
괴로운 마음과 감정은 백분 이해를 하지만 그러나 그것은 어리석은 거예요. 나라도 하나 넘어 왔으니 지금 도와주려면 도와줄 수 있잖아요. 어차피 둘 다 못 살 때는 나 혼자라도 살아야지요. 나만 살자는 게 아니라, 나 혼자라도 살아야 한다는 거예요. 내 가족이 죽는데 어떻게 나만 살 수가 있나, 감정적으로는 이렇게 느끼지만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면 그렇지가 않습니다. 여기 와 혼자 잘 산다고 죄의식을 가질 필요가 없어요. 나라도 여기 와서 가족을 도와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으냐, 이렇게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여기 오느라 가족들이 감옥에 가고 중국에서도 이리 저리 팔려가고 온갖 아픔이 있었지요. 그런데 남한에서도 이런 고통은 있었습니다. 독재시대 때 시위하다가 많이 감옥가고 죽었습니다. 북쪽에 가족이 반동분자로 몰려서 죽은 경우 많았죠? 남한에도 빨갱이로 몰려서 몰살당한 경우가 많습니다. 제주에서 4.3 사건으로 3만 명이나 희생당하는 등 아예 한 마을이 통째로 몰살당한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가 이런 아픔을 안고 살고 있으니 내 후손들은 다시는 이런 아픔을 갖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첫째 한반도에 다시는 전쟁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또 미래의 이익을 위해서 통일로 나아가야 합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오늘도 살았네’ 하고 기분 좋게 생각하세요. 과거의 불행을 자꾸 생각하면 미래의 불행을 만드는 겁니다. 웃으면서 사세요.”
‘웃으면서 살겠습니다’ 한번 크게 해보라는 스님 말씀에도 질문자는 쉽사리 울음기를 거두지 못합니다. 오늘날에도 반복되는 민족의 고통에 듣는 이들도 가슴이 찡해옵니다. 스님은 이어 부여에 왔으니 부여의 역사에 대해 좀 알고 가야 한다며 우리 민족의 기원과 부여에 대한 짧은 역사 강의를 하셨습니다.
“우리 민족의 역사는 길게 보면 9천년이 넘습니다. 우리 민족이 맨 처음 세운 나라는 환인의 한나라입니다. 한은 아주 크다는 뜻으로 한나라는 약 3천 년간 지속되었습니다. 그러다 그중 3천여 명 가량이 동북아시아로 이주하여 나라를 세웠는데 그것이 신시, 즉 배달나라입니다. 우리의 개천절은 배달나라를 연 날에서 기원합니다. 배달나라의 임금은 환웅이라 불렀고 천 오백여년간 나라가 유지됩니다. 후에 임금의 아들과 토착민의 딸이 결혼하여 낳은 아들이 새롭게 왕이 되어 나라를 세우니 그것이 단군의 조선나라입니다.
조선은 청동기문명이 대단히 발전한 나라였는데 청동기문명에 안주하다보니 철기의 발달이 늦어지고 중국의 한나라에 밀려 많은 영토를 잃게 됩니다. 조선을 이어 받아 건국된 나라가 부여인데 부여는 다시 동부여, 졸본부여, 남부여로 나뉩니다. 졸본부여는 고구려로 이어지고 남부여가 바로 백제입니다. 백제가 수도를 옮기면서 이곳의 지명을 부여로 바꾼 데는 부여를 계승하는 나라라는 뜻이 있습니다. 나중에는 신라가 통일을 했지만 백제의 문화와 기술은 상당히 우수하고 앞선 것이어서 통일 후 신라의 문화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역사 이야기가 흥미로운지 ‘재미있냐’고 묻는 스님 말씀에 새터민들은 ‘네’하고 크게 답합니다. 이번에는 젊은 남성의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면서 ‘열심히’라는 기준을 잘 모르겠습니다. 한국 사람인 것 같은데 아니고. 제가 누구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작년에 전 세계를 다니면서 강연을 했는데, 그들의 질문이 자기 질문하고 똑같아요. 40년을 독일에서 독일남자랑 살았는데 독일 사람도 아니고, 한국에 돌아가도 한국 사람도 아니고 내가 도대체 누구요? 합니다. 남의 기준을 적용하지 말고 내 기준을 만들어야 합니다. 질문자는 북한에서도 살아보고 남한에서도 살아봤지요. 이런 사람은 희귀합니다. 거기에 대해 당당하고 자부심을 가져야 합니다.
남한에서 차별받는다 생각하지 말고, 내가 북한에서 태어나 그동안 북한에 충성했는데 남한에서 받아주고 시민권도 주고 집도 주니 고맙다고 생각하면 나쁘게 여길 일이 없습니다. 그래도 내가 북에서 왔으니까 오자마자 시민권도 주고 하지, 중국이나 베트남에서 왔으면 아무리 오래 살아도 시민권을 쉽게 얻을 수 없습니다. 제도적으로 차별하는 것은 개선해야지만, 사람들 사이에 일어나는 관습적인 차별은 시간이 필요하니까 감수하고 그나마 이렇게 시민권도 주고 집도 주니 감사하다고 마음을 바꾸면 좋겠어요.”
질문자는 씩씩한 목소리로 알겠다고 대답을 합니다. 모든 질문자의 질문이 끝난 후 다시 한 번 노래가 이어집니다. 어떤 여성은 고향을 떠나온 마음을 시로 낭송하여 공감을 자아내기도 하였습니다. 남쪽에서도 답가를 하라 하여 대전에서 온 한 봉사자가 나가 ‘찔레꽃’을 흐드러지게 불러 흥을 더욱 돋우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옆 사람과 손에 손을 잡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부르는 것으로 강연을 마쳤습니다. 새터민들의 얼굴을 보니 묵은 체증이 내린 듯 시원하다는 표정들이었습니다. 이렇게 오늘 서로 고통을 이해하고 화합하듯 통일이 이루어지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든 강연을 마치고 많은 새터민들이 스님께 와서 인사를 하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중에 ‘기도를 열심히 하면 소원이 이루어지는지’ 물었던 초등학교 여학생이 와서 스님께 귀속말로 소곤소곤하고는 환하게 웃었습니다. 나중에 스님께서 그 아이가 와서 한 이야기를 들려주셨는데, “스님! 소원이 이루어지도록 열심히 기도할께요. 제 소원은 통일이예요” 라고 했답니다. 초등학생이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 기특하기도 했지만, 비록 한 사람이지만, 우리의 미래가 환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이 어린이가 잘 자라서 통일일꾼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봅니다.
새터민과의 일정을 마치고 대전법당으로 오는 길에 백제 왕릉원이 있는 능산리 고분군을 둘러보셨습니다. 능산리 고분군에는 백제의 왕족 무덤 5개가 있었고, 그 옆으로 가다보면 의자왕 단비와 태자 융의 비가 있었습니다. 의자왕은 백제 마지막 왕으로 당에 볼모로 가 있어서 유해를 찾을 수 없었던 것을 백제의 후예들이 중국 낙양에 있는 무덤을 찾아 흙을 가져와서 단을 꾸미고 의자왕을 기리기 위해 마련한 것입니다.
저녁에 대전법당에 도착해서는 원고교정과 영상점검등을 하신 후 하루일과를 마무리 하셨습니다.
내일은 청주, 전주 희망강연이 있는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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