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5.5.16. 청년리더십아카데미 경주역사기행

 

 

  어제밤 10시에 인천에서 출발해서 경주로 오다가 운전자가 졸려 선산휴게소에서 2시간 정도 자고 오느라 오늘 새벽 430분에 두북에 도착한 스님께서는 잠시 쉬셨다가 아침공양을 드신 후 어제 스승의 날에 각 강연장에서 받은 꽃다발을 정리하셨습니다. 모두 풀어서 다시 나누어 여러 꽃병에 나누어 꽂았습니다.

 

 

그리고 아침기도를 하신 후 지난주에 클로버를 제거한다고 했는데도 또 다시 여기저기 클로버가 보여서 스님께서는 다시 호미를 들고 마당 여기저기에 남아있는 클로버를 제거하였습니다.

 

 

10시 청년리더십아카데미 경주역사기행에 앞서 잠시 경주터미털 앞에서 지역인사와 잠깐의 미팅을 가진 후 법흥왕릉으로 향했습니다.

예정시간 보다 조금 늦게 도착했지만 법흥왕릉에 먼저 도착한 60여명의 청년들의 명랑한 인사를 받으며 경주역사기행을 시작하였습니다.

 

 

스님께서는 우리가 통일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지금 우리 이웃 경험과 과거 우리의 경험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첫째, 이웃경험을 참고하기 위해 독일탐방을 다녀오고, 둘째로 우리민족사의 전통성을 계승한 고구려발해를 알기 위해 동북아 역사대장정을 다녀오고, 셋째, 과거의 우리 역사적 경험을 배우기 위해 신라통일에 대한 경주역사기행에 다녀 와야 한다고 말씀하시며 오늘 강의를 하게 된 배경을 설명하였습니다.

 

 

신라의 삼국통일에서 우리는 두 가지를 살펴봐야 합니다. 첫째, 신라는 동쪽에 치우친 작은 부족국가였는데 어떻게 급성장하게 되었는지? 둘째, 한국사의 비주류인 신라가 어떻게 민족사의 주체로 등장할 수 있었는지? 입니다.

 

AD400년경에만 해도 가야와 왜(일본) 연합군이 신라를 침공하게 되는데, 신라는 광개토대왕에게 사신을 보내 신하의 예를 취하고 고구려의 도움을 받아 가야왜 연합군을 격파하게 됩니다. 그만큼 신라가 작은 나라였어요. 그런 신라가 부흥하기 시작한 것은 법흥왕때 인데, 이때 신라는 개혁개방 정책을 취했어요. 개혁정책으로 율령을 반포해 국가체제를 제대로 갖추고, 개방정책으로 가야와 통합하기 위해 150년 동안 금지해온 불교를 공인했습니다.

 

신라가 내부 개혁을 통해 가야인들이 특별히 손실을 보지 않도록 법으로 정한 겁니다. 마치 남북이 통일된 후 남한에서 민족화해법이란 것을 만들어서 북한 관료들 책임을 묻지 않겠다, 공무원 시험 볼 때 불이익 주지 않겠다와 같은 내용을 법으로 보장해 준 것입니다. 그리고 가야의 신앙을 인정해 주기 위해 불교를 공인하고, 가야의 왕족을 신라의 왕족으로 인정해 줍니다. 강자가 약자한테 양보하면 포용이고, 약자가 강자한테 양보하면 굴복입니다. 신라가 가야를 굴복시킨 게 아니고 신라가 가야를 포용합니다. 강자가 이렇게 포용하기 쉽지 않습니다. 또 약자는 강자에게 저항하고 싶지 포용당하고 싶지 않아요. 그러니까 신라가 억지로 가야를 굴복시키려 했으면 가야가 저항했을 텐데, 신라가 포용하니까 가야가 합의한 겁니다. 신라와 가야는 이렇게 합의통일을 한 것입니다. 이게 신라가 비약적으로 성장한 핵심적인 요인입니다.”

 

 

스님 말씀을 들으며,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어려운 평화적 합의 통일의 역사를 우리 조상에서 발견할 수 있다는 것에 긍지가 느껴지고, 조상의 지혜를 살려 우리의 남북통일문제를 풀 수 있겠다는 생각에 희망이 생겼습니다.

 

이어서 진흥왕릉으로 이동하였습니다. 진흥왕릉에 도착하자 스님의 설명은 계속 이어졌습니다.

 

진흥왕은 함경남도 함흥을 넘어 황초령과 마운령의 순수비를 세우고, 한강유역에는 북한산 순수비를 세우고, 대가야를 복속시켜 창령 순수비를 세웠습니다. 신라는 지금의 경상남도와 전라남도 일부 여수 순천 남원까지, 경기도 전부, 충청북도, 황해도 일부, 함경남도 일부까지 영토가 확대됩니다. 그래서 왕호가 영토를 확장했다고 해서 진흥입니다. 신라를 크게 나누면 초기 부족국가 시기가 있고, 그 다음 신라의 중흥기와 통인신라시기 세 개로 나뉩니다. 신라의 중기는 영토가 확장된 법흥-진흥왕 시기 50여년, 유지 관리한 진지-진평왕 시기 50여년, 통일로 나아가는 시기인 선덕여왕-`진덕여왕-태종무열왕-문무대왕 50여년으로 나뉩니다. 이렇게 150년 만에 대업을 완성한 거예요. 이런 통일의 기초를 닦은 게 법흥, 진흥왕입니다.”

 

 

누구의 무덤인지 밝혀지지 않은 4개 무덤을 지나 지금까지 본 무덤 중에 가장 큰 태종무열왕릉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선덕여왕이 아버지를 뒤이어 대당외교를 강화했어요. 이때 당나라 왕이 당태종이에요. 당나라 입장에서는 고구려에 대응하려면 작지만 신라가 필요했습니다. 미국이 마치 아시아에서 한국이 필요한 것처럼 말이죠. 이때 외교를 주도한 사람이 후에 태종무열왕이 된 김춘추입니다.

 

김춘추가 대당외교 등 정치적 치적이 있었고, 또 김유신이 총사령관이 되면서, 정과 군이 결탁 되어 김춘추가 왕위에 오를 수 있었으며 또한 신라 국정을 안정시킬 수 있었습니다.

 

신라가 통일할 수 있었던 것은 선대로 내려오는 탄탄한 국력과 정치적 안정도 있었지만 결정적인 것은 외교였습니다. 외교문제에 신라는 눈을 떴던 것입니다. 근데 백제, 고구려는 외교에 눈을 못 떴어요. 정세변화를 감지하지 못했어요.

고구려는 중국이 분열되어 있다 통일된 것을 초기 한나라 때만 경험해서 중국을 잘몰랐으나, 분열된 중국이 수나라 당나라로 통일되면서 지난 400년 가까이 경험해보지 못한 일을 겪게 됩니다. 자기들 살아온 데로 당나라에 저항만 했지, 당나라와 일정한 전략적 외교관계를 맺어 당면한 문제를 풀지 못했습니다.

지금의 한국도 똑같습니다. 지난 50년간 성장만 해왔어요. 외교적으로도 지난 50년간 세계 제일 패권국인 미국하고만 관계 맺으면 안전했어요. 이것이 우리의 무의식을 지배해서 사실상 지금 현실이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앞으로도 계속 경제성장할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해왔던 것과 같은 미국 일변도의 외교는 앞으로 굉장한 위험을 초래합니다. 세계 판도가 바뀌어 가고 있기 때문이죠. 그러니까 우리는 과거의 경험이 굉장히 중요하면서도 과거의 경험 때문에 망하게 되기도 합니다.”

 

 

우리가 그동안 미처 알지 못했던 신라의 역사를 재밌게 듣다 보니 어느덧 점심시간이 되었습니다. 청년들은 조별로 김유신 장군묘가 있는 흥무공원에서 식사하였습니다. 그리고 식사 후 김유신 장군묘 앞에서 스님의 열정적인 강의는 계속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백제와 고구려가 멸망한 후, 신라는 고구려와 백제의 옛 땅에 주둔한 당나라를 상대로 8년간 전쟁을 했고, 이를 통해 자주성을 지켜 삼국통일을 이룩한다는 말씀을 하였습니다. 또한 이렇게 신라가 자주성을 지키는 데에는 김유신 장군의 흔들리지 않는 신념이 있었다고 말씀하였습니다.

 

 

우리는 김유신이 외세 끌어들여서 고구려, 백제를 멸망시켰다는 부정적인 것만 보는데, 사실 신라는 자기들 살길 찾아서 외교적 승리로 통일을 이루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라는 광활한 영토를 잃어서 고구려의 역사를 모두 계승하지 못하고 민족사의 축소를 가져왔습니다. 그러나 신라는 지금 우리와 비교해볼 때 자주성이 매우 높았어요. 삼국통일이 필요해서 당나라 군대와 협력했지만, 당나라에 완전히 예속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당나라와 8년 전쟁으로 자기들 이상을 실현할 만큼 자주적인 국가였습니다.

 

우리가 처해진 상황과 비교해서 봅시다. 예를 들어 북한에 내분이 일어나 한미 연합군이 북한을 점령했어요. 그래서 우리는 바로 통일될 줄 알았더니, 중국이 개입해서 북한을 남한에 넘기지 않고 미중이 공동관리하거나 미국이 미군정을 실시했을 때, 한국군이 주한미군을 몰아낼까요? 미국에서 20만 대군을 파병하면 한국군대가 끝까지 미군하고 싸울까요?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문제에요. 북한에 문제가 생기면 미국은 북한에 힘으로 밀어붙여 개입할 것이며, 중국은 조-중동맹으로 개입할 텐데, 우리는 국제법적으로 개입할 명분이 없어요. 근데 남북이 각자 독립국가를 유지하면서도, 국가연합 수준으로라도 되어 있으면 북한이 붕괴 되더라도 남한이 우선적으로 개입할 수 있어요. 남북이 적대적 관계에서 북한이 붕괴하면 남한이 개입할 여지가 없어요. 북한이 쉽게 붕괴되지도 않지만 지금 정책으로는 붕괴 되어도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꼴이 될 것 입니다.”

 

 

신라의 자주성에 대한 말씀을 들으면서 그동안 역사에서 배우지 못했던 신라의 다른 면을 발견함과 동시에 우리가 그 기상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다음 일정인 사천왕사지로 향하자, 사천왕사가 있었던 터에는 녹음만 무성하고 건물의 흔적으로 찾아볼 수 있는 것은 건물을 받쳐주는 돌들 뿐이었습니다.

 

사천왕사는 당나라 군대가 고구려 침공 후 신라까지 침공하려고 하자, 문무왕이 불교의 힘을 빌려 당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세운 호국 사찰이라고 합니다. 신비한 옛 이야기를 들으며 신라시대 선조들이 위기에 처한 나라를 지키기 위해 가졌던 간절한 마음이 느껴져 마음이 뭉클해지기도 했습니다.

 

 

신라는 이러한 호국정신을 가졌기에 676년 당나라의 침략을 막아내고 종전 후 국교를 수립하게 되었으며, 우리는 삼국통일의 해로 고구려, 백제의 멸망시기가 아닌 당나라 군사가 한반도에서 철군한 이때로 잡습니다.

 

다음은 사천왕사 뒤편에 있는 낭산 중턱에 오르니, 우리나라 최초의 여왕의 능인 선덕여왕능이 나왔습니다.

 

 

스님께서는 삼국유사에 기록된 선덕여왕의 예지력을 엿볼 수 있는 세 가지 사례를 말씀해 주셨고, 그 말씀속에서 선덕여왕은 여성이라는 편견을 넘어 미래를 예견했던 현명한 리더였음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선덕여왕의 치적으로는 후에 삼국통일의 주역이 된 인재들을 양성하였고, 첨성대, 분황사, 황룡사 9층 석탑 등 역사에 남을 유적을 건설하였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어서 문무대왕의 화장터인 능지탑을 지나 버스를 타고 이동하여 이번 기행의 마지막 유적지인 황룡사지에 도착했습니다.

 

30여 년째 발굴 중인 황룡사지 터에서 강의는 이어졌습니다. 신라 최대의 절인 황룡사지가 몽고의 침략으로 불태워 졌다는 말씀을 듣고, 안타까운 마음에 한 청년이 몽골사람들이 왜 불태웠나요?”하고 물으니, 스님께서는 이렇게 답하셨습니다.

 

 

우리나라 절은 세 번 유실 됐습니다. 첫째, 몽골란때 유실되었습니다. 고려시대 몽고 침략 당시 임금이 강화군에 피난 후 항복을 안 하니, 몽고인들이 육지로 다니면서 계속 노략질 하면서 태운 것이죠. 그 이후로 복원되었지만 조선시대 임진왜란 때 다시 불탔어요. 이유는 전쟁 중이기도 했지만 전쟁에 참여한 승병 때문에 일본인들이 산에 있는 절을 싹 태웠어요. 조선시대에는 불교를 탄압하니까 옛날처럼 국가의 지원이 없어 다시 복원을 제대로 못했어요. 그나마 복원한 것은 6.25때 미군 폭격에 의해 소실됐습니다. 절이 대부분 산에 있으니까 당시 빨치산들의 근거지를 없애기 위해 태웠습니다. 우리 건물은 목조건물이니까 3대 전쟁에 의해 다 소멸된 것이죠. 일본은 외세 침략이 없기 때문에 목조건물이 많이 남아 있고 중국은 벽돌건물이니까 남아 있어요. 우리나라는 전쟁으로 인해 문화재 유실이 많았습니다.”

 

 

황룡사지 근처에 있는 분황사 앞을 지나 버스에 오르며 오늘의 유적지 탐방을 마치게 되었습니다.

 

이어서 숙소로 돌아와 저녁식사를 한 후 오후 7시부터 <통일 신라 역사를 통해 배우는 리더십>이라는 주제로 스님의 강의가 진행되었습니다. 청년들은 낮에 빠듯한 프로그램을 따라 다니느라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하루 종일 강연하신 후 저녁식사도 거르시고 서서 저녁강의를 이어가는 스님의 모습에 감동이라도 받은 듯 2시간 30분에 걸친 강의 시간 내내 스님말씀에 집중하여 귀를 기울였습니다.

 

오늘 경주 다니면서 신라를 통해 우리는 새롭게 알 수 있는 사실이 있습니다. 한 시대안에 사는 사람들이 조금만 좋은 방향으로 노력했을 때 30년 정도 지나면 사회전체가 바뀐다는 것을요. 작은 신라가 그런 노력으로 큰 신라로 바뀌었습니다. 고구려처럼 아무리 부강한 나라더라도 서로 시기 질투하고 남의 것 뺏고 싸우면 30년 만에 망해버려요. 하루나 일주일 공부 바짝해서 성적이 좋아지는 게 아니라, 일년 꾸준히 해야 성적이 오르는 것과 같습니다. 인생을 짧게 보니 좋은 일 해도 좋은 결과 없네라고 생각합니다. 길게 보면 지은 인연의 과보는 다 받게 되어 있습니다. 돈을 빌렸으면 갚아야 되고, 꾸준히 저축하면 목돈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도 인생을 길게 봐야 합니다. 그리고 세상과 나라도 조금 길게 보면 어떨까요? 우리가 50년 정도 앞을 봅시다. 중국이 지금보다 더 규모가 커질까요? 작아질까요? (커져요) 인도는 후퇴 할까요? 커질까요? (커져요) 그럼 미국은 세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줄어들까요? 늘어날까요? (줄어들어요) 근데 앞으로 50년 동안 계속 그런 것은 아니에요. 미국의 성장이 감소하다가 증가하기도 하고, 중국이 늘어가다가 성장이 둔화될 수도 있는 것이죠. 그러나 크게 역사를 보면 미국은 지는 해에 속합니다. 금방 질까요? 아니에요. 미국은 성장잠재력이 많고, 창조력이 제일 많은 나라에요. 앞으로 새로운 게 만들어진다면 미국에서 가능합니다.

 

하지만 삼성의 경우 남의 것 베껴서 계속 덩치를 키워가는 형식인데. 그래서 사회적으로 저항을 받잖아요. 삼성이 남이 만든 것 보고 금방 더 잘 만들 수는 있지만 창조력을 보인 것이 있어요? 없지요. 20년 전에 일본 소니가 삼성처럼 그랬어요. 그 당시 일본이 급속하게 성장해서 미국에게 이길 것이다고 예측했지요. 못이긴 이유는 일본은 모방하기 때문입니다. 미국에 아무리 근접해도 이기지 못하는 것은 창조력이 없으니 더 이상 성장할 수 없는 것이죠. 일본은 이 덫에 20년간 걸렸습니다. 20년 전 일본처럼 이제는 우리가 걸렸

습니다.

 

 

미국은 처음엔 유럽 영국을 모방했습니다. 그래서 고성장 했지만 중간에 덫에 걸려 고생했어요. 근데 미국은 서부 개척이라는 성장 동력으로 규모를 키워 위기를 극복하면서 창조력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자동차, 비행기 같은 발명품이 미국에서 나왔습니다. 미국은 아직 창조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괜찮지만 규모면에서 점점 적어집니다. 미국의 창조력이라는 것도 이 문명 안에서 창조력이지, 이 문명 밖에 있는 것은 못 봅니다. 그래서 미국은 인류 문화사적으로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내리막길로 간다고 봐요. 중국은 규모면에서 앞으로 훨씬 커집니다. 앞으로 중국이 제일 커지고, 미국이 2, 인도가 3, 일본도 3위에서 4위로 밀릴 것이에요. 근데 중국이 창조력 있어요? 중국도 없어요. 중국도 서양문명을 모방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중국이 덫에 걸려 저성장으로 가고 내부 분열이 와 몰락으로 갈지 아니면 그것을 뛰어넘을지 모릅니다.

 

그래서 지금의 문명이 한계에 도달 할 때는 변두리 문명에서 새로운 창조력이 생기게 될 것입니다. 단순 모방하면 100% 실패해요. 지금은 모방하지만 모방을 통해 습득하고, 자기들의 고유한 문명으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면 문명은 확대됩니다.

중국과 인도는 자기 고유의 문명적 자부심을 갖고 있기 때문에 가능성이 있는 편입니다. 근데 한국은 모방의 기술은 뛰어나지만 자기 정체성, 자기 고유의 특징을 가지고 대응하면 이게 작용해 창조력이 생길 텐데요. 현재는 크게 가능성이 없습니다. 한국에서 서양을 모방하다가 독자적 창조성으로 전환한 부분은 오로지 대중예술입니다.

인류 문명은 모방에서 창조가 나왔습니다. 서양 것을 그대로 모방하고, 한국 것을 그대로 전통 유지 하다가 나중에 섞어버리면,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잖아 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역사가 오래 지나면 이것도 창조가 됩니다. 능지탑처럼 말이죠. 능도 아니고 탑도 아닌데, 오직 하나밖에 없는 창조물이 됩니다.

 

 

우리는 지금 이 저 성장 덫에 걸려 있어요. 우리는 50년 동안 분단 상태로도 계속 성장해 왔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 성장할 거라고 생각 하는데, 사실 다른 나라에서는 3%만 성장해도 잘 하는 겁니다. 우리는 늘 고성장만 해 왔기 때문에 지금의 저성장을 답답해하는 것이죠. 모방의 한계에 왔기 때문에 저성장으로 갈 수밖에 없고 저성장에 적응해야 합니다. 이걸 뛰어넘으려면 창조력을 가져야 하고 창조력을 키우려면 시간이 걸립니다. 근데 이렇게 얘기하는 정치인은 한 명도 없습니다.

우리가 현실을 직시하고 받아들여서 그것에 맞게 살던지, 극복해야 한다면 그 대안을 찾아 실행하던지 둘 중 하나는 선택해야 합니다. 그러나 대안도 제시 안하고, 그렇다고 현실 적응도 안하면서 욕망만 갖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의 해결책은 창조력을 키우는 것입니다.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지금의 아이들부터 20, 30년 준비해야 하는데, 아이를 키우는 어른들이 이에 대한 이해를 못하니까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입니다. 겨우 선생 이해시켜 놓으면 교육공무원이나 정치인이 알아듣지 못합니다. 이들을 이해시켜 놔도 학부형이 또 모릅니다. 학부형들은 자기가 살아온 경험에 의해서 의사가 최고다. 돈 되는 것은 이것밖에 없다.’라는 식의 사고를 고집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바꾸기 굉장히 어렵습니다. 과제는 아는데 해결책이 없습니다. 해결책이 있다 해도 실행방법이 없습니다. 지금부터 시도한다 하더라도 10, 20, 30년 걸릴 일인데, 그동안 저성장 장벽, 정체 장벽 앞에서 사회가 혼란에 빠지고 갈등이 심화될 것입니다.

 

그러면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성장 동력을 키우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는데, 그럴러면 양을 확대하는 수 밖에 없습니다. 그동안 수출을 통해서 양을 확대하는 정책을 해 왔습니다. 옛날에는 미국이 우리한테 지원해 줄 수 있었습니다. 근데 지금 미국이 경제적으로 어려워 오히려 우리 덕을 보려고 난리입니다. 그래서 수출을 통한 발전은 한계에 이르렀습니다.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통일입니다. 지금 북한이 저개발 상태입니다. 북한과 통일하면 북한에 도로 깔고, 건물 짓고, 나무도 심게 됩니다. 돈 많이 드는 일이지만 이것은 소비가 아니라 미래를 위한 투자입니다. 이것은 마치 미국이 서부 개척으로 규모를 확대해서 성장동력을 만든 후 창조력을 키울 수 있는 시간을 벌었듯이, 우리도 북한개발을 통해 시간을 벌개 해 줄 것입니다. 그러니 통일 문제는 민족, 애국을 떠나서도 우리가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이기도 합니다.

 

근데 지금 남북한이 통일 한다고 할 때 남한도 문제가 많긴 하지만 기본 모델은 남한이 되어야 합니다. 북한 사람들은 통일한국의 기본 모델을 남한으로 두는 것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을 것입니다. 북한주민들은 환호할지 모르지만 지배층은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결국 이 문제를 풀려면 북한 지배층에게 그들이 원하는 것을 줘야 합니다. 먼저 그들의 신분을 보장해 줘야 하고, 다음은 과거를 묻지 않겠다고 해야 합니다. 이렇게 해 줘야 통일 한번 해 볼 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 안에서도 반대와 찬성이 나올 수 있는데, 다수가 찬성해야 해결될 수 있습니다. 북한 시스템이 민주주의면 주민의 51%만 찬성해도 되지만, 현 체제에서는 90%가 찬성해도 지배계층인 10%가 반대하면 안됩니다. 우리가 지배층 10%를 설득해야 합니다.

 

남한 중심으로 통일이 된다 하면 종북주의는 아니지요. 그러나 북한을 포용해야 합니다. 남한 중심으로 통일 된다 하면 북한도 반대할 것이고, 북한을 포용해야 한다하면 남한안에서도 북한 지배층 손 봐야 한다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이를 종북 좌파라고 욕할 수 있습니다. 극단적인 사람들을 배제하고 실용적 관점에서 중도적으로 이 문제를 풀어야 합니다. 이것이 새로운 위기를 극복하고 민족 공동체 전체 이익을 추동하는 것입니다.

 

 

신라와 가야의 통합에서 우리는 배울 것이 많습니다. 근데 문제는 남북 문제를 우리 둘이 의논하고 해결하면 되는데, 우리의 처지가 그럴 수 없습니다. 미국이 유일하게 세계최강국일때는 북한이 아무리 난동 피워도 한국이 미국에 붙어 있으면 끄떡없었습니다. 근데 이제 미국과 중국의 G2체제 입니다. 미국은 세계패권국으로서 자기 영향력을 계속 누리고 싶어 하고, 중국은 자기 영향력을 더 가지고 싶어 합니다. 둘이 충돌할까요? 안할까요? 충돌하겠지요. 과거 역사 속에서는 전쟁으로 결판이 났습니다. 지금은 전쟁이 쉽사리 일어나기 어렵습니다.

미국은 지금도 월등히 힘이 세지만 중국의 팽창을 막기 위해서는 자기만 갖고는 벅찹니다. 일본을 끌어들여 재정부담을 지우게 합니다. 일본은 2차 대전에서 미국과의 전쟁에서 져 종속국으로 그동안 미국 눈치만 보고 살았는데, 미국이 어려움에 처하니까 이 기회를 이용해서 패전국에서 정상국으로 전환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패전국에 따라 만든 평화헌법도 바꾸려고 합니다. 미국은 일본을 견제해왔지만 중국이라는 더 큰 적이 등장하니 일본을 풀어주는 것입니다. 일본이 과거 역사에 대한 반성없이 세게 나가는 것은 미국을 믿고 그러는 것입니다.

 

 

미국은 패권유지를 위해 한국, 일본을 끌어들이고, 중국은 자기 능력에 걸 맞는 영향력을 끼치기 위해 한국에게 잘해 줍니다. 한국이 미일동맹에 들어가면 중국입장에서 불리하니까 한국이 들어가지 않도록 북한의 반발을 사면서 까지도 마치 한국 편이 더 될 것처럼 연막을 피우면서 한국에게 잘 해 줍니다. 한국이 이런 상황에 놓여있기 때문에 섣불리 미국한테 붙으면 중국에게 보복을 받고, 또 섣불리 중국에게 붙으면 미국의 보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이런 혼란스런 동북아 판세 속에서 무엇을 목표로 해야 할까요? 바로 통일입니다. 정치, 외교, 안보, 경제 모두 통일을 목표로 맞추고 통일에 유리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현재의 우리는 국가의 지향이 없이 우왕좌왕 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얘기하면, 통일만 하면 되느냐 그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세계인류국가가 될 꿈을 안고 창조력을 키워야 합니다. 일단 통일해서 시간을 벌어야 합니다. 통일을 하면 영토 크기가 이탈리아와 영국 수준이고, 인구가 7,500만 명으로 프랑스 수준을 넘게 됩니다. 그러면 규모면에서 세계 G7과 경쟁할 만합니다. 그리고 통일 후 자본을 투자하여 북한개발을 잘하면 북한은 연 100%씩 성장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통일 한국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자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왜 가능성이 있을까? 우리 경제가 10이고, 미국의 경제가 100, 중국의 경제가 50이라면 우리가 균형자 역할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중국 경제가 49, 미국 경제가 51, 우리가 10이면 균형자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중국으로 붙으면 59로 이기고, 미국으로 붙으면 61로 되면, 미국과 중국이 우리를 마음대로 못하고 오히려 우리가 캐스팅 보트를 쥘 수 있는 시기가 옵니다. 이는 통일만 된다고 주어지는 게 아니라 우리 역량이 10이 되고 미중 세력 균형이 오는 시점에 목표를 둘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가 통일을 통해 한반도의 평화만을 가져오는 게 아니라, 동아시아에 평화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균형을 잡음으로 해서 한중일 경제 협력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평화를 먼저 확보하고 통일이 된다면 우리의 위험을 방지할 뿐 아니라 오히려 동아시아 번영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규모면에서는 중국 일본 경제가 뒷받침해줘야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와 맞먹는 경제가 됩니다.

 

 

한중일 중에 규모가 커지면 창조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은 나라가 그래도 통일한국입니다. 경제, 대중 예술 뿐 아니라 한국의 평화 경험이 전 세계로 나가게 될 것입니다. 한국이 창조력을 가지면, 일본과 중국의 경제 규모에 창조적 통일한국이 결합하여 동아시아 문명이 세계문명의 중심이 될 수 있습니다.

 

지금부터 100년 뒤를 봐야 합니다. 국가 비전을 세울 때 21세기 초반인 2020년까지 통일을 이루고, 2050까지 동아시아 공동체를 이루고, 2100년까지 세계문명의 중심이 되는 것을 꿈꿀 수 있습니다. 이런 꿈을 그려볼 수 있습니다. 꼭 이렇게 된다가 아니라 될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것입니다. 어려운 여건에서도 산업화와 민주화를 성공한 이 종자돈을 잘 살리면 가능성이 열립니다.

 

할 일이 태산같이 많습니다. 왜 공무원만 하려고 합니까? 새롭게 나아갈 일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그런 꿈을 여러분들이 가져야 합니다. 개인의 꿈도 되고, 우리세대가 가질 수 있는 꿈도 됩니다. 할아버지 세대는 산업화를 이루고, 아버지 세대는 민주화를 이루었으니, 여러분들 세대는 통일을 이뤄 세대적 자부심을 가져야 합니다.

 

 

이제는 새로운 시대를 생각해야 합니다. 눈앞에 보이는 약간의 이익보다 훨씬 더 중요한 문제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어려워도 희망이 있으면 좋습니다. 근데 미래의 희망이 없으면 심리적으로 엄청나게 힘듭니다. 아버지 할아버지 세대는 현실은 억압되고 가난했지만 그들은 희망이 있었죠. 근데 여러분들은 거기에 비해 훨씬 살기 좋아졌어요. 먹고 살만하고 민주화도 이뤘는데, 목표나 희망이 없는 거예요. 무언가를 향해서 토론하고 협력해 나아가는 것이 없잖아요. 그러니까 답답해진 거예요.

여러분들은 미래 지향적 이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이 앞으로 살아가야 할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우리사회에 대해 좀 더 책임의식 갖는 것이 필요합니다.”

 

 

통일한국을 넘어, 동아시아 공동체, 그리고 인류문명의 중심이 되는 통일한국의 비전에 대한 스님의 강의에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청년들은 하루 종일 아낌없는 가르침을 주신 법륜스님께 뜨거운 박수로 화답하고 경주역사기행 일정을 마쳤습니다.

 

스님께서는 잠시 원고교정을 보신 후 내일 문경에서 불대 특강이 있기 때문에 밤 10시 넘어서 문경으로 향했습니다.

전체댓글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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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 정말 대단하시네요!환하게 앞길을 열어주시는 기분입니다^^국제정세를 꿰뚫어보시고,통일한국의 미래까지 내다보시는 스님의 혜안^^*&lt;&lt;한 시대안에 사는 사람들이 조금만 좋은 방향으로 노력했을 때 30년 정도 지나면 사회전체가 바뀐다는 것을요&gt;&gt; 운전을,한사람만 하시지말고,차에 교대할 수 있는 사람을 한분씩 태워(비용이 좀 들더라도요),서로 교대해가며 운전하는 방향을 좀 생각해보셨음 해요^^운전하시는 분꼐서 인간의 한계,체력의 한계를 넘어야할 만큼 너무나도 힘이드시리라 짐작이 됩니다 ㅠㅠㅠ

2015-05-20 04:18:04

이정화

할아버지세대는 산업화를 아버지세대는 민주화를 이루었으니 여러분은 통일세대를 이루어라 꿈과 희망을 가지라 하신 말씀에 저도 가슴이 벅찹니다

2015-05-19 21:07:15

정음

ㅇㅏ.. 스님의 지혜는 바다보다 넓고 하늘보다 높은데.. 정치인들을 내시들만 모아놨으니;;;

2015-05-19 08: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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