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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리핀JTS가 알라원 마을에 세운 학교
안녕하세요. 오늘은 필리핀JTS의 구호활동이 펼쳐지고 있는 사업장 중에 하나인 알라원 마을을 방문하는 날입니다. 알라원 마을은 해발 1800미터 고지의 산속 깊숙한 곳에 위치해 있어 차량으로 이동할 수 없고 JTS 센터에서 왕복 6시간 동안 산행을 해야 다녀올 수 있는 곳입니다. 어제 스님께서 “알라원 마을로 가는 길은 민다나오 전체 사업장 중에서 가장 힘든 코스 중에 하나”라고 얘기하셔서 살짝 긴장감을 가진 채 오늘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새벽4시 JTS 센터 3층 강당에 모인 일행은 108배와 명상을 하며 어제 하루를 돌이켜보고 자신의 마음을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기도를 마치고 재빨리 나와 간단히 세수만 하고 새벽 5시20분에 알라원 마을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아직 해가 뜨지 않아 조심히 발을 딛으며 30분 정도 새벽길을 걷다보니 저 멀리 산 위로 붉은 기운이 꿈틀거리기 시작했습니다.
큰 길을 조금 걷다가 본격적인 산길이 시작되었는데, 산길로 들어서니 울창한 나무와 식물들이 빼곡한 원시 자연 그대로의 정글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새벽녘이여서 그런지 물기가 촉촉해 바위가 미끌미끌 했습니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는 가운데 행여 미끄러질까봐 온 신경을 발에 집중하며 한발 한발 걷고 걸었습니다. 1시간 정도 걷고 나니 벌써 온몸이 땀에 젖고 얼굴에도 쉼없이 땀이 흘러 내렸습니다. 비가 자주 온다고 하길래 옷이 젖을 각오는 했지만 이미 온몸은 땀으로 흥건해져 버렸습니다. 스님께서는 진흙탕에 신발이 푹푹 빠지는 일행의 모습을 보시며 “이런 곳을 정글이라고 한다”고 하시며 웃으셨습니다.
땀을 비오듯이 흘리며 한참을 걷고 있는데, 스님께서 “오늘 같은 날은 다리가 얼마나 소중한 줄 알 수 있지?” 하시며 “다리야, 고맙다!” 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뒤돌아보니 “여기 내 다리 좀 봐라” 하셨습니다. 신발과 행건에 진흙이 가득 묻어 있었지만, 스님의 얼굴은 어느 때보다 해맑게 웃고 계셨습니다.
▲ 진흙 범벅이가 된 스님의 신발과 행건
한참을 걷고 나니 물소리가 가까이에서 들리고 금새 계곡이 나타났습니다.
시원한 계곡에 손을 담궈 세수도 하고 땀도 식힌 후 가방에 넣어 온 주먹밥을 아침식사로 맛있게 먹었습니다. 땀을 흠뻑 흘리고 난 후 먹는 주먹밥이여서 그런지 꿀맛이었습니다.
▲ 나뭇잎을 접시로 삼아 주먹밥으로 아침 식사를 하고 계신 스님
주먹밥을 먹은 후 다시 산행은 계속 되었고, 한참을 다시 걸어가니 커피 나무가 곳곳에 군락을 이루고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붉은 색으로 변해 바닥에 떨어져 있는 커피 열매도 보이고, 나뭇가지 마다 커피 열매가 주렁 주렁 매달려 있는 모습도 보았습니다.
▲ 길쭉한 나무들이 모두 커피 열매가 열리는 나무들
다시 한참을 걸어가니 작은 다리 하나가 나왔습니다. 중간에 발판으로 삼은 대나무가 조금 깨어진 것을 제외하고는 너무나 잘 지어져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이곳 다리 공사를 총괄한 필리핀JTS 자원활동가 이재곤님은 “이 다리를 짓기 위해 마을 주민들은 이렇게 거칠고 먼 길을 매일 같이 왕복하며 건축 자재들을 손수 다 들고 날랐다” 고 알려 주었습니다. 그러자 스님 일행 모두 감탄사를 연발했습니다. 빈손으로 걷기만 하는데도 이렇게 힘든데 건축 자재들을 다 손으로 들고 날라서 다리를 지었다니 모두들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 JTS에서 마을 주민들을 위해 놓아준 다리.
▲ 다리 공사를 맡았던 필리핀JTS 활동가 이재곤님.
다리를 지나니 이제 알라원 마을이 점점 가까워져 옴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산행을 시작한지 벌써 2시간30분이 넘어가고 있었고, 앞으로 30분만 더 가면 마을이 나온다는 얘기가 일행 사이에서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드디어 산행을 시작한지 3시간째인 8시20분 경에 알라원 마을 전경이 한눈에 펼쳐졌습니다.
▲ 알라원 마을 학교 전경.
알라원 마을에 도착한 스님께서는 제일 먼저 아이들과 악수를 나누고 함께 사진을 찍으셨습니다.
그러자 마을 리더인 아넬이 이 모습을 보고 맨발로 뛰쳐 나와 스님을 끌어 안으며 너무가 기뻐했습니다.
▲ 알라원 마을의 리더인 ‘아넬’
아이들은 오랜만에 이곳에 오신 스님을 기쁜 마음으로 반겼습니다. 순박한 웃음을 띠며 스님을 바라보는 모습이 너무나 천진난만하기만 했습니다.
마을 주민들은 고구마와 따뜻한 커피를 준비해 와서 스님 일행을 정성껏 접대해 주었습니다. 스님께서는 고구마와 커피를 맛있게 드시고 교실 안으로 들어가셔서 마을 주민들과 학교 운영 방안에 대해 회의를 하셨습니다.
▲ 마을 주민들과 학교 운영에 대해 논의하시는 모습
현재 알라원 마을에 세워진 학교는 운영이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마을 주민들 모두 이 학교를 짓느라 정말 고생을 많이 했지만, 정작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는 선생님들이 오랫동안 근무하지 못하고 다 가버려서 현재는 학교가 열리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스님께서는 아이들의 등교 현황과 연령대 등을 두루 살펴보시고, 학교에 선생님을 데려올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주민들과 같이 이야기를 나누셨습니다.
“제가 온지가 3년이나 4년 정도가 되었지요? 지금 학교 운영이 안된다면서요? 지금 아이들은 어떻게 하고 있어요? 저 아래 실리폰에 내려보내서 공부 시키는 아이가 몇 명 정도 돼요?”
“14명 정도 됩니다.”
“그럼 여섯 살부터 열두살까지는 학교를 다녀야 하는데 학교를 못 다니는 아이들이 동네에 몇 명 정도 돼요?”
“30명 정도 있습니다.”
“학교를 운영하면 다닐 수 있는 아이가 30명 정도 되네요. 마을 젊은이들 중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이 없어요?”
“고등학교 졸업한 친구가 딱 한명 있는데 실리폰에 살고 있습니다.”
“실리폰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는 아이들은 어떻게 다니고 있어요?”
“실리폰에 있는 친척집에 머무면서 주말에만 이곳 알라원으로 왔다 갔다 하고 있습니다.”
“실리폰에 있는 학교를 다니는 14명 중에 혹시 1학년부터 6학년까지 각 학년별로 몇 명이 있어요?”
“2학년에 4명, 3학년에 6명, 4학년에 4명 총 14명입니다.”
“지금 1학년은 없고 2,3,4학년만 있는 것은 알라원에 학교가 운영될 때는 여기서 다니다가 학교가 문을 닫으니 실리폰으로 내려보낸 것 같네요. 1학년은 학교가 문을 닫으니 아예 없는 것이고요. 5,6학년이 없는 이유는 그 때는 알라원에서도 학교가 없을 때였기 때문이고요. 학교가 없을 때는 아이들을 아예 공부시킬 생각을 안했는데, 학교가 있다가 스톱이 되니까 아이들이 계속 학교를 가고 싶어해서 부모가 실리폰으로 아이들을 보냈다는 얘기거든요.”
“지금 제 아이는 실리폰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지만 너무 멀어서 힘들어요. 이곳에 학교가 다시 운영되면 이곳에 아이를 보내고 싶어요.”
“그럼 실리폰에 있는 학교에도 못 보내고 여기 학교도 못가고 집에만 있는 아이들은 누구인지 손을 한번 들어보세요.”
“30명입니다.”
“자, 그럼 30명의 이름을 부를테니 몇 살인지 알려주세요. 라에다? (열두살) 전에는 학교에 다녔는데 지금은 못 가고 있어요? (네) 어머니는 누구예요? (저에요) 바리겔리또? 몇 살? 여기 학교에 다닌 적은 있었어요? (네) 부모는 누구예요?”
이렇게 스님께서는 30명의 아이들 한명 한명의 이름을 호명하며 일일이 다 확인하고 나이도 체크하고 부모가 누구인지 점검을 하셨습니다. 스님의 몇가지 질문으로 인해 순식간에 마을 아이들의 상황이 한눈에 파악이 되었습니다.
▲ 아이들의 이름과 나이, 부모를 꼼꼼히 체크하시는 스님
이곳 알라원 마을에 선생님들이 안오는 이유는 첫째, 이곳까지 오는 게 너무 힘들고, 둘째 여기서 살면 젊은 선생님들은 많이 외로워한다고 합니다. 게다가 이곳 학교는 정부 학교로 등록이 안되어 있어서 정부에서 파견을 받을 수가 없는 어려운 점도 있는 상황입니다. 정부의 정책이 이곳 주민들이 여기에 못살도록 이주시키는 것이 목표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스님께서는 다시 JTS 스텝들을 모아놓고 마을 주민들의 의견을 들은 후 스님의 의견을 공유해 주셨습니다.
“제가 생각할 때는 1,2,3,4학년까지는 여기서 문맹 퇴치 정도만 가르치고, 5,6학년이 되어서 선생님이 혼자서 도저히 못가르치는 것은 실리폰으로 내려보내서 거기에 작은 방을 마련해주고 JTS에서 급식을 지원해주든가 하면서 거기서 배울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을 고려하는 게 필요할 것 같아요.
그런데 이것도 아이들을 위해 정말 잘하는 것인지 아직 몰라요. 공부를 안 하면 이 동네에서 계속 살 수 있는데, 배웠다 하면 이 동네에서 못 살고 나갈 궁리를 하게 되거든요. 배우면 막노동은 안하게 되고 직장은 쉽게 못 구하고 소비 수준은 높아져서 핸드폰을 구하고 싶어하고, 집안에서 골칫거리가 되거든요. 문맹 퇴치라는 측면에서는 좋은데 딱 문맹만 퇴치하고 포기해버리면 되는데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가르쳐주다보면 아이들이 겉멋이 들어서 안좋게 되는 경우도 생기더라구요.”
아이들을 계속 공부시켜주는 것이 진정으로 이 아이들을 위해 잘하는 것인지 아직은 잘 모른다는 말씀에 공감이 갔습니다. 스님께서는 아이들의 문맹을 퇴치하면서 가난한 부모의 삶도 존중하는 어른으로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어떤 교육 환경을 마련해주면 좋을지 다각도로 고민하고 계셨습니다. 이어서 스님께서는 학교에 선생님을 데려오는 방안, 학교 외에 주민들의 경제적 자립을 위해 할 수 있는 일 등에 대해 계속 의견을 수렴해 나가셨습니다.
“학교 선생님이 여기 파견되었는데 여러분들이 생각하기에는 왜 여기 오래 못 있고 그냥 가버리는 것 같아요?”
“여기까지 오는 것이 너무 힘듭니다. 길이 험합니다. 그리고 외로워합니다. 저녁이 되면 할 것이 없어서 외로워합니다. 그게 가장 힘든 점입니다.”
“그래도 누군가는 이 아이들이 글을 쓰고 읽을 수 있게는 가르쳐야 하지 않겠어요? 정식 학교가 아니더라도 말이죠. 또 더하기 빼기 곱하기 나누기는 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정부에 가서 요청했을 때 왜 선생님 파견을 안해준다고 해요?”
“그 이유를 모르겠어요.”
“그러면 여러분들은 이 학교가 운영되기를 원하세요?”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간절히 원합니다.”
“여러분들이 이 학교를 지을 때 정말 고생을 해서 지었습니다. 그것은 이 아이들을 공부시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학교가 운영되지 않으니까 여러분들이 한 노력이 성과가 무용지물이 되고 있습니다. 그때 스님이 여러분께 ”교육청에 가서 우리는 선생님을 원한다고 간절히 요청해 보라“고 얘기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그렇게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선생님이 있다가 없다가 하기 때문에, 앞으로 요청해도 안 될 것 같아요?”
“같은 문제가 되풀이 될 것 같습니다.”
“그러면 제가 선생님이 파견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대신 선생님이 여기 오면 여러분들이 좀 잘 보호해줘야 합니다. 어쨌든 선생님을 3개월 안에는 파견하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주민들 모두 우레와 같은 박수)
“그 외에 마을에 필요한 것은 무엇이 있어요?”
“다리가 대나무로 되어 있어서 위험합니다. 소가 다닐 수 있게 바닥만 좀 교체해 주세요. 가능하면 철판으로 깔았으면 좋겠습니다.”
“철판으로 까는 것은 다리 무게 때문에 어렵습니다. 더 의논해서 무게가 가능한지 기술적으로 검토한 후에 진행하겠습니다. 철근이 안된다면 대나무가 아닌 통나무로 한다든지 방법을 연구해 보겠습니다. 커피는 1년에 얼마가 생산이 돼요?”
“예전에 3000kg까지 생산한 적이 있는데 지금은 500kg 정도 생산합니다. 시장에서는 1kg에 80페소 정도 합니다.”
“시장에서 kg당 얼마쯤 받아야 수입이 좀 돼요?”
“100페소 정도 받으면 여유가 좀 생길 것 같아요.”
“그런데 커피 나무가 너무 늙어보이던데 커피 나무를 새로 심으면 안돼요?”
“지금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현금 수입이 될 수 있는 것이 커피 말고 다른 것은 무엇이 있어요?”
“카사바나 고구마가 있는데 무거워서 갖고 내려가기가 힘듭니다. 시장에 내다 팔기 가장 좋은 것은 들기 가벼운 커피와 아바카입니다. 바구니를 만드는 라탄도 수입에 도움이 됩니다. 그런데 라탄을 채취해 가는 것을 정부가 못하게 합니다.”
“자, 그럼, 첫 번째는 학교 운영이고 두 번째는 다리 보완, 이렇게 해서 시작해 봅시다. 다른 것들은 이 두 가지를 먼저 해결한 후에 다시 얘기합시다.” (주민들 박수)
주민들은 스님의 대답을 듣고 너무나 기뻐하면서 박수를 쳤습니다. 주민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짠해지고 울컥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어서 스님께서는 마을 주민들과의 미팅을 모두 마치고 손수건 한 장씩을 주민들에게 선물하고, 아이들에게는 사탕을 선물했습니다.
▲ 주민들에게 손수건을 나눠주시는 스님
주민들은 스님께서 나눠준 손수건을 받아들고 너무나 기쁜 나머지 손수건을 들고 그 자리에서 덩실덩실 춤을 추었습니다. 스님께서도 마을 주민들과 금새 동화가 되어 같이 어깨를 들썩이며 덩싱덩실 춤을 추셨습니다.
학교를 나와서 알라원 마을 주민들과 작별인사를 하면서 다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원래 9시30분에 알라원에서 출발하려고 했으나 주민들과의 대화가 길어져서 10시20분이 되어 산에서 내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많이 지체되어서 이후 일정에 차질이 생길 것을 염려한 스님께서는 거의 뛰어가다시피 하면서 산을 내려가셨습니다. 그래서 올라갈 때는 3시간이 걸렸는데, 내려올 때는 2시간 10분만에 내려올 수 있었습니다.
알라원 마을에서 JTS 센터로 내려가는 길에는 유독 대나무가 많이 보였습니다. 여러 대나무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하늘 높이 솟아올린 모습을 보니 절로 입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 대나무 숲
내려가는 길 역시 올라가는 길 못지 않게 만만치 않게 땀이 비오듯이 흘러 내렸습니다. 스님께서는 지난 6개월 동안 세계 100회 강연을 다니시며 운동을 거의 하지 못했는데, 이번에 왕복 6시간이라는 무리한 산행을 하셨는지 거의 다 내려와서 다리에 쥐가 나신다며 조금씩 천천히 걷기 시작하셨습니다.
산을 내려오는 도중 해가 뜨면서 정글 속은 조금씩 열기로 채워지고 다시한번 땀이 비오듯이 쏟아졌습니다. 스님께서는 수건으로 땀을 닦으시며 “부자거나 지위가 높은 사람들은 이렇게 좋은 경험을 못해보겠지?” 라고 하시면서 원시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하셨습니다.
드디어 12시30분에 JTS센터에 도착하신 스님께서는 흙이 가득 묻은 신발과 행건, 양말을 벗으셨는데, 양말을 뚫고 거머리가 들어와서 스님의 피를 빨아먹은 것을 발견하기도 하셨습니다. 스님 뿐만 아니라 현희련 JTS 사무국장님은 거머리 6마리에게 물려서 다리에 피가 흥건했고, 카메라 촬영을 하는 이준길 법우도 거머리에 물려 피를 보았는데, 스님께서는 “한국에서 온 사람들만 거머리가 물은 것 같다” 며 “절에 사는 우리는 고기 맛도 안날텐데 왜 물었을까?” 하시며 농담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황순태 한국국제학교 교장선생님은 3번이나 넘어져서 엉덩방아를 찍었다고 하고, 문경수련원에서 오신 안병주님도 바위 위에 크게 엉덩방아를 찍는 등 많은 분들이 산행을 하는 동안 온갖 고초를 겪었다며 일화를 들려주었습니다.
▲ 신발을 벗고 거머리를 떼어내고 계신 스님
그리고 1시간 뒤에 맨 마지막 일행이 JTS센터로 들어오자 스님께서는 “모두들 수고 많았다”고 격려해 주시면서, 식당에 모인 일행들과 다함께 점심 식사를 하셨습니다.
식사 후에는 원래 JTS 센터 기숙사 준공식이 예정되어 있었으나 스님께서 건물이 잘 지어졌는지 꼼꼼히 답사를 해 보시더니 “아직 건물이 완공되지 않은 부분이 많이 있다”고 하시면서 “완공을 한 다음에 준공식을 하자”고 하셔서 준공식은 다음으로 연기가 되었습니다.
▲ JTS 센터 기숙사
준공식이 연기가 되는 아쉬움을 뒤로 하고 오후 3시20분에 센터를 출발해 마라막으로 향했습니다. 스님께서는 센터를 출발하기 전 민다나오 활동가 3명에게 “정말 수고가 많다”고 격려하시면서 함께 기념 사진을 찍고 새책 <지금여기 깨어있기>를 각각 사인해서 선물하셨습니다.
▲ JTS센터 앞에서 민다나오 활동가 3명과 함께. 왼쪽부터 박영일, 이재곤, 김희자.
센터를 나와 마라막으로 향하는 길에 델몬트에서 운영하고 있는 거대한 규모의 파인애플 농장을 구경할 수 있었습니다. 파인애플 농장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광범위하게 펼쳐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길가에 옥수수 밭을 보니 어떤 곳은 추수를 끝냈는데, 어떤 곳은 새로 심어서 자라고 있는 등 일년 내내 농사를 지을 수 있을 정도의 풍요로운 땅임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 델몬트에서 운영하고 있는 거대한 규모의 파인애플 농장
센터를 출발한 스님 일행은 오후 4시 무렵 마놀로폴티치를 경유하고, 오후 5시 20분 무렵 말라이발라이를 경유하여 저녁 7시에 오늘 하룻밤 머무를 숙소가 있는 마라막에 도착했습니다. 마라막으로 오는 길에 스님께서는 알라원 학교 운영과 마을 주민 지원 사업에 대해 이원주 대표님, 김희자님과 함께 한번 더 의견을 나누셨습니다. 스님께서는 “알라원 학교 운영을 위해 선생님을 구하는 방법은 첫째, 민다나오의 인근 대학에서 대학생들이 봉사활동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교사를 하도록 하는 방법이 있는데 이것은 문맹퇴치만 할 수 있지 정식 학교교육으로 인정을 받지는 못한다는 단점이 있고, 둘째, 알라원 마을 주민 중에 고등학교를 나온 한 명의 친구가 교사 역할을 하는 방법이 있는데 이 경우는 아이들이 선생님을 얕보는 단점이 있다” 라고 하시면서 조금 더 고민을 해볼 것을 제안하셨습니다.
그리고 스님께서는 “마을 주민들의 소득 향상을 위해서는 환금성 작물로 커피 나무를 집집마다 심도록 지원해주어서 최소 100페소를 보장해 주고 시장가격이 100페소 이상이면 시장가격보다 10페소 정도 더 높게 JTS에서 구입해줘서 소득을 보장해주면 좋겠다”고 제안해 주셨습니다. 특히 “커피의 경우 가벼워서 알라원과 같은 산간마을에서 운반이 편리하고, 또 한국에서도 커피는 수요가 많아서 정토회에서 공정 무역이라는 형식으로 구매를 연결시켜 주면 소비가 될 수 있을 것” 이라고 하시면서 커피 나무를 지원해주는 방안을 적극 검토해 볼 것을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 말라이발라이
저녁7시30분부터 마라막 숙소에 있는 식당에서 필리핀JTS 이원주 대표님이 사주신 저녁식사를 맛있게 먹은 후 오늘 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 스님께서는 계속 오후 불식을 하고 계셔서 저녁식사는 하지 않으시고 간단히 물과 음료만 드셨습니다.
스님께서는 9시 무렵 숙소로 오셔서 한국에서 보내온 이메일을 체크하시고, 전화를 통화를 하시면서 여러가지 업무들을 처리하시다가 오늘 일과를 모두 마치셨습니다.
내일은 오전6시에 다물록으로 출발하여 JTS가 신축한 보건소와 고등학교의 운영실태를 둘러보신 후 정부 반군인 무슬림해방전선(MILF)의 본거지 마긴다나오에서 vice president와 미팅 및 식사를 하시고, 저녁에는 송코에 도착해서 추장인 타투와 미팅을 가지실 예정입니다. 내일 또 생생한 소식을 전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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