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5.3.8 인도 6일째 인도인활동가 라즈길 소풍


 

안녕하세요. 오늘 스님께서는 인도인 활동가 30명과 함께 라즈길로 소풍을 다녀오셨습니다. 지난 한해 동안 수자타아카데미를 운영하기 위해 곳곳에서 역할을 맡아서 수고한 인도인 활동가들을 격려해주기 위해 스님께서 어느 곳으로 소풍을 갈지 고민을 많이 하셨는데, 비교적 거리가 가까운 라즈길로 향했습니다. 

 

먼 길을 떠나기 위해 평소보다 이른 새벽3시30분에 기상하여 새벽 예불 및 108배와 명상을 마친 스님 일행은 5시부터 소풍 갈 채비를 마치고 인도인 활동가들을 맞이할 준비를 했습니다.

 

그런데 버스를 대여한 회사에 전화를 했더니 “어제밤 운전기사가 술을 너무 많이 먹어서 출근을 안했다”고 하면서 “다른 기사를 보내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스가 계속 도착하지 않아 여러차례 전화를 했지만 “다 왔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였습니다. ‘인도란 이런 곳이구나’ 다시한번 크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학교에 도착한 인도인 활동가들은 전정각사 법당에서 스님께 새해 인사를 올렸습니다. 

 


 

스님께서는 세배를 한 인도인 활동가들에게 새해 덕담과 격려의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나마스떼! 새해에는 다들 건강하시고, 원하는 일이 잘 성취되기를 바랍니다. 홀리는 잘 보냈어요? (네) 

 

그런데 왜 옷에 물감이 안 묻었어요? (물감 묻은 옷은 집에 두었어요)

얼굴에도 물감이 안 묻었네요. (열심히 씻어서 다 지웠어요) 

왜 여러분들만 맛있는 것 먹고 스님한테는 왜 좀 안줘요? (웃음) 

 

오늘은 원래 6시에 출발하기로 했는데 기사가 술을 먹고 뻗어서 버스가 늦게 온데요. 홀리 기간이니까 여러분들이 좀 이해를 하세요.” 

 


 

그리고 스님께서 세배돈을 주자 모두들 하하호호 웃음을 띠었습니다. 

 


 

결국 약속한 시간 보다 2시간이나 늦은 8시에 버스가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늦게 도착한 버스는 우리가 주문한 50인승 버스가 아니라 작고 낡은 30인승 버스였습니다. 일정이 늦어져서 버스를 되돌려 보낼 수도 없어서 한국인 활동가들 중에 최소한의 스텝 인력만 함께 타고 나머지는 수자타아카데미에 그냥 남기로 했습니다. 새로 오신 행자님들은 소풍 간다고 새벽부터 준비했는데 많이 아쉬워 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버스가 출발했습니다. 덜컹 거리는 버스에 몸을 싣고 부처님이 가셨다는 길을 따라 라즈길로 향합니다. 

 

 

인도인 활동가들은 벌써부터 신이 났는지 스피커에 인도 음악을 크게 틀고 어깨를 들썩였습니다. 스님께서는 혹시나 스님 때문에 눈치를 볼 것을 염려하셨는지 “오늘은 신나게 노세요” 라고 하시면서 분위기를 가볍게 해주셨습니다. 

 

버스가 늦게 출발하는 바람에 스님께서는 일정을 조정하셨습니다. 영축산 가는 일정과 기리악의 호수까지 걸어가서 배를 타보는 일정은 취소하고 곧바로 제띠안으로 가서 공터에서 크리켓을 하면서 놀고 점심 식사를 하기로 했습니다. 스님께서는 아이패드로 구글 지도를 보시면서 혹시나 운전 기사가 길을 잘못 들까봐 계속 점검을 하시면서 가셨습니다. 

 


 

그런데, 인도인 교사 중에 한 명이 둥게스와리가 아닌 처갓집이 있는 와질락에서 버스에 탑승하기로 해서 길을 조금 돌아가게 되었고, 또 원래 나 있는 도로가 아닌 지름길로 가로질러 가다가 도로 사정이 예상했던 것보다 너무 나빠서 오히려 시간이 더 걸리게 되었습니다. 거기다가 출발도 이미 2시간 늦은 상황이라 스님께서는 시간이 계속 늦어지고 있는 상황을 인도인 활동가들에게 설명하고 양해를 구했습니다. 인도인 활동가들은 “No Problem!” 하며 웃었습니다.   

 


 

그리고 “작년에 탔던 덜컹거리는 버스에 비하면 오늘이 훨씬 좋다”고 하며 즐거워 했습니다. 일정이 자꾸 늦어셔서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늘 둥게스와리에서만 지내고 바깥으로 나가볼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는 이들에게는 오늘처럼 이렇게 외부로 나간다는 사실 자체가 큰 즐거움이겠구나 싶었습니다.  

 

드디어 오전10시30분이 되어서 제띠안에 도착했습니다. 스님께서는 “그저께 자전거 타고 왔을 때도 10시30분에 여기 도착했는데 오늘은 버스 타고 왔는데도 비슷하네” 하시며 웃으셨습니다. 부처님께서 우루벨라 가섭 등 1000명의 제자들과 라즈길로 왔을 때 빔비사라왕이 부처님을 영접했다고 하는 곳이 ‘제띠안’입니다. 제띠안에는 큰 공터가 있어서 여기에 짐을 풀고 운동도 하고 점심도 먹고 가기로 했습니다. 

 

인도인 활동가들은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크리켓 기구들과 축구공을 들고 공터로 뛰어갔습니다. 스님께서도 인도인 활동가들과 함께 크리켓과 축구를 하며 함께 어울리셨습니다.   

 


▲ 인도인 활동가들과 함께 크리켓을 하고 있는 스님 

 

인도인 활동가들은 스님께서 안타를 치자 모두들 환호를 지르며 좋아했습니다. 그리고 축구공도 스님께 계속 패스를 했는데 스님께서 공을 뻥 차자 박수를 치기도 했습니다. 

 


▲ 축구 

 

이렇게 잠깐 인도인 활동가들과 어울리신 스님께서는 자기들끼리 더욱더 마음껏 놀 수 있게 자리를 비키셨습니다. 그리고 나무 그늘 아래에 앉으셔서 크리켓 하는 모습을 지켜보시면서 누가 크리켓을 잘하는지, 크리켓의 규칙은 어떻게 되는지, 둥게스와리 마을에서는 어떻게 선수 선발을 해서 가야시 전체의 크리켓 대회에 참여하는지, 크리켓할 때 보통 팀은 어떻게 구성하는지 등에 대해 물어보셨습니다. 

 

오늘은 주니어팀과 시니어팀으로 팀을 나누어서 경기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주니어팀은 대학을 다니고 있는 교사들이고, 시니어팀은 대학을 졸업한 교사들이라고 합니다. 

 

남자들이 크리켓을 하고 있는 동안 한국인 활동가들은 인도식 라면과 한국식 라면을 끓이고 있었습니다. 라면은 불으면 안되기 때문에 라면이 다 끓여지자 크리켓을 하고 있는 남자들을 급히 다 불렀습니다. 허겁지겁 땀을 흘리며 달려온 남자들은 후후 입김을 불어가며 맛있게 라면을 먹었습니다. 

 


 

먼저 인도식 라면을 먹었습니다. 인도식 라면은 카레 가루를 섞은 국물이 전혀 없는 비빔면입니다. 양이 적었는지 다들 아쉬워하는 눈치여서 다시 한국 라면을 가득 끓였습니다. 

 


▲ 인도식 라면을 먹는 모습

 


▲ 한국식 라면을 먹는 모습

 

인도식 라면과 한국식 라면을 다 먹어본 인도인 활동가들에게 “어느 나라 라면이 더 맛있냐?”고 물어보았습니다. 모두들 “인도 라면이 더 맛있어요” 라고 이구동성으로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아무래도 한국 라면은 매운 맛이 강해서 그런 것 같았습니다. 어제 남은 찬밥까지 챙겨와서 라면 국물에 찬밥까지 말아 먹고 나니 다들 배가 두둑해졌는지 모두들 만족스러운 표정입니다. 

 

일찍 식사를 마친 스님께서는 주위를 살펴보시더니 “설거지할 물이 없네” 하시면서 직접 개울가로 가셔서 설거지물을 뜨시러 가셨습니다. 스님께서 한국에서는 늘 대중들을 위해 법문을 통해 깨우쳐주는 역할을 하시는데, 이곳 인도에서는 직접 몸으로 하시는 일이 많으십니다. 

 


▲ 개울가에서 설거지물을 떠 오시는 스님

 

점심을 먹고 나서 스님께서 “누가 이겼어요?” 물어보셨습니다. 그러자 “오전에는 한팀만 공격을 했어요. 오후에 다른 팀이 공격을 한번 더 해야 해요” 라고 해서 오후에 다시 경기가 시작되었습니다.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 스님께서는 나무 그늘 아래 바위에서 잠시 휴식을 하셨는데, 나무 아래 바위는 찬 기운이 느껴질 정도로 시원했습니다. 그런데 햇볕으로 나오기만 하면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습니다. 나무 그늘이 인도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 제띠안을 뒤로 하고 크리켓을 하고 있는 인도인 활동가들

 

크리켓은 투수가 공을 던져서 나무 막대기를 맞추면 타자가 아웃이 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타자가 투수가 던진 공을 저 멀리 쳐내는 경기 방식입니다. 열 번을 아웃 시켜야 경기가 끝나서 시간이 오래 걸릴 줄 알았는데 다행히 예상보다 빨리 경기가 끝났습니다. 

 

스님께서 다시 “누가 이겼어요?” 라고 물어보자 “주니어팀이 이겼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스님께서 시니어팀을 향해 “너희들은 벌써 늙어서 힘이 밀리나봐” 라고 하자 모두들 크게 웃었습니다.  

 

이렇게 한바탕 땀을 흘리며 어울리는 시간을 가진 뒤에는 왕사성 북문 밖 나란다 대학으로 가는 중간에 있는 ‘실라오’라는 마을의 시장으로 갔습니다. 시장에 차를 멈추고 스님께서는 1인당 100루피씩 주시고는 “맛있는 ‘카자’ 한봉지씩 사서 집에 선물로 가져다 드리세요” 라고 하셨습니다. 인도인 활동가들은 각자 시장에 있는 여러 가게들로 흩어져서 ‘카자’ 한봉지씩을 샀습니다. 1kg에 70루피를 주고 산 사람도 있고 90루피를 주고 산 사람도 있고 다양했습니다.   

 


▲ 인도인들이 즐겨먹는 음식 중 하나인 ‘카자’

 


▲ ‘카자’를 구입하고 있는 인도인 활동가들

 

다들 집으로 가져갈 카자 한봉지씩을 한아름 들고 버스에 다시 올라탔습니다. 목이 마른 사람들이 많다고 하자 스님께서는 사이다와 애플주스도 한병씩 사주셨습니다. 한손으로는 서비스로 더 받은 ‘카자’를 먹고, 다른 한손으로는 사이다를 마시며 흥겨운 인도 음악을 들으며, 버스는 오늘의 마지막 코스인 ‘기리악’으로 향했습니다. 

 

‘기리악’은 왕사성(라즈길)의 동문 끝에 위치한 수투파 유적지가 있는 곳입니다. 오늘 스님 일행은 빔비사라왕이 부처님을 영접했다고 하는 왕사성의 서문 쪽에 위치한 제띠안으로 들어와서 왕사성의 북문으로 나가서 ‘카자’를 산 다음에 다시 들어와서 그 중앙을 관통하는 산길을 넘어와서 왕사성의 동문 끝에 이른 곳입니다. 동문 끝에는 성벽의 흔적과 더불어 부처님과 연관이 있을 것이라고 추정되는 수투파가 산꼭대기에 세워져 있었습니다. 

 

산 아래에 버스를 주차하고 한참 동안 계단을 올라가니 이 지역 전체가 한눈에 보이는 멋진 풍경이 펼쳐졌습니다. 

   


 


▲ ‘기리악’에 있는 스투파를 참배하러 올라가는 길

 

산 중턱에는 성벽을 쌓은 흔적이 보였습니다. 스님께서는 성벽을 가리키면서 “산 봉우리가 높은 곳에는 성벽을 낮게 쌓아도 되지만 저렇게 계곡처럼 움푹 들어간 곳은 지대가 낮아서 성벽을 높게 쌓아야 한다” 고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 왕사성 동쪽편 끝에 쌓아진 성벽의 흔적

 

산 꼭대기에 오르니 큰 수투파가 세워져 있었습니다. 수투파에는 보수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인 것 같았습니다. 스님께서는 “작년에 왔을 때는 도굴을 해갔는지 파헤쳐져 있었는데 제법 보수를 많이 해놓았네” 하셨습니다. 

 


▲ 기리악에 세워진 수투파 

 

수투파 참배를 마치고 나서는 다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모두들 “나마스떼” 라고 하면서 활짝 웃었습니다. 

 


 

단체사진을 찍고 나서 스님께서는 이곳 기리악의 수투파가 왕사성에서 어떤 위치에 있었는지를 땅에 그림을 그리면서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왕사성에 있는 산 줄기는 이렇게 생겼습니다. 여기가 제띠안이고요. 여기가 북문입니다. 여기가 남문이예요. 여기가 서문이예요. 여기가 영축산이예요. 우리는 지금 여기에 있어요. 성벽은 이렇게 둘러져 있어요. 이것을 외성이라고 해요. 이 안에 내성이 있어요. 내성에 왕이 살았어요. 

 


 

나중에 빔비사라왕이 죽고 아자타사투왕 때는 북문 밖 여기에 성을 새로 쌓았어요. 이것을 ‘신왕사성’이라고 해요. 이렇게 성 주위를 산이 빙 둘러싸고 있어서 천연의 요새입니다. 왕사성은 산으로 둘러쌓여 있어서 적을 방어하기에는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었어요. 

 

가야는 이쪽에 있어요. 죽림정사는 북문 밖에 있어요. 부처님은 제띠안이 있는 서문 쪽으로 들어오셨어요. 제띠안이 있는 산 뒤쪽으로 올라가면 꼭대기에 부처님이 계셨다는 동굴이 있어요. 그리고 영축산에서도 부처님이 계셨어요. 그리고 동문 쪽에도 동굴이 있는데 부처님은 거기서도 계셨어요. 그리고 여기도 부처님이 계셨어요. 그래서 수투파가 지금 세워져 있는 거예요.  

 

그래서 다음에 시간을 내어서 이 왕사성의 외성 성벽을 따라서 이렇게 주욱 돌아봅시다. 그리고 가야에서 왕사성까지 자전거를 타고 와 봅시다. 이틀을 시간 내어서 하루는 자전거를 타고 왕사성까지 오고, 하루는 성벽을 따라서 한바퀴 돌고요.”

 

스님께서 왕사성의 성벽을 따라서 하룻동안 걷자고 하자 다들 “와우!” 하면서 웃었습니다. 힘들 것이라는 뜻인지 재미있을 것 같다는 뜻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아무튼 다들 웃었습니다.

 

그리고 수투파에서 조금 더 올라가 제일 높은 봉우리에 올라가니 저 멀리 큰 호수가 보였습니다. 스님께서는 호수를 가리키시면서 버스가 늦게 오는 바람에 가지 못했던 원래 계획이 되어 있었던 일정에 대해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원래는 영축산에서 저기 호수로 걸어와서 배를 탈려고 했어요. 호수 왼쪽에 있는 바위산 밑에 부처님이 계셨다는 동굴이 있어요. 동굴도 보고 배도 타보고 하려고 했는데, 버스가 늦게 와서 저기에 못 갔어요. 다음에 와서는 배를 꼭 태워줄게요. 

 


 

그리고 댐이 여기 막혀 있는데 그것이 왕사성의 동문이예요. 성벽은 동문에서 시작해서 양쪽 능선이를 따라 주욱 있어요. 시간만 있으면 밑에 내려가보면 더 좋은데 여학생들은 집에 늦게 가면 안되니까 여기서만 보고 그냥 내려갈게요.”  

 

호수에서 배를 탈려고 했었다고 하자 다들 ‘아하’ 하면서 탄성을 내었는데, 해가 벌써 지고 있어서 아쉬움을 뒤로 하고 산을 내려왔습니다. 

 

산을 내려오니 또한번 버스 운전수가 말썽을 일으켰습니다. 모두 산에서 내려왔지만 버스가 보이질 않았습니다. 한참을 기다려도 버스가 나타나지 않아서 전화를 해보니 “타이어를 갈려고 이동했다”고 하는 것이였습니다. 할 수 없이 타이어를 갈고 있는 버스가 있는 곳으로 강을 건너 걸었습니다. 한 30분 정도를 걸어서 기리악 시내를 관통하고 나서야 버스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아무튼 오늘은 버스 때문에 이리저리 고생을 많이 하는 하루입니다. 

 


 

다시 버스에 탑승해 신나는 인도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둥게스와리로 향했습니다. 창 밖에는 붉은 태양이 뉘엿뉘엿 땅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해가 지자 스님께서는 여학생들이 집에 늦게 들어가는 것을 많이 걱정하셨습니다. 그래서 수자타아카데미에서 산 넘어 마을인 까나홀, 바가히, 가왈비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둥게스와리로 들어가기 전에 ‘부순다’라는 마을에 모두 내려 오토릭샤를 잡아 주셔서 오토릭샤를 타고 안전하게 집으로 들어갈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 오토릭샤를 잡아주고 있는 쁘리앙카

 

4시50분에 기리악을 출발한 버스는 해가 다 지고 껌껌한 저녁 7시가 되어서 둥게스와리에 도착했습니다.

 


 

한국인 스텝들은 버스에서 짐을 모두 내리고 인도인 활동가들이 모두 무사히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배웅하고 난 뒤 학교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스님께서는 저녁 일정은 따로 갖지 않으시고 한국에서 온 이메일과 원고들을 점검하시며 업무를 보신 후 오늘 일정을 모두 마치셨습니다. 

 

내일은 방갈비가, 만코시힐, 라훌나가르, 소라즈비가 4개 마을 총 316가구를 직접 방문하시면서 쌀 10kg씩을 나눠주고 새해 인사를 하실 예정입니다. 내일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 

 

▼ 배고픈 사람은 먹어야 합니다, 아픈 사람은 치료받아야 합니다, 아이들은 제 때에 배워야 합니다. JTS가 인도 둥게스와리 아이들을 위해 펼치고 있는 기아, 질병, 문맹 퇴치 활동에 함께해 주세요. 

 

 

전체댓글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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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희

희망편지에서 '스님의 하루'를 볼 수 있게되어 좋습니다. 글과 사진을 어찌나 상세하게 올려주시는지 마치 스님과 인도인활동가들과 함께 소풍다녀온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2015-03-12 02:21:41

이미숙

답답하실텐데도 잘 이해하시고 즐겁게 만들어주시는
마법사스님이세요.감사합니다.

2015-03-11 18:22:03

^^^^

스님이 사주시는 사이다~아주 맛있을거 같아요^^스님 수건쓰신거 보고 너무 웃었네요 ㅎ인도활동가분들 표정도 좋으시고 소풍에 들뜬 모습도 참 보기 좋습니다~마치 어린시절 아득한 고향에서 소풍이나 수학여행을 가듯^^버스땜에도 고생하시고,쓰시느라고 사진찍으시느라고,희망플래너님 고생이 많으세요^^*

2015-03-10 23: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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